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정의
조회 : 127 추천 : 0 글자수 : 6,569 자 2025-01-09
"...묻고 있습니다, 어째서 세바스찬 님을 죽이지 않...않...쿨럭."
검에 찔린 분홍빛의 머리색을 가진 메이드가 강유리 수녀님께 힘겹게 말을 내뱉고 있다. 이름이 분명...
"마르...?"
그래, 마르 씨였다. 아니 그것보다도...
"그렇게 소리를 질러봤자 가브리엘 님의 검으로 인한 상처가 벌어질 뿐이다."
프레드라는 사람의 말대로다, 마르라는 메이드와 그 동생이라는 사람도 가브리엘이라는 천사의 검에 꿰뚫린 상황.
이 상황에서 말을 하면 할수록 상처가 벌어질텐데...
"...대답하라고...묻고 있습...쿨럭...니다."
어느샌가 버릇이 된걸까, 아까까지만 해도 상처를 보던 서하늘의 눈은 자연스럽게 마르의 눈으로 향했다.
"...젠장."
...이번에는 제발 안 그러길 바랬는데...
슬픔, 그리고 분노가 두 눈에 모두 서려있다.
세바스찬을 잃었다는 슬픔, 그리고...그런 세바스찬을 구하지 못한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
지금 쓰러진 세바스찬을 바라보던 그 두 눈은 똑바로 강유리 수녀님을 향해 있다.
"세바스찬 님은...당시 고아가 되어 떠돌던 저희 둘을 거두어주셨습니다. 저희는 그곳에서 서우주 도련님을 만나고...가족보다 소중한 슈퍼내추럴의 친구들을 만났고...세바스찬 님께는 그런 모두를 보필하기 위한...예절과 품위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검에 찔린 지속적인 고통에도...입에서 피를 쏟아내고 있음에도 마르는 말 한 번을 절지 않았다.
***
...그저 그녀는 계속해서 세바스찬과 슈퍼내추럴의 이야기를 하나씩 하나씩 말할 뿐이었다.
서하늘과 나머지는 그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도대체 어떠한 오명으로 인해, 세바스찬 님을...소중한 친구들이 죽지 않으면 안되는건가요...!"
이제는 눈에 피눈물까지 고여가며...강유리와 프레드에게 할 말을 쏟아내는 마르의 모습에 넋이 나가있었기 때문일까.
마르를 바라보는 서하늘도, 레이의 부름에도 움직이지 못하는 한다운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이를 갈고 있는 기운경도, 나서야한다고 말했던 천서준도...
모든 고통을 이겨내가며 힘겹게 내뱉는 마르의 말은 그녀와 그녀의 동생에게 자비없이 거대한 검을 꽃아내린 가브리엘의 압도적인 신성력 앞에선...
너무나도 초라해보였기에...그런 초라함에 마치 자신들이 투영된것만 같아...
'...움직여, 움직여...움직이라고...!'
모두가 움직이라고 몇 번이나 속으로 외쳐보아도...몸이, 머리가, 가슴이, 움직여주지 않았다.
압도적인 천사의 신성력은 말할 것도 없지만, 지금은 초라해보이는 마르에게조차 범접할 수 없다는 현실이...
그들의 이성적인 뇌는 알고 있었기에, 그들을 움직이게 둘리가 없었다.
그리고...계속해서 외치던 마르의 목소리도 힘이 빠져나간 듯이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내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강유리 님을 공격한 것은...죄송합니다, 그러나...부디...설명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어째서 세바스찬 님을...슈퍼내추럴의 친구들을 죽이지 않으면 안되는건지...?"
"..."
그 이야기를 들은 강유리는 아무 말이 없었다.
대신 그녀의 옆에서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프레드가, 그녀에게...아니.
"...언니와는 다르게 동생 쪽은 하고 싶은 말이 없는건가?"
정확히는 그녀의 동생, 하늘빛의 머리색을 가진 메이드.
"......"
"...멜, 괜찮아. 굳이 말하고 싶지 않으면 안해도 상관없어."
정확히는 동생인 멜에게 말을 걸었지만, 언니와는 다르게 동생인 멜 쪽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멜은 그저 세바스찬을 바라보던 눈을 마르 쪽으로 돌린채...
