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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4 추천 : 0 글자수 : 5,937 자 2025-05-25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술집의 소란스러움과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는 저 멀리 아득하게 물러나고, 차갑게 식은 밤공기와 희미한 달빛만이 두 사람을 감싸고 있었다. 자취방 현관문 앞, 성민은 바로 눈앞까지 다가온 준호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니, 뗄 수가 없었다. 그의 깊고 검은 눈동자는 밤하늘의 별빛을 모두 담은 듯 반짝였고, 술기운 때문인지 평소보다 더 뜨겁고 강렬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시선에 붙잡힌 성민은 마치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몸이 굳어버렸다.
"오늘… 와줘서 진짜 고맙다."
준호의 낮은 목소리가 밤의 정적을 가르며 성민의 귓가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의 손이 천천히 올라와, 성민의 뺨을 아주 부드럽게, 마치 깨지기 쉬운 유리 세공품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그 예상치 못했던, 너무나도 다정하고 섬세한 손길에 성민은 숨을 헙, 하고 들이켰다. 준호의 손가락 끝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가 마치 강력한 전류처럼 성민의 온몸으로 짜릿하게 퍼져나갔다. 시간은 영원처럼 느리게 흘렀고, 세상에는 오직 심장이 터질 듯 뛰는 소리와 서로의 가쁜 숨소리만이 존재하는 듯했다.
준호의 얼굴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성민에게로 더 가까이 다가왔다. 짙은 알코올 향과 그의 고유한 체취가 뒤섞인 숨결이 성민의 입술 위를 아슬아슬하게 간질였다. 성민은 그의 움직임을 홀린 듯이 빤히 바라보면서도 몸을 피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서는 ‘안 돼, 이건 아니야’라고 외치는 이성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울렸지만, 이미 그의 몸과 마음은 준호라는 거대한 자력에 속수무책으로 이끌리고 있었다.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어쩌면 피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두 사람의 입술이 닿기 직전의, 숨 막히는 찰나의 정적. 그리고 마침내, 아주 부드럽게, 그러나 망설임 없이 준호의 입술이 성민의 입술 위에 포개어졌다.
첫 키스였다. 성민의 인생에서 누군가와 나누는 첫 번째 입맞춤은 아니었지만, 남자와의 키스는 처음이었다. 낯설고, 어색하고, 동시에 거부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감각이 그의 온몸을 휩쌌다. 그의 입술은 생각보다 부드럽고 따뜻했고, 그의 숨결에서는 쌉싸름한 맥주 향과 달콤한 과일 향 같은 것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성민은 눈을 질끈 감은 채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성민의 아랫입술을 머금던 준호는, 그가 거부하지 않고 가만히 받아들이는 것을 느끼자 조금 더 대담해졌다. 그의 혀가 조심스럽게 성민의 입술 사이를 파고들었고, 성민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살짝 벌렸다. 낯선 감각에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온몸의 피가 뜨겁게 끓어오르며 아찔한 현기증마저 느껴졌다. 성민의 굳어 있던 몸에서 서서히 힘이 빠져나갔고, 자신도 모르게 준호의 옷깃을 약하게 움켜쥐었다.
키스는 점점 더 깊어졌다. 준호의 한 손은 여전히 성민의 뺨을 감싸고 있었고, 다른 한 손은 그의 허리를 단단히 감아 자신 쪽으로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성민은 그의 품 안에 완전히 안겨, 그의 리드에 몸을 맡겼다. 이제 더 이상 ‘이러면 안 된다’는 이성적인 생각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오직 서로의 입술과 숨결, 그리고 심장의 고동만이 존재하는 듯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두 사람은 입술을 뗀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성민의 얼굴은 달빛 아래에서도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눈동자는 짙은 감정과 혼란으로 젖어 흔들리고 있었다. 준호 역시 숨을 고르며 성민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만족감과 함께, 무언가 더 깊은 갈망과 애틋함이 뒤섞여 있었다.
"…들어가자."
