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장 구출
조회 : 125 추천 : 0 글자수 : 4,429 자 2025-09-21
갑작스러운 광경에 소율의 마음이 크게 흔들렸으나, 그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빨라졌다. 소율의 성격은 원래 그러하였다. 할 마음이 없으면 아예 손도 대지 않지만, 일단 결심한 순간부터는 어떤 힘으로도 꺾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가 다가섰을 때, 백령의 공허하던 눈동자에 서서히 초점이 맺혔다. 그녀는 멍하니 소율을 바라보았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소율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손에 든 뼈각을 붉은 나무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반쯤이 박히자 진한 붉은 즙이 피처럼 터져 나왔고, 나무 속에서 낮게 울려 퍼지는 괴성이 터져 나와 온 공간을 흔들었다.
소율의 얼굴은 순간 창백해졌으나, 눈빛은 오히려 더욱 매서워졌다. 그는 뼈각을 아래로 강하게 밀어내며 틈을 벌렸다. 쩍 하고 갈라진 틈새에서 차가운 기운이 흘러나왔고, 그 틈은 마침 백령의 몸 옆으로 드러났다. 소율은 주저하지 않고 그 속으로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움켜쥐었다.
“나와!”
낮게 울린 외침과 함께 힘껏 당기자, 백령의 몸이 나무 속에서 거칠게 뽑혀 나왔다.
백령은 여전히 넋이 나간 채 소율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물은 끝없이 흘러내렸고, 지금 이 순간의 소율의 모습은 그녀의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
소율은 그녀를 붙잡은 채 몸을 뒤로 날리며 물러섰다. 심장은 미친 듯 뛰고 있었지만, 그의 의지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곧, 갈라진 나무 틈에서 끝없는 괴성이 터져 나왔다. 그 틈새로 수많은 월익(月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방금 전까지 눈빛에 깃들었던 비애와 쓸쓸함은 흔적조차 없고, 그 자리에 자리한 것은 미쳐 날뛰는 살기와 피빛 광기였다.
소율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눈앞에 튀어나온 월익의 수는 셀 수 없이 많았고, 나무 속에는 아직도 끝을 알 수 없는 무리가 도사리고 있었다.
허나 월익들은 화염의 열기를 마주한 순간, 마치 얼어붙은 듯 몸을 떨었다. 두려움이 눈빛에 번졌고, 몇몇은 그대로 하늘에서 떨어져 뜨거운 용암 속으로 추락했다. ‘펑’ 소리와 함께 부서진 그들의 몸은 살점도 피도 남지 않은 채 산산이 갈라져, 차가운 기운만 허공에 흩날렸다.
소율은 이를 악물며 중얼거렸다.
“전설이 사실이었어. 불멸의 육신을 지녔던 화만족(火蠻族)이 만신의 힘에 의해 월익으로 변했으나, 그 결과 불길 앞에 무력해졌다. 그들의 몸은 더 이상 불을 이기지 못하고, 얼음처럼 깨져나가는구나…”
그는 곧장 백령을 향해 팔을 뻗어 그녀를 통로 쪽으로 힘껏 던졌다.
“멍하니 서 있지 마! 달려!”
그 낮고 단호한 외침에 백령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통로 앞에 몸이 떨어진 그녀는 잠시 주저하다가 소율을 바라보았다.
“어서 가!”
소율은 다시 몸을 튕겨 통로를 향해 달렸다. 그 사이, 분지 아래의 용암은 이미 바위집들을 삼키며 끓어오르고 있었다.
백령은 창백한 얼굴로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달렸다. 발바닥은 이미 찢어질 듯 아팠지만, 그 고통을 돌아볼 겨를은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소율은 분지 위에 드러난 몇 남지 않은 바위지붕을 디디며 통로로 향했다. 그의 등 뒤로는 월익의 괴성이 끊임없이 터져 나왔지만, 뜨거운 열기에 겁을 먹은 탓에 쉽게 따라붙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친 듯한 본능에 이끌려 열여 마리 남짓이 그의 뒤를 쫓아 통로 안으로 돌진했다.