"......"
"멜..."
...마르를 보며 하염없이 눈물만을 흘리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프레드는 강유리 쪽을 살짝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렇군."
단 한 마디.
단 한 마디가 '마르의' 마지막이었다.
...콰직!
"...ㅇ...언...니?"
"강유리 수녀님께 살의를 띄고 공격을 한 죄를 지은 자에게 답할 의무는 없다, 이상."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멜의 얼굴에...피가 흩뿌려졌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검이 움직인걸까.
그 정도의 속도, 가브리엘이 그 자리에서 움직였는지는 서하늘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하게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그 찰나의 순간, 가브리엘의 검이 더욱 깊숙하게 마르를 꿰뚫었다. 그리고 마르의 눈에 있던 생기가 사라졌다.
"...더 이상 오오라도 느껴지지 않는군."
마르가 죽었다. 아무 말도 더 하지 못한채로...
그걸 눈 앞에서 보게 된...멜은...
"마르...마르 언니...마르 언니...!"
아무 말도 없던 아까와는 달리...
"마르 언니! 마르 언니! 마르 언니! 마르 언니이이이이이!"
아까의 마르처럼 검이 꽃혀있는 건 상관도 안하고 마르 쪽으로 최대한 몸을 틀어 울부짖기 시작했다.
"...설마 동등한 위치에서도 안해줄 답변을 심판당하면서는 해줄거라고 생각한건가요?"
프레드의 말은 멜이 울부짖는 소리 안에서도 또렷하게 들렸다. 멜도 충분히 들을 수 있을만큼...
"아...아아아아! 마르 언니이이이이이이!"
멜의 몸이 다시 한 번 무리하게 틀어졌다.
보기 위해...
자신의 언니를 죽인 것의 몸을...얼굴을...표정을 보기 위해...
그녀가 프레드를 바라보자, 그의 표정은 순식간에 어둡게 굳었다.
"불쾌하군."
그 말과 동시에 멜의 동공이 빠르게 수축했다.
"...마르 언니이이이이이! 죽어어어어...!"
멜은 그렇게 소리치며 왼손을 들어올렸다. 그와 동시에...
'...코피?'
그녀의 양 쪽 코에서 왈칵하고 코피가 쏟아내렸다.
서하늘들은 그 행동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뇌가 움직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듯이...몸이 움직여주지 않았기에.
그러나 그녀를 구하고 싶었다, 움직여야만 했다.
그렇게 생각할 틈, 서하늘들의 무리에서 누군가가 뛰쳐나갔다.
'누구...?!'
서하늘은 그 뛰쳐나간 사람을 보았다.
다운이는 아니었다, 아저씨도...서준이도 아니니까...
'남은 건...!'
남하은.
남하은이 천사와 함께 멜 쪽으로 달려나갔다.
"하은 ㅆ...!"
서하늘은 남하은에게 부탁하기 위해 소리치려 했다.
하지만...그 순간, 엄청난 이질감이 서하늘의 속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어째서 남하은은 멜 쪽으로 달려나갔는가?
느껴졌다.
"...잠깐만! 하은 씨, 지금 무슨...?!"
적의를 가지고 뛰쳐나간...둘의 적의가...!
서겅!
다시 한 번 선혈이 허공에 흩뿌려졌다.
툭! 그와 동시에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졌다.
"...손?"
피에 젖어 군데군데가 빨갛게 물든 새하얀 손이...바닥에 떨어졌다.
그대로 서하늘의 시선은 위 쪽으로 향했다.
멜의 손이...없다.
손을 잘라낸 것은 남하은의 천사, 날아들어 손을 잘라내고 착지한 남하은이 크게 소리쳤다.
"지금이에요!"
푸슉!
이번에도 단 한 마디, 아까와 같은 상황.
순식간이었다, 언니에 이어 동생의 눈마저...생기를 잃고 말았다.
"...언...ㄴ..."
...그녀의 몸이 싸늘하게 힘을 잃은 듯이 축 늘어졌다.
"아멘(AMEN)."
샤르륵...
프레드의 말에 거대한 천사는 일을 마쳤다는 듯, 서서히 모습을 감췄다.
서하늘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세바스찬, 마르, 멜.
순식간에 3명의 생명이 이곳에서 사라졌다.
