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화
조회 : 74 추천 : 0 글자수 : 1.2만 자 2025-12-18
제19화
저녁 8시. 강윤의 방.
차가운 달빛이 창문을 넘어 강윤의 방을 길게 비췄다. 방 안의 공기는 싸늘했고, 어둠은 짙었다. 오늘 밤은 그의 부모님이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지 정확히 세 번째로 맞이하는 밤이었다. 강윤의 심장은 더 이상 슬픔을 알지 못했다. 좌절감? 무력감? 그런 감정들은 이미 오래전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 그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오직 단 하나, 표진석을 파멸시키고 이 지긋지긋한 시간의 고리를 끊어내겠다는 냉혹한 논리뿐이었다. 그의 눈빛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처럼 텅 비어 있었지만, 그 공허함이야말로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강렬한 의지의 반영이었다.
강윤은 손안에 든 금속 장치, '염력 증폭 및 위치 교란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장치 표면을 스치는 그의 엄지손가락에는 아무런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차갑고 매끄러운 금속의 감촉만이 그의 손끝에 전달될 뿐이었다. 그의 초점 없는 시선은 마치 미래의 운명을 꿰뚫어 보는 예언자의 눈처럼 느껴졌다. 모든 감각은 오직 하나의 목적에 봉사하고 있었다.
"지호야. 시간이 없어. 이미 모든 건 끝났어. 이제 되돌릴 수도 없어. 이 반복되는 지옥을 끊어낼 유일한 방법은… 오직 표진석을 제거하는 것뿐이야."
강윤의 목소리는 얇게 벼려진 칼날처럼 차갑고 날카로웠다. 금속이 부딪히는 듯한 건조한 음성이었다. 그 소리에는 어떤 인간적인 온기도 담겨 있지 않았다. 지호는 그 목소리에서 예전 친구의 흔적을 찾으려 했지만, 허사였다.
"이제 남은 건… 복수와 증거 확보뿐이야. 표진석을 끝장내야만 이 지옥 같은 반복을 멈출 수 있어."
강윤은 눈을 들어 어두운 방 천장을 응시했다. 마치 그곳에 표진석의 얼굴이라도 떠 있는 듯, 그의 시선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의 머릿속은 오직 표진석의 모든 움직임을 예측하고, 그를 덫에 가두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우리의 계획은 역함정이다. 표진석은 우리가 자신의 모든 패를 읽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거야. 그는 우리의 움직임을 모두 예측하려 들겠지만, 우리는 그의 예상을 한 발 앞서 나갈 거야."
강윤은 앞에 놓인 태블릿 화면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화면에는 복잡한 다이어그램과 함께 '역함정 계획 재확인: 복수에 집중'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떠 있었다. 세부적인 작전 내용이 그의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시뮬레이션되고 있었다.
[역함정 계획 재확인: 복수에 집중]
미끼 정보 투입 (지호의 역할): 지호는 아버지에게 접근하여, '강윤이 자신의 각성 능력을 통제하기 위해 네오젠 연구소의 지하 3층 코어 통제실을 파괴하려 한다'*ㅣ는 거짓 정보를 흘린다. 강윤의 '초능력 통제'라는 키워드는 표진석의 통제 욕구를 자극한다. 표진석은 강윤의 힘을 파괴하는 대신, 생포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할 것이다. 지호는 이 과정에서 표진석의 주의를 코어 통제실로 집중시키고, 동시에 강윤이 단순한 파괴자가 아닌 '자신을 통제하려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줄 것이다.
경로 위장 및 유도 (강윤의 역할): 강윤은 염력 증폭기를 이용해 네오젠 연구소 주변 통신망에 염력 교란 신호를 일으켜, 자신이 '네오젠 연구소로 침입을 시도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이 신호는 표진석의 감시망에 노출되어 그가 모든 병력을 네오젠에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이 교란 신호는 단순한 위치 위장이 아닌, 강윤의 능력이 폭주하여 통제 불능 상태임을 암시하는 듯한 불규칙한 패턴을 보일 것이다.
진짜 목표 공격: 표진석의 모든 방어 체계가 네오젠으로 집중된 틈을 타, 강윤과 지호는 표진석의 '진짜 비밀 거점'인 태주전자 제3 물류 창고 지하 실험실을 공격하여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한다. 그곳에 모든 진실이 잠들어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호의 생체 정보가 최후의 관문을 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아버지는 이 시간쯤이면, 이미 모든 증거를 인멸하고 있을 거야. 자신의 모든 추악한 비밀을 감추려고 발버둥 치겠지. 네오젠 연구소는 함정이야. 미끼라고. 물류 창고에 모든 게 있어. 진짜 비밀은 그곳에 숨겨져 있을 거야. 17년간의 모든 기록과, 아직 끝나지 않은 그의 비인간적인 연구들."
강윤은 태블릿을 내려놓고 지호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어떤 감정도 담고 있지 않았지만, 그 무감정한 시선 자체가 강렬한 무게감을 지니고 있었다. 지호는 그 시선 앞에서 마치 벌거벗은 듯한 기분을 느꼈다. 강윤은 그에게 감정적인 위로를 건네지 않았다. 오직 냉정한 사실만을 전달했다.
"우리의 유일한 목표는, 네 아버지를 파멸시킬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는 거야. 이 계획에 실패는 없어. 실패는... 곧 죽음이니까. 그리고 또 다른 반복된 비극을 의미하겠지. 그때는 아무도 살릴 수 없을 거야."
지호는 손에 든 무전기를 꽉 쥐었다. 그의 손바닥에는 땀이 흥건했다. 부모님을 잃고 감정조차 소실된 친구의 냉혹한 모습. 그리고 자신이 아버지를 배신해야만 하는 잔혹한 현실. 이 모든 것이 지호를 고통스럽게 짓눌렀다. 그의 심장은 고통과 결의 사이에서 요동쳤다. 하지만 강윤의 논리가 곧 유일한 진실임을, 그 역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탈출구는 강윤의 계획에 동참하는 것뿐이었다. 자신을 실험체로 만들려는 아버지의 계획을 알게 된 이상, 그는 더 이상 주저할 수 없었다.
"내가... 내가 아버지를 속일게. 그게 나에게 남겨진 유일한 역할이라면, 망설이지 않아."
지호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그 속에는 단단한 결의가 엿보였다. 그 떨림은 두려움이 아닌, 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연민을 끊어내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그의 눈빛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이제 아버지도 나한테... 그저 살인자일 뿐이니까. 나와 강윤의 가족을 파멸시킨 살인자이자, 자신의 아들마저 도구로 이용하려는 괴물."
