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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53 추천 : 0 글자수 : 6,999 자 2025-06-25
"그 사람한테 손대지 마!"
성민의 목소리는 공포로 가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 안에는 쇳소리 같은 단호함이 섞여 있었다. 작업실 안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은 마치 정지된 필름처럼,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긴장감의 현을 잠시 끊어 놓았다. 그의 손에는 작업실 구석에 세워져 있던, 제법 묵직해 보이는 카메라 삼각대가 위태롭게 들려 있었다. 방금 전까지 창고 문틈으로 엿보며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던 겁먹은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용기를 짜낸 사자의 눈빛이었다.
험악한 인상의 남자들은 잠시 예상치 못한 변수에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그의 초라한 무기(?)와 하얗게 질린 얼굴을 보고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 이게 누구야? 아까 우리가 얘기했던 그 순진한 사진작가 양반 아니신가. 숨어있으랬더니 기어 나오셨네. 용기가 아주 가상해. 삼각대로 뭘 어쩌시려고?" 덩치 큰 남자가 성민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노골적인 조롱과 경멸을 담아 말했다. 그의 눈빛은 성민을 벌레 보듯 하고 있었다.
"형! 뭐 하는 거예요! 제발… 어서 다시 들어가요, 빨리!" 준호가 거의 절규하듯 소리쳤다. 그의 얼굴은 공포와 절망으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성민이 나서는 순간,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최악으로 치달을 것이 뻔했다. 저들은 인정사정없는 인간들이었다. 성민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그는 어떻게든 성민만은 이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었다. 자신의 과거 때문에, 이 순수하고 착한 사람이 다치는 것을 볼 수는 없었다.
"싫어! 너 혼자 저런 놈들 상대하게 두고 내가 어떻게 들어가!" 성민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삼각대를 고쳐 잡고 남자들을 향해 한 발짝 더 다가섰다. 다리는 후들거렸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이 사람 건드리지 마세요. 당신들이 원하는 건 돈이잖아요. 그렇다면 차라리 저한테…"
성민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챈 준호가 그의 말을 다급하게 끊었다. "형! 안 돼요! 절대 안 돼!"
"어쭈? 이젠 아주 둘이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난리 났네?" 다른 남자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성민에게 다가서려 했다. 그의 눈빛에는 귀찮음과 짜증, 그리고 약간의 폭력적인 충동이 어려 있었다. 바로 그때, 준호가 번개처럼 움직여 다시 한번 성민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등은 성민에게 단단한 방패가 되어주었다.
"내 문제는 나랑 해결하라고 했잖아! 이 사람은 아무 상관없으니까 끌어들이지 마!" 준호의 목소리는 낮고 위협적으로 울렸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도망치거나 굴복하려던 과거의 나약한 '시우'가 아니었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걸 준비가 된, 한 남자의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글쎄… 그게 네 마음대로 될까, 시우야?" 덩치 큰 남자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손이 품 안으로 향하는 것을 본 성민은 숨을 멈췄다. 칼이라도 꺼내려는 걸까? "네가 순순히 우리랑 같이 가겠다고 약속하면, 네 뒤에 숨은 저 귀하신 양반은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어때? 아주 공평한 거래 아닌가?"
"……" 준호는 대답 대신 이를 악물었다. 남자의 제안은 달콤한 독약과 같았다. 성민의 안전을 보장받는 대신, 자신은 다시 그 끔찍했던 과거의 굴레 속으로 돌아가야 했다.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어둠 속으로.
"하지만… 네가 계속 이렇게 고집을 부린다면…" 남자는 말을 이으며 준호의 어깨를 강하게 밀쳤다. 준호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고, 성민의 모습이 남자들 앞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글쎄, 우리도 어쩔 수 없지 않겠어? 네가 얼마나 이 양반을 아끼는지 모르겠지만, 네가 보는 앞에서 아주 처참하게 망가뜨려 줄 수도 있는데 말이야. 네 소중한 사람 앞에서 네가 얼마나 비참하고 무력한지… 똑똑히 구경하게 될 줄 알아."
