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장 산령산의 완성
조회 : 58 추천 : 0 글자수 : 4,319 자 2025-09-27
소율은 잠시 망설였다. 불빛이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가죽 천막을 바라보다가, 끝내 발걸음을 옮기지 않고 달빛과 흩날리는 눈발 속으로 자기 천막으로 향했다.
며칠간 비워둔 탓인지 천막 안은 차가웠다. 내쉬는 숨이 하얀 안개처럼 번져 나와, 보기만 해도 서늘함이 스며들었다. 그곳엔 온기라고는 없었다. 뇌진의 집에서 느꼈던 따스함과는 전혀 다른, 삭막한 공간이었다.
소율은 말없이 마른 나뭇가지를 꺼내 불씨를 붙였다. 불길이 피어오르며 서서히 온기를 내뿜었지만, 그의 가슴속엔 알 수 없는 허전함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기혈은 이미 응혈경 3층에 달해 추위쯤은 견딜 수 있었으나, 그 밤엔 이상하게도 마음속 빈자리가 더 크게 다가왔다.
불빛이 퍼지자 천막 안은 조금씩 따뜻해졌고, 소율은 불가에 앉아 멍하니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어릴 적부터 그는 늘 뇌진과 북릉, 진흔을 부러워했다. 그들에게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자신을 친손주처럼 돌봐주었지만, 부족의 만공이라는 책임 때문에 늘 바빴다. 소율은 어려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법을 배웠고, 혼자 견디는 법을 배웠다. 고독 또한 그때부터 익숙해졌다.
밖에서는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칼날 같은 바람이 천막을 때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고, 틈새로 스며든 바람이 불길을 흔들었다. 소율은 무릎을 껴안고 오래도록 불빛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주워 온 아이라 했지… 그렇다면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직 살아 있는 걸까.”
그의 마음은 쓸쓸함으로 젖어 있었다. 평소엔 웃음으로 감춰 왔던 상처였으나, 뇌진의 집에서 느낀 온기를 뒤로하고 다시 이 얼어붙은 천막으로 돌아오니 도저히 감출 수 없었다.
그는 문득 백령을 떠올렸다. 그녀 또한 부모가 곁에 없었다. “지금쯤 백령은 잠들었을까, 아니면 나처럼 불가에 앉아 생각에 잠겼을까.” 은방울 같은 그녀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스쳐갔다. 그 순간 소율은 자신이 왜 그녀에게 묘한 끌림을 느끼는지 깨달았다. 그녀의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웃음과 장난 뒤에 숨겨진, 자신과 같은 고독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불길이 번지며 천막 안은 점차 따뜻해졌다. 차가운 기운은 사라지고 천막 벽에 맺힌 물방울이 반짝였다. 잠시나마 그 온기가 마음속 공허를 덮어주는 듯했지만, 곧 거센 돌풍이 불어닥쳤다. 온 마을을 휩쓸어버릴 듯한 바람은 눈발을 몰아와 천막의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매서운 한기와 눈송이가 쏟아져 들어오며 불길은 버티지 못하고 꺼져버렸다.
순식간에 사라진 온기를 바라보며 소율은 조용히 일어났다. 천막 밖으로 나와 눈보라 속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에 가려진 달빛이 흐릿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달을 보자 문득 월익이 떠올랐다. 그리고 화만 부락에서 보았던, 마지막 힘으로 글자를 새겨 남긴 한 구의 해골이 생각났다.
그의 머릿속에서 그 문구가 울려 퍼졌다.
“본디 도(道)는 만(蠻)의 욕망을 타고 팔방 끝까지 뻗나니,
불과 피가 하나 되어 창공을 태우고 하늘을 연소하리라……
불과 달이 구름을 헤치면, 광막한 천지 사이……
그때 깊이 사유하라. 피와 불이 번갈아 타올라 아홉은 극(極)이고 하나는 법(法)이라.
만화구배(蠻火九拜)를 올리면 배화의 통(拜火之通)이 열리리라!
푸른 하늘이여, 홀로 그대만이 고독 위에 선다!”
소율은 오래도록 그 말을 곱씹었다. 이번에는 예전보다 더 또렷하게 다가왔다.
“‘만(蠻)의 욕망이 팔방 끝까지 뻗는다’라… 욕망과 본능을 뜻하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부(夫)’는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스스로를 부른 것 같지는 않은데…”
그는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을 이었다.
