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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264 추천 : 0 글자수 : 4,523 자 2025-11-04
가을의 문턱, 민재의 미대 입시 준비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면서 집안의 분위기는 다시 한번 미묘한 긴장감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민재는 주말도 반납한 채 화실과 독서실을 오갔고, 현우와 진수는 그런 아들을 묵묵히 지원하면서도 행여나 아이가 너무 지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세 사람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는 가운데, 아주 뜻밖의 연락이 현우에게 도착했다.
“여보세요?”
운동 후 샤워를 마치고 나온 현우가 발신자 번호를 확인하지 않고 무심코 전화를 받았다.
“……이현우 선수… 아니, 이현우 코치님 맞으십니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것은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한 느낌의 중년 남성의 목소리였다.
“네, 맞습니다만… 누구시죠?”
“아, 저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대표팀 시절 같이 훈련했던… 박철민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OO대학교 유도부 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박철민. 현우는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까마득한 후배였지만, 성실하고 재능 있었던 선수로 기억하는 이름이었다.
“아, 네! 박 감독님! 오랜만입니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현우는 반가운 마음에 목소리 톤을 높였다.
“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코치님께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이렇게 염치 불구하고 연락드렸습니다.”
박철민 감독의 목소리는 정중하면서도 약간의 긴장감이 묻어났다.
“부탁이라니요? 제가 도울 일이 있다면 얼마든지요.”
“저희 대학 유도부가 다음 달에 창단 30주년 기념행사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를 빛내주셨던 선배님들을 모시고 특별 강연과 시범 행사를 가지려고 하는데… 혹시 코치님께서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실지…”
현우는 순간 망설였다. 은퇴한 지 이미 오래되었고, 이제는 유소년 클럽 지도자로서의 삶에 집중하고 있었다. 다시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강연을 하고 시범을 보인다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자신을 기억하고 찾아준 후배의 간절한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언제쯤으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다음 달 셋째 주 토요일 오후입니다. 혹시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현우는 잠시 달력을 떠올렸다. 다행히 그날은 클럽 행사나 특별한 일정이 없었다. 그리고 문득, 이 기회를 통해 민재에게 자신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집에서 편안한 모습만 보거나, 클럽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만 보아왔던 아들에게, 한때 국가대표 유도 선수로서 매트 위를 호령했던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어쩌면 그것이 입시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 아들에게 작은 자극이나 동기 부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네, 좋습니다. 영광입니다. 제가 뭐라고 그런 자리에 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꺼이 참석하겠습니다.”
현우는 잠시의 고민 끝에 흔쾌히 수락했다.
전화를 끊고 난 후, 현우는 거실에 있는 진수와 민재에게 방금 있었던 통화 내용을 전했다.
“우와! 현우 아빠 진짜 멋있다! 대학교에서 강연도 하시고!”
민재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아빠의 새로운 모습에 대한 기대감이 엿보였다.
“그러게. 당신 정말 대단하다.”
진수도 진심으로 감탄하며 현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오랜만에 도복 입은 모습 보겠네. 나랑 민재도 꼭 같이 갈게. 당신 응원하러.”
“정말? 와주면 나야 너무 좋지!”
현우는 가족의 응원에 힘입어 자신감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그날부터 현우는 강연 준비와 시범 연습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후배 선수들에게 도움이 될지, 어떤 기술 시범이 인상 깊을지 고민하며 밤늦게까지 자료를 찾고 연습에 매진했다. 오랜만에 도복을 다시 입고 매트 위에 서니, 잠자고 있던 선수 시절의 열정과 감각이 다시 깨어나는 듯했다.
하지만 연습을 거듭할수록 현우는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몇 번의 기술 시범만으로도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고질적인 어깨 통증도 다시 스멀스멀 올라왔다. 마음은 여전히 청춘이었지만, 몸은 속일 수 없는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했다.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나? 괜히 수락해서 망신만 당하는 거 아니야?’ 불안감이 엄습했다.
밤늦게까지 연습하고 돌아와 어깨를 주무르며 힘들어하는 현우의 모습을, 진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그는 현우가 잠든 사이, 조용히 그의 어깨에 파스를 붙여주고 따뜻한 찜질팩을 올려주었다.
“너무 무리하지 마.”