남자의 잔인한 협박은 성민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공포가 온몸을 옥죄어왔다. 하지만 동시에, 준호가 자신 때문에 어떤 선택을 할지 너무나 잘 알기에, 그를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이 더욱 강해졌다.
"…가지 마, 준호야." 성민이 떨리는 목소리로, 하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제발… 나 때문에… 네 인생을 다시 포기하지 마."
"형…" 준호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성민을 돌아보았다. 그의 눈빛은 '제발… 나 좀 내버려 둬'라고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성민은 그의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 보았다.
"나는… 괜찮아. 정말 괜찮아. 형만… 네가 괜찮다면…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성민의 눈빛은 두려움 속에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단호하고 강인했다. 그는 준호를 향해 아주 희미하게, 그러나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미소를 지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의 용기와 진심 어린 모습에 준호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자신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감수하려는 그의 깊은 사랑이, 마치 뜨거운 불덩이처럼 준호의 가슴속 깊이 파고들어와 얼어붙었던 그의 심장을 녹이고 동시에 태워버릴 듯한 격렬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하! 아주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신파극 나셨네, 그려." 덩치 큰 남자가 두 사람의 애절한 모습을 보며 역겹다는 듯 침을 뱉었다. "시간 없어. 마지막으로 묻는다. 결정해, 시우. 우리랑 같이 갈 건가, 아니면 여기서 네 애인이랑 같이 사이좋게 저세상 구경 갈 건가?"
남자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듯, 품속에서 날카롭게 빛나는 무언가를 꺼내려는 듯 위협적인 제스처를 취했다.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 공기는 살얼음처럼 팽팽하게 얼어붙었고, 성민은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준호는 마지막 저항이라도 하듯, 맹수처럼 달려들 준비를 하며 이를 악물었다. 그가 막 남자들에게 몸을 날리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거기 꼼짝 마! 다들 손 머리 위로 올려! 경찰이다!"
갑자기 작업실 문밖에서 여러 명의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위엄 있는 외침이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동시에 굳게 닫혀 있던 문이 거칠게 열리며, 방탄조끼와 헬멧으로 무장한 제복 차림의 경찰 여러 명이 눈 깜짝할 사이에 작업실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의 손에는 권총과 진압봉이 들려 있었다. 상황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험악한 인상의 남자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경찰의 등장에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뒷문 쪽으로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출동한 경찰들에게 완벽하게 포위되어 꼼짝없이 제압당했다. 저항하려던 남자 한 명은 경찰봉에 맞아 신음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고, 다른 남자는 두 손을 번쩍 들고 항복했다. 그들의 손목에는 차가운 수갑이 채워졌다.
알고 보니, 성민이 창고에 숨겨져 있을 때 극도의 공포 속에서도 침착하게 휴대폰으로 112에 신고했던 것이었다. 준호가 혹시라도 위험한 상황에 처할 것을 대비해, 그의 위치와 상황을 최대한 정확하게 전달하려 애썼던 것이다. 성민의 기지와 용기가 최악의 상황을 막아낸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었다.
모든 소동이 끝나고, 경찰들이 증거물을 수집하고 남자들을 거칠게 연행해 간 후, 작업실 안에는 다시 깊은 정적과 함께 성민과 준호, 두 사람만이 남았다. 길고 길었던 악몽에서 막 깨어난 듯, 두 사람은 한동안 멍하니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마침내 긴장이 풀리자, 성민은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다리가 제멋대로 후들거렸고, 온몸이 마치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준호는 그런 성민에게 비틀거리며 다가가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성민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괜찮아? 성민이 형, 괜찮아? 다친 데는 없어? 정말 괜찮은 거야?" 준호는 마치 고장 난 녹음기처럼 같은 질문을 반복하며 성민의 얼굴과 몸 구석구석을 다급하게 살폈다. 그의 목소리는 안도감과 미안함,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로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괜찮아요. 하나도 안 다쳤어요. 형은요? 형이야말로… 아까 맞은 데는… 괜찮아요?"