지호는 이를 악물었다. 그의 눈에는 희미하게 맺힌 눈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았지만, 그는 억지로 감정을 억눌렀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증오, 배신감과 죄책감이 뒤섞여 그의 심장을 난도질하는 듯했다. 그는 지금부터 완벽한 연기를 펼쳐야 했다. 자신을 위한, 그리고 강윤을 위한, 그리고 죽은 이들을 위한 연기를. 그의 연기는 완벽해야만 했다.
표진석의 서재. 어둠 속의 조종자.
서재 문 앞에 선 지호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의 심장은 마치 전쟁 북소리처럼 격렬하게 울렸다. 지금부터 벌어질 모든 일은 그의 연기에 달려 있었다. 표진석은 이 시각, 이미 강윤의 부모를 제거하고 강윤의 행방을 쫓고 있었다. 그의 모니터에는 강윤의 예상 경로와 병력 배치도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그의 눈은 탐욕과 광기로 번득였다. 지호는 떨리는 손으로 문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문을 열었다. 서재 안은 차가운 푸른빛으로 가득했고, 표진석의 얼굴은 그 빛 아래 섬뜩하게 일렁였다.
"아버지..."
지호의 목소리는 애써 연기했지만, 미세하게 떨림이 섞여 있었다. 마치 공포에 질린 아들의 모습처럼 보이도록 연기했다. 그의 얼굴에는 불안과 함께 절박함이 역력했다. 표진석은 서재 한가운데 놓인 대형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모니터 화면에는 네오젠 연구소의 복잡한 구조도와 함께 수많은 병력 배치도가 실시간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눈은 탐욕과 광기로 번득였다.
"지호냐. 무슨 일이지? 내가 지금 강윤 그놈을 잡으려던 참인데. 밤늦게까지 웬일이야. 뭔가 급한 일이라도 있는 건가?"
표진석은 고개를 돌려 지호를 바라봤다. 그의 시선은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 같았다. 그의 얼굴에는 강윤을 잡으려는 집착과 함께 어딘가 모를 흥분이 서려 있었다. 지호는 그 시선 속에서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가면을 꿰뚫어 보았다.
"강윤이... 강윤이가 미친 것 같아요, 아버지. 자신의 힘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어요. 마치 폭주하는 기계 같아요. 온몸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고, 주변의 모든 것이 뒤틀려요. 그는 완전히 이성을 잃었어요!"
지호는 목소리를 일부러 더 떨며 다급하게 말했다. 그의 눈빛은 혼란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것처럼 보였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을 완벽하게 연출해야 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마치 강윤의 폭주를 직접 목격한 듯한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통제하지 못해? 그래서?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그 녀석의 힘은 반드시 내 통제 아래 들어와야 할 것인데."
표진석의 눈이 번뜩였다. '통제'라는 단어는 그의 가장 깊은 욕망을 자극하는 키워드였다. 그는 모든 것을 통제하려 들었고, 통제되지 않는 존재를 가장 위험하게 여겼다. 강윤의 '초능력'과 '통제 불능'이라는 조합은 표진석의 광기 어린 집착을 한순간에 불태웠다. 통제 불능 상태의 초능력자 강윤은 그에게 '궁극의 연구 대상'이자 '새로운 인류의 표본'이었다. 그를 통제하고 분석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그의 최종 목표였다. 그는 강윤의 힘을 파괴하는 대신, 생포하여 그 힘을 역으로 이용할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강윤이... 오늘 밤 네오젠 연구소로 가려고 해요. 지하 3층의 코어 통제실을 파괴하면, 자신의 힘도 사라질 거라고 믿는 것 같아요. 아버지가 강윤이를 막아야 해요! 강윤이가 스스로를 파괴하게 놔두시면 안 돼요! 아버지가 그를 '연구용'으로 확보해야 해요! 그의 힘을 세상에서 지워버리게 놔두지 마세요! 그건 인류의 미래를 위한 아버지의 연구에 엄청난 손실이 될 거예요!"
지호는 격정적으로 호소했다. 그의 말은 표진석의 약점을 정확히 꿰뚫었다. 코어 통제실은 그의 핵심 연구 자료가 담긴 중요한 곳이었지만, 그보다 강윤의 '초능력'이 사라질 위협이 표진석에게는 훨씬 더 중대한 문제였다. 강윤의 힘이 사라지는 것은 표진석의 오랜 염원과 연구를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호는 아버지의 광기 어린 집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좋다. 네가 병력 배치를 도맡아라. 코어 통제실을 완벽하게 봉쇄해. 단 한 마리의 개미 새끼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 놈이 코어 통제실에 접근하는 모든 경로를 차단해."
표진석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번졌다. 그의 눈은 탐욕과 잔혹함으로 빛났다. 그는 이미 강윤의 손에 들어올 운명을 확신하는 듯했다.
"놈이 들어오는 순간, 제압해서 생포한다. 파괴하려는 것을 막아라! 그 힘은 반드시 내 손에 들어와야 해. 절대 놈을 죽여서는 안 돼. 살아있는 상태로 내게 데려와. 그에게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더 많은 비밀이 있을 테니."
"예, 아버지."
지호는 순종적으로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의 얼굴은 어둠 속에 가려져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그의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었고, 속으로는 아버지에 대한 혐오감에 치를 떨고 있었다. 그의 연기는 완벽했다. 표진석은 아들의 연기를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받아들였다.
역습의 시작. 미끼는 던져졌다.
지호는 서재를 나오자마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심장은 격렬하게 요동쳤다. 이제 되돌릴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는 주머니에서 무전기를 꺼내 강윤에게 연락했다. 그의 손은 떨렸지만, 목소리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강윤아, 성공. 네오젠 지하 3층 코어 통제실에 병력 집중 시작합니다. 표진석은 코어 통제실을 중심으로 모든 병력을 배치할 겁니다. 지금 바로 통신망 교란 신호 넣어주세요."