심장은 미친 듯 뛰고 있었지만, 소율의 머릿속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때가 아니면 기회가 없다. 그가 일부러 조금 더 버티며 기다린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뜨거운 열기가 절정에 이른 순간에야 월익들의 힘이 꺾이고, 그 틈에 백령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통로에 들어선 순간, 발밑에서 살갗이 타들어 가는 듯한 냄새가 올라왔다. 그러나 소율은 멈추지 않았다. 빠른 호흡과 함께 전력을 다해 앞으로 내달렸다.
허나 분지의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괴성은 점점 더 날카로워졌고, 결국 미친 듯한 비명과 함께 몇 마리의 월익이 용감히 불길을 뚫고 뒤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화염을 두려워하지만, 통로를 벗어나면 열기는 약해진다…”
소율의 얼굴은 창백했으나 눈빛만큼은 냉정을 잃지 않았다. 네 마리 월익(月翼)이 거의 닿으려는 찰나, 그는 옆에 있던 큰 바위를 힘껏 걷어찼다.
그 바위는 미리 통로의 너비를 재어 두었던 것으로, 전신의 기혈을 실은 일격에 ‘쾅’ 소리를 내며 떠올라 문짝처럼 통로를 막아섰다. 소율의 계산은 정확했다. 바위로 세 마리를 가두고, 한 마리만 남겨 이 뜨거운 통로 안에서 골각으로 처치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월익의 속도는 예상보다 빨라 바위는 두 마리만 막았고 나머지는 그대로 돌진해 왔다. 두 마리를 억지로 상대할 수도 있었으나 부상은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곧장 몸을 돌려 다시 뛰기 시작했다.
뒤에서 월익이 쫓아오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불과 열 걸음도 채 남지 않았을 무렵, 앞쪽에 또 다른 바위가 나타났다. 소율은 이번에는 경험을 살려 정확한 각도로 찼다. ‘쾅’ 하고 바위가 튀어 올라 통로를 막자,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갇히고 한 마리만 날개를 퍼덕이며 빠져나왔다.
그 순간, 소율의 눈빛에는 살기가 번졌고 망설임없이 뿔각을 들고 몸을 틀어 월익을 향해 돌진했다.
인간과 짐승이 좁은 통로 안에서 곧바로 난투를 벌였다. 수련 전의 소율이라면 감히 버틸 수 없었겠지만, 지금 그는 열한 혈선을 운용하고 있었고 손에는 예리한 골각이 있었다. 잠시 교차하는 사이, 전세는 완전히 소율에게 기울었다.
‘촤악’— 골각이 월익의 몸을 깊이 갈라놓자, 녀석은 잠시 휘청했으나 기운이 약해졌을 뿐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어 버렸다. 소율은 빠르게 연속으로 골각을 휘둘러 상처를 겹겹이 내어 단기간 회복을 막아둔 뒤 곧장 몸을 돌려 달렸다.
그는 달리면서도 길목마다 미리 준비해 둔 바위를 연달아 걷어차 통로에 장애물을 늘려 두었다. 잠깐씩 멈춤은 생겼으나, 그의 장기는 본디 속도인만큼 번개처럼 스쳐 지나며 마침내 작은 구멍들이 촘촘히 뚫린 용암 동굴에 닿았다.
“나…… 나 여기 있어!”
동굴에 들어선 순간, 소율은 백령의 힘없는 목소리를 들었다.
그는 창백한 얼굴로 작은 구멍 속에 몸을 숨기고 떠는 그녀를 보았다. 백령은 이미 이곳에 도착했지만 어느 쪽이 출구인지 몰라 감히 나서지 못했고, 다시 월익을 마주칠까 두려워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부방에서 보았던 당당하고 영리한 기색과 전혀 달랐다. 놀란 짐승처럼 떨고 서 있는 눈빛에는 방황만이 어려 있었다. 소율은 그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웃었다.
“너…… 너 지금 웃어?” 백령이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말하려는 순간, 소율은 ‘슥’ 하고 다가와 그녀의 팔을 낚아채더니 가까운 작은 구멍 쪽으로 함께 달렸다.
