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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0 추천 : 0 글자수 : 5,327 자 2025-05-25
도서관에서의 그 밤 이후, 성민과 준호 사이에는 미묘한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준호는 약속대로 이전보다 훨씬 더 성민의 공간과 감정을 존중해주려는 노력을 보였다. 샤워 후에는 반드시 상의를 챙겨 입고 나왔고, 성민이 과제에 집중하고 있을 때는 함부로 말을 걸거나 방해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의 세심한 배려는 분명 고마운 일이었지만, 성민은 오히려 그런 준호의 조심스러운 태도에서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거리감을 느끼기도 했다. 마치 투명한 유리 벽 하나가 그들 사이에 세워진 듯한 느낌. 예전처럼 스스럼없이 장난을 치거나 툭툭 건드리는 그의 모습이 사라지자, 방 안의 공기는 더 조용해졌지만 어딘가 모르게 더 어색해진 것 같기도 했다.
성민 역시 준호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 이전처럼 무작정 시선을 피하거나 긴장으로 몸을 굳히는 대신, 좀 더 편안하게 그를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그의 농담에 자연스럽게 웃어 보이기도 하고, 먼저 말을 걸어 시시콜콜한 학교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꿈틀대는 혼란스러운 감정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그를 향한 시선은 여전히 자석처럼 끌렸고, 그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심장은 여전히 제멋대로 반응했다. 다만, 이제는 그런 자신의 감정을 애써 부정하거나 억누르기보다는, 그저 조용히 관찰하고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을 뿐이었다. 이 감정의 끝이 어디일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이 관계를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캠퍼스는 잠시나마 해방감과 여유를 되찾았다. 성민도 숨 막히는 시험 기간에서 벗어나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시험 결과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고, 특히 준호가 도와주었던 과목은 기대 이상의 성적을 받았다. 성민은 준호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왠지 쑥스러워서 제대로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금요일 저녁, 준호가 갑자기 외출 준비를 하며 성민에게 물었다.
"성민아, 너 오늘 저녁 약속 있어?"
"아니요, 없어요. 왜요, 형?"
"잘됐다! 그럼 형이랑 같이 갈 데가 있다. 얼른 옷 갈아입어."
준호는 이유도 설명해주지 않은 채, 막무가내로 성민을 재촉했다. 성민은 어리둥절했지만, 그의 들뜬 표정을 보니 왠지 거절할 수 없었다. 그는 옷장에서 가장 깔끔한 셔츠와 면바지를 꺼내 입었다. 준호는 평소의 편안한 트레이닝복 대신, 몸에 잘 맞는 검은색 슬랙스와 흰색 셔츠를 입고 가죽 재킷까지 걸친 모습이었다. 평소와는 다른 그의 멋진 모습에 성민은 또다시 자신도 모르게 감탄하며 시선을 떼지 못했다.
"와… 형, 오늘 어디 중요한 데 가세요? 엄청 멋있으신데…"
"푸흐, 좀 그렇지? 너도 오늘 꽤 신경 썼는데? 아무튼, 따라와 보면 알아."
준호는 윙크를 하며 성민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의 손길이 닿는 순간, 성민의 심장이 또다시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나선 곳은 학교 근처의 번화가에 위치한, 꽤 분위기 있어 보이는 라이브 클럽이었다. 쿵쿵 울리는 베이스 소리와 화려한 조명, 사람들로 가득 찬 활기찬 분위기. 성민은 이런 곳에 와본 경험이 거의 없었기에 어색함과 호기심이 뒤섞인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긴… 어쩐 일로…"
"오늘 우리 동아리 공연 있거든. 내가 기타 치는 거, 너 아직 한 번도 못 봤잖아. 특별히 초대하는 거야, 내 룸메이트니까."
