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조회 : 155 추천 : 0 글자수 : 7,118 자 2025-12-17
제18화
강윤의 목소리는 서늘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단어 하나하나가 마치 얼음 조각처럼 차가운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그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의 바닥조차도 그의 존재감 아래 얼어붙게 만들 만큼, 그의 내면은 완벽하게 냉각되어 있었다. 그의 계획은 단순하면서도 잔혹했다. 표진석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부터, 그가 가장 의지하는 것까지, 모든 것을 부숴버리는 것. 모든 것을 파괴하여 표진석의 제국을 뿌리째 흔들고, 결국에는 그의 존재 자체를 소멸시키는 것. 그것이 강윤의 새로운 목적이었다.
강윤은 텅 빈 눈으로 창밖 거리를 바라보았다. 아침을 맞이하는 도시의 소음은 이전과 다름없이 활기찼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자동차 경적 소리,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 세상은 수많은 소리로 가득했지만, 그의 귀에는 그저 의미 없는 소음의 나열로 들릴 뿐이었다. 아름다운 색채와 생동감으로 가득했던 풍경은 그에게 무미건조한 픽셀의 조합에 불과했다.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었다. 그는 마치 잘 만들어진 연극 무대 위를 걷는, 감정 없는 유령 같았다. 세상은 살아 움직였지만, 그는 그 세상에서 완전히 분리된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놀라울 정도로 차갑고 명료했다. 슬픔, 분노, 두려움 같은 감정들이 사라지자, 그의 두뇌는 마치 슈퍼컴퓨터처럼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두 번의 실패를 완벽하게 복기하고, 수많은 경우의 수를 시뮬레이션했다. 과거의 감정적인 반응이 불러온 오류, 예측하지 못한 변수로 인한 계획의 차질, 그리고 표진석의 교활한 심리전까지. 모든 데이터를 냉철하게 분석하며 최적의 경로를 찾아나갔다.
첫 번째 실패는 정보 부족과 감정적인 대응으로 인한 패배였다. 부모님을 살리고자 하는 순수한 열망이 오히려 그의 눈을 가렸고, 섣부른 행동은 표진석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결과를 낳았다. 두 번째 실패는 이전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남아있던 미련과 감정이 예측치 못한 표진석의 대응에 발목을 잡았다. 계획은 차질을 빚었고, 결국 똑같은 비극을 반복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세 번째 기회에서는 이 모든 실패 요인을 완벽하게 배제해야 했다. 감정은 판단을 흐리게 한다. 이제 남은 것은 냉철한 이성과 완벽한 계획뿐이었다. 모든 감정의 찌꺼기를 말끔히 지워내야 했다.
그는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감정은 없었지만, 목표는 있었다. 표진석을 '소멸시킨다'는 것. 그것은 이제 무엇 때문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부모님을 위한 복수도, 정의를 위한 싸움도 아니었다. 그것은 이 지독한 시간의 반복을 끝내기 위한, 유일한 과제이자 존재 이유였다. 마치 반드시 클리어해야 할 게임의 마지막 퀘스트처럼, 그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유일한 논리적 명제였다. 그의 내면에는 어떤 주저함도, 어떤 망설임도 없었다. 오직 표진석이라는 이름, 그 자체를 없애겠다는 순수한 의지만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서 있었다.
강윤은 망설임 없이 지호의 차량 앞으로 다가섰다. 차량 안에서 초조하게 그를 기다리던 지호는 강윤의 모습을 보자마자 안도감과 함께 깊은 걱정을 내비쳤다. 자신의 아버지가 저지른 일에 대한 미안함과, 강윤이 겪었을 고통에 대한 죄책감이 그의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야, 너 괜찮아..? 얼마나 걱정했는데.. 밤새 연락도 안 되고.. 진짜 죽는 줄 알았잖아. 힘들고 괴로우면 나한테 기대도 돼, 강윤아.."
지호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걱정과 함께 오랜 친구에 대한 애틋함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강윤에게는 더 이상 그런 감정적인 호소가 통하지 않았다. 그는 지호를 자신의 계획에 편입시켜야 할 중요한 변수, 즉 전략적인 도구로 인식했다. 친구로서의 유대감이나 과거의 추억은 이제 그의 의사결정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지호야. 나랑 같이 갈 데가 있어. 네 인생이 걸린 문제야."
