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조회 : 166 추천 : 0 글자수 : 6,099 자 2025-12-11
제14화
“안 돼! 그건, 그건 안 돼! 당장 거기서 네 더러운 손 떼지 못해!”
연구소 전체에 표진석의 이성을 잃은 외침이 광적으로 울려 퍼졌다. 최고급 오디오 시스템을 통해 증폭된 그의 목소리는 찢어질 듯한 파열음이 섞여, 평소의 냉철하고 계산적인 과학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 수십 년의 집념과 신념의 결정체를 빼앗길 위기에 처한 자의 원초적인 공포와 통제 불능의 분노만이 가득했다. 중앙 통제실의 수십 개 모니터 너머로, 그는 자신의 필생의 역작, 인류 진화의 열쇠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제노-7’ 원본 샘플이 담긴 보관장치를 움켜쥔 채, 자신을 경멸 어린 눈으로 노려보는 강윤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 작은 소년의 눈빛은 더 이상 통제 가능한 귀한 실험체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심판하러 온 심판자의 눈빛이었다.
“이제 협상할 시간이야, 표진석 박사.”
강윤은 당장이라도 으스러뜨릴 듯이 보관장치를 손에 쥐고, 천장 구석에 달린 CCTV 카메라의 붉은 램프를 향해 얼음처럼 차갑게 미소 지었다. 그의 목소리는 열일곱 살 소년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침착하고 단단했다. 그 평온함이 표진석을 더욱 미치게 만들었다.
“우리가 안전하게 이 지옥에서 나갈 수 있게 해. 그리고 내 친구, 지호를 다시는 당신의 더러운 실험에, 당신의 뒤틀린 욕망에 이용하지 마.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그 위대한 연구는 바로 여기서, 지금 이 순간 끝나는 거야. 나와 함께, 영원히 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거지.”
강윤의 손아귀에 서서히, 하지만 분명하게 힘이 들어가자, 특수 강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보관장치 표면에 ‘삐걱’ 하는 불길한 소리와 함께 머리카락 굵기의 미세한 균열이 거미줄처럼 생기기 시작했다. 그 작은 소리는 표진석의 귀에는 자신의 심장이 쪼개지는 소리처럼 섬뜩하게 들렸다. 그는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보관실로 진입하려던 공격용 드론들에게 강제 발사 명령을 내렸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강윤은 이미 보관장치를 자신의 몸 앞에 바싹 붙인 채, 완벽한 인간 방패, 완벽한 인질극을 벌이고 있었다. 드론의 공격은 곧 샘플의 영구적인 파괴를 의미했다. 그것은 표진석에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네가… 네가 뭘 안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지? 그 힘의 위대함을, 인류를 다음 단계로 이끌 그 신성한 가치를 네까짓 미숙하고 감정적인 꼬마가 뭘 안다고!”
“가치? 당신이 말하는 그 위대한 가치라는 게, 내 부모님을 죽음으로 내몰고, 내 가장 친한 친구를 배신자로 만들고, 나를 평생 감시하는 건가? 그런 거라면, 그런 가치 따위는 차라리 처음부터 세상에 없는 게 나아.”
강윤의 서늘한 반박에 표진석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고 믿었던 실험체에게 역으로 목줄을 잡혔다는 굴욕적인 사실을 깨달았다. 분노와 모멸감에 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 작은 소년은 단순한 변수가 아니었다. 자신의 모든 계획을 무너뜨릴 수 있는 재앙이었다.
“좋다. 원하는 게 뭐지?”
마침내, 표진석이 패배를 인정하듯 항복의 의사를 내비쳤다. 목소리는 억눌린 분노로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연구소의 모든 공격 시스템을 지금 당장 정지하고, 외부로 나가는 모든 출입문을 열어. 그리고 우리가 여기서 완전히 벗어나 숲의 경계선을 넘을 때까지, 어떤 추격도, 감시도 해선 안 돼. 만약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그땐 정말 이걸 깨뜨려 버릴 거야. 내 모든 걸 걸고 약속하지.”
“……알겠다.”
표진석은 어금니가 부서져라 이를 갈며 대답했다. 잠시 후, 귀를 찢던 연구소의 모든 경보음이 멎고, 복도를 가로막고 있던 육중한 강철 셔터들이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공중에 떠 있던 공격용 드론들도 모두 작동을 멈추고 소리 없이 천장으로 수납되었다. 죽음의 함정이 다시 평범한 연구소의 복도로 돌아왔다.
