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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127 추천 : 0 글자수 : 6,263 자 2025-08-21
ㅤㅤ윤태준은 윤서희와 함께 동거를 시작한 후, 그의 삶이 질적으로 변화했음을 매일 실감했다. 이전의 그의 삶은 마치 잘 정돈된 서재 같았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고, 예측 가능했으며, 고요했다. 하지만 서희의 등장과 함께, 그의 서재는 따뜻한 온기로 가득 찬 아늑한 거실로 변했다. 그녀의 웃음소리, 조용한 발걸음,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곁에 늘 그녀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거대한 위안이었다. 오피스텔은 그들에게 세상의 모든 시선으로부터 벗어난, 완벽한 '밀실'이자 피난처였다.
ㅤㅤ아침에 눈을 뜨면, 그의 품에 안겨 잠든 서희의 얼굴이 보였다. 그의 어깨에 기댄 그녀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귓가에 조용히 울렸다. 잠에서 깬 그녀가 작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올려다볼 때, 태준의 하루는 비로소 시작되는 듯했다. 함께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어깨를 부딪히며 작은 부엌을 오가는 순간들. 그녀가 만든 서툰 커피가 그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였다. 회사로 향하는 길, 지하철역에서 그녀와 헤어져 각자의 세상으로 돌아갈 때면 아쉬움이 밀려왔지만, 퇴근 후 다시 그녀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그의 발걸음은 늘 가벼웠다. 그의 삶에 온전한 '집'이 생긴 것이었다.
ㅤㅤ밤에 함께 소파에 앉아 영화를 보거나, 각자의 책을 읽는 시간은 태준에게 가장 평화로운 순간이었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그에게는 고요한 안정감이었다. 그녀의 작은 손을 잡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그는 그녀의 존재가 주는 위로에 깊이 잠겼다. 서희는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연인이자, 그리고 무엇보다 그를 이해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세상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그의 가장 깊은 속마음까지도, 그녀는 침묵 속에서 이해해주었다. 그녀는 그의 외롭고 고독했던 삶을 채워주는 유일한 존재였다.
ㅤㅤ하지만 이 모든 평화와 행복은 '비밀'이라는 거대한 그림자 아래 존재했다. 그녀는 그의 사촌이었다. 세상이 가장 견고하게 그어 놓은 선을 그들은 이미 넘어서 버렸다. 그들의 사랑은 달콤했지만, 동시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았다. 특히 서희가 가족과의 통화 후 불안해하며 그의 품에 안겨 울었던 밤, 태준은 이 비밀의 무게를 다시 한번 절감했다. 그녀의 불안감은 곧 그의 불안감이었다. 그녀를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ㅤㅤ'괜찮아, 서희야. 우리가 지켜내면 돼. 세상이 뭐라고 해도, 나는 너랑 함께할 거야. 네가 나를 놓지 않는 한.'
ㅤㅤ그날 밤 자신이 그녀에게 속삭였던 말들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는 진심이었다. 이 관계가 어떤 어려움을 가져오든, 그는 그녀의 곁을 지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그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었고, 그녀 없이는 이전의 메마른 삶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 사랑은 그에게 운명과도 같았다. 세상의 모든 금기를 넘어선, 오직 둘만의 운명.
ㅤㅤ그는 그들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모든 신경을 곤두세웠다. 회사에서는 그녀에 대한 어떤 언급도 피했고, 친구들이 사적인 질문을 할 때면 능숙하게 대화를 돌렸다. 주말에 가족들이 연락해 올 때면, 최대한 자연스럽게 반응하며 각자의 일정을 이야기했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는 그녀를 향한 보호본능과, 이 비밀을 영원히 지키고 싶다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ㅤㅤ어느 날, 어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다음 주말에 작은어머니(서희의 어머니)와 함께 점심 식사를 하자는 제안이었다. 오랜만에 가족 식사를 하자는, 지극히 평범하고 다정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태준의 심장은 순간 쿵 하고 내려앉았다. 친가 쪽 가족 모임. 서희도 분명 참석할 것이다. 함께, 하지만 따로. 그들 사이에 흐르는 보이지 않는 긴장감을 다른 가족들이 눈치챌까 봐 걱정되었다.
ㅤㅤ"어머니, 괜찮긴 한데... 갑자기 왜요?"
ㅤㅤ"뭐가 갑자기야. 오랜만에 얼굴 보자는 거지. 태준이 너도 요즘 바쁘다고 얼굴 보기도 힘들고, 작은어머니도 서울 온다길래 겸사겸사 다 같이 점심이나 먹자 한 거지."
ㅤㅤ어머니의 목소리는 아무렇지 않았다. 태준은 애써 태연한 척 대답했다.
ㅤㅤ"네, 알겠습니다. 시간 맞춰서 갈게요."