“그리고 ‘불과 피가 하나 되어 창공을 태우고 하늘을 연소한다’… 불길을 혈맥과 합치라는 의미일까. 아니면 마음만으로도 하늘을 불태운다는 상징일까.”
그의 시선이 흔들리더니 곧 결론을 짚듯 중얼거렸다.
“‘피와 불이 번갈아 타올라 아홉은 극이고 하나는 법이라’… 혈화가 차례로 겹쳐져 극에 이른다는 뜻이로군. 그리고 마지막의 **‘만화구배를 올리면 배화의 통이 열린다’**는 건, 아홉 번 절하는 의식을 통해 불의 길에 통하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분명 하나의 만술이다!”
그러나 이내 다시 고개를 저었다.
“화월이 구름을 헤쳐야 한다는 조건… 혈월이 뜨는 날, 그때가 되어야 수련할 수 있다는 뜻이겠지.”
그렇게 생각에 잠긴 채 밤은 흘러갔고, 달빛은 아침빛에 삼켜졌다. 소율은 끝내 답을 얻지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 새벽에 천막을 나서는 부족 사람들을 지나 산으로 향했다.
“응혈경 4층에 오르려면 혈선 스물다섯 개가 필요하다. 지금의 나는 열한 줄에 불과하다. 더 수련에 몰두해야 한다. 그리고 산령산… 그것이 내 수련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소율의 몸은 숲을 가르며 내달렸다. 응혈경 3층에 이른 지금, 발걸음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벼웠고, 기혈이 흐르는 혈맥이 힘차게 고동치며 그를 앞으로 이끌었다. 산새가 흩어지고 눈발이 부유하는 산길을 가르며 달리자, 마치 온 세상이 숨을 죽이고 그의 질주를 지켜보는 듯했다. 정오 무렵에 이르자 그는 마침내 흑염봉 기슭에 닿았다.
그는 날쌔게 절벽을 타고 오르고 있었는데 귀에 익은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동굴 어귀에서 들려오는, 반가운 울음소리였다. 고개를 들자 작은 붉은 원숭이, 소홍의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입에 물고 있던 반쯤 먹은 열매를 던져 버리고는 두 눈을 반짝이며 소율을 향해 달려왔다. 이내 그의 어깨에 매달려 들뜬 울음을 토해냈다. 작은 몸이 그의 등에 매달리며 전해오는 체온은 따스했고, 오랜 벗을 다시 만난 듯한 기쁨이 소율의 얼굴에 번졌다.
그는 미소를 머금고 절벽을 더 올라 동굴 어귀에 다다랐다. 깊게 산바람을 들이마신 뒤, 소홍과 함께 몸을 굽혀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속은 늘 그랬듯 어둡고 차분했으나, 이제는 익숙한 안식처였다. 그곳에서의 나날은 고요히 흘렀다. 소율은 다시금 수산에 몰두하며 수련의 시간을 이어갔다. 밤이면 달을 올려다보며 ‘화월출운’이라는 구절을 곱씹었다. 달빛의 변화 하나조차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그는 동굴 벽을 깎아내 작은 구멍 몇 개를 뚫어 두었다. 덕분에 안에 있어도 고개만 들면 바깥 하늘과 달을 똑똑히 바라볼 수 있었다. 달빛은 어둑한 동굴 안으로 흘러들어와 그의 사유와 호흡을 감싸주었다.
며칠 후, 마침내 산령산이 완성되었다. 그것은 깊은 남빛을 띠는 작은 약석으로, 크기는 손가락 마디만 했지만, 눈에 담기만 해도 묘한 아우라가 감돌았다. 향은 진하지 않았으나 코끝에 대면 마치 산바람을 들이마신 듯한 청량한 기운이 폐 속으로 스며들었고, 곧바로 온몸의 기혈을 따라 번져나갔다. 소율은 석벽에 기대어 앉아 석양빛을 마주하며 그것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산령산…”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이 약을 얻는 과정은 청진산보다 훨씬 더 어려웠고, 실패할 위험도 훨씬 컸다. 로운엽을 대부분 써버리고 겨우 두 알만 얻은 터라, 감히 함부로 시험해 볼 수도 없었다. 그에게 있어 그것은 단순한 약석이 아니라, 앞으로의 수련을 좌우할 수 있는 귀중한 성과였다.