준호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동아리 공연이라니. 성민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준호가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공연까지 하는 줄은 몰랐다. 준호는 성민을 무대 앞쪽, 비교적 잘 보이는 자리에 앉히고는 "잠깐만 기다려. 금방 준비하고 올게"라는 말을 남기고 백스테이지 쪽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무대 위 조명이 환하게 켜지고 사회자의 소개와 함께 준호와 그의 밴드 멤버들이 등장했다. 평소 자취방에서 보던 편안하고 장난기 넘치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무대 위에서의 준호는 그야말로 빛이 났다. 그는 익숙하게 기타를 어깨에 메고 마이크 앞에 섰다. 관객들의 환호성 속에서 그가 첫 곡의 전주를 연주하기 시작하자, 클럽 안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성민 역시 숨을 죽인 채 무대 위의 준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강렬한 조명 아래,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며 열정적으로 기타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매혹적이었다. 땀방울이 그의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 노래에 몰입하여 감정을 폭발시키는 그의 표정, 관객들과 자연스럽게 호흡하며 무대를 장악하는 그의 카리스마. 성민은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기분으로 그 모든 순간들을 자신의 눈과 마음에 새겨 넣었다.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만들어내는 음악과 열정은 이상하게도 성민의 마음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와 강렬한 울림을 만들어냈다.
공연 중간, 준호는 잠시 숨을 고르며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오늘… 여기 아주 특별한 손님이 와 계십니다. 제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룸메이트이자, 요즘 저에게 아주 큰 힘이 되어주는 친구죠. 이 노래는… 그 친구에게 들려주고 싶네요."
그리고 그는 성민이 있는 쪽을 향해 잠시 시선을 고정시키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성민은 순간 심장이 멎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주변의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오직 무대 위의 준호와 자신만이 존재하는 듯한 기묘한 감각. 그의 시선이 너무나도 강렬하고 뜨겁게 느껴졌다. 그는 자신을 위해 노래를 부르겠다고 했다. 그것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성민의 얼굴은 걷잡을 수 없이 붉어졌고, 심장은 터질 것처럼 세차게 뛰었다.
준호가 부르기 시작한 노래는 잔잔하면서도 애틋한 멜로디의 발라드였다. 그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클럽 안을 가득 메웠고, 성민은 그 노랫말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마치 자신의 마음을 읽고 위로해주는 듯한 가사들. 낯선 곳에서 홀로 외로움을 느끼던 자신에게, 예기치 않게 다가와 따뜻함을 건네준 준호의 모습이 떠올랐다. 노래를 부르는 내내 준호의 시선은 종종 객석의 성민을 향했고, 그때마다 두 사람의 눈이 허공에서 얽혔다. 그 짧은 순간의 시선 교환 속에서, 성민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깊은 감정의 교류를 느꼈다. 이것은 더 이상 단순한 룸메이트나 형 동생의 관계가 아니었다. 그 이상의 무언가가 그들 사이에 흐르고 있음을, 성민은 이제 부인할 수 없었다.
공연이 끝나고, 쏟아지는 박수갈채 속에서 준호는 땀으로 젖은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관객들에게 인사했다. 성민 역시 손바닥이 아플 정도로 열심히 박수를 쳤다. 공연의 여운과 벅찬 감동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잠시 후, 뒷정리를 마친 준호가 성민에게 다가왔다.
"어땠어? 내 공연. 형 멋있었냐?"
준호는 여전히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듯 살짝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성민은 벅찬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진심으로 대답했다.
"네, 형… 정말… 최고였어요. 진짜 너무 멋있었어요."
"푸흐, 다행이네. 네가 별로라고 할까 봐 좀 쫄았는데."
준호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성민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이전 같았으면 어색해서 몸을 피했을 테지만, 이상하게도 오늘 그의 스킨십은 전혀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것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가자, 뒤풀이해야지! 오늘 주인공은 너야, 성민아. 네 덕분에 형이 오늘 공연 완전 잘했거든."
준호는 성민을 이끌고 클럽 근처의 단골 술집으로 향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의 술집 안에서, 두 사람은 마주 앉아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민은 아까 무대 위에서 느꼈던 감동과 준호의 멋진 모습에 대해 솔직하게 칭찬했고, 준호는 쑥스러워하면서도 기분 좋은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근데 형, 아까 그 노래… 정말 저 때문에 부르신 거예요?"
성민은 용기를 내어 가장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준호는 잠시 맥주잔을 내려놓고 성민의 눈을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또다시 깊어졌다.
"…응. 맞아. 네 생각하면서 불렀어."
"…"
"네가 요즘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위로해주고 싶었거든. 그리고… 그냥, 네가 와줘서 고맙다는 말도 하고 싶었고."
