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천서준
조회 : 8 추천 : 0 글자수 : 6,576 자 2024-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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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성당 입구 앞.
'뺘아아...'
"쉿...에고! 조금만 조용히...!"
난 울음소리를 내는 에고를 조용히 알에 집어넣었다.
"...후우, 그냥 알에 집어넣고 가는게 더 낫겠다..."
내가 이렇게 조심하는 이유는 딱 하나.
"으윽, 역시 이틀 연속은 내가 생각해도 조금 너무했지..."
다운이랑 파이트했던 날, 그리고 아저씨와 파이트를 했던 다음 날.
파이트가 길어짐으로써 성당으로 돌아오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고, 그로 인해 꽤 늦은 시간에 성당으로 돌아왔다.
결국 강유리 수녀님한테 어제도 걸리고 말았기에 오늘 아침에도 꽤나 강도높은 존댓말 꾸중의 시간을...
"으으윽..."
생각만 해도 고통스러운 1시간이었다.
강유리 수녀님께는 죄송하지만...초능력의 세계에 발을 들인 지금, 내 인생에 어느때보다도 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죄송해요. 수녀님"
끼이익...
"그럼...가볼까..."
성당의 문을 조용히 열고 하늘은 쓰레기장을 향해 조용히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그런 하늘의 모습을 본 사람은...
"..."
성당 내에서도 한 명밖에 없었다.
*
이번에도 은 씨의 도움을 받아 에고와 나는 오퍼레이트 아레나에 다시 한 번 들어왔다.
하지만 파이트가 시작한지도 3일차, 뭔가 분위기가 달랐다.
"...?"
'뺘아악?'
나는 아레나에 발을 들이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이 전부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린 것 같은데?'
나와 에고가 오자마자 다른 초능력자들의 시선이 전부 우리 쪽으로 향했다는 것이다.
"...가자, 에고"
'...뺘악'
난 천천히 발을 내딛었다. 그래도 우릴 바라보는 시선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는 눈빛부터, 적의감을 불태우는 시선까지.
온갖 시선이 얽혀 기분 나쁜 느낌이 가시지 않던 그때...
"어이~서하늘!"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반겼다.
"아! 아저씨! 다운이까지!"
'뺘악!'
아저씨와 다운이가 나와 에고 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우리는 그 쪽으로 뛰어갔다.
그제서야 기분 나쁜 시선들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넌 오늘도 늦냐~! 뭐 2라운드 이긴 건 축하하지만..."
"이 자식이...저 놈한테 진 내 앞에서 그런 말 하기 있냐?"
'뺘악! 뺘악!'
다운이는 나에게 웃어보이며 말을 걸었고, 그런 다운이의 말을 아저씨가 딴지를 건다.
...역시
"미안, 나오는데 조금 난이도가 있는 편이거든"
친구들하고 있으면 마음이 한결 편하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선 아직 그 기분 나쁜 시선들이 잊혀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지만...
"뭐야! 오자마자 왜 이렇게 우울해보여? 나처럼 진 것도 아니면서"
"맞아! 물론 난 이겼지만..."
시선을 의식하던 모습이 티가 났는지 아저씨가 먼저 말했다. 그에 더한 다운이도 말을 더했다.
"이 자식이 진짜! 내가 말했지? 그 놈 약하다니까"
"그렇긴 하더라구요. 하늘이가 훨씬 상대하기 빡셌어요"
다운이는 그렇게 얘기하며 자신의 디바이스를 자랑하듯이 휘둘렀다.
[...한다운 현재 랭킹 43 - 22위]
"오, 확실히 다운이 너는 랭킹도 많이 올랐네?'
내가 말을 꺼내자마자 둘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야...다들 왜 그래?"
"...너 지금 그게 할 소리냐?"
"맞아! 넌 랭킹도 안 봐? 네 랭킹!"
랭킹.
어제 아저씨랑 파이트가 끝나고 난 기절하듯이 잠들어서 랭킹을 확인하지 못한 것이 생각났다.