강윤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그의 눈빛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 깊고 공허했다. 그 눈동자에는 지호에 대한 어떠한 감정적인 동요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지호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방금 전 사건 이후 완전히 다른 사람, 마치 차가운 기계의 영혼을 이식받은 듯한 친구의 모습에, 그는 알 수 없는 위압감과 본능적인 공포를 느꼈다. 평소의 강윤과는 너무나도 다른, 마치 낯선 존재를 마주한 것 같은 이질감이었다.
강윤은 지호를 인적이 드문 한적한 폐건물로 데려왔다. 허름하고 낡은 건물 내부는 스산한 분위기를 풍겼지만, 강윤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군더더기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감정을 건너뛰고 증거부터 제시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임을 알고 있었다. 감정적인 설득은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
"이게 뭔데? 너 왜 나를 이런 곳으로 데려온 거야?"
지호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폐건물의 으스스한 분위기와 강윤의 변해버린 모습이 그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강윤은 지호의 불안을 전혀 읽지 못했다. 혹은 읽었더라도 개의치 않았다. 그는 자신이 어둠 속에서 밤을 새워 해킹하고 분석한 자료들을 준비한 노트북을 펼쳤다. 화면에서 새어 나오는 푸른빛이 그의 무표정한 얼굴을 비췄다.
"네 아버지, 표진석 박사에 대한 모든 것이다."
화면에는 일반인의 눈으로는 해독 불가능한 암호화된 파일들이 펼쳐졌다. 강윤은 감정이 사라진 상태에서 얻은 경이로운 해킹 능력을 이용해, 일반인은 접근할 수 없는 정부 데이터베이스와 국제 금융망까지 뚫어 정보를 긁어모은 것이었다. 그의 능력은 단순히 물리적인 염력을 넘어, 정보와 데이터의 흐름까지 제어하는 수준으로 진화한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네오젠 연구소의 연구원이셨어. 그리고 네 아버지도. 17년 전, 연구소 화재로 공식적으로는 사망 처리됐지. 하지만 그들은 네 아버지 덕분에 겨우 살아남았어. 그리고 네 아버지는 그들을 '생체 실험의 재료'로 이용하기 위해 숨겨왔지.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실험체로 감금하고 착취했던 거야."
강윤의 목소리는 어떤 감정도 섞이지 않은 채, 잔혹한 진실을 덤덤하게 읊었다. 마치 역사적 사실을 서술하는 교과서의 한 문장처럼 무미건조했다. 지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의 아버지가, 자신에게는 한없이 다정했던 아버지가 그런 잔혹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건, 네 아버지의 해외 계좌 입출금 내역이야. 화재 사건 직후, 출처를 알 수 없는 거액의 돈이 입금됐고, 그 돈은 지난 17년간, 우리 집 주변의 부동산 매입과 각종 감시 장비 구입에 쓰였어. 너의 아버지는 17년 전부터 우리 가족을 타겟으로 삼고, 모든 것을 계획했던 거야."
강윤은 말을 멈추고, 지호가 자신에게 선물했던 스마트 워치와 똑같은 모델을 꺼내 분해했다. 워치 내부에서 꺼낸 것은 작은 먼지보다도 작은, 초소형 도청 및 추적 장치였다. 육안으로도 겨우 식별할 수 있는 극미세한 부품이었다.
"네 아버지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전체를 감시하고 있었어. 심지어 나를 관찰하기 위해 너를 이용했지. 네가 나에게 선물한 모든 것들이 감시 장치였으니까. 이 워치도, 네가 사줬던 펜도, 심지어 내 방에 있던 작은 스피커도."
지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막연한 의심이나 불안감이 아니라, 차가운 증거가 되어 눈앞에 펼쳐지자 그는 숨을 쉴 수 없었다. 목구멍이 꽉 막힌 듯 답답했다.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그의 귓속에서 울렸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모든 순간들이, 사실은 치밀한 감시와 계획의 일부였다는 잔혹한 진실이 그를 덮쳤다.
"왜… 왜 나한테 이런 걸 보여주는 거야? 왜… 내 아버지에 대한… 이런 말도 안 되는 증거를…"
지호는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그의 눈은 충격과 혼란, 그리고 깊은 배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시선은 강윤의 얼굴과 노트북 화면을 오가며 혼란스러워했다.
"네 도움이 필요하니까."
강윤은 천천히 손을 들어, 책상 위의 낡은 연필을 향해 손짓했다. 푸른빛의 미세한 에너지가 그의 손가락 끝에서 새어 나왔고, 연필은 공중으로 부드럽게 떠올랐다.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연필은 마치 깃털처럼 가볍게 허공을 유영했다.
