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조회 : 132 추천 : 0 글자수 : 5,882 자 2025-12-09
제12화
세상은 온통 절규하는 푸른빛으로 가득했다. 강윤의 작은 몸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 거대한 에너지 기둥은 먹구름이 몰려든 하늘을 찢을 듯 솟구쳤고, 그를 중심으로 반경 수십 미터, 아니 그 이상의 모든 것이 그의 참혹한 분노에 공명하며 뒤틀렸다. 단단해야 할 아스팔트는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흉측하게 솟아올랐고, 수십 년간 한자리를 지켜온 가로수들은 뿌리째 뽑힐 듯 미친 듯이 흔들렸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는 그의 시린 슬픔처럼 차가웠고, 간헐적으로 터지는 번개는 그의 불타는 분노처럼 어두운 하늘을 날카롭게 갈랐다. 이른 새벽의 비극을 목격하던 사람들은 본능적인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고, 현장을 통제하던 소방관들과 경찰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상식을 아득히 초월한 초자연적인 현상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얼어붙었다.
하지만 그 모든 혼돈의 중심에 있는 강윤 자신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의 의식은 이미 현실 세계의 감각을 떠나 있었다. 그의 텅 빈 눈동자에 비치는 것은 불타는 집의 흉측하고 시뻘건 잔해뿐이었다. 활활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어제 아침만 해도 자신을 향해 웃어주던 엄마의 다정한 미소와, 묵묵히 자신의 어깨를 감싸주던 아빠의 든든한 모습이 검은 재가 되어 속절없이 흩어지는 끔찍한 환영이 보였다. 모든 것이 끝났다. 지켜야 할 것도, 돌아갈 곳도, 사랑하는 세상 전부가 눈앞에서 소멸했다.
‘되돌리고 싶어.’
그의 텅 빈 마음속에서 단 하나의 생각이, 광기에 가까운 집념이 되어 피어올랐다.
‘이 모든 것을… 전부 없었던 일로. 어제로. 아니, 그저께로. 모든 것이 평화롭고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 간절한 염원은 단순한 바람이나 희망을 넘어, 우주의 근본적인 법칙, 시간이라는 거대한 강물의 흐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하나의 거대한 의지가 되었다. 그의 몸을 격렬하게 감싸던 푸른빛의 에너지가 점차 그 색을 잃고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투명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심, 강윤의 눈동자는 모든 빛과 희망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깊고 아득한 심연의 색으로 변해갔다.
이윽고, 그의 주변에서 상상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쏟아지던 빗방울들이 허공에서, 마치 투명한 유리에 박힌 구슬처럼 완벽하게 멈춰 섰다. 불타는 집에서 흩날리던 재와 검은 연기가 공중에서 그 형태를 유지한 채 정지했다. 사람들의 겁에 질린 표정, 황급히 움직이던 차량의 경광등, 심지어 집어삼킬 듯 일렁이던 거대한 불길의 춤까지. 세상의 모든 것이 한 폭의 정지된 그림처럼, 소리도 움직임도 없는 완벽한 침묵 속에 갇혔다. 오직 강윤만이,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홀로 가쁘게 숨 쉬고 있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앙상한 몸을 일으켜 세웠다. 허공에 수정처럼 박혀 있는 수천, 수만 개의 빗방울들을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만져보았다. 차가운 감촉 대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실체 없는 홀로그램을 만지는 듯한 기묘한 감각. 그는 자신의 주변 세상이, 시간이라는 거대한 흐름에서 잠시 떨어져 나온 고립된 ‘파편’이 되었음을 직감했다.
그의 시선이 다시 불타는 집으로 향했다. 멈춰버린 화염 속에서, 그는 거실 벽에 위태롭게 걸려 있던 낡은 가족사진을 보았다. 유치원 입학식 날, 세 식구가 어색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사진. 그 소중한 추억이 불길에 휩싸여 가장자리가 검게 변해가던 바로 그 찰나에 멈춰 있었다.
‘안 돼…! 저것마저 잃을 수는 없어…!’
그는 사진을 향해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자신의 영혼을 쥐어짜내듯 간절하게 염원했다.
‘제발… 시간을… 시간을 되돌려줘…!’
