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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236 추천 : 0 글자수 : 4,579 자 2025-05-28
서로의 진심을 확인한 그 밤 이후, 성민과 준호의 관계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팽팽했던 긴장감과 어색함이 걷히고, 그 자리에는 이제 막 시작하는 연인들의 풋풋한 설렘과 조심스러운 애정이 내려앉았다. 좁은 자취방 안의 공기는 여전히 미묘했지만, 이전의 불안함과는 다른, 달콤하고 간질거리는 종류의 떨림으로 채워졌다.
하지만 변화는 쉽지 않았다. 특히 성민에게는 모든 것이 처음 겪는 일이었다. 남자를 좋아하게 된 자신의 감정을 인정한 것만으로도 큰 용기가 필요했지만, 이제는 그 감정을 바탕으로 준호와 '연인'으로서의 관계를 만들어나가야 했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어디까지가 괜찮은 건지, 그는 모든 것이 서툴고 혼란스러웠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바로 옆 침대에서 잠든 준호의 얼굴을 보는 것은 더 이상 단순한 룸메이트를 보는 시선이 아니었다. 어젯밤 그의 품에 안겨 나누었던 뜨거운 고백과 눈물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예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그의 앞에서 옷을 갈아입거나, 그의 무심한 스킨십에 태연하게 반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는 여전히 준호의 시선 하나, 손길 하나에 온 신경이 곤두섰고, 심장은 사소한 접촉에도 요란하게 뛰어댔다.
준호 역시 성민의 그런 서툰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웠다. 그는 성민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고, 그가 자신과의 관계에 온전히 적응할 때까지 기다려줄 인내심이 있었다. 그는 성민이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일부러 더 장난스럽게 말을 걸거나, 친구처럼 편안하게 대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 속에는 성민을 향한 깊은 애정과 소유욕이 숨겨져 있었고, 가끔씩 그 감정을 참지 못하고 성민의 손을 슬쩍 잡거나 어깨를 감싸 안을 때면, 성민은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그의 따뜻한 체온에 기분 좋은 떨림을 느꼈다.
그들의 '연애'는 그렇게 서툴고 조심스러운 첫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함께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이전과는 다른 특별한 의미와 설렘이 깃들었다. 좁은 주방에서 어깨를 부딪치며 함께 저녁을 준비할 때, 소파에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다가 우연히 손이 스칠 때,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눌 때, 그 모든 순간들이 성민에게는 새롭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가 온전히 장밋빛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성민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불안감과 두려움이 남아 있었다. 자신이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과연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 관계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면? 부모님이나 친구들은 뭐라고 할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 감정이 정말 '사랑'일까, 아니면 일시적인 혼란이나 호기심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밤이 되면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잠 못 이루는 날들도 많았다.
준호는 그런 성민의 내적 갈등을 눈치채고 있었지만, 섣불리 다그치거나 답을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묵묵히 성민의 곁을 지키며, 그의 불안한 마음을 다독여주려 애썼다. 성민이 악몽이라도 꾼 듯 뒤척이며 식은땀을 흘리는 밤이면, 가만히 다가가 그의 등을 토닥여주거나 손을 잡아주었다. 성민이 이유 없이 예민하게 굴거나 거리를 두려 할 때도, 화를 내거나 서운해하는 대신 오히려 더 따뜻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기다려주었다.
"…힘들면 언제든 나한테 말해도 돼, 성민아."
어느 날 밤, 잠 못 들고 뒤척이는 성민에게 준호가 나지막이 말했다.
"네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다는 몰라도 조금은 알 것 같아. 혼자 힘들어하지 마. 나한테 기대도 괜찮아. 나는… 네 편이니까."
준호의 진심 어린 위로에 성민은 또다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자신의 불안정한 감정 때문에 준호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사실이 미안하면서도, 그런 자신을 묵묵히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그의 존재가 너무나 고맙고 든든하게 느껴졌다.
"…고마워요, 형. 정말…"
성민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어둠 속에서 그의 손을 찾아 꼭 잡았다. 따뜻하고 단단한 그의 손을 잡고 있자,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는 듯했다. 어쩌면 이 길은 생각보다 더 외롭고 험난할지도 모른다. 수많은 편견과 시선들에 맞서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손을 잡아주는 이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며칠 후, 준호는 성민에게 깜짝 제안을 했다.
"성민아, 이번 주말에 나랑 같이 본가에 내려가지 않을래?"
