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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0 추천 : 0 글자수 : 5,061 자 2025-10-14
격한 감정의 폭풍우가 휩쓸고 간 다음 날 아침, 현우의 집 식탁 위에는 토스트와 계란 프라이, 그리고 어색한 침묵이 함께 놓여 있었다. 평소 같으면 민재의 재잘거림과 현우의 장난스러운 농담, 진수의 다정한 잔소리가 어우러졌을 공간이었지만, 오늘은 포크와 접시가 부딪히는 소리만이 유난히 크게 들렸다. 세 사람은 애써 서로의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하며, 각자의 접시 위에 놓인 음식에만 집중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 어색함 속에는 분명, 어제의 상처를 딛고 다시 서로에게 다가가려는 조심스러운 노력의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현우였다. 그는 마른 토스트를 삼키고 헛기침을 한 뒤, 최대한 밝은 목소리를 내려고 애쓰며 말했다.
“음… 민재야, 진수 씨. 우리 오늘 뭐 할까? 날씨도 좋은데… 어제 못 간 캠핑 대신, 가까운 곳이라도 바람 쐬러 나갈까? 어디든, 당신들이 가고 싶은 곳으로.”
그의 제안에는 어색함을 깨고 다시 한번 가족의 시간을 만들어보려는 간절함과 함께, 어젯밤 진수와 나누었던 약속을 실천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민재는 고개를 숙인 채 포크로 계란 노른자를 톡톡 건드리고 있었다. 어제의 격한 감정은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마음속에는 서운함과 혼란스러움이 남아있는 듯했다. 잠시 망설이던 아이는, 현우의 눈치를 살짝 보더니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좋아요.”
부정적인 대답은 아니었지만, 예전처럼 신나서 환호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현우와 진수는 그 작은 긍정의 신호에 안도감을 느꼈다.
진수는 민재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따뜻한 미소를 보냈다.
“좋지. 오랜만에 세 식구 자전거 타러 갈까? 저번에 갔던 강변 공원 길, 단풍 들어서 엄청 예뻤는데. 지금 가면 또 다른 느낌일 거야.”
그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차분하고 안정적이었고, 그 안정감이 현우와 민재의 불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다독여주는 듯했다.
그렇게 세 사람은 어색하지만 희망적인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현관문을 나서자, 싸늘했던 밤공기와 달리 눈부시게 쏟아지는 가을 햇살과 상쾌한 바람이 그들을 맞이했다. 마치 자연이 그들의 화해를 축복이라도 하듯, 맑고 청명한 날씨였다. 공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는 조용한 음악이 흘렀고, 세 사람은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 현우는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어제의 자신의 행동을 곱씹었다. 아무리 화가 났더라도 아이 앞에서 그렇게 감정을 터뜨린 것은 분명 잘못이었다. 진수에게 쏟아낸 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의 미성숙함에 깊은 자책감을 느끼며, 앞으로 정말 달라져야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 진수는 옆자리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도 남편에 대한 미안함과 아들에 대한 안쓰러움, 그리고 앞으로 가족의 균형을 어떻게 지혜롭게 맞춰나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교차하고 있었다. 뒷좌석의 민재는 창밖 풍경보다는 자신의 손가락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아이의 작은 머릿속에는 여전히 어제의 충격과 함께, 아빠들이 정말 괜찮아진 건지, 다시 예전처럼 자신을 사랑해줄 건지에 대한 불안감이 남아있을 터였다.
공원에 도착하여 자전거를 빌리고 헬멧을 쓰는 동안에도 세 사람 사이의 어색함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민재가 먼저 페달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하자, 현우와 진수도 자연스럽게 그 뒤를 따랐다. 울긋불긋 물든 단풍잎들이 흩날리는 강변 자전거 도로는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페달을 밟는 동안,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세 사람의 마음도 조금씩 가벼워지는 듯했다.
민재는 처음에는 아빠들 눈치를 보며 속도를 내지 못했지만, 이내 탁 트인 풍경과 자전거 타는 즐거움에 빠져들었다.
“아빠! 나 먼저 간다!”
