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1화
조회 : 247 추천 : 0 글자수 : 4,520 자 2025-08-18
1화: 사형선고와 구원의 악마
회색빛 도시의 심장부, J 그룹 본사 최고층은 언제나 숨 막히는 고요함 속에 있었다. 정인서(32)는 자신의 제국을 상징하는 마천루의 꼭대기에서 냉철한 시선으로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손에는 붉은 인장이 찍힌 서류 한 장이 들려 있었다. 단순한 사업 보고서가 아니었다. J 그룹의 존망과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치명적인 '딜'에 대한 최종 확인 서류였다.
20년 전, J 그룹을 뒤흔들었던 비극적인 사고. 그 사고의 진실과 관련된 치명적인 증거가 정체불명의 적의 손에 들어갔다. 그 적은 정 회장에게 일주일 안에 모든 것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했고, 정 회장은 그 증거의 유효성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혹은 적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파격적인 '인간 방패'를 세우라고 지시했다. 언론과 대중에게 J 그룹 후계자의 약점은 사업적 비리가 아닌 사생활이 되도록. 충격적이고, 추악하며, 절대 숨길 수 없는... 사적인 약점. 그리고 인서가 정 회장으로부터 받은 지시는 바로 이것이었다. '일주일 안에 네 인생을 파멸시킬 만한, 세상이 뒤집힐 만한 스캔들을 만들어라. 네 모든 것을 걸고.'
인서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그는 자신의 완벽한 이미지를 스스로 파괴해야 했다. 가문의 어두운 비밀을 숨기기 위해, 자신은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을 만한 '치명적인 남자'를 옆에 두어야 했다. 모두가 그에게 등을 돌릴 만한 파격적인 스캔들. 단 일주일 안에.
"사장님."
노크 소리와 함께 비서실장 김민준이 들어섰다. 그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그는 인서의 지시를 따르고 있었지만, 이번 임무가 얼마나 위험하고 비상식적인지 알고 있었다.
"준비됐나."
인서가 나직이 물었다.
"네. 후보군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장님의 조건... '세상이 뒤집힐 만한 스캔들 감'에 맞는 인물을 단기간에 찾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김민준은 망설이며 보고했다. 인서가 요구한 조건은 단순한 '가짜 연인'이 아니었다. 사회적으로 용납받기 어렵고, 허점이 많아 금방 파헤쳐질 만하며, 동시에 언론의 관심을 폭발적으로 끌어들일 만한... 즉, 인서 자신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파멸시킬 만한 '약점' 그 자체를 찾고 있었다.
"시간이 없어. 당장 찾아내.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인서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그의 눈빛은 목표를 향해 불타올랐다. 가문의 비밀이 드러나는 것보다, 자신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것이 그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식이었다.
같은 시각, 도시의 가장 낮은 곳. 낡고 습한 반지하 방. 허혁(25)은 휴대폰을 쥔 채 절망적인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입원비 추가분 마감 오늘 정오까지. 미납 시 치료 중단 및 퇴원 조치.]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문자를 읽던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어머니, 박미선(50대 후반)의 병원비였다. 간신히 연명하던 어머니의 치료를 더 이상 받을 수 없다니. 눈앞이 캄캄했다.
빚쟁이 최상호(30대 초반)는 물론이고, 다른 빚쟁이들까지 사채업자를 동원해 그를 쪼아댔다. 아버지가 남긴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어머니는 쓰러지셨다. 여동생 허지은(20)은 오빠의 짐이 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허혁! 문 열어! 오늘 안 내놓으면 네 어머니 병실 찾아갈 줄 알아!"
최상호의 비열한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 허혁은 숨죽였다. 어머니를 건드리겠다니. 분노와 함께 무력감이 그를 덮쳤다. 가진 돈은 단돈 몇천 원. 일용직 노동으로 하루 벌어 하루 살기도 빠듯했다. 이대로는 어머니도, 동생도 지킬 수 없었다.