성민은 말을 잇지 못하고 준호의 품에 얼굴을 깊이 묻었다. 그제야 참았던 눈물이 뜨겁게 터져 나왔다. 무서웠다. 정말 죽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준호를 잃게 될까 봐, 그가 다시 어둠 속으로 끌려가게 될까 봐 너무나 두려웠다. 안도감과 함께 밀려오는 격한 감정에 그는 아이처럼 흐느꼈다.
"…미안해요, 형. 정말 미안해요. 나 때문에… 나 같은 놈 때문에 형까지 이런 험한 일 겪게 만들어서… 정말 죽고 싶을 만큼 미안해요…" 준호는 성민을 더욱 힘껏, 부서질세라 조심스럽게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 역시 짙은 죄책감과 안도감, 그리고 성민을 향한 깊은 애정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어두운 과거가 결국 성민에게까지 상처를 입혔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면서도, 그가 무사하다는 사실에 가슴 깊이 안도하고 있었다.
"아니에요… 형 잘못 아니에요." 성민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그의 품에 더 깊이 파고들었다. 그의 단단한 가슴팍에 얼굴을 비비며 흐느꼈다. "이제… 다 끝난 거죠? 정말… 다 끝난 거죠? 저 사람들… 이제 더 이상 형 괴롭히지 못하는 거죠?"
"…응. 아마도." 준호는 여전히 약간의 불안감이 남은 목소리였지만,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했다. 성민을 안고 있는 그의 팔에는 흔들림 없는 힘이 실려 있었다. "경찰에서 제대로 수사해서 처리해 줄 거야. 그리고… 설령 저놈들이 다시 나타난다고 해도… 이제 더 이상 예전처럼 도망치거나 숨지 않을 거야. 네가… 형이 내 옆에 있는데… 내가 왜 도망치고 숨어."
준호는 성민의 얼굴을 두 손으로 부드럽게 감싸고, 그의 눈물 젖은 눈을 깊고 진지하게 들여다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더 이상 어둠이나 불안감, 혹은 도피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성민을 향한 흔들림 없는 깊은 사랑과, 과거의 그림자를 떨쳐내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려는 단단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고마워요, 형. 정말… 고마워요. 나를… 나 같은 놈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 줘서. 그리고… 나에게 다시 살아갈 용기를 줘서."
"…나도 고마워, 준호야. 내 곁에… 이렇게 무사히 있어 줘서."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그동안 차마 말로 다 표현하지 못했던 깊고 절절한 진심을 나누었다. 어떤 화려한 언어보다 더 강렬하게, 그들의 눈빛은 서로를 향한 사랑과 신뢰, 그리고 감사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마치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순간처럼, 아주 부드럽게 서로의 입술을 찾아 포개었다.
이전의 격정적이고 불안했던 키스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아픔을 위로하며, 죽음의 문턱에서 확인한 서로의 소중함과 깊은 신뢰를 확인하는 듯한, 따뜻하고 감동적이며 경건하기까지 한 입맞춤이었다. 그 입맞춤은 쓰디쓴 눈물과 함께 시작되었지만, 점차 서로의 체온과 부드러운 숨결을 나누는 섬세하고 다정한 애무로 이어졌다. 성민은 준호의 멍들고 상처 입은 얼굴과 몸을 마치 귀한 보물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어루만졌고, 준호는 그런 성민의 손길에 온전히 몸을 맡기며,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아니 처음으로 느껴보는 깊은 평화와 안식을 느꼈다.
옷가지들이 다시 한번 소리 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지만, 그들의 공간을 채우는 것은 더 이상 불안이나 갈망에 휩싸인 격정적인 열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서로의 존재 자체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서로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아픔과 상처마저도 따뜻한 사랑으로 감싸 안으려는, 성스럽고도 경건한 의식과 같았다. 서로를 향한 연민과 애틋함,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깊고 진실된 사랑만이 그들 사이에 존재했다.
준호는 성민을 가볍게 안아 올려, 어젯밤 격정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는 침대로 향했다. 그의 발걸음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조심스러웠고, 성민을 침대 위에 내려놓는 그의 손길은 마치 깃털처럼 부드럽고 섬세했다. 그는 성민의 몸 위에 자신의 몸을 천천히 포개고, 그의 눈을 깊고 그윽하게 들여다보며, 온 마음을 다해 속삭였다.
