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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228 추천 : 0 글자수 : 5,164 자 2025-09-17
ㅤㅤ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윤태준과 함께 맞이하는 아침은 윤서희에게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평화로움을 선사했다. 지난 몇 달간 그녀의 삶을 지배했던 불안감과 죄책감은 태준이 마련한 '요새' 속에서 희미해지는 듯했다. 넓고 아늑한 거실에 쏟아져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 창밖으로 보이는 작고 푸른 정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마음을 포근하게 감쌌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집이야, 서희야.'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는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했다. 가족과의 단절로 인한 아픔, 세상의 비난으로 인한 고립감. 그 모든 것을 태준은 그녀를 대신해 짊어졌고, 그녀에게 이처럼 견고한 안식처를 선물했다.
ㅤㅤ매일 아침, 태준의 품에서 눈을 뜨는 것은 서희에게 가장 큰 행복이었다. 그의 고요한 숨소리, 그의 따뜻한 체온.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주었고, 그의 눈빛은 늘 그녀를 향한 변함없는 사랑으로 가득했다. 함께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정원에 나가 식물들을 보살피는 시간은 그들에게 가장 소중한 일상이 되었다. 이제 출근할 때 굳이 거리를 둘 필요도 없었다. 이 집에서 나서는 순간, 그들은 완벽한 부부이자 연인이었다. 세상의 시선으로부터는 자유로웠다. 물론 집 밖으로 나가는 순간부터는 다시 긴장해야 했지만, 이제 돌아올 곳이 있다는 사실이 그녀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ㅤㅤ새로운 집에서의 생활은 완벽에 가까웠다. 넓어진 공간은 그들의 삶에 여유를 주었다.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거나, 함께 책을 읽는 시간은 그들에게 깊은 행복을 선사했다. 주방에서 함께 요리를 하며 주고받는 시시콜콜한 농담, 그를 위해 준비한 작은 선물에 기뻐하는 그의 얼굴. 모든 순간들이 소중한 추억으로 쌓여갔다. 태준은 서희의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녀가 말하지 않는 작은 감정까지도 그의 깊은 눈빛은 꿰뚫어 보는 듯했다. 그는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든든한 버팀목이자,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전부였다. 서희 역시 그에게 그러했다. 서로는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공기 같은 존재가 되어갔다.
ㅤㅤ하지만 그 모든 행복 속에서도, '숨겨진 그림자'는 존재했다. 가족과의 단절. 서희의 휴대폰에는 여전히 어머니의 연락이 없었다. 아버지에게서도, 다른 친척들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 명절이 다가왔지만, 그녀에게는 그 어떤 가족 모임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오지 않았다. 세상은 여전히 평화롭게 흘러갔지만, 그녀의 가족에게서 그녀와 태준은 지워진 존재가 된 듯했다. 그 사실이 서희의 마음을 아리게 했다. 그리움과 죄책감이 뒤섞여 그녀의 가슴을 짓눌렀다.
ㅤㅤ어느 날 저녁, 서희는 어머니의 생신을 떠올렸다. 지난번에는 태준의 품에서 울며 보냈지만, 이번에는 더 깊은 고통이 밀려왔다. 엄마의 생신을 축하해 드리지 못한다는 사실. 그 죄책감은 그 어떤 것보다 무거웠다. 태준은 그녀의 슬픔을 눈치챈 듯했다.
ㅤㅤ"서희야, 괜찮아?"
ㅤㅤ그의 목소리는 늘 그녀의 불안을 잠재웠다. 서희는 애써 미소 지으려 했지만, 눈가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ㅤㅤ"오빠... 엄마 생신인데... 아무것도 못 해드렸어요. 전화도 못 하고..."
ㅤㅤ태준은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의 따뜻한 손이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ㅤㅤ"알아. 마음 아프지. 나도 그래."
ㅤㅤ그의 말에 서희는 태준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에도 희미한 슬픔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 역시 자신의 가족과 단절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늘 그녀 앞에서 강해 보이려 노력했다.
ㅤㅤ"하지만 서희야. 우리가 이 모든 걸 감당하기로 선택했잖아. 우리만의 방식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야. 그게 가족들에게 우리가 잘 지낸다는 걸 보여주는 유일한 길이고."
ㅤㅤ태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 담긴 단호함은 서희의 마음속 불안감을 잠재웠다. 그는 언제나 그녀의 든든한 등대였다. 그들의 사랑은 세상의 가장 깊은 심연 속에서, 오직 둘만의 빛으로 존재했다.
ㅤㅤ시간은 흐르고, 그들의 동거이자 결혼 생활은 더욱 안정되어갔다. 새로운 집은 그들에게 진정한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함께 보내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그들의 유대감은 더욱 깊어졌다.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고, 서로의 습관에 익숙해졌다. 사소한 다툼도 있었지만,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그들의 관계는 더욱 단단해졌다. 그는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장 든든한 보호자이자, 가장 뜨거운 연인이었다. 그리고 그녀 또한 그에게 그러했다. 서로는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그들은 완벽한 팀이었다. 세상의 모든 기준에서 벗어나, 그들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완성해가고 있었다.
ㅤㅤ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만의 요새 속에 숨어 지낸다 해도, 바깥세상과의 연결은 피할 수 없었다. 회사 생활, 친구들과의 관계, 그리고 예상치 못한 만남들. 그 모든 것들이 그들의 비밀을 위협하는 요소들이었다. 평범한 일상 속에 숨겨진 그들의 비범한 사랑. 그들의 관계는 마치 얇은 얼음판 위를 걷는 듯 위태로웠다. 언제 금이 가고 깨질지 알 수 없는. 단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감은 그림자처럼 그들을 따라다녔다.
