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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78 추천 : 0 글자수 : 5,422 자 2025-08-21
ㅤㅤ윤서희의 삶은 한 달 전만 해도 예측 가능했다. 일정한 출퇴근 시간, 주말의 고요한 휴식, 그리고 가끔 친구들과의 만남. 모든 것이 그녀의 통제 안에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의 삶은 윤태준이라는 거대한 파동에 휩쓸려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제4화, 카페 앞에서 그의 입술이 닿았던 순간부터, 그리고 그녀의 집 현관문이 닫히던 밤부터,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날 아침, 침대 옆에 잠들어 있던 그의 모습을 보았을 때의 혼란과 죄책감은 분명했지만, 그의 품에서 느꼈던 온기와 '후회하지 않아'라는 그의 나지막한 고백은 그녀의 이성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마침내, '동거'라는 단어가 그의 입에서 나왔을 때, 서희는 직감했다. 이제 정말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되리라는 것을.
ㅤㅤ동거를 결정한 후, 모든 과정은 비밀스럽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진행되었다. 태준은 능숙하게 외곽의 작은 오피스텔을 찾아냈다. 번잡한 도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으면서도, 그들 각자의 직장과 너무 멀지 않은 곳. 주변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조용한 곳이었다. 오피스텔을 보러 다닐 때마다 서희의 마음은 롤러코스터를 탄 듯했다. 설렘과 불안함이 번갈아 찾아왔다. 낯선 공간에 둘만의 보금자리를 만든다는 것은 짜릿했지만, 동시에 이 모든 것이 세상에 드러날까 봐 두려웠다.
ㅤㅤ이사 날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최대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움직였다. 각자의 짐을 최소화했고, 이삿짐센터 대신 작은 승용차로 몇 번에 걸쳐 짐을 날랐다. 가족들에게는 '직장 근처로 이사 간다', '오래된 친구와 함께 살게 되었다'는 등 각자의 이유를 댔다. 부모님은 내심 걱정하면서도 서희의 독립적인 결정을 존중해주셨다. 거짓말을 하는 매 순간 마음이 무거웠지만, 들키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연기했다. 죄책감은 점점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듯했다.
ㅤㅤ새로운 오피스텔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서희는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텅 빈 공간, 하얀 벽, 아직 아무것도 없는 침묵. 그 침묵 속에서 태준과 둘이 서 있었다. 그 순간, 서희는 이곳이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둘만의 밀실'이 될 것이라는 것을 예감했다. 그 밀실은 아늑하고 안전한 동시에,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외로운 공간이 될 수도 있었다. 태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확신과 함께, 이 모든 것을 그녀와 함께 감당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의 눈빛은 그녀의 불안감을 잠재웠다.
ㅤㅤ가구를 들이고, 살림살이를 채워 넣는 과정은 예상보다 훨씬 즐거웠다. 그들만의 공간을 함께 만들어가는 모든 순간이 소중했다. 어떤 소파를 살지, 어떤 식탁을 놓을지, 어떤 커튼을 달지.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함께 결정했다. 태준은 그녀의 의견을 항상 존중해주었고, 그녀의 취향을 세심하게 고려했다. 함께 가구 조립을 하며 땀을 흘리고, 서툰 솜씨로 요리를 해 먹으며 웃었다. 평범한 연인들이나 신혼부부들이 할 법한 일들을, 그들은 아무도 모르게, 비밀스럽게 하고 있었다.
ㅤㅤ어느 날 밤, 새로 들인 소파에 나란히 앉아 차가운 맥주를 마셨다. 텅 빈 벽만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 공간이 세상 그 어떤 곳보다 따뜻하고 충만하게 느껴졌다.
ㅤㅤ"진짜 같이 사는구나, 우리."
ㅤㅤ서희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현실이 된 동거는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ㅤㅤ태준이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그의 손은 따뜻하고 단단했다.
ㅤㅤ"응. 이제 우리는 항상 함께야."