그 순간, 멈춰 있던 세상이 그의 의지에 굴복하여 거꾸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상은 마치 오래된 필름을 거꾸로 감는 것처럼, 기괴하고 부자연스럽게 역재생되기 시작했다. 하늘로 솟구치던 불길이 집 안으로 게걸스럽게 빨려 들어가고, 폭삭 무너져 내렸던 지붕이 제자리를 찾아 퍼즐처럼 조립되었다. 산산조각 났던 유리창들이 허공을 날아다니던 파편 상태에서 원래의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던 사람들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뒷걸음질 쳐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왔던 소방차와 경찰차가 소리 없이 후진으로 동네를 빠져나갔다.
강윤은 지독한 어지러움과 현기증 속에서 그 모든 광경을 망연자실하게 지켜보았다.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행위는 그의 영혼을 날카로운 칼로 긁어내는 듯한 끔찍한 고통을 동반했다. 머릿속이 수만 개의 바늘로 동시에 찔리는 듯했고, 온몸의 혈액이 역류하여 혈관이 터져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는 결국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의식의 끈이 희미해져 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강윤이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을 때, 그는 자신의 방, 너무나도 익숙한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창밖은 아직 어슴푸레한 새벽의 푸른빛에 잠겨 있었다. 모든 것이 평소와 똑같았다. 책상 위에는 어젯밤 풀다 만 수학 문제집이 펼쳐져 있었고, 의자에는 오늘 입고 갈 교복이 어머니의 손길로 단정하게 걸려 있었다.
‘꿈…이었나?’
그는 그 모든 것이 끔찍한 악몽이었다고, 그렇게 필사적으로 믿고 싶었다. 불타는 집, 부모님의 죽음, 표진석의 섬뜩한 광기… 모든 것이 현실처럼 너무나도 생생했지만, 꿈이라고 믿어야만 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가슴 깊이 내쉬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내, 온몸을 엄습하는 강렬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의 몸은 마치 밤새도록 격렬한 운동이라도 한 것처럼 쑤시고 아팠고, 코에서는 말라붙은 피 냄새가 희미하게 났다. 그리고 그의 오른손에 단단히 들려 있는 것. 그것은 어젯밤, 지옥 같은 비밀 실험실에서 필사적으로 챙겨 나왔던, 모든 진실이 담긴 차가운 USB 메모리 스틱이었다.
꿈이 아니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침대 옆에 놓인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을 켜자, 선명한 디지털 숫자가 그의 눈에 박혔다.
‘7월 13일, 금요일.’
어제 날짜였다. 모든 비극이 시작되기 바로 전날. 그는 시간을 되돌린 것이다. 끔찍했던 하룻밤의 시간을, 통째로 과거로 되돌려버린 것이다.
“강윤아, 일어났니? 어서 나와서 아침 먹어야지!”
바로 그때, 굳게 닫힌 방문 밖에서 그토록 그리워했던, 다시는 들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엄마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윤은 저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을 터뜨리며 방문을 열고 거실로 뛰쳐나갔다. 식탁에서는 아빠가 안경을 쓴 채 아침 신문을 보고 있었고, 주방에서는 엄마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계란 프라이를 접시에 담고 있었다. 너무나도 평범해서, 그래서 기적과도 같은 아침 풍경.
“엄마… 아빠…”
강윤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가, 어린아이처럼 와락 끌어안았다.
“어머, 얘 왜 이래? 아침부터. 아직 잠이 덜 깼구나, 우리 아들.”
어머니 지윤은 영문을 모른 채 웃으며 아들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여주었다. 아버지 태주 역시 신문을 내려놓고 흐뭇한 미소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자신들이 이미 한 번 ‘죽었었다’는 끔찍한 사실을. 그리고 그들의 아들이 우주의 법칙을 거슬러 자신들을 되살려냈다는 사실을.
강윤은 부모님의 따뜻한 품에 안겨 소리 없이 울었다. 되찾은 기쁨과 안도감, 그리고 앞으로 다시 닥쳐올 미래에 대한 엄청난 공포가 뒤섞인, 너무나도 무거운 눈물이었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강윤은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는 퉁퉁 부은 눈,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을 한 소년이 서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어제의 평범한 고등학생 차강윤이 아니었다. 그는 미래를 알고 있었고,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신의 힘을 가졌다. 하지만 그 힘은 축복이 아니라, 평생 짊어져야 할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저주처럼 느껴졌다.