그 중에서도 서하늘은 특히 상태가 심각했다.
계속해서 혼잡스럽던 머리가 미쳐버릴것만같이 깨질것만같이 핑핑 돌았다.
세바스찬의 표정이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스크린처럼 떠오른다.
우릴 향해 지었던 온화한 미소가 검과 피에 물들어 점점 사라진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강유리의 미소가 보인다.
뭐가 잘못된거지...분명히 옳은 행동일텐데...
아니, 애초에 이게 옳은 행동이긴 한건가...?
"...허억...허억...허억...!"
서하늘의 호흡이 점점 빨라진다.
그 순간, 서하늘의 손에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하늘아, 진정해요. 과호흡이 오고 있어요."
"...허억...강유리...수녀...님."
강유리의 양 손의 온기, 그런 손에서 느껴지는 오오라의 따뜻한 온기가 서하늘의 손을 따뜻하게 하고 서하늘의 호흡이 점차 진정되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어지럽던 머리 속도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강유리는 그대로 서하늘을 완전히 껴앉았다.
"...하늘이에겐 너무나도 혹독한 모습을 보여준 것 같네요, 제가 너무 미안해요."
"......"
서하늘은 아무런 저항없이 강유리의 품에 안겼다.
그저 강유리의 품에서 아무 말 없이...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
.
.
수녀님의 품에서 울기만 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어떻게든 가슴을 추스른 나는 강유리 수녀님의 옆에서 세바스찬 씨에게 했던 것과 같은 것을 도왔다.
이런 건 교회에서도 한 번도 해본 적 없던거라 그런가...좀 많이 서투르네.
"...앗, 강유리 수녀님. 죄송합니다...이 쪽의 옷이 살짝..."
"괜찮아요, 원래도 하늘이같은 아이들에겐 할 기회도...웬만하면 하지 않는게 좋은 일이니까요."
실수를 꽤 했는데도 그때마다 강유리 수녀님은 그저 웃어주면서 능숙한 솜씨로 정갈하게 그들의 자세를 곧게 만드셨다.
...역시 내가 잘못 생각한거겠지.
그렇게 마르 씨와 멜 씨의 손에 작은 십자가를 쥐어주고 나서, 나와 강유리 수녀님은 눈을 감고 기도를 드렸다.
뭐, 나야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대충 기억나는 성경 구절을 읇는 것밖에 할 수 없었지만...
언제 눈을 떠야할지 몰라서 살짝 눈을 떴는데...
아직 손을 모으고 기도를 드리는 강유리 수녀님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이 아니구나...
다시 눈을 감고 조금이라도 더 기도를 드리려던 그 순간.
"...우리 하늘이, 친구들이랑 같이 저랑 같이 가지 않을래요?"
"...네?"
...강유리 수녀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
서하늘과 강유리가 메이드들의 기도를 드리는 동안, 프레드와 남은 이들은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프레드라는 이름의 남성은 불만이 있는 표정으로 조용하게 말했다.
"...강유리 수녀님의 밑에서 17년동안 돌봄을 받았음에도 꽤 어설프군. 신앙심도 없는 것 같고..."
"어이, 불만이 있는 건 메이드들이 아니라 우리 최애한테도 있는거였나?"
그 말을 들은 기운경도 기분 나쁘다는 티를 팍팍 냈다.
가뜩이나 기분도 안좋은데, 자기 최애까지 비꼬는 모습이 좋게 보일리는 없지.
"물론이지, 그 서우주의 동생이다. 강유리 성녀 님의 말씀이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서 심판을 내려줬을거다."
"이번에는 넘어갈 수 밖에 없었지만...그 얘기는...못 넘어가겠어요...!"
"진정해, 어차피 우리 전원이 달려들어도 세바스찬처럼 될 뿐이니까."
한다운을 막아선 기운경도 똥 씹은 표정이었지만, 일단은 냉정해질 수 밖에 없었다.
자신들과 같이 저들에게도 꿈이 있다. 그건 존중해줘야한다.
"...하지만 그건...저들도..."
기운경의 머릿속에서 세 명이 스쳐지나갔다.
"아니야, 역시 못 참겠어. 그 세 명도...우리 최애도 똑같은 눈으로 본다고...?"