"아, 그러고보니 확인을 안하긴 했는데..."
난 얼버무리듯이 말하며 디바이스를 들어올렸다.
타라라라라락
[...서하늘 현재 랭킹.
...2위]
"...?"
'뺘악?'
응?
[서하늘 현재 랭킹 2위]
"에에에에에에에에엑?!"
'뺘아아악?!'
에고가 내 반응에 놀란듯이 날개를 파닥거렸다.
"2위? 제가 2위?!"
"뭐야...너 이제야 안거냐?"
난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주위에 있는 수많은 초능력자들의 시선이 갑자기 왜 내 쪽으로 향했는지.
그 이유는 단순했다.
"지금 이 예선에서 가장 큰 다크호스 중에 하나가 넌데, 나라도 당연히 널 째려봤을걸?"
"서하늘, 넌 지금 이 예선전 우승후보 중 하나라고. 의심할 여지도 없는"
현재 랭킹은 2위. 여지할 것 없는 우승후보 중 하나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그 말대로다. 내가 예상한것보다도 잘해주고 있군, 서하늘"
"...!"
순간 누군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더니...
"아! 은 씨! 오늘은 바쁘신 거 아니였어요?"
현재 파이트의 운영 위원을 맡고 있는 은 씨였다.
"내가 담당을 맡고 있는 초능력자가 강력한 우승후보로 자리했는데, 그럼 이렇게 격려 정도는 해줘야지"
은 씨는 그렇게 말하며 날 잠깐 바라봤다.
"역시 어제보다도 더욱 성장했군. 괴물도 이 정도는 아닐거다"
"...괴물이라니, 암튼 응원해주러 오셔서 감사해요!"
은 씨는 내 얘기를 듣고는 작지만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리고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 서하늘. 다음 상대는 정해졌나?"
"다음 상대요?"
다음 상대. 라는 말이 들리자마자 디바이스가 갑작스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아, 제발..."
'뺘악...?'
[...새로운 소식이다! 이 머저리들아!!!]
역시나...
이 망할 인공지능 자식. 또 이 난리다.
[어이! 너 따위 초능력자가 2위라고?! 참나 어이가 없구만, 요즘 초능력자들은 다 이 모양인거야? 하여튼...]
[앱] 녀석이 시끄럽게 떠들자 은 씨가 조용히 내 쪽으로 걸어왔다.
"...Absoulte emPeror Program. 그래서 서하늘의 다음 상대는 누구지?"
[아앙?! 넌......아, 은 님이시군요. 넵! 서하늘 초능력자의 다음 상대는...]
...뭐야 이 새끼. 나한테만 이렇게 쌩 난리를 부리더만 은 씨 앞에선...
주인이라는 지위에 박탈감을 느낄새도 없이, [앱] 녀석은 세상 공손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머저리...가 아니라 서하늘 님의 다음 상대는...현 예선전 랭킹 1위인 '천서준' 입니다]
"...천서준?"
"...!" / "천서준?!" / "...천서준이라"
천서준이라는 이름이 들리자마자 순간적으로 세 명이 동시다발적으로 당황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다들...왜 그래요?"
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뉘앙스를 취하자 은 씨가 먼저 말했다.
"천서준은 운영위원 측에서도 가장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초능력자다. 심지어 나이도 17, 너랑 동갑이지"
"첫 랭킹 매길때부터 1위였었죠? 그 천서준이라는 사람"
"어어, 거기에 대부분의 파이트를 3분도 안걸려서 끝내버렸다고 하던데..."
천서준.
방금 세 명이 내뱉은 한 마디만 해도 그의 위상을 아는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파이트 운영위원들이 가장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초능력자인데다 [CoN]이 매긴 첫 랭킹부터 1위, 거기에 1.2라운드를 3분 내로 통과.
"거기에...저랑 동갑이라..."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천재', 그 정도 단어로도 아까울 정도의 초능력자다"
"...천서준이라는 사람이...그 정도..."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레나의 한 쪽 부근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왜 이렇게 소란스럽지?"