"네? 형… 본가요?"
성민은 예상치 못한 제안에 당황해서 되물었다. 준호의 본가는 서울에서 꽤 거리가 있는 지방 소도시에 위치해 있었다.
"응. 부모님한테 너 소개시켜 드리고 싶어서. 그냥… 제일 친한 과 후배이자 룸메이트라고 말씀드릴 거니까 너무 부담 갖지는 말고. 우리 엄마가 너 한번 보고 싶다고 하시기도 했고."
준호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지만, 성민은 그의 제안이 단순한 룸메이트 소개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가족에게 자신을 보인다는 것. 그것은 그들의 관계를 좀 더 공식적이고 진지한 단계로 나아가게 하는 중요한 발걸음이었다. 성민은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두려움보다는 설렘과 기대감이 더 컸다. 준호의 세계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주말 아침, 두 사람은 간단한 짐을 챙겨 기차에 올랐다. 창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성민은 약간의 긴장감과 함께 묘한 설렘을 느꼈다. 옆자리에 앉은 준호는 창문에 머리를 기댄 채 잠들어 있었다. 햇살에 비친 그의 옆모습은 평화로워 보였다. 성민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는 모습마저도 이렇게 멋있을 수 있다니. 그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럽게 준호의 어깨에 자신의 머리를 기댔다. 익숙하고 편안한 그의 체온과 향기가 느껴졌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호의 본가에 도착했을 때, 그의 부모님은 예상외로 너무나 따뜻하고 다정하게 성민을 맞아주셨다. 특히 준호의 어머니는 "아이고, 네가 성민이구나! 우리 아들 룸메이트라고 얘기 많이 들었다. 어쩜 이렇게 잘생기고 착하게 생겼니?"라며 성민의 손을 꼭 잡고 반가워하셨다. 준호의 아버지는 말수는 적으셨지만, 온화한 미소로 성민을 바라보며 편안하게 대해주셨다. 성민은 그들의 따뜻한 환대에 긴장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저녁 식사 시간에는 준호가 어렸을 적 이야기들이 화제에 올랐다. 준호의 어머니는 그의 개구쟁이 같던 어린 시절 사진들을 보여주며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늘어놓으셨고, 준호는 민망함에 얼굴을 붉히면서도 부모님과 성민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었다. 성민은 그동안 몰랐던 준호의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하며 즐거워했고, 화목하고 따뜻한 그의 가족 분위기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저녁 식사 후, 성민은 준호와 함께 집 근처 강변을 산책했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나란히 걷는 동안, 준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어땠어? 우리 부모님 만나는 거, 많이 불편하진 않았고?"
"아니요! 전혀요! 두 분 다 너무 좋으시고… 저한테 정말 잘해주셔서… 감사했어요. 형이 왜 그렇게 밝고 긍정적인지 알 것 같아요. 정말 좋은 가정에서 사랑 많이 받고 자란 티가 나요."
성민의 진심 어린 말에 준호는 쑥스러운 듯 웃으며 그의 어깨를 감쌌다.
"다행이다. 네가 불편해할까 봐 걱정 많이 했거든. …사실, 부모님께는 아직… 우리 관계에 대해 솔직하게 말씀드리지는 못했어. 언젠가는 말씀드려야겠지만… 아직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
준호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망설임과 미안함이 담겨 있었다. 성민은 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자신 역시 부모님께 이 사실을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괜찮아요, 형. 저도 이해해요. 우리… 너무 서두르지 말아요. 천천히, 하나씩… 같이 해나가면 되잖아요."
성민은 준호의 손을 찾아 부드럽게 잡았다. 그의 따뜻한 위로에 준호는 고마움과 안도감이 뒤섞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의 손을 잡은 채 강변을 계속 걸었다.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고, 강물 위로는 은은한 달빛이 부서지고 있었다. 그 고요하고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깊은 평온함과 유대감을 느꼈다.
그날 밤, 성민은 준호의 방에서 함께 잠을 잤다. 물론, 그의 부모님 몰래 준호가 성민의 이불 속으로 파고든 것이었지만. 좁은 싱글 침대 위에서 서로의 몸을 꼭 맞대고 누워, 성민은 준호의 규칙적인 심장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아직 넘어야 할 산도 많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산적해 있지만,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고. 그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갈 용기가 조금은 생긴 것 같다고.