준호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성민의 손목을 부드럽게 잡고 현관문을 열었다. 성민은 아무런 저항 없이 그의 손에 이끌려 어두운 방 안으로 들어섰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방 안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이제 그 어둠은 더 이상 어색하거나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뜨거운 긴장감을 감싸 안는 은밀한 장막처럼 느껴졌다. 준호는 성민의 손목을 놓지 않은 채 그를 벽 쪽으로 부드럽게 밀어붙였다. 성민의 등이 차가운 벽에 닿는 순간, 준호는 다시 한번 그의 입술을 찾아 격렬하게 키스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처음보다 훨씬 더 거칠고 깊었다. 마치 오랫동안 참아왔던 감정을 한꺼번에 터뜨리려는 듯이.
성민은 그의 키스에 정신없이 응하면서도, 끊임없이 밀려오는 혼란스러운 감정들과 싸워야 했다. ‘이건 잘못된 거야. 나는 남자를 좋아하지 않아. 이건 그냥 술기운 때문이야. 분위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의 몸은 이성의 통제를 벗어나 솔직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준호의 입술이 주는 쾌감, 그의 단단한 몸이 느껴지는 감촉, 그에게서 풍겨오는 매혹적인 향기. 그 모든 것들이 성민의 남은 저항 의지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아니, 어쩌면 그는 처음부터 저항할 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줄곧 이 순간을 갈망하고 있었는지도.
준호의 뜨거운 손이 성민의 셔츠 안으로 파고들어 맨살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성민의 몸은 예민하게 떨렸고, 입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가느다란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준호는 성민의 반응에 더욱 흥분한 듯, 그의 목덜미와 쇄골에 뜨거운 입맞춤을 퍼부었다. 성민은 그의 머리카락을 움켜쥐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온몸의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져, 마치 작은 불꽃들이 온몸을 타고 흐르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어느새 두 사람은 서로의 옷을 서툴게 벗겨내고 있었다. 셔츠 단추가 떨어져 나가고, 바지 버클이 풀리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야릇하게 울렸다. 마침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서로의 맨몸이 마주 닿는 순간, 성민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 남자와 이렇게 가까이, 완전히 밀착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준호의 단단한 근육과 뜨거운 체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부끄러움과 동시에 강렬한 흥분이 온몸을 휩쌌다.
"형…"
성민이 불안함과 갈망이 뒤섞인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준호는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성민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달빛에 비친 그의 눈동자는 젖어 있었고, 그 안에는 성민을 향한 분명한 애정과 소유욕, 그리고 약간의 미안함 같은 복잡한 감정들이 담겨 있었다.
"…괜찮아, 성민아. 나 믿지?"
준호는 속삭이듯 말하며 성민의 젖은 눈가를 부드럽게 닦아주었다. 그의 다정한 목소리와 손길에 성민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순간, 그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준호뿐이었다. 이 낯설고 두려운 감정의 폭풍 속에서, 그의 존재는 유일한 등대처럼 느껴졌다.
준호는 성민을 안아 올려 침대 위로 조심스럽게 눕혔다. 낡은 침대 매트리스가 그들의 무게에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준호는 성민의 몸 위에 올라타, 그의 이마부터 입술, 턱선, 목덜미, 그리고 쇄골까지 천천히 입을 맞추며 내려갔다. 그의 입술이 닿는 곳마다 성민은 짜릿한 전율과 함께 뜨거운 열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오직 준호가 주는 감각에 온전히 집중할 뿐이었다.