절망은 때로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어떻게든 돈을 구해야 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그때, 낡은 노트북 화면에 뜬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J 그룹 후계자 정인서 사장, 파격적인 행보 예고?]. 인서의 차가운 얼굴 사진 옆에는 '파격적인', '거액의 프로젝트' 같은 단어들이 보였다. 허혁은 마른침을 삼켰다. 어쩌면...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있지 않을까. 밑져야 본전이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그는 낡은 옷을 대충 걸치고 반지하 방을 나섰다. 최상호의 욕설이 등 뒤에서 들려왔지만, 허혁은 돌아보지 않았다.
J 그룹 본사 앞. 허혁은 웅장한 빌딩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하지만 어머니의 희미한 숨소리, 최상호의 비열한 얼굴이 그를 앞으로 밀어냈다. 그는 안내 데스크 직원에게 면회를 요청했지만, 당연히 문전박대당했다. 정 사장은 이런 하찮은 자신을 만날 리 없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빌딩 앞에서 무작정 정인서를 기다렸다. 지나가는 수많은 고급 승용차들, 경호원들, 완벽한 옷차림의 사람들. 그 모든 것이 다른 세계의 풍경이었다.
오후가 깊어갈 무렵, 검은 고급 세단 한 대가 빌딩 앞에 멈췄다. 경호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그 안에서 정인서가 내렸다. 그는 마치 차가운 얼음 조각 같았다. 완벽하고, 아름다웠지만, 다가갈 수 없는 냉기가 느껴졌다.
허혁은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그는 무작정 정인서를 향해 달려갔다.
"정인서 사장님! 잠시만요!"
경호원들이 달려들어 허혁을 제지했다. 허혁은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돈이 필요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지경입니다! 뭐든지 하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시켜주십시오!"
그의 절규에 정인서의 시선이 닿았다. 차갑고 무심한 눈. 하지만 허혁의 '뭐든지', '돈', '어머니가 돌아가실 지경'이라는 말에 인서의 눈빛에 미세한 변화가 일었다. 흥미? 아니면... 계산?
인서는 경호원들에게 손짓하여 허혁을 놓으라고 했다. 허혁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인서 앞에 섰다. 가까이서 본 인서는 더 비현실적이었다. 차가운 눈빛, 완벽한 외모.
"뭐든지 하겠다고?"
인서의 목소리는 낮고 깊었다.
"네... 불법적인 일만 아니면... 제발... 돈 좀..."
허혁은 애원했다.
인서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그의 눈빛은 허혁을 훑어보았다. 젊고, 순진해 보이지만 절박한 눈빛.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배경. 완벽한 '인간 방패'의 조건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것일지도.
"불법적인 건 아니야. 하지만...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추악하고... 파멸적인 일이 될 거다."
인서가 나직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유혹과 경고가 동시에 담겨 있었다. 허혁은 인서의 말에 혼란스러웠지만, 눈앞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뭔데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인서가 허혁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그의 눈빛이 허혁의 눈동자를 깊숙이 들여다보았다. 마치 허혁의 영혼까지 꿰뚫어 보려는 듯.
"나와... '결혼'해야겠어. 그것도... 당장."
인서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계약 연애가 아닌, '결혼'. 그것도 당장. 허혁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네...? 결혼이요...? 제가... 사장님과...?"
"그래. 가짜로. 서류상으로만. 하지만 세상에는... 우리가 진심으로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으로 알려질 거다."
인서의 목소리는 차가웠지만 단호했다.
"대신... 조건이 있지. 이 계약은 절대 비밀. 계약 기간 동안... 나의 '배우자'로서 완벽한 역할을 해야 해. 세상 모든 사람을 속일 만큼. 그리고... 내 모든 지시에 따라야 한다. 네 자유, 네 사생활... 모든 것은 이제 없어."
인서의 말은 잔혹했다. 결혼이라는 이름 아래, 그의 모든 것을 통제하겠다는 선언이었다. 허혁은 숨이 막혔다. 돈은 절실했지만, 이건 너무나 큰 대가였다. 영혼을 팔아도 부족할 만큼.