준호의 담담한 고백에 성민은 또다시 얼굴이 붉어졌다. 그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해주고 있었다니. 단순한 룸메이트 동생이 아니라, 특별한 존재로 여기고 있다는 느낌. 그 사실이 성민의 마음을 간지럽히면서도 동시에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 감정은 어디까지 가려는 걸까.
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공연의 흥분 때문인지,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는 평소와는 확연히 달랐다. 좀 더 솔직했고, 좀 더 가까워진 느낌. 테이블 아래로 준호의 다리가 성민의 다리에 스칠 때마다, 성민은 온몸에 짜릿한 전류가 흐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는 애써 맥주잔만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피했지만, 준호는 그런 성민의 모습을 흥미롭다는 듯, 혹은 무언가를 안다는 듯한 묘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술자리가 파하고 두 사람이 함께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길. 밤늦은 시간이라 거리는 한산했고,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만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 나란히 걷는 동안, 그들의 어깨가 스치고 손등이 부딪힐 때마다 성민은 심장이 멎는 듯한 긴장감을 느꼈다. 준호는 아무렇지도 않게 휘파람을 불거나 시시껄렁한 농담을 던졌지만, 성민은 그의 말에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온 신경이 그에게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자취방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준호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성민을 돌아보았다. 달빛을 받아 그의 얼굴 윤곽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의 눈빛은 술기운 때문인지 평소보다 더 깊고 뜨거워 보였다.
"성민아."
"…네, 형?"
"오늘… 와줘서 진짜 고맙다."
준호는 그렇게 말하며, 성민의 뺨을 아주 부드럽게, 거의 스치듯 어루만졌다. 그 예상치 못한 손길에 성민은 숨을 헙, 하고 들이켰다. 준호의 손가락 끝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가 성민의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시간은 멈춘 듯했고, 세상에는 오직 두 사람만이 존재하는 듯했다.
준호의 얼굴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성민에게로 다가왔다. 성민은 그의 움직임을 빤히 바라보면서도 몸을 피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마치 강력한 자력에 이끌리듯, 그의 눈빛과 숨결에 속수무책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두 사람의 입술이 닿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거리. 짙은 알코올 향과 함께 그의 숨결이 성민의 입술 위를 간질였다.
‘안 돼…’
성민의 이성이 마지막 경고 신호를 보냈지만, 이미 그의 몸과 마음은 준호에게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다. 겹쳐지는 공간, 닿는 시선, 그리고 마침내 포개어질 듯한 입술. 흔들리는 마음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경계선을 넘어서고 있었다.
성민 역시 준호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 이전처럼 무작정 시선을 피하거나 긴장으로 몸을 굳히는 대신, 좀 더 편안하게 그를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그의 농담에 자연스럽게 웃어 보이기도 하고, 먼저 말을 걸어 시시콜콜한 학교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꿈틀대는 혼란스러운 감정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그를 향한 시선은 여전히 자석처럼 끌렸고, 그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심장은 여전히 제멋대로 반응했다. 다만, 이제는 그런 자신의 감정을 애써 부정하거나 억누르기보다는, 그저 조용히 관찰하고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을 뿐이었다. 이 감정의 끝이 어디일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이 관계를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캠퍼스는 잠시나마 해방감과 여유를 되찾았다. 성민도 숨 막히는 시험 기간에서 벗어나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시험 결과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고, 특히 준호가 도와주었던 과목은 기대 이상의 성적을 받았다. 성민은 준호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왠지 쑥스러워서 제대로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금요일 저녁, 준호가 갑자기 외출 준비를 하며 성민에게 물었다.
"성민아, 너 오늘 저녁 약속 있어?"
"아니요, 없어요. 왜요, 형?"
"잘됐다! 그럼 형이랑 같이 갈 데가 있다. 얼른 옷 갈아입어."
준호는 이유도 설명해주지 않은 채, 막무가내로 성민을 재촉했다. 성민은 어리둥절했지만, 그의 들뜬 표정을 보니 왠지 거절할 수 없었다. 그는 옷장에서 가장 깔끔한 셔츠와 면바지를 꺼내 입었다. 준호는 평소의 편안한 트레이닝복 대신, 몸에 잘 맞는 검은색 슬랙스와 흰색 셔츠를 입고 가죽 재킷까지 걸친 모습이었다. 평소와는 다른 그의 멋진 모습에 성민은 또다시 자신도 모르게 감탄하며 시선을 떼지 못했다.
