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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3 추천 : 0 글자수 : 4,651 자 2025-10-13
가을이 깊어가고 겨울이 다가오면서, 현우와 진수, 그리고 민재의 일상에도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역할의 무게는 점점 더 커져갔고, 그 속에서 세 식구가 함께하는 시간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과제가 되었다.
현우는 유소년 클럽 운영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그만큼 클럽에 쏟는 시간과 에너지도 늘어났다. 지역 대회 준비와 유망주 발굴, 학부모 상담까지 신경 써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갔고, 주말에도 클럽에 나가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는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과 책임감으로 최선을 다했지만, 그럴수록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진수 역시 병원에서의 역할과 책임이 더욱 커졌다. 외과 과장으로서 중요한 수술을 집도하고 후배들을 지도하는 것 외에도, 병원 전체의 정책 결정 회의에 참석하고 외부 학회 활동을 병행해야 했다. 밤늦게 퇴근하거나 주말에도 병원에 불려 나가는 일이 잦아졌고, 집에 돌아와서도 밀린 논문을 검토하거나 다음 날 수술 준비를 하느라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몸과 마음의 피로가 누적되면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예민해지거나 작은 일에 짜증을 내는 횟수가 늘었다.
민재는 미술 학원에 꾸준히 다니며 실력을 키워나갔지만, 고등학교 2학년의 학업 스트레스 또한 만만치 않았다. 늘어난 공부량과 다가오는 시험에 대한 압박감, 그리고 친구들과의 미묘한 경쟁 속에서 아이는 예민함과 짜증이 늘었다. 특히 그림에 대한 열정과 학업 사이에서 갈등하며 힘들어하는 모습도 보였다. 아빠들이 바빠지면서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든 것에 대한 서운함도 조금씩 쌓여가고 있었다.
세 사람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서로를 향한 작은 서운함과 오해의 씨앗들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다.
“아빠, 오늘 저녁 같이 먹기로 했잖아요!”
금요일 저녁, 늦게 퇴근한 현우에게 민재가 잔뜩 뿔이 난 목소리로 따졌다.
“진수 아빠도 오늘 학회 때문에 늦는다고 했는데… 나 혼자 밥 먹기 싫단 말이에요!”
“아… 미안, 아들. 오늘 갑자기 중요한 회의가 잡혀서…”
현우는 피곤한 기색으로 변명했지만, 아들의 실망한 표정을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
“아빠가 맛있는 거 시켜줄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같이 나갈까?”
“됐어요! 입맛 없어요!”
민재는 쾅 소리를 내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현우는 닫힌 방문 앞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의 마음을 달래주고 싶었지만, 지친 몸은 소파로 먼저 향했다.
밤늦게 돌아온 진수 역시 현관에서부터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나 왔어…”
힘없이 말하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 그의 모습에, 현우는 안쓰러움을 느꼈지만 동시에 자신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말이 튀어나왔다.
“오늘도 많이 늦었네. 민재, 우리 기다리다가 저녁도 안 먹고 방에 들어갔어.”
“……미안해. 오늘 발표가 길어져서 어쩔 수 없었어.”
진수는 피곤함에 눈을 감으며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미안함과 함께 변명처럼 들릴까 봐 조심스러워하는 기색이 묻어났다.
“알아. 아는데…”
현우는 말을 잇지 못했다.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쌓여가는 피로와 서운함은 어쩔 수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서로를 다독이고 위로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만한 마음의 여유조차 부족하게 느껴졌다. 거실에는 어색하고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주말 아침, 오랜만에 세 식구가 함께 식탁에 마주 앉았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서먹했다. 민재는 여전히 입을 꾹 다문 채였고, 현우와 진수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졌다.
“민재야, 이번 주말에 캠핑 가기로 한 거 기억하지? 이따 오후에 출발할 거야.”
진수가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는 듯 말했다.
“……몰라요. 가기 싫어요.”
민재가 고개를 저었다.
“뭐? 가기 싫다니? 너 캠핑 가는 거 좋아했잖아!”
현우가 발끈하며 물었다.
“됐어요! 아빠들이랑 같이 가봤자 재미없어요! 맨날 바쁘다고 나랑 잘 놀아주지도 않으면서!”
민재는 결국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며 소리쳤다.
“차라리 친구들이랑 PC방 가는 게 더 재밌어요!”
아이의 갑작스러운 반항과 눈물에 현우와 진수는 당황스러움을 넘어 충격을 받았다.
“이민재! 너 지금 아빠들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현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평소 다정했던 그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현우야! 애한테 소리 지르지 마!”
진수도 날카롭게 현우를 제지했다.
“민재가 얼마나 서운했으면 저러겠어요. 요즘 우리가 애한테 너무 소홀했던 거 사실이잖아요!”