“독석은 아니겠지…” 그는 코끝에 스며드는 기운을 느끼며 오랫동안 살폈다. 자신의 경험으로 미루어 짐작하고 또 짐작한 끝에, 마침내 하늘이 어둑해지고 별빛이 번져갈 무렵 결심을 굳혔다. 소율은 산령산을 집어 들어 입에 넣었다.
약석은 청진산과 달리 곧바로 녹지 않았다. 그는 이를 악물고 몇 차례 씹어 바스러뜨린 뒤 억지로 삼켰다. 입안 가득 퍼지는 이질적인 감촉과 약간의 씁쓸함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잠시 기다렸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는 배를 쓸어내리며 조금 더 기다려 보았고, 혈맥을 돌려 기운을 순환시켰지만 결과는 같았다. 끝내 아무 변화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하군…” 소율은 낮게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한동안 깊은 사유에 잠겨 있던 그는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품속에서 작은 병을 꺼내더니, 그 안에 담긴 청진산 한 알을 꺼내어 입에 털어 넣었다.
청진산은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따스한 기운을 온몸에 퍼뜨렸다. 그 부드러운 약효가 혈맥을 따라 확산되자, 곧바로 산령산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두 약이 맞부딪히듯 뒤엉키는 순간, 소율의 전신 깊은 곳에서 믿기 어려운 불덩이 같은 열기가 터져 나왔다. 그것은 마치 억눌러 두었던 화염이 한순간에 폭발하듯 치솟아올라, 그의 혈맥을 타고 거세게 번져갔다. 동굴 안 공기마저 흔들리는 듯했고, 소홍이 놀란 듯 울음을 터트리며 옆으로 몸을 날렸다.
소율은 치솟는 화열을 억누르며 이를 악물었다. 전신을 휘감는 열기는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무언가 새로운 길이 열리는 듯한 전조처럼 느껴졌다. 그의 이마에는 굵은 땀이 맺혀 흘러내렸고, 숨결은 거칠어졌지만 눈빛은 오히려 또렷해졌다. 산령산과 청진산이 합쳐져 폭발적으로 솟구친 이 기운이 앞으로 자신의 수련을 어떻게 바꿀지, 그 순간 그는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었다.
며칠간 비워둔 탓인지 천막 안은 차가웠다. 내쉬는 숨이 하얀 안개처럼 번져 나와, 보기만 해도 서늘함이 스며들었다. 그곳엔 온기라고는 없었다. 뇌진의 집에서 느꼈던 따스함과는 전혀 다른, 삭막한 공간이었다.
소율은 말없이 마른 나뭇가지를 꺼내 불씨를 붙였다. 불길이 피어오르며 서서히 온기를 내뿜었지만, 그의 가슴속엔 알 수 없는 허전함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기혈은 이미 응혈경 3층에 달해 추위쯤은 견딜 수 있었으나, 그 밤엔 이상하게도 마음속 빈자리가 더 크게 다가왔다.
불빛이 퍼지자 천막 안은 조금씩 따뜻해졌고, 소율은 불가에 앉아 멍하니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어릴 적부터 그는 늘 뇌진과 북릉, 진흔을 부러워했다. 그들에게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자신을 친손주처럼 돌봐주었지만, 부족의 만공이라는 책임 때문에 늘 바빴다. 소율은 어려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법을 배웠고, 혼자 견디는 법을 배웠다. 고독 또한 그때부터 익숙해졌다.
밖에서는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칼날 같은 바람이 천막을 때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고, 틈새로 스며든 바람이 불길을 흔들었다. 소율은 무릎을 껴안고 오래도록 불빛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주워 온 아이라 했지… 그렇다면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직 살아 있는 걸까.”
그의 마음은 쓸쓸함으로 젖어 있었다. 평소엔 웃음으로 감춰 왔던 상처였으나, 뇌진의 집에서 느낀 온기를 뒤로하고 다시 이 얼어붙은 천막으로 돌아오니 도저히 감출 수 없었다.
