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조회 : 9 추천 : 0 글자수 : 6,537 자 2025-12-08
제11화
차가운 금속 복도는 순식간에 푸른 에너지탄이 빗발치는 생지옥으로 변했다. 강윤이 필사적으로 생성한 반투명 방어막은 천장에서 강하한 수십 대의 공격용 드론들이 퍼붓는 무차별적인 포화를 힘겹게 막아내고 있었다. ‘타타타탕-!’ 둔탁한 소음과 함께 에너지탄이 부딪힐 때마다 방어막은 거대한 종을 강철 망치로 내리치는 듯한 굉음을 토해냈고, 그 표면은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듯 위태롭게 파동쳤다. 방어막이 막아내는 모든 충격파는 매질이 되어, 그것을 유지하는 강윤의 미성숙한 몸으로 고스란히 흡수되었다.
“크윽…!”
강윤은 턱밑까지 차오르는 비명을 간신히 삼켰다. 온몸의 뼈마디가 어긋나고 으스러지는 듯한 극심한 고통에 눈앞이 새하얗게 점멸했다. 실핏줄이 터진 입가로 흘러내린 선혈이 턱을 타고 뚝뚝 떨어져, 차갑고 무감정한 복도 바닥에 작은 핏자국을 어지럽게 새겼다. 그는 이를 악물고 버텼지만, 한계는 명확했다. 방어막 표면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서서히, 하지만 멈추지 않고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금이 가기 시작한 낡은 유리창처럼, 곧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산산조각 날 것만 같았다.
“강윤아! 정신 차려! 이러다간 너 죽어! 제발, 다른 방법이, 다른 길이 없을까?”
등 뒤에서 지호가 절규하듯 외쳤다. 자신의 아버지가 설계한 이 지옥 같은 공간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자신을 지키다 죽어가는 모습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그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는 듯했다.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절망감과 아버지를 향한 원망이 뒤섞여 머릿속을 헤집었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아버지, 표진석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는 미친 듯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야를 가리는 푸른 섬광과 자욱한 먼지 속에서, 복도 저편 끝, 천장 근처에 붙어 있는 낡고 녹슨 환풍구 덮개가 기적처럼 눈에 들어왔다. 어릴 적, 서재에서 몰래 훔쳐보았던 아버지의 낡은 설계도에서 보았던, 비상시 외부로 통하는 유일한 비밀 탈출로였다.
“저기야! 강윤아, 저기! 저 환풍구! 어릴 때 설계도에서 봤어! 저기로 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을지도 몰라!”
희망의 외침이었지만, 현실은 절망적이었다. 환풍구까지의 거리는 고작 약 20미터.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거리는 결코 건널 수 없는 지옥의 강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저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 하늘에서 쏟아지는 유성우 같은 에너지탄을 막아낼 방어막을 유지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아니,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해 보였다.
“내가… 길을 열게. 넌… 뛸 준비만 해.”
강윤이 거의 꺼져가는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말했다. 그는 남은 모든 힘을, 아니, 자신의 존재 자체, 생명력까지 남김없이 끌어모으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의 눈동자가 평소의 맑은 빛을 잃고, 섬뜩하고 비인간적인 푸른 광염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주변 공기의 밀도가 달라지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지금이야!”
강윤이 방어막을 해제하는 찰나의 순간, 그는 양손을 앞으로 거칠게 뻗었다. 그 순간, 복도 양쪽 벽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던 거대한 금속 배관들과 천장의 무겁고 두꺼운 조명 기구들이 ‘우두둑, 콰지직!’ 하는 굉음을 내며 콘크리트 벽에서 뜯겨져 나왔다. 수십, 수백 개의 날카로운 금속 파편들이 그의 의지에 따라 예리한 창처럼 변해, 맹렬하게 회전하며 드론들을 향해 죽음의 폭풍처럼 날아갔다.
‘콰콰쾅! 콰르르릉!’
