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조회 : 125 추천 : 0 글자수 : 4,396 자 2025-09-25
ㅤㅤ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는 윤태준에게 이제 익숙한 고요함의 시작을 알렸다. 세상의 모든 소음과 비난이 차단되는 소리. 지난 몇 주간, 그의 삶은 거대한 폭풍 속에 던져진 작은 배와 같았다. 어머니의 절규, 아버지의 싸늘한 경고, 그리고 다른 친척들의 맹렬한 비난. 그 모든 것이 그의 심장을 갈가리 찢어 놓았다. 가족으로부터의 완전한 단절 통보. 그것은 그에게 가장 큰 상처이자, 동시에 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할 이유를 명확히 해주는 계기였다. 그는 서희를 선택했다. 그의 모든 가족을 버리면서까지도. 그리고 단 한 번도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ㅤㅤ새로운 보금자리, 그들만의 '요새'는 이제 세상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그들의 사랑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의 품에 안겨 잠든 서희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의 고요한 숨소리, 부드러운 머리카락. 지난 밤 그녀가 가족과의 단절로 인한 외로움과 죄책감에 울었던 것을 떠올리며, 태준은 그녀를 더욱 단단히 안았다. 그녀의 슬픔은 그의 슬픔이었고, 그녀의 불안은 그의 불안이었다. 그는 그녀를 지켜야 했다. 그녀의 어깨에서 모든 짐을 덜어주고 싶었다.
ㅤㅤ매일 아침, 서희와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어깨를 부딪히며 작은 부엌을 오가는 시간은 그에게 가장 소중한 일상이었다. 그녀가 만든 서툰 커피가 그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였고, 그녀의 웃음소리 하나에 그의 하루가 환해지는 듯했다. 결혼이라는 맹세는 그들의 관계를 더욱 깊고 단단하게 만들었다. 서로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실로 그들을 묶어주는 듯했다. 그 반지는 세상의 빛을 볼 수 없는 대신, 그들만의 밀실에서 더욱 찬란하게 빛났다. 그들의 사랑은 세상의 어떤 금기보다 강렬했다.
ㅤㅤ하지만 '요새'의 문을 나서면, 태준은 다시 사회 속의 한 개인으로 돌아가야 했다. 회사에서는 자신의 사적인 삶에 대한 어떤 언급도 피했다. 친구들의 술자리 제안에도 적당히 핑계를 대며 거절했다. 그의 삶은 오직 서희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가족과의 모든 연락이 끊긴 후, 그의 휴대폰은 고요해졌다. 명절이 다가왔지만, 그에게는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았다. 친척들의 모임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는 가족이라는 거대한 울타리에서 완전히 벗어나, 세상의 외딴섬에 홀로 남겨진 듯했다. 물론 옆에는 서희가 있었지만, 그 고립감은 뼈아팠다.
ㅤㅤ그는 자신을 향한 가족의 비난과 단절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어머니의 절규, 아버지의 차가운 실망. 그 모든 것이 그의 마음속에 깊은 상처로 남았다. 하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서희를 선택한 것은 그의 삶에서 가장 솔직하고 진실된 결정이었다. 다만, 그녀가 이 모든 고통을 자신과 똑같이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괴롭혔다. 그녀는 가족의 사랑과 관심 속에서 자랐고, 관계의 단절은 그녀에게 더 큰 상처가 될 것이 분명했다.
ㅤㅤ'우리, 이대로 계속 숨어 지내야 하는 걸까요?' 서희의 질문이 밤마다 그의 귓가에 맴돌았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답답함이 섞여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계속 숨어 지낼 수는 없다'고 단호하게 답했다. 그녀를 사랑하는 만큼, 그는 그녀에게 죄책감 없이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싶었다. 평생을 '비밀'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게 할 수는 없었다.
ㅤㅤ태준은 밤늦도록 잠 못 이루고 고민했다. 이 관계를 세상에 드러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계속 이렇게 힘들게 할 수도 없었다. 그는 서희를 위한, 그리고 그들을 위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 세상의 법과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평범함'을 쟁취할 수 있는 길. 그것은 존재할까.
ㅤㅤ그는 자신의 직업적인 역량과 현실적인 사고방식을 동원했다. 감정에만 매달릴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의 재정 상황, 주거 환경, 그리고 미래 계획을 면밀히 검토했다. 그는 이미 그들의 '요새'를 마련했다. 이제는 그 안에서 어떻게 '진정으로' 살아갈지 고민할 차례였다. 그는 가족과의 단절을 피할 수 없었다면, 그 단절 속에서 그들만의 굳건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ㅤㅤ새로운 형태의 삶. 그는 오랜 시간 고민 끝에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이대로 숨어 지내는 것을 넘어, 그들만의 삶의 방식을 세상에 '고요히 저항'하는 것. 완전히 드러내지는 않지만, 더 이상 모든 것을 숨기려 애쓰지 않는 것. 그들만의 신념과 가치를 바탕으로, 그들만의 삶을 구축하는 것.