지호의 신호를 받은 강윤은 곧바로 염력 증폭기를 작동시켰다. 그의 손에 든 장치에서 강력한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며 주변 공기를 진동시켰다. 그 빛은 네오젠 연구소 주변의 통신망에 염력 파동을 넣어, 강윤이 네오젠 연구소로 맹렬히 돌격하는 듯한 허상 신호를 만들어냈다. 마치 강윤 자신이 직접 침입하는 것처럼 모든 감지 시스템을 속이는 완벽한 위장이었다. 연구소의 모든 보안 시스템은 강윤의 허상 신호에 반응하며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교란 신호는 단순한 위치 위장을 넘어, 강윤의 능력이 폭주하여 통제 불능 상태임을 암시하는 듯한 불규칙한 패턴을 보였다.
표진석은 자신의 모니터를 보며 확신했다. 화면에는 강윤의 신호가 네오젠 연구소 지하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붉은 점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붉은 점은 지하 3층 코어 통제실로 향하는 복도를 따라 이동하며,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음을 암시하는 듯했다. 모든 감시망이 강윤의 '폭주'에 집중되었다.
"놈은 스스로를 파괴하려 하는군. 바보 같은 놈! 감정은 소실되었지만, 자신의 힘을 두려워하는 나약함은 남아있군. 내 손에 들어올 운명이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군. 아니, 어쩌면 그 공포심마저도 내가 심어준 감정의 잔재일지도."
표진석은 비웃으며 중얼거렸다. 그의 눈에는 이미 강윤이 자신의 손에 잡힌 실험체나 다름없었다. 그는 강윤의 폭주를 막고, 그의 능력을 완전히 흡수할 생각에 흥분하고 있었다. 그는 강윤의 모든 행동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병력! 통제실 방어에 집중! 놈의 자폭을 막아라! 그 힘은 내 것이다!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놈을 생포해! 누구도 놈에게 총을 쏴서는 안 된다. 오직 제압만을 목표로 해!"
표진석은 네오젠 연구소의 방어 체계를 최고 수준으로 올리고, 무장 병력들을 모두 지하 3층 코어 통제실로 집중시켰다. 연구소의 모든 보안 시스템은 지하 3층으로 향하는 강윤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연구소 전체가 비상 경보음으로 가득 찼고, 병력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네오젠 연구소는 이제 텅 빈 미끼가 되었다. 강윤의 복수를 위한 완벽한 위장이자, 표진석을 속이기 위한 거대한 함정이었다. 강윤과 지호가 던진 미끼를 표진석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덥석 문 것이다.
진짜 목표. 비극의 증거.
연구소의 모든 보안과 병력이 지하로 집중된 순간, 강윤과 지호는 미리 준비해둔 차량을 타고 태주전자의 제3 물류 창고로 전속력으로 달렸다. 밤의 어둠 속을 가로지르는 차량의 헤드라이트 불빛만이 그들의 맹렬한 의지를 반영하는 듯했다. 그들은 마치 어둠 속의 두 개의 유령처럼, 표진석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저기야. 네 아버지가 17년 동안 숨긴 **'비극의 증거'**가 있는 곳. 이 모든 비극의 시작과 끝이 저곳에 담겨 있을 거야. 우리가 찾던 모든 진실이."
강윤이 굳게 닫힌 물류 창고의 거대한 철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제 복수의 칼날이 서려 있었다. 그의 시선은 철문 너머의 어둠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물류 창고에 도착했을 때, 지하 비밀 실험실로 통하는 입구에는 표진석의 지문과 홍채 인식 없이는 열 수 없는 강철의 마지막 관문이 있었다. 두터운 강철 문은 육중한 위압감을 뿜어내며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문 위에는 첨단 센서들이 번득이며 침입자를 감시하고 있었다. 보안은 삼엄했지만, 그들의 치밀한 계획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네 아버지가 가장 신뢰하는 생체 정보. 그리고 너의 생체 정보만이 이걸 열 수 있어. 아들이라는 특권이지. 네 아버지의 가장 큰 약점이 될 거야."
강윤은 지호에게 복제된 사원증을 건넸다. 사원증 안에는 강윤이 밤새워 해킹하여 만든 지호의 생체 정보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이것 또한 강윤의 놀라운 해킹 능력의 결과였다.
지호는 복제된 사원증을 인식기에 갖다 대고 자신의 지문과 홍채를 인식시켰다. 그의 손은 미세하게 떨렸지만, 더 이상 주저함은 없었다. 복수에 대한 결의가 그의 모든 불안감을 억눌렀다.
[지문 인식 성공. 홍채 인식 성공. 보조 키 인증: 아들 (JIHO). 잠금 해제.]
기계음이 울려 퍼지자 육중한 강철 문이 굉음을 내며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는 소리는 마치 지옥의 문이 열리는 듯 섬뜩하게 울렸다. 지호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의 심장이 터질 듯이 격렬하게 뛰었다. 아버지의 사랑이 아닌, 자신을 향한 실험 계획의 흔적을 이제 그의 손으로 열어야 했다. 그의 눈에는 이미 증오만이 가득했다.
"강윤아! 열렸어! 들어가자!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어! 아버지가 눈치채기 전에 모든 걸 끝내야 해!"
지호는 숨죽이며 외쳤다. 그의 목소리는 분노와 흥분으로 갈라졌다. 그는 이제 모든 것을 끝내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강윤과 지호가 문 안으로 들어선 순간, 뒤편의 강철 문은 다시 한번 육중한 굉음을 내며 굳게 닫혔다.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문은 완벽하게 봉쇄되었다. 그들은 이제 표진석을 파멸시킬 유일한 증거를 찾기 위해, 복수의 최전선으로 진입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그들은 스스로 함정 속으로 걸어 들어간 것이었다.
지하 비밀 실험실. 진실의 심장부.
지하 실험실은 소름 끼치는 분위기였다. 차가운 금속과 약품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고, 희미한 조명 아래로 각종 첨단 장비들이 마치 해골처럼 늘어서 있었다. 실험대 위에는 정체불명의 액체가 담긴 유리병들이 놓여 있었고, 벽면에는 복잡한 수식과 인체 해부도가 그려져 있었다. 중앙 서버실에는 표진석의 모든 연구 기록이 담긴 메인 서버와 백업 서버가 거대한 위용을 뽐내며 자리 잡고 있었다. 수많은 전선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고, 서버 팬 돌아가는 소리가 기분 나쁜 저음으로 울려 퍼졌다.
"내가 메인 서버를 해킹해서 자료를 추출할게. 넌 백업 서버의 물리적 데이터 저장 장치를 찾아. 완벽하게 소멸시켜야 해. 단 하나의 흔적도 남기면 안 돼. 재가 될 때까지 부숴버려. 파편 하나 남지 않게."