다음 날 아침, 진수가 현우에게 따뜻한 차를 건네며 말했다.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당신이 후배들을 위해 좋은 마음으로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야. 완벽한 모습 보여주려고 너무 애쓰지 마. 그냥 당신의 경험과 진심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후배들에게는 큰 힘이 될 거야.”
“……알아. 아는데… 그래도 오랜만에 서는 자리인데, 이왕이면 멋진 모습 보여주고 싶어서.”
현우는 씁쓸하게 웃었다.
“당신은 그냥 당신 자체로 충분히 멋있어.”
진수는 현우의 손을 잡으며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당신 옆에는 우리가 있잖아. 너무 부담 갖지 마.”
진수의 변함없는 지지와 따뜻한 위로에 현우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나누고, 후배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는 다시 긍정적인 마음으로 연습에 임했다.
드디어 행사 당일. 현우는 오랜만에 각 잡힌 정장을 차려입고 진수, 민재와 함께 대학교 강당으로 향했다. 강당 안은 유도부 OB 선수들과 재학생들, 그리고 학교 관계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현우를 알아보는 반가운 얼굴들도 눈에 띄었다. 그는 오랜만에 만난 선후배들과 악수를 나누며 안부를 물었다.
잠시 후, 행사가 시작되고 현우의 강연 차례가 되었다. 단상 위에 선 현우는 잠시 심호흡을 하고 마이크를 잡았다. 객석 앞자리에 앉아 자신을 향해 응원의 눈빛을 보내는 진수와 민재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에 현우는 긴장이 풀리며 편안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는 선수 시절의 경험담부터 시작하여 슬럼프를 극복했던 과정, 올림픽 무대에 섰을 때의 감격과 아쉬움, 그리고 은퇴 후 지도자로서 새로운 길을 걸으며 느끼는 보람과 어려움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담담하게 풀어나갔다. 그의 진솔한 이야기에 객석의 후배 선수들은 깊이 몰입하며 귀를 기울였다.
“여러분,”
현우는 강연 말미에 힘주어 말했다.
“유도는 단순히 상대를 넘어뜨리는 기술을 배우는 운동이 아닙니다.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 포기하지 않는 끈기, 그리고 상대를 존중하는 예의를 배우는 과정입니다. 결과에 연연하기보다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그 과정 속에서 성장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 역시 앞으로 지도자로서 여러분의 성장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강연이 끝나자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현우는 벅찬 마음으로 객석을 향해 허리 숙여 인사했다.
이어진 시범 행사. 현우는 정장을 벗고 오랜만에 유도복으로 갈아입었다. 도복을 입고 매트 위에 서자, 그의 눈빛은 다시 예전의 날카로운 선수 시절로 돌아간 듯 빛났다. 그는 현역 대학 선수 몇 명을 상대로 업어치기, 허벅다리걸기, 굳히기 등 자신의 주특기 기술들을 선보였다. 몸은 예전처럼 빠르고 날렵하지 않았지만, 노련함과 기술의 깊이는 여전했다. 특히 그의 전매특허였던 허벅다리걸기가 작렬하는 순간, 강당 안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민재는 객석에서 아빠의 시범을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늘 집에서 보던 다정하고 때로는 장난기 넘치는 아빠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강렬하고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모습에 아이는 눈을 뗄 수 없었다. 아빠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아왔는지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림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지만, 목표를 향해 온몸을 던지는 아빠의 모습은 민재의 가슴속에 깊은 울림과 함께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현우는 후배 선수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격려의 말을 나누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하며 존경심을 표했다. 현우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뜨거운 관심과 인정에 쑥스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뒷좌석에 앉은 민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현우 아빠, 오늘 진짜진짜 멋있었어요.”
민재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감탄과 존경심이 담겨 있었다.
“유도는 잘 모르지만… 아빠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오늘 처음 알았어요.”
“하하, 뭘 이 정도 가지고.”
현우는 쑥스러워하며 백미러로 아들을 보며 웃었다.
“아빠도 오늘 민재랑 진수 씨가 와줘서 더 힘내서 할 수 있었어. 고마워, 아들.”
“당신 오늘 정말 빛났어.”
옆자리의 진수도 현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당신이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몰라.”
예상치 못했던 초대는 현우에게 잠시 부담감을 안겨주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에게 잊고 있던 자신감과 열정을 되찾아주고, 가족들에게는 그의 또 다른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그날 밤, 세 사람은 집으로 돌아와 현우의 강연과 시범 영상을 함께 보며 웃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함께 성장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들이 만들어가는 사랑의 방식이었다. 겨울을 향해 가는 길목에서, 그들의 마음은 서로를 향한 따뜻한 존경과 사랑으로 더욱 풍요롭게 채워지고 있었다.
