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조회 : 92 추천 : 0 글자수 : 4,046 자 2025-06-04
도시의 숨결은 탁하고 무거웠다. 회색 빌딩 숲 사이로 해 질 녘의 희미한 빛줄기가 위태롭게 스며들고 있었지만, 그것은 온기를 전하기보다 오히려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들의 윤곽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 뿐이었다. 성민은 낡은 필름 카메라를 어깨에 멘 채, 목적지 없이 잿빛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온통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무채색이었다. 며칠 밤낮을 매달렸던 잡지사 화보 촬영은 클라이언트의 변덕으로 허무하게 엎어졌고, 통장 잔고는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였다. 스물아홉, 사진작가로서의 삶은 재능이라는 허울 좋은 포장지 아래 불안정한 현실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무엇을 찍어야 할지, 아니 무엇을 찍을 수 있을지조차 감을 잡지 못한 채, 그의 발걸음은 익숙한 듯 낯선 뒷골목으로 향했다. 허름한 가게들과 굳게 닫힌 철문들이 늘어선 거리. 벽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스프레이 낙서들이 어지럽게 그려져 있었고, 구석에는 쓰레기 더미가 을씨년스러운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성민은 이런 풍경 속에서 오히려 기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화려하고 번쩍이는 세상보다, 이렇게 빛바랜 도시의 그림자 속이 더 자신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얼마나 걸었을까. 그의 시선이 골목길 한구석, 낡고 작은 간판 하나에 머물렀다. <블루 문 (Blue Moon)>. 파란색 네온 불빛 중 몇 개는 이미 수명을 다한 듯 깜빡거리고 있었고, 간판 자체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재즈 바. 이런 뒷골목에 재즈 바라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는 생각과 함께, 왠지 모를 호기심이 그의 발길을 이끌었다. 굳게 닫힌 듯 보이는 낡은 나무 문을 밀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안쪽의 풍경이 드러났다.
바깥의 어둠과는 다른, 짙고 푸른빛이 감도는 어둠. 그리고 그 어둠을 가르며 나른하고 관능적으로 흘러나오는 트럼펫 소리. 성민은 순간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들어선 듯한 착각에 빠졌다. 공기 중에는 희미한 담배 연기 냄새와 오래된 나무 냄새, 그리고 독한 위스키 향이 뒤섞여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바 안에는 서너 명의 손님들이 전부였고, 그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바 테이블에 앉아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거나, 혹은 무대 위에서 흐르는 재즈 선율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성민은 잠시 문 앞에 서서 낯선 공간을 둘러보았다. 벽에는 빛바랜 흑백 재즈 뮤지션들의 사진들이 걸려 있었고, 천장에서는 낡은 팬이 느릿느릿 돌아가고 있었다. 시간마저 멈춘 듯한, 혹은 세상과 단절된 듯한 고독하고도 매혹적인 공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안으로 발걸음을 옮겨 바 테이블 가장 구석진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앉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바 테이블 안쪽으로 향했을 때, 성민은 숨을 멈췄다.
그곳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바텐더인 듯, 그는 하얀 셔츠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붙인 채 얼음이 담긴 잔에 투명한 액체를 따르고 있었다. 그의 움직임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우아했다. 바 안의 희미하고 푸른 조명이 그의 날렵한 옆얼굴과 짙은 머리카락, 그리고 긴 목선을 따라 흐르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는 주변의 소음이나 시선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오직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그 고요하고 집중된 모습이 오히려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었다.
성민은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는 아름다웠다. 단순히 잘생겼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어딘가 위태로우면서도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깊고 검은 눈동자는 언뜻 차갑고 무심해 보였지만, 그 안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이나 고독 같은 것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는 듯했다. 굳게 다문 입술은 단호해 보이면서도, 동시에 누군가의 입맞춤을 기다리는 듯 미묘한 관능미를 풍기고 있었다.