"네 아버지의 목표는 '초능력 인간'을 만드는 거야. 그리고 나는, 그의 첫 번째 성공작이지. 이제 내가 각성했으니, 이런 나를 보면 제거하려 들 거야. 내 힘이 방해가 될 테니까. 그리고 나보다 더 순종적일 널, 지금까지 연구한 걸로 나처럼 만들려 하겠지. 너 역시 그의 실험체가 될 운명이야. '프로젝트 초월자(JIHO)'라는 이름으로."
지호는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비현실적인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친구가 초능력을 제대로 각성했다는 충격보다, 아버지가 자신을 이용했고 다음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다는 배신감이 그를 짓눌렀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보여줬던 모든 다정함과 사랑이 가면이었단 말인가? 그의 아버지가, 그 누구보다 믿고 따랐던 아버지가 자신을 그저 도구로 보았다는 사실이 그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듯했다.
"이제 믿겠어?"
강윤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 그의 눈은 지호의 미세한 표정 변화 하나 놓치지 않고 분석하고 있었다.
"내일 밤, 모든 것을 끝낼 거야. 네 아버지를 막고, 그 배후에 있는 모든 것을 세상에 드러낼 거야. 그러기 위해선 네가 필요해. 네가 가진 아버지의 성격과 네오젠 연구소의 내부 정보, 그리고 네가 그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테니까. 네가 없으면 이 계획은 성공할 수 없어."
강윤은 지호에게 감정이 아닌, 냉혹한 현실과 논리로 선택을 강요했다. 모든 것은 숫자로, 전략으로, 그리고 필요성으로 환원되었다.
"어떻게 할래? 나와 함께 싸울 거야, 아니면 여기서 모르는 척하고… 너에게 진행시킬 생체실험을 기다릴 거야? 선택은 네 몫이야. 하지만 시간은 많지 않아."
지호는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떨고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 친구의 충격적인 비밀, 그리고 자신에게 닥쳐올 생체실험이라는 끔찍한 위협. 그 모든 것이 그의 머릿속에서 뒤엉켜 폭풍우를 일으켰다.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잔혹한 진실들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눈에는 이전과는 다른, 단단한 결의와 처절한 슬픔이 서려 있었다. 그는 이미 아버지라는 존재를 자신의 인생에서 잘라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이제 차가운 배신감과 증오로 변해버렸다.
"……내가 뭘 하면 돼?"
지호의 대답은 나직했지만, 단호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미약한 떨림이 남아 있었지만, 결의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친구의 냉혹한 논리에 동의했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기로 결심했다.
그날 밤, 강윤의 방은 전쟁을 앞둔 지휘 본부와도 같았다. 두 소년은 머리를 맞대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다. 벽에는 네오젠 연구소의 도면과 태주전자의 물류 창고 지도, 그리고 표진석의 이동 경로 예상도가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아버지는 절대 감정적으로 움직이지 않아. 항상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여러 개의 함정을 파놓는 사람이야. 우리가 연구소에 잠입할 거라는 것까지 예상하고 있을지도 몰라. 그는 늘 한 수 위를 내다보는 사람이야."
지호가 아버지의 성격을 분석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망설임이 없었다. 그는 아버지를 '적'으로 규정했고, 그의 심리를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
"알아. 그래서 이번엔 우리가 먼저 함정을 팔 거야. 표진석이 예상하는 모든 수를 역이용해서."
강윤은 동네 지도를 펼쳤다. 그의 손가락은 네오젠 연구소와 특정 물류 창고를 오갔다. 두 장소 사이의 전략적인 거리가 그의 머릿속에서 치밀하게 계산되고 있었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네 아버지가 예상하는 네오젠 연구소가 아니야. 진짜 목표는 따로 있어. 연구소는 그냥 미끼일 뿐이야. 우리는 표진석의 눈을 완전히 속여야 해."
그의 계획은 대담하고 위험했다. 이전의 실패를 거울삼아, 그는 표진석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새로운 판을 짜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수비수가 아니었다. 그는 먼저 공격하는 공격수, 사냥꾼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의 눈빛은 맹렬한 광채를 뿜어냈다.
