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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275 추천 : 0 글자수 : 6,112 자 2025-09-11
ㅤㅤ현관문을 닫고 들어선 윤태준의 집은 고요했다. 평소 같으면 서희가 저녁 식사를 준비하며 풍기는 맛있는 냄새와 그녀의 조용한 흥얼거림으로 가득했을 공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지난 밤, 서희는 가족과의 단절로 인한 외로움을 끝내 감추지 못하고 그의 품에서 흐느꼈다. '엄마... 아빠... 보고 싶어요...' 그의 품에 안긴 그녀의 작은 어깨가 떨리는 것을 느끼며, 태준의 가슴은 미어지는 듯했다. 그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녀를 단단히 안아주었다. '사랑이... 모든 걸 이길 수 있을까요?' 그녀의 질문은 그의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이길 수 있을 거야. 우리가 함께라면.' 그렇게 답했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사랑은 그녀에게 행복만큼이나 큰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는 것을.
ㅤㅤ그날 밤, 서희가 잠든 후 태준은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았다. 창밖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고, 멀리 도시의 불빛만이 희미하게 빛났다. 그의 손에는 서희에게 받은 결혼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세상에는 보여줄 수 없는, 오직 그들만의 맹세. 그 반지는 그의 손가락에서 차갑게 빛났지만, 그 안에는 서희를 향한 그의 뜨거운 사랑과 책임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가족으로부터의 단절 통보를 받은 것은 태준이었다. 그 모든 비난과 실망은 그에게 향했다. 그는 서희에게 그 사실을 숨겼지만, 그 무게는 오롯이 그의 몫이었다.
ㅤㅤ태준은 이 관계의 본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사랑은 사회적 금기를 넘어섰고, 법적인 인정도 받을 수 없었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은 등을 돌렸다. 서희는 이제 세상의 외딴섬에 고립된 듯 살아가고 있었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자연스레 뜸해졌고, 그녀의 삶은 오직 태준에게로만 수렴되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유일한 세상이자,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는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희생이 그녀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ㅤㅤ그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계속 숨어 지내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서희는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할까'라는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녀는 평범한 삶을 꿈꿀 자격이 있었다. 아이를 낳고, 가족의 축복 속에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은 욕망. 그 모든 것을 자신이, 그리고 그들의 '관계'가 빼앗고 있었다. 그의 마음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ㅤㅤ그는 그녀에게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희망적인 선언이자, 그들을 지키기 위한 필사적인 다짐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랑만으로 모든 현실을 극복할 수 있을까. 그는 더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그녀를 위한, 그리고 그들을 위한.
ㅤㅤ그는 밤늦도록 휴대폰을 들고 인터넷을 검색했다. '사촌 간 결혼', '근친혼 금지', '법적 제약 외 사랑'. 수많은 검색어들을 입력했다. 대부분은 법적인 불가능성을 명확히 하거나, 사회적 비난을 이야기하는 글들이었다. 그는 절망했다. 이 세상에는 그들을 위한 자리가 없는 것 같았다.
ㅤㅤ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는 서희의 눈물을 다시 떠올렸다. 그녀가 자신에게 의지하며 나지막이 불렀던 '오빠'라는 호칭. '나, 오빠 믿어요.' 그 말들이 그의 심장을 다시 뛰게 했다. 그는 그녀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ㅤㅤ그는 해외 사례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일부 국가에서는 사촌 간의 혼인이 허용되거나, 특정 조건 하에 가능한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다. 가족과 사회의 시선을 완전히 벗어나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은 그들에게 또 다른 형태의 고립이자, 모든 것을 포기하는 행위였다. 서희는 한국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싶어 했다. 그는 그녀의 뿌리를 뽑아낼 수 없었다.
ㅤㅤ며칠 동안 태준은 잠을 설쳤다. 밤마다 서희가 잠든 후, 그는 거실로 나와 생각에 잠겼다. 그는 이 관계가 계속해서 그녀를 괴롭히지 않기를 바랐다. 그녀에게 죄책감 없이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싶었다. 그는 혼자서 모든 짐을 짊어지려 했다. 그녀의 슬픔, 그녀의 불안감.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어깨에 올렸다.
