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조회 : 53 추천 : 0 글자수 : 5,448 자 2025-08-21
ㅤㅤ가족 모임은 윤서희에게 큰 시험대였다. 특히 작은어머니의 의미심장한 질문은 마치 얼음장 위를 걷는 듯한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태준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단호한 대처와 그녀를 향한 변함없는 눈빛은 서희의 마음속 불안감을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우리가 지켜내면 돼.' '내가 옆에 있잖아.' 그의 목소리는 그녀에게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가족들의 눈을 속여야 하는 고통은 여전했지만, 그 고통을 나누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희는 감당할 수 있었다.
ㅤㅤ그들의 보금자리인 오피스텔은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완벽하게 격리된 '둘만의 밀실'이었다. 현관문을 닫는 순간, 외부의 모든 소음과 시선은 차단되었다. 그 안에서 그들은 비로소 온전한 '우리'가 될 수 있었다. 태준의 품에 안겨 잠이 드는 밤, 그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귓가에 들려올 때면 서희는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한 평화로움을 느꼈다. 그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을 때마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바람에 잠겼다.
ㅤㅤ함께 아침을 맞이하고,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함께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그들의 유대감은 더욱 깊어졌다. 태준은 서희의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녀가 말하지 않는 것까지도 그의 깊은 눈빛은 꿰뚫어 보는 듯했다. 그는 서희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장 든든한 보호자이자, 가장 뜨거운 연인이었다. 그의 차분한 사랑은 서희의 불안한 마음을 감싸주었고, 그의 존재는 그녀의 외로움을 완벽하게 채워주었다. 서희 역시 그에게 그러했다. 서로는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공기 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 금지된 사랑 속에서, 그들은 세상 그 어떤 연인들보다 깊고 진실된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서희는 믿었다.
ㅤㅤ하지만 '밀실'의 문을 나서면, 서희는 다시 평범한 윤서희로 돌아가야 했다. 회사에서는 태준에 대한 어떤 언급도 할 수 없었고, 친구들의 연애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면서도 자신의 진짜 사랑은 숨겨야 했다. 주말에 친구들이 '요즘 연애하니? 왜 그렇게 표정이 밝아?' 하고 물을 때마다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화를 돌렸다. '그냥 회사 생활이 재밌어졌어', '취미 생활에 몰두하고 있어' 같은 식의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그들의 시선은 가볍고 호기심에 찬 것이었지만, 서희에게는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느껴졌다. 들킬까 봐 조마조마했다. 거짓말은 점점 더 그녀의 영혼을 갉아먹는 듯했다.
ㅤㅤ가장 큰 압박은 단연 가족이었다. 한 달에 한두 번, 부모님과 정기적으로 통화를 했다. 어머니는 늘 그녀의 건강과 안부를 물었고, 간혹 태준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ㅤㅤ"태준이 오빠랑은 요즘도 연락하니? 그 오빠도 혼자 타지에 있으니 너라도 연락해서 외롭지 않게 해줘라."
ㅤㅤ어머니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서희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짓눌렀다. 어머니는 태준을 조카이자, 딸의 좋은 친척 오빠로 여겼고, 심지어 두 사람이 서로에게 힘이 되는 좋은 관계가 되기를 바랐다. 그 순수한 기대감 앞에서 서희는 죄책감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네, 엄마. 가끔 연락해요. 잘 지내는 것 같더라고요.' 그녀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지만, 심장은 늘 불안하게 뛰었다.
ㅤㅤ하루는 아버지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아버지는 무뚝뚝했지만, 딸을 걱정하는 마음은 늘 깊었다.
ㅤㅤ"서희야, 너 독립해서 잘 지내는 건 아는데, 너무 혼자 지내는 것 아니냐? 친구들이랑은 잘 만나고? 엄마가 맨날 네 걱정을 하더라."
ㅤㅤ"네, 아빠. 친구들이랑도 잘 지내고 있어요. 걱정 마세요."