"사랑해요, 형. 세상 그 무엇보다도… 당신을 사랑해요."
"…나도 사랑해, 준호야. 정말… 많이 사랑해."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을 나지막이 부르며, 서로의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까지 남김없이 나누었다. 쓰디쓴 눈물 속에서 어렵게 피어난 사랑은 그 어떤 시련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더욱 찬란하게 빛을 발했다. 서로의 상처 입은 부분을 부드럽게 입 맞추고, 서로의 두려움과 불안감을 따뜻한 포옹으로 잠재워주며, 그들은 마침내 하나의 영혼처럼 완벽하게 결합되었다. 그것은 단순히 육체적인 쾌락을 넘어선, 서로의 존재를 구원하고 치유하는 깊은 정신적인 교감의 순간이었다. 서로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마저도 기꺼이 끌어안고 사랑하기로 약속하는, 엄숙하고도 아름다운 맹세와 같았다.
창밖으로 아침의 눈부신 햇살이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밤새 도시를 적셨던 차가운 비는 완전히 그치고, 구름 사이로 눈부시게 맑고 푸른 하늘이 드러나고 있었다. 마치 그들의 상처 입은 영혼을 정화하고, 새롭게 시작될 앞날을 축복이라도 하듯. 성민은 준호의 단단한 품에 안겨 깊고 평화로운 잠에 빠져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더 이상 불안이나 슬픔의 그늘 대신, 희미하고 행복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준호는 잠든 성민의 이마에 감사와 사랑을 담아 부드럽게 입을 맞추고, 그의 곁에 누워 함께 눈을 감았다. 그의 마음속에도 오랜만에 찾아온 깊은 평온함이 잔잔하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림자를 넘어, 그들은 마침내 서로를 향해 온전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과거의 상처가 남긴 흉터는 여전히 남아있겠지만, 이제 그들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서로의 빛이 되어주고, 서로의 온기가 되어주며, 함께 그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며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그들의 사랑은 잿빛 도시 속에서 피어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강하고 아름다운 희망이었다. 이제 막, 진짜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성민의 목소리는 공포로 가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 안에는 쇳소리 같은 단호함이 섞여 있었다. 작업실 안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은 마치 정지된 필름처럼,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긴장감의 현을 잠시 끊어 놓았다. 그의 손에는 작업실 구석에 세워져 있던, 제법 묵직해 보이는 카메라 삼각대가 위태롭게 들려 있었다. 방금 전까지 창고 문틈으로 엿보며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던 겁먹은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용기를 짜낸 사자의 눈빛이었다.
험악한 인상의 남자들은 잠시 예상치 못한 변수에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그의 초라한 무기(?)와 하얗게 질린 얼굴을 보고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 이게 누구야? 아까 우리가 얘기했던 그 순진한 사진작가 양반 아니신가. 숨어있으랬더니 기어 나오셨네. 용기가 아주 가상해. 삼각대로 뭘 어쩌시려고?" 덩치 큰 남자가 성민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노골적인 조롱과 경멸을 담아 말했다. 그의 눈빛은 성민을 벌레 보듯 하고 있었다.
"형! 뭐 하는 거예요! 제발… 어서 다시 들어가요, 빨리!" 준호가 거의 절규하듯 소리쳤다. 그의 얼굴은 공포와 절망으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성민이 나서는 순간,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최악으로 치달을 것이 뻔했다. 저들은 인정사정없는 인간들이었다. 성민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그는 어떻게든 성민만은 이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었다. 자신의 과거 때문에, 이 순수하고 착한 사람이 다치는 것을 볼 수는 없었다.
"싫어! 너 혼자 저런 놈들 상대하게 두고 내가 어떻게 들어가!" 성민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삼각대를 고쳐 잡고 남자들을 향해 한 발짝 더 다가섰다. 다리는 후들거렸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이 사람 건드리지 마세요. 당신들이 원하는 건 돈이잖아요. 그렇다면 차라리 저한테…"
성민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챈 준호가 그의 말을 다급하게 끊었다. "형! 안 돼요! 절대 안 돼!"