ㅤㅤ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그 안에 담긴 확신은 서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세상 모든 것을 등지고 오직 둘만이 존재하는 듯한 기분. 그 순간만큼은 죄책감도, 불안감도 모두 사라졌다. 오직 그와 나. 오직, 우리.
ㅤㅤ동거 생활의 시작.
ㅤㅤ그들의 동거 생활은 예상보다 훨씬 자연스러웠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옆에 잠들어 있는 태준의 얼굴이 보였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그의 숨소리. 서희는 조심스럽게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옆에서 깨어나는 아침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감각을 주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낯설면서도 너무나 편안한.
ㅤㅤ함께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태준은 요리에 능숙한 편이었다. 간단한 토스트와 커피, 때로는 프라이팬에 계란을 부쳐주기도 했다. 서희는 그의 옆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식탁을 차렸다. 작은 부엌 공간에서 두 사람이 어깨를 부딪히며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오래된 부부 같았다. 식탁에 마주 앉아 따뜻한 아침 식사를 나누는 시간. 이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풍경이었다. 그들의 아침은 늘 햇살과 함께 시작되었고, 그 햇살은 그들의 비밀스러운 사랑을 비춰주는 듯했다.
ㅤㅤ출근도 함께 했다. 물론 따로 나섰다.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길에 살짝 거리를 두거나, 각자의 길로 갈라졌다. 회사에서는 서로의 존재를 철저히 숨겼다. 동료들이나 친구들이 사적인 질문을 던질 때마다 서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거짓말을 덧대고 또 덧대는 날들이 이어졌다. 주말에도 마찬가지였다. 가족 모임이나 친구들과의 약속이 있을 때는 각자 다른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함께 영화를 보러 가고 싶은 날, 함께 공원을 산책하고 싶은 날에도, 그들은 자유롭지 못했다.
ㅤㅤ하지만 퇴근 후, 그들의 밀실로 돌아오는 순간, 모든 긴장감은 눈 녹듯 사라졌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익숙한 그의 체향이 서희를 감쌌다. '집'이라는 공간이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것은 더 이상 단순히 잠만 자는 곳이 아니었다. 그들의 사랑이 숨 쉬는, 오직 둘만의 안전한 피난처였다.
ㅤㅤ함께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태준은 서희가 좋아하는 요리를 기가 막히게 잘했다. 그의 손에서 뚝딱 만들어지는 따뜻한 음식들은 서희의 마음을 더욱 풍요롭게 했다. 식탁에 마주 앉아 하루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의 차분한 목소리와 깊은 눈빛은 서희의 지친 하루를 위로해주었다. 그는 그녀의 모든 것을 이해해주었다. 그녀가 말하지 않는 것까지도.
ㅤㅤ밤에는 함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란히 소파에 앉아 서로의 어깨에 기대거나, 태준의 무릎을 베고 누워 책을 읽기도 했다. 물리적인 거리감이 사라지자, 그들의 감정적인 교감은 더욱 깊어졌다. 서로의 작은 몸짓, 눈빛 하나로도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서로의 존재가 서로에게 깊이 스며들었다.
ㅤㅤ하루하루가 지날수록 태준의 존재는 서희의 삶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그는 그녀의 일상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밤에 잠들기 전, 그의 품에 안겨 잠이 드는 것은 서희에게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순간이었다. 그의 따뜻한 숨결이 그녀의 머리카락에 닿고, 그의 심장 박동 소리가 귓가에 조용히 울렸다. 이대로 세상이 멈춰도 좋겠다는 이기적인 바람이 매일 밤 서희의 마음속에서 피어났다.
ㅤㅤ물론, 항상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불쑥불쑥 죄책감과 불안감이 고개를 들었다. 특히 가족과의 통화를 하거나, 친척 모임에 참석할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부모님께 거짓말을 하는 것이 죄송했고, 이 비밀이 언젠가 드러나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들만의 밀실은 안전했지만, 동시에 그녀를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키는 감옥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ㅤㅤ어느 날 밤, 잠 못 이루고 뒤척이던 서희는 태준의 품에 안겨 조용히 흐느꼈다.