아이는 뒤를 돌아보며 장난스럽게 외치고는 있는 힘껏 페달을 밟아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 모습에 현우와 진수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의 해맑은 웃음은 언제나 그들에게 가장 강력한 치유제였다.
“저 녀석, 언제 저렇게 컸지?”
현우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이제 자전거 타는 속도도 제법 빨라져서 따라가기 힘드네.”
“그러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아이는 계속 자라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제자리걸음이었던 건 아닌지 모르겠어.”
진수가 조금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앞으로는 정말 잘해야지.”
현우가 진수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길에는 굳은 다짐이 담겨 있었다.
“민재한테도, 당신한테도… 더 좋은 아빠, 더 좋은 남편이 될게. 약속해.”
“나도 노력할게.”
진수도 현우의 손을 마주 잡았다.
“일과 가정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고, 당신이랑 민재 마음을 더 세심하게 살필게. 우리… 다시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따사로운 가을 햇살 아래,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창한 약속이나 다짐보다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함께 나아가겠다는 조용한 의지가 더 중요했다. 그들은 다시 자전거에 올라, 앞서 달려가는 민재를 향해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세 개의 그림자가 나란히 강변 도로 위를 달렸다.
그날 이후, 현우와 진수의 노력은 조금씩, 하지만 분명하게 일상에 변화를 가져왔다. 현우는 클럽 운영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관리하여 저녁 시간을 확보했고, 아무리 피곤해도 민재가 잠들기 전까지는 거실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려 애썼다. 민재의 학교생활이나 친구 관계에 대해 더 자주 묻고 관심을 표현했으며, 가끔은 서툴지만 민재가 좋아하는 로봇 조립이나 그림 그리기를 함께 하기도 했다. 유도 기술을 가르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인내심과 섬세함이 필요했지만, 아들과의 교감을 위해 기꺼이 노력했다.
진수 역시 달라졌다. 칼같이 퇴근 시간을 지키기 어려운 현실이었지만, 적어도 집에 와서는 일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현우와 민재에게 집중하려 노력했다. 저녁 식사 시간에는 휴대폰을 보거나 서류를 뒤적이는 대신, 온전히 대화에 집중했고, 주말에는 의식적으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계획했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소파에 누워만 있기보다는, 함께 보드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하다못해 거실 청소라도 함께하며 ‘같이’하는 시간을 늘렸다.
이러한 노력들은 민재에게 가장 먼저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아빠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자신에게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자 아이는 눈에 띄게 밝아졌다. 뾰로통했던 표정은 다시 해맑은 미소로 바뀌었고, 짜증 내거나 반항하는 횟수도 현저히 줄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신나게 재잘거렸고, 아빠들에게 먼저 다가와 장난을 걸거나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미술 학원에서의 슬럼프도 점차 극복하는 듯, 그림에 대한 열정을 되찾고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즐거워했다.
어느 주말 오후, 세 사람은 지난번 다툼의 발단이 되었던 민재의 미술 학원 과제, ‘나의 꿈’을 함께 마무리하기 위해 거실에 모였다. 민재는 커다란 캔버스 앞에 앉아 팔레트에 물감을 짜고 있었다. 현우와 진수는 민재의 양옆에 앉아 아이가 어떤 그림을 그려나갈지 기대하며 지켜보았다.
민재의 붓은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먼저 캔버스 중앙에 따뜻한 느낌의 집을 그렸다. 그리고 그 집 앞에 손을 잡고 활짝 웃고 있는 세 사람의 모습을 그렸다. 한 사람은 유도복을 입은 것처럼 보이는 듬직한 모습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하얀 가운을 입은 듯한 지적인 모습이었으며, 가운데에는 자신을 꼭 닮은 아이가 두 사람의 손을 잡고 있었다. 배경에는 푸른 하늘과 초록빛 나무, 그리고 알록달록한 꽃들이 가득했다.
“와… 우리 아들, 그림 실력 정말 많이 늘었다!”
현우가 진심으로 감탄하며 말했다. 기술적인 완성도를 떠나, 그림 자체가 주는 따뜻하고 행복한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그러게. 색깔도 너무 예쁘고… 특히 세 사람 표정이 정말 행복해 보여.”
진수도 민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했다.