몇몇 드론들이 회피하지 못하고 금속 파편에 직격당해 시뻘건 불꽃과 검은 연기를 뿜으며 폭발했지만, 대부분의 드론들은 AI의 정교한 계산에 따라 교묘하게 기동하며 공격을 피하고 다시 총구를 이쪽으로 겨누었다. 하지만 그 짧은 몇 초의 혼돈, 그것으로 충분했다. 지호는 강윤의 축 늘어진 팔을 잡아끌고 미친 듯이 환풍구를 향해 달렸다. 강윤은 비틀거리면서도, 뒤따라오는 드론들을 향해 주변의 모든 것을, 바닥의 타일 조각과 벽에서 뜯겨 나온 콘크리트 파편까지 닥치는 대로 집어 던지며 필사적으로 시간을 벌었다.
환풍구 덮개 앞에 도착했을 때, 강윤은 거의 탈진 상태였다. 온몸이 식은땀과 피로 범벅이 되었고, 두 다리는 사시나무처럼 후들거렸다.
“열어! 빨리!”
지호가 덮개의 손잡이를 잡아당겼지만, 특수 합금으로 제작된 덮개는 용접이라도 한 듯 단단히 고정되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바로 등 뒤에서는 드론들이 다시 포위망을 좁혀오며 에너지탄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푸른 탄환들이 그들의 바로 옆 벽을 녹이며 위협적으로 날아왔다.
“비켜!”
강윤이 마지막 남은 한 톨의 힘까지 쥐어짜 덮개를 향해 손을 뻗었다. ‘끼이이이익-’ 하는, 고막을 찢는 듯한 끔찍한 금속 마찰음과 함께, 수십 센티미터 두께의 철제 덮개가 마치 젖은 종잇장처럼 안쪽으로 찌그러지며 뜯겨져 나갔다. 두 사람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구겨 넣어 어둡고 먼지 쌓인 환풍구 안으로 필사적으로 기어 들어갔다. 바로 등 뒤로 스쳐 지나간 에너지탄이 뜯겨 나간 환풍구 입구를 시뻘겋게 녹여버렸다.
두 사람은 빛 한 점 없는 절대적인 어둠 속을 정신없이 기었다. 차갑고 날카로운 금속 조각과 날 선 볼트 끝이 무릎과 손바닥을 할퀴고 긁었지만, 고통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희미한 바깥공기와 함께 축축한 흙냄새, 그리고 빗방울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출구가 가까웠다. 그들은 녹슨 배출구 덮개를 있는 힘껏 발로 걷어차고 건물 밖, 축축하고 차가운 흙바닥 위로 볼품없이 떨어졌다.
차가운 밤공기가 불타는 듯한 폐부 깊숙이 칼날처럼 파고들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마치 뭍으로 내던져진 물고기처럼 거친 숨만 몰아쉬었다. 살아남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더 깊고 거대한 절망의 풍경이었다.
연구소 주변은 이미 수십 명의 검은 전투복 차림의 무장 병력에 의해 완벽하게 포위되어 있었다. 칠흑 같은 숲의 경계선을 따라 늘어선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이 가진 총구의 끝을 두 소년에게 겨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 포위망의 중심, 어둠을 가르는 여러 대의 차량 헤드라이트 불빛 앞에, 표진석이 얼음 조각상처럼 차가운 얼굴로 서 있었다. 그는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우산 하나 없이 맞으며, 마치 이 모든 상황을 연출하고 지배하는 신처럼 군림하고 있었다.
“거기까지다, 아들아.”
표진석의 목소리는 어떤 감정도 담겨있지 않아 더욱 섬뜩했다. 빗소리를 뚫고 선명하게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마치 기계가 합성한 음성처럼 차갑고 건조했다.
“그리고… 차강윤. 넌 오늘 아주 흥미롭고 가치 있는 데이터를 보여주었구나. 칭찬해주마. 이제 그만, 소란스러운 야외 실험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다.”
