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7화
조회 : 3 추천 : 0 글자수 : 6,691 자 2025-10-14
제7화
도서관에서의 그날 이후, 차강윤의 삶에는 미묘하지만 분명한 변화가 찾아왔다. 그는 자신의 힘이 누군가를, 한 명의 무고한 친구를 지킬 수 있다는 사실에 전에 없던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갑자기 어른의 무게를 짊어지게 된 듯한, 낯설고 버거운 감정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터져 나오는 힘과 그에 따르는 혹독한 대가(코피와 망치로 머리를 내리치는 듯한 극심한 두통)에 대한 두려움도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그는 자신의 ‘보이지 않는 손’을 더욱 철저하게 숨기려 애썼다. 이제 그의 힘은 단순한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자, 잘못 사용하면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는 위험한 흉기였다.
다솜과는 그저 평범한 반 친구 사이로 지냈다. 그날의 사건 이후 딱히 더 가까워지거나 멀어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강윤은 학교의 모든 평범한 일상 속에서 늘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복도에서 누군가 부딪혀 넘어질 뻔할 때, 급식실에서 친구가 식판을 엎을 뻔할 때마다 저도 모르게 힘을 쓰려는 충동이 일었고, 그는 그것을 억누르기 위해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그 모순적인 상황은 그의 정신을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갉아먹고 있었다.
강윤이 겪는 혼란보다 더 깊고 어두운 수렁에 빠진 것은 표지호였다. 그날, 그는 아버지 표진석에게 강윤과 다솜이 주말에 도서관에 갔던 일에 대해 보고했다. 그는 책이 떨어진 사건을 애써 ‘사서가 책을 잘못 꽂아둔 것 같다’는 식의 우연으로 축소해서 보고했지만, 표진석은 이미 모든 진실을 꿰뚫고 있었다.
“네 보고서는 사실과 다르더구나, 지호야.”
서재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표진석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그는 태블릿 PC를 돌려 지호에게 도서관 CCTV 영상을 보여주었다. 슬로우 모션으로, 심지어 특정 부분을 확대해서 재생되는 영상 속에서, 떨어지는 책의 궤도가 명백한 물리 법칙을 거스르며 부자연스럽게 휘어지는 장면이 선명하게 보였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책을 옆으로 밀어내는 듯한 기묘한 움직임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물리 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차강윤의 염력이 이전보다 훨씬 정교하고 세밀하게 발현된 것이지. ‘위험에 처한 친구’를 보호하려는 강한 감정적 동기가 그의 능력을 한 단계 진화시킨 중요한 터닝 포인트다. 넌 왜 이 중요한 사실을 누락했나? 의도적인가, 아니면 관찰 능력이 부족한 건가?”
지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심장이 차가운 얼음덩이처럼 굳어버리는 기분이었다. 친구를 보호하려던 자신의 작은 노력이, 아버지의 거대하고 촘촘한 감시망 앞에서는 어린아이의 숨바꼭질처럼 하찮고 무의미했다. 아버지는 단순히 결과만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까지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친구를 감싸주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그건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니까. 하지만 그 감정적인 행동이 강윤이를 더 큰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걸 왜 모르지? 만약 저 책이 떨어져 한다솜이 크게 다치기라도 했다면, 강윤이는 그 죄책감에 자신의 힘을 저주하고 통제 불능 상태로 폭주했을지도 모른다. 내 관찰과 통제가 없었다면 이미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수도 있어. 너의 어설픈 동정심이 재앙을 부를 뻔했다고.”
표진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들의 어깨를 잡았다. 그의 손길은 겉보기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담긴 압박은 강철처럼 단단하고 차가웠다. 그는 지호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제부터는 너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강윤이가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그의 감정 변화, 심박수, 대화의 주제, 그리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물리적 현상을 단 하나도 빠짐없이, ‘객관적인 사실’에 기반하여 보고해야 한다. 이것은 명령이다. 강윤이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서.”