강윤이 노트북을 꺼내들며 말했다. 그의 손놀림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했다. 그의 눈은 이미 서버의 복잡한 구조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강윤은 노트북을 서버에 연결했지만, 서버의 보안은 예상보다 훨씬 강력했다. 수많은 방화벽과 암호화 시스템이 그의 해킹 시도를 가로막았다. 그는 잠시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손을 서버 본체에 대고 염력을 집중했다. 물리적인 염력이 아닌, 데이터의 논리 구조 자체를 무력화시키려는 시도였다. 그의 각성한 능력은 이제 정보의 세계까지 침범할 수 있었다.
지이이이잉! 콰아앙!
서버실 전체가 강렬한 푸른빛과 함께 진동했다. 마치 번개가 서버를 강타한 듯한 섬광이 번뜩였다. 그 순간, 강윤의 눈앞에 데이터의 흐름이 빛의 강물처럼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수많은 0과 1의 흐름이 그의 시야에 아름다운 패턴으로 펼쳐졌다. 그의 초능력은 이제 물리적인 힘을 넘어, 데이터와 정보의 영역까지 확장된 것이다. 강윤의 눈빛은 푸른빛으로 물들었고, 그의 표정은 경이로움과 함께 섬뜩한 무감정을 동시에 드러냈다. 그는 정보의 바다를 유영하는 듯했다.
강윤은 순식간에 메인 서버의 모든 데이터를 자신의 노트북에 백업했다. 표진석의 인류 개조 계획, 배후 세력과의 은밀한 통신 기록, 그리고... 강윤의 부모님을 이용한 잔혹한 실험 기록까지. 17년 전의 비극적인 진실이 그의 손안에서 고스란히 재구성되고 있었다. 표진석의 모든 죄가 담긴 디지털 증거들이 강윤의 노트북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의 얼굴에는 일말의 만족감도 없었다. 오직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만이 남아있었다.
"지호야! 백업 자료 확보했어! 모든 증거를 얻었다! 이제 네 아버지를 끝장낼 수 있어!"
그 순간, 지호의 날카로운 비명이 서버실을 갈랐다. 그의 목소리에는 충격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강윤아! 여기! '프로젝트 : 초월자(JIHO)' 폴더! 표진석은... 널 제거한 후, 나를 다음 단계의 실험체로 만들 계획이었어! 나 역시 그의 도구일 뿐이었다고! 이 괴물 같은 아버지가!"
지호의 얼굴은 분노와 배신감으로 일그러졌다. 그의 눈은 충격과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백업 서버 깊숙한 곳에서 발견한 데이터 칩을 든 채 부들부들 떨었다. 아버지의 사랑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이, 그저 또 다른 실험 계획의 일부였다는 잔혹한 진실이 그의 심장을 찢어발겼다. 그의 손에 들린 데이터 칩은 그의 아버지의 광기와 배신을 증명하는 차가운 증거였다.
"모든 증거는 확보됐다. 이제 표진석의 심장을 찔러야 해. 그를 완전히 파멸시킬 시간이다. 그의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릴 시간이야."
강윤은 차갑게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손에 들린 노트북은 표진석의 모든 죄를 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굳건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서버실의 조명이 붉은색 비상등으로 바뀌었고, 뒤편의 강철 문에서 육중한 잠금 소리가 '철컥'하고 울려 퍼졌다. 마치 거대한 짐승이 입을 닫는 듯한 섬뜩한 소리였다.
[지하 실험실 잠금 시스템 가동. 침입자는 안에 갇혔습니다.]
섬뜩한 기계음이 서버실을 가득 채웠다. 강윤과 지호는 서로를 바라봤다. 그들의 눈에는 의문과 함께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순조로웠다. 이 모든 것은... 표진석의 계산된 역공이었나? 자신들이 함정을 팠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더 깊은 함정 속으로 걸어 들어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깨달음이 그들을 덮쳤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복도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표진석의 오만하고 광기 어린 목소리였다. 그의 목소리는 지하 실험실의 차가운 공기를 뒤흔들었다.
"축하한다, 아들들. 너희 둘 모두 나의 가장 완벽한 실험체가 될 자격이 있어.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유능했구나. 감히 내게 이런 수를 쓸 줄은 몰랐다."
표진석의 목소리는 조롱과 함께 비릿한 승리감을 담고 있었다. 그의 계획은 이미 완벽하게 실행되고 있었다.
"강윤, 네가 감정을 버린 순간, 나는 네 모든 논리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단다. 너의 행동 패턴과 의사결정 방식은 너무나 명확했지. 네가 나의 모든 것을 예측하려 할수록, 나는 너의 예측을 예측하고 더 깊은 함정을 파는 것이 가능했다. 너는 나를 파멸시키려 했지만, 결국... 스스로 나의 감옥으로 걸어 들어왔지. 네 초월적인 능력도, 결국 내 손아귀에서 놀아났을 뿐이야."
표진석의 비웃음이 스피커를 통해 지하 실험실을 가득 채웠다. 강윤과 지호의 얼굴에 서서히 당혹감과 함께 절망적인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들은 완벽한 복수를 꿈꿨지만, 어쩌면 그들 스스로가 더욱 거대한 함정 속으로 걸어 들어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깨달음이 그들을 덮쳤다. 이 모든 것이 표진석의 계획이었단 말인가? 자신들이 생각했던 역함정이, 사실은 표진석이 파놓은 더 깊은 함정이었단 말인가? 강윤의 무감정한 얼굴에도 미세한 균열이 생기는 듯했다.
지호는 충격에 휩싸여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손에 들린 데이터 칩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모든 것이 아버지의 손바닥 안에서 벌어진 일이었다는 사실이 그를 무너뜨렸다. 강윤은 표진석의 목소리에 일말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오히려 더욱 깊은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는 이미 다음 수를 계산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절망적이었다. 그들의 계획은 완벽했지만, 표진석은 그들의 완벽함을 이미 예측하고 역이용한 것이다.
"하하하! 이제 네오젠 연구소로 가서 네놈의 힘을 회수해야겠구나. 그곳에는 네가 보내준 거짓 신호에 속아 넘어간 병력들이 아직도 널 기다리고 있지. 그리고 여기, 내 진짜 거점에서는 새로운 실험이 시작될 것이다. 나의 두 아들들과 함께!"
표진석의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증폭되어 지하 실험실을 진동시켰다. 붉은 비상등만이 섬뜩하게 깜빡거렸다. 강윤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이제 모든 감정을 넘어선, 차가운 살기가 서려 있었다.