"어쭈? 이젠 아주 둘이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난리 났네?" 다른 남자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성민에게 다가서려 했다. 그의 눈빛에는 귀찮음과 짜증, 그리고 약간의 폭력적인 충동이 어려 있었다. 바로 그때, 준호가 번개처럼 움직여 다시 한번 성민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등은 성민에게 단단한 방패가 되어주었다.
"내 문제는 나랑 해결하라고 했잖아! 이 사람은 아무 상관없으니까 끌어들이지 마!" 준호의 목소리는 낮고 위협적으로 울렸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도망치거나 굴복하려던 과거의 나약한 '시우'가 아니었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걸 준비가 된, 한 남자의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글쎄… 그게 네 마음대로 될까, 시우야?" 덩치 큰 남자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손이 품 안으로 향하는 것을 본 성민은 숨을 멈췄다. 칼이라도 꺼내려는 걸까? "네가 순순히 우리랑 같이 가겠다고 약속하면, 네 뒤에 숨은 저 귀하신 양반은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어때? 아주 공평한 거래 아닌가?"
"……" 준호는 대답 대신 이를 악물었다. 남자의 제안은 달콤한 독약과 같았다. 성민의 안전을 보장받는 대신, 자신은 다시 그 끔찍했던 과거의 굴레 속으로 돌아가야 했다.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어둠 속으로.
"하지만… 네가 계속 이렇게 고집을 부린다면…" 남자는 말을 이으며 준호의 어깨를 강하게 밀쳤다. 준호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고, 성민의 모습이 남자들 앞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글쎄, 우리도 어쩔 수 없지 않겠어? 네가 얼마나 이 양반을 아끼는지 모르겠지만, 네가 보는 앞에서 아주 처참하게 망가뜨려 줄 수도 있는데 말이야. 네 소중한 사람 앞에서 네가 얼마나 비참하고 무력한지… 똑똑히 구경하게 될 줄 알아."
남자의 잔인한 협박은 성민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공포가 온몸을 옥죄어왔다. 하지만 동시에, 준호가 자신 때문에 어떤 선택을 할지 너무나 잘 알기에, 그를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이 더욱 강해졌다.
"…가지 마, 준호야." 성민이 떨리는 목소리로, 하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제발… 나 때문에… 네 인생을 다시 포기하지 마."
"형…" 준호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성민을 돌아보았다. 그의 눈빛은 '제발… 나 좀 내버려 둬'라고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성민은 그의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 보았다.
"나는… 괜찮아. 정말 괜찮아. 형만… 네가 괜찮다면…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성민의 눈빛은 두려움 속에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단호하고 강인했다. 그는 준호를 향해 아주 희미하게, 그러나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미소를 지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의 용기와 진심 어린 모습에 준호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자신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감수하려는 그의 깊은 사랑이, 마치 뜨거운 불덩이처럼 준호의 가슴속 깊이 파고들어와 얼어붙었던 그의 심장을 녹이고 동시에 태워버릴 듯한 격렬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하! 아주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신파극 나셨네, 그려." 덩치 큰 남자가 두 사람의 애절한 모습을 보며 역겹다는 듯 침을 뱉었다. "시간 없어. 마지막으로 묻는다. 결정해, 시우. 우리랑 같이 갈 건가, 아니면 여기서 네 애인이랑 같이 사이좋게 저세상 구경 갈 건가?"
남자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듯, 품속에서 날카롭게 빛나는 무언가를 꺼내려는 듯 위협적인 제스처를 취했다.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 공기는 살얼음처럼 팽팽하게 얼어붙었고, 성민은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준호는 마지막 저항이라도 하듯, 맹수처럼 달려들 준비를 하며 이를 악물었다. 그가 막 남자들에게 몸을 날리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거기 꼼짝 마! 다들 손 머리 위로 올려! 경찰이다!"