그날 이후, 지호에게 내려지는 ‘관찰 미션’은 더욱 집요하고 구체적으로 변했다. 아버지로부터 지급된 최신형 스마트폰에는 그가 모르는 위치 추적 및 도청 기능이 담긴 앱이 설치되었다. 그는 강윤과 나눈 메시지, 통화 내용, 심지어 함께 찍은 사진까지 정기적으로 전송해야 했다. ‘수호천사’라는 그럴듯한 명분은 너덜너덜한 껍데기만 남았고, ‘감시자’ 혹은 ‘스파이’라는 냉혹한 현실만이 그의 목을 졸랐다. 친구와의 모든 즐거운 순간이, 아버지에게 제출해야 할 ‘보고서의 재료’가 되어버렸다.
죄책감은 서서히 퍼지는 독처럼 그의 영혼을 좀먹어 들어갔다. 그는 강윤을 볼 때마다 미안함에 고개를 숙였고, 예전처럼 스스럼없이 장난을 걸거나 시시껄렁한 농담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강윤은 그런 지호의 변화를 어렴풋이 느꼈다. 언제나 유쾌하고 시끄럽던 친구가 눈에 띄게 말수가 줄고, 함께 있을 때도 종종 멍하니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지호야, 너 무슨 일 있어? 요즘 나 피하는 것 같아.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냐?”
어느 날, 하교길에 더 이상 참지 못한 강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야. 무슨… 그냥 공부 때문에 바빠서 그래. 고등학생은 다 이런 거 아니냐.”
지호는 강윤의 진심 어린 눈을 피하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의 손에는 아버지가 준 스마트폰이 차갑게 쥐어져 있었다. 그 순간에도 자신들의 대화가 어딘가로 전송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했다. 강윤은 더 묻지 않았지만, 두 소년 사이에는 처음으로 차갑고 어색한 벽이 생겨나고 있었다. 함께 웃고 떠들면서도, 그들의 마음은 서로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장마가 시작된 7월의 어느 금요일 밤이었다. 끈적하고 습한 공기, 그리고 야간 자율학습으로 인한 피로감에 모두가 지쳐 있었다. 자율학습을 마친 강윤과 지호, 그리고 같은 방향으로 귀가하는 다솜은 버스를 타기 위해 학교 앞 정류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굵은 비가 쉴 새 없이 쏟아져 내려 아스팔트 위로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었다.
“아, 비 너무 많이 온다. 버스는 왜 이렇게 안 와.”
다솜이 가방으로 머리를 가리며 투덜거렸다. 그때, 정류장 건너편 골목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중년 남성 두 명이 나타나, 교복을 입은 다솜을 향해 휘파람을 불며 저속한 농담을 던지기 시작했다.
“어이, 학생! 비 오는데 아저씨들이랑 같이 우산 쓸까? 몸으로 씌워줄게, 허허.”
강윤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지호는 이런 상황에 익숙한 사람처럼, 재빨리 상황을 피하기 위해 다솜의 팔을 끌었다.
“다솜아, 무시해. 우리 저쪽 편의점에 가서 비 피하자. 저런 사람들은 상대하는 거 아니야.”
하지만 남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그들 앞으로 다가와 길을 막아섰다. 역한 술 냄새와 담배 냄새가 빗물과 섞여 코를 찔렀다.
“어딜 가? 오빠들이랑 좀 놀다 가야지. 고등학생은 몇 시까지 놀아도 되나?”
한 남자가 다솜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이거 놓으세요!”
다솜이 비명을 지르며 뿌리치려 했지만, 성인 남자의 힘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그 순간, 강윤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툭’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어릴 적 겪었던 유괴의 공포, 자신을 억지로 끌고 가려던 ‘나쁜 아저씨들’의 얼굴이 눈앞의 남자들과 겹쳐 보였다. 차가운 손, 역겨운 숨결,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 잊고 있던 트라우마가 빗물처럼 차갑게 온몸을 적셨다.
“그 손… 놓으라고 했어.”
강윤의 목소리는 빗소리에 묻힐 만큼 낮았지만, 그 안에 담긴 분노는 얼음처럼 차갑고 날카로웠다.
“뭐야, 이 쬐끄만 놈이? 영웅 놀이라도 하냐?”
남자가 비웃으며 강윤을 밀치려던 순간이었다. 남자의 발밑에 있던 빗물이 고인 맨홀 뚜껑이 ‘덜컹’하며 스스로 들썩였다. 동시에, 정류장의 낡은 형광등이 파직, 소리를 내며 격렬하게 깜박이기 시작했다. 전압이 불안정해지는 듯한 기현상.