저녁 8시. 강윤의 방.
차가운 달빛이 창문을 넘어 강윤의 방을 길게 비췄다. 방 안의 공기는 싸늘했고, 어둠은 짙었다. 오늘 밤은 그의 부모님이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지 정확히 세 번째로 맞이하는 밤이었다. 강윤의 심장은 더 이상 슬픔을 알지 못했다. 좌절감? 무력감? 그런 감정들은 이미 오래전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 그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오직 단 하나, 표진석을 파멸시키고 이 지긋지긋한 시간의 고리를 끊어내겠다는 냉혹한 논리뿐이었다. 그의 눈빛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처럼 텅 비어 있었지만, 그 공허함이야말로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강렬한 의지의 반영이었다.
강윤은 손안에 든 금속 장치, '염력 증폭 및 위치 교란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장치 표면을 스치는 그의 엄지손가락에는 아무런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차갑고 매끄러운 금속의 감촉만이 그의 손끝에 전달될 뿐이었다. 그의 초점 없는 시선은 마치 미래의 운명을 꿰뚫어 보는 예언자의 눈처럼 느껴졌다. 모든 감각은 오직 하나의 목적에 봉사하고 있었다.
"지호야. 시간이 없어. 이미 모든 건 끝났어. 이제 되돌릴 수도 없어. 이 반복되는 지옥을 끊어낼 유일한 방법은… 오직 표진석을 제거하는 것뿐이야."
강윤의 목소리는 얇게 벼려진 칼날처럼 차갑고 날카로웠다. 금속이 부딪히는 듯한 건조한 음성이었다. 그 소리에는 어떤 인간적인 온기도 담겨 있지 않았다. 지호는 그 목소리에서 예전 친구의 흔적을 찾으려 했지만, 허사였다.
"이제 남은 건… 복수와 증거 확보뿐이야. 표진석을 끝장내야만 이 지옥 같은 반복을 멈출 수 있어."
강윤은 눈을 들어 어두운 방 천장을 응시했다. 마치 그곳에 표진석의 얼굴이라도 떠 있는 듯, 그의 시선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의 머릿속은 오직 표진석의 모든 움직임을 예측하고, 그를 덫에 가두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우리의 계획은 역함정이다. 표진석은 우리가 자신의 모든 패를 읽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거야. 그는 우리의 움직임을 모두 예측하려 들겠지만, 우리는 그의 예상을 한 발 앞서 나갈 거야."
강윤은 앞에 놓인 태블릿 화면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화면에는 복잡한 다이어그램과 함께 '역함정 계획 재확인: 복수에 집중'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떠 있었다. 세부적인 작전 내용이 그의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시뮬레이션되고 있었다.
[역함정 계획 재확인: 복수에 집중]
미끼 정보 투입 (지호의 역할): 지호는 아버지에게 접근하여, '강윤이 자신의 각성 능력을 통제하기 위해 네오젠 연구소의 지하 3층 코어 통제실을 파괴하려 한다'*ㅣ는 거짓 정보를 흘린다. 강윤의 '초능력 통제'라는 키워드는 표진석의 통제 욕구를 자극한다. 표진석은 강윤의 힘을 파괴하는 대신, 생포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할 것이다. 지호는 이 과정에서 표진석의 주의를 코어 통제실로 집중시키고, 동시에 강윤이 단순한 파괴자가 아닌 '자신을 통제하려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줄 것이다.
경로 위장 및 유도 (강윤의 역할): 강윤은 염력 증폭기를 이용해 네오젠 연구소 주변 통신망에 염력 교란 신호를 일으켜, 자신이 '네오젠 연구소로 침입을 시도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이 신호는 표진석의 감시망에 노출되어 그가 모든 병력을 네오젠에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이 교란 신호는 단순한 위치 위장이 아닌, 강윤의 능력이 폭주하여 통제 불능 상태임을 암시하는 듯한 불규칙한 패턴을 보일 것이다.
진짜 목표 공격: 표진석의 모든 방어 체계가 네오젠으로 집중된 틈을 타, 강윤과 지호는 표진석의 '진짜 비밀 거점'인 태주전자 제3 물류 창고 지하 실험실을 공격하여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한다. 그곳에 모든 진실이 잠들어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호의 생체 정보가 최후의 관문을 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아버지는 이 시간쯤이면, 이미 모든 증거를 인멸하고 있을 거야. 자신의 모든 추악한 비밀을 감추려고 발버둥 치겠지. 네오젠 연구소는 함정이야. 미끼라고. 물류 창고에 모든 게 있어. 진짜 비밀은 그곳에 숨겨져 있을 거야. 17년간의 모든 기록과, 아직 끝나지 않은 그의 비인간적인 연구들."
강윤은 태블릿을 내려놓고 지호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어떤 감정도 담고 있지 않았지만, 그 무감정한 시선 자체가 강렬한 무게감을 지니고 있었다. 지호는 그 시선 앞에서 마치 벌거벗은 듯한 기분을 느꼈다. 강윤은 그에게 감정적인 위로를 건네지 않았다. 오직 냉정한 사실만을 전달했다.
"우리의 유일한 목표는, 네 아버지를 파멸시킬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는 거야. 이 계획에 실패는 없어. 실패는... 곧 죽음이니까. 그리고 또 다른 반복된 비극을 의미하겠지. 그때는 아무도 살릴 수 없을 거야."
지호는 손에 든 무전기를 꽉 쥐었다. 그의 손바닥에는 땀이 흥건했다. 부모님을 잃고 감정조차 소실된 친구의 냉혹한 모습. 그리고 자신이 아버지를 배신해야만 하는 잔혹한 현실. 이 모든 것이 지호를 고통스럽게 짓눌렀다. 그의 심장은 고통과 결의 사이에서 요동쳤다. 하지만 강윤의 논리가 곧 유일한 진실임을, 그 역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탈출구는 강윤의 계획에 동참하는 것뿐이었다. 자신을 실험체로 만들려는 아버지의 계획을 알게 된 이상, 그는 더 이상 주저할 수 없었다.
"내가... 내가 아버지를 속일게. 그게 나에게 남겨진 유일한 역할이라면, 망설이지 않아."
지호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그 속에는 단단한 결의가 엿보였다. 그 떨림은 두려움이 아닌, 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연민을 끊어내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그의 눈빛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이제 아버지도 나한테... 그저 살인자일 뿐이니까. 나와 강윤의 가족을 파멸시킨 살인자이자, 자신의 아들마저 도구로 이용하려는 괴물."