갑자기 작업실 문밖에서 여러 명의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위엄 있는 외침이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동시에 굳게 닫혀 있던 문이 거칠게 열리며, 방탄조끼와 헬멧으로 무장한 제복 차림의 경찰 여러 명이 눈 깜짝할 사이에 작업실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의 손에는 권총과 진압봉이 들려 있었다. 상황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험악한 인상의 남자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경찰의 등장에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뒷문 쪽으로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출동한 경찰들에게 완벽하게 포위되어 꼼짝없이 제압당했다. 저항하려던 남자 한 명은 경찰봉에 맞아 신음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고, 다른 남자는 두 손을 번쩍 들고 항복했다. 그들의 손목에는 차가운 수갑이 채워졌다.
알고 보니, 성민이 창고에 숨겨져 있을 때 극도의 공포 속에서도 침착하게 휴대폰으로 112에 신고했던 것이었다. 준호가 혹시라도 위험한 상황에 처할 것을 대비해, 그의 위치와 상황을 최대한 정확하게 전달하려 애썼던 것이다. 성민의 기지와 용기가 최악의 상황을 막아낸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었다.
모든 소동이 끝나고, 경찰들이 증거물을 수집하고 남자들을 거칠게 연행해 간 후, 작업실 안에는 다시 깊은 정적과 함께 성민과 준호, 두 사람만이 남았다. 길고 길었던 악몽에서 막 깨어난 듯, 두 사람은 한동안 멍하니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마침내 긴장이 풀리자, 성민은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다리가 제멋대로 후들거렸고, 온몸이 마치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준호는 그런 성민에게 비틀거리며 다가가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성민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괜찮아? 성민이 형, 괜찮아? 다친 데는 없어? 정말 괜찮은 거야?" 준호는 마치 고장 난 녹음기처럼 같은 질문을 반복하며 성민의 얼굴과 몸 구석구석을 다급하게 살폈다. 그의 목소리는 안도감과 미안함,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로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괜찮아요. 하나도 안 다쳤어요. 형은요? 형이야말로… 아까 맞은 데는… 괜찮아요?"
성민은 말을 잇지 못하고 준호의 품에 얼굴을 깊이 묻었다. 그제야 참았던 눈물이 뜨겁게 터져 나왔다. 무서웠다. 정말 죽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준호를 잃게 될까 봐, 그가 다시 어둠 속으로 끌려가게 될까 봐 너무나 두려웠다. 안도감과 함께 밀려오는 격한 감정에 그는 아이처럼 흐느꼈다.
"…미안해요, 형. 정말 미안해요. 나 때문에… 나 같은 놈 때문에 형까지 이런 험한 일 겪게 만들어서… 정말 죽고 싶을 만큼 미안해요…" 준호는 성민을 더욱 힘껏, 부서질세라 조심스럽게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 역시 짙은 죄책감과 안도감, 그리고 성민을 향한 깊은 애정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어두운 과거가 결국 성민에게까지 상처를 입혔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면서도, 그가 무사하다는 사실에 가슴 깊이 안도하고 있었다.
"아니에요… 형 잘못 아니에요." 성민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그의 품에 더 깊이 파고들었다. 그의 단단한 가슴팍에 얼굴을 비비며 흐느꼈다. "이제… 다 끝난 거죠? 정말… 다 끝난 거죠? 저 사람들… 이제 더 이상 형 괴롭히지 못하는 거죠?"
"…응. 아마도." 준호는 여전히 약간의 불안감이 남은 목소리였지만,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했다. 성민을 안고 있는 그의 팔에는 흔들림 없는 힘이 실려 있었다. "경찰에서 제대로 수사해서 처리해 줄 거야. 그리고… 설령 저놈들이 다시 나타난다고 해도… 이제 더 이상 예전처럼 도망치거나 숨지 않을 거야. 네가… 형이 내 옆에 있는데… 내가 왜 도망치고 숨어."
준호는 성민의 얼굴을 두 손으로 부드럽게 감싸고, 그의 눈물 젖은 눈을 깊고 진지하게 들여다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더 이상 어둠이나 불안감, 혹은 도피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성민을 향한 흔들림 없는 깊은 사랑과, 과거의 그림자를 떨쳐내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려는 단단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고마워요, 형. 정말… 고마워요. 나를… 나 같은 놈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 줘서. 그리고… 나에게 다시 살아갈 용기를 줘서."