민재는 쑥스러워하면서도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이게 제 꿈이에요.”
아이는 붓을 내려놓고 두 아빠를 바라보며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멋진 화가가 되는 거요? 그것도 맞지만… 더 큰 꿈은요…”
민재는 잠시 숨을 고르고,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제 꿈은요… 현우 아빠랑 진수 아빠랑 나랑… 우리 세 식구가… 지금처럼… 아니, 지금보다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사랑하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거예요. 이 그림처럼요.”
아이의 입에서 나온 그 어떤 예술적인 포부보다 더 깊고 진실된 꿈. 그 순수하고 아름다운 고백에 현우와 진수는 순간 말을 잃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감동이 밀려왔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들이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것, 그들이 함께 만들어가야 할 미래의 모습이 바로 아이의 그림 속에, 아이의 꿈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아이고, 우리 아들…”
현우는 더 이상 감정을 참지 못하고 민재를 품에 와락 끌어안았다. 그의 목소리는 감격에 겨워 살짝 잠겨 있었다.
“그거… 정말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소중한 꿈이다… 아빠들도 민재랑 똑같은 꿈을 꾸고 있어. 우리 세 사람,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그렇게 될 거야. 아빠들이 약속할게.”
“맞아. 민재가 있어서 아빠들은 이미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야.”
진수도 눈물을 글썽이며 민재의 등을 토닥였다.
“민재의 그 예쁜 꿈, 우리가 함께 꼭 이루어 나가자. 서로 더 많이 아껴주고,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사랑하면서.”
세 사람은 한참 동안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서로의 심장 박동 소리와 따뜻한 체온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삐걱거렸던 마음의 조율은 이제 완벽한 화음을 이루며 아름다운 멜로디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서로를 향한 노력과 이해, 그리고 아이의 순수한 사랑은 그들의 관계를 이전보다 훨씬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날 저녁, 세 사람은 민재가 그린 ‘나의 꿈’ 그림을 거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었다. 그림 속 환하게 웃고 있는 세 사람의 모습은 그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따뜻한 등대와 같았다. 현우와 진수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앞으로 그들의 삶에 또 어떤 파도가 밀려올지 알 수 없었지만, 이제 그들은 두렵지 않았다. 서로의 손을 놓지 않고, 함께 꿈을 꾸고, 함께 걸어가는 한, 그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행복할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마음 깊이 믿고 있었다. 그 믿음 속에서, 그들의 가을밤은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롭고 따뜻하게 깊어가고 있었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현우였다. 그는 마른 토스트를 삼키고 헛기침을 한 뒤, 최대한 밝은 목소리를 내려고 애쓰며 말했다.
“음… 민재야, 진수 씨. 우리 오늘 뭐 할까? 날씨도 좋은데… 어제 못 간 캠핑 대신, 가까운 곳이라도 바람 쐬러 나갈까? 어디든, 당신들이 가고 싶은 곳으로.”
그의 제안에는 어색함을 깨고 다시 한번 가족의 시간을 만들어보려는 간절함과 함께, 어젯밤 진수와 나누었던 약속을 실천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민재는 고개를 숙인 채 포크로 계란 노른자를 톡톡 건드리고 있었다. 어제의 격한 감정은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마음속에는 서운함과 혼란스러움이 남아있는 듯했다. 잠시 망설이던 아이는, 현우의 눈치를 살짝 보더니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좋아요.”
부정적인 대답은 아니었지만, 예전처럼 신나서 환호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현우와 진수는 그 작은 긍정의 신호에 안도감을 느꼈다.
진수는 민재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따뜻한 미소를 보냈다.
“좋지. 오랜만에 세 식구 자전거 타러 갈까? 저번에 갔던 강변 공원 길, 단풍 들어서 엄청 예뻤는데. 지금 가면 또 다른 느낌일 거야.”
그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차분하고 안정적이었고, 그 안정감이 현우와 민재의 불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다독여주는 듯했다.