"와… 형, 오늘 어디 중요한 데 가세요? 엄청 멋있으신데…"
"푸흐, 좀 그렇지? 너도 오늘 꽤 신경 썼는데? 아무튼, 따라와 보면 알아."
준호는 윙크를 하며 성민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의 손길이 닿는 순간, 성민의 심장이 또다시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나선 곳은 학교 근처의 번화가에 위치한, 꽤 분위기 있어 보이는 라이브 클럽이었다. 쿵쿵 울리는 베이스 소리와 화려한 조명, 사람들로 가득 찬 활기찬 분위기. 성민은 이런 곳에 와본 경험이 거의 없었기에 어색함과 호기심이 뒤섞인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긴… 어쩐 일로…"
"오늘 우리 동아리 공연 있거든. 내가 기타 치는 거, 너 아직 한 번도 못 봤잖아. 특별히 초대하는 거야, 내 룸메이트니까."
준호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동아리 공연이라니. 성민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준호가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공연까지 하는 줄은 몰랐다. 준호는 성민을 무대 앞쪽, 비교적 잘 보이는 자리에 앉히고는 "잠깐만 기다려. 금방 준비하고 올게"라는 말을 남기고 백스테이지 쪽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무대 위 조명이 환하게 켜지고 사회자의 소개와 함께 준호와 그의 밴드 멤버들이 등장했다. 평소 자취방에서 보던 편안하고 장난기 넘치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무대 위에서의 준호는 그야말로 빛이 났다. 그는 익숙하게 기타를 어깨에 메고 마이크 앞에 섰다. 관객들의 환호성 속에서 그가 첫 곡의 전주를 연주하기 시작하자, 클럽 안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성민 역시 숨을 죽인 채 무대 위의 준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강렬한 조명 아래,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며 열정적으로 기타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매혹적이었다. 땀방울이 그의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 노래에 몰입하여 감정을 폭발시키는 그의 표정, 관객들과 자연스럽게 호흡하며 무대를 장악하는 그의 카리스마. 성민은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기분으로 그 모든 순간들을 자신의 눈과 마음에 새겨 넣었다.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만들어내는 음악과 열정은 이상하게도 성민의 마음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와 강렬한 울림을 만들어냈다.
공연 중간, 준호는 잠시 숨을 고르며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오늘… 여기 아주 특별한 손님이 와 계십니다. 제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룸메이트이자, 요즘 저에게 아주 큰 힘이 되어주는 친구죠. 이 노래는… 그 친구에게 들려주고 싶네요."
그리고 그는 성민이 있는 쪽을 향해 잠시 시선을 고정시키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성민은 순간 심장이 멎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주변의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오직 무대 위의 준호와 자신만이 존재하는 듯한 기묘한 감각. 그의 시선이 너무나도 강렬하고 뜨겁게 느껴졌다. 그는 자신을 위해 노래를 부르겠다고 했다. 그것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성민의 얼굴은 걷잡을 수 없이 붉어졌고, 심장은 터질 것처럼 세차게 뛰었다.
준호가 부르기 시작한 노래는 잔잔하면서도 애틋한 멜로디의 발라드였다. 그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클럽 안을 가득 메웠고, 성민은 그 노랫말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마치 자신의 마음을 읽고 위로해주는 듯한 가사들. 낯선 곳에서 홀로 외로움을 느끼던 자신에게, 예기치 않게 다가와 따뜻함을 건네준 준호의 모습이 떠올랐다. 노래를 부르는 내내 준호의 시선은 종종 객석의 성민을 향했고, 그때마다 두 사람의 눈이 허공에서 얽혔다. 그 짧은 순간의 시선 교환 속에서, 성민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깊은 감정의 교류를 느꼈다. 이것은 더 이상 단순한 룸메이트나 형 동생의 관계가 아니었다. 그 이상의 무언가가 그들 사이에 흐르고 있음을, 성민은 이제 부인할 수 없었다.
