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역전의 서막, 연합 전선


정 회장의 재판은 세간의 뜨거운 관심 속에 진행되었다. 허혁은 증인석에 서서 20년 전 아버지가 겪었던 일과 그로 인해 자신의 가족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담담하게 증언했다. 그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방청석에 앉아 자신을 지켜보는 정인서의 존재가 그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인서 역시 증인으로 출석하여 아버지의 죄를 인정하고, J 그룹의 후계자로서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그의 단호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은 대중의 마음을 움직였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허혁과 인서는 서울에 마련한 작은 집에서 함께 지냈다. 해변가 마을에서의 고요한 시간과는 달리, 서울에서의 삶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언론의 관심은 여전히 뜨거웠고, J 그룹의 잔당들은 암암리에 그들을 위협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꿋꿋이 버텨냈다. 과거의 상처를 함께 마주하고, 서로의 짐을 나누어 짊어지면서 그들의 관계는 더욱 단단해지고 있었다.

어느 날 밤, 김도진이 급하게 그들의 집을 찾아왔다. 그의 얼굴에는 긴장감과 함께 분노가 서려 있었다.

"혁아! 인서 씨! 큰일 났어!"

김도진이 다급하게 말했다. 그의 손에는 태블릿 PC가 들려 있었다. 화면에는 막 속보로 뜬 기사가 떠 있었다. [정우진 전 J 그룹 사장, 차은서 전 이사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 결정]

"왜 그래, 도진아? 무슨 일이야?"

허혁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정우진이랑 차은서... 그 자식들... 구속 상태에서 풀려났대! 증거 불충분으로!"

김도진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정우진과 차은서가 풀려나다니. 그들의 죄는 명백했는데.

인서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그는 김도진의 태블릿 PC를 받아 기사를 꼼꼼히 읽어 내려갔다. 그의 눈빛은 분노로 이글거렸다.

"예상했던 일입니다. 정 회장님께서... 뒤에서 손을 쓰셨겠죠. 자신의 죄는 인정하더라도... 정우진을 이용해서 J 그룹을 다시 장악하려는 속셈일 겁니다. 검찰 내부에 아직 그의 사람들이 남아있어."

인서의 목소리는 냉철했다. 그는 정 회장의 의도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그 자식들이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텐데!"

허혁이 불안하게 말했다. 정우진과 차은서의 잔혹함을 그는 이미 뼈저리게 경험했다.

"걱정 마세요. 저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인서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는 김도진에게 말했다.

"김도진 씨.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

"네? 뭔데요?"

"당신이 가지고 있던 USB 메모리... 그 안에... 정우진과 차은서의 비리에 대한... 추가적인 증거가 있을 겁니다. 그들의 자금 흐름, 불법적인 거래 내역... 그것들을 찾아내야 합니다."

인서는 김도진에게 위험한 임무를 맡겼다. J 그룹의 내부 자료를 분석하여 정우진과 차은서를 다시 법의 심판대에 세울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는 것.

"하지만... 제가... 그런 걸 어떻게..."

김도진은 망설였다. 그는 평범한 학생일 뿐이었다.

"내가 돕겠습니다."

인서가 말했다.

"J 그룹의 내부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루트를 알려드리죠. 위험하겠지만... 당신이라면 할 수 있을 겁니다."

인서는 김도진의 능력을 믿고 있었다. 그의 집요함과 정의감을.

김도진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해보겠습니다. 혁이를 위해서...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서."

김도진의 눈빛에 결의가 스쳤다. 그는 더 이상 무력한 인질이 아니었다. 허혁과 인서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이 싸움의 중요한 변수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날부터 세 사람은 위험한 연합을 형성했다. 인서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전략을 세웠고, 김도진은 J 그룹의 내부 시스템에 잠입하여 정우진과 차은서의 비리 증거를 수집했다. 허혁은 두 사람의 곁을 지키며, 그들이 지치고 힘들 때마다 따뜻한 위로와 지지를 보내주었다. 그는 더 이상 보호받기만 하는 연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강해지기로 결심한, 단단한 마음을 가진 남자로 성장하고 있었다.