그는 문득 백령을 떠올렸다. 그녀 또한 부모가 곁에 없었다. “지금쯤 백령은 잠들었을까, 아니면 나처럼 불가에 앉아 생각에 잠겼을까.” 은방울 같은 그녀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스쳐갔다. 그 순간 소율은 자신이 왜 그녀에게 묘한 끌림을 느끼는지 깨달았다. 그녀의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웃음과 장난 뒤에 숨겨진, 자신과 같은 고독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불길이 번지며 천막 안은 점차 따뜻해졌다. 차가운 기운은 사라지고 천막 벽에 맺힌 물방울이 반짝였다. 잠시나마 그 온기가 마음속 공허를 덮어주는 듯했지만, 곧 거센 돌풍이 불어닥쳤다. 온 마을을 휩쓸어버릴 듯한 바람은 눈발을 몰아와 천막의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매서운 한기와 눈송이가 쏟아져 들어오며 불길은 버티지 못하고 꺼져버렸다.
순식간에 사라진 온기를 바라보며 소율은 조용히 일어났다. 천막 밖으로 나와 눈보라 속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에 가려진 달빛이 흐릿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달을 보자 문득 월익이 떠올랐다. 그리고 화만 부락에서 보았던, 마지막 힘으로 글자를 새겨 남긴 한 구의 해골이 생각났다.
그의 머릿속에서 그 문구가 울려 퍼졌다.
“본디 도(道)는 만(蠻)의 욕망을 타고 팔방 끝까지 뻗나니,
불과 피가 하나 되어 창공을 태우고 하늘을 연소하리라……
불과 달이 구름을 헤치면, 광막한 천지 사이……
그때 깊이 사유하라. 피와 불이 번갈아 타올라 아홉은 극(極)이고 하나는 법(法)이라.
만화구배(蠻火九拜)를 올리면 배화의 통(拜火之通)이 열리리라!
푸른 하늘이여, 홀로 그대만이 고독 위에 선다!”
소율은 오래도록 그 말을 곱씹었다. 이번에는 예전보다 더 또렷하게 다가왔다.
“‘만(蠻)의 욕망이 팔방 끝까지 뻗는다’라… 욕망과 본능을 뜻하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부(夫)’는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스스로를 부른 것 같지는 않은데…”
그는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을 이었다.
“그리고 ‘불과 피가 하나 되어 창공을 태우고 하늘을 연소한다’… 불길을 혈맥과 합치라는 의미일까. 아니면 마음만으로도 하늘을 불태운다는 상징일까.”
그의 시선이 흔들리더니 곧 결론을 짚듯 중얼거렸다.
“‘피와 불이 번갈아 타올라 아홉은 극이고 하나는 법이라’… 혈화가 차례로 겹쳐져 극에 이른다는 뜻이로군. 그리고 마지막의 **‘만화구배를 올리면 배화의 통이 열린다’**는 건, 아홉 번 절하는 의식을 통해 불의 길에 통하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분명 하나의 만술이다!”
그러나 이내 다시 고개를 저었다.
“화월이 구름을 헤쳐야 한다는 조건… 혈월이 뜨는 날, 그때가 되어야 수련할 수 있다는 뜻이겠지.”
그렇게 생각에 잠긴 채 밤은 흘러갔고, 달빛은 아침빛에 삼켜졌다. 소율은 끝내 답을 얻지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 새벽에 천막을 나서는 부족 사람들을 지나 산으로 향했다.
“응혈경 4층에 오르려면 혈선 스물다섯 개가 필요하다. 지금의 나는 열한 줄에 불과하다. 더 수련에 몰두해야 한다. 그리고 산령산… 그것이 내 수련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소율의 몸은 숲을 가르며 내달렸다. 응혈경 3층에 이른 지금, 발걸음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벼웠고, 기혈이 흐르는 혈맥이 힘차게 고동치며 그를 앞으로 이끌었다. 산새가 흩어지고 눈발이 부유하는 산길을 가르며 달리자, 마치 온 세상이 숨을 죽이고 그의 질주를 지켜보는 듯했다. 정오 무렵에 이르자 그는 마침내 흑염봉 기슭에 닿았다.
그는 날쌔게 절벽을 타고 오르고 있었는데 귀에 익은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동굴 어귀에서 들려오는, 반가운 울음소리였다. 고개를 들자 작은 붉은 원숭이, 소홍의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입에 물고 있던 반쯤 먹은 열매를 던져 버리고는 두 눈을 반짝이며 소율을 향해 달려왔다. 이내 그의 어깨에 매달려 들뜬 울음을 토해냈다. 작은 몸이 그의 등에 매달리며 전해오는 체온은 따스했고, 오랜 벗을 다시 만난 듯한 기쁨이 소율의 얼굴에 번졌다.