지호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안 돼, 강윤아! 여기서 힘을 쓰면…! 아버지가 보고 있을지도 몰라!’ 그의 머릿속에서는 경고음이 울렸다. 이것은 단순한 불량배와의 시비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실험실 모니터 앞에 펼쳐진 실시간 실험이었다.
“강윤아, 참아! 우리가 불리해! 일단 도망쳐야 해!”
지호가 소리치며 강윤과 다솜을 이끌고 반대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욕설을 내뱉으며 그들을 뒤쫓았다. 어둡고 좁은 골목길에서의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고, 세 사람의 심장은 터질 듯이 뛰었다. 차가운 빗물이 얼굴을 때리고, 발은 웅덩이를 밟아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막다른 골목이었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다. 등 뒤로는 차가운 담벼락이, 앞으로는 악마처럼 웃으며 다가오는 남자들이 있었다.
“이 새끼들이… 끝까지 도망가? 아주 쥐새끼들 같네.”
한 남자가 숨을 헐떡이며 주머니에서 날카로운 커터칼을 꺼내 들었다. ‘찰칵’ 소리와 함께 나온 은색 칼날이 빗물에 젖은 가로등 불빛을 받아 섬뜩하게 번뜩였다. 다솜은 공포에 질려 다리에 힘이 풀린 채 주저앉았다.
“제발… 제발 오지 마세요…”
지호는 다솜을 자신의 등 뒤로 감싸며 남자들을 노려보았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지만, 열일곱 살 소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압도적인 공포와 무력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바로 그때, 강윤이 지호와 다솜의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그의 어깨는 넓지 않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방패처럼 보였다. 그의 눈은 이전과 달랐다. 두려움과 혼란은 사라지고, 차갑고 단단한 결의만이 서려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힘을 두려워하거나 숨기려 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이 힘은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유일하고도 마지막 무기였다.
“너희들, 내가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강윤의 목소리가 빗속에 낮게 울려 퍼졌다. 빗소리마저 그의 목소리를 피해가는 듯했다.
“다솜이한테, 그리고 내 친구한테… 무릎 꿇고 사과하고 당장 꺼져.”
“하! 이 새끼가 진짜 단체로 미쳤나!”
남자는 칼을 쥔 손을 휘두르며 짐승처럼 강윤에게 달려들었다.
모든 것이 느리게 보였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칼날, 비웃음과 광기가 뒤섞인 남자의 얼굴, 겁에 질려 하얗게 변한 친구들의 모습. 강윤은 눈을 감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안에서 오랫동안 억눌려왔던, 거대한 댐의 수문이 열리듯 꿈틀거리는 힘을 남김없이 해방시켰다.
콰-앙!
강윤의 몸에서 터져 나온 강력한 염력의 파동이 빗물을 원형으로 밀어내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달려들던 남자는 보이지 않는 강철 벽에 정면으로 부딪힌 것처럼 허공에서 멈춰 섰다. 그의 손에 들린 커터칼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쨍’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 났다. 남자의 몸은 그대로 뒤로 튕겨 나가 골목길 벽에 처박혔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벽에 금이 가고, 남자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쓰러졌다.
“뭐… 뭐야! 너… 너!”
다른 남자 역시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는 겁에 질려 뒤돌아 도망치려 했지만, 그의 발은 마치 바닥에 강력한 접착제로 붙어버린 것처럼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강윤의 차가운 시선이 그의 움직임을 속박하고 있었다. 골목길 양옆에 주차된 차들의 경보음이 미친 듯이 일제히 울리기 시작했고, 주변 상점의 낡은 간판들이 위태롭게 흔들리다가 ‘퍽’ 소리를 내며 터져 나갔다. 골목길 바닥의 빗물이 소용돌이치며 공중으로 솟구쳤다.
“너… 너… 괴물이냐…?”
