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화
조회 : 98 추천 : 0 글자수 : 5,010 자 2025-08-22
22화: 깨어진 고요, 납치된 친구
별장에서의 밤은 깊어지고 있었다. 벽난로의 불꽃이 잦아들고, 인서와 허혁은 서로의 숨결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깊은 키스를 나누었다. 그 키스는 단순한 계약이나 연기를 넘어선, 두 사람의 고독과 불안, 그리고 서로에게서 발견한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뒤섞인 위험한 교감이었다. 허혁은 인서의 차가운 가면 뒤에 숨겨진 인간적인 고뇌와 절박함을 느끼며, 그에게 더욱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이 남자를 이해하고 싶었다. 그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싶다는 위험한 생각이 들었다.
입술이 떨어진 후, 인서는 허혁의 눈을 깊숙이 들여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복잡했지만, 이전의 냉철함 대신 어떤 아픔과 흔들림 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
"허혁 씨."
인서가 나직이 허혁의 이름을 불렀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고, 미세하게 떨렸다.
"나는... 당신을... 놓아줄 생각이 없습니다."
그의 말은 집착처럼 들렸지만, 동시에 허혁 없이는 버틸 수 없다는 절박한 고백처럼 들리기도 했다. 허혁은 인서의 그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그는 인서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위로의 손길이었다. 인서는 허혁의 품에 기대어 잠시 눈을 감았다. J 그룹의 후계자, 차가운 전략가가 아닌, 상처받고 지친 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인서의 개인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이 별장에서는 업무 연락을 받지 않던 그였다. 인서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갑게 굳어졌다. 그는 허혁에게서 몸을 떼고 전화를 받았다. 김민준이었다.
"사장님. 큰일 났습니다."
김민준의 목소리는 다급했고,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무슨 일이야."
인서의 목소리가 다시 냉철한 후계자의 그것으로 돌아왔다.
"김도진 씨가... 사라졌습니다."
김민준의 말에 인서와 허혁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김도진이 사라졌다니. 저택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자세히 보고해."
인서의 목소리는 차가웠지만, 그 안에 담긴 분노는 숨길 수 없었다.
"경호원들이 순찰을 돌던 중... 김도진 씨 방이 비어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CCTV 확인 결과... 김도진 씨가... 정원 쪽 환기구를 통해 외부와 접촉한 흔적이 있었고... 그 후... 저택의 보안 시스템 일부가 마비된 틈을 타... 외부로 나간 것 같습니다."
김민준의 보고는 충격적이었다. 김도진이 스스로 탈출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정우진과 차은서의 짓이군."
인서가 나직이 말했다. 그의 눈빛이 살벌하게 빛났다.
"네. 최상호가... 김도진 씨에게 접근하여... 탈출을 돕겠다고 유혹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김도진 씨를... 납치한 것으로 보입니다."
납치. 허혁은 그 단어에 숨을 쉴 수 없었다. 김도진이 납치되었다니. 자신 때문에. 정우진과 차은서의 손에. 공포가 밀려왔다.
"사장님! 도진이가... 도진이가 납치됐다고요?! 안 돼! 구해줘야 해요!"
허혁은 인서에게 애원하며 매달렸다. 그의 얼굴은 눈물과 공포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인서는 허혁의 어깨를 단단히 잡았다. 그의 눈빛은 차가웠지만, 허혁을 진정시키려는 듯했다.
"진정하세요, 허혁 씨. 내가... 반드시 구해낼 겁니다."
인서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그의 눈빛에는 김도진을 구하겠다는 의지와 함께, 정우진과 차은서에 대한 깊은 분노가 담겨 있었다.
"김 비서. 당장 모든 인력을 동원해. 정우진과 차은서, 최상호의 행방을 추적해. 김도진 씨를 찾을 때까지... 잠 한숨 자지 마."
인서의 지시는 무자비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자비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별장에서의 짧은 평화는 깨지고, 두 사람은 다시 잔혹한 현실로 돌아왔다. 허혁은 친구가 자신 때문에 납치되었다는 죄책감과 공포에 떨었고, 인서는 자신의 계획이 틀어지고 허혁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한편, 낡고 먼지 쌓인 창고. 김도진은 거친 밧줄에 묶인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최상호에게 속았다. 탈출을 돕겠다는 그의 말을 믿고 저택을 빠져나왔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최상호와 정우진의 부하들이었다. 그들은 김도진을 강제로 차에 태워 이곳으로 끌고 왔다.