성민의 몸은 그가 이전에 경험했던 어떤 것과도 다른, 낯설지만 강렬한 쾌락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비틀거나 가쁜 숨을 내쉬었고, 준호의 등을 세게 껴안았다. 준호는 그런 성민의 반응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더욱 섬세하고 농밀하게 그의 몸을 탐색했다. 그는 성민이 처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아프지 않게, 그리고 최대한 기분 좋게 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듯했다. 그의 배려 깊은 손길과 인내심 있는 리드 속에서, 성민의 두려움은 점차 희미해지고 그 자리를 뜨거운 욕망과 쾌감이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준호가 성민의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성민은 짧은 비명과 함께 그의 등을 강하게 할퀴었다. 처음 느껴보는 이물감과 약간의 통증. 하지만 그것은 곧이어 밀려오는, 온몸의 세포를 뒤흔드는 듯한 강렬한 쾌감에 묻혀버렸다. 준호는 성민의 상태를 살피며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가, 그가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자 천천히, 그리고 깊숙하게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좁은 방 안은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와 살갗이 부딪히는 마찰음, 그리고 삐걱거리는 침대 소리로 가득 찼다. 성민은 준호의 움직임에 맞춰 정신없이 흔들리면서,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쾌락의 절정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 있었고, 오직 준호의 존재만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다. 준호 역시 성민의 안에서 느껴지는 뜨거움과 조임에 이성을 잃은 듯, 더욱 격렬하게 그를 탐했다. 그의 눈빛은 열정으로 이글거렸고, 성민의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육체적인 행위가 아니었다. 그동안 서로에게 숨겨왔던 감정들,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끌림과 갈망, 그리고 서로에 대한 소유욕과 애정이 뒤섞여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격정적이면서도 어딘가 서툴고, 뜨거우면서도 애틋한 분위기 속에서 그들은 서로의 몸과 마음을 남김없이 나누었다. 성민은 준호를 통해 생전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강렬한 쾌락과 함께, 이상하게도 깊은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꼈다. 그리고 준호는 성민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품에 안으며, 그를 향한 자신의 감정이 단순한 호기심이나 동정심이 아닌, 훨씬 더 깊고 진실된 것임을 깨닫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격렬했던 파도가 잠잠해지고, 두 사람은 온몸에 힘이 빠진 채 서로를 끌어안고 숨을 골랐다.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과 함께 끈적한 열기의 여운, 그리고 서로의 가쁜 숨소리만이 감돌았다. 땀으로 젖은 서로의 몸이 닿아 있는 감촉이 유난히 생생하게 느껴졌다.
성민은 준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온몸은 노곤하게 풀렸지만,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복잡했다. 방금 전까지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이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극도의 혼란스러움과 함께,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자각이 밀려왔다. 후회해야 할까? 아니면… 이 낯선 만족감을 받아들여야 할까? 그는 답을 알 수 없었다. 다만, 지금 이 순간 준호의 품 안에서 느껴지는 안정감과 따뜻함만큼은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준호는 말없이 성민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그의 손길에는 미안함과 안쓰러움, 그리고 성민을 향한 깊은 애정이 담겨 있는 듯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혹시 자신처럼 혼란스러워하고 있을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걸까? 성민은 궁금했지만 차마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이 고요 속의 불안한 여운에 잠시 머물고 싶었다.
창밖으로 새벽의 푸른빛이 희미하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성민은 지친 몸을 이기지 못하고 준호의 품에 안긴 채 스르르 잠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잠은 편안하지 않았다. 꿈속에서 그는 계속해서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었고, 불안감에 뒤척이며 식은땀을 흘렸다.
준호는 잠든 성민의 얼굴을 어둠 속에서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쌕쌕거리는 고른 숨소리와 달리, 그의 미간은 희미하게 찌푸려져 있었고, 굳게 다문 입술은 무언가를 힘겹게 참아내고 있는 듯했다. 준호는 복잡하고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의 젖은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겨주었다. 자신의 충동적인 행동이 이 순수하고 여린 영혼에게 얼마나 큰 혼란과 상처를 안겨주었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았다. 그를 향한 자신의 감정은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을 만큼 커져 버렸고, 오늘 밤의 일은 어쩌면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날이 밝으면, 성민은 어떤 모습으로 자신을 대하게 될까. 이 하룻밤의 뜨거운 사건이 앞으로 두 사람의 위태로운 관계에 어떤 거센 폭풍우를 몰고 오게 될까. 준호는 잠든 성민을 더욱 힘주어 끌어안으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밤새 타올랐던 뜨거운 온도는 새벽의 냉기와 함께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마음속에 남겨진 감정의 불씨는 이제 막, 더욱 격렬하게 타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불안하고 위태로운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오늘… 와줘서 진짜 고맙다."