남자가 부들부들 떨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오줌을 지렸다. 강윤은 대답 대신, 그를 향해 천천히 한 걸음 다가갔다. 그 한 걸음에 담긴 압도적인 위압감에 남자는 결국 눈이 뒤집히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
모든 것이 끝나자, 폭주했던 힘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강윤의 몸을 덮쳤다. 극심한 두통과 함께 코에서 뜨거운 피가 쏟아져 내렸다. 그는 비틀거리며 벽에 몸을 기댔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다솜과 지호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인간의 상식을 벗어난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말을 잃었다. 특히 지호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는 강윤에게 특별한 힘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이토록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재앙에 가까운 형태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인형을 뽑고, 책의 궤도를 바꾸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는 명백한 ‘폭력’이었다.
“강윤아… 너… 방금… 그게… 대체… 뭐야…?”
다솜이 떨리는 목소리로, 경외와 공포가 뒤섞인 눈으로 물었다. 강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자신의 가장 깊고 어두운 비밀을, 가장 끔찍한 형태로 가장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들켜버렸다.
그 모든 순간은, 골목길 건너편 건물 옥상에 설치된 초소형 고성능 카메라를 통해 고스란히 표진석의 비밀 실험실로 전송되고 있었다.
표진석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관찰 보고: Phase 2 진입]
대상, 타인(같은 반 친구)을 보호하려는 강한 동기에 의해 의도적으로 능력 사용. 이전의 무의식적 발현과는 차원이 다른,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형태로 진화함.
능력 사용 후 신체적 부하(두통, 비출혈) 심화 현상 관측. 이는 능력의 한계치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
가장 중요한 변수: 능력이 소꿉친구(표지호)와 같은 반 친구(한다솜)에게 목격됨. 이로 인한 관계 변화 및 대상의 심리적 고립이 향후 능력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집중 관찰 필요.
그는 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댔다. 계획에 없던 위험한 돌발 상황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의 연구를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이끌어줄 최고의 데이터가 수집되었다. 이제 그는 강윤의 힘뿐만 아니라, 그 힘을 둘러싼 인간관계의 역학까지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친구의 배신감, 또 다른 친구의 공포심이 대상에게 어떤 자극을 줄 것인가. 그는 마치 흥미로운 연극을 관람하는 관객처럼 다음 막을 기대하고 있었다.
빗속의 골목길. 세 명의 소년 소녀는 각기 다른 충격과 혼란, 그리고 배신감 속에서 아무 말도 못한 채 서 있었다. 그들의 우정과 평범했던 교우 관계, 그리고 일상은 오늘 밤을 기점으로 돌이킬 수 없는, 깊고 선명한 균열을 맞이하고 있었다.
도서관에서의 그날 이후, 차강윤의 삶에는 미묘하지만 분명한 변화가 찾아왔다. 그는 자신의 힘이 누군가를, 한 명의 무고한 친구를 지킬 수 있다는 사실에 전에 없던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갑자기 어른의 무게를 짊어지게 된 듯한, 낯설고 버거운 감정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터져 나오는 힘과 그에 따르는 혹독한 대가(코피와 망치로 머리를 내리치는 듯한 극심한 두통)에 대한 두려움도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그는 자신의 ‘보이지 않는 손’을 더욱 철저하게 숨기려 애썼다. 이제 그의 힘은 단순한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자, 잘못 사용하면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는 위험한 흉기였다.
다솜과는 그저 평범한 반 친구 사이로 지냈다. 그날의 사건 이후 딱히 더 가까워지거나 멀어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강윤은 학교의 모든 평범한 일상 속에서 늘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복도에서 누군가 부딪혀 넘어질 뻔할 때, 급식실에서 친구가 식판을 엎을 뻔할 때마다 저도 모르게 힘을 쓰려는 충동이 일었고, 그는 그것을 억누르기 위해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그 모순적인 상황은 그의 정신을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갉아먹고 있었다.
강윤이 겪는 혼란보다 더 깊고 어두운 수렁에 빠진 것은 표지호였다. 그날, 그는 아버지 표진석에게 강윤과 다솜이 주말에 도서관에 갔던 일에 대해 보고했다. 그는 책이 떨어진 사건을 애써 ‘사서가 책을 잘못 꽂아둔 것 같다’는 식의 우연으로 축소해서 보고했지만, 표진석은 이미 모든 진실을 꿰뚫고 있었다.
“네 보고서는 사실과 다르더구나, 지호야.”