"...아저씨가 진정하라면서요?!"
한다운의 어깨를 잡은 기운경이 그대로 뒤로 밀어버린채 프레드 쪽으로 달려나가기 직전.
"프레드라고 했었지, 한 가지 묻겠다."
"뭐지?"
기운경의 앞을 막아 천서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서하늘의 형, 서우주와 그의 조직인 슈퍼내추럴이 범죄조직이라는 것은 알겠다."
"그래. 아주 흉악한 조직이다. 네가 지금 뭐를 생각하든 모든 것을 뛰어넘는 사악함으로 가득 뭉친 집합체라고 볼 수 있겠지."
"...그런 이들을 심판, 속죄, 엄벌이라는 이유로 목숨을 빼앗는다면."
뚜벅...뚜벅...
말함과 동시에 천서준이 프레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너희...하늘의 사자도 그것과 다를 바 없는 조직이 아니라는 근거는 있는건가?"
천서준은 자신의 앞에 있는 인물과 자신의 역량 차이를 알고 있었다.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자신이 눈치채기도 전에 베어내리거나 죽일 수 있다.
그럼에도 천서준은 당당하게 그에게 물었다.
천서준의 머릿속에도 목숨을 잃은 세 명의 얼굴이 스쳐지나갔지만...
'서하늘.'
너무나도 고통스러워했던 서하늘의 얼굴만은 머릿속에서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
프레드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철컥!
"...천서준!"
천서준의 머리에 꽤나 커다란 총이 겨눠졌다.
"...그것이 우리의 '정의'다."
천서준은 생각했다.
"크."
...정의라는게 참 부질없다고, 그 날 처음 생각했다.
***
"프레드, 멈추세요!"
"서준아?! 괜찮은거야...?!"
얼마 지나지 않아 프레드를 강유리가 말리고 서하늘이 자신에게 달려와 괜찮냐고 소리쳤음에도, 천서준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했다.
"...미안하다, 서하늘."
"뭐...뭐가 미안하다는 거야...!"
서하늘에게 솔직하게 행동하라고 자신있게 외쳤지만...
"...나도 결론을 내리질 못하겠다."
그렇게 말한 본인도...서하늘과 다를 바 없었기에...
검에 찔린 분홍빛의 머리색을 가진 메이드가 강유리 수녀님께 힘겹게 말을 내뱉고 있다. 이름이 분명...
"마르...?"
그래, 마르 씨였다. 아니 그것보다도...
"그렇게 소리를 질러봤자 가브리엘 님의 검으로 인한 상처가 벌어질 뿐이다."
프레드라는 사람의 말대로다, 마르라는 메이드와 그 동생이라는 사람도 가브리엘이라는 천사의 검에 꿰뚫린 상황.
이 상황에서 말을 하면 할수록 상처가 벌어질텐데...
"...대답하라고...묻고 있습...쿨럭...니다."
어느샌가 버릇이 된걸까, 아까까지만 해도 상처를 보던 서하늘의 눈은 자연스럽게 마르의 눈으로 향했다.
"...젠장."
...이번에는 제발 안 그러길 바랬는데...
슬픔, 그리고 분노가 두 눈에 모두 서려있다.
세바스찬을 잃었다는 슬픔, 그리고...그런 세바스찬을 구하지 못한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
지금 쓰러진 세바스찬을 바라보던 그 두 눈은 똑바로 강유리 수녀님을 향해 있다.
"세바스찬 님은...당시 고아가 되어 떠돌던 저희 둘을 거두어주셨습니다. 저희는 그곳에서 서우주 도련님을 만나고...가족보다 소중한 슈퍼내추럴의 친구들을 만났고...세바스찬 님께는 그런 모두를 보필하기 위한...예절과 품위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검에 찔린 지속적인 고통에도...입에서 피를 쏟아내고 있음에도 마르는 말 한 번을 절지 않았다.
***
...그저 그녀는 계속해서 세바스찬과 슈퍼내추럴의 이야기를 하나씩 하나씩 말할 뿐이었다.
서하늘과 나머지는 그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도대체 어떠한 오명으로 인해, 세바스찬 님을...소중한 친구들이 죽지 않으면 안되는건가요...!"