“가자, 지호야.”
강윤은 샘플 보관장치를 소중하게 품에 안은 채, 넋이 나간 지호의 팔을 잡았다. 지호는 여전히 충격과 혼란 속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강윤에게 이끌려 기계적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고 위대하다고 믿었던 존재가 저토록 추악하고 나약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 평범하다고만 생각했던 존재가 저토록 강하고 대담한 영웅이었다는 사실을 동시에 목격하며, 자신의 세계가 뿌리부터 완전히 재구성되는 듯한 현기증을 느끼고 있었다.
두 소년은 마침내 열려진 연구소 정문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왔다. 비 내리는 어둠 속에서, 수십 명의 무장 병력들은 총구를 내린 채 길을 열어주었지만, 그들의 헬멧 아래 번뜩이는 눈에는 여전히 억눌린 살기가 가득했다. 강윤은 단 한시도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샘플을 든 손에 힘을 주었다. 마치 언제든 터질 수 있는 폭탄을 든 것처럼, 그의 신경은 극도로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들이 축축한 흙냄새가 나는 숲으로 사라지기 직전, 지호가 우뚝 걸음을 멈췄다. 그는 뒤를 돌아, 여러 대의 차량 헤드라이트 불빛 속에 실루엣처럼 서 있는 아버지, 표진석을 바라보았다.
“아버지.”
지호의 목소리는 빗물에 젖은 채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왜… 왜 그러셨어요? 왜 저한테까지… 제가, 제가 아버지 아들이긴 했어요? 아니면… 그것마저도 당신의 위대한 실험의 일부였나요?”
그것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던질 수 있는 가장 아프고 근원적인 질문이었다. 그 순간, 처음으로 표진석의 얼음 같던 표정에 인간적인 균열이 생겼다. 그의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흔들렸다. 그는 아들의 눈물 어린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위대한 과학자로서의 이성과 한 사람의 아버지로서의 희미한 감정 사이에서, 그는 결국 침묵을 선택했다. 그에게 아들은 사랑의 대상이기 이전에, 자신의 가장 완벽한 후계자이자 작품이어야 했다.
강윤은 그런 지호를 재촉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친구가 자신의 아버지를, 자신의 세계를 떠나보내는 의식의 순간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지호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피 묻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떨구고 돌아섰다. 그의 작은 등 뒤로, 표진석은 아무도 모르게 손목에 찬 시계의 측면 버튼을 길게 눌렀다. 그것은 숲에 미리 매복해 있는 최정예 추격조에게 보내는 비밀 신호였다.
‘미안하다, 아들아. 하지만 이건… 결국 너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너는 위대한 미래의 상속자가 되어야 하니까.’
그의 마음속 독백은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에 묻혀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다. 그는 결국, 하나뿐인 아들보다는 자신의 광적인 신념을 선택한 것이다.
두 소년은 칠흑 같은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완전히 시야에서 벗어나자마자, 표진석은 무장 병력에게 나직이 명령했다.
“추격해. B팀은 예정대로 움직여라. 단, 샘플은 절대 손상시키지 마라. 차강윤은… 생포가 불가능할 시, 사살해도 좋다. 하지만 표지호는, 반드시 살려서 데려와라. 머리카락 한 올도 다치게 해선 안 된다.”
그것이 그가 아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지독하게 뒤틀리고 이기적인 부정(父情)의 전부였다.
비에 젖은 숲속을 달리며, 강윤과 지호는 잠시나마 안도했다.
“해냈어… 강윤아, 우리가 해냈어! 믿을 수가 없어!”
지호가 숨을 헐떡이며 거의 환호하듯 말했다. 그는 아직 아버지가 자신들을 순순히 보내줄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하지만 강윤은 달랐다. 이미 한번 실패한 미래를 아는 그는, 이것이 결코 끝이 아니라는 것을, 진짜 지옥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 아직 안 끝났어. 네 아버지는 절대 포기할 사람이 아니야. 절대.”
강윤의 차가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숲의 깊은 어둠 속에서 수십 개의 섬뜩한 붉은 레이저 포인트가 그들의 몸을 겨누었다. 소음기가 달린 검은 총구들이 축축한 나뭇잎 사이로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야간 투시경을 쓴 최정예 추격조들이 어느새 그들을 완벽하게 포위하고 있었다.
“제기랄!”
강윤은 욕설을 내뱉으며 반사적으로 다시 한번 샘플을 방패처럼 들어 보였다.