"생각할 시간을 좀 주십시오..."
허혁이 힘겹게 말했다.
정인서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시간 없어. 선택지는 두 개뿐이야. 지금... 나랑 같이 가든가. 아니면... 여기서 뒤돌아서서... 네 어머니와 동생이 어떻게 되는지... 직접 확인하든가."
인서의 마지막 말은 노골적인 협박이었다. 허혁은 충격받았다. 이 남자는 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을 정확히 짚었다. 어머니와 동생.
인서의 눈빛은 허혁을 압도했다. 차갑고 잔혹했지만,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허혁은 숨을 헐떡였다. 어머니의 위독한 모습, 동생의 얼굴, 최상호의 비열한 웃음이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마침내 허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목소리는 작고 떨렸다.
"가... 가겠습니다..."
그의 대답에 인서의 입가에 미세한 만족스러운 미소가 스쳤다. 그는 허혁에게 손을 내밀었다.
"좋습니다. 환영합니다... 나의 새로운 '배우자'."
인서의 손은 차가웠지만, 허혁은 그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 손을 잡는 순간, 그는 자신이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뜀을 직감했다. 계약 연애가 아닌, 계약 결혼. 그의 삶은 이제 정인서라는 파멸적인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었다. 정인서의 차가운 손은 그에게 구원의 손길이자, 동시에 지옥으로 향하는 사슬이었다.
회색빛 도시의 심장부, J 그룹 본사 최고층은 언제나 숨 막히는 고요함 속에 있었다. 정인서(32)는 자신의 제국을 상징하는 마천루의 꼭대기에서 냉철한 시선으로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손에는 붉은 인장이 찍힌 서류 한 장이 들려 있었다. 단순한 사업 보고서가 아니었다. J 그룹의 존망과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치명적인 '딜'에 대한 최종 확인 서류였다.
20년 전, J 그룹을 뒤흔들었던 비극적인 사고. 그 사고의 진실과 관련된 치명적인 증거가 정체불명의 적의 손에 들어갔다. 그 적은 정 회장에게 일주일 안에 모든 것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했고, 정 회장은 그 증거의 유효성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혹은 적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파격적인 '인간 방패'를 세우라고 지시했다. 언론과 대중에게 J 그룹 후계자의 약점은 사업적 비리가 아닌 사생활이 되도록. 충격적이고, 추악하며, 절대 숨길 수 없는... 사적인 약점. 그리고 인서가 정 회장으로부터 받은 지시는 바로 이것이었다. '일주일 안에 네 인생을 파멸시킬 만한, 세상이 뒤집힐 만한 스캔들을 만들어라. 네 모든 것을 걸고.'
인서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그는 자신의 완벽한 이미지를 스스로 파괴해야 했다. 가문의 어두운 비밀을 숨기기 위해, 자신은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을 만한 '치명적인 남자'를 옆에 두어야 했다. 모두가 그에게 등을 돌릴 만한 파격적인 스캔들. 단 일주일 안에.
"사장님."
노크 소리와 함께 비서실장 김민준이 들어섰다. 그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그는 인서의 지시를 따르고 있었지만, 이번 임무가 얼마나 위험하고 비상식적인지 알고 있었다.
"준비됐나."
인서가 나직이 물었다.
"네. 후보군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장님의 조건... '세상이 뒤집힐 만한 스캔들 감'에 맞는 인물을 단기간에 찾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김민준은 망설이며 보고했다. 인서가 요구한 조건은 단순한 '가짜 연인'이 아니었다. 사회적으로 용납받기 어렵고, 허점이 많아 금방 파헤쳐질 만하며, 동시에 언론의 관심을 폭발적으로 끌어들일 만한... 즉, 인서 자신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파멸시킬 만한 '약점' 그 자체를 찾고 있었다.
