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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106 추천 : 0 글자수 : 5,177 자 2025-08-21
ㅤㅤ윤태준의 품에 안겨 흐느끼던 윤서희의 작은 떨림은 그에게 거대한 파동으로 다가왔다. 아버님과의 통화 후 밀려온 죄책감과 불안감. '우리,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요?', '잘못된 거라는 건 아는데...' 그녀의 절박한 물음은 태준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을 울렸다.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에 뺨을 기댄 채, 나지막이 속삭였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데, 어쩔 수 없는 거 아니야?'. 그 말은 서희에게 던지는 위로이자, 동시에 스스로에게 던지는 확신이었다. 세상이 정한 선을 넘어선 그들의 사랑을, 태준은 이제 그 어떤 것도 방해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ㅤㅤ그날 밤, 서희를 품에 안고 잠든 태준은 좀처럼 잠들 수 없었다. 그의 품에서 편안하게 잠든 그녀의 숨소리는 그에게 안도감을 주었지만, 그녀의 여린 어깨는 그에게 더 큰 책임감을 안겨주었다. 그녀는 그에게서 위안을 찾았고, 그 역시 그녀에게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았다. 외로웠던 삶, 감정 표현에 서툴렀던 그에게 서희는 마치 잃어버렸던 조각처럼 다가와 그의 세상에 온전함을 선사했다. 그녀 없이는 이제 그의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 사랑은 그에게 너무나도 필연적이었다.
ㅤㅤ하지만 '사촌'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는 여전히 그의 마음 한구석에 무겁게 자리 잡고 있었다. 사회의 시선, 가족의 기대, 그리고 법적인 제약. 그 모든 것이 그들의 사랑을 옥죄는 거대한 그림자였다. 그는 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다. 그녀를 사랑하는 만큼, 그녀를 보호해야 했다. 그녀의 눈에 비친 불안감과 죄책감을 지워주고 싶었다. 그녀에게 이 사랑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님을, 오히려 세상 그 어떤 사랑보다 진실하고 소중한 것임을 증명하고 싶었다.
ㅤㅤ며칠 후, 서희가 잠든 밤, 태준은 거실로 나와 홀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 비밀스러운 동거를 이어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서희는 '평생'이라는 단어 속에서 희망과 동시에 두려움을 느꼈다. 막연한 미래는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녀에게는 더 강력한 확신이 필요했다. 세상에 공개할 수는 없지만, 그들만의 방식으로 그들의 사랑을 공고히 할 방법. 서로에게 영원히 함께할 것을 맹세할 수 있는 방법.
ㅤㅤ그때, 그의 머릿속에 '결혼'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결혼. 세상 모든 연인들이 꿈꾸는 종착점. 하지만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먼 이야기였다. 법적으로 사촌 간의 혼인신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휴대폰을 들어 검색해 보았다. 예상대로였다. 민법상 8촌 이내 혈족 간의 혼인은 금지되어 있었다. 4촌인 그들은 법적으로 부부가 될 수 없었다.
ㅤㅤ그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태준의 가슴이 답답하게 죄어왔다. 자신이 서희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을 법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녀에게 법적인 배우자라는 안정감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이 그를 절망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세상의 평범한 연인들처럼 행복한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를 하고, 법적으로 인정받는 부부가 될 자격이 있는데. 그 모든 것을 자신이, 그리고 그들의 '관계'가 빼앗고 있었다.
ㅤㅤ하지만 절망은 잠시였다. 법적인 제도만이 결혼의 전부일까? 결혼은 결국 두 사람의 사랑과 맹세, 그리고 그 약속을 기념하는 행위가 아닐까? 혼인신고는 할 수 없어도, '결혼식'은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의 법이 그들을 막는다면, 그들은 그들만의 법을 만들면 된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서로에게 맹세하면 된다.
ㅤㅤ그의 머릿속에서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거창한 결혼식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화려한 드레스나 수많은 하객은 필요 없었다. 오직 그와 서희, 둘만 존재해도 좋았다. 아니면 정말 믿을 수 있는, 소수의 증인들만 모아서. 가족들에게는 절대 알리지 않고. 그들의 비밀스러운 사랑을 위한, 오직 그들만을 위한, 가장 신성하고 진실된 맹세. 그것이야말로 서희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필요한 '결혼'이었다.
ㅤㅤ그는 침실로 돌아와 잠든 서희의 옆에 조용히 누웠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이 작은 존재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은 무엇일까. 그는 그녀에게 '축복'을 주고 싶었다. 세상의 비난 속에서도, 그들의 사랑이 축복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그녀에게 평생 함께할 것이라는, 흔들림 없는 확신을 선물하고 싶었다.
ㅤㅤ다음 날 아침, 태준은 서희에게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차를 마시는 시간이었다. 태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깊게 숨을 내쉬었다.
ㅤㅤ"서희야, 나 할 이야기가 있어."
ㅤㅤ그의 진지한 목소리에 서희의 눈이 커졌다. 그녀의 눈에는 긴장감과 함께 질문이 가득했다. 그녀는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없는 듯,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ㅤㅤ"우리 관계에 대해서... 어젯밤에도 네가 많이 힘들어했잖아."
ㅤㅤ"응..."
ㅤㅤ서희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ㅤㅤ"내가 너한테 평생 함께할 거라고 말했지만, 그게 그냥 말뿐인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
ㅤㅤ태준은 그녀의 눈을 깊이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ㅤㅤ"법적으로는... 우리가 결혼할 수 없다는 거, 알고 있지?"