ㅤㅤ그러던 어느 날, 그는 문득 다른 가능성을 떠올렸다. 그들이 법적으로 부부가 될 수 없고, 세상의 축복을 받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면 그들만의 방식으로 '평생'을 약속할 수는 없을까. '결혼식'을 올렸듯이. 그리고 그 '평생'을 더욱 안정적인 형태로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ㅤㅤ그는 '가족'이라는 개념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피로 묶인 가족은 그들을 버렸다. 하지만 '새로운 가족'을 만들 수는 없을까. 서로에게 의지하고, 서로를 보호하며, 세상의 시선에서 벗어나 오직 '우리'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닐까.
ㅤㅤ그는 자신의 직업적인 역량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감정에만 매달릴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의 재정 상황, 주거 환경, 그리고 미래 계획을 면밀히 검토했다. 만약 서희와 함께 이 삶을 지속한다면, 어떤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그는 가장 안전하고 안정적인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세상의 비난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물리적, 재정적 방패.
ㅤㅤ이 모든 고민과 계획은 서희에게 알리지 않은 채 진행되었다. 그녀에게 더 큰 불안감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충분히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는 혼자서 이 짐을 짊어지고 싶었다. 그녀를 위해 이 모든 난관을 헤쳐나가고 싶었다.
ㅤㅤ어느 날 밤, 태준은 잠든 서희의 옆에 누웠다. 그녀의 숨소리는 고요했고, 그녀의 얼굴은 평화로웠다.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 그 반지가 희미한 불빛 아래서 빛났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자신의 뺨에 가져다 댔다. 그녀의 따뜻한 온기가 그의 뺨에 전해졌다.
ㅤㅤ'서희야. 나는 너를 놓을 수 없어. 그리고 너를 놓지 않을 거야. 세상 모든 것이 우리에게 등을 돌려도, 나는 너의 곁을 지킬 거야.'
ㅤㅤ그는 다시 한번 다짐했다. 이 사랑은 그에게 가장 큰 용기를 주었다. 가족과의 단절, 사회적 비난. 그 모든 것은 그녀를 위한 희생이었다. 그리고 그 희생은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ㅤㅤ그는 서희의 불안감을 완전히 해소해 줄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평생 함께할 것'이라는 확신만큼은 흔들림 없이 주고 싶었다. 그 확신은 단순한 말이나 맹세를 넘어, 현실적인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이어야 했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세상의 궤도를 벗어나 자신들만의 굳건한 삶을 구축하는 것.
ㅤㅤ다음 주말, 태준은 서희에게 함께 외출하자고 제안했다. 평소처럼 영화를 보거나, 식사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녀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그녀와 함께 미래를 논하고 싶었다. 그녀가 이 모든 계획의 중심에 있어야 했다.
ㅤㅤ"서희야, 이번 주말에 나랑 같이 갈 데가 있어."
ㅤㅤ"응? 어디요, 오빠?"
ㅤㅤ서희의 눈빛에는 호기심과 함께 약간의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 최근 그가 밤마다 잠 못 들고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ㅤㅤ"가보면 알아. 너랑 나, 둘 다에게 중요한 곳이 될 거야."
ㅤㅤ태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따뜻하게 미소 지었다. 그의 눈빛은 그녀에게 '나를 믿어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의 불안감을 잠재우고 싶었다. 그는 그녀에게 이 모든 것을 함께 나눌 준비가 되어 있었다.
ㅤㅤ약속 당일, 태준은 서희를 데리고 도심 외곽의 한적한 주택가로 향했다. 한적하고 조용한 골목길에는 깔끔하고 아늑해 보이는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녀는 그가 어디로 가려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의 얼굴에는 묘한 긴장감과 함께, 그녀를 향한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
ㅤㅤ그가 어느 집 앞에 차를 세웠다. 서희는 눈을 크게 떴다. 깔끔하게 정돈된 정원, 따뜻한 색감의 외벽. 누가 봐도 살기 좋은 집이었다.
