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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106 추천 : 0 글자수 : 6,135 자 2025-08-21
ㅤㅤ윤서희의 삶은 윤태준과 함께 동거를 시작한 이후, 마치 두 개의 평행선 위를 걷는 듯했다. 하나는 세상의 눈을 피해 오직 둘만이 존재하는 '밀실'에서의 삶. 다른 하나는 가족과 친구들 앞에서 평범한 스물일곱의 윤서희인 척 가장해야 하는 삶. 그 둘 사이의 간극은 넓었고, 그 간극을 오가는 매 순간이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았다.
ㅤㅤ그들의 보금자리인 오피스텔은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아늑한 섬과도 같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태준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그의 옆에서 깨어나는 아침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따뜻함과 안정감을 주었다.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면,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평화로운 잠든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기도 했다. 때로는 그가 먼저 눈을 떠 서희를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지을 때도 있었다. 그 미소 하나에 서희의 하루가 환해지는 듯했다.
ㅤㅤ함께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은 그들에게 가장 소중한 일상이었다. 태준은 요리에 능숙한 편이었다. 간단한 토스트와 커피, 때로는 프라이팬에 계란을 부쳐주기도 했다. 그의 손에서 뚝딱 만들어지는 따뜻한 음식들은 서희의 마음을 더욱 풍요롭게 했다. 서희는 그의 옆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식탁을 차렸다. 작은 부엌 공간에서 두 사람이 어깨를 부딪히며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오래된 부부 같았다. 식탁에 마주 앉아 따뜻한 아침 식사를 나누는 시간. 이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풍경이었다. 그들의 아침은 늘 햇살과 함께 시작되었고, 그 햇살은 그들의 비밀스러운 사랑을 비춰주는 듯했다.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김처럼, 그들의 사랑은 은은하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ㅤㅤ출근도 함께 했다. 물론 따로 나섰다.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길에 살짝 거리를 두거나, 각자의 길로 갈라졌다. 회사에서는 서로의 존재를 철저히 숨겼다. 동료들이나 친구들이 사적인 질문을 던질 때마다 서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요즘 누가 그렇게 웃고 다니냐?', '애인 생겼냐?' 같은 가벼운 농담에도 심장이 발작적으로 뛰었다. 거짓말을 덧대고 또 덧대는 날들이 이어졌다. 주말에도 마찬가지였다. 가족 모임이나 친구들과의 약속이 있을 때는 각자 다른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함께 영화를 보러 가고 싶은 날, 함께 공원을 산책하고 싶은 날에도, 그들은 자유롭지 못했다. 세상의 시선이 그들을 옭아매고 있었다.
ㅤㅤ하지만 퇴근 후, 그들의 밀실로 돌아오는 순간, 모든 긴장감은 눈 녹듯 사라졌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익숙한 그의 체향이 서희를 감쌌다. '집'이라는 공간이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것은 더 이상 단순히 잠만 자는 곳이 아니었다. 그들의 사랑이 숨 쉬는, 오직 둘만의 안전한 피난처였다. 닫힌 현관문 너머로는 그 어떤 세상의 시선도 닿을 수 없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비로소 온전한 '우리'가 될 수 있었다.
ㅤㅤ함께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태준은 서희가 좋아하는 요리를 기가 막히게 잘했다. 그의 손에서 뚝딱 만들어지는 따뜻한 음식들은 서희의 마음을 더욱 풍요롭게 했다. 식탁에 마주 앉아 하루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의 차분한 목소리와 깊은 눈빛은 서희의 지친 하루를 위로해주었다. 그는 그녀의 모든 것을 이해해주었다. 그녀가 말하지 않는 것까지도. 그의 눈빛은 그녀의 가장 깊은 곳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ㅤㅤ밤에는 함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란히 소파에 앉아 서로의 어깨에 기대거나, 태준의 무릎을 베고 누워 책을 읽기도 했다. 물리적인 거리감이 사라지자, 그들의 감정적인 교감은 더욱 깊어졌다. 서로의 작은 몸짓, 눈빛 하나로도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서로의 존재가 서로에게 깊이 스며들었다. 이제 그들은 분리될 수 없는 한 몸처럼 느껴졌다.