서재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표진석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그는 태블릿 PC를 돌려 지호에게 도서관 CCTV 영상을 보여주었다. 슬로우 모션으로, 심지어 특정 부분을 확대해서 재생되는 영상 속에서, 떨어지는 책의 궤도가 명백한 물리 법칙을 거스르며 부자연스럽게 휘어지는 장면이 선명하게 보였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책을 옆으로 밀어내는 듯한 기묘한 움직임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물리 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차강윤의 염력이 이전보다 훨씬 정교하고 세밀하게 발현된 것이지. ‘위험에 처한 친구’를 보호하려는 강한 감정적 동기가 그의 능력을 한 단계 진화시킨 중요한 터닝 포인트다. 넌 왜 이 중요한 사실을 누락했나? 의도적인가, 아니면 관찰 능력이 부족한 건가?”
지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심장이 차가운 얼음덩이처럼 굳어버리는 기분이었다. 친구를 보호하려던 자신의 작은 노력이, 아버지의 거대하고 촘촘한 감시망 앞에서는 어린아이의 숨바꼭질처럼 하찮고 무의미했다. 아버지는 단순히 결과만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까지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친구를 감싸주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그건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니까. 하지만 그 감정적인 행동이 강윤이를 더 큰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걸 왜 모르지? 만약 저 책이 떨어져 한다솜이 크게 다치기라도 했다면, 강윤이는 그 죄책감에 자신의 힘을 저주하고 통제 불능 상태로 폭주했을지도 모른다. 내 관찰과 통제가 없었다면 이미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수도 있어. 너의 어설픈 동정심이 재앙을 부를 뻔했다고.”
표진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들의 어깨를 잡았다. 그의 손길은 겉보기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담긴 압박은 강철처럼 단단하고 차가웠다. 그는 지호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제부터는 너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강윤이가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그의 감정 변화, 심박수, 대화의 주제, 그리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물리적 현상을 단 하나도 빠짐없이, ‘객관적인 사실’에 기반하여 보고해야 한다. 이것은 명령이다. 강윤이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서.”
그날 이후, 지호에게 내려지는 ‘관찰 미션’은 더욱 집요하고 구체적으로 변했다. 아버지로부터 지급된 최신형 스마트폰에는 그가 모르는 위치 추적 및 도청 기능이 담긴 앱이 설치되었다. 그는 강윤과 나눈 메시지, 통화 내용, 심지어 함께 찍은 사진까지 정기적으로 전송해야 했다. ‘수호천사’라는 그럴듯한 명분은 너덜너덜한 껍데기만 남았고, ‘감시자’ 혹은 ‘스파이’라는 냉혹한 현실만이 그의 목을 졸랐다. 친구와의 모든 즐거운 순간이, 아버지에게 제출해야 할 ‘보고서의 재료’가 되어버렸다.
죄책감은 서서히 퍼지는 독처럼 그의 영혼을 좀먹어 들어갔다. 그는 강윤을 볼 때마다 미안함에 고개를 숙였고, 예전처럼 스스럼없이 장난을 걸거나 시시껄렁한 농담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강윤은 그런 지호의 변화를 어렴풋이 느꼈다. 언제나 유쾌하고 시끄럽던 친구가 눈에 띄게 말수가 줄고, 함께 있을 때도 종종 멍하니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지호야, 너 무슨 일 있어? 요즘 나 피하는 것 같아.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냐?”
어느 날, 하교길에 더 이상 참지 못한 강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야. 무슨… 그냥 공부 때문에 바빠서 그래. 고등학생은 다 이런 거 아니냐.”
지호는 강윤의 진심 어린 눈을 피하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의 손에는 아버지가 준 스마트폰이 차갑게 쥐어져 있었다. 그 순간에도 자신들의 대화가 어딘가로 전송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했다. 강윤은 더 묻지 않았지만, 두 소년 사이에는 처음으로 차갑고 어색한 벽이 생겨나고 있었다. 함께 웃고 떠들면서도, 그들의 마음은 서로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장마가 시작된 7월의 어느 금요일 밤이었다. 끈적하고 습한 공기, 그리고 야간 자율학습으로 인한 피로감에 모두가 지쳐 있었다. 자율학습을 마친 강윤과 지호, 그리고 같은 방향으로 귀가하는 다솜은 버스를 타기 위해 학교 앞 정류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굵은 비가 쉴 새 없이 쏟아져 내려 아스팔트 위로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었다.