“나라고 그러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아? 당신은 병원 일 바쁘다는 핑계로 맨날 늦고, 나 혼자 민재 신경 쓰고 클럽 일까지 하느라 얼마나 힘든 줄 알아?”
현우도 참았던 감정을 터뜨리며 진수에게 맞섰다.
“내가 핑계를 댔다고? 너야말로 유도 클럽 일에 빠져서 가족은 뒷전 아니었어? 내가 밤늦게까지 일하는 게 누구 때문인데!”
진수도 지지 않고 날카롭게 받아쳤다.
세 사람 사이에 격한 말들이 오갔고, 집안은 순식간에 싸늘한 냉기로 가득 찼다. 민재는 두 아빠가 싸우는 모습에 겁을 먹고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고, 현우와 진수는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을 쏟아낸 후에야 뒤늦게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행복하기만 할 것 같았던 그들의 가족에게 처음으로 심각한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날 오후, 예정되었던 캠핑은 취소되었다. 집 안에는 무겁고 어색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민재는 자기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고, 현우와 진수는 각자 다른 공간에서 서로를 피하며 깊은 자책감과 후회에 잠겼다. 어떻게 일이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고 아끼는데, 왜 이렇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을까. 각자의 바쁜 삶 속에서 서로의 마음에 귀 기울이는 것을 소홀히 한 결과였다. 흔들리는 균형을 제때 바로잡지 못한 대가였다.
저녁 시간이 되었지만 아무도 식사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때, 진수가 먼저 현우의 서재 문을 두드렸다.
“……현우야. 우리… 이야기 좀 해.”
현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은 거실 소파에 마주 앉았다. 낮의 격한 감정은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어색하고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미안해.”
진수가 먼저 사과했다.
“오늘 내가 너무 예민했어. 당신 힘든 거 알면서도… 괜히 당신 탓만 했네.”
“……아니야. 나도 잘못했어.”
현우도 고개를 숙였다.
“민재한테 소리 지른 것도, 당신한테 함부로 말한 것도… 다 내 잘못이야. 요즘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하고… 당신이랑 민재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어.”
서로에게 솔직하게 사과하고 나니, 굳어있던 마음이 조금씩 풀리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그동안 서로에게 쌓였던 서운함과 오해, 그리고 각자의 힘듦에 대해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현우는 클럽 운영의 어려움과 지도자로서의 고충을, 진수는 병원에서의 스트레스와 과중한 업무 부담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에게 소홀했던 부분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미안함을 표현했다.
“우리가…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나 봐.”
진수가 말했다.
“서로의 꿈을 응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작 가장 소중한 걸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되네.”
“맞아.”
현우도 동의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우리 세 사람이 함께 행복한 거잖아. 그러려면…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 같아. 서로의 시간을 존중해주면서도, 함께하는 시간의 질을 높이는 거.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의 마음에 더 귀 기울이는 거.”
두 사람은 오랜 시간 진솔한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오해를 풀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흔들리는 균형을 다시 맞춰나가야 할지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약속했다. 무조건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보다, 짧더라도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리고 민재에게도 두 사람의 진심을 전하고 사과하기로 했다.
대화를 마치고, 두 사람은 함께 민재의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민재는 침대에 웅크리고 앉아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현우와 진수는 아이의 옆에 나란히 앉아 민재를 꼭 안아주었다.
“민재야… 아빠들이 미안해.”
현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아빠들이 민재 마음도 모르고… 서로 싸우는 모습 보여서 정말 미안해. 아빠들이 잘못했어.”
“맞아. 아빠들이 요즘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우리 민재한테 소홀했던 것 같아. 민재가 얼마나 서운했을까…”
진수도 진심으로 사과하며 민재의 등을 토닥였다.
“하지만 아빠들이 우리 민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단 한 순간도 변한 적 없어. 세상에서 우리 민재를 가장 많이 사랑해.”
두 아빠의 진심 어린 사과에 민재는 참았던 울음을 다시 터뜨리며 두 사람의 품에 안겼다.
“……나도… 아빠들한테 소리 질러서 죄송해요…”
아이는 울먹이며 말했다.
“아니야, 아니야. 민재 잘못 아니야.”
현우와 진수는 아이를 더욱 꼭 안아주며 달랬다.
그날 밤, 세 사람은 오랜만에 한 침대에 누워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잠이 들었다. 낮 동안의 격한 감정의 폭풍우는 지나갔지만, 그 자리에 남은 상처와 깨달음은 그들 가족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될 터였다. 흔들렸던 균형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함께 노력하기로 약속한 이상, 그들은 다시 한번 단단한 가족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었다. 사랑은 때로는 이렇게 흔들리고 부딪히는 과정을 통해 더욱 깊어지고 성숙해지는 것임을, 그들은 몸소 배우고 있었다.