“아버지… 이게 대체… 이게 대체 무슨 짓이에요?”
지호가 배신감과 설명할 수 없는 공포에 떨며 물었다. 그의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이 기억하고 사랑했던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과학자, 혹은 자신의 신념에 미쳐버린 광신도에 가까웠다.
“내가 말했잖니. 이 모든 것은 인류의 미래를 위한 위대한 과업이라고. 너희는 그 과업의 가장 중요한 일부가 될 영광을 얻은 거다. 잠시의 고통과 혼란은, 위대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감수해야 할 사소한 부작용일 뿐이지.”
표진석은 마치 고집 센 어린 제자에게 세상의 진리를 설파하는 듯한, 지극히 차분하고 이성적인 말투를 유지했다. 감정이 배제된 그 순수한 이성이, 지호에게는 오히려 더욱 소름 끼치게 다가왔다.
“차강윤, 너의 부모는 나의 오랜 동료이자 내가 진심으로 존경하던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좁은 시야와 낡아빠진 윤리의식에 갇혀 있었지. 인류가 한 단계 더 진화할 수 있는 위대한 가능성을 눈앞에 두고도, 그들은 두려워하며 뒷걸음질 쳤다.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는 때로 소수의 불가피한 희생이 필요한 법인데도 말이다. 그들은… 대의를 이해하지 못했어.”
“그래서… 그래서 우리 부모님을… 당신이… 당신이 죽인 거야?”
강윤이 뼈마디가 하얗게 드러나도록 주먹을 쥐고, 이를 악물고 물었다. 그의 눈에서는 억눌렸던 분노와 슬픔이 푸른빛의 스파크가 되어 격렬하게 일렁였다.
“오해는 말아라. 난 그들을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 그저 프로젝트에서 영원히 배제시켜, 너에 대한 통제권을 완벽하게 확보하려 했을 뿐. 연구소의 화재는 내 계획에 없던, 아주 불운한 사고였지.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의 고귀한 희생 덕분에 넌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나의 완벽한 통제 아래서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었으니, 세상은 참 아이러니하지 않나?”
표진석의 말에는 단 한 톨의 죄책감이나 연민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신념에 대한 흔들림 없는 확신과, 섬뜩할 정도의 광기만이 가득했다.
“지호야, 이리 오너라. 넌 저렇게 감정적이고 불안정한 실패작과는 다르다. 넌 나의 아들이고, 나의 모든 것을 물려받을 가장 완벽한 후계자가 될 것이다. 저 아이는 이제 그 수명을 다했다. 초기 데이터 수집 단계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이제는 해부를 통해 그 경이로운 내부 구조를 면밀히 분석해야 할 때가 왔거든. 다시 말해, 폐기 처분해야 한다는 뜻이다.”
‘폐기 처분’. 생명에 대한 모독과도 같은 그 비정한 단어에, 지호의 마지막 남은 이성의 끈이 ‘툭’ 하고 끊어졌다. 그는 짐승 같은 비명을 지르며 아버지에게 달려들려 했지만, 양옆에서 유령처럼 나타난 무장 병력에게 순식간에 제압당해 무력하게 땅에 짓눌렸다. 차가운 흙과 더러운 빗물이 뒤섞여 그의 얼굴을 처참하게 더럽혔다.
“강윤아, 도망쳐! 나 신경 쓰지 말고, 어서! 어서 도망치라고, 이 멍청아!”
지호의 절규를 등 뒤로 한 채, 강윤은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어두운 숲을 향해 몸을 날렸다. 등 뒤로 수십 발의 총성이 고막을 찢으며 울렸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지금 잡히면 모든 것이 끝장이다. ‘폐기 처분’이라는 단어가, ‘해부’라는 단어가 그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미친 듯이 달렸다. 날카로운 나뭇가지에 뺨이 길게 긁혀 피가 났고, 축축한 숲 바닥의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넘어져도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다시 일어나 달렸다. 그의 머릿속은 단 하나의 생각, 단 하나의 절박한 목표뿐이었다.