김도진은 분노와 함께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책했다. 조력자의 경고를 무시하고 최상호를 믿은 대가였다. 허혁을 구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마저 위험에 빠뜨렸다.
그는 필사적으로 숨겨둔 USB 메모리를 떠올렸다. 납치당하는 과정에서 몰래 옷 안쪽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다. 그 안에 담긴 진실. 허혁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기록, J 그룹의 비리. 이것이 허혁과 자신을 구할 유일한 무기일지도 몰랐다.
창고 문이 열리고, 정우진과 차은서가 들어섰다. 그들의 얼굴에는 승리자의 미소가 걸려 있었다.
"김도진 군. 환영합니다."
정우진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이런 곳에서 뵙게 될 줄은 몰랐네요. 저택 생활은... 어땠습니까? 금빛 새장... 마음에 들었나요?"
차은서의 목소리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김도진은 그들을 노려보았다.
"너희들... 대체 원하는 게 뭐야!"
"원하는 것? 간단해."
정우진이 김도진에게 다가와 그의 턱을 잡았다.
"정인서의 몰락. 그리고... 허혁 그 애송이의 파멸."
정우진의 눈빛이 살벌하게 빛났다.
"너는... 아주 유용한 인질이야, 김도진 군. 네 친구 허혁이... 너를 구하기 위해... 어떤 짓까지 할 수 있을지... 궁금하지 않나?"
차은서가 나직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잔혹한 흥미가 담겨 있었다.
"허혁은... 너희들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거야! 인서 사장님께서... 나를 구해주실 거라고!"
김도진은 애써 소리쳤지만,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인서? 하하하! 그 자식이... 네 목숨과 자신의 후계자 자리를 맞바꿀 것 같아?"
정우진이 비웃었다.
"인서는... 너를 버릴 거야. 허혁 그 애송이를 지키기 위해... 아니...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너를 희생시키겠지."
차은서의 말은 김도진의 마음을 흔들었다. 인서라면... 그럴 수도 있었다. 그의 차가운 계산과 통제욕을 김도진은 이미 경험했다.
그때, 정우진이 김도진의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USB 메모리... 인서의 서재에서 훔친 게... 있다고 들었는데. 어디 있나?"
김도진은 숨을 멈췄다. 그들이 USB 메모리의 존재까지 알고 있다니. 최상호가 말한 걸까. 아니면 저택 안에...
정우진의 부하들이 김도진의 몸을 수색했다. 김도진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옷 안쪽에 숨겨둔 USB 메모리가 발견되었다.
"찾았군."
정우진이 USB 메모리를 손에 쥐고 사악하게 웃었다.
"이 안에... 인서와 J 그룹을 무너뜨릴... 결정적인 증거가 들어 있겠지. 고맙다, 김도진 군. 네 덕분에... 일이 아주 쉬워졌어."
김도진은 절망했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USB 메모리마저 빼앗겼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다. 허혁도, 자신도... 인서도...
저택으로 돌아온 인서와 허혁은 김민준에게서 보고를 받았다. 김도진이 납치된 장소는 파악했지만, 정우진 측의 경비가 삼엄하여 섣불리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허혁은 안절부절못하며 서재 안을 서성였다. 친구가 위험에 처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그를 괴롭혔다.
"사장님... 제발... 도진이를... 도진이를 구해주세요..."
허혁은 인서에게 애원했다.
인서는 차갑게 굳은 얼굴로 지도를 보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복잡한 계산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정우진이 김도진을 납치한 것은 인서와 허혁을 협박하기 위함이었다. 섣불리 움직이면 김도진의 목숨이 위험했다.
"정우진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김민준이 보고했다.
"뭐라고 하더군."
인서가 물었다.
"김도진 군의 목숨을 담보로... 사장님께... J 그룹 후계자 자리에서 물러나고... 허혁 씨를... 버리라고... 요구했습니다."