지호는 이를 악물었다. 그의 눈에는 희미하게 맺힌 눈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았지만, 그는 억지로 감정을 억눌렀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증오, 배신감과 죄책감이 뒤섞여 그의 심장을 난도질하는 듯했다. 그는 지금부터 완벽한 연기를 펼쳐야 했다. 자신을 위한, 그리고 강윤을 위한, 그리고 죽은 이들을 위한 연기를. 그의 연기는 완벽해야만 했다.
표진석의 서재. 어둠 속의 조종자.
서재 문 앞에 선 지호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의 심장은 마치 전쟁 북소리처럼 격렬하게 울렸다. 지금부터 벌어질 모든 일은 그의 연기에 달려 있었다. 표진석은 이 시각, 이미 강윤의 부모를 제거하고 강윤의 행방을 쫓고 있었다. 그의 모니터에는 강윤의 예상 경로와 병력 배치도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그의 눈은 탐욕과 광기로 번득였다. 지호는 떨리는 손으로 문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문을 열었다. 서재 안은 차가운 푸른빛으로 가득했고, 표진석의 얼굴은 그 빛 아래 섬뜩하게 일렁였다.
"아버지..."
지호의 목소리는 애써 연기했지만, 미세하게 떨림이 섞여 있었다. 마치 공포에 질린 아들의 모습처럼 보이도록 연기했다. 그의 얼굴에는 불안과 함께 절박함이 역력했다. 표진석은 서재 한가운데 놓인 대형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모니터 화면에는 네오젠 연구소의 복잡한 구조도와 함께 수많은 병력 배치도가 실시간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눈은 탐욕과 광기로 번득였다.
"지호냐. 무슨 일이지? 내가 지금 강윤 그놈을 잡으려던 참인데. 밤늦게까지 웬일이야. 뭔가 급한 일이라도 있는 건가?"
표진석은 고개를 돌려 지호를 바라봤다. 그의 시선은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 같았다. 그의 얼굴에는 강윤을 잡으려는 집착과 함께 어딘가 모를 흥분이 서려 있었다. 지호는 그 시선 속에서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가면을 꿰뚫어 보았다.
"강윤이... 강윤이가 미친 것 같아요, 아버지. 자신의 힘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어요. 마치 폭주하는 기계 같아요. 온몸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고, 주변의 모든 것이 뒤틀려요. 그는 완전히 이성을 잃었어요!"
지호는 목소리를 일부러 더 떨며 다급하게 말했다. 그의 눈빛은 혼란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것처럼 보였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을 완벽하게 연출해야 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마치 강윤의 폭주를 직접 목격한 듯한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통제하지 못해? 그래서?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그 녀석의 힘은 반드시 내 통제 아래 들어와야 할 것인데."
표진석의 눈이 번뜩였다. '통제'라는 단어는 그의 가장 깊은 욕망을 자극하는 키워드였다. 그는 모든 것을 통제하려 들었고, 통제되지 않는 존재를 가장 위험하게 여겼다. 강윤의 '초능력'과 '통제 불능'이라는 조합은 표진석의 광기 어린 집착을 한순간에 불태웠다. 통제 불능 상태의 초능력자 강윤은 그에게 '궁극의 연구 대상'이자 '새로운 인류의 표본'이었다. 그를 통제하고 분석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그의 최종 목표였다. 그는 강윤의 힘을 파괴하는 대신, 생포하여 그 힘을 역으로 이용할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강윤이... 오늘 밤 네오젠 연구소로 가려고 해요. 지하 3층의 코어 통제실을 파괴하면, 자신의 힘도 사라질 거라고 믿는 것 같아요. 아버지가 강윤이를 막아야 해요! 강윤이가 스스로를 파괴하게 놔두시면 안 돼요! 아버지가 그를 '연구용'으로 확보해야 해요! 그의 힘을 세상에서 지워버리게 놔두지 마세요! 그건 인류의 미래를 위한 아버지의 연구에 엄청난 손실이 될 거예요!"
지호는 격정적으로 호소했다. 그의 말은 표진석의 약점을 정확히 꿰뚫었다. 코어 통제실은 그의 핵심 연구 자료가 담긴 중요한 곳이었지만, 그보다 강윤의 '초능력'이 사라질 위협이 표진석에게는 훨씬 더 중대한 문제였다. 강윤의 힘이 사라지는 것은 표진석의 오랜 염원과 연구를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호는 아버지의 광기 어린 집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좋다. 네가 병력 배치를 도맡아라. 코어 통제실을 완벽하게 봉쇄해. 단 한 마리의 개미 새끼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 놈이 코어 통제실에 접근하는 모든 경로를 차단해."
표진석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번졌다. 그의 눈은 탐욕과 잔혹함으로 빛났다. 그는 이미 강윤의 손에 들어올 운명을 확신하는 듯했다.
"놈이 들어오는 순간, 제압해서 생포한다. 파괴하려는 것을 막아라! 그 힘은 반드시 내 손에 들어와야 해. 절대 놈을 죽여서는 안 돼. 살아있는 상태로 내게 데려와. 그에게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더 많은 비밀이 있을 테니."
"예, 아버지."
지호는 순종적으로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의 얼굴은 어둠 속에 가려져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그의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었고, 속으로는 아버지에 대한 혐오감에 치를 떨고 있었다. 그의 연기는 완벽했다. 표진석은 아들의 연기를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받아들였다.
역습의 시작. 미끼는 던져졌다.
지호는 서재를 나오자마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심장은 격렬하게 요동쳤다. 이제 되돌릴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는 주머니에서 무전기를 꺼내 강윤에게 연락했다. 그의 손은 떨렸지만, 목소리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강윤아, 성공. 네오젠 지하 3층 코어 통제실에 병력 집중 시작합니다. 표진석은 코어 통제실을 중심으로 모든 병력을 배치할 겁니다. 지금 바로 통신망 교란 신호 넣어주세요."
지호의 신호를 받은 강윤은 곧바로 염력 증폭기를 작동시켰다. 그의 손에 든 장치에서 강력한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며 주변 공기를 진동시켰다. 그 빛은 네오젠 연구소 주변의 통신망에 염력 파동을 넣어, 강윤이 네오젠 연구소로 맹렬히 돌격하는 듯한 허상 신호를 만들어냈다. 마치 강윤 자신이 직접 침입하는 것처럼 모든 감지 시스템을 속이는 완벽한 위장이었다. 연구소의 모든 보안 시스템은 강윤의 허상 신호에 반응하며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교란 신호는 단순한 위치 위장을 넘어, 강윤의 능력이 폭주하여 통제 불능 상태임을 암시하는 듯한 불규칙한 패턴을 보였다.