ㅤㅤ"그래. 너 힘들 때 기댈 사람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 태준이 오빠라는 애는 잘 지낸다디? 그래도 친척이니까 서로 좀 챙겨주고 그래라. 낯선 서울에서 얼마나 힘들겠니."
ㅤㅤ아버지의 말에 서희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낯선 서울에서 얼마나 힘들겠니'라는 말이 그녀의 가슴을 후벼 팠다. 아버지는 태준의 외로움을 염려하고 있었지만, 정작 태준은 지금 그녀의 곁에서, 그녀의 품에서 외로움을 잊고 있었다. 이 거대한 거짓말의 무게가 서희의 어깨를 짓눌렀다. 아버지는 태준을 '애'라고 부르며 아끼고 있었는데, 그 '애'와 자신이 세상의 금기를 넘어서는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죄스러웠다. 이 비밀을 영원히 숨길 수 있을까. 언젠가 들키게 된다면, 그 파장은 자신들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부모님, 그리고 모든 가족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줄 것이다.
ㅤㅤ통화를 마친 서희는 그대로 소파에 주저앉았다.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낮 동안 애써 외면했던 불안감과 죄책감이 밤이 되자 한꺼번에 그녀를 덮쳤다. 이 사랑은 너무나 달콤했지만, 동시에 너무나 무거웠다. 그녀는 이 감정의 무게를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ㅤㅤ그때였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퇴근한 태준이었다. 그는 서희가 소파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것을 보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녀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그의 눈빛에는 걱정과 함께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
ㅤㅤ"서희야,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어디 아파?"
ㅤㅤ그의 따뜻한 손이 그녀의 뺨을 감쌌다. 서희는 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품에 안기자 낮 동안의 모든 긴장감이 눈 녹듯 사라졌다. 그의 존재만이 그녀에게 유일한 안식처였다.
ㅤㅤ"오빠... 나... 나 너무 무서워요. 아까 아빠랑 통화했는데... 아빠가 오빠 얘길... 흐읍..."
ㅤㅤ서희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 낮 동안 꾹꾹 눌러왔던 감정들이 그의 품에서 터져 나왔다.
ㅤㅤ태준은 그녀의 등을 단단히 안아주었다. 그의 손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ㅤㅤ"괜찮아, 서희야. 괜찮아. 무슨 일 있었는지 이야기해봐. 내가 옆에 있잖아."
ㅤㅤ그의 차분한 목소리는 그녀의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켰다. 서희는 아빠와의 통화 내용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아빠가 태준을 '애'라고 부르며 걱정하고, 두 사람이 친척으로서 서로를 챙겨주기를 바랐다는 이야기까지. 그의 얼굴에는 순간적으로 깊은 고민과 함께, 죄책감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을 서희는 보았다. 그 역시 이 비밀의 무게를 함께 느끼고 있었다.
ㅤㅤ태준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저 그녀를 단단히 안고 등을 토닥일 뿐이었다. 그의 침묵 속에서 서희는 그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감당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ㅤㅤ"서희야."
ㅤㅤ그가 나지막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흔들림 없는 결심이 담겨 있었다. 서희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은 깊고, 그의 눈에는 그녀를 향한 변함없는 사랑과 굳은 의지가 담겨 있었다.
ㅤㅤ"우리가 선택한 길이야. 이 길을 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거, 나도 잘 알아. 하지만 후회하지 않아. 너를 만난 게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
ㅤㅤ그의 고백에 서희의 눈물이 다시 흘러내렸다. 그의 말이 그녀의 마음을 깊이 울렸다.
ㅤㅤ"이런 우리가... 괜찮을까요, 오빠? 잘못된 거라는 건 아는데..."
ㅤㅤ서희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의 마음속 깊이 박힌 죄책감이 그녀를 괴롭혔다.
ㅤㅤ태준은 그녀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의 엄지손가락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ㅤㅤ"괜찮아, 서희야.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데, 어쩔 수 없는 거 아니야?"