그에게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 끔찍한 미래를 바꿀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도망’이었다. 당장 부모님께 모든 것을 털어놓고, 멀리, 아주 멀리, 표진석의 손이 닿지 않는 해외의 어느 이름 모를 곳으로 도망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표진석의 감시망과 영향력은 자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촘촘했다. 어설픈 도망은 더 큰 비극을 낳을 뿐이라는 것을, 그는 피로 얼룩진 어젯밤의 경험으로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렇다면, 오늘 밤 지호와의 약속을 무시하고 비밀 연구소에 가지 않으면 어떨까? 지호에게 모든 것을 잊고 예전처럼 평범하게 지내자고 말하면, 이 끔찍한 비극을 피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것 역시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표진석의 ‘프로젝트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진행될 것이다. 언젠가는, 어떤 형태로든 그는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다시 위협해올 것이다. 문제를 회피하는 것은 답이 아니었다.
그의 머릿속에 수많은 선택지가 폭풍처럼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혼란스러운 생각의 파편들 속에서, 단 하나의 길이 서서히, 하지만 분명하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싸워야 한다.’
도망치거나 숨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 표진석의 계획을 막고, 그의 배후에 있는 거대한 세력까지 모두 무너뜨려야만, 진정한 의미에서 자신과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고작 열일곱 살 소년 둘이서, 국가급 자본과 권력을 동원하는 거대한 조직을 상대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때, 그의 손에 들린 차가운 USB가 다시 한번 눈에 들어왔다. 진실. 이것이 그의 유일무이한 무기였다. 표진석의 비인간적인 실험과 음모가 담긴 이 데이터. 이것을 세상에 폭로한다면…
‘아니, 아직은 아니야. 증거가 부족하고, 세상은 내 말을 믿어주지 않을 거야. 오히려 나를 통제 불가능한 괴물로 몰아가겠지.’
그는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감정적으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철저하게 계획하고, 완벽하게 준비해야 한다. 실패는 곧 모든 것의 끝을 의미하니까.
강윤은 책상에 앉아 낡은 노트를 펼쳤다. 그리고 새로운 페이지에 굳은 결심으로 펜을 들었다. 그의 눈에는 더 이상 평범한 소년의 혼란과 두려움이 없었다. 그 자리에는 가장 끔찍한 비극적인 미래를 직접 경험하고 돌아온 자의, 나이를 초월한 냉철함과 강철 같은 결의가 서려 있었다.
[미래 변경 계획 - 코드네임: 리플레이(Replay)]
최종 목표: 표진석 및 배후 세력의 ‘프로젝트 프로메테우스’를 완전히 저지하고, 모든 관련자를 파멸시킨다. 부모님과 지호, 그리고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다솜의 안전을 완벽하게 확보한다.
핵심 전략:
A. 정보 우위의 절대적 활용: 나는 미래를 알고 있다. 적의 움직임, 계획, 심지어 대화까지도. 이 정보적 우위를 최대한 활용하여 적의 계획을 한발 앞서 예측하고, 그들의 함정을 역이용한다.
B. 능력의 완전한 통제 및 강화: 나의 힘은 아직 불안정하고, 특히 시간 회귀 능력은 영혼을 갉아먹는 금단의 힘이다. 다시는 이 위험한 능력을 쓰지 않아도 될 만큼, 염력을 포함한 모든 능력을 완벽하게 제어하고 강화하는 훈련을 즉시 재개한다.
C. 유일한 조력자, 지호의 확보: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지호를 완벽한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의 죄책감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진실을 공유하고 함께 싸울 동지로 만들어야 한다. 그의 내부 정보와 아버지에 대한 지식은 필수적이다.
오늘 밤의 계획 (D-day):
비밀 연구소 잠입 계획은 예정대로 실행한다. 모든 것이 똑같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단, 이번의 목표는 어젯밤처럼 허둥지둥 ‘탈출’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 목표는 단 하나. 표진석이 결코 예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그의 허를 찌르고, 그가 가진 가장 중요한 ‘데이터’ 혹은 ‘연구의 핵심’을 빼앗아온다. 방어에서 공격으로 전환한다.
강윤은 펜을 내려놓고 창밖을 보았다. 절망으로 가득했던 잿빛 하늘은 어느새 눈부시게 맑게 개어 있었다. 그에게 두 번째 기회가 주어졌다. 이번에는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운명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다니는 희생자가 아니었다. 그는 이제, 자신의 운명을 직접 새로 쓰려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비극으로 끝났던 이야기의 결말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바꾸기 위해서.