"시간이 없어. 당장 찾아내.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인서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그의 눈빛은 목표를 향해 불타올랐다. 가문의 비밀이 드러나는 것보다, 자신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것이 그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식이었다.
같은 시각, 도시의 가장 낮은 곳. 낡고 습한 반지하 방. 허혁(25)은 휴대폰을 쥔 채 절망적인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입원비 추가분 마감 오늘 정오까지. 미납 시 치료 중단 및 퇴원 조치.]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문자를 읽던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어머니, 박미선(50대 후반)의 병원비였다. 간신히 연명하던 어머니의 치료를 더 이상 받을 수 없다니. 눈앞이 캄캄했다.
빚쟁이 최상호(30대 초반)는 물론이고, 다른 빚쟁이들까지 사채업자를 동원해 그를 쪼아댔다. 아버지가 남긴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어머니는 쓰러지셨다. 여동생 허지은(20)은 오빠의 짐이 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허혁! 문 열어! 오늘 안 내놓으면 네 어머니 병실 찾아갈 줄 알아!"
최상호의 비열한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 허혁은 숨죽였다. 어머니를 건드리겠다니. 분노와 함께 무력감이 그를 덮쳤다. 가진 돈은 단돈 몇천 원. 일용직 노동으로 하루 벌어 하루 살기도 빠듯했다. 이대로는 어머니도, 동생도 지킬 수 없었다.
절망은 때로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어떻게든 돈을 구해야 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그때, 낡은 노트북 화면에 뜬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J 그룹 후계자 정인서 사장, 파격적인 행보 예고?]. 인서의 차가운 얼굴 사진 옆에는 '파격적인', '거액의 프로젝트' 같은 단어들이 보였다. 허혁은 마른침을 삼켰다. 어쩌면...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있지 않을까. 밑져야 본전이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그는 낡은 옷을 대충 걸치고 반지하 방을 나섰다. 최상호의 욕설이 등 뒤에서 들려왔지만, 허혁은 돌아보지 않았다.
J 그룹 본사 앞. 허혁은 웅장한 빌딩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하지만 어머니의 희미한 숨소리, 최상호의 비열한 얼굴이 그를 앞으로 밀어냈다. 그는 안내 데스크 직원에게 면회를 요청했지만, 당연히 문전박대당했다. 정 사장은 이런 하찮은 자신을 만날 리 없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빌딩 앞에서 무작정 정인서를 기다렸다. 지나가는 수많은 고급 승용차들, 경호원들, 완벽한 옷차림의 사람들. 그 모든 것이 다른 세계의 풍경이었다.
오후가 깊어갈 무렵, 검은 고급 세단 한 대가 빌딩 앞에 멈췄다. 경호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그 안에서 정인서가 내렸다. 그는 마치 차가운 얼음 조각 같았다. 완벽하고, 아름다웠지만, 다가갈 수 없는 냉기가 느껴졌다.
허혁은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그는 무작정 정인서를 향해 달려갔다.
"정인서 사장님! 잠시만요!"
경호원들이 달려들어 허혁을 제지했다. 허혁은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돈이 필요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지경입니다! 뭐든지 하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시켜주십시오!"
그의 절규에 정인서의 시선이 닿았다. 차갑고 무심한 눈. 하지만 허혁의 '뭐든지', '돈', '어머니가 돌아가실 지경'이라는 말에 인서의 눈빛에 미세한 변화가 일었다. 흥미? 아니면... 계산?
인서는 경호원들에게 손짓하여 허혁을 놓으라고 했다. 허혁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인서 앞에 섰다. 가까이서 본 인서는 더 비현실적이었다. 차가운 눈빛, 완벽한 외모.
"뭐든지 하겠다고?"
인서의 목소리는 낮고 깊었다.
"네... 불법적인 일만 아니면... 제발... 돈 좀..."
허혁은 애원했다.
인서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그의 눈빛은 허혁을 훑어보았다. 젊고, 순진해 보이지만 절박한 눈빛.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배경. 완벽한 '인간 방패'의 조건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것일지도.