현우는 유소년 클럽 운영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그만큼 클럽에 쏟는 시간과 에너지도 늘어났다. 지역 대회 준비와 유망주 발굴, 학부모 상담까지 신경 써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갔고, 주말에도 클럽에 나가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는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과 책임감으로 최선을 다했지만, 그럴수록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진수 역시 병원에서의 역할과 책임이 더욱 커졌다. 외과 과장으로서 중요한 수술을 집도하고 후배들을 지도하는 것 외에도, 병원 전체의 정책 결정 회의에 참석하고 외부 학회 활동을 병행해야 했다. 밤늦게 퇴근하거나 주말에도 병원에 불려 나가는 일이 잦아졌고, 집에 돌아와서도 밀린 논문을 검토하거나 다음 날 수술 준비를 하느라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몸과 마음의 피로가 누적되면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예민해지거나 작은 일에 짜증을 내는 횟수가 늘었다.
민재는 미술 학원에 꾸준히 다니며 실력을 키워나갔지만, 고등학교 2학년의 학업 스트레스 또한 만만치 않았다. 늘어난 공부량과 다가오는 시험에 대한 압박감, 그리고 친구들과의 미묘한 경쟁 속에서 아이는 예민함과 짜증이 늘었다. 특히 그림에 대한 열정과 학업 사이에서 갈등하며 힘들어하는 모습도 보였다. 아빠들이 바빠지면서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든 것에 대한 서운함도 조금씩 쌓여가고 있었다.
세 사람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서로를 향한 작은 서운함과 오해의 씨앗들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다.
“아빠, 오늘 저녁 같이 먹기로 했잖아요!”
금요일 저녁, 늦게 퇴근한 현우에게 민재가 잔뜩 뿔이 난 목소리로 따졌다.
“진수 아빠도 오늘 학회 때문에 늦는다고 했는데… 나 혼자 밥 먹기 싫단 말이에요!”
“아… 미안, 아들. 오늘 갑자기 중요한 회의가 잡혀서…”
현우는 피곤한 기색으로 변명했지만, 아들의 실망한 표정을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
“아빠가 맛있는 거 시켜줄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같이 나갈까?”
“됐어요! 입맛 없어요!”
민재는 쾅 소리를 내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현우는 닫힌 방문 앞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의 마음을 달래주고 싶었지만, 지친 몸은 소파로 먼저 향했다.
밤늦게 돌아온 진수 역시 현관에서부터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나 왔어…”
힘없이 말하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 그의 모습에, 현우는 안쓰러움을 느꼈지만 동시에 자신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말이 튀어나왔다.
“오늘도 많이 늦었네. 민재, 우리 기다리다가 저녁도 안 먹고 방에 들어갔어.”
“……미안해. 오늘 발표가 길어져서 어쩔 수 없었어.”
진수는 피곤함에 눈을 감으며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미안함과 함께 변명처럼 들릴까 봐 조심스러워하는 기색이 묻어났다.
“알아. 아는데…”
현우는 말을 잇지 못했다.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쌓여가는 피로와 서운함은 어쩔 수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서로를 다독이고 위로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만한 마음의 여유조차 부족하게 느껴졌다. 거실에는 어색하고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주말 아침, 오랜만에 세 식구가 함께 식탁에 마주 앉았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서먹했다. 민재는 여전히 입을 꾹 다문 채였고, 현우와 진수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졌다.
“민재야, 이번 주말에 캠핑 가기로 한 거 기억하지? 이따 오후에 출발할 거야.”
진수가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는 듯 말했다.
“……몰라요. 가기 싫어요.”
민재가 고개를 저었다.
“뭐? 가기 싫다니? 너 캠핑 가는 거 좋아했잖아!”
현우가 발끈하며 물었다.
“됐어요! 아빠들이랑 같이 가봤자 재미없어요! 맨날 바쁘다고 나랑 잘 놀아주지도 않으면서!”
민재는 결국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며 소리쳤다.
“차라리 친구들이랑 PC방 가는 게 더 재밌어요!”
아이의 갑작스러운 반항과 눈물에 현우와 진수는 당황스러움을 넘어 충격을 받았다.
“이민재! 너 지금 아빠들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현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평소 다정했던 그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현우야! 애한테 소리 지르지 마!”
진수도 날카롭게 현우를 제지했다.
“민재가 얼마나 서운했으면 저러겠어요. 요즘 우리가 애한테 너무 소홀했던 거 사실이잖아요!”