ㅤㅤ전화를 끊고 그는 바로 서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ㅤㅤ[다음 주말에 어머니랑 작은어머니랑 점심 먹자는데, 너도 갈 거지?]
ㅤㅤ서희의 답장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ㅤㅤ[네? 아, 네... 엄마가 말씀하시더라고요. 오빠도 가는구나.]
ㅤㅤ[응. 가서 보면 되겠다. 걱정 마. 평소처럼 하면 돼.]
ㅤㅤ그는 그녀를 안심시키려 애썼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도 불안감이 밀려왔다. 가족들 앞에서 평소처럼 행동하는 것이 과연 쉬울까. 그들의 눈빛, 그들의 말투, 그들 사이의 미묘한 기류. 모든 것이 그들에게는 시험대였다.
ㅤㅤ약속 당일. 태준은 잔뜩 긴장한 채 약속 장소로 향했다. 서희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는 그녀의 모습은 완벽하게 자연스러웠다. 웃고, 대화하고, 여느 친척 동생과 다를 바 없었다. 그녀의 노련한 연기에 태준은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녀가 겪을 내적 고통에 마음이 아팠다. 그녀 또한 이 모든 비밀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을까.
ㅤㅤ그가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어머니와 작은어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ㅤㅤ"태준이 왔구나! 어서 와라."
ㅤㅤ"네, 어머니. 작은어머니, 안녕하세요."
ㅤㅤ서희와는 눈인사만 나눴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평범한 사촌 오빠 동생처럼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그의 심장은 평소보다 빠르게 뛰었지만, 겉으로는 완벽하게 평온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데 익숙했다.
ㅤㅤ식사는 평범하게 진행되었다. 가족들의 근황 이야기, 건강 이야기, 그리고 두 사람에게 향하는 가벼운 질문들.
ㅤㅤ"태준이 너도 나이가 찼는데, 언제쯤 좋은 사람 생겨서 결혼할 거니? 벌써 서른이 넘었잖니."
ㅤㅤ어머니의 질문에 그는 익숙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ㅤㅤ"아직은 일 욕심이 더 커서요, 어머니. 좀 더 자리 잡고 생각해야죠."
ㅤㅤ"그러다 노총각 된다! 서희도 이제 서른 바라보고 있는데, 너희 둘이서 서로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라도 시켜주고 그래라."
ㅤㅤ작은어머니의 말에 서희가 작게 기침을 했다. 태준은 순간적으로 서희에게 시선이 향했지만, 이내 다시 작은어머니를 바라보며 태연하게 웃었다. 식탁 아래로 서희의 발이 그의 발을 스치는 것을 느꼈다. 긴장감에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일까. 그의 심장이 또 한 번 쿵 내려앉았다.
ㅤㅤ"하하, 네. 그럴게요."
ㅤㅤ그는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식사가 진행되는 내내, 그는 모든 감각을 곤두세웠다. 서희의 작은 행동 하나, 표정 하나에 신경 썼다. 그녀가 불안해하지는 않을까. 혹은 자신이 실수하지는 않을까. 그는 마치 연극 무대에 선 배우처럼 완벽하게 '평범한 사촌 오빠'를 연기했다. 그의 연기가 완벽할수록, 그의 내면은 더욱 복잡하고 위태로워졌다.
ㅤㅤ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어머니가 문득 서희를 보며 말했다.
ㅤㅤ"참, 서희 너 저번에 엄마한테 태준이 오빠랑 가끔 연락한다고 했었지? 둘이 어릴 때 이후로 오랜만에 봤는데도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보기 좋다."
ㅤㅤ어머니의 말에 서희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그녀의 시선이 태준에게로 향했다. 당황스러움이 그녀의 눈에 가득했다. 태준은 어머니의 말에 애써 미소 지으며 서희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시선이 아주 짧게, 하지만 강렬하게 마주쳤다. 그녀는 그의 눈빛에서 '걱정 마'라는 무언의 신호를 읽었을 것이다.
ㅤㅤ"네, 그렇죠. 오빠가 잘 챙겨줘서요."
ㅤㅤ서희는 애써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태준은 그녀의 대처 능력에 감탄했다. 그녀 또한 이 비밀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ㅤㅤ그때, 작은어머니가 문득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ㅤㅤ"그런데 서희야, 태준이 오빠도 이제 혼자 살고 너도 혼자 사는데, 혹시 둘이서 가끔 밥이라도 같이 먹는 건 아니니?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친척끼리 그러면 좋지 뭐."
ㅤㅤ그 말에 식탁 위 공기가 순간 얼어붙는 듯했다. 태준은 심장이 발끝까지 떨어지는 것 같았다. 작은어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빛 속에는 묘한 탐색과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마치 그들의 관계를 꿰뚫어 보려는 듯한. 단순한 농담일까, 아니면 정말 눈치를 챈 걸까.