“다가오지 마! 다가오면 이걸 깨뜨릴 거야!”
하지만 이번에는 그의 협박이 통하지 않았다. 추격조 리더로 보이는 남자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감정 없이 냉정하게 울려 퍼졌다.
“상관없다. 박사님께서는 샘플보다 표지호 군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확보하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그 말에 지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버지가 자신을 인질로 삼아, 강윤을 무력화시키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강윤이 샘플을 깨뜨리면, 자신은 아버지에게 더 이상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함께 제거될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자신을 미끼로 쓴 것이다. 완벽하고 잔인한 배신이었다.
“강윤아… 날 버리고 가. 제발. 나 때문에 너까지 죽을 수는 없어! 어서!”
지호가 절규했다. 하지만 강윤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눈에는 이미 죽음을 각오한 결의가 서려 있었다.
“닥쳐. 우린 같이 사는 거야. 아니면 같이 죽거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포위망을 좁혀오던 추격조 중 한 명이 방아쇠를 당겼다. 강윤을 직접 겨냥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발밑 땅을 향해 쏜 위협 사격이었다. 하지만 비에 젖어 진흙탕이 된 땅에 맞고 튕겨 나간 총알 하나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불규칙한 궤적을 그리며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모든 것이 지독하게 느린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빗줄기를 가르며 불규칙하게 회전하며 날아가는 작은 납탄. 그리고 그 총알이 향하는 곳. 그곳에는… 강윤도, 지호도 아닌, 이 모든 상황을 멀리서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한다솜이 서 있었다.
그녀는 강윤과 지호가 밤늦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고 연락도 닿지 않자, 걱정되는 마음에 그들의 위치 추적 앱을 보고 이곳까지 따라온 것이었다. 그녀는 차마 이 끔찍한 상황에 다가가지도 못하고, 커다란 나무 뒤에 숨어 두려움에 떨며 친구들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다솜아!”
강윤과 지호의 비명이 거의 동시에 터져 나왔다. 강윤은 본능적으로 염력을 뻗어 총알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연구소에서 너무 많은 힘을 소진한 그의 능력은 미처 총알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피융-’ 하는 짧고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총알은 다솜의 왼쪽 어깨에 정확히 박혔다. 붉은 피가 순식간에 하얀 교복 위로 끔찍하게 번져나갔다. 다솜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충격으로 커진 눈으로 강윤을 아련하게 바라보다가 그대로 힘없이 쓰러졌다.
“안 돼… 안 돼!!!!!!”
강윤의 절규가 빗소리를 뚫고 숲 전체를 뒤흔들었다. 예상치 못한, 계획에 없던 희생. 자신의 싸움에 아무 상관없는 소중한 친구가, 바로 자신 때문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 순간, 강윤의 마지막 남은 이성이 ‘툭’ 하고 무너져 내렸다.
그의 주변으로 다시 한번 거대한 푸른빛의 에너지 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전의 분노와는 차원이 다른,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순수한 증오와 절망의 폭풍이었다. 숲의 나무들이 뿌리째 뽑히고, 집채만 한 바위들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세상이 그의 슬픔에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추격조들은 눈앞의 초현실적인 광경에 경악하며 물러섰다. 표진석의 실험실 메인 모니터에 경고 메시지가 미친 듯이 깜박였다.
[경고! 대상 ‘프라임’의 에너지 수치, 위험 임계점 돌파! 통제 불능! 반복한다! 통제 불능!]
강윤은 쓰러진 다솜을 향해 비틀거리며 다가갔다. 그의 눈에서는 뜨거운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다솜의 축 늘어진 몸을 끌어안았다. 지켜주겠다고, 이번에는 반드시 모두를 지켜주겠다고 다짐했는데, 결국 또다시 소중한 사람을 지키지 못했다.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었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서 다시 한번 그 기묘하고 위험한 감각이 깨어났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싶은, 이 끔찍한 실수를 만회하고 싶은 간절하고도 처절한 염원.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시간을 되돌리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대가로 치르는 위험천만한 도박이라는 것을. 그리고 한번 바꾼 미래를 또다시 억지로 바꾸려 할 때, 어떤 끔찍한 부작용이, 어떤 더 큰 비극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마치 억지로 강물의 흐름을 바꾸려 하면,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제방이 터지는 것처럼.
그의 눈동자가 다시 한번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깊고 어두운 심연의 색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친구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영혼이 닳아 없어지더라도, 그는 기꺼이 악마와 거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비극은 또 다른 비극의 씨앗을 잉태하며, 이제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안 돼! 그건, 그건 안 돼! 당장 거기서 네 더러운 손 떼지 못해!”