김민준의 말에 허혁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정우진의 잔혹한 선택지. 인서는 어떤 선택을 할까. 후계자 자리와 자신, 그리고 김도진의 목숨.
인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차가웠고, 속을 알 수 없었다. 허혁은 인서의 침묵에 불안했다. 그가 자신과 김도진을 버리고 후계자 자리를 택할까 봐 두려웠다.
"사장님... 대답해주세요... 도진이를... 도진이를 버리실 건가요...?"
허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차올랐다.
인서는 허혁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깊고 복잡했다. 차가움, 분노, 그리고... 알 수 없는 고통.
"나는..."
인서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고, 갈라졌다.
"나는... 누구도... 버리지 않아."
인서의 말에 허혁은 숨을 멈췄다. 그의 눈빛은 진심 같았다.
"정우진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겁니다. 그 자식은... 내 방식대로... 처리할 거니까."
인서의 눈빛이 살벌하게 빛났다. 그는 정우진의 협박에 굴복하는 대신, 정면으로 맞서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김 비서. 정우진에게... 협상에 응하겠다고... 거짓 정보를 흘려. 그리고... 내가 직접 가겠다고... 전해."
인서가 지시했다.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사장님! 위험합니다! 혼자 가시는 것은...!"
김민준이 반대했다.
"혼자 가지 않아."
인서가 나직이 말했다. 그의 시선이 허혁에게 향했다.
"허혁 씨. 나와... 함께 갑시다."
인서의 말에 허혁은 놀랐다. 자신과 함께 가자니. 위험한 곳에.
"당신은... 정우진이 원하는... 또 다른 인질이니까. 당신이 함께 가면... 정우진은 방심할 겁니다."
인서의 말은 냉철했지만, 허혁은 그 속에서 자신을 믿고 함께 싸우자는 인서의 의지를 읽었다.
"그리고... 당신의 친구는... 당신이 직접... 구해야지."
인서의 눈빛은 차가웠지만, 그 안에 담긴 믿음이 허혁의 마음을 흔들었다. 허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려웠지만, 인서와 함께라면... 김도진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별장에서의 밤은 깊어지고 있었다. 벽난로의 불꽃이 잦아들고, 인서와 허혁은 서로의 숨결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깊은 키스를 나누었다. 그 키스는 단순한 계약이나 연기를 넘어선, 두 사람의 고독과 불안, 그리고 서로에게서 발견한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뒤섞인 위험한 교감이었다. 허혁은 인서의 차가운 가면 뒤에 숨겨진 인간적인 고뇌와 절박함을 느끼며, 그에게 더욱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이 남자를 이해하고 싶었다. 그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싶다는 위험한 생각이 들었다.
입술이 떨어진 후, 인서는 허혁의 눈을 깊숙이 들여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복잡했지만, 이전의 냉철함 대신 어떤 아픔과 흔들림 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
"허혁 씨."
인서가 나직이 허혁의 이름을 불렀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고, 미세하게 떨렸다.
"나는... 당신을... 놓아줄 생각이 없습니다."
그의 말은 집착처럼 들렸지만, 동시에 허혁 없이는 버틸 수 없다는 절박한 고백처럼 들리기도 했다. 허혁은 인서의 그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그는 인서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위로의 손길이었다. 인서는 허혁의 품에 기대어 잠시 눈을 감았다. J 그룹의 후계자, 차가운 전략가가 아닌, 상처받고 지친 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인서의 개인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이 별장에서는 업무 연락을 받지 않던 그였다. 인서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갑게 굳어졌다. 그는 허혁에게서 몸을 떼고 전화를 받았다. 김민준이었다.
"사장님. 큰일 났습니다."
김민준의 목소리는 다급했고,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무슨 일이야."
인서의 목소리가 다시 냉철한 후계자의 그것으로 돌아왔다.
"김도진 씨가... 사라졌습니다."
김민준의 말에 인서와 허혁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김도진이 사라졌다니. 저택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자세히 보고해."
인서의 목소리는 차가웠지만, 그 안에 담긴 분노는 숨길 수 없었다.