“아, 비 너무 많이 온다. 버스는 왜 이렇게 안 와.”
다솜이 가방으로 머리를 가리며 투덜거렸다. 그때, 정류장 건너편 골목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중년 남성 두 명이 나타나, 교복을 입은 다솜을 향해 휘파람을 불며 저속한 농담을 던지기 시작했다.
“어이, 학생! 비 오는데 아저씨들이랑 같이 우산 쓸까? 몸으로 씌워줄게, 허허.”
강윤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지호는 이런 상황에 익숙한 사람처럼, 재빨리 상황을 피하기 위해 다솜의 팔을 끌었다.
“다솜아, 무시해. 우리 저쪽 편의점에 가서 비 피하자. 저런 사람들은 상대하는 거 아니야.”
하지만 남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그들 앞으로 다가와 길을 막아섰다. 역한 술 냄새와 담배 냄새가 빗물과 섞여 코를 찔렀다.
“어딜 가? 오빠들이랑 좀 놀다 가야지. 고등학생은 몇 시까지 놀아도 되나?”
한 남자가 다솜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이거 놓으세요!”
다솜이 비명을 지르며 뿌리치려 했지만, 성인 남자의 힘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그 순간, 강윤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툭’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어릴 적 겪었던 유괴의 공포, 자신을 억지로 끌고 가려던 ‘나쁜 아저씨들’의 얼굴이 눈앞의 남자들과 겹쳐 보였다. 차가운 손, 역겨운 숨결,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 잊고 있던 트라우마가 빗물처럼 차갑게 온몸을 적셨다.
“그 손… 놓으라고 했어.”
강윤의 목소리는 빗소리에 묻힐 만큼 낮았지만, 그 안에 담긴 분노는 얼음처럼 차갑고 날카로웠다.
“뭐야, 이 쬐끄만 놈이? 영웅 놀이라도 하냐?”
남자가 비웃으며 강윤을 밀치려던 순간이었다. 남자의 발밑에 있던 빗물이 고인 맨홀 뚜껑이 ‘덜컹’하며 스스로 들썩였다. 동시에, 정류장의 낡은 형광등이 파직, 소리를 내며 격렬하게 깜박이기 시작했다. 전압이 불안정해지는 듯한 기현상.
지호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안 돼, 강윤아! 여기서 힘을 쓰면…! 아버지가 보고 있을지도 몰라!’ 그의 머릿속에서는 경고음이 울렸다. 이것은 단순한 불량배와의 시비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실험실 모니터 앞에 펼쳐진 실시간 실험이었다.
“강윤아, 참아! 우리가 불리해! 일단 도망쳐야 해!”
지호가 소리치며 강윤과 다솜을 이끌고 반대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욕설을 내뱉으며 그들을 뒤쫓았다. 어둡고 좁은 골목길에서의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고, 세 사람의 심장은 터질 듯이 뛰었다. 차가운 빗물이 얼굴을 때리고, 발은 웅덩이를 밟아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막다른 골목이었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다. 등 뒤로는 차가운 담벼락이, 앞으로는 악마처럼 웃으며 다가오는 남자들이 있었다.
“이 새끼들이… 끝까지 도망가? 아주 쥐새끼들 같네.”
한 남자가 숨을 헐떡이며 주머니에서 날카로운 커터칼을 꺼내 들었다. ‘찰칵’ 소리와 함께 나온 은색 칼날이 빗물에 젖은 가로등 불빛을 받아 섬뜩하게 번뜩였다. 다솜은 공포에 질려 다리에 힘이 풀린 채 주저앉았다.
“제발… 제발 오지 마세요…”
지호는 다솜을 자신의 등 뒤로 감싸며 남자들을 노려보았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지만, 열일곱 살 소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압도적인 공포와 무력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바로 그때, 강윤이 지호와 다솜의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그의 어깨는 넓지 않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방패처럼 보였다. 그의 눈은 이전과 달랐다. 두려움과 혼란은 사라지고, 차갑고 단단한 결의만이 서려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힘을 두려워하거나 숨기려 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이 힘은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유일하고도 마지막 무기였다.