강윤은 몇 시간을 쉬지 않고 달리고 또 달렸다. 초인적인 능력은 이미 오래전에 고갈되었지만, 그의 몸은 생존 본능과 절박함이라는 마지막 연료만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동쪽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올 무렵, 그는 간신히 자신들의 동네 어귀에 도착했다. 그의 몸은 만신창이였지만, 정신력 하나로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맞이한 것은 평화로운 새벽의 집이 아닌, 회색 하늘을 뒤덮은 시커먼 연기와 폐부를 찌르는 매캐한 유독가스 냄새, 그리고 사람들의 공포에 질린 비명소리였다.
그의 집이, 그가 태어나고 자란 유일한 안식처가, 거대한 화염에 휩싸여 지옥의 아가리처럼 모든 것을 삼키며 불타고 있었다.
“안 돼… 안 돼… 제발…!”
강윤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주변은 이미 도착한 소방차와 경찰차, 그리고 이른 새벽의 끔찍한 비극을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로 아수라장이었다.
“가스 폭발이래… 쯧쯧, 안에 사람이 있었다는데…”
“아이고, 저 집 사람들 참 착했는데 어쩌다가… 아들이 하나 있었지, 아마? 그 아이는 어쩌고…”
주변 사람들의 무심한 수군거림이 그의 귀에 날카로운 비수처럼 날아와 박혔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불타는 집을 향해 비틀거리며 달려들려 했지만, 굵은 팔뚝의 소방관들에게 단단히 제지당했다.
“위험합니다, 학생! 정신 차려! 지금 들어가면 죽어!”
“놔요! 이거 놓으라고! 엄마! 아빠! 안에 우리 엄마 아빠가 있단 말이에요!”
강윤의 처절한 절규는 거대한 화염이 내는 ‘화르르’ 하는 굉음에 묻혀 공허하게 흩어졌다. 이것은 사고가 아니었다. 표진석의 잔인하고 확실한 경고였다. 자신을 잡기 위해, 자신이 돌아갈 곳, 자신의 세상 전부를 무자비하게 빼앗아버린 것이다.
분노, 슬픔, 절망, 죄책감, 그리고 자기혐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부정적인 감정이 그의 작은 몸 안에서 거대한 소용돌이가 되어, 마침내 그의 연약한 이성을 집어삼키고 폭발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강윤의 비명과 함께, 그의 몸에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하고 순수한 푸른빛의 에너지가 하늘을 향해 거대한 기둥처럼 솟구쳐 올랐다. 주변의 모든 것이 그의 통제 불가능한 분노에 반응했다. 거대한 소방차의 두꺼운 강화 유리가 일제히 굉음을 내며 깨져나가고, 주변 건물의 가로등이 스파크를 튀기며 연달아 터져나갔으며, 단단한 아스팔트 바닥에 깊고 흉터 같은 균열이 생겨났다. 맑아지던 새벽 하늘에서는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차갑고 슬픈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한 아이의 슬픔에 세상이 함께 우는 듯했다.
모든 것을 잃었다. 사랑하는 가족, 유일한 친구, 그리고 평범했던 어제의 삶까지. 잿더미가 되어버린 집 앞에서, 소년은 홀로 서서 목이 터져라 절규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감각이 태아처럼 깨어났다. 시간의 흐름이, 마치 눈에 보이는 투명한 강물처럼 느껴졌다. 어제로, 그저께로, 이 모든 비극이 시작되기 전의 행복했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고 싶은 간절하고도 처절한 염원. 그것은 단순한 슬픔과 분노를 넘어, 우주의 근본 법칙, 시공간의 질서 자체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거대한 의지였다.