"경호원들이 순찰을 돌던 중... 김도진 씨 방이 비어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CCTV 확인 결과... 김도진 씨가... 정원 쪽 환기구를 통해 외부와 접촉한 흔적이 있었고... 그 후... 저택의 보안 시스템 일부가 마비된 틈을 타... 외부로 나간 것 같습니다."
김민준의 보고는 충격적이었다. 김도진이 스스로 탈출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정우진과 차은서의 짓이군."
인서가 나직이 말했다. 그의 눈빛이 살벌하게 빛났다.
"네. 최상호가... 김도진 씨에게 접근하여... 탈출을 돕겠다고 유혹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김도진 씨를... 납치한 것으로 보입니다."
납치. 허혁은 그 단어에 숨을 쉴 수 없었다. 김도진이 납치되었다니. 자신 때문에. 정우진과 차은서의 손에. 공포가 밀려왔다.
"사장님! 도진이가... 도진이가 납치됐다고요?! 안 돼! 구해줘야 해요!"
허혁은 인서에게 애원하며 매달렸다. 그의 얼굴은 눈물과 공포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인서는 허혁의 어깨를 단단히 잡았다. 그의 눈빛은 차가웠지만, 허혁을 진정시키려는 듯했다.
"진정하세요, 허혁 씨. 내가... 반드시 구해낼 겁니다."
인서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그의 눈빛에는 김도진을 구하겠다는 의지와 함께, 정우진과 차은서에 대한 깊은 분노가 담겨 있었다.
"김 비서. 당장 모든 인력을 동원해. 정우진과 차은서, 최상호의 행방을 추적해. 김도진 씨를 찾을 때까지... 잠 한숨 자지 마."
인서의 지시는 무자비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자비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별장에서의 짧은 평화는 깨지고, 두 사람은 다시 잔혹한 현실로 돌아왔다. 허혁은 친구가 자신 때문에 납치되었다는 죄책감과 공포에 떨었고, 인서는 자신의 계획이 틀어지고 허혁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한편, 낡고 먼지 쌓인 창고. 김도진은 거친 밧줄에 묶인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최상호에게 속았다. 탈출을 돕겠다는 그의 말을 믿고 저택을 빠져나왔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최상호와 정우진의 부하들이었다. 그들은 김도진을 강제로 차에 태워 이곳으로 끌고 왔다.
김도진은 분노와 함께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책했다. 조력자의 경고를 무시하고 최상호를 믿은 대가였다. 허혁을 구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마저 위험에 빠뜨렸다.
그는 필사적으로 숨겨둔 USB 메모리를 떠올렸다. 납치당하는 과정에서 몰래 옷 안쪽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다. 그 안에 담긴 진실. 허혁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기록, J 그룹의 비리. 이것이 허혁과 자신을 구할 유일한 무기일지도 몰랐다.
창고 문이 열리고, 정우진과 차은서가 들어섰다. 그들의 얼굴에는 승리자의 미소가 걸려 있었다.
"김도진 군. 환영합니다."
정우진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이런 곳에서 뵙게 될 줄은 몰랐네요. 저택 생활은... 어땠습니까? 금빛 새장... 마음에 들었나요?"
차은서의 목소리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김도진은 그들을 노려보았다.
"너희들... 대체 원하는 게 뭐야!"
"원하는 것? 간단해."
정우진이 김도진에게 다가와 그의 턱을 잡았다.
"정인서의 몰락. 그리고... 허혁 그 애송이의 파멸."
정우진의 눈빛이 살벌하게 빛났다.
"너는... 아주 유용한 인질이야, 김도진 군. 네 친구 허혁이... 너를 구하기 위해... 어떤 짓까지 할 수 있을지... 궁금하지 않나?"
차은서가 나직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잔혹한 흥미가 담겨 있었다.
"허혁은... 너희들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거야! 인서 사장님께서... 나를 구해주실 거라고!"
김도진은 애써 소리쳤지만,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인서? 하하하! 그 자식이... 네 목숨과 자신의 후계자 자리를 맞바꿀 것 같아?"
정우진이 비웃었다.
"인서는... 너를 버릴 거야. 허혁 그 애송이를 지키기 위해... 아니...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너를 희생시키겠지."