세상은 온통 절규하는 푸른빛으로 가득했다. 강윤의 작은 몸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 거대한 에너지 기둥은 먹구름이 몰려든 하늘을 찢을 듯 솟구쳤고, 그를 중심으로 반경 수십 미터, 아니 그 이상의 모든 것이 그의 참혹한 분노에 공명하며 뒤틀렸다. 단단해야 할 아스팔트는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흉측하게 솟아올랐고, 수십 년간 한자리를 지켜온 가로수들은 뿌리째 뽑힐 듯 미친 듯이 흔들렸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는 그의 시린 슬픔처럼 차가웠고, 간헐적으로 터지는 번개는 그의 불타는 분노처럼 어두운 하늘을 날카롭게 갈랐다. 이른 새벽의 비극을 목격하던 사람들은 본능적인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고, 현장을 통제하던 소방관들과 경찰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상식을 아득히 초월한 초자연적인 현상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얼어붙었다.
하지만 그 모든 혼돈의 중심에 있는 강윤 자신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의 의식은 이미 현실 세계의 감각을 떠나 있었다. 그의 텅 빈 눈동자에 비치는 것은 불타는 집의 흉측하고 시뻘건 잔해뿐이었다. 활활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어제 아침만 해도 자신을 향해 웃어주던 엄마의 다정한 미소와, 묵묵히 자신의 어깨를 감싸주던 아빠의 든든한 모습이 검은 재가 되어 속절없이 흩어지는 끔찍한 환영이 보였다. 모든 것이 끝났다. 지켜야 할 것도, 돌아갈 곳도, 사랑하는 세상 전부가 눈앞에서 소멸했다.
‘되돌리고 싶어.’
그의 텅 빈 마음속에서 단 하나의 생각이, 광기에 가까운 집념이 되어 피어올랐다.
‘이 모든 것을… 전부 없었던 일로. 어제로. 아니, 그저께로. 모든 것이 평화롭고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 간절한 염원은 단순한 바람이나 희망을 넘어, 우주의 근본적인 법칙, 시간이라는 거대한 강물의 흐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하나의 거대한 의지가 되었다. 그의 몸을 격렬하게 감싸던 푸른빛의 에너지가 점차 그 색을 잃고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투명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심, 강윤의 눈동자는 모든 빛과 희망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깊고 아득한 심연의 색으로 변해갔다.
이윽고, 그의 주변에서 상상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쏟아지던 빗방울들이 허공에서, 마치 투명한 유리에 박힌 구슬처럼 완벽하게 멈춰 섰다. 불타는 집에서 흩날리던 재와 검은 연기가 공중에서 그 형태를 유지한 채 정지했다. 사람들의 겁에 질린 표정, 황급히 움직이던 차량의 경광등, 심지어 집어삼킬 듯 일렁이던 거대한 불길의 춤까지. 세상의 모든 것이 한 폭의 정지된 그림처럼, 소리도 움직임도 없는 완벽한 침묵 속에 갇혔다. 오직 강윤만이,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홀로 가쁘게 숨 쉬고 있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앙상한 몸을 일으켜 세웠다. 허공에 수정처럼 박혀 있는 수천, 수만 개의 빗방울들을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만져보았다. 차가운 감촉 대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실체 없는 홀로그램을 만지는 듯한 기묘한 감각. 그는 자신의 주변 세상이, 시간이라는 거대한 흐름에서 잠시 떨어져 나온 고립된 ‘파편’이 되었음을 직감했다.
그의 시선이 다시 불타는 집으로 향했다. 멈춰버린 화염 속에서, 그는 거실 벽에 위태롭게 걸려 있던 낡은 가족사진을 보았다. 유치원 입학식 날, 세 식구가 어색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사진. 그 소중한 추억이 불길에 휩싸여 가장자리가 검게 변해가던 바로 그 찰나에 멈춰 있었다.
‘안 돼…! 저것마저 잃을 수는 없어…!’
그는 사진을 향해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자신의 영혼을 쥐어짜내듯 간절하게 염원했다.
‘제발… 시간을… 시간을 되돌려줘…!’