그의 눈동자가 불타는 푸른빛을 넘어, 모든 빛과 희망을 빨아들일 듯한 깊고 어두운 심연의 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의 진짜 폭주는, 그리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능력의 각성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차가운 금속 복도는 순식간에 푸른 에너지탄이 빗발치는 생지옥으로 변했다. 강윤이 필사적으로 생성한 반투명 방어막은 천장에서 강하한 수십 대의 공격용 드론들이 퍼붓는 무차별적인 포화를 힘겹게 막아내고 있었다. ‘타타타탕-!’ 둔탁한 소음과 함께 에너지탄이 부딪힐 때마다 방어막은 거대한 종을 강철 망치로 내리치는 듯한 굉음을 토해냈고, 그 표면은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듯 위태롭게 파동쳤다. 방어막이 막아내는 모든 충격파는 매질이 되어, 그것을 유지하는 강윤의 미성숙한 몸으로 고스란히 흡수되었다.
“크윽…!”
강윤은 턱밑까지 차오르는 비명을 간신히 삼켰다. 온몸의 뼈마디가 어긋나고 으스러지는 듯한 극심한 고통에 눈앞이 새하얗게 점멸했다. 실핏줄이 터진 입가로 흘러내린 선혈이 턱을 타고 뚝뚝 떨어져, 차갑고 무감정한 복도 바닥에 작은 핏자국을 어지럽게 새겼다. 그는 이를 악물고 버텼지만, 한계는 명확했다. 방어막 표면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서서히, 하지만 멈추지 않고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금이 가기 시작한 낡은 유리창처럼, 곧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산산조각 날 것만 같았다.
“강윤아! 정신 차려! 이러다간 너 죽어! 제발, 다른 방법이, 다른 길이 없을까?”
등 뒤에서 지호가 절규하듯 외쳤다. 자신의 아버지가 설계한 이 지옥 같은 공간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자신을 지키다 죽어가는 모습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그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는 듯했다.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절망감과 아버지를 향한 원망이 뒤섞여 머릿속을 헤집었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아버지, 표진석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는 미친 듯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야를 가리는 푸른 섬광과 자욱한 먼지 속에서, 복도 저편 끝, 천장 근처에 붙어 있는 낡고 녹슨 환풍구 덮개가 기적처럼 눈에 들어왔다. 어릴 적, 서재에서 몰래 훔쳐보았던 아버지의 낡은 설계도에서 보았던, 비상시 외부로 통하는 유일한 비밀 탈출로였다.
“저기야! 강윤아, 저기! 저 환풍구! 어릴 때 설계도에서 봤어! 저기로 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을지도 몰라!”
희망의 외침이었지만, 현실은 절망적이었다. 환풍구까지의 거리는 고작 약 20미터.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거리는 결코 건널 수 없는 지옥의 강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저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 하늘에서 쏟아지는 유성우 같은 에너지탄을 막아낼 방어막을 유지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아니,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해 보였다.
“내가… 길을 열게. 넌… 뛸 준비만 해.”
강윤이 거의 꺼져가는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말했다. 그는 남은 모든 힘을, 아니, 자신의 존재 자체, 생명력까지 남김없이 끌어모으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의 눈동자가 평소의 맑은 빛을 잃고, 섬뜩하고 비인간적인 푸른 광염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주변 공기의 밀도가 달라지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지금이야!”
강윤이 방어막을 해제하는 찰나의 순간, 그는 양손을 앞으로 거칠게 뻗었다. 그 순간, 복도 양쪽 벽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던 거대한 금속 배관들과 천장의 무겁고 두꺼운 조명 기구들이 ‘우두둑, 콰지직!’ 하는 굉음을 내며 콘크리트 벽에서 뜯겨져 나왔다. 수십, 수백 개의 날카로운 금속 파편들이 그의 의지에 따라 예리한 창처럼 변해, 맹렬하게 회전하며 드론들을 향해 죽음의 폭풍처럼 날아갔다.
‘콰콰쾅! 콰르르릉!’