연구소 전체에 표진석의 이성을 잃은 외침이 광적으로 울려 퍼졌다. 최고급 오디오 시스템을 통해 증폭된 그의 목소리는 찢어질 듯한 파열음이 섞여, 평소의 냉철하고 계산적인 과학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 수십 년의 집념과 신념의 결정체를 빼앗길 위기에 처한 자의 원초적인 공포와 통제 불능의 분노만이 가득했다. 중앙 통제실의 수십 개 모니터 너머로, 그는 자신의 필생의 역작, 인류 진화의 열쇠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제노-7’ 원본 샘플이 담긴 보관장치를 움켜쥔 채, 자신을 경멸 어린 눈으로 노려보는 강윤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 작은 소년의 눈빛은 더 이상 통제 가능한 귀한 실험체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심판하러 온 심판자의 눈빛이었다.
“이제 협상할 시간이야, 표진석 박사.”
강윤은 당장이라도 으스러뜨릴 듯이 보관장치를 손에 쥐고, 천장 구석에 달린 CCTV 카메라의 붉은 램프를 향해 얼음처럼 차갑게 미소 지었다. 그의 목소리는 열일곱 살 소년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침착하고 단단했다. 그 평온함이 표진석을 더욱 미치게 만들었다.
“우리가 안전하게 이 지옥에서 나갈 수 있게 해. 그리고 내 친구, 지호를 다시는 당신의 더러운 실험에, 당신의 뒤틀린 욕망에 이용하지 마.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그 위대한 연구는 바로 여기서, 지금 이 순간 끝나는 거야. 나와 함께, 영원히 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거지.”
강윤의 손아귀에 서서히, 하지만 분명하게 힘이 들어가자, 특수 강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보관장치 표면에 ‘삐걱’ 하는 불길한 소리와 함께 머리카락 굵기의 미세한 균열이 거미줄처럼 생기기 시작했다. 그 작은 소리는 표진석의 귀에는 자신의 심장이 쪼개지는 소리처럼 섬뜩하게 들렸다. 그는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보관실로 진입하려던 공격용 드론들에게 강제 발사 명령을 내렸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강윤은 이미 보관장치를 자신의 몸 앞에 바싹 붙인 채, 완벽한 인간 방패, 완벽한 인질극을 벌이고 있었다. 드론의 공격은 곧 샘플의 영구적인 파괴를 의미했다. 그것은 표진석에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네가… 네가 뭘 안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지? 그 힘의 위대함을, 인류를 다음 단계로 이끌 그 신성한 가치를 네까짓 미숙하고 감정적인 꼬마가 뭘 안다고!”
“가치? 당신이 말하는 그 위대한 가치라는 게, 내 부모님을 죽음으로 내몰고, 내 가장 친한 친구를 배신자로 만들고, 나를 평생 감시하는 건가? 그런 거라면, 그런 가치 따위는 차라리 처음부터 세상에 없는 게 나아.”
강윤의 서늘한 반박에 표진석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고 믿었던 실험체에게 역으로 목줄을 잡혔다는 굴욕적인 사실을 깨달았다. 분노와 모멸감에 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 작은 소년은 단순한 변수가 아니었다. 자신의 모든 계획을 무너뜨릴 수 있는 재앙이었다.
“좋다. 원하는 게 뭐지?”
마침내, 표진석이 패배를 인정하듯 항복의 의사를 내비쳤다. 목소리는 억눌린 분노로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연구소의 모든 공격 시스템을 지금 당장 정지하고, 외부로 나가는 모든 출입문을 열어. 그리고 우리가 여기서 완전히 벗어나 숲의 경계선을 넘을 때까지, 어떤 추격도, 감시도 해선 안 돼. 만약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그땐 정말 이걸 깨뜨려 버릴 거야. 내 모든 걸 걸고 약속하지.”
“……알겠다.”
표진석은 어금니가 부서져라 이를 갈며 대답했다. 잠시 후, 귀를 찢던 연구소의 모든 경보음이 멎고, 복도를 가로막고 있던 육중한 강철 셔터들이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공중에 떠 있던 공격용 드론들도 모두 작동을 멈추고 소리 없이 천장으로 수납되었다. 죽음의 함정이 다시 평범한 연구소의 복도로 돌아왔다.
“가자, 지호야.”