의문을 표하는 다운이와는 달리 아저씨는 대충 눈치챈듯했다.
"뭐긴 뭐겠어, 그 녀석이 온 거겠지. 랭킹 1위...천서준이"
아저씨가 말하자마자 나도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웅성이던 초능력자들이 길을 열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웅성거리는 소리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하나의 '길'이 열렸다.
그리고 그 길이 향하는 곳은...
"저 사람, 이 쪽으로 오는 것 같은데?"
우리 쪽을 똑바로 향하고 있었다.
터벅...터벅...
멀리서 천천히 걸어오는 소리에 주위의 초능력자들의 웅성이던 소리조차 금세 침묵이 일었다.
터벅...터벅...
제대로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내 본능이 말해주고 있었다.
"저 사람이...천서준...!"
'뺘아아악...!'
에고도 경계하듯 몸을 바르르 떨기 시작했다.
아직 거리는 꽤 벌어진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에고가 이 정도의 반응...
'...도대체 어떤 녀석인거지?'
터벅..터벅...
천서준은 이 쪽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이내 그 발걸음은 우리 앞에서 멈춰섰다.
"...은 씨, 잘 지내셨습니까"
천서준의 시선은 그대로 은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은에게 안부를 물은뒤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래...천서준, 좋은 결과를 보여주고 있더군. 운영위원들도 너에게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는 그 얘기를 듣고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감사하다는 듯이 인사했다.
인사를 마친 그는 그대로...
"...그리고 네가 서하늘. 맞나?"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제서야 난 천서준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180은 되어보이는 큰 키에 남자치고는 꽤나 긴 검은빛의 머리카락, 그에 매치되는 검은색의 가죽 재킷과 바지.
사람 자체가 검어보이는 그를 보며 가장 눈에 띈 것은...
"어...맞아, 잘 부탁해"
"그나저나...너 손에 그건 뭐냐? ㅊ..."
아저씨가 먼저 천서준이 손에 든 것에 대해 묻자 순식간에 일은 벌어졌다.
"...!"
"ㄴ..너, 이게 뭐하는 짓..?!"
아저씨의 목 쪽에 언월도라고 불리는 무기가 닿아있었다.
"이 자식이 아저씨한테 뭐하는 거야!"
다운이 분노하며 천서준에게 자세를 취하자, 또 순식간에 원월도가 움직였다.
"...으윽?!"
"한다운, 그리고 기운경. 너희 둘의 능력은 서하늘과의 전투에서 이미 파악했다"
천서준은 무기를 내려놓고는 둘에게 나즈막히 입을 열었다.
"난 다음 상대인 서하늘과 잠깐의 대화를 나누고 싶을 뿐이다. 네 놈들의 담소를 방해할 생각은 없으니, 너희도 방해하지 마라. 알아먹었나?"
"...ㅇ" / "...큭"
다운이와 아저씨는 자신의 목에 언월도가 닿아있었다는 충격때문인지 제대로 입도 열지 못한채 굳었다.
"그럼 서하늘, 짧게 끝내겠다. 괜찮겠지?"
천서준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언월도를 다시 땅으로 내리곤 입을 열었다.
...괜찮냐고?
"...내 친구들 목에 칼이 들어오는 걸 봤는데 괜찮을 것 같아...?"
하지만 내가 괜찮을리가 없었다.
다운이도 아저씨도 소중한 친구다. 그리고 이 녀석은 지금 내 친구들한테 칼을 가져다댔다.
"친구 따위 약자들이나 신경쓰는 요소에 불과하다. 너도 결국은 그런 부류냐?"
"..요소? 부류? 뭔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어!"
'뺘아아아아악! 화륵!'
에고도 분노한 듯 입에 조그만한 불꽃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내가 존중하는 건 강자 뿐이다. 평범한 인간들의 세상에서도 살아남는 건 강한 인간뿐, 초능력의 세계에서도 그건 변함없는 진리다"
"그럼 너한테 똑똑히 보여줄게! 내가 그런 요소들을 가지고도 너한테 지지 않는 강한 사람이라는걸!"