몇몇 드론들이 회피하지 못하고 금속 파편에 직격당해 시뻘건 불꽃과 검은 연기를 뿜으며 폭발했지만, 대부분의 드론들은 AI의 정교한 계산에 따라 교묘하게 기동하며 공격을 피하고 다시 총구를 이쪽으로 겨누었다. 하지만 그 짧은 몇 초의 혼돈, 그것으로 충분했다. 지호는 강윤의 축 늘어진 팔을 잡아끌고 미친 듯이 환풍구를 향해 달렸다. 강윤은 비틀거리면서도, 뒤따라오는 드론들을 향해 주변의 모든 것을, 바닥의 타일 조각과 벽에서 뜯겨 나온 콘크리트 파편까지 닥치는 대로 집어 던지며 필사적으로 시간을 벌었다.
환풍구 덮개 앞에 도착했을 때, 강윤은 거의 탈진 상태였다. 온몸이 식은땀과 피로 범벅이 되었고, 두 다리는 사시나무처럼 후들거렸다.
“열어! 빨리!”
지호가 덮개의 손잡이를 잡아당겼지만, 특수 합금으로 제작된 덮개는 용접이라도 한 듯 단단히 고정되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바로 등 뒤에서는 드론들이 다시 포위망을 좁혀오며 에너지탄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푸른 탄환들이 그들의 바로 옆 벽을 녹이며 위협적으로 날아왔다.
“비켜!”
강윤이 마지막 남은 한 톨의 힘까지 쥐어짜 덮개를 향해 손을 뻗었다. ‘끼이이이익-’ 하는, 고막을 찢는 듯한 끔찍한 금속 마찰음과 함께, 수십 센티미터 두께의 철제 덮개가 마치 젖은 종잇장처럼 안쪽으로 찌그러지며 뜯겨져 나갔다. 두 사람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구겨 넣어 어둡고 먼지 쌓인 환풍구 안으로 필사적으로 기어 들어갔다. 바로 등 뒤로 스쳐 지나간 에너지탄이 뜯겨 나간 환풍구 입구를 시뻘겋게 녹여버렸다.
두 사람은 빛 한 점 없는 절대적인 어둠 속을 정신없이 기었다. 차갑고 날카로운 금속 조각과 날 선 볼트 끝이 무릎과 손바닥을 할퀴고 긁었지만, 고통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희미한 바깥공기와 함께 축축한 흙냄새, 그리고 빗방울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출구가 가까웠다. 그들은 녹슨 배출구 덮개를 있는 힘껏 발로 걷어차고 건물 밖, 축축하고 차가운 흙바닥 위로 볼품없이 떨어졌다.
차가운 밤공기가 불타는 듯한 폐부 깊숙이 칼날처럼 파고들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마치 뭍으로 내던져진 물고기처럼 거친 숨만 몰아쉬었다. 살아남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더 깊고 거대한 절망의 풍경이었다.
연구소 주변은 이미 수십 명의 검은 전투복 차림의 무장 병력에 의해 완벽하게 포위되어 있었다. 칠흑 같은 숲의 경계선을 따라 늘어선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이 가진 총구의 끝을 두 소년에게 겨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 포위망의 중심, 어둠을 가르는 여러 대의 차량 헤드라이트 불빛 앞에, 표진석이 얼음 조각상처럼 차가운 얼굴로 서 있었다. 그는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우산 하나 없이 맞으며, 마치 이 모든 상황을 연출하고 지배하는 신처럼 군림하고 있었다.
“거기까지다, 아들아.”
표진석의 목소리는 어떤 감정도 담겨있지 않아 더욱 섬뜩했다. 빗소리를 뚫고 선명하게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마치 기계가 합성한 음성처럼 차갑고 건조했다.
“그리고… 차강윤. 넌 오늘 아주 흥미롭고 가치 있는 데이터를 보여주었구나. 칭찬해주마. 이제 그만, 소란스러운 야외 실험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다.”
“아버지… 이게 대체… 이게 대체 무슨 짓이에요?”