며칠 후, 김도진은 마침내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냈다. 정우진과 차은서가 해외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고, J 그룹의 주가를 조작한 정황이 담긴 내부 회계 자료였다.

"찾았어! 이것만 있으면... 그 자식들... 다시는 빠져나가지 못할 거야!"

김도진이 흥분하며 말했다.

인서는 자료를 검토하며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수고했습니다, 김도진 씨. 이제... 반격의 시간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반격은 쉽지 않았다. 정우진과 차은서는 이미 인서와 김도진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들은 최상호를 비롯한 잔당들을 동원하여 김도진을 위협하고, 허혁을 납치하려 했다.

어느 날 밤, 허혁은 김도진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던 중, 최상호와 그의 무리에게 습격당했다. 어두운 골목길에서 벌어진 갑작스러운 공격이었다.

"허혁! 네놈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졌어! 같이 죽자!"

최상호가 분노하며 허혁에게 달려들었다. 김도진이 허혁을 막아서며 소리쳤다.

"혁아! 피해!"

하지만 최상호의 무리는 수적으로 우세했다. 허혁과 김도진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위기에 처했다.

바로 그때, 검은 차 한 대가 급정거하며 그들 앞에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것은 인서였다. 그의 뒤에는 김민준과 경호원들이 있었다. 인서는 허혁과 김도진이 위험에 처할 것을 예상하고, 미리 그들을 미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감히... 내 사람을 건드려?"

인서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의 눈빛은 살의로 가득했다. 인서와 경호원들은 순식간에 최상호의 무리를 제압했다. 최상호는 인서의 압도적인 힘 앞에서 공포에 떨었다.

"정우진이... 시켰습니다...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최상호는 비굴하게 애원했다.

인서는 최상호를 경멸하듯 쳐다보았다.

"너는... 용서받을 자격이 없어."

인서의 말과 함께, 최상호는 경호원들에게 끌려갔다. 그의 비명소리가 어두운 골목길에 울려 퍼졌다.

허혁과 김도진은 인서의 잔혹한 모습에 숨을 멈췄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강력한 보호 아래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괜찮습니까, 허혁 씨."

인서가 허혁에게 다가와 그의 얼굴을 살폈다. 그의 눈빛에는 걱정과 함께, 허혁을 잃을 뻔했다는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네... 괜찮아요... 당신 덕분에..."

허혁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인서는 허혁을 끌어안았다. 그의 품은 따뜻하고 단단했다.

"다시는... 당신을... 위험하게 만들지 않겠습니다."

인서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 담긴 약속은 진심이었다.

그날 이후, 인서는 정우진과 차은서를 향한 본격적인 반격을 시작했다. 김도진이 찾아낸 증거를 언론에 공개했고, 검찰에 제출했다. 정우진과 차은서는 다시 구속되었고, 이번에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하지만 정우진은 마지막 발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감옥 안에서 외부의 잔당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인서와 허혁을 향한 마지막 공격. 그것은 J 그룹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모두 함께 파멸하자는 극단적인 계획이었다.

며칠 후, J 그룹 본사에서 긴급 주주총회가 열렸다. 인서는 J 그룹의 새로운 미래에 대한 비전을 발표하고,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려 애썼다. 허혁은 인서의 곁에서 그를 지지했다.

바로 그때, 주주총회장에 정우진의 잔당들이 난입했다. 그들의 손에는 폭탄으로 보이는 물건이 들려 있었다.

"모두 움직이지 마! 정인서! 너 때문에 모든 것이 망가졌어! 너도... J 그룹도... 다 끝장이야!"

잔당들의 외침에 주주총회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 했고, 경호원들은 그들을 막아서며 대치했다.

인서는 허혁을 자신의 뒤로 숨겼다.

"허혁 씨. 내 뒤에 있어요. 절대로... 떨어지면 안 됩니다."

인서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폭탄의 타이머가 빠르게 움직였다. 1분... 30초... 10초...

"안 돼!"

허혁은 절규했다.

바로 그 순간, 인서는 허혁을 밀치고 폭탄을 향해 몸을 던졌다.

"사장님!"

허혁의 비명과 함께, 엄청난 굉음이 주주총회장을 뒤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