“여기가 출구야?” 백령은 소율을 보자 알 수 없는 이유로 두려움이 누그러지는 것을 느끼며 낮게 물었다.
백령은 안도 섞인 목소리로 묻자, 소율은 고개만 끄덕였다. 숨결이 옆에서 들려왔고, 그 울림은 달리는 탓인지 손끝의 감촉 때문인지 알 수 없을 만큼 가슴을 두드렸다.
두 사람은 말없이 달렸다. 백령도 더는 묻지 않고 손을 맡긴 채 달리며, 자신의 심장이 소율과 똑같이 거세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그 낯선 떨림은 공포와 조금 전의 절망을 조금씩 지워 갔다.
그러나 이 짧은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곧 소율은 자신이 수련했던 동굴에 도착했다. 그는 그녀의 손을 놓고 바닥의 작은 화구들을 골각으로 이어 홈을 내며, 간격을 계산하듯 이따금 눈살을 찌푸렸다. 멀지 않은 황정 아래에서는 불꽃이 피어나 천천히 타오르고 있었다.
백령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월익에게 붙잡혔을 때 이미 모든 걸 포기했지만, 이어진 사건들은 너무도 비현실적이어서 아직도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듯했다.
그때, 동굴 깊은 곳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점점 더 가까워지자, 백령은 본능적으로 소율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몇 걸음 가지도 못해 소율이 고개를 번쩍 들더니 그녀의 손목을 붙잡아 작은 화구들이 뚫린 바닥을 재빨리 건너고는 동굴 깊은 곳을 노려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귀청을 찢는 듯한 울음소리가 커지며 세 마리 월익이 그들을 향해 돌진해 왔다. 백령은 몸을 떨며 뒷걸음질쳤지만, 소율은 골각을 들고 빠르게 황정 아래 불길의 가장자리 바닥을 깊게 그어, 다른 홈과 연결했다.
곧 거대한 불막이 솟구쳐 통로를 뒤덮으며 세 마리 월익을 그대로 삼켰다. 그 순간 끔찍한 비명과 함께 몸이 터져버렸고 흩날린 한기는 불길과 섞여 흔들렸다. 불빛에 비친 소율의 얼굴에는 음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그의 뒤에 선 백령의 눈에는 두려움이 더욱 짙어졌다.
“저것들…… 정말 불을 무서워하는 거야?” 잠시 뒤, 백령이 낮게 물었다.
소율은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며 낮게 대답했다.
“그들은 본래 불을 섬겼고, 불을 영광으로 여겼다. 그러나 월익으로 타락한 순간, 그 영광마저 잃었다. 두려움이 아니라, 불길 앞에서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불에서 태어나, 불에서 죽는 자들…”
그의 머릿속에는 화만의 부락에서 보았던 백골과, 암벽에 새겨진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
“푸른 하늘은 곧 천도이거늘, 어찌하여 그대 홀로 우는가……”
그가 다가섰을 때, 백령의 공허하던 눈동자에 서서히 초점이 맺혔다. 그녀는 멍하니 소율을 바라보았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소율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손에 든 뼈각을 붉은 나무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반쯤이 박히자 진한 붉은 즙이 피처럼 터져 나왔고, 나무 속에서 낮게 울려 퍼지는 괴성이 터져 나와 온 공간을 흔들었다.
소율의 얼굴은 순간 창백해졌으나, 눈빛은 오히려 더욱 매서워졌다. 그는 뼈각을 아래로 강하게 밀어내며 틈을 벌렸다. 쩍 하고 갈라진 틈새에서 차가운 기운이 흘러나왔고, 그 틈은 마침 백령의 몸 옆으로 드러났다. 소율은 주저하지 않고 그 속으로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움켜쥐었다.
“나와!”
낮게 울린 외침과 함께 힘껏 당기자, 백령의 몸이 나무 속에서 거칠게 뽑혀 나왔다.