지호가 배신감과 설명할 수 없는 공포에 떨며 물었다. 그의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이 기억하고 사랑했던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과학자, 혹은 자신의 신념에 미쳐버린 광신도에 가까웠다.
“내가 말했잖니. 이 모든 것은 인류의 미래를 위한 위대한 과업이라고. 너희는 그 과업의 가장 중요한 일부가 될 영광을 얻은 거다. 잠시의 고통과 혼란은, 위대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감수해야 할 사소한 부작용일 뿐이지.”
표진석은 마치 고집 센 어린 제자에게 세상의 진리를 설파하는 듯한, 지극히 차분하고 이성적인 말투를 유지했다. 감정이 배제된 그 순수한 이성이, 지호에게는 오히려 더욱 소름 끼치게 다가왔다.
“차강윤, 너의 부모는 나의 오랜 동료이자 내가 진심으로 존경하던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좁은 시야와 낡아빠진 윤리의식에 갇혀 있었지. 인류가 한 단계 더 진화할 수 있는 위대한 가능성을 눈앞에 두고도, 그들은 두려워하며 뒷걸음질 쳤다.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는 때로 소수의 불가피한 희생이 필요한 법인데도 말이다. 그들은… 대의를 이해하지 못했어.”
“그래서… 그래서 우리 부모님을… 당신이… 당신이 죽인 거야?”
강윤이 뼈마디가 하얗게 드러나도록 주먹을 쥐고, 이를 악물고 물었다. 그의 눈에서는 억눌렸던 분노와 슬픔이 푸른빛의 스파크가 되어 격렬하게 일렁였다.
“오해는 말아라. 난 그들을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 그저 프로젝트에서 영원히 배제시켜, 너에 대한 통제권을 완벽하게 확보하려 했을 뿐. 연구소의 화재는 내 계획에 없던, 아주 불운한 사고였지.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의 고귀한 희생 덕분에 넌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나의 완벽한 통제 아래서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었으니, 세상은 참 아이러니하지 않나?”
표진석의 말에는 단 한 톨의 죄책감이나 연민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신념에 대한 흔들림 없는 확신과, 섬뜩할 정도의 광기만이 가득했다.
“지호야, 이리 오너라. 넌 저렇게 감정적이고 불안정한 실패작과는 다르다. 넌 나의 아들이고, 나의 모든 것을 물려받을 가장 완벽한 후계자가 될 것이다. 저 아이는 이제 그 수명을 다했다. 초기 데이터 수집 단계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이제는 해부를 통해 그 경이로운 내부 구조를 면밀히 분석해야 할 때가 왔거든. 다시 말해, 폐기 처분해야 한다는 뜻이다.”
‘폐기 처분’. 생명에 대한 모독과도 같은 그 비정한 단어에, 지호의 마지막 남은 이성의 끈이 ‘툭’ 하고 끊어졌다. 그는 짐승 같은 비명을 지르며 아버지에게 달려들려 했지만, 양옆에서 유령처럼 나타난 무장 병력에게 순식간에 제압당해 무력하게 땅에 짓눌렸다. 차가운 흙과 더러운 빗물이 뒤섞여 그의 얼굴을 처참하게 더럽혔다.
“강윤아, 도망쳐! 나 신경 쓰지 말고, 어서! 어서 도망치라고, 이 멍청아!”
지호의 절규를 등 뒤로 한 채, 강윤은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어두운 숲을 향해 몸을 날렸다. 등 뒤로 수십 발의 총성이 고막을 찢으며 울렸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지금 잡히면 모든 것이 끝장이다. ‘폐기 처분’이라는 단어가, ‘해부’라는 단어가 그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미친 듯이 달렸다. 날카로운 나뭇가지에 뺨이 길게 긁혀 피가 났고, 축축한 숲 바닥의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넘어져도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다시 일어나 달렸다. 그의 머릿속은 단 하나의 생각, 단 하나의 절박한 목표뿐이었다.