“여보세요?”
운동 후 샤워를 마치고 나온 현우가 발신자 번호를 확인하지 않고 무심코 전화를 받았다.
“……이현우 선수… 아니, 이현우 코치님 맞으십니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것은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한 느낌의 중년 남성의 목소리였다.
“네, 맞습니다만… 누구시죠?”
“아, 저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대표팀 시절 같이 훈련했던… 박철민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OO대학교 유도부 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박철민. 현우는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까마득한 후배였지만, 성실하고 재능 있었던 선수로 기억하는 이름이었다.
“아, 네! 박 감독님! 오랜만입니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현우는 반가운 마음에 목소리 톤을 높였다.
“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코치님께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이렇게 염치 불구하고 연락드렸습니다.”
박철민 감독의 목소리는 정중하면서도 약간의 긴장감이 묻어났다.
“부탁이라니요? 제가 도울 일이 있다면 얼마든지요.”
“저희 대학 유도부가 다음 달에 창단 30주년 기념행사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를 빛내주셨던 선배님들을 모시고 특별 강연과 시범 행사를 가지려고 하는데… 혹시 코치님께서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실지…”
현우는 순간 망설였다. 은퇴한 지 이미 오래되었고, 이제는 유소년 클럽 지도자로서의 삶에 집중하고 있었다. 다시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강연을 하고 시범을 보인다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자신을 기억하고 찾아준 후배의 간절한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언제쯤으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다음 달 셋째 주 토요일 오후입니다. 혹시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현우는 잠시 달력을 떠올렸다. 다행히 그날은 클럽 행사나 특별한 일정이 없었다. 그리고 문득, 이 기회를 통해 민재에게 자신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집에서 편안한 모습만 보거나, 클럽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만 보아왔던 아들에게, 한때 국가대표 유도 선수로서 매트 위를 호령했던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어쩌면 그것이 입시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 아들에게 작은 자극이나 동기 부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네, 좋습니다. 영광입니다. 제가 뭐라고 그런 자리에 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꺼이 참석하겠습니다.”
현우는 잠시의 고민 끝에 흔쾌히 수락했다.
전화를 끊고 난 후, 현우는 거실에 있는 진수와 민재에게 방금 있었던 통화 내용을 전했다.
“우와! 현우 아빠 진짜 멋있다! 대학교에서 강연도 하시고!”
민재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아빠의 새로운 모습에 대한 기대감이 엿보였다.
“그러게. 당신 정말 대단하다.”
진수도 진심으로 감탄하며 현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오랜만에 도복 입은 모습 보겠네. 나랑 민재도 꼭 같이 갈게. 당신 응원하러.”
“정말? 와주면 나야 너무 좋지!”
현우는 가족의 응원에 힘입어 자신감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그날부터 현우는 강연 준비와 시범 연습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후배 선수들에게 도움이 될지, 어떤 기술 시범이 인상 깊을지 고민하며 밤늦게까지 자료를 찾고 연습에 매진했다. 오랜만에 도복을 다시 입고 매트 위에 서니, 잠자고 있던 선수 시절의 열정과 감각이 다시 깨어나는 듯했다.
하지만 연습을 거듭할수록 현우는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몇 번의 기술 시범만으로도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고질적인 어깨 통증도 다시 스멀스멀 올라왔다. 마음은 여전히 청춘이었지만, 몸은 속일 수 없는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했다.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나? 괜히 수락해서 망신만 당하는 거 아니야?’ 불안감이 엄습했다.
밤늦게까지 연습하고 돌아와 어깨를 주무르며 힘들어하는 현우의 모습을, 진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그는 현우가 잠든 사이, 조용히 그의 어깨에 파스를 붙여주고 따뜻한 찜질팩을 올려주었다.
“너무 무리하지 마.”
다음 날 아침, 진수가 현우에게 따뜻한 차를 건네며 말했다.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당신이 후배들을 위해 좋은 마음으로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야. 완벽한 모습 보여주려고 너무 애쓰지 마. 그냥 당신의 경험과 진심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후배들에게는 큰 힘이 될 거야.”