백령은 여전히 넋이 나간 채 소율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물은 끝없이 흘러내렸고, 지금 이 순간의 소율의 모습은 그녀의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
소율은 그녀를 붙잡은 채 몸을 뒤로 날리며 물러섰다. 심장은 미친 듯 뛰고 있었지만, 그의 의지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곧, 갈라진 나무 틈에서 끝없는 괴성이 터져 나왔다. 그 틈새로 수많은 월익(月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방금 전까지 눈빛에 깃들었던 비애와 쓸쓸함은 흔적조차 없고, 그 자리에 자리한 것은 미쳐 날뛰는 살기와 피빛 광기였다.
소율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눈앞에 튀어나온 월익의 수는 셀 수 없이 많았고, 나무 속에는 아직도 끝을 알 수 없는 무리가 도사리고 있었다.
허나 월익들은 화염의 열기를 마주한 순간, 마치 얼어붙은 듯 몸을 떨었다. 두려움이 눈빛에 번졌고, 몇몇은 그대로 하늘에서 떨어져 뜨거운 용암 속으로 추락했다. ‘펑’ 소리와 함께 부서진 그들의 몸은 살점도 피도 남지 않은 채 산산이 갈라져, 차가운 기운만 허공에 흩날렸다.
소율은 이를 악물며 중얼거렸다.
“전설이 사실이었어. 불멸의 육신을 지녔던 화만족(火蠻族)이 만신의 힘에 의해 월익으로 변했으나, 그 결과 불길 앞에 무력해졌다. 그들의 몸은 더 이상 불을 이기지 못하고, 얼음처럼 깨져나가는구나…”
그는 곧장 백령을 향해 팔을 뻗어 그녀를 통로 쪽으로 힘껏 던졌다.
“멍하니 서 있지 마! 달려!”
그 낮고 단호한 외침에 백령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통로 앞에 몸이 떨어진 그녀는 잠시 주저하다가 소율을 바라보았다.
“어서 가!”
소율은 다시 몸을 튕겨 통로를 향해 달렸다. 그 사이, 분지 아래의 용암은 이미 바위집들을 삼키며 끓어오르고 있었다.
백령은 창백한 얼굴로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달렸다. 발바닥은 이미 찢어질 듯 아팠지만, 그 고통을 돌아볼 겨를은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소율은 분지 위에 드러난 몇 남지 않은 바위지붕을 디디며 통로로 향했다. 그의 등 뒤로는 월익의 괴성이 끊임없이 터져 나왔지만, 뜨거운 열기에 겁을 먹은 탓에 쉽게 따라붙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친 듯한 본능에 이끌려 열여 마리 남짓이 그의 뒤를 쫓아 통로 안으로 돌진했다.
심장은 미친 듯 뛰고 있었지만, 소율의 머릿속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때가 아니면 기회가 없다. 그가 일부러 조금 더 버티며 기다린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뜨거운 열기가 절정에 이른 순간에야 월익들의 힘이 꺾이고, 그 틈에 백령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통로에 들어선 순간, 발밑에서 살갗이 타들어 가는 듯한 냄새가 올라왔다. 그러나 소율은 멈추지 않았다. 빠른 호흡과 함께 전력을 다해 앞으로 내달렸다.
허나 분지의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괴성은 점점 더 날카로워졌고, 결국 미친 듯한 비명과 함께 몇 마리의 월익이 용감히 불길을 뚫고 뒤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화염을 두려워하지만, 통로를 벗어나면 열기는 약해진다…”
소율의 얼굴은 창백했으나 눈빛만큼은 냉정을 잃지 않았다. 네 마리 월익(月翼)이 거의 닿으려는 찰나, 그는 옆에 있던 큰 바위를 힘껏 걷어찼다.
그 바위는 미리 통로의 너비를 재어 두었던 것으로, 전신의 기혈을 실은 일격에 ‘쾅’ 소리를 내며 떠올라 문짝처럼 통로를 막아섰다. 소율의 계산은 정확했다. 바위로 세 마리를 가두고, 한 마리만 남겨 이 뜨거운 통로 안에서 골각으로 처치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월익의 속도는 예상보다 빨라 바위는 두 마리만 막았고 나머지는 그대로 돌진해 왔다. 두 마리를 억지로 상대할 수도 있었으나 부상은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곧장 몸을 돌려 다시 뛰기 시작했다.