강윤은 몇 시간을 쉬지 않고 달리고 또 달렸다. 초인적인 능력은 이미 오래전에 고갈되었지만, 그의 몸은 생존 본능과 절박함이라는 마지막 연료만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동쪽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올 무렵, 그는 간신히 자신들의 동네 어귀에 도착했다. 그의 몸은 만신창이였지만, 정신력 하나로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맞이한 것은 평화로운 새벽의 집이 아닌, 회색 하늘을 뒤덮은 시커먼 연기와 폐부를 찌르는 매캐한 유독가스 냄새, 그리고 사람들의 공포에 질린 비명소리였다.
그의 집이, 그가 태어나고 자란 유일한 안식처가, 거대한 화염에 휩싸여 지옥의 아가리처럼 모든 것을 삼키며 불타고 있었다.
“안 돼… 안 돼… 제발…!”
강윤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주변은 이미 도착한 소방차와 경찰차, 그리고 이른 새벽의 끔찍한 비극을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로 아수라장이었다.
“가스 폭발이래… 쯧쯧, 안에 사람이 있었다는데…”
“아이고, 저 집 사람들 참 착했는데 어쩌다가… 아들이 하나 있었지, 아마? 그 아이는 어쩌고…”
주변 사람들의 무심한 수군거림이 그의 귀에 날카로운 비수처럼 날아와 박혔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불타는 집을 향해 비틀거리며 달려들려 했지만, 굵은 팔뚝의 소방관들에게 단단히 제지당했다.
“위험합니다, 학생! 정신 차려! 지금 들어가면 죽어!”
“놔요! 이거 놓으라고! 엄마! 아빠! 안에 우리 엄마 아빠가 있단 말이에요!”
강윤의 처절한 절규는 거대한 화염이 내는 ‘화르르’ 하는 굉음에 묻혀 공허하게 흩어졌다. 이것은 사고가 아니었다. 표진석의 잔인하고 확실한 경고였다. 자신을 잡기 위해, 자신이 돌아갈 곳, 자신의 세상 전부를 무자비하게 빼앗아버린 것이다.
분노, 슬픔, 절망, 죄책감, 그리고 자기혐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부정적인 감정이 그의 작은 몸 안에서 거대한 소용돌이가 되어, 마침내 그의 연약한 이성을 집어삼키고 폭발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강윤의 비명과 함께, 그의 몸에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하고 순수한 푸른빛의 에너지가 하늘을 향해 거대한 기둥처럼 솟구쳐 올랐다. 주변의 모든 것이 그의 통제 불가능한 분노에 반응했다. 거대한 소방차의 두꺼운 강화 유리가 일제히 굉음을 내며 깨져나가고, 주변 건물의 가로등이 스파크를 튀기며 연달아 터져나갔으며, 단단한 아스팔트 바닥에 깊고 흉터 같은 균열이 생겨났다. 맑아지던 새벽 하늘에서는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차갑고 슬픈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한 아이의 슬픔에 세상이 함께 우는 듯했다.
모든 것을 잃었다. 사랑하는 가족, 유일한 친구, 그리고 평범했던 어제의 삶까지. 잿더미가 되어버린 집 앞에서, 소년은 홀로 서서 목이 터져라 절규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감각이 태아처럼 깨어났다. 시간의 흐름이, 마치 눈에 보이는 투명한 강물처럼 느껴졌다. 어제로, 그저께로, 이 모든 비극이 시작되기 전의 행복했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고 싶은 간절하고도 처절한 염원. 그것은 단순한 슬픔과 분노를 넘어, 우주의 근본 법칙, 시공간의 질서 자체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거대한 의지였다.
그의 눈동자가 불타는 푸른빛을 넘어, 모든 빛과 희망을 빨아들일 듯한 깊고 어두운 심연의 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의 진짜 폭주는, 그리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능력의 각성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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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 아이 더 오리지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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