표진석은 자신의 모니터를 보며 확신했다. 화면에는 강윤의 신호가 네오젠 연구소 지하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붉은 점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붉은 점은 지하 3층 코어 통제실로 향하는 복도를 따라 이동하며,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음을 암시하는 듯했다. 모든 감시망이 강윤의 '폭주'에 집중되었다.
"놈은 스스로를 파괴하려 하는군. 바보 같은 놈! 감정은 소실되었지만, 자신의 힘을 두려워하는 나약함은 남아있군. 내 손에 들어올 운명이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군. 아니, 어쩌면 그 공포심마저도 내가 심어준 감정의 잔재일지도."
표진석은 비웃으며 중얼거렸다. 그의 눈에는 이미 강윤이 자신의 손에 잡힌 실험체나 다름없었다. 그는 강윤의 폭주를 막고, 그의 능력을 완전히 흡수할 생각에 흥분하고 있었다. 그는 강윤의 모든 행동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병력! 통제실 방어에 집중! 놈의 자폭을 막아라! 그 힘은 내 것이다!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놈을 생포해! 누구도 놈에게 총을 쏴서는 안 된다. 오직 제압만을 목표로 해!"
표진석은 네오젠 연구소의 방어 체계를 최고 수준으로 올리고, 무장 병력들을 모두 지하 3층 코어 통제실로 집중시켰다. 연구소의 모든 보안 시스템은 지하 3층으로 향하는 강윤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연구소 전체가 비상 경보음으로 가득 찼고, 병력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네오젠 연구소는 이제 텅 빈 미끼가 되었다. 강윤의 복수를 위한 완벽한 위장이자, 표진석을 속이기 위한 거대한 함정이었다. 강윤과 지호가 던진 미끼를 표진석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덥석 문 것이다.
진짜 목표. 비극의 증거.
연구소의 모든 보안과 병력이 지하로 집중된 순간, 강윤과 지호는 미리 준비해둔 차량을 타고 태주전자의 제3 물류 창고로 전속력으로 달렸다. 밤의 어둠 속을 가로지르는 차량의 헤드라이트 불빛만이 그들의 맹렬한 의지를 반영하는 듯했다. 그들은 마치 어둠 속의 두 개의 유령처럼, 표진석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저기야. 네 아버지가 17년 동안 숨긴 **'비극의 증거'**가 있는 곳. 이 모든 비극의 시작과 끝이 저곳에 담겨 있을 거야. 우리가 찾던 모든 진실이."
강윤이 굳게 닫힌 물류 창고의 거대한 철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제 복수의 칼날이 서려 있었다. 그의 시선은 철문 너머의 어둠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물류 창고에 도착했을 때, 지하 비밀 실험실로 통하는 입구에는 표진석의 지문과 홍채 인식 없이는 열 수 없는 강철의 마지막 관문이 있었다. 두터운 강철 문은 육중한 위압감을 뿜어내며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문 위에는 첨단 센서들이 번득이며 침입자를 감시하고 있었다. 보안은 삼엄했지만, 그들의 치밀한 계획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네 아버지가 가장 신뢰하는 생체 정보. 그리고 너의 생체 정보만이 이걸 열 수 있어. 아들이라는 특권이지. 네 아버지의 가장 큰 약점이 될 거야."
강윤은 지호에게 복제된 사원증을 건넸다. 사원증 안에는 강윤이 밤새워 해킹하여 만든 지호의 생체 정보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이것 또한 강윤의 놀라운 해킹 능력의 결과였다.
지호는 복제된 사원증을 인식기에 갖다 대고 자신의 지문과 홍채를 인식시켰다. 그의 손은 미세하게 떨렸지만, 더 이상 주저함은 없었다. 복수에 대한 결의가 그의 모든 불안감을 억눌렀다.
[지문 인식 성공. 홍채 인식 성공. 보조 키 인증: 아들 (JIHO). 잠금 해제.]
기계음이 울려 퍼지자 육중한 강철 문이 굉음을 내며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는 소리는 마치 지옥의 문이 열리는 듯 섬뜩하게 울렸다. 지호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의 심장이 터질 듯이 격렬하게 뛰었다. 아버지의 사랑이 아닌, 자신을 향한 실험 계획의 흔적을 이제 그의 손으로 열어야 했다. 그의 눈에는 이미 증오만이 가득했다.
"강윤아! 열렸어! 들어가자!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어! 아버지가 눈치채기 전에 모든 걸 끝내야 해!"
지호는 숨죽이며 외쳤다. 그의 목소리는 분노와 흥분으로 갈라졌다. 그는 이제 모든 것을 끝내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강윤과 지호가 문 안으로 들어선 순간, 뒤편의 강철 문은 다시 한번 육중한 굉음을 내며 굳게 닫혔다.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문은 완벽하게 봉쇄되었다. 그들은 이제 표진석을 파멸시킬 유일한 증거를 찾기 위해, 복수의 최전선으로 진입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그들은 스스로 함정 속으로 걸어 들어간 것이었다.
지하 비밀 실험실. 진실의 심장부.
지하 실험실은 소름 끼치는 분위기였다. 차가운 금속과 약품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고, 희미한 조명 아래로 각종 첨단 장비들이 마치 해골처럼 늘어서 있었다. 실험대 위에는 정체불명의 액체가 담긴 유리병들이 놓여 있었고, 벽면에는 복잡한 수식과 인체 해부도가 그려져 있었다. 중앙 서버실에는 표진석의 모든 연구 기록이 담긴 메인 서버와 백업 서버가 거대한 위용을 뽐내며 자리 잡고 있었다. 수많은 전선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고, 서버 팬 돌아가는 소리가 기분 나쁜 저음으로 울려 퍼졌다.
"내가 메인 서버를 해킹해서 자료를 추출할게. 넌 백업 서버의 물리적 데이터 저장 장치를 찾아. 완벽하게 소멸시켜야 해. 단 하나의 흔적도 남기면 안 돼. 재가 될 때까지 부숴버려. 파편 하나 남지 않게."
