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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271 추천 : 0 글자수 : 5,483 자 2025-09-10
ㅤㅤ윤서희의 세상은 지난 한 달간, 마치 거대한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방문과 그들의 동거 사실이 발각된 밤. 그리고 이어지는 가족들의 싸늘한 시선과 비난. 가장 가까웠던 울타리부터 균열이 시작되었다. 태준은 그녀를 단단히 안고 '세상의 모든 비난을 함께 감당하면 돼'라고 속삭였지만, 그 말조차 그녀의 마음속 깊이 박힌 죄책감과 절망감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그녀는 그 모든 파장의 원인이 자신 때문인 것만 같았다.
ㅤㅤ그날 이후, 서희는 어머니로부터 단 한 통의 전화도 받지 못했다. 늘 다정했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그리웠지만, 그녀는 감히 먼저 연락할 용기를 낼 수 없었다. 어머니가 얼마나 충격받고 힘들어하실지 짐작이 갔기에, 그저 조용히 숨 죽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모_즉, 어머니는 다른 친척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을 것이고, 그들의 삶은 이제 가족들 사이에서도 금기시될 것이 분명했다. 태준은 그녀에게 어머니의 전화를 모두 자신이 받았고, 잘 정리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켰지만, 서희는 그 말 속에서 느껴지는 태준의 피로감과 고통을 모를 수 없었다. 그 역시 가족들로부터 엄청난 비난과 압박을 받고 있을 터였다.
ㅤㅤ그들의 보금자리인 오피스텔은 이제 더욱 완벽한 '밀실'이 되었다.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오직 둘만이 존재하는 공간. 현관문을 닫는 순간, 외부의 모든 소음과 시선은 차단되었다. 그 안에서 그들은 비로소 온전한 '부부'가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의 품에 안겨 잠든 태준의 얼굴이 보였다. 그의 고요한 숨소리가 귓가에 들려올 때면 서희는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한 평화로움을 느꼈다. 그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을 때마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바람에 잠겼다. 외부의 고통이 커질수록, 그들만의 세계는 더욱 아늑하고 간절해졌다.
ㅤㅤ함께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어깨를 부딪히며 작은 부엌을 오가는 일상. 그의 손에서 뚝딱 만들어지는 따뜻한 음식, 그 옆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식탁을 차리는 자신의 모습. 이 평범한 풍경이 세상의 눈을 피해야 하는 '비밀'이라는 렌즈를 통해 비범하게 빛났다. 그들의 사랑은 햇살처럼 따뜻하고 은은하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결혼이라는 맹세는 그들의 관계를 더욱 깊고 단단하게 만들었다. 서로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실로 서로를 묶어주는 듯했다. 그 반지는 세상의 빛을 볼 수 없는 대신, 그들만의 밀실에서 더욱 찬란하게 빛났다.
ㅤㅤ하지만 '밀실'의 문을 나서면, 서희는 다시 평범한 윤서희로 돌아가야 했다. 회사에서는 태준에 대한 어떤 언급도 할 수 없었고, 친구들의 연애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면서도 자신의 진짜 사랑은 숨겨야 했다. '요즘 왜 그렇게 밝아? 혹시 애인 생겼니?' 같은 질문에 '그냥 회사 생활이 재밌어졌어' 같은 식의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그들의 시선은 가볍고 호기심에 찬 것이었지만, 서희에게는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느껴졌다. 들킬까 봐 조마조마했다. 거짓말은 점점 더 그녀의 영혼을 갉아먹는 듯했다. 양심의 가책이 그녀를 괴롭혔다. 그 모든 거짓말은 그녀의 입술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되었다.
ㅤㅤ가장 큰 아픔은 가족과의 단절이었다. 어머니는 물론이고, 아버지에게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다른 친척들의 연락도 끊겼다. 명절 때마다 북적였던 가족 단체 채팅방은 이제 더 이상 알림이 울리지 않았다. 서희는 그 방을 나갈 수도, 그 안에 남아 있을 수도 없었다. 차마 나가지 못하고 남아 있는 그 방은 그녀에게 텅 빈 공간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이 끊어졌다. 그녀는 가족이라는 거대한 울타리에서 완전히 벗어나, 세상의 외딴섬에 홀로 남겨진 듯했다. 물론 옆에는 태준이 있었지만, 가족으로부터의 단절은 그녀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ㅤㅤ어느 주말, 서희는 태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ㅤㅤ"오빠... 엄마... 아빠랑은 괜찮아요? 혹시 오빠 쪽 가족들도... 오빠한테 뭐라고 하세요?"