이제는 눈에 피눈물까지 고여가며...강유리와 프레드에게 할 말을 쏟아내는 마르의 모습에 넋이 나가있었기 때문일까.
마르를 바라보는 서하늘도, 레이의 부름에도 움직이지 못하는 한다운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이를 갈고 있는 기운경도, 나서야한다고 말했던 천서준도...
모든 고통을 이겨내가며 힘겹게 내뱉는 마르의 말은 그녀와 그녀의 동생에게 자비없이 거대한 검을 꽃아내린 가브리엘의 압도적인 신성력 앞에선...
너무나도 초라해보였기에...그런 초라함에 마치 자신들이 투영된것만 같아...
'...움직여, 움직여...움직이라고...!'
모두가 움직이라고 몇 번이나 속으로 외쳐보아도...몸이, 머리가, 가슴이, 움직여주지 않았다.
압도적인 천사의 신성력은 말할 것도 없지만, 지금은 초라해보이는 마르에게조차 범접할 수 없다는 현실이...
그들의 이성적인 뇌는 알고 있었기에, 그들을 움직이게 둘리가 없었다.
그리고...계속해서 외치던 마르의 목소리도 힘이 빠져나간 듯이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내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강유리 님을 공격한 것은...죄송합니다, 그러나...부디...설명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어째서 세바스찬 님을...슈퍼내추럴의 친구들을 죽이지 않으면 안되는건지...?"
"..."
그 이야기를 들은 강유리는 아무 말이 없었다.
대신 그녀의 옆에서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프레드가, 그녀에게...아니.
"...언니와는 다르게 동생 쪽은 하고 싶은 말이 없는건가?"
정확히는 그녀의 동생, 하늘빛의 머리색을 가진 메이드.
"......"
"...멜, 괜찮아. 굳이 말하고 싶지 않으면 안해도 상관없어."
정확히는 동생인 멜에게 말을 걸었지만, 언니와는 다르게 동생인 멜 쪽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멜은 그저 세바스찬을 바라보던 눈을 마르 쪽으로 돌린채...
"......"
"멜..."
...마르를 보며 하염없이 눈물만을 흘리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프레드는 강유리 쪽을 살짝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렇군."
단 한 마디.
단 한 마디가 '마르의' 마지막이었다.
...콰직!
"...ㅇ...언...니?"
"강유리 수녀님께 살의를 띄고 공격을 한 죄를 지은 자에게 답할 의무는 없다, 이상."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멜의 얼굴에...피가 흩뿌려졌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검이 움직인걸까.
그 정도의 속도, 가브리엘이 그 자리에서 움직였는지는 서하늘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하게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그 찰나의 순간, 가브리엘의 검이 더욱 깊숙하게 마르를 꿰뚫었다. 그리고 마르의 눈에 있던 생기가 사라졌다.
"...더 이상 오오라도 느껴지지 않는군."
마르가 죽었다. 아무 말도 더 하지 못한채로...
그걸 눈 앞에서 보게 된...멜은...
"마르...마르 언니...마르 언니...!"
아무 말도 없던 아까와는 달리...
"마르 언니! 마르 언니! 마르 언니! 마르 언니이이이이이!"
아까의 마르처럼 검이 꽃혀있는 건 상관도 안하고 마르 쪽으로 최대한 몸을 틀어 울부짖기 시작했다.
"...설마 동등한 위치에서도 안해줄 답변을 심판당하면서는 해줄거라고 생각한건가요?"
프레드의 말은 멜이 울부짖는 소리 안에서도 또렷하게 들렸다. 멜도 충분히 들을 수 있을만큼...
"아...아아아아! 마르 언니이이이이이이!"
멜의 몸이 다시 한 번 무리하게 틀어졌다.
보기 위해...
자신의 언니를 죽인 것의 몸을...얼굴을...표정을 보기 위해...
그녀가 프레드를 바라보자, 그의 표정은 순식간에 어둡게 굳었다.
"불쾌하군."
그 말과 동시에 멜의 동공이 빠르게 수축했다.
"...마르 언니이이이이이! 죽어어어어...!"
멜은 그렇게 소리치며 왼손을 들어올렸다. 그와 동시에...
'...코피?'
그녀의 양 쪽 코에서 왈칵하고 코피가 쏟아내렸다.