그리고...
"그리고! 네가 내 친구들한테 했던 짓을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어주겠어! 천서준!"
내 얘기를 듣던 천서준은 그대로 등을 돌렸다.
"대화는 이걸로 끝이다. 이제 네 친구들이랑 마저 담소나 나누도록"
천서준은 마지막으로 은 씨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다시 걸어갔다.
"...하늘아, 괜히 우리 때문에 그렇게까지 화낼 일은..."
"미안해...하지만 절대 용서할 수 없어. 아저씨도 초생명체들을 지키기 위해 수확이나 재배같은 능력을 사용했어"
"...서하늘"
하늘의 머리가 푸른색의 오오라가 솟구쳤다.
"그리고...난 결심했어. 초능력을 나와 친구들을 위해 쓰겠다고..."
다운도 운경도 심지어는 은도 하늘이 이 정도로 분노한 모습을 보지 못했다.
"...서하늘, 운영위원은 항상 중립을 지켜야하는 존재다. 하지만..."
은이 그대로 하늘의 어깨를 한 번 툭 쳤다.
"힘내라"
은은 그대로 모습을 감췄다.
"...그럼 하늘아, 우리도 슬슬 준비하자. 아저씨도 화이팅이에요"
"물론이지. 서하늘, 반드시 이기고 와라"
아저씨와 다운이는 그렇게 말하며 몸이 서서히 텔레포트 되었다.
그리고...
"그럼...에고. 가자!"
'뺘악!'
...우우우우우웅!
*
에고와 나는 텔레포트가 완료된 걸 인지하고 감았던 눈을 떴다.
"...왔나?"
눈을 뜨자마자 천서준이 눈에 들어왔다.
"긴 말하지 않겠다...와라"
천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언월도를 들고 자세를 잡았다.
'뺘악!'
"그럼 사양 안하고...간다!"
서하늘, 그리고 천서준.
두 초능력자의 3번째 라운드, 파이트의 막이 지금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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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성당 입구 앞.
'뺘아아...'
"쉿...에고! 조금만 조용히...!"
난 울음소리를 내는 에고를 조용히 알에 집어넣었다.
"...후우, 그냥 알에 집어넣고 가는게 더 낫겠다..."
내가 이렇게 조심하는 이유는 딱 하나.
"으윽, 역시 이틀 연속은 내가 생각해도 조금 너무했지..."
다운이랑 파이트했던 날, 그리고 아저씨와 파이트를 했던 다음 날.
파이트가 길어짐으로써 성당으로 돌아오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고, 그로 인해 꽤 늦은 시간에 성당으로 돌아왔다.
결국 강유리 수녀님한테 어제도 걸리고 말았기에 오늘 아침에도 꽤나 강도높은 존댓말 꾸중의 시간을...
"으으윽..."
생각만 해도 고통스러운 1시간이었다.
강유리 수녀님께는 죄송하지만...초능력의 세계에 발을 들인 지금, 내 인생에 어느때보다도 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죄송해요. 수녀님"
끼이익...
"그럼...가볼까..."
성당의 문을 조용히 열고 하늘은 쓰레기장을 향해 조용히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그런 하늘의 모습을 본 사람은...
"..."
성당 내에서도 한 명밖에 없었다.
*
이번에도 은 씨의 도움을 받아 에고와 나는 오퍼레이트 아레나에 다시 한 번 들어왔다.
하지만 파이트가 시작한지도 3일차, 뭔가 분위기가 달랐다.
"...?"
'뺘아악?'
나는 아레나에 발을 들이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이 전부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린 것 같은데?'
나와 에고가 오자마자 다른 초능력자들의 시선이 전부 우리 쪽으로 향했다는 것이다.
"...가자, 에고"
'...뺘악'
난 천천히 발을 내딛었다. 그래도 우릴 바라보는 시선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는 눈빛부터, 적의감을 불태우는 시선까지.