준호의 낮은 목소리가 밤의 정적을 가르며 성민의 귓가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의 손이 천천히 올라와, 성민의 뺨을 아주 부드럽게, 마치 깨지기 쉬운 유리 세공품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그 예상치 못했던, 너무나도 다정하고 섬세한 손길에 성민은 숨을 헙, 하고 들이켰다. 준호의 손가락 끝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가 마치 강력한 전류처럼 성민의 온몸으로 짜릿하게 퍼져나갔다. 시간은 영원처럼 느리게 흘렀고, 세상에는 오직 심장이 터질 듯 뛰는 소리와 서로의 가쁜 숨소리만이 존재하는 듯했다.
준호의 얼굴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성민에게로 더 가까이 다가왔다. 짙은 알코올 향과 그의 고유한 체취가 뒤섞인 숨결이 성민의 입술 위를 아슬아슬하게 간질였다. 성민은 그의 움직임을 홀린 듯이 빤히 바라보면서도 몸을 피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서는 ‘안 돼, 이건 아니야’라고 외치는 이성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울렸지만, 이미 그의 몸과 마음은 준호라는 거대한 자력에 속수무책으로 이끌리고 있었다.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어쩌면 피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두 사람의 입술이 닿기 직전의, 숨 막히는 찰나의 정적. 그리고 마침내, 아주 부드럽게, 그러나 망설임 없이 준호의 입술이 성민의 입술 위에 포개어졌다.
첫 키스였다. 성민의 인생에서 누군가와 나누는 첫 번째 입맞춤은 아니었지만, 남자와의 키스는 처음이었다. 낯설고, 어색하고, 동시에 거부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감각이 그의 온몸을 휩쌌다. 그의 입술은 생각보다 부드럽고 따뜻했고, 그의 숨결에서는 쌉싸름한 맥주 향과 달콤한 과일 향 같은 것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성민은 눈을 질끈 감은 채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성민의 아랫입술을 머금던 준호는, 그가 거부하지 않고 가만히 받아들이는 것을 느끼자 조금 더 대담해졌다. 그의 혀가 조심스럽게 성민의 입술 사이를 파고들었고, 성민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살짝 벌렸다. 낯선 감각에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온몸의 피가 뜨겁게 끓어오르며 아찔한 현기증마저 느껴졌다. 성민의 굳어 있던 몸에서 서서히 힘이 빠져나갔고, 자신도 모르게 준호의 옷깃을 약하게 움켜쥐었다.
키스는 점점 더 깊어졌다. 준호의 한 손은 여전히 성민의 뺨을 감싸고 있었고, 다른 한 손은 그의 허리를 단단히 감아 자신 쪽으로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성민은 그의 품 안에 완전히 안겨, 그의 리드에 몸을 맡겼다. 이제 더 이상 ‘이러면 안 된다’는 이성적인 생각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오직 서로의 입술과 숨결, 그리고 심장의 고동만이 존재하는 듯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두 사람은 입술을 뗀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성민의 얼굴은 달빛 아래에서도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눈동자는 짙은 감정과 혼란으로 젖어 흔들리고 있었다. 준호 역시 숨을 고르며 성민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만족감과 함께, 무언가 더 깊은 갈망과 애틋함이 뒤섞여 있었다.
"…들어가자."