뒤에서 월익이 쫓아오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불과 열 걸음도 채 남지 않았을 무렵, 앞쪽에 또 다른 바위가 나타났다. 소율은 이번에는 경험을 살려 정확한 각도로 찼다. ‘쾅’ 하고 바위가 튀어 올라 통로를 막자,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갇히고 한 마리만 날개를 퍼덕이며 빠져나왔다.
그 순간, 소율의 눈빛에는 살기가 번졌고 망설임없이 뿔각을 들고 몸을 틀어 월익을 향해 돌진했다.
인간과 짐승이 좁은 통로 안에서 곧바로 난투를 벌였다. 수련 전의 소율이라면 감히 버틸 수 없었겠지만, 지금 그는 열한 혈선을 운용하고 있었고 손에는 예리한 골각이 있었다. 잠시 교차하는 사이, 전세는 완전히 소율에게 기울었다.
‘촤악’— 골각이 월익의 몸을 깊이 갈라놓자, 녀석은 잠시 휘청했으나 기운이 약해졌을 뿐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어 버렸다. 소율은 빠르게 연속으로 골각을 휘둘러 상처를 겹겹이 내어 단기간 회복을 막아둔 뒤 곧장 몸을 돌려 달렸다.
그는 달리면서도 길목마다 미리 준비해 둔 바위를 연달아 걷어차 통로에 장애물을 늘려 두었다. 잠깐씩 멈춤은 생겼으나, 그의 장기는 본디 속도인만큼 번개처럼 스쳐 지나며 마침내 작은 구멍들이 촘촘히 뚫린 용암 동굴에 닿았다.
“나…… 나 여기 있어!”
동굴에 들어선 순간, 소율은 백령의 힘없는 목소리를 들었다.
그는 창백한 얼굴로 작은 구멍 속에 몸을 숨기고 떠는 그녀를 보았다. 백령은 이미 이곳에 도착했지만 어느 쪽이 출구인지 몰라 감히 나서지 못했고, 다시 월익을 마주칠까 두려워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부방에서 보았던 당당하고 영리한 기색과 전혀 달랐다. 놀란 짐승처럼 떨고 서 있는 눈빛에는 방황만이 어려 있었다. 소율은 그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웃었다.
“너…… 너 지금 웃어?” 백령이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말하려는 순간, 소율은 ‘슥’ 하고 다가와 그녀의 팔을 낚아채더니 가까운 작은 구멍 쪽으로 함께 달렸다.
“여기가 출구야?” 백령은 소율을 보자 알 수 없는 이유로 두려움이 누그러지는 것을 느끼며 낮게 물었다.
백령은 안도 섞인 목소리로 묻자, 소율은 고개만 끄덕였다. 숨결이 옆에서 들려왔고, 그 울림은 달리는 탓인지 손끝의 감촉 때문인지 알 수 없을 만큼 가슴을 두드렸다.
두 사람은 말없이 달렸다. 백령도 더는 묻지 않고 손을 맡긴 채 달리며, 자신의 심장이 소율과 똑같이 거세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그 낯선 떨림은 공포와 조금 전의 절망을 조금씩 지워 갔다.
그러나 이 짧은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곧 소율은 자신이 수련했던 동굴에 도착했다. 그는 그녀의 손을 놓고 바닥의 작은 화구들을 골각으로 이어 홈을 내며, 간격을 계산하듯 이따금 눈살을 찌푸렸다. 멀지 않은 황정 아래에서는 불꽃이 피어나 천천히 타오르고 있었다.
백령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월익에게 붙잡혔을 때 이미 모든 걸 포기했지만, 이어진 사건들은 너무도 비현실적이어서 아직도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듯했다.