ㅤㅤ그녀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함께, 태준에게 미안하다는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감당하고 있었다.
ㅤㅤ태준은 서희의 손을 잡았다. 그의 표정은 잠시 어두워졌지만, 이내 그녀를 향해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ㅤㅤ"괜찮아, 서희야. 내가 다 알아서 처리했어. 걱정하지 마. 내가 너한테 이런 거까지 다 얘기해서 불안하게 만들 필요는 없잖아."
ㅤㅤ그의 말에 서희는 태준의 어깨에 기대어 품에 안겼다. 그의 대답은 그녀를 안심시키려 했지만, 동시에 그가 얼마나 많은 것을 혼자 짊어지고 있는지 느끼게 했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그녀에게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그 사실이 서희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그녀는 그에게 부담을 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ㅤㅤ"그래도... 오빠 혼자 다 감당하지 마요. 나도 오빠 아내인데..."
ㅤㅤ서희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녀는 그의 짐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ㅤㅤ"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지금은 내가 다 하는 게 맞아. 너한테 괜한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아. 서희가 힘들어하는 모습 보는 게 제일 힘드니까."
ㅤㅤ그의 말에 서희는 울컥했다. 그의 사랑은 늘 그녀를 지켜주려 했다. 그의 사랑은 그녀에게 든든한 방패였지만, 동시에 그녀를 고립시키는 벽이 되기도 했다.
ㅤㅤ가족과의 단절은 현실로 다가왔다. 어머니 생신이었다. 서희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감히 연락할 수도, 찾아뵐 수도 없었다. 태준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그날, 오피스텔에 단둘이 남아 조용히 저녁 식사를 했다. 따뜻한 음식을 나누는 와중에도, 서희의 마음속에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이 가득했다. 엄마의 생신을 축하해 드리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녀를 괴롭혔다. 태준은 그녀의 눈빛에서 슬픔을 읽었을 것이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그의 눈빛은 그녀에게 '괜찮아. 내가 옆에 있어.'라고 말하고 있었다.
ㅤㅤ그날 밤, 서희는 태준의 품에 안겨 잠 못 이루고 뒤척였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그리움과 죄책감, 그리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뒤섞여 있었다. 이대로 계속 가족과 단절된 채 살아야 할까. 세상의 시선을 영원히 피해야 할까. 그들의 사랑은 과연 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을까.
ㅤㅤ"오빠... 우리, 이대로 괜찮을까요? 정말 괜찮을까요?"
ㅤㅤ서희는 나지막하게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두려움과 함께, 이 관계의 본질적인 질문이 담겨 있었다.
ㅤㅤ태준은 그녀를 더욱 단단히 안아주었다. 그의 따뜻한 손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ㅤㅤ"모르겠어, 서희야. 하지만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진실이잖아."
ㅤㅤ그의 목소리는 고요했지만, 그 안에 담긴 확신은 서희의 마음을 흔들었다.
ㅤㅤ"사랑이... 모든 걸 이길 수 있을까요?"
ㅤㅤ서희는 그의 품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빛은 질문으로 가득했다.
ㅤㅤ태준은 그녀의 눈을 깊이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ㅤㅤ"이길 수 있을 거야. 우리가 함께라면."
ㅤㅤ그의 말에 서희는 다시 그의 품에 안겼다. 그의 품은 언제나 그녀에게 가장 든든한 안식처였다. 세상 모든 것이 그들을 외면한다 해도, 오직 그들만은 서로에게 영원히 함께할 것이라고. 그는 그들만의 맹세를 다시 한번 되새겼다.