서하늘들은 그 행동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뇌가 움직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듯이...몸이 움직여주지 않았기에.
그러나 그녀를 구하고 싶었다, 움직여야만 했다.
그렇게 생각할 틈, 서하늘들의 무리에서 누군가가 뛰쳐나갔다.
'누구...?!'
서하늘은 그 뛰쳐나간 사람을 보았다.
다운이는 아니었다, 아저씨도...서준이도 아니니까...
'남은 건...!'
남하은.
남하은이 천사와 함께 멜 쪽으로 달려나갔다.
"하은 ㅆ...!"
서하늘은 남하은에게 부탁하기 위해 소리치려 했다.
하지만...그 순간, 엄청난 이질감이 서하늘의 속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어째서 남하은은 멜 쪽으로 달려나갔는가?
느껴졌다.
"...잠깐만! 하은 씨, 지금 무슨...?!"
적의를 가지고 뛰쳐나간...둘의 적의가...!
서겅!
다시 한 번 선혈이 허공에 흩뿌려졌다.
툭! 그와 동시에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졌다.
"...손?"
피에 젖어 군데군데가 빨갛게 물든 새하얀 손이...바닥에 떨어졌다.
그대로 서하늘의 시선은 위 쪽으로 향했다.
멜의 손이...없다.
손을 잘라낸 것은 남하은의 천사, 날아들어 손을 잘라내고 착지한 남하은이 크게 소리쳤다.
"지금이에요!"
푸슉!
이번에도 단 한 마디, 아까와 같은 상황.
순식간이었다, 언니에 이어 동생의 눈마저...생기를 잃고 말았다.
"...언...ㄴ..."
...그녀의 몸이 싸늘하게 힘을 잃은 듯이 축 늘어졌다.
"아멘(AMEN)."
샤르륵...
프레드의 말에 거대한 천사는 일을 마쳤다는 듯, 서서히 모습을 감췄다.
서하늘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세바스찬, 마르, 멜.
순식간에 3명의 생명이 이곳에서 사라졌다.
그 중에서도 서하늘은 특히 상태가 심각했다.
계속해서 혼잡스럽던 머리가 미쳐버릴것만같이 깨질것만같이 핑핑 돌았다.
세바스찬의 표정이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스크린처럼 떠오른다.
우릴 향해 지었던 온화한 미소가 검과 피에 물들어 점점 사라진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강유리의 미소가 보인다.
뭐가 잘못된거지...분명히 옳은 행동일텐데...
아니, 애초에 이게 옳은 행동이긴 한건가...?
"...허억...허억...허억...!"
서하늘의 호흡이 점점 빨라진다.
그 순간, 서하늘의 손에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하늘아, 진정해요. 과호흡이 오고 있어요."
"...허억...강유리...수녀...님."
강유리의 양 손의 온기, 그런 손에서 느껴지는 오오라의 따뜻한 온기가 서하늘의 손을 따뜻하게 하고 서하늘의 호흡이 점차 진정되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어지럽던 머리 속도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강유리는 그대로 서하늘을 완전히 껴앉았다.
"...하늘이에겐 너무나도 혹독한 모습을 보여준 것 같네요, 제가 너무 미안해요."
"......"
서하늘은 아무런 저항없이 강유리의 품에 안겼다.
그저 강유리의 품에서 아무 말 없이...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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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님의 품에서 울기만 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어떻게든 가슴을 추스른 나는 강유리 수녀님의 옆에서 세바스찬 씨에게 했던 것과 같은 것을 도왔다.
이런 건 교회에서도 한 번도 해본 적 없던거라 그런가...좀 많이 서투르네.
"...앗, 강유리 수녀님. 죄송합니다...이 쪽의 옷이 살짝..."
"괜찮아요, 원래도 하늘이같은 아이들에겐 할 기회도...웬만하면 하지 않는게 좋은 일이니까요."
실수를 꽤 했는데도 그때마다 강유리 수녀님은 그저 웃어주면서 능숙한 솜씨로 정갈하게 그들의 자세를 곧게 만드셨다.
...역시 내가 잘못 생각한거겠지.
그렇게 마르 씨와 멜 씨의 손에 작은 십자가를 쥐어주고 나서, 나와 강유리 수녀님은 눈을 감고 기도를 드렸다.