ㅤㅤ하루하루가 지날수록 태준의 존재는 서희의 삶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그는 그녀의 일상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밤에 잠들기 전, 그의 품에 안겨 잠이 드는 것은 서희에게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순간이었다. 그의 따뜻한 숨결이 그녀의 머리카락에 닿고, 그의 심장 박동 소리가 귓가에 조용히 울렸다. 이대로 세상이 멈춰도 좋겠다는 이기적인 바람이 매일 밤 서희의 마음속에서 피어났다. 이 행복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
ㅤㅤ물론, 항상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불쑥불쑥 죄책감과 불안감이 고개를 들었다. 특히 가족과의 통화를 하거나, 친척 모임에 참석할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부모님께 거짓말을 하는 것이 죄송했고, 이 비밀이 언젠가 드러나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들만의 밀실은 안전했지만, 동시에 그녀를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키는 감옥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녀는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고 있었다.
ㅤㅤ어느 날 밤, 잠 못 이루고 뒤척이던 서희는 태준의 품에 안겨 조용히 흐느꼈다. 낮 동안 애써 외면했던 감정들이 밤이 되자 한꺼번에 밀려왔다. 가족에 대한 미안함,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그리고 이 관계가 과연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
ㅤㅤ"오빠... 우리,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요?"
ㅤㅤ그녀의 불안한 목소리에 태준은 그녀를 더욱 단단히 안아주었다. 그의 따뜻한 손이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마치 그녀의 불안감을 잠재우려는 듯.
ㅤㅤ"왜 그래, 서희야. 무슨 일 있어?"
ㅤㅤ그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ㅤㅤ"그냥... 무서워요. 엄마, 아빠한테 너무 죄송하고... 만약 가족들이 알게 되면... 우리 진짜 끝이잖아요. 모든 게 무너질 거예요."
ㅤㅤ서희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두려움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그녀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ㅤㅤ태준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그리고 그녀의 귓가에 나지막하게, 하지만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는 그녀에게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ㅤㅤ"괜찮아, 서희야. 우리가 지켜내면 돼."
ㅤㅤ"세상이 뭐라고 해도, 나는 너랑 함께할 거야. 네가 나를 놓지 않는 한."
ㅤㅤ그의 말에 서희는 고개를 들었다. 어둠 속에서 그의 얼굴은 흐릿했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선명했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고, 그 안에는 그녀를 향한 변함없는 사랑과 굳은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 눈빛을 보자, 서희의 마음속 불안감이 조금씩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래, 그는 항상 그녀의 편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과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ㅤㅤ"오빠..."
ㅤㅤ서희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품에 더 깊이 파고들었다. 그의 온기가 그녀의 마음을 채웠다. 잘못된 관계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서로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오히려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격리된 그들만의 세계 속에서, 그들의 사랑은 더욱 깊어지고 강렬해졌다. 그 비밀스러운 공간 속에서, 그들은 서로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세상의 전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ㅤㅤ그들은 서로에게서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특별한 의미를 발견했다. 외롭고 불안했던 각자의 삶 속에서, 서로는 서로의 빛이자 어둠이 되어주었다. 금지된 사랑이었지만, 그들에게는 그 어떤 사랑보다 진실하고 절박했다. 서로를 지켜내기 위해, 그들은 더욱 견고하게 서로에게 얽혀갔다. 가족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지만, 그들만의 밀실에서 그들은 완벽한 '우리'였다.
ㅤㅤ시간은 흐르고, 그들의 동거 생활은 더욱 안정되어갔다. 함께 보내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그들의 유대감은 더욱 깊어졌다.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고, 서로의 습관에 익숙해졌다. 사소한 다툼도 있었지만,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그들의 관계는 더욱 단단해졌다. 그는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장 든든한 보호자이자, 가장 뜨거운 연인이었다. 그리고 그녀 또한 그에게 그러했다. 서로는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ㅤㅤ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비록 그들만의 밀실에 숨어 지낸다 해도, 바깥세상과의 연결은 피할 수 없었다. 가족들과의 관계, 친구들과의 만남, 사회생활. 그 모든 것들이 그들의 비밀을 위협하는 요소들이었다. 평범한 일상 속에 숨겨진 그들의 비범한 사랑. 그들의 관계는 마치 얇은 얼음판 위를 걷는 듯 위태로웠다. 언제 금이 가고 깨질지 알 수 없는. 단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감은 그림자처럼 그들을 따라다녔다.
ㅤㅤ어느 주말, 서희는 부모님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엄마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다정했다.