“……알아. 아는데… 그래도 오랜만에 서는 자리인데, 이왕이면 멋진 모습 보여주고 싶어서.”
현우는 씁쓸하게 웃었다.
“당신은 그냥 당신 자체로 충분히 멋있어.”
진수는 현우의 손을 잡으며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당신 옆에는 우리가 있잖아. 너무 부담 갖지 마.”
진수의 변함없는 지지와 따뜻한 위로에 현우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나누고, 후배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는 다시 긍정적인 마음으로 연습에 임했다.
드디어 행사 당일. 현우는 오랜만에 각 잡힌 정장을 차려입고 진수, 민재와 함께 대학교 강당으로 향했다. 강당 안은 유도부 OB 선수들과 재학생들, 그리고 학교 관계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현우를 알아보는 반가운 얼굴들도 눈에 띄었다. 그는 오랜만에 만난 선후배들과 악수를 나누며 안부를 물었다.
잠시 후, 행사가 시작되고 현우의 강연 차례가 되었다. 단상 위에 선 현우는 잠시 심호흡을 하고 마이크를 잡았다. 객석 앞자리에 앉아 자신을 향해 응원의 눈빛을 보내는 진수와 민재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에 현우는 긴장이 풀리며 편안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는 선수 시절의 경험담부터 시작하여 슬럼프를 극복했던 과정, 올림픽 무대에 섰을 때의 감격과 아쉬움, 그리고 은퇴 후 지도자로서 새로운 길을 걸으며 느끼는 보람과 어려움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담담하게 풀어나갔다. 그의 진솔한 이야기에 객석의 후배 선수들은 깊이 몰입하며 귀를 기울였다.
“여러분,”
현우는 강연 말미에 힘주어 말했다.
“유도는 단순히 상대를 넘어뜨리는 기술을 배우는 운동이 아닙니다.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 포기하지 않는 끈기, 그리고 상대를 존중하는 예의를 배우는 과정입니다. 결과에 연연하기보다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그 과정 속에서 성장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 역시 앞으로 지도자로서 여러분의 성장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강연이 끝나자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현우는 벅찬 마음으로 객석을 향해 허리 숙여 인사했다.
이어진 시범 행사. 현우는 정장을 벗고 오랜만에 유도복으로 갈아입었다. 도복을 입고 매트 위에 서자, 그의 눈빛은 다시 예전의 날카로운 선수 시절로 돌아간 듯 빛났다. 그는 현역 대학 선수 몇 명을 상대로 업어치기, 허벅다리걸기, 굳히기 등 자신의 주특기 기술들을 선보였다. 몸은 예전처럼 빠르고 날렵하지 않았지만, 노련함과 기술의 깊이는 여전했다. 특히 그의 전매특허였던 허벅다리걸기가 작렬하는 순간, 강당 안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민재는 객석에서 아빠의 시범을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늘 집에서 보던 다정하고 때로는 장난기 넘치는 아빠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강렬하고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모습에 아이는 눈을 뗄 수 없었다. 아빠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아왔는지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림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지만, 목표를 향해 온몸을 던지는 아빠의 모습은 민재의 가슴속에 깊은 울림과 함께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현우는 후배 선수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격려의 말을 나누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하며 존경심을 표했다. 현우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뜨거운 관심과 인정에 쑥스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뒷좌석에 앉은 민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현우 아빠, 오늘 진짜진짜 멋있었어요.”
민재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감탄과 존경심이 담겨 있었다.
“유도는 잘 모르지만… 아빠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오늘 처음 알았어요.”
“하하, 뭘 이 정도 가지고.”
현우는 쑥스러워하며 백미러로 아들을 보며 웃었다.
“아빠도 오늘 민재랑 진수 씨가 와줘서 더 힘내서 할 수 있었어. 고마워, 아들.”
“당신 오늘 정말 빛났어.”
옆자리의 진수도 현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당신이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몰라.”
예상치 못했던 초대는 현우에게 잠시 부담감을 안겨주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에게 잊고 있던 자신감과 열정을 되찾아주고, 가족들에게는 그의 또 다른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그날 밤, 세 사람은 집으로 돌아와 현우의 강연과 시범 영상을 함께 보며 웃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함께 성장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들이 만들어가는 사랑의 방식이었다. 겨울을 향해 가는 길목에서, 그들의 마음은 서로를 향한 따뜻한 존경과 사랑으로 더욱 풍요롭게 채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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