온갖 시선이 얽혀 기분 나쁜 느낌이 가시지 않던 그때...
"어이~서하늘!"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반겼다.
"아! 아저씨! 다운이까지!"
'뺘악!'
아저씨와 다운이가 나와 에고 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우리는 그 쪽으로 뛰어갔다.
그제서야 기분 나쁜 시선들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넌 오늘도 늦냐~! 뭐 2라운드 이긴 건 축하하지만..."
"이 자식이...저 놈한테 진 내 앞에서 그런 말 하기 있냐?"
'뺘악! 뺘악!'
다운이는 나에게 웃어보이며 말을 걸었고, 그런 다운이의 말을 아저씨가 딴지를 건다.
...역시
"미안, 나오는데 조금 난이도가 있는 편이거든"
친구들하고 있으면 마음이 한결 편하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선 아직 그 기분 나쁜 시선들이 잊혀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지만...
"뭐야! 오자마자 왜 이렇게 우울해보여? 나처럼 진 것도 아니면서"
"맞아! 물론 난 이겼지만..."
시선을 의식하던 모습이 티가 났는지 아저씨가 먼저 말했다. 그에 더한 다운이도 말을 더했다.
"이 자식이 진짜! 내가 말했지? 그 놈 약하다니까"
"그렇긴 하더라구요. 하늘이가 훨씬 상대하기 빡셌어요"
다운이는 그렇게 얘기하며 자신의 디바이스를 자랑하듯이 휘둘렀다.
[...한다운 현재 랭킹 43 - 22위]
"오, 확실히 다운이 너는 랭킹도 많이 올랐네?'
내가 말을 꺼내자마자 둘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야...다들 왜 그래?"
"...너 지금 그게 할 소리냐?"
"맞아! 넌 랭킹도 안 봐? 네 랭킹!"
랭킹.
어제 아저씨랑 파이트가 끝나고 난 기절하듯이 잠들어서 랭킹을 확인하지 못한 것이 생각났다.
"아, 그러고보니 확인을 안하긴 했는데..."
난 얼버무리듯이 말하며 디바이스를 들어올렸다.
타라라라라락
[...서하늘 현재 랭킹.
...2위]
"...?"
'뺘악?'
응?
[서하늘 현재 랭킹 2위]
"에에에에에에에에엑?!"
'뺘아아악?!'
에고가 내 반응에 놀란듯이 날개를 파닥거렸다.
"2위? 제가 2위?!"
"뭐야...너 이제야 안거냐?"
난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주위에 있는 수많은 초능력자들의 시선이 갑자기 왜 내 쪽으로 향했는지.
그 이유는 단순했다.
"지금 이 예선에서 가장 큰 다크호스 중에 하나가 넌데, 나라도 당연히 널 째려봤을걸?"
"서하늘, 넌 지금 이 예선전 우승후보 중 하나라고. 의심할 여지도 없는"
현재 랭킹은 2위. 여지할 것 없는 우승후보 중 하나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그 말대로다. 내가 예상한것보다도 잘해주고 있군, 서하늘"
"...!"
순간 누군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더니...
"아! 은 씨! 오늘은 바쁘신 거 아니였어요?"
현재 파이트의 운영 위원을 맡고 있는 은 씨였다.
"내가 담당을 맡고 있는 초능력자가 강력한 우승후보로 자리했는데, 그럼 이렇게 격려 정도는 해줘야지"
은 씨는 그렇게 말하며 날 잠깐 바라봤다.
"역시 어제보다도 더욱 성장했군. 괴물도 이 정도는 아닐거다"
"...괴물이라니, 암튼 응원해주러 오셔서 감사해요!"
은 씨는 내 얘기를 듣고는 작지만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리고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 서하늘. 다음 상대는 정해졌나?"
"다음 상대요?"
다음 상대. 라는 말이 들리자마자 디바이스가 갑작스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아, 제발..."
'뺘악...?'
[...새로운 소식이다! 이 머저리들아!!!]
역시나...
이 망할 인공지능 자식. 또 이 난리다.