강윤은 샘플 보관장치를 소중하게 품에 안은 채, 넋이 나간 지호의 팔을 잡았다. 지호는 여전히 충격과 혼란 속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강윤에게 이끌려 기계적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고 위대하다고 믿었던 존재가 저토록 추악하고 나약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 평범하다고만 생각했던 존재가 저토록 강하고 대담한 영웅이었다는 사실을 동시에 목격하며, 자신의 세계가 뿌리부터 완전히 재구성되는 듯한 현기증을 느끼고 있었다.
두 소년은 마침내 열려진 연구소 정문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왔다. 비 내리는 어둠 속에서, 수십 명의 무장 병력들은 총구를 내린 채 길을 열어주었지만, 그들의 헬멧 아래 번뜩이는 눈에는 여전히 억눌린 살기가 가득했다. 강윤은 단 한시도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샘플을 든 손에 힘을 주었다. 마치 언제든 터질 수 있는 폭탄을 든 것처럼, 그의 신경은 극도로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들이 축축한 흙냄새가 나는 숲으로 사라지기 직전, 지호가 우뚝 걸음을 멈췄다. 그는 뒤를 돌아, 여러 대의 차량 헤드라이트 불빛 속에 실루엣처럼 서 있는 아버지, 표진석을 바라보았다.
“아버지.”
지호의 목소리는 빗물에 젖은 채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왜… 왜 그러셨어요? 왜 저한테까지… 제가, 제가 아버지 아들이긴 했어요? 아니면… 그것마저도 당신의 위대한 실험의 일부였나요?”
그것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던질 수 있는 가장 아프고 근원적인 질문이었다. 그 순간, 처음으로 표진석의 얼음 같던 표정에 인간적인 균열이 생겼다. 그의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흔들렸다. 그는 아들의 눈물 어린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위대한 과학자로서의 이성과 한 사람의 아버지로서의 희미한 감정 사이에서, 그는 결국 침묵을 선택했다. 그에게 아들은 사랑의 대상이기 이전에, 자신의 가장 완벽한 후계자이자 작품이어야 했다.
강윤은 그런 지호를 재촉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친구가 자신의 아버지를, 자신의 세계를 떠나보내는 의식의 순간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지호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피 묻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떨구고 돌아섰다. 그의 작은 등 뒤로, 표진석은 아무도 모르게 손목에 찬 시계의 측면 버튼을 길게 눌렀다. 그것은 숲에 미리 매복해 있는 최정예 추격조에게 보내는 비밀 신호였다.
‘미안하다, 아들아. 하지만 이건… 결국 너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너는 위대한 미래의 상속자가 되어야 하니까.’
그의 마음속 독백은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에 묻혀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다. 그는 결국, 하나뿐인 아들보다는 자신의 광적인 신념을 선택한 것이다.
두 소년은 칠흑 같은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완전히 시야에서 벗어나자마자, 표진석은 무장 병력에게 나직이 명령했다.
“추격해. B팀은 예정대로 움직여라. 단, 샘플은 절대 손상시키지 마라. 차강윤은… 생포가 불가능할 시, 사살해도 좋다. 하지만 표지호는, 반드시 살려서 데려와라. 머리카락 한 올도 다치게 해선 안 된다.”
그것이 그가 아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지독하게 뒤틀리고 이기적인 부정(父情)의 전부였다.
비에 젖은 숲속을 달리며, 강윤과 지호는 잠시나마 안도했다.
“해냈어… 강윤아, 우리가 해냈어! 믿을 수가 없어!”
지호가 숨을 헐떡이며 거의 환호하듯 말했다. 그는 아직 아버지가 자신들을 순순히 보내줄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하지만 강윤은 달랐다. 이미 한번 실패한 미래를 아는 그는, 이것이 결코 끝이 아니라는 것을, 진짜 지옥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 아직 안 끝났어. 네 아버지는 절대 포기할 사람이 아니야. 절대.”
강윤의 차가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숲의 깊은 어둠 속에서 수십 개의 섬뜩한 붉은 레이저 포인트가 그들의 몸을 겨누었다. 소음기가 달린 검은 총구들이 축축한 나뭇잎 사이로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야간 투시경을 쓴 최정예 추격조들이 어느새 그들을 완벽하게 포위하고 있었다.
“제기랄!”
강윤은 욕설을 내뱉으며 반사적으로 다시 한번 샘플을 방패처럼 들어 보였다.
“다가오지 마! 다가오면 이걸 깨뜨릴 거야!”