그때, 동굴 깊은 곳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점점 더 가까워지자, 백령은 본능적으로 소율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몇 걸음 가지도 못해 소율이 고개를 번쩍 들더니 그녀의 손목을 붙잡아 작은 화구들이 뚫린 바닥을 재빨리 건너고는 동굴 깊은 곳을 노려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귀청을 찢는 듯한 울음소리가 커지며 세 마리 월익이 그들을 향해 돌진해 왔다. 백령은 몸을 떨며 뒷걸음질쳤지만, 소율은 골각을 들고 빠르게 황정 아래 불길의 가장자리 바닥을 깊게 그어, 다른 홈과 연결했다.
곧 거대한 불막이 솟구쳐 통로를 뒤덮으며 세 마리 월익을 그대로 삼켰다. 그 순간 끔찍한 비명과 함께 몸이 터져버렸고 흩날린 한기는 불길과 섞여 흔들렸다. 불빛에 비친 소율의 얼굴에는 음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그의 뒤에 선 백령의 눈에는 두려움이 더욱 짙어졌다.
“저것들…… 정말 불을 무서워하는 거야?” 잠시 뒤, 백령이 낮게 물었다.
소율은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며 낮게 대답했다.
“그들은 본래 불을 섬겼고, 불을 영광으로 여겼다. 그러나 월익으로 타락한 순간, 그 영광마저 잃었다. 두려움이 아니라, 불길 앞에서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불에서 태어나, 불에서 죽는 자들…”
그의 머릿속에는 화만의 부락에서 보았던 백골과, 암벽에 새겨진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
“푸른 하늘은 곧 천도이거늘, 어찌하여 그대 홀로 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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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魔)의 이름으로, 세상에 군림하리
34.제34장 산령산의 완성조회 : 6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319 33.제33장 어깨에 쌓인 눈, 마음에 남은 빈자리조회 : 10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3,094 32.제32장 설림(雪林)의 밤, 서로의 곁에서조회 : 10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97 31.제31장 구출조회 : 12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429 30.제30장 월익의 귀환, 그리고 구원조회 : 382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415 29.제29장 화만의 부락조회 : 29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535 28.제28장. 혈월강림, 월익의 광무조회 : 37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6,432 27.제27장 만신의 저주, 월익의 강림조회 : 35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7,457 26.제26장. 혈월(血月)의 밤조회 : 36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7,893 25.제25장 화근의 씨앗조회 : 26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6,184 24.제24장. 은밀한 거래조회 : 31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39 23.제23장. 첫만남조회 : 31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18 22.제22장. 변치 않으리...조회 : 9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03 21.제21장. 차가운 시선, 식지 않는 갈망조회 : 102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93 20.제20장. 서리바람 속의 재회조회 : 9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925 19.제19장. 석문 너머조회 : 11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855 18.제18장. 선만의 축복조회 : 11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7,835 17.제17장. 혈맥의 비밀과 할아버지의 경고조회 : 10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92 16.제16장. 귀향조회 : 13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7,410 15.제15장. 절망을 길들이는 자조회 : 102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82 14.제14장. 사만(邪蠻)의 그림자, 육치의 도주조회 : 10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892 13.제13장. 육혈 각성, 흑산의 추격자조회 : 11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398 12.제12장. 청진산의 효능조회 : 102 추천 : 0 댓글 : 0 글자 : 3,724 11.제11장. 혈산과 청진산조회 : 10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2,659 10.제10장 수산(淬散)조회 : 10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3,689 9.제9장 흑염봉(黑炎峰)조회 : 10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313 8.제8장. 기억의 문, 약석(藥石)의 비밀조회 : 9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2,559 7.제7장. 숨겨진 선물, 깨어나는 혈맥조회 : 11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3,235 6.제6장. 피로 각성한 의지, 그리고 첫 걸음조회 : 12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3,049 5.제5장 별을 향한 균열조회 : 11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152 4.제4장 밤의 망설임조회 : 11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2,998 3.제3장 만계(蠻啟)조회 : 16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3,248 2.제2장 소율 (韶律)조회 : 18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2,915 1.제1장 마서(魔序)조회 : 67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