ㅤㅤ"서희야, 잘 지내니? 요즘 엄마가 좀 바빠서 연락을 못 했네."
ㅤㅤ"네, 엄마. 잘 지내요. 회사도 괜찮고요."
ㅤㅤ"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고? 혼자 사니까 걱정이다. 태준이 그 오빠랑은 연락하니? 너네 그때 할아버지 잔치에서 연락처 교환했다며. 혹시 뭐 불편하게 하는 건 없고?"
ㅤㅤ엄마의 말에 서희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태준이 그 오빠랑은 연락하니?' 엄마가 태준의 이야기를 꺼낼 줄은 몰랐다. 혹시 눈치를 챈 걸까? 불안감이 전신을 휘감았다. 서희는 애써 태연한 목소리를 내려고 했다.
ㅤㅤ"아... 네, 가끔 연락해요. 그냥 안부 묻는 정도요. 별일 없어요."
ㅤㅤ"그래? 다행이네. 그래도 사촌이니까... 가끔 밥이라도 같이 먹고 해. 그래도 친척 중에선 네 또래니까 서로 의지할 수도 있고. 태준이도 서울에 아는 사람 별로 없을 텐데."
ㅤㅤ엄마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 사실이 서희의 마음을 더욱 찢어놓았다. 죄책감의 무게가 그녀의 어깨를 짓눌렀다. 엄마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녀에게는 비수가 되어 돌아오는 듯했다. 의지할 수 있는 사이라니. 엄마는 상상도 못할 방식으로 그들이 의지하고 있었다.
ㅤㅤ"네, 엄마. 그럴게요."
ㅤㅤ억지로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엄마는 그런 서희의 거짓 미소를 알지 못했다. 전화를 끊은 후, 서희는 한숨을 쉬었다. 가족과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었다. 그들의 비밀이 깊어질수록, 가족과의 거리는 심적으로 더욱 멀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점점 더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것 같았다.
ㅤㅤ퇴근 후 오피스텔로 돌아오자마자, 서희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태준의 품에 안겼다. 그의 품에서 그녀는 비로소 낮 동안의 모든 긴장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ㅤㅤ"무슨 일 있어, 서희야?"
ㅤㅤ태준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는 그녀의 작은 떨림을 감지한 듯했다.
ㅤㅤ"엄마랑 통화했어요. 오빠 얘기 나왔어요."
ㅤㅤ"응? 뭐라고?"
ㅤㅤ그녀는 엄마와의 대화 내용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태준은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의 얼굴에 잠시 긴장감이 스치는 것을 서희는 느꼈다. 그 역시 이 비밀의 무게를 함께 느끼고 있다는 증거였다.
ㅤㅤ"엄마는 우리가 그냥 친하게 지내는 걸로 알고 계세요. 친척 중에 서로 의지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ㅤㅤ서희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죄책감에 고개를 숙였다.
ㅤㅤ태준이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확신으로 가득했다.
ㅤㅤ"우리가 진짜 의지하는 사이잖아."
ㅤㅤ그의 말에 서희는 눈을 크게 떴다. 그의 눈빛 속에서, 서희는 그가 이 모든 것을 얼마나 단단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보았다. 그는 죄책감 속에서 그녀를 끌어안는 것이 아니라, 이 관계 자체를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 역시 그렇게 해야만 했다.
ㅤㅤ태준은 서희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따뜻하고 든든했다.
ㅤㅤ"괜찮아, 서희야. 우리가 선택한 길이야. 내가 다 책임질게. 네 옆에는 항상 내가 있어."
ㅤㅤ그의 말에 서희의 마음속 불안감이 한순간에 녹아내렸다. 그래, 그들은 혼자가 아니었다. 이 위험한 길을 함께 걸어갈 사람이 있었다. 세상의 모든 비난 속에서도, 그들만은 서로를 믿고 의지할 수 있었다. 그는 그녀의 가장 든든한 방패이자, 가장 따뜻한 안식처였다.
ㅤㅤ그들만의 밀실 속에서, 서희와 태준은 그렇게 서로에게 깊이 빠져들었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그들은 세상의 모든 금기를 넘어섰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오직 서로만이 존재했다. 이 모든 것이 그들에게 어떤 운명을 가져다줄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함께였다. 서로에게 의지하며, 세상의 그림자 속에서 그들만의 사랑을 키워나갔다. 이 관계가 가져올 다음 시련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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