그렇게 세 사람은 어색하지만 희망적인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현관문을 나서자, 싸늘했던 밤공기와 달리 눈부시게 쏟아지는 가을 햇살과 상쾌한 바람이 그들을 맞이했다. 마치 자연이 그들의 화해를 축복이라도 하듯, 맑고 청명한 날씨였다. 공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는 조용한 음악이 흘렀고, 세 사람은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 현우는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어제의 자신의 행동을 곱씹었다. 아무리 화가 났더라도 아이 앞에서 그렇게 감정을 터뜨린 것은 분명 잘못이었다. 진수에게 쏟아낸 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의 미성숙함에 깊은 자책감을 느끼며, 앞으로 정말 달라져야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 진수는 옆자리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도 남편에 대한 미안함과 아들에 대한 안쓰러움, 그리고 앞으로 가족의 균형을 어떻게 지혜롭게 맞춰나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교차하고 있었다. 뒷좌석의 민재는 창밖 풍경보다는 자신의 손가락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아이의 작은 머릿속에는 여전히 어제의 충격과 함께, 아빠들이 정말 괜찮아진 건지, 다시 예전처럼 자신을 사랑해줄 건지에 대한 불안감이 남아있을 터였다.
공원에 도착하여 자전거를 빌리고 헬멧을 쓰는 동안에도 세 사람 사이의 어색함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민재가 먼저 페달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하자, 현우와 진수도 자연스럽게 그 뒤를 따랐다. 울긋불긋 물든 단풍잎들이 흩날리는 강변 자전거 도로는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페달을 밟는 동안,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세 사람의 마음도 조금씩 가벼워지는 듯했다.
민재는 처음에는 아빠들 눈치를 보며 속도를 내지 못했지만, 이내 탁 트인 풍경과 자전거 타는 즐거움에 빠져들었다.
“아빠! 나 먼저 간다!”
아이는 뒤를 돌아보며 장난스럽게 외치고는 있는 힘껏 페달을 밟아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 모습에 현우와 진수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의 해맑은 웃음은 언제나 그들에게 가장 강력한 치유제였다.
“저 녀석, 언제 저렇게 컸지?”
현우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이제 자전거 타는 속도도 제법 빨라져서 따라가기 힘드네.”
“그러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아이는 계속 자라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제자리걸음이었던 건 아닌지 모르겠어.”
진수가 조금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앞으로는 정말 잘해야지.”
현우가 진수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길에는 굳은 다짐이 담겨 있었다.
“민재한테도, 당신한테도… 더 좋은 아빠, 더 좋은 남편이 될게. 약속해.”
“나도 노력할게.”
진수도 현우의 손을 마주 잡았다.
“일과 가정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고, 당신이랑 민재 마음을 더 세심하게 살필게. 우리… 다시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따사로운 가을 햇살 아래,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창한 약속이나 다짐보다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함께 나아가겠다는 조용한 의지가 더 중요했다. 그들은 다시 자전거에 올라, 앞서 달려가는 민재를 향해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세 개의 그림자가 나란히 강변 도로 위를 달렸다.
그날 이후, 현우와 진수의 노력은 조금씩, 하지만 분명하게 일상에 변화를 가져왔다. 현우는 클럽 운영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관리하여 저녁 시간을 확보했고, 아무리 피곤해도 민재가 잠들기 전까지는 거실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려 애썼다. 민재의 학교생활이나 친구 관계에 대해 더 자주 묻고 관심을 표현했으며, 가끔은 서툴지만 민재가 좋아하는 로봇 조립이나 그림 그리기를 함께 하기도 했다. 유도 기술을 가르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인내심과 섬세함이 필요했지만, 아들과의 교감을 위해 기꺼이 노력했다.
진수 역시 달라졌다. 칼같이 퇴근 시간을 지키기 어려운 현실이었지만, 적어도 집에 와서는 일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현우와 민재에게 집중하려 노력했다. 저녁 식사 시간에는 휴대폰을 보거나 서류를 뒤적이는 대신, 온전히 대화에 집중했고, 주말에는 의식적으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계획했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소파에 누워만 있기보다는, 함께 보드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하다못해 거실 청소라도 함께하며 ‘같이’하는 시간을 늘렸다.