계획을 세우는 내내, 강윤은 단 한 번도 웃거나, 불안해하거나, 초조해하지 않았다. 그는 오직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정교한 기계 같았다. 그의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고, 오직 차가운 집중력만이 존재했다. 지호는 그런 강윤의 모습이 낯설고 두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전적으로 의지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했다. 예전의 다정하고 인간적이었던 친구는 사라졌지만, 지금의 그는 그 누구보다 강하고 믿음직스러운 전략가였다. 지호는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생존을 위해, 감정을 버린 이 냉혹한 친구에게 모든 것을 걸기로 했다. 그의 선택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절박한 결단이었다.
"지호야."
계획을 모두 세운 후, 강윤이 나직이 불렀다. 그의 시선은 텅 비어 있었지만, 그 속에는 맹렬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
"내일 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감정적으로 행동하면 안 돼. 네 아버지가 어떤 충격적인 사실을 말하더라도, 어떤 감정을 자극하더라도, 흔들리지 마. 네가 감정에 휩쓸리는 순간, 계획은 틀어지고 우리 모두의 목숨은 끝이야. 이건 우리 모두의 목숨이 걸린 일이야. 할 수 있겠어?"
강윤의 텅 빈 눈동자를 마주하며, 지호는 자신의 목에 걸린 아버지의 배신이라는 족쇄를 끊어내듯, 조용하지만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비장했다.
"할 수 있어. 아버지는… 이미 내게 아무것도 아니야. 그저 사람을 죽인… 살인자니까. 내 손으로 모든 걸 끝낼 거야."
텅 빈 마음의 유령과, 피눈물을 삼키고 배신을 결심한 아들. 두 소년의 위태로운 동맹은 그렇게 냉철한 논리 위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에야말로 모든 비극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한, 그들의 마지막 싸움이 될 터였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알지 못했다. 강윤이 감정을 버린 선택이, 표진석의 예상을 뛰어넘는 새로운 변수가 될 것이며, 결국 어떤 예상치 못한,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대가를 불러오게 될지를. 그의 유령 같은 갑옷은 그를 보호했지만, 그 안에는 인간적인 희생마저도 기꺼이 감수하는 냉혹한 논리가 숨겨져 있었다. 그의 감정 없는 복수는 과연 정의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이 될 뿐일까? 새벽의 어둠 속에서, 새로운 운명의 서막이 조용히 열리고 있었다.
강윤의 목소리는 서늘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단어 하나하나가 마치 얼음 조각처럼 차가운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그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의 바닥조차도 그의 존재감 아래 얼어붙게 만들 만큼, 그의 내면은 완벽하게 냉각되어 있었다. 그의 계획은 단순하면서도 잔혹했다. 표진석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부터, 그가 가장 의지하는 것까지, 모든 것을 부숴버리는 것. 모든 것을 파괴하여 표진석의 제국을 뿌리째 흔들고, 결국에는 그의 존재 자체를 소멸시키는 것. 그것이 강윤의 새로운 목적이었다.
강윤은 텅 빈 눈으로 창밖 거리를 바라보았다. 아침을 맞이하는 도시의 소음은 이전과 다름없이 활기찼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자동차 경적 소리,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 세상은 수많은 소리로 가득했지만, 그의 귀에는 그저 의미 없는 소음의 나열로 들릴 뿐이었다. 아름다운 색채와 생동감으로 가득했던 풍경은 그에게 무미건조한 픽셀의 조합에 불과했다.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었다. 그는 마치 잘 만들어진 연극 무대 위를 걷는, 감정 없는 유령 같았다. 세상은 살아 움직였지만, 그는 그 세상에서 완전히 분리된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놀라울 정도로 차갑고 명료했다. 슬픔, 분노, 두려움 같은 감정들이 사라지자, 그의 두뇌는 마치 슈퍼컴퓨터처럼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두 번의 실패를 완벽하게 복기하고, 수많은 경우의 수를 시뮬레이션했다. 과거의 감정적인 반응이 불러온 오류, 예측하지 못한 변수로 인한 계획의 차질, 그리고 표진석의 교활한 심리전까지. 모든 데이터를 냉철하게 분석하며 최적의 경로를 찾아나갔다.