성민의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였다. 어깨에 멘 카메라를 들어 올리려는 본능적인 충동. 사진작가로서의 직감이 발동한 것이었다. 저 사람을 찍어야 한다. 저 순간을, 저 분위기를, 저 눈빛을 담아야 한다. 하지만 그는 차마 셔터를 누르지 못했다. 이 고요하고 비밀스러운 공간의 분위기를 깨뜨리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성민이 망설이는 사이, 바텐더는 만들던 칵테일을 손님에게 건네주고는 잠시 고개를 돌려 바 안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성민과 정확히 마주쳤다. 성민은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의 눈빛은 예상보다 훨씬 더 깊고 강렬했다.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그러면서도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는 듯한 불가사의한 눈빛. 성민은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마른 입술을 축였다.
“뭘 드릴까요?”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려왔다. 어느새 바텐더가 성민의 자리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그는 더욱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깨끗한 피부, 날렵한 턱선, 그리고 셔츠 단추를 두어 개 풀어헤친 사이로 살짝 보이는 매끈한 쇄골까지. 성민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메뉴판을 보는 척했다.
“저… 그냥… 위스키… 스트레이트로 한 잔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바텐더는 짧게 대답하고는 다시 뒤돌아서서 술병이 진열된 선반으로 향했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성민은 다시 한번 카메라를 들어 올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의 등은 넓고 단단해 보였지만, 어딘가 모르게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어떤 사연을 가진 사람일까. 왜 이런 뒷골목 재즈 바에서 바텐더를 하고 있는 걸까. 수많은 질문들이 성민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바텐더가 위스키 잔을 들고 다시 성민 앞으로 돌아왔다. 투명한 얼음이 담긴 잔에 호박색 액체가 찰랑거렸다. 그는 잔을 성민 앞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성민은 잔을 들어 가볍게 목을 축였다. 독한 알코올 기운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동시에, 그의 시선은 다시 바텐더에게 향했다. 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다른 손님의 주문을 받고 있었다.
그때였다. 마침 그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는 순간,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그의 옆얼굴을 부드럽게 비추었다.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혹은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듯한 그의 눈빛. 성민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거의 반사적으로 카메라를 들어 올려 셔터를 눌렀다.
‘찰칵-’
작지만 선명한 셔터 소리가 조용한 바 안의 공기를 갈랐다. 바텐더의 고개가 빠르게 성민 쪽으로 돌아왔다. 그의 눈에는 당혹감과 함께, 아주 미미하지만 분명한 경계심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시선은 성민에게 ‘왜 그랬냐’고 묻고 있는 듯했다. 성민은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변명할 말을 찾으려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그저 굳은 얼굴로 바텐더의 강렬한 시선을 마주 볼 뿐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주변의 재즈 음악 소리도, 다른 손님들의 낮은 대화 소리도 아득하게 멀어지는 듯했다. 오직 서로를 향한 시선만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바텐더의 눈빛 속에서 성민은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감정을 읽었다. 그것은 단순한 불쾌감이나 호기심이 아니었다. 마치 오랫동안 굳게 닫아두었던 자신의 내면을 들켜버린 사람처럼, 불안하고 위태롭게 흔들리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 짧은 순간의 시선 교환 속에서, 성민은 확신했다. 이 남자에게는 분명 무언가 특별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고. 그리고 자신은 그 이야기의 첫 페이지를 막 넘긴 것일지도 모른다고.
바텐더는 이내 먼저 시선을 거두고 다시 자신의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민은 알 수 있었다. 그 역시 성민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잿빛 도시의 그림자 속, 시간마저 멈춘 듯한 재즈 바 <블루 문>에서, 서로의 고독을 알아본 두 남자는 그렇게 운명처럼 마주쳤다. 아직은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지만, 이미 서로의 삶에 지울 수 없는 강렬한 첫인상을 남긴 채. 성민은 남은 위스키를 단숨에 들이켜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를 나서며, 그는 마지막으로 바 안쪽에 서 있는 그를 돌아보았다. 그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같은 표정으로, 하지만 어딘가 달라진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성민은 카메라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는 다시 이곳에 오게 될 것이라는 강한 예감을 느꼈다. 그의 렌즈는 이미, 그림자 속에 숨겨진 그 남자를 향하고 있었다.