ㅤㅤ그는 서희에게 함께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평소 그녀가 관심 있었던 도자기 공예 수업이나, 주말마다 함께 등산을 가는 것. 혹은 집 안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작은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것. 그저 여가 활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이 세상과의 단절 속에서 서로에게 더욱 집중하고, 그들만의 세계를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그는 그녀와 함께 새로운 배움과 경험을 통해 그들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들고 싶었다. 그것이 그들이 외로움을 극복하는 방식이었다.
ㅤㅤ그는 서희와 함께 지역의 작은 도예 공방에 등록했다. 주말마다 그들은 함께 흙을 만지고, 유약을 바르며 자신들만의 도자기를 만들었다. 서희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순수한 즐거움이 피어났다. 손에 흙을 묻히고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그녀의 마음속 복잡한 감정들을 잠시 잊게 해주었다. 태준은 그녀의 행복한 얼굴을 보며 만족했다. 그들의 작업물은 서희의 섬세함과 태준의 안정적인 손길이 어우러져 독특한 매력을 발산했다.
ㅤㅤ"오빠, 이거 우리 결혼반지랑 비슷하게 만들어볼까요? 세상에 보여줄 수 없으니까, 우리만의 반지처럼."
ㅤㅤ서희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녀의 제안에 태준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의 가슴이 뭉클했다. 그녀는 여전히 이 사랑을 지키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애쓰고 있었다. 그들은 함께 작은 도자기 반지를 만들었다. 투박했지만, 세상 그 어떤 보석보다 값진 반지였다.
ㅤㅤ그들은 또한 자신들의 '밀실' 안에서 또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태준은 그녀가 좋아하는 그림들을 거실 벽에 걸어주었고, 함께 작은 서재를 꾸몄다. 그녀의 취향이 가득 담긴 공간. 그곳에서 그들은 함께 책을 읽고, 깊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내면을 더욱 깊이 탐구했다. 그들의 삶은 점점 더 '우리'라는 이름 아래 응축되어 갔다.
ㅤㅤ하지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평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세상의 그림자는 여전히 존재했다. 태준은 서희에게 가족과의 단절에 대한 자신의 진짜 고통을 숨겼다. 그녀가 이미 충분히 힘들어하고 있었기에, 자신의 아픔까지 더해주고 싶지 않았다. 그는 밤마다 혼자 거실에 나와 창밖을 응시했다. 멀리 보이는 도시의 불빛들. 그곳에 가족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ㅤㅤ어느 날 밤, 태준은 잠든 서희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이대로 괜찮을까. 이 비밀을 영원히 숨길 수 있을까. 언젠가 이 관계가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면, 서희는 감당할 수 있을까. 그는 그녀를 사랑했지만, 동시에 그녀를 지켜주고 싶었다. 이 불안정한 관계가 그녀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를 바랐다. 그들의 사랑은 너무나 강력했지만, 동시에 너무나 취약했다. 이 고립된 삶 속에서, 그녀가 외로움을 느끼지는 않을까.
ㅤㅤ그는 그녀에게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단순한 희망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의지이자, 필사적인 다짐이었다. 가족과의 단절, 사회적 비난. 그 모든 것은 그녀를 위한 희생이었다. 그리고 그 희생은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녀의 존재는 그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그는 그녀를 위해 그 어떤 고통도 감내할 수 있었다.
ㅤㅤ태준은 서희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감쌌다. 그의 품에서 편안하게 잠든 그녀의 숨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렸다. 그는 그녀의 존재가 주는 안도감 속에서, 또 다른 다짐을 했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그는 그녀의 곁을 지킬 것이다. 이 '우리'를 지켜낼 것이다. 세상의 모든 비난 속에서도, 그들의 사랑만은 흔들리지 않게. 그는 그녀에게 이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게 하지 않을 것이었다. 이 고립된 섬에서, 그들은 오직 서로에게만 의지하며 세상의 폭풍우를 견뎌낼 것이다.
ㅤㅤ그들은 그렇게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고요한 저항'을 시작했다. 세상의 시선과 단절을 감내하면서도, 그 안에서 자신들만의 행복을 찾아가고, 서로에게 깊이 의지하며 삶의 의미를 찾았다. 그들의 사랑은 숨겨진 보석처럼, 더욱 빛나고 있었다. 이제 남은 에피소드는 단 두 편. 이들의 이야기는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 그들이 찾아낸 '고요한 저항'이 세상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칠까. 아니면 오직 둘만의 세계 속에서 영원히 행복할까.
작가의 말
등록된 작가의 말이 없습니다.
닫기![]()
오직,우리..
23.에필로그조회 : 10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2,257 22.마지막회조회 : 10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7,266 21.20조회 : 12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396 20.19조회 : 12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6,619 19.18조회 : 252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727 18.17조회 : 24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64 17.16조회 : 29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6,112 16.15조회 : 27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483 15.14조회 : 22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642 14.13조회 : 32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7,282 13.12조회 : 27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7,282 12.11조회 : 32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6,667 11.10조회 : 19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77 10.09조회 : 112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448 9.08조회 : 23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6,263 8.07조회 : 37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6,135 7.06조회 : 26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422 6.05조회 : 8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6,732 5.04조회 : 10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8,375 4.03조회 : 8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9,942 3.02조회 : 20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8,156 2.01조회 : 25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만 1.프롤로그조회 : 592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8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