“나라고 그러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아? 당신은 병원 일 바쁘다는 핑계로 맨날 늦고, 나 혼자 민재 신경 쓰고 클럽 일까지 하느라 얼마나 힘든 줄 알아?”
현우도 참았던 감정을 터뜨리며 진수에게 맞섰다.
“내가 핑계를 댔다고? 너야말로 유도 클럽 일에 빠져서 가족은 뒷전 아니었어? 내가 밤늦게까지 일하는 게 누구 때문인데!”
진수도 지지 않고 날카롭게 받아쳤다.
세 사람 사이에 격한 말들이 오갔고, 집안은 순식간에 싸늘한 냉기로 가득 찼다. 민재는 두 아빠가 싸우는 모습에 겁을 먹고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고, 현우와 진수는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을 쏟아낸 후에야 뒤늦게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행복하기만 할 것 같았던 그들의 가족에게 처음으로 심각한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날 오후, 예정되었던 캠핑은 취소되었다. 집 안에는 무겁고 어색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민재는 자기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고, 현우와 진수는 각자 다른 공간에서 서로를 피하며 깊은 자책감과 후회에 잠겼다. 어떻게 일이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고 아끼는데, 왜 이렇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을까. 각자의 바쁜 삶 속에서 서로의 마음에 귀 기울이는 것을 소홀히 한 결과였다. 흔들리는 균형을 제때 바로잡지 못한 대가였다.
저녁 시간이 되었지만 아무도 식사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때, 진수가 먼저 현우의 서재 문을 두드렸다.
“……현우야. 우리… 이야기 좀 해.”
현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은 거실 소파에 마주 앉았다. 낮의 격한 감정은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어색하고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미안해.”
진수가 먼저 사과했다.
“오늘 내가 너무 예민했어. 당신 힘든 거 알면서도… 괜히 당신 탓만 했네.”
“……아니야. 나도 잘못했어.”
현우도 고개를 숙였다.
“민재한테 소리 지른 것도, 당신한테 함부로 말한 것도… 다 내 잘못이야. 요즘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하고… 당신이랑 민재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어.”
서로에게 솔직하게 사과하고 나니, 굳어있던 마음이 조금씩 풀리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그동안 서로에게 쌓였던 서운함과 오해, 그리고 각자의 힘듦에 대해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현우는 클럽 운영의 어려움과 지도자로서의 고충을, 진수는 병원에서의 스트레스와 과중한 업무 부담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에게 소홀했던 부분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미안함을 표현했다.
“우리가…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나 봐.”
진수가 말했다.
“서로의 꿈을 응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작 가장 소중한 걸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되네.”
“맞아.”
현우도 동의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우리 세 사람이 함께 행복한 거잖아. 그러려면…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 같아. 서로의 시간을 존중해주면서도, 함께하는 시간의 질을 높이는 거.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의 마음에 더 귀 기울이는 거.”
두 사람은 오랜 시간 진솔한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오해를 풀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흔들리는 균형을 다시 맞춰나가야 할지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약속했다. 무조건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보다, 짧더라도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리고 민재에게도 두 사람의 진심을 전하고 사과하기로 했다.
대화를 마치고, 두 사람은 함께 민재의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민재는 침대에 웅크리고 앉아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현우와 진수는 아이의 옆에 나란히 앉아 민재를 꼭 안아주었다.
“민재야… 아빠들이 미안해.”
현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아빠들이 민재 마음도 모르고… 서로 싸우는 모습 보여서 정말 미안해. 아빠들이 잘못했어.”
“맞아. 아빠들이 요즘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우리 민재한테 소홀했던 것 같아. 민재가 얼마나 서운했을까…”
진수도 진심으로 사과하며 민재의 등을 토닥였다.
“하지만 아빠들이 우리 민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단 한 순간도 변한 적 없어. 세상에서 우리 민재를 가장 많이 사랑해.”
두 아빠의 진심 어린 사과에 민재는 참았던 울음을 다시 터뜨리며 두 사람의 품에 안겼다.
“……나도… 아빠들한테 소리 질러서 죄송해요…”
아이는 울먹이며 말했다.
“아니야, 아니야. 민재 잘못 아니야.”
현우와 진수는 아이를 더욱 꼭 안아주며 달랬다.
그날 밤, 세 사람은 오랜만에 한 침대에 누워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잠이 들었다. 낮 동안의 격한 감정의 폭풍우는 지나갔지만, 그 자리에 남은 상처와 깨달음은 그들 가족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될 터였다. 흔들렸던 균형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함께 노력하기로 약속한 이상, 그들은 다시 한번 단단한 가족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었다. 사랑은 때로는 이렇게 흔들리고 부딪히는 과정을 통해 더욱 깊어지고 성숙해지는 것임을, 그들은 몸소 배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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