무엇을 찍어야 할지, 아니 무엇을 찍을 수 있을지조차 감을 잡지 못한 채, 그의 발걸음은 익숙한 듯 낯선 뒷골목으로 향했다. 허름한 가게들과 굳게 닫힌 철문들이 늘어선 거리. 벽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스프레이 낙서들이 어지럽게 그려져 있었고, 구석에는 쓰레기 더미가 을씨년스러운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성민은 이런 풍경 속에서 오히려 기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화려하고 번쩍이는 세상보다, 이렇게 빛바랜 도시의 그림자 속이 더 자신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얼마나 걸었을까. 그의 시선이 골목길 한구석, 낡고 작은 간판 하나에 머물렀다. <블루 문 (Blue Moon)>. 파란색 네온 불빛 중 몇 개는 이미 수명을 다한 듯 깜빡거리고 있었고, 간판 자체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재즈 바. 이런 뒷골목에 재즈 바라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는 생각과 함께, 왠지 모를 호기심이 그의 발길을 이끌었다. 굳게 닫힌 듯 보이는 낡은 나무 문을 밀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안쪽의 풍경이 드러났다.
바깥의 어둠과는 다른, 짙고 푸른빛이 감도는 어둠. 그리고 그 어둠을 가르며 나른하고 관능적으로 흘러나오는 트럼펫 소리. 성민은 순간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들어선 듯한 착각에 빠졌다. 공기 중에는 희미한 담배 연기 냄새와 오래된 나무 냄새, 그리고 독한 위스키 향이 뒤섞여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바 안에는 서너 명의 손님들이 전부였고, 그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바 테이블에 앉아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거나, 혹은 무대 위에서 흐르는 재즈 선율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성민은 잠시 문 앞에 서서 낯선 공간을 둘러보았다. 벽에는 빛바랜 흑백 재즈 뮤지션들의 사진들이 걸려 있었고, 천장에서는 낡은 팬이 느릿느릿 돌아가고 있었다. 시간마저 멈춘 듯한, 혹은 세상과 단절된 듯한 고독하고도 매혹적인 공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안으로 발걸음을 옮겨 바 테이블 가장 구석진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앉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바 테이블 안쪽으로 향했을 때, 성민은 숨을 멈췄다.
그곳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바텐더인 듯, 그는 하얀 셔츠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붙인 채 얼음이 담긴 잔에 투명한 액체를 따르고 있었다. 그의 움직임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우아했다. 바 안의 희미하고 푸른 조명이 그의 날렵한 옆얼굴과 짙은 머리카락, 그리고 긴 목선을 따라 흐르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는 주변의 소음이나 시선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오직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그 고요하고 집중된 모습이 오히려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었다.
성민은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는 아름다웠다. 단순히 잘생겼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어딘가 위태로우면서도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깊고 검은 눈동자는 언뜻 차갑고 무심해 보였지만, 그 안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이나 고독 같은 것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는 듯했다. 굳게 다문 입술은 단호해 보이면서도, 동시에 누군가의 입맞춤을 기다리는 듯 미묘한 관능미를 풍기고 있었다.
성민의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였다. 어깨에 멘 카메라를 들어 올리려는 본능적인 충동. 사진작가로서의 직감이 발동한 것이었다. 저 사람을 찍어야 한다. 저 순간을, 저 분위기를, 저 눈빛을 담아야 한다. 하지만 그는 차마 셔터를 누르지 못했다. 이 고요하고 비밀스러운 공간의 분위기를 깨뜨리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성민이 망설이는 사이, 바텐더는 만들던 칵테일을 손님에게 건네주고는 잠시 고개를 돌려 바 안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성민과 정확히 마주쳤다. 성민은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의 눈빛은 예상보다 훨씬 더 깊고 강렬했다.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그러면서도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는 듯한 불가사의한 눈빛. 성민은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마른 입술을 축였다.