강윤이 노트북을 꺼내들며 말했다. 그의 손놀림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했다. 그의 눈은 이미 서버의 복잡한 구조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강윤은 노트북을 서버에 연결했지만, 서버의 보안은 예상보다 훨씬 강력했다. 수많은 방화벽과 암호화 시스템이 그의 해킹 시도를 가로막았다. 그는 잠시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손을 서버 본체에 대고 염력을 집중했다. 물리적인 염력이 아닌, 데이터의 논리 구조 자체를 무력화시키려는 시도였다. 그의 각성한 능력은 이제 정보의 세계까지 침범할 수 있었다.
지이이이잉! 콰아앙!
서버실 전체가 강렬한 푸른빛과 함께 진동했다. 마치 번개가 서버를 강타한 듯한 섬광이 번뜩였다. 그 순간, 강윤의 눈앞에 데이터의 흐름이 빛의 강물처럼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수많은 0과 1의 흐름이 그의 시야에 아름다운 패턴으로 펼쳐졌다. 그의 초능력은 이제 물리적인 힘을 넘어, 데이터와 정보의 영역까지 확장된 것이다. 강윤의 눈빛은 푸른빛으로 물들었고, 그의 표정은 경이로움과 함께 섬뜩한 무감정을 동시에 드러냈다. 그는 정보의 바다를 유영하는 듯했다.
강윤은 순식간에 메인 서버의 모든 데이터를 자신의 노트북에 백업했다. 표진석의 인류 개조 계획, 배후 세력과의 은밀한 통신 기록, 그리고... 강윤의 부모님을 이용한 잔혹한 실험 기록까지. 17년 전의 비극적인 진실이 그의 손안에서 고스란히 재구성되고 있었다. 표진석의 모든 죄가 담긴 디지털 증거들이 강윤의 노트북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의 얼굴에는 일말의 만족감도 없었다. 오직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만이 남아있었다.
"지호야! 백업 자료 확보했어! 모든 증거를 얻었다! 이제 네 아버지를 끝장낼 수 있어!"
그 순간, 지호의 날카로운 비명이 서버실을 갈랐다. 그의 목소리에는 충격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강윤아! 여기! '프로젝트 : 초월자(JIHO)' 폴더! 표진석은... 널 제거한 후, 나를 다음 단계의 실험체로 만들 계획이었어! 나 역시 그의 도구일 뿐이었다고! 이 괴물 같은 아버지가!"
지호의 얼굴은 분노와 배신감으로 일그러졌다. 그의 눈은 충격과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백업 서버 깊숙한 곳에서 발견한 데이터 칩을 든 채 부들부들 떨었다. 아버지의 사랑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이, 그저 또 다른 실험 계획의 일부였다는 잔혹한 진실이 그의 심장을 찢어발겼다. 그의 손에 들린 데이터 칩은 그의 아버지의 광기와 배신을 증명하는 차가운 증거였다.
"모든 증거는 확보됐다. 이제 표진석의 심장을 찔러야 해. 그를 완전히 파멸시킬 시간이다. 그의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릴 시간이야."
강윤은 차갑게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손에 들린 노트북은 표진석의 모든 죄를 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굳건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서버실의 조명이 붉은색 비상등으로 바뀌었고, 뒤편의 강철 문에서 육중한 잠금 소리가 '철컥'하고 울려 퍼졌다. 마치 거대한 짐승이 입을 닫는 듯한 섬뜩한 소리였다.
[지하 실험실 잠금 시스템 가동. 침입자는 안에 갇혔습니다.]
섬뜩한 기계음이 서버실을 가득 채웠다. 강윤과 지호는 서로를 바라봤다. 그들의 눈에는 의문과 함께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순조로웠다. 이 모든 것은... 표진석의 계산된 역공이었나? 자신들이 함정을 팠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더 깊은 함정 속으로 걸어 들어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깨달음이 그들을 덮쳤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복도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표진석의 오만하고 광기 어린 목소리였다. 그의 목소리는 지하 실험실의 차가운 공기를 뒤흔들었다.
"축하한다, 아들들. 너희 둘 모두 나의 가장 완벽한 실험체가 될 자격이 있어.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유능했구나. 감히 내게 이런 수를 쓸 줄은 몰랐다."
표진석의 목소리는 조롱과 함께 비릿한 승리감을 담고 있었다. 그의 계획은 이미 완벽하게 실행되고 있었다.
"강윤, 네가 감정을 버린 순간, 나는 네 모든 논리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단다. 너의 행동 패턴과 의사결정 방식은 너무나 명확했지. 네가 나의 모든 것을 예측하려 할수록, 나는 너의 예측을 예측하고 더 깊은 함정을 파는 것이 가능했다. 너는 나를 파멸시키려 했지만, 결국... 스스로 나의 감옥으로 걸어 들어왔지. 네 초월적인 능력도, 결국 내 손아귀에서 놀아났을 뿐이야."
표진석의 비웃음이 스피커를 통해 지하 실험실을 가득 채웠다. 강윤과 지호의 얼굴에 서서히 당혹감과 함께 절망적인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들은 완벽한 복수를 꿈꿨지만, 어쩌면 그들 스스로가 더욱 거대한 함정 속으로 걸어 들어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깨달음이 그들을 덮쳤다. 이 모든 것이 표진석의 계획이었단 말인가? 자신들이 생각했던 역함정이, 사실은 표진석이 파놓은 더 깊은 함정이었단 말인가? 강윤의 무감정한 얼굴에도 미세한 균열이 생기는 듯했다.
지호는 충격에 휩싸여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손에 들린 데이터 칩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모든 것이 아버지의 손바닥 안에서 벌어진 일이었다는 사실이 그를 무너뜨렸다. 강윤은 표진석의 목소리에 일말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오히려 더욱 깊은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는 이미 다음 수를 계산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절망적이었다. 그들의 계획은 완벽했지만, 표진석은 그들의 완벽함을 이미 예측하고 역이용한 것이다.
"하하하! 이제 네오젠 연구소로 가서 네놈의 힘을 회수해야겠구나. 그곳에는 네가 보내준 거짓 신호에 속아 넘어간 병력들이 아직도 널 기다리고 있지. 그리고 여기, 내 진짜 거점에서는 새로운 실험이 시작될 것이다. 나의 두 아들들과 함께!"
표진석의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증폭되어 지하 실험실을 진동시켰다. 붉은 비상등만이 섬뜩하게 깜빡거렸다. 강윤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이제 모든 감정을 넘어선, 차가운 살기가 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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