공연이 끝나고, 쏟아지는 박수갈채 속에서 준호는 땀으로 젖은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관객들에게 인사했다. 성민 역시 손바닥이 아플 정도로 열심히 박수를 쳤다. 공연의 여운과 벅찬 감동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잠시 후, 뒷정리를 마친 준호가 성민에게 다가왔다.
"어땠어? 내 공연. 형 멋있었냐?"
준호는 여전히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듯 살짝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성민은 벅찬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진심으로 대답했다.
"네, 형… 정말… 최고였어요. 진짜 너무 멋있었어요."
"푸흐, 다행이네. 네가 별로라고 할까 봐 좀 쫄았는데."
준호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성민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이전 같았으면 어색해서 몸을 피했을 테지만, 이상하게도 오늘 그의 스킨십은 전혀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것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가자, 뒤풀이해야지! 오늘 주인공은 너야, 성민아. 네 덕분에 형이 오늘 공연 완전 잘했거든."
준호는 성민을 이끌고 클럽 근처의 단골 술집으로 향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의 술집 안에서, 두 사람은 마주 앉아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민은 아까 무대 위에서 느꼈던 감동과 준호의 멋진 모습에 대해 솔직하게 칭찬했고, 준호는 쑥스러워하면서도 기분 좋은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근데 형, 아까 그 노래… 정말 저 때문에 부르신 거예요?"
성민은 용기를 내어 가장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준호는 잠시 맥주잔을 내려놓고 성민의 눈을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또다시 깊어졌다.
"…응. 맞아. 네 생각하면서 불렀어."
"…"
"네가 요즘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위로해주고 싶었거든. 그리고… 그냥, 네가 와줘서 고맙다는 말도 하고 싶었고."
준호의 담담한 고백에 성민은 또다시 얼굴이 붉어졌다. 그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해주고 있었다니. 단순한 룸메이트 동생이 아니라, 특별한 존재로 여기고 있다는 느낌. 그 사실이 성민의 마음을 간지럽히면서도 동시에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 감정은 어디까지 가려는 걸까.
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공연의 흥분 때문인지,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는 평소와는 확연히 달랐다. 좀 더 솔직했고, 좀 더 가까워진 느낌. 테이블 아래로 준호의 다리가 성민의 다리에 스칠 때마다, 성민은 온몸에 짜릿한 전류가 흐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는 애써 맥주잔만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피했지만, 준호는 그런 성민의 모습을 흥미롭다는 듯, 혹은 무언가를 안다는 듯한 묘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술자리가 파하고 두 사람이 함께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길. 밤늦은 시간이라 거리는 한산했고,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만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 나란히 걷는 동안, 그들의 어깨가 스치고 손등이 부딪힐 때마다 성민은 심장이 멎는 듯한 긴장감을 느꼈다. 준호는 아무렇지도 않게 휘파람을 불거나 시시껄렁한 농담을 던졌지만, 성민은 그의 말에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온 신경이 그에게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자취방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준호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성민을 돌아보았다. 달빛을 받아 그의 얼굴 윤곽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의 눈빛은 술기운 때문인지 평소보다 더 깊고 뜨거워 보였다.
"성민아."
"…네, 형?"
"오늘… 와줘서 진짜 고맙다."
준호는 그렇게 말하며, 성민의 뺨을 아주 부드럽게, 거의 스치듯 어루만졌다. 그 예상치 못한 손길에 성민은 숨을 헙, 하고 들이켰다. 준호의 손가락 끝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가 성민의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시간은 멈춘 듯했고, 세상에는 오직 두 사람만이 존재하는 듯했다.
준호의 얼굴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성민에게로 다가왔다. 성민은 그의 움직임을 빤히 바라보면서도 몸을 피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마치 강력한 자력에 이끌리듯, 그의 눈빛과 숨결에 속수무책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두 사람의 입술이 닿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거리. 짙은 알코올 향과 함께 그의 숨결이 성민의 입술 위를 간질였다.
‘안 돼…’
성민의 이성이 마지막 경고 신호를 보냈지만, 이미 그의 몸과 마음은 준호에게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다. 겹쳐지는 공간, 닿는 시선, 그리고 마침내 포개어질 듯한 입술. 흔들리는 마음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경계선을 넘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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