[어이! 너 따위 초능력자가 2위라고?! 참나 어이가 없구만, 요즘 초능력자들은 다 이 모양인거야? 하여튼...]
[앱] 녀석이 시끄럽게 떠들자 은 씨가 조용히 내 쪽으로 걸어왔다.
"...Absoulte emPeror Program. 그래서 서하늘의 다음 상대는 누구지?"
[아앙?! 넌......아, 은 님이시군요. 넵! 서하늘 초능력자의 다음 상대는...]
...뭐야 이 새끼. 나한테만 이렇게 쌩 난리를 부리더만 은 씨 앞에선...
주인이라는 지위에 박탈감을 느낄새도 없이, [앱] 녀석은 세상 공손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머저리...가 아니라 서하늘 님의 다음 상대는...현 예선전 랭킹 1위인 '천서준' 입니다]
"...천서준?"
"...!" / "천서준?!" / "...천서준이라"
천서준이라는 이름이 들리자마자 순간적으로 세 명이 동시다발적으로 당황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다들...왜 그래요?"
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뉘앙스를 취하자 은 씨가 먼저 말했다.
"천서준은 운영위원 측에서도 가장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초능력자다. 심지어 나이도 17, 너랑 동갑이지"
"첫 랭킹 매길때부터 1위였었죠? 그 천서준이라는 사람"
"어어, 거기에 대부분의 파이트를 3분도 안걸려서 끝내버렸다고 하던데..."
천서준.
방금 세 명이 내뱉은 한 마디만 해도 그의 위상을 아는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파이트 운영위원들이 가장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초능력자인데다 [CoN]이 매긴 첫 랭킹부터 1위, 거기에 1.2라운드를 3분 내로 통과.
"거기에...저랑 동갑이라..."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천재', 그 정도 단어로도 아까울 정도의 초능력자다"
"...천서준이라는 사람이...그 정도..."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레나의 한 쪽 부근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왜 이렇게 소란스럽지?"
의문을 표하는 다운이와는 달리 아저씨는 대충 눈치챈듯했다.
"뭐긴 뭐겠어, 그 녀석이 온 거겠지. 랭킹 1위...천서준이"
아저씨가 말하자마자 나도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웅성이던 초능력자들이 길을 열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웅성거리는 소리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하나의 '길'이 열렸다.
그리고 그 길이 향하는 곳은...
"저 사람, 이 쪽으로 오는 것 같은데?"
우리 쪽을 똑바로 향하고 있었다.
터벅...터벅...
멀리서 천천히 걸어오는 소리에 주위의 초능력자들의 웅성이던 소리조차 금세 침묵이 일었다.
터벅...터벅...
제대로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내 본능이 말해주고 있었다.
"저 사람이...천서준...!"
'뺘아아악...!'
에고도 경계하듯 몸을 바르르 떨기 시작했다.
아직 거리는 꽤 벌어진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에고가 이 정도의 반응...
'...도대체 어떤 녀석인거지?'
터벅..터벅...
천서준은 이 쪽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이내 그 발걸음은 우리 앞에서 멈춰섰다.
"...은 씨, 잘 지내셨습니까"
천서준의 시선은 그대로 은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은에게 안부를 물은뒤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래...천서준, 좋은 결과를 보여주고 있더군. 운영위원들도 너에게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는 그 얘기를 듣고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감사하다는 듯이 인사했다.
인사를 마친 그는 그대로...
"...그리고 네가 서하늘. 맞나?"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제서야 난 천서준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180은 되어보이는 큰 키에 남자치고는 꽤나 긴 검은빛의 머리카락, 그에 매치되는 검은색의 가죽 재킷과 바지.
사람 자체가 검어보이는 그를 보며 가장 눈에 띈 것은...
"어...맞아, 잘 부탁해"
"그나저나...너 손에 그건 뭐냐? ㅊ..."
아저씨가 먼저 천서준이 손에 든 것에 대해 묻자 순식간에 일은 벌어졌다.
"...!"