첫 번째 실패는 정보 부족과 감정적인 대응으로 인한 패배였다. 부모님을 살리고자 하는 순수한 열망이 오히려 그의 눈을 가렸고, 섣부른 행동은 표진석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결과를 낳았다. 두 번째 실패는 이전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남아있던 미련과 감정이 예측치 못한 표진석의 대응에 발목을 잡았다. 계획은 차질을 빚었고, 결국 똑같은 비극을 반복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세 번째 기회에서는 이 모든 실패 요인을 완벽하게 배제해야 했다. 감정은 판단을 흐리게 한다. 이제 남은 것은 냉철한 이성과 완벽한 계획뿐이었다. 모든 감정의 찌꺼기를 말끔히 지워내야 했다.
그는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감정은 없었지만, 목표는 있었다. 표진석을 '소멸시킨다'는 것. 그것은 이제 무엇 때문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부모님을 위한 복수도, 정의를 위한 싸움도 아니었다. 그것은 이 지독한 시간의 반복을 끝내기 위한, 유일한 과제이자 존재 이유였다. 마치 반드시 클리어해야 할 게임의 마지막 퀘스트처럼, 그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유일한 논리적 명제였다. 그의 내면에는 어떤 주저함도, 어떤 망설임도 없었다. 오직 표진석이라는 이름, 그 자체를 없애겠다는 순수한 의지만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서 있었다.
강윤은 망설임 없이 지호의 차량 앞으로 다가섰다. 차량 안에서 초조하게 그를 기다리던 지호는 강윤의 모습을 보자마자 안도감과 함께 깊은 걱정을 내비쳤다. 자신의 아버지가 저지른 일에 대한 미안함과, 강윤이 겪었을 고통에 대한 죄책감이 그의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야, 너 괜찮아..? 얼마나 걱정했는데.. 밤새 연락도 안 되고.. 진짜 죽는 줄 알았잖아. 힘들고 괴로우면 나한테 기대도 돼, 강윤아.."
지호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걱정과 함께 오랜 친구에 대한 애틋함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강윤에게는 더 이상 그런 감정적인 호소가 통하지 않았다. 그는 지호를 자신의 계획에 편입시켜야 할 중요한 변수, 즉 전략적인 도구로 인식했다. 친구로서의 유대감이나 과거의 추억은 이제 그의 의사결정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지호야. 나랑 같이 갈 데가 있어. 네 인생이 걸린 문제야."
강윤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그의 눈빛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 깊고 공허했다. 그 눈동자에는 지호에 대한 어떠한 감정적인 동요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지호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방금 전 사건 이후 완전히 다른 사람, 마치 차가운 기계의 영혼을 이식받은 듯한 친구의 모습에, 그는 알 수 없는 위압감과 본능적인 공포를 느꼈다. 평소의 강윤과는 너무나도 다른, 마치 낯선 존재를 마주한 것 같은 이질감이었다.
강윤은 지호를 인적이 드문 한적한 폐건물로 데려왔다. 허름하고 낡은 건물 내부는 스산한 분위기를 풍겼지만, 강윤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군더더기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감정을 건너뛰고 증거부터 제시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임을 알고 있었다. 감정적인 설득은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
"이게 뭔데? 너 왜 나를 이런 곳으로 데려온 거야?"
지호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폐건물의 으스스한 분위기와 강윤의 변해버린 모습이 그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강윤은 지호의 불안을 전혀 읽지 못했다. 혹은 읽었더라도 개의치 않았다. 그는 자신이 어둠 속에서 밤을 새워 해킹하고 분석한 자료들을 준비한 노트북을 펼쳤다. 화면에서 새어 나오는 푸른빛이 그의 무표정한 얼굴을 비췄다.
"네 아버지, 표진석 박사에 대한 모든 것이다."
화면에는 일반인의 눈으로는 해독 불가능한 암호화된 파일들이 펼쳐졌다. 강윤은 감정이 사라진 상태에서 얻은 경이로운 해킹 능력을 이용해, 일반인은 접근할 수 없는 정부 데이터베이스와 국제 금융망까지 뚫어 정보를 긁어모은 것이었다. 그의 능력은 단순히 물리적인 염력을 넘어, 정보와 데이터의 흐름까지 제어하는 수준으로 진화한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네오젠 연구소의 연구원이셨어. 그리고 네 아버지도. 17년 전, 연구소 화재로 공식적으로는 사망 처리됐지. 하지만 그들은 네 아버지 덕분에 겨우 살아남았어. 그리고 네 아버지는 그들을 '생체 실험의 재료'로 이용하기 위해 숨겨왔지.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실험체로 감금하고 착취했던 거야."