“뭘 드릴까요?”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려왔다. 어느새 바텐더가 성민의 자리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그는 더욱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깨끗한 피부, 날렵한 턱선, 그리고 셔츠 단추를 두어 개 풀어헤친 사이로 살짝 보이는 매끈한 쇄골까지. 성민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메뉴판을 보는 척했다.
“저… 그냥… 위스키… 스트레이트로 한 잔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바텐더는 짧게 대답하고는 다시 뒤돌아서서 술병이 진열된 선반으로 향했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성민은 다시 한번 카메라를 들어 올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의 등은 넓고 단단해 보였지만, 어딘가 모르게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어떤 사연을 가진 사람일까. 왜 이런 뒷골목 재즈 바에서 바텐더를 하고 있는 걸까. 수많은 질문들이 성민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바텐더가 위스키 잔을 들고 다시 성민 앞으로 돌아왔다. 투명한 얼음이 담긴 잔에 호박색 액체가 찰랑거렸다. 그는 잔을 성민 앞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성민은 잔을 들어 가볍게 목을 축였다. 독한 알코올 기운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동시에, 그의 시선은 다시 바텐더에게 향했다. 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다른 손님의 주문을 받고 있었다.
그때였다. 마침 그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는 순간,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그의 옆얼굴을 부드럽게 비추었다.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혹은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듯한 그의 눈빛. 성민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거의 반사적으로 카메라를 들어 올려 셔터를 눌렀다.
‘찰칵-’
작지만 선명한 셔터 소리가 조용한 바 안의 공기를 갈랐다. 바텐더의 고개가 빠르게 성민 쪽으로 돌아왔다. 그의 눈에는 당혹감과 함께, 아주 미미하지만 분명한 경계심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시선은 성민에게 ‘왜 그랬냐’고 묻고 있는 듯했다. 성민은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변명할 말을 찾으려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그저 굳은 얼굴로 바텐더의 강렬한 시선을 마주 볼 뿐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주변의 재즈 음악 소리도, 다른 손님들의 낮은 대화 소리도 아득하게 멀어지는 듯했다. 오직 서로를 향한 시선만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바텐더의 눈빛 속에서 성민은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감정을 읽었다. 그것은 단순한 불쾌감이나 호기심이 아니었다. 마치 오랫동안 굳게 닫아두었던 자신의 내면을 들켜버린 사람처럼, 불안하고 위태롭게 흔들리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 짧은 순간의 시선 교환 속에서, 성민은 확신했다. 이 남자에게는 분명 무언가 특별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고. 그리고 자신은 그 이야기의 첫 페이지를 막 넘긴 것일지도 모른다고.
바텐더는 이내 먼저 시선을 거두고 다시 자신의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민은 알 수 있었다. 그 역시 성민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잿빛 도시의 그림자 속, 시간마저 멈춘 듯한 재즈 바 <블루 문>에서, 서로의 고독을 알아본 두 남자는 그렇게 운명처럼 마주쳤다. 아직은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지만, 이미 서로의 삶에 지울 수 없는 강렬한 첫인상을 남긴 채. 성민은 남은 위스키를 단숨에 들이켜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를 나서며, 그는 마지막으로 바 안쪽에 서 있는 그를 돌아보았다. 그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같은 표정으로, 하지만 어딘가 달라진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성민은 카메라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는 다시 이곳에 오게 될 것이라는 강한 예감을 느꼈다. 그의 렌즈는 이미, 그림자 속에 숨겨진 그 남자를 향하고 있었다.
작가의 말
등록된 작가의 말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