그 순간, 멈춰 있던 세상이 그의 의지에 굴복하여 거꾸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상은 마치 오래된 필름을 거꾸로 감는 것처럼, 기괴하고 부자연스럽게 역재생되기 시작했다. 하늘로 솟구치던 불길이 집 안으로 게걸스럽게 빨려 들어가고, 폭삭 무너져 내렸던 지붕이 제자리를 찾아 퍼즐처럼 조립되었다. 산산조각 났던 유리창들이 허공을 날아다니던 파편 상태에서 원래의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던 사람들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뒷걸음질 쳐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왔던 소방차와 경찰차가 소리 없이 후진으로 동네를 빠져나갔다.
강윤은 지독한 어지러움과 현기증 속에서 그 모든 광경을 망연자실하게 지켜보았다.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행위는 그의 영혼을 날카로운 칼로 긁어내는 듯한 끔찍한 고통을 동반했다. 머릿속이 수만 개의 바늘로 동시에 찔리는 듯했고, 온몸의 혈액이 역류하여 혈관이 터져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는 결국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의식의 끈이 희미해져 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강윤이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을 때, 그는 자신의 방, 너무나도 익숙한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창밖은 아직 어슴푸레한 새벽의 푸른빛에 잠겨 있었다. 모든 것이 평소와 똑같았다. 책상 위에는 어젯밤 풀다 만 수학 문제집이 펼쳐져 있었고, 의자에는 오늘 입고 갈 교복이 어머니의 손길로 단정하게 걸려 있었다.
‘꿈…이었나?’
그는 그 모든 것이 끔찍한 악몽이었다고, 그렇게 필사적으로 믿고 싶었다. 불타는 집, 부모님의 죽음, 표진석의 섬뜩한 광기… 모든 것이 현실처럼 너무나도 생생했지만, 꿈이라고 믿어야만 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가슴 깊이 내쉬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내, 온몸을 엄습하는 강렬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의 몸은 마치 밤새도록 격렬한 운동이라도 한 것처럼 쑤시고 아팠고, 코에서는 말라붙은 피 냄새가 희미하게 났다. 그리고 그의 오른손에 단단히 들려 있는 것. 그것은 어젯밤, 지옥 같은 비밀 실험실에서 필사적으로 챙겨 나왔던, 모든 진실이 담긴 차가운 USB 메모리 스틱이었다.
꿈이 아니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침대 옆에 놓인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을 켜자, 선명한 디지털 숫자가 그의 눈에 박혔다.
‘7월 13일, 금요일.’
어제 날짜였다. 모든 비극이 시작되기 바로 전날. 그는 시간을 되돌린 것이다. 끔찍했던 하룻밤의 시간을, 통째로 과거로 되돌려버린 것이다.
“강윤아, 일어났니? 어서 나와서 아침 먹어야지!”
바로 그때, 굳게 닫힌 방문 밖에서 그토록 그리워했던, 다시는 들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엄마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윤은 저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을 터뜨리며 방문을 열고 거실로 뛰쳐나갔다. 식탁에서는 아빠가 안경을 쓴 채 아침 신문을 보고 있었고, 주방에서는 엄마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계란 프라이를 접시에 담고 있었다. 너무나도 평범해서, 그래서 기적과도 같은 아침 풍경.
“엄마… 아빠…”
강윤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가, 어린아이처럼 와락 끌어안았다.
“어머, 얘 왜 이래? 아침부터. 아직 잠이 덜 깼구나, 우리 아들.”
어머니 지윤은 영문을 모른 채 웃으며 아들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여주었다. 아버지 태주 역시 신문을 내려놓고 흐뭇한 미소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자신들이 이미 한 번 ‘죽었었다’는 끔찍한 사실을. 그리고 그들의 아들이 우주의 법칙을 거슬러 자신들을 되살려냈다는 사실을.
강윤은 부모님의 따뜻한 품에 안겨 소리 없이 울었다. 되찾은 기쁨과 안도감, 그리고 앞으로 다시 닥쳐올 미래에 대한 엄청난 공포가 뒤섞인, 너무나도 무거운 눈물이었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강윤은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는 퉁퉁 부은 눈,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을 한 소년이 서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어제의 평범한 고등학생 차강윤이 아니었다. 그는 미래를 알고 있었고,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신의 힘을 가졌다. 하지만 그 힘은 축복이 아니라, 평생 짊어져야 할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저주처럼 느껴졌다.