준호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성민의 손목을 부드럽게 잡고 현관문을 열었다. 성민은 아무런 저항 없이 그의 손에 이끌려 어두운 방 안으로 들어섰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방 안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이제 그 어둠은 더 이상 어색하거나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뜨거운 긴장감을 감싸 안는 은밀한 장막처럼 느껴졌다. 준호는 성민의 손목을 놓지 않은 채 그를 벽 쪽으로 부드럽게 밀어붙였다. 성민의 등이 차가운 벽에 닿는 순간, 준호는 다시 한번 그의 입술을 찾아 격렬하게 키스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처음보다 훨씬 더 거칠고 깊었다. 마치 오랫동안 참아왔던 감정을 한꺼번에 터뜨리려는 듯이.
성민은 그의 키스에 정신없이 응하면서도, 끊임없이 밀려오는 혼란스러운 감정들과 싸워야 했다. ‘이건 잘못된 거야. 나는 남자를 좋아하지 않아. 이건 그냥 술기운 때문이야. 분위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의 몸은 이성의 통제를 벗어나 솔직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준호의 입술이 주는 쾌감, 그의 단단한 몸이 느껴지는 감촉, 그에게서 풍겨오는 매혹적인 향기. 그 모든 것들이 성민의 남은 저항 의지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아니, 어쩌면 그는 처음부터 저항할 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줄곧 이 순간을 갈망하고 있었는지도.
준호의 뜨거운 손이 성민의 셔츠 안으로 파고들어 맨살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성민의 몸은 예민하게 떨렸고, 입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가느다란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준호는 성민의 반응에 더욱 흥분한 듯, 그의 목덜미와 쇄골에 뜨거운 입맞춤을 퍼부었다. 성민은 그의 머리카락을 움켜쥐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온몸의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져, 마치 작은 불꽃들이 온몸을 타고 흐르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어느새 두 사람은 서로의 옷을 서툴게 벗겨내고 있었다. 셔츠 단추가 떨어져 나가고, 바지 버클이 풀리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야릇하게 울렸다. 마침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서로의 맨몸이 마주 닿는 순간, 성민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 남자와 이렇게 가까이, 완전히 밀착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준호의 단단한 근육과 뜨거운 체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부끄러움과 동시에 강렬한 흥분이 온몸을 휩쌌다.
"형…"
성민이 불안함과 갈망이 뒤섞인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준호는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성민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달빛에 비친 그의 눈동자는 젖어 있었고, 그 안에는 성민을 향한 분명한 애정과 소유욕, 그리고 약간의 미안함 같은 복잡한 감정들이 담겨 있었다.
"…괜찮아, 성민아. 나 믿지?"
준호는 속삭이듯 말하며 성민의 젖은 눈가를 부드럽게 닦아주었다. 그의 다정한 목소리와 손길에 성민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순간, 그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준호뿐이었다. 이 낯설고 두려운 감정의 폭풍 속에서, 그의 존재는 유일한 등대처럼 느껴졌다.
준호는 성민을 안아 올려 침대 위로 조심스럽게 눕혔다. 낡은 침대 매트리스가 그들의 무게에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준호는 성민의 몸 위에 올라타, 그의 이마부터 입술, 턱선, 목덜미, 그리고 쇄골까지 천천히 입을 맞추며 내려갔다. 그의 입술이 닿는 곳마다 성민은 짜릿한 전율과 함께 뜨거운 열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오직 준호가 주는 감각에 온전히 집중할 뿐이었다.