ㅤㅤ서희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녀의 눈빛이 태준에게 향했다. 도움을 바라는 듯한, 절박한 눈빛이었다. 태준은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스치는 수많은 생각들 속에서 가장 적절한 대답을 찾아야 했다. 빠르게.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가장할 수 있는 대답을.
ㅤㅤ"아이고, 작은어머니! 저희가 각자 바빠서요."
ㅤㅤ태준은 애써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단 한 점의 흔들림도 없었다.
ㅤㅤ"서희도 회사일 바쁘고, 저도 지방에서 올라온 지 얼마 안 돼서 정신이 없어요. 아직은 각자 친구들도 만나고 그러는 게 더 좋죠. 사촌이라고 매일 붙어 다니면 오히려 더 어색해져요."
ㅤㅤ그는 농담처럼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마치 그들의 관계가 너무나 당연한 '사촌' 관계이며, 그 이상은 생각할 수도 없다는 듯이. 어머니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ㅤㅤ"하긴 그렇겠다. 어릴 때처럼 매일 볼 수도 없는 거고."
ㅤㅤ작은어머니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빛 속에서 아까의 탐색하는 듯한 기색은 사라진 듯했다. 태준의 대답이 그들의 의심을 잠재운 것 같았다. 서희는 안도감에 작게 숨을 내쉬었다. 식탁 아래로 그녀의 손이 태준의 무릎을 살짝 쥐는 것을 느꼈다. 그 작은 접촉에서 그녀의 긴장감과 안도감이 동시에 전해졌다. 태준은 그녀의 손을 감싸 쥐며, 그녀에게 '괜찮아'라는 무언의 신호를 보냈다.
ㅤㅤ식사가 끝나고 그들은 가족들과 헤어졌다. 서희는 태준에게 다가왔다.
ㅤㅤ"오빠... 아까... 너무 놀랐어요. 작은어머니가..."
ㅤㅤ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직 긴장이 풀리지 않은 듯했다.
ㅤㅤ"괜찮아. 내가 잘 둘러댔잖아."
ㅤㅤ태준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의 손이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ㅤㅤ"놀랐지? 나도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어."
ㅤㅤ그가 농담처럼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ㅤㅤ"오빠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어요. 진짜..."
ㅤㅤ"걱정 마. 내가 옆에 있잖아."
ㅤㅤ그들은 함께 그녀의 오피스텔로 향했다. 걷는 내내 서희는 그의 품에 안겨 있었고,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에 뺨을 기댔다.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난 그들의 밀실로 돌아가는 길은 그 어떤 길보다 안전하게 느껴졌다. 방금 전 가족 모임에서의 아슬아슬했던 순간은 그들에게 엄청난 긴장감을 주었지만, 동시에 그들의 유대감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ㅤㅤ집에 도착하자마자, 서희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태준의 품에 더 깊이 파고들었다. 낮 동안의 모든 긴장감이 한꺼번에 풀리는 듯했다. 태준은 그녀를 단단히 안아주었다. 그녀의 떨림이 그의 몸으로 전해졌다.
ㅤㅤ"오늘 힘들었지, 서희야. 잘했어."
ㅤㅤ그가 그녀의 머리에 입을 맞췄다. 그의 목소리에는 위로와 함께 진심 어린 칭찬이 담겨 있었다.
ㅤㅤ"오빠도... 오빠도 힘들었죠."
ㅤㅤ서희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가에는 아직 눈물이 촉촉했다.
ㅤㅤ"응. 너만큼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괜찮아. 우리 둘이 함께니까."
ㅤㅤ태준은 그녀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의 엄지손가락이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 안에는 그녀를 향한 변함없는 사랑과 굳은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지켜내겠다는 강한 책임감.
ㅤㅤ그는 그녀의 입술에 길게 입을 맞췄다. 그 입맞춤은 위로이자, 다짐이자,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확인하는 맹세 같았다. 세상의 모든 금기와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오직 둘만의 세계에서 그들은 그렇게 서로에게 더욱 깊이 얽혀갔다. 가족의 의심은 그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이 위험하고 아름다운 길을 함께 걸어갈 사람이 있었다.
ㅤㅤ그날 밤, 그들의 밀실은 평소보다 더욱 아늑하게 느껴졌다. 창문 밖으로 희미한 도시의 불빛이 새어 들어왔지만, 그들에게는 오직 서로만이 존재했다. 서로의 품에 안겨 잠든 두 사람. 세상의 그림자 속에서, 그들의 사랑은 더욱 깊고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있었다. 앞으로 또 어떤 시련이 닥쳐올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무엇이든 함께라면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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