ㅤㅤ서희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애써 외면했던 현실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ㅤㅤ"응... 알고는 있었는데..."
ㅤㅤ그녀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태준은 그녀의 손을 더 단단히 잡았다.
ㅤㅤ"나는 그게 너무 싫었어. 내가 너한테 가장 큰 걸 해줄 수 없다는 게. 하지만 생각했어. 법이 정한 결혼만이 결혼의 전부일까? 우리만의 방식도 있을 수 있잖아."
ㅤㅤ서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에 혼란스러움과 함께, 묘한 기대감이 스쳤다.
ㅤㅤ"우리만의 방식...?"
ㅤㅤ"응. 혼인신고는 못 해도... 결혼식을 올릴 수 있잖아. 우리만의 결혼식."
ㅤㅤ태준의 입에서 나온 '결혼식'이라는 단어에 서희의 눈이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제안은 너무나 파격적이고, 동시에 너무나 간절하게 바라던 것이었다.
ㅤㅤ"세상 사람들한테는 말하지 못할 거야. 가족들한테도. 최소한의 인원만 모아서 소소하게. 아니면... 우리 둘만 있어도 좋아."
ㅤㅤ태준은 그녀의 반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의 눈빛은 그녀에게 '이건 너를 위한 거야'라고 말하고 있었다.
ㅤㅤ"이게... 가능한 일이에요, 오빠?"
ㅤㅤ서희의 목소리가 떨렸다. 꿈만 같은 이야기였다. 그녀는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ㅤㅤ"가능하게 만들 거야. 네가 원한다면. 나는 너한테 정식으로 맹세하고 싶어. 평생 너의 곁을 지킬 거라고."
ㅤㅤ그의 눈빛은 너무나 진지했다. 그의 고백은 서희의 마음속 깊은 곳을 울렸다. 결혼식. 아무도 모르게, 오직 둘만의. 세상의 축복은 받을 수 없겠지만, 그들만의 방식으로 서로에게 영원을 맹세하는 것. 그것은 그녀의 불안감을 잠재우고, 그녀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ㅤㅤ서희는 눈물을 글썽였다. 기쁨과 함께 밀려오는 복잡한 감정들. 그녀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ㅤㅤ"오빠... 정말... 정말 그렇게 해줄 수 있어요?"
ㅤㅤ그녀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가득했다. 태준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ㅤㅤ"당연하지. 나는 너를 사랑하니까. 그리고 우리의 사랑은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니까."
ㅤㅤ그의 말에 서희는 태준의 품에 안겼다. 그의 품은 따뜻했고, 그의 심장 박동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그 소리는 그녀에게 가장 든든한 약속 같았다. 세상의 모든 금기와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둘만의 밀실 속에서 그들은 서로에게 영원을 맹세하려 하고 있었다. 이 사랑이 어떤 대가를 치르든, 그들은 함께 감당할 것이다.
ㅤㅤ그날 이후, 그들은 비밀스러운 결혼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모든 과정은 은밀하고 조심스러웠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조용한 스몰 웨딩 장소를 알아보고, 최소한의 웨딩드레스와 수트를 찾아다녔다. 그들은 마치 스파이가 된 듯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ㅤㅤ웨딩드레스를 고르는 날, 서희는 태준과 함께 작은 드레스 숍에 갔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깨끗하고 단정한 드레스를 골랐다. 거울 앞에 선 자신의 모습을 보며 서희는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보통의 신부들처럼 친구들과 가족들의 축하를 받으며 드레스를 입는 것이 아니었다. 태준과 단 둘이서. 그 사실이 아쉽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들만의 비밀스러운 행복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ㅤㅤ"예쁘다, 서희야."
ㅤㅤ태준이 그녀의 뒤에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의 눈빛에는 사랑과 감격이 가득했다.
ㅤㅤ"오빠도 멋있을 거예요."
ㅤㅤ서희가 웃으며 말했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에게 위안과 확신을 주었다. 세상의 시선이 아닌, 오직 서로의 시선만을 의식했다.
ㅤㅤ결혼식 날짜가 잡혔다. 아무도 모르게, 아주 소박하게. 최소한의 인원만 모아서 진행하기로 했다. 정말 믿을 수 있는 몇몇 친구들에게는 '사정이 있어서 간소하게 하니 부담 없이 와달라'는 식으로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가족들에게는 끝까지 비밀로 하기로 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들이 받을 충격과 비난은 상상 이상일 테니까. 그들의 사랑은 그들에게는 축복이었지만, 세상에는 여전히 '금기'였다.
ㅤㅤ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그 모든 순간들이 그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서로에게 의지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서로의 사랑을 더욱 깊이 확인했다. 그들은 세상의 모든 기준에서 벗어나, 오직 '우리'만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이 결혼은 세상에 대한 그들의 침묵적인 선언이자, 서로에게 바치는 가장 순수하고 절박한 맹세였다.
ㅤㅤ태준은 잠든 서희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나는 너를 놓을 수 없어.' 그날 밤 했던 고백은 이제 '영원히'라는 단어로 바뀌었다. 이 결혼식은 그들에게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세상의 비난 속에서도, 그들의 사랑만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그녀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맹세했다. 오직, 우리. 그들의 세상은 그렇게 견고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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