ㅤㅤ어느 날, 서희는 퇴근길에 예상치 못한 사람을 마주쳤다. 회사 근처 카페에서 친구를 만나고 나오는 길이었다. 그때 멀리서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작은어머니였다. 심장이 발끝까지 곤두박질쳤다. 설마. 이곳까지 오실 리가 없는데. 서희는 급히 고개를 숙이고 몸을 숨기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작은어머니가 그녀를 발견하고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ㅤㅤ"어머, 서희 아니니? 여기서 널 다 만나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네!"
ㅤㅤ작은어머니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다정했지만, 서희의 귀에는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그녀는 애써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
ㅤㅤ"네... 작은어머니. 여기서요?"
ㅤㅤ"응. 친구랑 차 한 잔 하고 가는 길이야. 너 여기 근처에서 일한다 했지? 이렇게 우연히 보게 되다니! 세상 참 좁다."
ㅤㅤ작은어머니는 여전히 밝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서희의 눈에는 그녀의 눈빛 속에서 묘한 탐색이 느껴졌다. 마치 자신을 시험하려는 듯한. 그녀의 심장은 걷잡을 수 없이 뛰었다. 이 순간, 태준이 옆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절박하게 느껴졌다. 혼자 이 위기를 감당해야 했다.
ㅤㅤ"네... 여기 근처예요."
ㅤㅤ서희는 애써 태연하게 대답했다. 작은어머니의 시선이 그녀의 손가락으로 향하는 것을 느꼈다. 결혼반지를 끼고 있었다. 이 집에선 늘 반지를 끼고 있었기에, 무의식적으로 착용한 채 외출한 것이었다. 서희의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ㅤㅤ"서희야, 너 손가락에... 혹시 반지니? 예쁘네."
ㅤㅤ작은어머니의 목소리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서희에게는 너무나 명확했다. 그녀는 반지를 봤다. 결혼반지를.
ㅤㅤ"아... 네... 그냥... 액세서리예요."
ㅤㅤ서희는 얼른 손을 등 뒤로 숨기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작은어머니의 눈은 이미 그 반지의 존재를 확인한 듯했다.
ㅤㅤ"그래? 요새는 액세서리도 예쁜 게 많이 나오네. 어머, 근데 이 디자인...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ㅤㅤ작은어머니의 목소리는 서늘하게 변했다. 그녀의 눈빛에는 의심과 함께, 날카로운 탐색이 담겨 있었다. 서희는 숨이 막혔다. 이대로라면 모든 것이 들통날 것이다. 태준과의 결혼.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은 그들의 맹세.
ㅤㅤ"아... 그냥 길 가다가 예뻐서 산 거예요. 흔한 디자인이라서요..."
ㅤㅤ서희는 필사적으로 변명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이미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ㅤㅤ작은어머니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그녀는 서희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실망과 분노, 그리고 배신감이 뒤섞여 있었다. 마치 '내가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하는 듯한.
ㅤㅤ"서희야. 너 혹시... 태준이랑 계속 연락하니?"
ㅤㅤ작은어머니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그 안에 담긴 날카로움은 서희의 심장을 꿰뚫는 듯했다. 모든 것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변명할 여지조차 없었다. 그녀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 짐작하고 있었다.
ㅤㅤ서희는 고개를 숙였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비밀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애썼던가. 하지만 결국 이렇게 들키는구나. 그것도 가장 가까운 친척에게.
ㅤㅤ"너희 정말...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구나. 너희 엄마한테는 뭐라고 말해야 하니? 너희 아빠는?"
ㅤㅤ작은어머니의 목소리는 떨렸다. 분노와 함께 슬픔이 섞여 있었다. 서희는 고개를 들었다. 작은어머니의 얼굴에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눈물은 그녀의 죄책감을 더욱 키웠다.
ㅤㅤ"죄송해요... 작은어머니... 하지만..."
ㅤㅤ"변명하지 마! 너희가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사촌끼리...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너희 둘 때문에 우리 집안이 어떻게 될지 생각은 해봤니?"
ㅤㅤ작은어머니의 비난은 칼날처럼 날아왔다. 서희는 그 모든 비난을 묵묵히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품에 안겨 위로를 받을 수 있었던 지난번과는 달랐다. 그녀는 홀로 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다. 그의 손길도, 그의 목소리도 없이. 그 자리에 고립된 채 모든 비난의 화살을 맞아야 했다.
ㅤㅤ작은어머니는 결국 서희의 눈앞에서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녀의 떨리는 손가락은 어머니_즉 서희의 엄마에게 전화를 거는 듯했다. 모든 것을 폭로하려는 듯이. 서희의 심장이 발작적으로 뛰었다.
ㅤㅤ"지금 당장 너희 엄마한테 말할 거야. 네가 이렇게 나를 속이고, 너희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네가 저지른 짓을 네 엄마도 알아야 해!"
ㅤㅤ작은어머니의 절규가 귓가에 박혔다. 서희는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모든 것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세상이 산산조각 나는 듯했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ㅤㅤ그녀의 요새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았다. 세상의 그림자가 그녀를 덮쳤고, 그녀의 가장 깊은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이 관계는 이제 세상의 시험대에 오를 차례였다. 고통스럽고 험난한 싸움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들의 사랑은 너무나 강력했지만, 동시에 너무나 취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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