성민의 몸은 그가 이전에 경험했던 어떤 것과도 다른, 낯설지만 강렬한 쾌락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비틀거나 가쁜 숨을 내쉬었고, 준호의 등을 세게 껴안았다. 준호는 그런 성민의 반응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더욱 섬세하고 농밀하게 그의 몸을 탐색했다. 그는 성민이 처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아프지 않게, 그리고 최대한 기분 좋게 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듯했다. 그의 배려 깊은 손길과 인내심 있는 리드 속에서, 성민의 두려움은 점차 희미해지고 그 자리를 뜨거운 욕망과 쾌감이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준호가 성민의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성민은 짧은 비명과 함께 그의 등을 강하게 할퀴었다. 처음 느껴보는 이물감과 약간의 통증. 하지만 그것은 곧이어 밀려오는, 온몸의 세포를 뒤흔드는 듯한 강렬한 쾌감에 묻혀버렸다. 준호는 성민의 상태를 살피며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가, 그가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자 천천히, 그리고 깊숙하게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좁은 방 안은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와 살갗이 부딪히는 마찰음, 그리고 삐걱거리는 침대 소리로 가득 찼다. 성민은 준호의 움직임에 맞춰 정신없이 흔들리면서,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쾌락의 절정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 있었고, 오직 준호의 존재만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다. 준호 역시 성민의 안에서 느껴지는 뜨거움과 조임에 이성을 잃은 듯, 더욱 격렬하게 그를 탐했다. 그의 눈빛은 열정으로 이글거렸고, 성민의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육체적인 행위가 아니었다. 그동안 서로에게 숨겨왔던 감정들,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끌림과 갈망, 그리고 서로에 대한 소유욕과 애정이 뒤섞여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격정적이면서도 어딘가 서툴고, 뜨거우면서도 애틋한 분위기 속에서 그들은 서로의 몸과 마음을 남김없이 나누었다. 성민은 준호를 통해 생전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강렬한 쾌락과 함께, 이상하게도 깊은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꼈다. 그리고 준호는 성민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품에 안으며, 그를 향한 자신의 감정이 단순한 호기심이나 동정심이 아닌, 훨씬 더 깊고 진실된 것임을 깨닫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격렬했던 파도가 잠잠해지고, 두 사람은 온몸에 힘이 빠진 채 서로를 끌어안고 숨을 골랐다.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과 함께 끈적한 열기의 여운, 그리고 서로의 가쁜 숨소리만이 감돌았다. 땀으로 젖은 서로의 몸이 닿아 있는 감촉이 유난히 생생하게 느껴졌다.
성민은 준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온몸은 노곤하게 풀렸지만,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복잡했다. 방금 전까지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이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극도의 혼란스러움과 함께,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자각이 밀려왔다. 후회해야 할까? 아니면… 이 낯선 만족감을 받아들여야 할까? 그는 답을 알 수 없었다. 다만, 지금 이 순간 준호의 품 안에서 느껴지는 안정감과 따뜻함만큼은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준호는 말없이 성민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그의 손길에는 미안함과 안쓰러움, 그리고 성민을 향한 깊은 애정이 담겨 있는 듯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혹시 자신처럼 혼란스러워하고 있을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걸까? 성민은 궁금했지만 차마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이 고요 속의 불안한 여운에 잠시 머물고 싶었다.
창밖으로 새벽의 푸른빛이 희미하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성민은 지친 몸을 이기지 못하고 준호의 품에 안긴 채 스르르 잠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잠은 편안하지 않았다. 꿈속에서 그는 계속해서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었고, 불안감에 뒤척이며 식은땀을 흘렸다.
준호는 잠든 성민의 얼굴을 어둠 속에서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쌕쌕거리는 고른 숨소리와 달리, 그의 미간은 희미하게 찌푸려져 있었고, 굳게 다문 입술은 무언가를 힘겹게 참아내고 있는 듯했다. 준호는 복잡하고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의 젖은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겨주었다. 자신의 충동적인 행동이 이 순수하고 여린 영혼에게 얼마나 큰 혼란과 상처를 안겨주었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았다. 그를 향한 자신의 감정은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을 만큼 커져 버렸고, 오늘 밤의 일은 어쩌면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날이 밝으면, 성민은 어떤 모습으로 자신을 대하게 될까. 이 하룻밤의 뜨거운 사건이 앞으로 두 사람의 위태로운 관계에 어떤 거센 폭풍우를 몰고 오게 될까. 준호는 잠든 성민을 더욱 힘주어 끌어안으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밤새 타올랐던 뜨거운 온도는 새벽의 냉기와 함께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마음속에 남겨진 감정의 불씨는 이제 막, 더욱 격렬하게 타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불안하고 위태로운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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