서툴지만 진심을 다해 내딛는 첫걸음. 그 걸음이 향하는 곳이 어디일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길 위에 더 이상 성민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의 곁에는 이제, 그의 손을 잡아주고 함께 걸어갈 사람, 준호가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세상의 모든 편견과 어려움에 맞설 힘을 주는, 가장 든든하고 따뜻한 이유였다.
하지만 변화는 쉽지 않았다. 특히 성민에게는 모든 것이 처음 겪는 일이었다. 남자를 좋아하게 된 자신의 감정을 인정한 것만으로도 큰 용기가 필요했지만, 이제는 그 감정을 바탕으로 준호와 '연인'으로서의 관계를 만들어나가야 했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어디까지가 괜찮은 건지, 그는 모든 것이 서툴고 혼란스러웠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바로 옆 침대에서 잠든 준호의 얼굴을 보는 것은 더 이상 단순한 룸메이트를 보는 시선이 아니었다. 어젯밤 그의 품에 안겨 나누었던 뜨거운 고백과 눈물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예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그의 앞에서 옷을 갈아입거나, 그의 무심한 스킨십에 태연하게 반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는 여전히 준호의 시선 하나, 손길 하나에 온 신경이 곤두섰고, 심장은 사소한 접촉에도 요란하게 뛰어댔다.
준호 역시 성민의 그런 서툰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웠다. 그는 성민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고, 그가 자신과의 관계에 온전히 적응할 때까지 기다려줄 인내심이 있었다. 그는 성민이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일부러 더 장난스럽게 말을 걸거나, 친구처럼 편안하게 대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 속에는 성민을 향한 깊은 애정과 소유욕이 숨겨져 있었고, 가끔씩 그 감정을 참지 못하고 성민의 손을 슬쩍 잡거나 어깨를 감싸 안을 때면, 성민은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그의 따뜻한 체온에 기분 좋은 떨림을 느꼈다.
그들의 '연애'는 그렇게 서툴고 조심스러운 첫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함께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이전과는 다른 특별한 의미와 설렘이 깃들었다. 좁은 주방에서 어깨를 부딪치며 함께 저녁을 준비할 때, 소파에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다가 우연히 손이 스칠 때,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눌 때, 그 모든 순간들이 성민에게는 새롭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가 온전히 장밋빛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성민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불안감과 두려움이 남아 있었다. 자신이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과연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 관계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면? 부모님이나 친구들은 뭐라고 할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 감정이 정말 '사랑'일까, 아니면 일시적인 혼란이나 호기심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밤이 되면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잠 못 이루는 날들도 많았다.
준호는 그런 성민의 내적 갈등을 눈치채고 있었지만, 섣불리 다그치거나 답을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묵묵히 성민의 곁을 지키며, 그의 불안한 마음을 다독여주려 애썼다. 성민이 악몽이라도 꾼 듯 뒤척이며 식은땀을 흘리는 밤이면, 가만히 다가가 그의 등을 토닥여주거나 손을 잡아주었다. 성민이 이유 없이 예민하게 굴거나 거리를 두려 할 때도, 화를 내거나 서운해하는 대신 오히려 더 따뜻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기다려주었다.
"…힘들면 언제든 나한테 말해도 돼, 성민아."
어느 날 밤, 잠 못 들고 뒤척이는 성민에게 준호가 나지막이 말했다.
"네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다는 몰라도 조금은 알 것 같아. 혼자 힘들어하지 마. 나한테 기대도 괜찮아. 나는… 네 편이니까."
준호의 진심 어린 위로에 성민은 또다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자신의 불안정한 감정 때문에 준호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사실이 미안하면서도, 그런 자신을 묵묵히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그의 존재가 너무나 고맙고 든든하게 느껴졌다.
"…고마워요, 형. 정말…"
성민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어둠 속에서 그의 손을 찾아 꼭 잡았다. 따뜻하고 단단한 그의 손을 잡고 있자,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는 듯했다. 어쩌면 이 길은 생각보다 더 외롭고 험난할지도 모른다. 수많은 편견과 시선들에 맞서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손을 잡아주는 이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며칠 후, 준호는 성민에게 깜짝 제안을 했다.
"성민아, 이번 주말에 나랑 같이 본가에 내려가지 않을래?"
"네? 형… 본가요?"
성민은 예상치 못한 제안에 당황해서 되물었다. 준호의 본가는 서울에서 꽤 거리가 있는 지방 소도시에 위치해 있었다.