그에게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 끔찍한 미래를 바꿀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도망’이었다. 당장 부모님께 모든 것을 털어놓고, 멀리, 아주 멀리, 표진석의 손이 닿지 않는 해외의 어느 이름 모를 곳으로 도망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표진석의 감시망과 영향력은 자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촘촘했다. 어설픈 도망은 더 큰 비극을 낳을 뿐이라는 것을, 그는 피로 얼룩진 어젯밤의 경험으로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렇다면, 오늘 밤 지호와의 약속을 무시하고 비밀 연구소에 가지 않으면 어떨까? 지호에게 모든 것을 잊고 예전처럼 평범하게 지내자고 말하면, 이 끔찍한 비극을 피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것 역시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표진석의 ‘프로젝트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진행될 것이다. 언젠가는, 어떤 형태로든 그는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다시 위협해올 것이다. 문제를 회피하는 것은 답이 아니었다.
그의 머릿속에 수많은 선택지가 폭풍처럼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혼란스러운 생각의 파편들 속에서, 단 하나의 길이 서서히, 하지만 분명하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싸워야 한다.’
도망치거나 숨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 표진석의 계획을 막고, 그의 배후에 있는 거대한 세력까지 모두 무너뜨려야만, 진정한 의미에서 자신과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고작 열일곱 살 소년 둘이서, 국가급 자본과 권력을 동원하는 거대한 조직을 상대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때, 그의 손에 들린 차가운 USB가 다시 한번 눈에 들어왔다. 진실. 이것이 그의 유일무이한 무기였다. 표진석의 비인간적인 실험과 음모가 담긴 이 데이터. 이것을 세상에 폭로한다면…
‘아니, 아직은 아니야. 증거가 부족하고, 세상은 내 말을 믿어주지 않을 거야. 오히려 나를 통제 불가능한 괴물로 몰아가겠지.’
그는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감정적으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철저하게 계획하고, 완벽하게 준비해야 한다. 실패는 곧 모든 것의 끝을 의미하니까.
강윤은 책상에 앉아 낡은 노트를 펼쳤다. 그리고 새로운 페이지에 굳은 결심으로 펜을 들었다. 그의 눈에는 더 이상 평범한 소년의 혼란과 두려움이 없었다. 그 자리에는 가장 끔찍한 비극적인 미래를 직접 경험하고 돌아온 자의, 나이를 초월한 냉철함과 강철 같은 결의가 서려 있었다.
[미래 변경 계획 - 코드네임: 리플레이(Replay)]
최종 목표: 표진석 및 배후 세력의 ‘프로젝트 프로메테우스’를 완전히 저지하고, 모든 관련자를 파멸시킨다. 부모님과 지호, 그리고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다솜의 안전을 완벽하게 확보한다.
핵심 전략:
A. 정보 우위의 절대적 활용: 나는 미래를 알고 있다. 적의 움직임, 계획, 심지어 대화까지도. 이 정보적 우위를 최대한 활용하여 적의 계획을 한발 앞서 예측하고, 그들의 함정을 역이용한다.
B. 능력의 완전한 통제 및 강화: 나의 힘은 아직 불안정하고, 특히 시간 회귀 능력은 영혼을 갉아먹는 금단의 힘이다. 다시는 이 위험한 능력을 쓰지 않아도 될 만큼, 염력을 포함한 모든 능력을 완벽하게 제어하고 강화하는 훈련을 즉시 재개한다.
C. 유일한 조력자, 지호의 확보: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지호를 완벽한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의 죄책감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진실을 공유하고 함께 싸울 동지로 만들어야 한다. 그의 내부 정보와 아버지에 대한 지식은 필수적이다.
오늘 밤의 계획 (D-day):
비밀 연구소 잠입 계획은 예정대로 실행한다. 모든 것이 똑같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단, 이번의 목표는 어젯밤처럼 허둥지둥 ‘탈출’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 목표는 단 하나. 표진석이 결코 예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그의 허를 찌르고, 그가 가진 가장 중요한 ‘데이터’ 혹은 ‘연구의 핵심’을 빼앗아온다. 방어에서 공격으로 전환한다.
강윤은 펜을 내려놓고 창밖을 보았다. 절망으로 가득했던 잿빛 하늘은 어느새 눈부시게 맑게 개어 있었다. 그에게 두 번째 기회가 주어졌다. 이번에는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운명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다니는 희생자가 아니었다. 그는 이제, 자신의 운명을 직접 새로 쓰려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비극으로 끝났던 이야기의 결말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바꾸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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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 아이 더 오리지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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