차은서의 말은 김도진의 마음을 흔들었다. 인서라면... 그럴 수도 있었다. 그의 차가운 계산과 통제욕을 김도진은 이미 경험했다.
그때, 정우진이 김도진의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USB 메모리... 인서의 서재에서 훔친 게... 있다고 들었는데. 어디 있나?"
김도진은 숨을 멈췄다. 그들이 USB 메모리의 존재까지 알고 있다니. 최상호가 말한 걸까. 아니면 저택 안에...
정우진의 부하들이 김도진의 몸을 수색했다. 김도진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옷 안쪽에 숨겨둔 USB 메모리가 발견되었다.
"찾았군."
정우진이 USB 메모리를 손에 쥐고 사악하게 웃었다.
"이 안에... 인서와 J 그룹을 무너뜨릴... 결정적인 증거가 들어 있겠지. 고맙다, 김도진 군. 네 덕분에... 일이 아주 쉬워졌어."
김도진은 절망했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USB 메모리마저 빼앗겼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다. 허혁도, 자신도... 인서도...
저택으로 돌아온 인서와 허혁은 김민준에게서 보고를 받았다. 김도진이 납치된 장소는 파악했지만, 정우진 측의 경비가 삼엄하여 섣불리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허혁은 안절부절못하며 서재 안을 서성였다. 친구가 위험에 처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그를 괴롭혔다.
"사장님... 제발... 도진이를... 도진이를 구해주세요..."
허혁은 인서에게 애원했다.
인서는 차갑게 굳은 얼굴로 지도를 보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복잡한 계산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정우진이 김도진을 납치한 것은 인서와 허혁을 협박하기 위함이었다. 섣불리 움직이면 김도진의 목숨이 위험했다.
"정우진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김민준이 보고했다.
"뭐라고 하더군."
인서가 물었다.
"김도진 군의 목숨을 담보로... 사장님께... J 그룹 후계자 자리에서 물러나고... 허혁 씨를... 버리라고... 요구했습니다."
김민준의 말에 허혁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정우진의 잔혹한 선택지. 인서는 어떤 선택을 할까. 후계자 자리와 자신, 그리고 김도진의 목숨.
인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차가웠고, 속을 알 수 없었다. 허혁은 인서의 침묵에 불안했다. 그가 자신과 김도진을 버리고 후계자 자리를 택할까 봐 두려웠다.
"사장님... 대답해주세요... 도진이를... 도진이를 버리실 건가요...?"
허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차올랐다.
인서는 허혁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깊고 복잡했다. 차가움, 분노, 그리고... 알 수 없는 고통.
"나는..."
인서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고, 갈라졌다.
"나는... 누구도... 버리지 않아."
인서의 말에 허혁은 숨을 멈췄다. 그의 눈빛은 진심 같았다.
"정우진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겁니다. 그 자식은... 내 방식대로... 처리할 거니까."
인서의 눈빛이 살벌하게 빛났다. 그는 정우진의 협박에 굴복하는 대신, 정면으로 맞서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김 비서. 정우진에게... 협상에 응하겠다고... 거짓 정보를 흘려. 그리고... 내가 직접 가겠다고... 전해."
인서가 지시했다.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사장님! 위험합니다! 혼자 가시는 것은...!"
김민준이 반대했다.
"혼자 가지 않아."
인서가 나직이 말했다. 그의 시선이 허혁에게 향했다.
"허혁 씨. 나와... 함께 갑시다."
인서의 말에 허혁은 놀랐다. 자신과 함께 가자니. 위험한 곳에.
"당신은... 정우진이 원하는... 또 다른 인질이니까. 당신이 함께 가면... 정우진은 방심할 겁니다."
인서의 말은 냉철했지만, 허혁은 그 속에서 자신을 믿고 함께 싸우자는 인서의 의지를 읽었다.
"그리고... 당신의 친구는... 당신이 직접... 구해야지."
인서의 눈빛은 차가웠지만, 그 안에 담긴 믿음이 허혁의 마음을 흔들었다. 허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려웠지만, 인서와 함께라면... 김도진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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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결혼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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