"응. 부모님한테 너 소개시켜 드리고 싶어서. 그냥… 제일 친한 과 후배이자 룸메이트라고 말씀드릴 거니까 너무 부담 갖지는 말고. 우리 엄마가 너 한번 보고 싶다고 하시기도 했고."
준호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지만, 성민은 그의 제안이 단순한 룸메이트 소개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가족에게 자신을 보인다는 것. 그것은 그들의 관계를 좀 더 공식적이고 진지한 단계로 나아가게 하는 중요한 발걸음이었다. 성민은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두려움보다는 설렘과 기대감이 더 컸다. 준호의 세계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주말 아침, 두 사람은 간단한 짐을 챙겨 기차에 올랐다. 창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성민은 약간의 긴장감과 함께 묘한 설렘을 느꼈다. 옆자리에 앉은 준호는 창문에 머리를 기댄 채 잠들어 있었다. 햇살에 비친 그의 옆모습은 평화로워 보였다. 성민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는 모습마저도 이렇게 멋있을 수 있다니. 그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럽게 준호의 어깨에 자신의 머리를 기댔다. 익숙하고 편안한 그의 체온과 향기가 느껴졌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호의 본가에 도착했을 때, 그의 부모님은 예상외로 너무나 따뜻하고 다정하게 성민을 맞아주셨다. 특히 준호의 어머니는 "아이고, 네가 성민이구나! 우리 아들 룸메이트라고 얘기 많이 들었다. 어쩜 이렇게 잘생기고 착하게 생겼니?"라며 성민의 손을 꼭 잡고 반가워하셨다. 준호의 아버지는 말수는 적으셨지만, 온화한 미소로 성민을 바라보며 편안하게 대해주셨다. 성민은 그들의 따뜻한 환대에 긴장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저녁 식사 시간에는 준호가 어렸을 적 이야기들이 화제에 올랐다. 준호의 어머니는 그의 개구쟁이 같던 어린 시절 사진들을 보여주며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늘어놓으셨고, 준호는 민망함에 얼굴을 붉히면서도 부모님과 성민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었다. 성민은 그동안 몰랐던 준호의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하며 즐거워했고, 화목하고 따뜻한 그의 가족 분위기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저녁 식사 후, 성민은 준호와 함께 집 근처 강변을 산책했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나란히 걷는 동안, 준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어땠어? 우리 부모님 만나는 거, 많이 불편하진 않았고?"
"아니요! 전혀요! 두 분 다 너무 좋으시고… 저한테 정말 잘해주셔서… 감사했어요. 형이 왜 그렇게 밝고 긍정적인지 알 것 같아요. 정말 좋은 가정에서 사랑 많이 받고 자란 티가 나요."
성민의 진심 어린 말에 준호는 쑥스러운 듯 웃으며 그의 어깨를 감쌌다.
"다행이다. 네가 불편해할까 봐 걱정 많이 했거든. …사실, 부모님께는 아직… 우리 관계에 대해 솔직하게 말씀드리지는 못했어. 언젠가는 말씀드려야겠지만… 아직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
준호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망설임과 미안함이 담겨 있었다. 성민은 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자신 역시 부모님께 이 사실을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괜찮아요, 형. 저도 이해해요. 우리… 너무 서두르지 말아요. 천천히, 하나씩… 같이 해나가면 되잖아요."
성민은 준호의 손을 찾아 부드럽게 잡았다. 그의 따뜻한 위로에 준호는 고마움과 안도감이 뒤섞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의 손을 잡은 채 강변을 계속 걸었다.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고, 강물 위로는 은은한 달빛이 부서지고 있었다. 그 고요하고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깊은 평온함과 유대감을 느꼈다.
그날 밤, 성민은 준호의 방에서 함께 잠을 잤다. 물론, 그의 부모님 몰래 준호가 성민의 이불 속으로 파고든 것이었지만. 좁은 싱글 침대 위에서 서로의 몸을 꼭 맞대고 누워, 성민은 준호의 규칙적인 심장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아직 넘어야 할 산도 많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산적해 있지만,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고. 그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갈 용기가 조금은 생긴 것 같다고.
서툴지만 진심을 다해 내딛는 첫걸음. 그 걸음이 향하는 곳이 어디일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길 위에 더 이상 성민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의 곁에는 이제, 그의 손을 잡아주고 함께 걸어갈 사람, 준호가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세상의 모든 편견과 어려움에 맞설 힘을 주는, 가장 든든하고 따뜻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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