ㅤㅤ그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서희는 그 말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어쩔 수 없는 거 아니야?' 마치 원작 글의 그녀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처럼. 그 말은 서희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있는 혼란과 절박함을 정확히 꿰뚫는 말이었다. 그래, 어쩔 수 없었다. 이 감정은 그녀의 의지로 시작된 것이 아니었고, 그녀의 의지로 멈출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ㅤㅤ"우리가 세상에 말하지 못한다고 해서, 우리의 사랑이 거짓이 되는 건 아니잖아."
ㅤㅤ태준은 서희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따뜻하고 든든했다.
ㅤㅤ"나는 너를 사랑해. 그리고 너도 나를 사랑하잖아. 그거면 충분해.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아. 우리가 이 관계를 지켜내면 돼.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가족들의 걱정으로부터. 오직, 우리 둘만의 방식으로."
ㅤㅤ그의 말은 서희의 마음속 혼란을 잠재우고, 그 자리에 확신을 심어주었다. 그는 그녀의 가장 든든한 방패이자, 가장 따뜻한 안식처였다. 그의 존재 자체가 그녀에게는 용기였다. 그녀는 그의 품에 더 깊이 파고들었다.
ㅤㅤ그날 밤, 그들은 서로의 품에 안겨 잠들었다. 세상의 모든 기준과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둘만의 밀실 속에서 그들은 서로에게 의지했다. 그들의 사랑은 세상의 그림자 속에서 더욱 깊고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있었다. 서로를 지켜내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는 그들의 유대감을 더욱 강화했다.
ㅤㅤ며칠 후, 서희는 태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ㅤㅤ"오빠... 우리, 이대로 계속 비밀로만 지낼 수는 없잖아요."
ㅤㅤ태준은 서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비밀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었고, 언젠가 터질 시한폭탄 같은 것이었다.
ㅤㅤ"응, 나도 알아. 언젠가는 이야기해야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아직은 아니야."
ㅤㅤ"그럼... 우리 어떻게 해야 해요? 이대로 계속 숨어 지내야 하는 건가요?"
ㅤㅤ서희의 목소리에는 답답함과 함께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 그녀는 '정상적인' 관계처럼 미래를 꿈꿀 수 없다는 사실에 때때로 좌절했다.
ㅤㅤ태준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의 눈을 깊이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ㅤㅤ"당장은 아니지만, 나는 우리가 평생 함께할 거라고 생각해. 이대로 숨어 지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너를 놓을 수도 없고."
ㅤㅤ"평생..."
ㅤㅤ서희는 나지막하게 그 단어를 되뇌었다. 그녀는 그 단어 속에서 희망과 동시에 또 다른 두려움을 느꼈다. 평생을 비밀 속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하지만 그와 함께라면, 그 평생도 두렵지 않을 것 같았다.
ㅤㅤ"응. 그래서... 생각 중이야. 우리가 이 관계를 지켜내려면, 세상의 기준과는 다른 우리만의 방식이 필요하다고."
ㅤㅤ태준은 그녀의 손을 잡은 채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그의 눈빛은 그녀에게 '나를 믿어달라'고 말하는 듯했다. 서희는 그의 눈빛 속에서 강한 신뢰와 함께, 그가 이미 다음 단계를 고민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들의 관계를 세상에 공식적으로 드러낼 수는 없지만, 그들만의 방식으로 그들의 사랑을 맹세할 수 있는 방법.
ㅤㅤ서희는 그의 손을 더 단단히 잡았다. 그의 손은 그녀의 불안을 잠재우는 듯했다. 그녀는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기로 했다. 그와 함께라면, 이 위험한 파도 위를 끝까지 걸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작가의 말
등록된 작가의 말이 없습니다.
닫기![]()
오직,우리..
13.12조회 : 3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7,282 12.11조회 : 5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6,667 11.10조회 : 11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77 10.09조회 : 62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448 9.08조회 : 12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6,263 8.07조회 : 10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6,135 7.06조회 : 7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422 6.05조회 : 5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6,732 5.04조회 : 6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8,375 4.03조회 : 4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9,942 3.02조회 : 10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8,156 2.01조회 : 11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만 1.프롤로그조회 : 29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8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