ㅤㅤ"오빠... 우리,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요?"
ㅤㅤ그녀의 불안한 목소리에 태준은 그녀를 더욱 단단히 안아주었다. 그의 따뜻한 손이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ㅤㅤ"왜 그래, 서희야. 무슨 일 있어?"
ㅤㅤ"그냥... 무서워요. 엄마, 아빠한테 너무 죄송하고... 만약 가족들이 알게 되면... 우리 진짜 끝이잖아요."
ㅤㅤ서희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두려움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ㅤㅤ태준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그리고 그녀의 귓가에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ㅤㅤ"괜찮아, 서희야. 우리가 지켜내면 돼."
ㅤㅤ"세상이 뭐라고 해도, 나는 너랑 함께할 거야. 네가 나를 놓지 않는 한."
ㅤㅤ그의 말에 서희는 고개를 들었다. 어둠 속에서 그의 얼굴은 흐릿했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선명했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고, 그 안에는 그녀를 향한 변함없는 사랑과 굳은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 눈빛을 보자, 서희의 마음속 불안감이 조금씩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래, 그는 항상 그녀의 편이었다.
ㅤㅤ"오빠..."
ㅤㅤ서희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품에 더 깊이 파고들었다. 그의 온기가 그녀의 마음을 채웠다. 잘못된 관계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서로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오히려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격리된 그들만의 세계 속에서, 그들의 사랑은 더욱 깊어지고 강렬해졌다. 그 비밀스러운 공간 속에서, 그들은 서로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세상의 전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ㅤㅤ그들은 서로에게서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특별한 의미를 발견했다. 외롭고 불안했던 각자의 삶 속에서, 서로는 서로의 빛이자 어둠이 되어주었다. 금지된 사랑이었지만, 그들에게는 그 어떤 사랑보다 진실하고 절박했다. 서로를 지켜내기 위해, 그들은 더욱 견고하게 서로에게 얽혀갔다. 가족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지만, 그들만의 밀실에서 그들은 완벽한 '우리'였다.
ㅤㅤ시간은 흐르고, 그들의 동거 생활은 더욱 안정되어갔다. 함께 보내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그들의 유대감은 더욱 깊어졌다.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고, 서로의 습관에 익숙해졌다. 사소한 다툼도 있었지만,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그들의 관계는 더욱 단단해졌다. 그는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장 든든한 보호자이자, 가장 뜨거운 연인이었다. 그리고 그녀 또한 그에게 그러했다.
ㅤㅤ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비록 그들만의 밀실에 숨어 지낸다 해도, 바깥세상과의 연결은 피할 수 없었다. 가족들과의 관계, 친구들과의 만남, 사회생활. 그 모든 것들이 그들의 비밀을 위협하는 요소들이었다. 평범한 일상 속에 숨겨진 그들의 비범한 사랑. 그들의 관계는 마치 얇은 얼음판 위를 걷는 듯 위태로웠다. 언제 금이 가고 깨질지 알 수 없는.
ㅤㅤ어느 날, 태준이 잠든 서희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이대로 괜찮을까. 이 비밀을 영원히 숨길 수 있을까. 언젠가 이 관계가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면, 서희는 감당할 수 있을까. 그는 그녀를 사랑했지만, 동시에 그녀를 지켜주고 싶었다. 이 불안정한 관계가 그녀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를 바랐다. 그들의 사랑은 너무나 강력했지만, 동시에 너무나 취약했다.
ㅤㅤ태준은 서희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감쌌다. 그의 품에서 편안하게 잠든 그녀의 숨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렸다. 그는 그녀의 존재가 주는 안도감 속에서, 또 다른 다짐을 했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그는 그녀의 곁을 지킬 것이다. 이 '우리'를 지켜낼 것이다. 세상의 모든 비난 속에서도, 그들의 사랑만은 흔들리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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