"불법적인 건 아니야. 하지만...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추악하고... 파멸적인 일이 될 거다."
인서가 나직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유혹과 경고가 동시에 담겨 있었다. 허혁은 인서의 말에 혼란스러웠지만, 눈앞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뭔데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인서가 허혁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그의 눈빛이 허혁의 눈동자를 깊숙이 들여다보았다. 마치 허혁의 영혼까지 꿰뚫어 보려는 듯.
"나와... '결혼'해야겠어. 그것도... 당장."
인서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계약 연애가 아닌, '결혼'. 그것도 당장. 허혁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네...? 결혼이요...? 제가... 사장님과...?"
"그래. 가짜로. 서류상으로만. 하지만 세상에는... 우리가 진심으로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으로 알려질 거다."
인서의 목소리는 차가웠지만 단호했다.
"대신... 조건이 있지. 이 계약은 절대 비밀. 계약 기간 동안... 나의 '배우자'로서 완벽한 역할을 해야 해. 세상 모든 사람을 속일 만큼. 그리고... 내 모든 지시에 따라야 한다. 네 자유, 네 사생활... 모든 것은 이제 없어."
인서의 말은 잔혹했다. 결혼이라는 이름 아래, 그의 모든 것을 통제하겠다는 선언이었다. 허혁은 숨이 막혔다. 돈은 절실했지만, 이건 너무나 큰 대가였다. 영혼을 팔아도 부족할 만큼.
"생각할 시간을 좀 주십시오..."
허혁이 힘겹게 말했다.
정인서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시간 없어. 선택지는 두 개뿐이야. 지금... 나랑 같이 가든가. 아니면... 여기서 뒤돌아서서... 네 어머니와 동생이 어떻게 되는지... 직접 확인하든가."
인서의 마지막 말은 노골적인 협박이었다. 허혁은 충격받았다. 이 남자는 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을 정확히 짚었다. 어머니와 동생.
인서의 눈빛은 허혁을 압도했다. 차갑고 잔혹했지만,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허혁은 숨을 헐떡였다. 어머니의 위독한 모습, 동생의 얼굴, 최상호의 비열한 웃음이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마침내 허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목소리는 작고 떨렸다.
"가... 가겠습니다..."
그의 대답에 인서의 입가에 미세한 만족스러운 미소가 스쳤다. 그는 허혁에게 손을 내밀었다.
"좋습니다. 환영합니다... 나의 새로운 '배우자'."
인서의 손은 차가웠지만, 허혁은 그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 손을 잡는 순간, 그는 자신이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뜀을 직감했다. 계약 연애가 아닌, 계약 결혼. 그의 삶은 이제 정인서라는 파멸적인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었다. 정인서의 차가운 손은 그에게 구원의 손길이자, 동시에 지옥으로 향하는 사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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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결혼의 끝
31.에필로그조회 : 7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974 30.최종화조회 : 8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473 29.제29화조회 : 10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434 28.제28화조회 : 8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085 27.제27화조회 : 8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471 26.제26화조회 : 9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536 25.제25화조회 : 11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176 24.제24화조회 : 10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3,865 23.제23화조회 : 14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6,003 22.제22화조회 : 9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10 21.제21화조회 : 10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3,754 20.제20화조회 : 6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3,931 19.제19화조회 : 7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369 18.제18화조회 : 11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19 17.제17화조회 : 10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711 16.제16화조회 : 6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69 15.제15화조회 : 9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294 14.제14화조회 : 12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523 13.제13화조회 : 10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810 12.제12화조회 : 8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832 11.제11화조회 : 15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966 10.제10화조회 : 4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535 9.제09화조회 : 6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957 8.제08화조회 : 10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481 7.제07화조회 : 8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959 6.제06화조회 : 6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651 5.제05화조회 : 12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163 4.제04화조회 : 12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481 3.제03화조회 : 11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57 2.제02화조회 : 9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3,883 1.제01화조회 : 25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