ㅤㅤ그들의 사랑은 세상의 가장 깊은 심연 속에서, 오직 둘만의 빛으로 존재할 것이었다. 가족과의 단절은 그들을 더욱 고립시켰지만, 동시에 그들 서로에게 더욱 깊이 의지하게 만들었다. 서로가 서로의 유일한 세상이 되어갔다. 그들만의 밀실에서, 그들은 세상의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웠다. 하지만 그 자유는 외로움을 동반했다.
ㅤㅤ서희는 자신의 삶이 마치 고립된 섬이 된 것 같다고 느꼈다. 과거의 인연들이 하나둘씩 끊어져 나갔다. 친구들과의 만남도 뜸해졌다. 그들이 겪는 이 특별한 상황을 이해시킬 수 없었기에, 자연스레 만남이 줄어들었다. 그녀는 그들에게도 거짓말을 덧대야 하는 것이 힘들었고, 자신들의 비밀스러운 사랑을 온전히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 외로웠다. 세상 모든 사람들과의 연결고리가 약해지는 듯했다.
ㅤㅤ오직 태준만이 그녀의 유일한 연결고리였다. 그의 존재는 그녀에게 세상 전부였다. 그의 품에서 그녀는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그의 손길, 그의 숨결, 그의 목소리. 그 모든 것이 그녀의 감각을 지배했다. 그의 사랑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꼈다. 그는 그녀의 빛이자 어둠이었다.
ㅤㅤ하지만 이 모든 것이 지속될 수 있을까. 때때로 서희는 막연한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이 관계는 어떤 미래를 가질 수 있을까. 아이는? 평범한 가정은? 그 모든 것은 그들에게는 먼 이야기였다. 그들의 사랑은 사회의 궤도 바깥을 돌고 있었다. 영원히 이대로 숨어 지낼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태준도 분명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터였다.
ㅤㅤ어느 날 밤, 그들은 거실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밖은 고요했고, 달빛이 창문을 통해 희미하게 들어왔다.
ㅤㅤ"오빠..."
ㅤㅤ서희가 먼저 침묵을 깼다.
ㅤㅤ"응, 서희야."
ㅤㅤ태준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ㅤㅤ"우리... 계속 이렇게 숨어 지내야 하는 걸까요?"
ㅤㅤ서희의 목소리에는 간절함과 함께,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그녀는 '정상적인' 관계처럼 미래를 꿈꿀 수 없다는 사실에 때때로 좌절했다.
ㅤㅤ태준은 그녀의 손을 더 단단히 잡았다. 그의 눈빛은 깊었다. 그 역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오랫동안 고민했을 것이다.
ㅤㅤ"아니. 계속 숨어 지낼 수는 없어."
ㅤㅤ그의 단호한 대답에 서희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ㅤㅤ"그럼... 어떻게 해요?"
ㅤㅤ"나도 고민하고 있어. 우리가 어떻게 이 모든 걸 감당할 수 있을지. 세상에 드러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너를 계속 이렇게 힘들게 할 수도 없고."
ㅤㅤ태준은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ㅤㅤ"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서희야. 우리가 이 모든 것_ 가족과의 단절, 세상의 시선_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강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우리가 함께라면, 어떤 난관도 헤쳐나갈 수 있다는 걸."
ㅤㅤ서희는 그의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의 사랑은 그녀에게 가장 큰 위로이자, 가장 큰 용기였다. 그는 언제나 그녀를 위해 더 나은 방법을 찾아주려 했다.
ㅤㅤ"오빠... 나, 오빠 믿어요."
ㅤㅤ서희는 그의 품에 안겼다. 그의 품은 따뜻하고 든든했다. 세상의 가장 깊은 심연 속에서, 그들은 서로에게 의지했다. 고립된 섬처럼 살아가지만, 그 섬 안에는 오직 그들 둘만의 견고한 세상이 있었다. 그 세상은 세상의 어떤 비난과 단절도 막아낼 수 있는, 사랑으로 지어진 요새 같았다. 그들의 사랑은 더 큰 시험대에 오를 것이었다. 이 관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함께였다. 서로에게 의지하며,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그들만의 행복을 찾아나가는 여정.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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