그는 미소를 머금고 절벽을 더 올라 동굴 어귀에 다다랐다. 깊게 산바람을 들이마신 뒤, 소홍과 함께 몸을 굽혀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속은 늘 그랬듯 어둡고 차분했으나, 이제는 익숙한 안식처였다. 그곳에서의 나날은 고요히 흘렀다. 소율은 다시금 수산에 몰두하며 수련의 시간을 이어갔다. 밤이면 달을 올려다보며 ‘화월출운’이라는 구절을 곱씹었다. 달빛의 변화 하나조차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그는 동굴 벽을 깎아내 작은 구멍 몇 개를 뚫어 두었다. 덕분에 안에 있어도 고개만 들면 바깥 하늘과 달을 똑똑히 바라볼 수 있었다. 달빛은 어둑한 동굴 안으로 흘러들어와 그의 사유와 호흡을 감싸주었다.
며칠 후, 마침내 산령산이 완성되었다. 그것은 깊은 남빛을 띠는 작은 약석으로, 크기는 손가락 마디만 했지만, 눈에 담기만 해도 묘한 아우라가 감돌았다. 향은 진하지 않았으나 코끝에 대면 마치 산바람을 들이마신 듯한 청량한 기운이 폐 속으로 스며들었고, 곧바로 온몸의 기혈을 따라 번져나갔다. 소율은 석벽에 기대어 앉아 석양빛을 마주하며 그것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산령산…”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이 약을 얻는 과정은 청진산보다 훨씬 더 어려웠고, 실패할 위험도 훨씬 컸다. 로운엽을 대부분 써버리고 겨우 두 알만 얻은 터라, 감히 함부로 시험해 볼 수도 없었다. 그에게 있어 그것은 단순한 약석이 아니라, 앞으로의 수련을 좌우할 수 있는 귀중한 성과였다.
“독석은 아니겠지…” 그는 코끝에 스며드는 기운을 느끼며 오랫동안 살폈다. 자신의 경험으로 미루어 짐작하고 또 짐작한 끝에, 마침내 하늘이 어둑해지고 별빛이 번져갈 무렵 결심을 굳혔다. 소율은 산령산을 집어 들어 입에 넣었다.
약석은 청진산과 달리 곧바로 녹지 않았다. 그는 이를 악물고 몇 차례 씹어 바스러뜨린 뒤 억지로 삼켰다. 입안 가득 퍼지는 이질적인 감촉과 약간의 씁쓸함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잠시 기다렸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는 배를 쓸어내리며 조금 더 기다려 보았고, 혈맥을 돌려 기운을 순환시켰지만 결과는 같았다. 끝내 아무 변화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하군…” 소율은 낮게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한동안 깊은 사유에 잠겨 있던 그는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품속에서 작은 병을 꺼내더니, 그 안에 담긴 청진산 한 알을 꺼내어 입에 털어 넣었다.
청진산은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따스한 기운을 온몸에 퍼뜨렸다. 그 부드러운 약효가 혈맥을 따라 확산되자, 곧바로 산령산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두 약이 맞부딪히듯 뒤엉키는 순간, 소율의 전신 깊은 곳에서 믿기 어려운 불덩이 같은 열기가 터져 나왔다. 그것은 마치 억눌러 두었던 화염이 한순간에 폭발하듯 치솟아올라, 그의 혈맥을 타고 거세게 번져갔다. 동굴 안 공기마저 흔들리는 듯했고, 소홍이 놀란 듯 울음을 터트리며 옆으로 몸을 날렸다.
소율은 치솟는 화열을 억누르며 이를 악물었다. 전신을 휘감는 열기는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무언가 새로운 길이 열리는 듯한 전조처럼 느껴졌다. 그의 이마에는 굵은 땀이 맺혀 흘러내렸고, 숨결은 거칠어졌지만 눈빛은 오히려 또렷해졌다. 산령산과 청진산이 합쳐져 폭발적으로 솟구친 이 기운이 앞으로 자신의 수련을 어떻게 바꿀지, 그 순간 그는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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