"…나도 고마워, 준호야. 내 곁에… 이렇게 무사히 있어 줘서."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그동안 차마 말로 다 표현하지 못했던 깊고 절절한 진심을 나누었다. 어떤 화려한 언어보다 더 강렬하게, 그들의 눈빛은 서로를 향한 사랑과 신뢰, 그리고 감사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마치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순간처럼, 아주 부드럽게 서로의 입술을 찾아 포개었다.
이전의 격정적이고 불안했던 키스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아픔을 위로하며, 죽음의 문턱에서 확인한 서로의 소중함과 깊은 신뢰를 확인하는 듯한, 따뜻하고 감동적이며 경건하기까지 한 입맞춤이었다. 그 입맞춤은 쓰디쓴 눈물과 함께 시작되었지만, 점차 서로의 체온과 부드러운 숨결을 나누는 섬세하고 다정한 애무로 이어졌다. 성민은 준호의 멍들고 상처 입은 얼굴과 몸을 마치 귀한 보물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어루만졌고, 준호는 그런 성민의 손길에 온전히 몸을 맡기며,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아니 처음으로 느껴보는 깊은 평화와 안식을 느꼈다.
옷가지들이 다시 한번 소리 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지만, 그들의 공간을 채우는 것은 더 이상 불안이나 갈망에 휩싸인 격정적인 열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서로의 존재 자체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서로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아픔과 상처마저도 따뜻한 사랑으로 감싸 안으려는, 성스럽고도 경건한 의식과 같았다. 서로를 향한 연민과 애틋함,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깊고 진실된 사랑만이 그들 사이에 존재했다.
준호는 성민을 가볍게 안아 올려, 어젯밤 격정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는 침대로 향했다. 그의 발걸음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조심스러웠고, 성민을 침대 위에 내려놓는 그의 손길은 마치 깃털처럼 부드럽고 섬세했다. 그는 성민의 몸 위에 자신의 몸을 천천히 포개고, 그의 눈을 깊고 그윽하게 들여다보며, 온 마음을 다해 속삭였다.
"사랑해요, 형. 세상 그 무엇보다도… 당신을 사랑해요."
"…나도 사랑해, 준호야. 정말… 많이 사랑해."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을 나지막이 부르며, 서로의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까지 남김없이 나누었다. 쓰디쓴 눈물 속에서 어렵게 피어난 사랑은 그 어떤 시련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더욱 찬란하게 빛을 발했다. 서로의 상처 입은 부분을 부드럽게 입 맞추고, 서로의 두려움과 불안감을 따뜻한 포옹으로 잠재워주며, 그들은 마침내 하나의 영혼처럼 완벽하게 결합되었다. 그것은 단순히 육체적인 쾌락을 넘어선, 서로의 존재를 구원하고 치유하는 깊은 정신적인 교감의 순간이었다. 서로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마저도 기꺼이 끌어안고 사랑하기로 약속하는, 엄숙하고도 아름다운 맹세와 같았다.
창밖으로 아침의 눈부신 햇살이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밤새 도시를 적셨던 차가운 비는 완전히 그치고, 구름 사이로 눈부시게 맑고 푸른 하늘이 드러나고 있었다. 마치 그들의 상처 입은 영혼을 정화하고, 새롭게 시작될 앞날을 축복이라도 하듯. 성민은 준호의 단단한 품에 안겨 깊고 평화로운 잠에 빠져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더 이상 불안이나 슬픔의 그늘 대신, 희미하고 행복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준호는 잠든 성민의 이마에 감사와 사랑을 담아 부드럽게 입을 맞추고, 그의 곁에 누워 함께 눈을 감았다. 그의 마음속에도 오랜만에 찾아온 깊은 평온함이 잔잔하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림자를 넘어, 그들은 마침내 서로를 향해 온전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과거의 상처가 남긴 흉터는 여전히 남아있겠지만, 이제 그들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서로의 빛이 되어주고, 서로의 온기가 되어주며, 함께 그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며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그들의 사랑은 잿빛 도시 속에서 피어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강하고 아름다운 희망이었다. 이제 막, 진짜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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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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