이러한 노력들은 민재에게 가장 먼저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아빠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자신에게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자 아이는 눈에 띄게 밝아졌다. 뾰로통했던 표정은 다시 해맑은 미소로 바뀌었고, 짜증 내거나 반항하는 횟수도 현저히 줄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신나게 재잘거렸고, 아빠들에게 먼저 다가와 장난을 걸거나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미술 학원에서의 슬럼프도 점차 극복하는 듯, 그림에 대한 열정을 되찾고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즐거워했다.
어느 주말 오후, 세 사람은 지난번 다툼의 발단이 되었던 민재의 미술 학원 과제, ‘나의 꿈’을 함께 마무리하기 위해 거실에 모였다. 민재는 커다란 캔버스 앞에 앉아 팔레트에 물감을 짜고 있었다. 현우와 진수는 민재의 양옆에 앉아 아이가 어떤 그림을 그려나갈지 기대하며 지켜보았다.
민재의 붓은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먼저 캔버스 중앙에 따뜻한 느낌의 집을 그렸다. 그리고 그 집 앞에 손을 잡고 활짝 웃고 있는 세 사람의 모습을 그렸다. 한 사람은 유도복을 입은 것처럼 보이는 듬직한 모습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하얀 가운을 입은 듯한 지적인 모습이었으며, 가운데에는 자신을 꼭 닮은 아이가 두 사람의 손을 잡고 있었다. 배경에는 푸른 하늘과 초록빛 나무, 그리고 알록달록한 꽃들이 가득했다.
“와… 우리 아들, 그림 실력 정말 많이 늘었다!”
현우가 진심으로 감탄하며 말했다. 기술적인 완성도를 떠나, 그림 자체가 주는 따뜻하고 행복한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그러게. 색깔도 너무 예쁘고… 특히 세 사람 표정이 정말 행복해 보여.”
진수도 민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했다.
민재는 쑥스러워하면서도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이게 제 꿈이에요.”
아이는 붓을 내려놓고 두 아빠를 바라보며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멋진 화가가 되는 거요? 그것도 맞지만… 더 큰 꿈은요…”
민재는 잠시 숨을 고르고,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제 꿈은요… 현우 아빠랑 진수 아빠랑 나랑… 우리 세 식구가… 지금처럼… 아니, 지금보다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사랑하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거예요. 이 그림처럼요.”
아이의 입에서 나온 그 어떤 예술적인 포부보다 더 깊고 진실된 꿈. 그 순수하고 아름다운 고백에 현우와 진수는 순간 말을 잃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감동이 밀려왔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들이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것, 그들이 함께 만들어가야 할 미래의 모습이 바로 아이의 그림 속에, 아이의 꿈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아이고, 우리 아들…”
현우는 더 이상 감정을 참지 못하고 민재를 품에 와락 끌어안았다. 그의 목소리는 감격에 겨워 살짝 잠겨 있었다.
“그거… 정말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소중한 꿈이다… 아빠들도 민재랑 똑같은 꿈을 꾸고 있어. 우리 세 사람,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그렇게 될 거야. 아빠들이 약속할게.”
“맞아. 민재가 있어서 아빠들은 이미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야.”
진수도 눈물을 글썽이며 민재의 등을 토닥였다.
“민재의 그 예쁜 꿈, 우리가 함께 꼭 이루어 나가자. 서로 더 많이 아껴주고,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사랑하면서.”
세 사람은 한참 동안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서로의 심장 박동 소리와 따뜻한 체온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삐걱거렸던 마음의 조율은 이제 완벽한 화음을 이루며 아름다운 멜로디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서로를 향한 노력과 이해, 그리고 아이의 순수한 사랑은 그들의 관계를 이전보다 훨씬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날 저녁, 세 사람은 민재가 그린 ‘나의 꿈’ 그림을 거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었다. 그림 속 환하게 웃고 있는 세 사람의 모습은 그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따뜻한 등대와 같았다. 현우와 진수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앞으로 그들의 삶에 또 어떤 파도가 밀려올지 알 수 없었지만, 이제 그들은 두렵지 않았다. 서로의 손을 놓지 않고, 함께 꿈을 꾸고, 함께 걸어가는 한, 그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행복할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마음 깊이 믿고 있었다. 그 믿음 속에서, 그들의 가을밤은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롭고 따뜻하게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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