뭐, 나야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대충 기억나는 성경 구절을 읇는 것밖에 할 수 없었지만...
언제 눈을 떠야할지 몰라서 살짝 눈을 떴는데...
아직 손을 모으고 기도를 드리는 강유리 수녀님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이 아니구나...
다시 눈을 감고 조금이라도 더 기도를 드리려던 그 순간.
"...우리 하늘이, 친구들이랑 같이 저랑 같이 가지 않을래요?"
"...네?"
...강유리 수녀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
서하늘과 강유리가 메이드들의 기도를 드리는 동안, 프레드와 남은 이들은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프레드라는 이름의 남성은 불만이 있는 표정으로 조용하게 말했다.
"...강유리 수녀님의 밑에서 17년동안 돌봄을 받았음에도 꽤 어설프군. 신앙심도 없는 것 같고..."
"어이, 불만이 있는 건 메이드들이 아니라 우리 최애한테도 있는거였나?"
그 말을 들은 기운경도 기분 나쁘다는 티를 팍팍 냈다.
가뜩이나 기분도 안좋은데, 자기 최애까지 비꼬는 모습이 좋게 보일리는 없지.
"물론이지, 그 서우주의 동생이다. 강유리 성녀 님의 말씀이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서 심판을 내려줬을거다."
"이번에는 넘어갈 수 밖에 없었지만...그 얘기는...못 넘어가겠어요...!"
"진정해, 어차피 우리 전원이 달려들어도 세바스찬처럼 될 뿐이니까."
한다운을 막아선 기운경도 똥 씹은 표정이었지만, 일단은 냉정해질 수 밖에 없었다.
자신들과 같이 저들에게도 꿈이 있다. 그건 존중해줘야한다.
"...하지만 그건...저들도..."
기운경의 머릿속에서 세 명이 스쳐지나갔다.
"아니야, 역시 못 참겠어. 그 세 명도...우리 최애도 똑같은 눈으로 본다고...?"
"...아저씨가 진정하라면서요?!"
한다운의 어깨를 잡은 기운경이 그대로 뒤로 밀어버린채 프레드 쪽으로 달려나가기 직전.
"프레드라고 했었지, 한 가지 묻겠다."
"뭐지?"
기운경의 앞을 막아 천서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서하늘의 형, 서우주와 그의 조직인 슈퍼내추럴이 범죄조직이라는 것은 알겠다."
"그래. 아주 흉악한 조직이다. 네가 지금 뭐를 생각하든 모든 것을 뛰어넘는 사악함으로 가득 뭉친 집합체라고 볼 수 있겠지."
"...그런 이들을 심판, 속죄, 엄벌이라는 이유로 목숨을 빼앗는다면."
뚜벅...뚜벅...
말함과 동시에 천서준이 프레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너희...하늘의 사자도 그것과 다를 바 없는 조직이 아니라는 근거는 있는건가?"
천서준은 자신의 앞에 있는 인물과 자신의 역량 차이를 알고 있었다.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자신이 눈치채기도 전에 베어내리거나 죽일 수 있다.
그럼에도 천서준은 당당하게 그에게 물었다.
천서준의 머릿속에도 목숨을 잃은 세 명의 얼굴이 스쳐지나갔지만...
'서하늘.'
너무나도 고통스러워했던 서하늘의 얼굴만은 머릿속에서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
프레드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철컥!
"...천서준!"
천서준의 머리에 꽤나 커다란 총이 겨눠졌다.
"...그것이 우리의 '정의'다."
천서준은 생각했다.
"크."
...정의라는게 참 부질없다고, 그 날 처음 생각했다.
***
"프레드, 멈추세요!"
"서준아?! 괜찮은거야...?!"
얼마 지나지 않아 프레드를 강유리가 말리고 서하늘이 자신에게 달려와 괜찮냐고 소리쳤음에도, 천서준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했다.
"...미안하다, 서하늘."
"뭐...뭐가 미안하다는 거야...!"
서하늘에게 솔직하게 행동하라고 자신있게 외쳤지만...
"...나도 결론을 내리질 못하겠다."
그렇게 말한 본인도...서하늘과 다를 바 없었기에...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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