"ㄴ..너, 이게 뭐하는 짓..?!"
아저씨의 목 쪽에 언월도라고 불리는 무기가 닿아있었다.
"이 자식이 아저씨한테 뭐하는 거야!"
다운이 분노하며 천서준에게 자세를 취하자, 또 순식간에 원월도가 움직였다.
"...으윽?!"
"한다운, 그리고 기운경. 너희 둘의 능력은 서하늘과의 전투에서 이미 파악했다"
천서준은 무기를 내려놓고는 둘에게 나즈막히 입을 열었다.
"난 다음 상대인 서하늘과 잠깐의 대화를 나누고 싶을 뿐이다. 네 놈들의 담소를 방해할 생각은 없으니, 너희도 방해하지 마라. 알아먹었나?"
"...ㅇ" / "...큭"
다운이와 아저씨는 자신의 목에 언월도가 닿아있었다는 충격때문인지 제대로 입도 열지 못한채 굳었다.
"그럼 서하늘, 짧게 끝내겠다. 괜찮겠지?"
천서준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언월도를 다시 땅으로 내리곤 입을 열었다.
...괜찮냐고?
"...내 친구들 목에 칼이 들어오는 걸 봤는데 괜찮을 것 같아...?"
하지만 내가 괜찮을리가 없었다.
다운이도 아저씨도 소중한 친구다. 그리고 이 녀석은 지금 내 친구들한테 칼을 가져다댔다.
"친구 따위 약자들이나 신경쓰는 요소에 불과하다. 너도 결국은 그런 부류냐?"
"..요소? 부류? 뭔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어!"
'뺘아아아아악! 화륵!'
에고도 분노한 듯 입에 조그만한 불꽃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내가 존중하는 건 강자 뿐이다. 평범한 인간들의 세상에서도 살아남는 건 강한 인간뿐, 초능력의 세계에서도 그건 변함없는 진리다"
"그럼 너한테 똑똑히 보여줄게! 내가 그런 요소들을 가지고도 너한테 지지 않는 강한 사람이라는걸!"
그리고...
"그리고! 네가 내 친구들한테 했던 짓을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어주겠어! 천서준!"
내 얘기를 듣던 천서준은 그대로 등을 돌렸다.
"대화는 이걸로 끝이다. 이제 네 친구들이랑 마저 담소나 나누도록"
천서준은 마지막으로 은 씨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다시 걸어갔다.
"...하늘아, 괜히 우리 때문에 그렇게까지 화낼 일은..."
"미안해...하지만 절대 용서할 수 없어. 아저씨도 초생명체들을 지키기 위해 수확이나 재배같은 능력을 사용했어"
"...서하늘"
하늘의 머리가 푸른색의 오오라가 솟구쳤다.
"그리고...난 결심했어. 초능력을 나와 친구들을 위해 쓰겠다고..."
다운도 운경도 심지어는 은도 하늘이 이 정도로 분노한 모습을 보지 못했다.
"...서하늘, 운영위원은 항상 중립을 지켜야하는 존재다. 하지만..."
은이 그대로 하늘의 어깨를 한 번 툭 쳤다.
"힘내라"
은은 그대로 모습을 감췄다.
"...그럼 하늘아, 우리도 슬슬 준비하자. 아저씨도 화이팅이에요"
"물론이지. 서하늘, 반드시 이기고 와라"
아저씨와 다운이는 그렇게 말하며 몸이 서서히 텔레포트 되었다.
그리고...
"그럼...에고. 가자!"
'뺘악!'
...우우우우우웅!
*
에고와 나는 텔레포트가 완료된 걸 인지하고 감았던 눈을 떴다.
"...왔나?"
눈을 뜨자마자 천서준이 눈에 들어왔다.
"긴 말하지 않겠다...와라"
천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언월도를 들고 자세를 잡았다.
'뺘악!'
"그럼 사양 안하고...간다!"
서하늘, 그리고 천서준.
두 초능력자의 3번째 라운드, 파이트의 막이 지금 올라갔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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