강윤의 목소리는 어떤 감정도 섞이지 않은 채, 잔혹한 진실을 덤덤하게 읊었다. 마치 역사적 사실을 서술하는 교과서의 한 문장처럼 무미건조했다. 지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의 아버지가, 자신에게는 한없이 다정했던 아버지가 그런 잔혹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건, 네 아버지의 해외 계좌 입출금 내역이야. 화재 사건 직후, 출처를 알 수 없는 거액의 돈이 입금됐고, 그 돈은 지난 17년간, 우리 집 주변의 부동산 매입과 각종 감시 장비 구입에 쓰였어. 너의 아버지는 17년 전부터 우리 가족을 타겟으로 삼고, 모든 것을 계획했던 거야."
강윤은 말을 멈추고, 지호가 자신에게 선물했던 스마트 워치와 똑같은 모델을 꺼내 분해했다. 워치 내부에서 꺼낸 것은 작은 먼지보다도 작은, 초소형 도청 및 추적 장치였다. 육안으로도 겨우 식별할 수 있는 극미세한 부품이었다.
"네 아버지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전체를 감시하고 있었어. 심지어 나를 관찰하기 위해 너를 이용했지. 네가 나에게 선물한 모든 것들이 감시 장치였으니까. 이 워치도, 네가 사줬던 펜도, 심지어 내 방에 있던 작은 스피커도."
지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막연한 의심이나 불안감이 아니라, 차가운 증거가 되어 눈앞에 펼쳐지자 그는 숨을 쉴 수 없었다. 목구멍이 꽉 막힌 듯 답답했다.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그의 귓속에서 울렸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모든 순간들이, 사실은 치밀한 감시와 계획의 일부였다는 잔혹한 진실이 그를 덮쳤다.
"왜… 왜 나한테 이런 걸 보여주는 거야? 왜… 내 아버지에 대한… 이런 말도 안 되는 증거를…"
지호는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그의 눈은 충격과 혼란, 그리고 깊은 배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시선은 강윤의 얼굴과 노트북 화면을 오가며 혼란스러워했다.
"네 도움이 필요하니까."
강윤은 천천히 손을 들어, 책상 위의 낡은 연필을 향해 손짓했다. 푸른빛의 미세한 에너지가 그의 손가락 끝에서 새어 나왔고, 연필은 공중으로 부드럽게 떠올랐다.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연필은 마치 깃털처럼 가볍게 허공을 유영했다.
"네 아버지의 목표는 '초능력 인간'을 만드는 거야. 그리고 나는, 그의 첫 번째 성공작이지. 이제 내가 각성했으니, 이런 나를 보면 제거하려 들 거야. 내 힘이 방해가 될 테니까. 그리고 나보다 더 순종적일 널, 지금까지 연구한 걸로 나처럼 만들려 하겠지. 너 역시 그의 실험체가 될 운명이야. '프로젝트 초월자(JIHO)'라는 이름으로."
지호는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비현실적인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친구가 초능력을 제대로 각성했다는 충격보다, 아버지가 자신을 이용했고 다음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다는 배신감이 그를 짓눌렀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보여줬던 모든 다정함과 사랑이 가면이었단 말인가? 그의 아버지가, 그 누구보다 믿고 따랐던 아버지가 자신을 그저 도구로 보았다는 사실이 그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듯했다.
"이제 믿겠어?"
강윤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 그의 눈은 지호의 미세한 표정 변화 하나 놓치지 않고 분석하고 있었다.
"내일 밤, 모든 것을 끝낼 거야. 네 아버지를 막고, 그 배후에 있는 모든 것을 세상에 드러낼 거야. 그러기 위해선 네가 필요해. 네가 가진 아버지의 성격과 네오젠 연구소의 내부 정보, 그리고 네가 그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테니까. 네가 없으면 이 계획은 성공할 수 없어."
강윤은 지호에게 감정이 아닌, 냉혹한 현실과 논리로 선택을 강요했다. 모든 것은 숫자로, 전략으로, 그리고 필요성으로 환원되었다.
"어떻게 할래? 나와 함께 싸울 거야, 아니면 여기서 모르는 척하고… 너에게 진행시킬 생체실험을 기다릴 거야? 선택은 네 몫이야. 하지만 시간은 많지 않아."