ㅤㅤ"여기는... 어디예요, 오빠?"
ㅤㅤ서희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ㅤㅤ태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녀를 집 앞으로 이끌었다.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따뜻한 햇살이 집 안 가득 쏟아져 들어왔다. 넓고 깨끗한 거실, 아늑한 침실, 그리고 작지만 예쁜 정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전 오피스텔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ㅤㅤ"여기... 여기 어디예요, 오빠?"
ㅤㅤ서희의 목소리는 놀라움과 감격으로 가득했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였다.
ㅤㅤ태준은 그녀의 손을 더 단단히 잡았다. 그리고 그녀의 눈을 깊이 바라보았다. 그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그 안에는 흔들림 없는 확신과, 그녀를 향한 변치 않는 사랑이 담겨 있었다.
ㅤㅤ"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집이야, 서희야."
ㅤㅤ그의 말에 서희는 말을 잇지 못했다.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자신들만의 '밀실'에서 벗어나, 이제 그들은 '집'이라는 더 견고하고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마련하려 하고 있었다. 세상의 시선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 안에서 최대한의 행복과 안정감을 찾으려는 태준의 노력이었다.
ㅤㅤ"오빠... 이게 다... 다 오빠가 준비한 거예요?"
ㅤㅤ서희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ㅤㅤ"응.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서. 가족과의 단절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는 거 알아. 그래서 생각했어. 이대로 숨어 지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우리가 평생 함께하려면, 세상의 비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우리만의 굳건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ㅤㅤ태준은 서희를 품에 안았다. 그의 품은 따뜻했고, 그의 심장 박동 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울렸다.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췄다.
ㅤㅤ"여기서 우리만의 세상을 만들자, 서희야. 세상의 어떤 기준에도 얽매이지 않고, 오직 우리 둘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거야. 네가 원하는 평범한 행복을 여기서 찾을 수 있도록 내가 노력할게."
ㅤㅤ그의 말은 서희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모든 불안감과 외로움을 씻어내는 듯했다. 그는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금기에 맞서, 오직 그녀만을 위한 길을 닦고 있었다.
ㅤㅤ서희는 태준의 품에 안겨 흐느꼈다. 그 눈물은 슬픔이 아니라, 기쁨과 감격, 그리고 그에 대한 깊은 사랑의 눈물이었다. 그녀는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기로 했다. 그와 함께라면, 어떤 난관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고립된 섬처럼 살아가지만, 그 섬 안에는 오직 그들 둘만의 견고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있었다. 그 세상은 세상의 어떤 비난과 단절도 막아낼 수 있는, 사랑으로 지어진 요새 같았다.
ㅤㅤ그들은 집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이사를 오기 전, 필요한 가구들을 미리 주문해두었다. 거실에는 아늑한 소파가 놓여 있었고, 침실에는 따뜻한 이불이 깔린 침대가 있었다. 주방에는 필요한 살림살이들이 이미 채워져 있었다. 모든 것이 태준의 섬세한 배려와 사랑으로 채워져 있었다.
ㅤㅤ그날 저녁, 그들은 새 집에서 첫 식사를 했다. 태준이 간단한 요리를 만들었고, 서희는 그의 옆에서 돕거나 그저 그를 바라보았다. 창밖으로는 해가 지고 있었다. 노을빛이 거실을 따뜻하게 물들였다.
ㅤㅤ"오빠... 정말 고마워요. 나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ㅤㅤ서희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ㅤㅤ"고맙다는 말은 하지 마, 서희야. 네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니까. 우리는 이제 함께 가는 거야. 세상의 시선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길을 가는 거야."
ㅤㅤ태준은 서희의 손을 잡았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들의 사랑은 심연의 그림자 속에서 더욱 깊고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있었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숨어 지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맞서는 것이다. 이 관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함께였다. 서로에게 의지하며,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그들만의 행복을 찾아나가는 여정.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그들만의 요새 속에서, 그들은 세상의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운 '오직, 우리'가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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