하지만 이번에는 그의 협박이 통하지 않았다. 추격조 리더로 보이는 남자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감정 없이 냉정하게 울려 퍼졌다.
“상관없다. 박사님께서는 샘플보다 표지호 군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확보하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그 말에 지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버지가 자신을 인질로 삼아, 강윤을 무력화시키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강윤이 샘플을 깨뜨리면, 자신은 아버지에게 더 이상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함께 제거될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자신을 미끼로 쓴 것이다. 완벽하고 잔인한 배신이었다.
“강윤아… 날 버리고 가. 제발. 나 때문에 너까지 죽을 수는 없어! 어서!”
지호가 절규했다. 하지만 강윤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눈에는 이미 죽음을 각오한 결의가 서려 있었다.
“닥쳐. 우린 같이 사는 거야. 아니면 같이 죽거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포위망을 좁혀오던 추격조 중 한 명이 방아쇠를 당겼다. 강윤을 직접 겨냥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발밑 땅을 향해 쏜 위협 사격이었다. 하지만 비에 젖어 진흙탕이 된 땅에 맞고 튕겨 나간 총알 하나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불규칙한 궤적을 그리며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모든 것이 지독하게 느린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빗줄기를 가르며 불규칙하게 회전하며 날아가는 작은 납탄. 그리고 그 총알이 향하는 곳. 그곳에는… 강윤도, 지호도 아닌, 이 모든 상황을 멀리서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한다솜이 서 있었다.
그녀는 강윤과 지호가 밤늦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고 연락도 닿지 않자, 걱정되는 마음에 그들의 위치 추적 앱을 보고 이곳까지 따라온 것이었다. 그녀는 차마 이 끔찍한 상황에 다가가지도 못하고, 커다란 나무 뒤에 숨어 두려움에 떨며 친구들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다솜아!”
강윤과 지호의 비명이 거의 동시에 터져 나왔다. 강윤은 본능적으로 염력을 뻗어 총알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연구소에서 너무 많은 힘을 소진한 그의 능력은 미처 총알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피융-’ 하는 짧고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총알은 다솜의 왼쪽 어깨에 정확히 박혔다. 붉은 피가 순식간에 하얀 교복 위로 끔찍하게 번져나갔다. 다솜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충격으로 커진 눈으로 강윤을 아련하게 바라보다가 그대로 힘없이 쓰러졌다.
“안 돼… 안 돼!!!!!!”
강윤의 절규가 빗소리를 뚫고 숲 전체를 뒤흔들었다. 예상치 못한, 계획에 없던 희생. 자신의 싸움에 아무 상관없는 소중한 친구가, 바로 자신 때문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 순간, 강윤의 마지막 남은 이성이 ‘툭’ 하고 무너져 내렸다.
그의 주변으로 다시 한번 거대한 푸른빛의 에너지 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전의 분노와는 차원이 다른,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순수한 증오와 절망의 폭풍이었다. 숲의 나무들이 뿌리째 뽑히고, 집채만 한 바위들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세상이 그의 슬픔에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추격조들은 눈앞의 초현실적인 광경에 경악하며 물러섰다. 표진석의 실험실 메인 모니터에 경고 메시지가 미친 듯이 깜박였다.
[경고! 대상 ‘프라임’의 에너지 수치, 위험 임계점 돌파! 통제 불능! 반복한다! 통제 불능!]
강윤은 쓰러진 다솜을 향해 비틀거리며 다가갔다. 그의 눈에서는 뜨거운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다솜의 축 늘어진 몸을 끌어안았다. 지켜주겠다고, 이번에는 반드시 모두를 지켜주겠다고 다짐했는데, 결국 또다시 소중한 사람을 지키지 못했다.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었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서 다시 한번 그 기묘하고 위험한 감각이 깨어났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싶은, 이 끔찍한 실수를 만회하고 싶은 간절하고도 처절한 염원.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시간을 되돌리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대가로 치르는 위험천만한 도박이라는 것을. 그리고 한번 바꾼 미래를 또다시 억지로 바꾸려 할 때, 어떤 끔찍한 부작용이, 어떤 더 큰 비극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마치 억지로 강물의 흐름을 바꾸려 하면,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제방이 터지는 것처럼.
그의 눈동자가 다시 한번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깊고 어두운 심연의 색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친구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영혼이 닳아 없어지더라도, 그는 기꺼이 악마와 거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비극은 또 다른 비극의 씨앗을 잉태하며, 이제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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