지호는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떨고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 친구의 충격적인 비밀, 그리고 자신에게 닥쳐올 생체실험이라는 끔찍한 위협. 그 모든 것이 그의 머릿속에서 뒤엉켜 폭풍우를 일으켰다.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잔혹한 진실들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눈에는 이전과는 다른, 단단한 결의와 처절한 슬픔이 서려 있었다. 그는 이미 아버지라는 존재를 자신의 인생에서 잘라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이제 차가운 배신감과 증오로 변해버렸다.
"……내가 뭘 하면 돼?"
지호의 대답은 나직했지만, 단호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미약한 떨림이 남아 있었지만, 결의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친구의 냉혹한 논리에 동의했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기로 결심했다.
그날 밤, 강윤의 방은 전쟁을 앞둔 지휘 본부와도 같았다. 두 소년은 머리를 맞대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다. 벽에는 네오젠 연구소의 도면과 태주전자의 물류 창고 지도, 그리고 표진석의 이동 경로 예상도가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아버지는 절대 감정적으로 움직이지 않아. 항상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여러 개의 함정을 파놓는 사람이야. 우리가 연구소에 잠입할 거라는 것까지 예상하고 있을지도 몰라. 그는 늘 한 수 위를 내다보는 사람이야."
지호가 아버지의 성격을 분석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망설임이 없었다. 그는 아버지를 '적'으로 규정했고, 그의 심리를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
"알아. 그래서 이번엔 우리가 먼저 함정을 팔 거야. 표진석이 예상하는 모든 수를 역이용해서."
강윤은 동네 지도를 펼쳤다. 그의 손가락은 네오젠 연구소와 특정 물류 창고를 오갔다. 두 장소 사이의 전략적인 거리가 그의 머릿속에서 치밀하게 계산되고 있었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네 아버지가 예상하는 네오젠 연구소가 아니야. 진짜 목표는 따로 있어. 연구소는 그냥 미끼일 뿐이야. 우리는 표진석의 눈을 완전히 속여야 해."
그의 계획은 대담하고 위험했다. 이전의 실패를 거울삼아, 그는 표진석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새로운 판을 짜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수비수가 아니었다. 그는 먼저 공격하는 공격수, 사냥꾼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의 눈빛은 맹렬한 광채를 뿜어냈다.
계획을 세우는 내내, 강윤은 단 한 번도 웃거나, 불안해하거나, 초조해하지 않았다. 그는 오직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정교한 기계 같았다. 그의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고, 오직 차가운 집중력만이 존재했다. 지호는 그런 강윤의 모습이 낯설고 두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전적으로 의지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했다. 예전의 다정하고 인간적이었던 친구는 사라졌지만, 지금의 그는 그 누구보다 강하고 믿음직스러운 전략가였다. 지호는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생존을 위해, 감정을 버린 이 냉혹한 친구에게 모든 것을 걸기로 했다. 그의 선택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절박한 결단이었다.
"지호야."
계획을 모두 세운 후, 강윤이 나직이 불렀다. 그의 시선은 텅 비어 있었지만, 그 속에는 맹렬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
"내일 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감정적으로 행동하면 안 돼. 네 아버지가 어떤 충격적인 사실을 말하더라도, 어떤 감정을 자극하더라도, 흔들리지 마. 네가 감정에 휩쓸리는 순간, 계획은 틀어지고 우리 모두의 목숨은 끝이야. 이건 우리 모두의 목숨이 걸린 일이야. 할 수 있겠어?"
강윤의 텅 빈 눈동자를 마주하며, 지호는 자신의 목에 걸린 아버지의 배신이라는 족쇄를 끊어내듯, 조용하지만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비장했다.
"할 수 있어. 아버지는… 이미 내게 아무것도 아니야. 그저 사람을 죽인… 살인자니까. 내 손으로 모든 걸 끝낼 거야."
텅 빈 마음의 유령과, 피눈물을 삼키고 배신을 결심한 아들. 두 소년의 위태로운 동맹은 그렇게 냉철한 논리 위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에야말로 모든 비극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한, 그들의 마지막 싸움이 될 터였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알지 못했다. 강윤이 감정을 버린 선택이, 표진석의 예상을 뛰어넘는 새로운 변수가 될 것이며, 결국 어떤 예상치 못한,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대가를 불러오게 될지를. 그의 유령 같은 갑옷은 그를 보호했지만, 그 안에는 인간적인 희생마저도 기꺼이 감수하는 냉혹한 논리가 숨겨져 있었다. 그의 감정 없는 복수는 과연 정의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이 될 뿐일까? 새벽의 어둠 속에서, 새로운 운명의 서막이 조용히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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