“너희들, 내가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강윤의 목소리가 빗속에 낮게 울려 퍼졌다. 빗소리마저 그의 목소리를 피해가는 듯했다.
“다솜이한테, 그리고 내 친구한테… 무릎 꿇고 사과하고 당장 꺼져.”
“하! 이 새끼가 진짜 단체로 미쳤나!”
남자는 칼을 쥔 손을 휘두르며 짐승처럼 강윤에게 달려들었다.
모든 것이 느리게 보였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칼날, 비웃음과 광기가 뒤섞인 남자의 얼굴, 겁에 질려 하얗게 변한 친구들의 모습. 강윤은 눈을 감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안에서 오랫동안 억눌려왔던, 거대한 댐의 수문이 열리듯 꿈틀거리는 힘을 남김없이 해방시켰다.
콰-앙!
강윤의 몸에서 터져 나온 강력한 염력의 파동이 빗물을 원형으로 밀어내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달려들던 남자는 보이지 않는 강철 벽에 정면으로 부딪힌 것처럼 허공에서 멈춰 섰다. 그의 손에 들린 커터칼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쨍’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 났다. 남자의 몸은 그대로 뒤로 튕겨 나가 골목길 벽에 처박혔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벽에 금이 가고, 남자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쓰러졌다.
“뭐… 뭐야! 너… 너!”
다른 남자 역시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는 겁에 질려 뒤돌아 도망치려 했지만, 그의 발은 마치 바닥에 강력한 접착제로 붙어버린 것처럼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강윤의 차가운 시선이 그의 움직임을 속박하고 있었다. 골목길 양옆에 주차된 차들의 경보음이 미친 듯이 일제히 울리기 시작했고, 주변 상점의 낡은 간판들이 위태롭게 흔들리다가 ‘퍽’ 소리를 내며 터져 나갔다. 골목길 바닥의 빗물이 소용돌이치며 공중으로 솟구쳤다.
“너… 너… 괴물이냐…?”
남자가 부들부들 떨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오줌을 지렸다. 강윤은 대답 대신, 그를 향해 천천히 한 걸음 다가갔다. 그 한 걸음에 담긴 압도적인 위압감에 남자는 결국 눈이 뒤집히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
모든 것이 끝나자, 폭주했던 힘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강윤의 몸을 덮쳤다. 극심한 두통과 함께 코에서 뜨거운 피가 쏟아져 내렸다. 그는 비틀거리며 벽에 몸을 기댔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다솜과 지호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인간의 상식을 벗어난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말을 잃었다. 특히 지호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는 강윤에게 특별한 힘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이토록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재앙에 가까운 형태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인형을 뽑고, 책의 궤도를 바꾸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는 명백한 ‘폭력’이었다.
“강윤아… 너… 방금… 그게… 대체… 뭐야…?”
다솜이 떨리는 목소리로, 경외와 공포가 뒤섞인 눈으로 물었다. 강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자신의 가장 깊고 어두운 비밀을, 가장 끔찍한 형태로 가장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들켜버렸다.
그 모든 순간은, 골목길 건너편 건물 옥상에 설치된 초소형 고성능 카메라를 통해 고스란히 표진석의 비밀 실험실로 전송되고 있었다.
표진석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관찰 보고: Phase 2 진입]
대상, 타인(같은 반 친구)을 보호하려는 강한 동기에 의해 의도적으로 능력 사용. 이전의 무의식적 발현과는 차원이 다른,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형태로 진화함.
능력 사용 후 신체적 부하(두통, 비출혈) 심화 현상 관측. 이는 능력의 한계치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
가장 중요한 변수: 능력이 소꿉친구(표지호)와 같은 반 친구(한다솜)에게 목격됨. 이로 인한 관계 변화 및 대상의 심리적 고립이 향후 능력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집중 관찰 필요.
그는 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댔다. 계획에 없던 위험한 돌발 상황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의 연구를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이끌어줄 최고의 데이터가 수집되었다. 이제 그는 강윤의 힘뿐만 아니라, 그 힘을 둘러싼 인간관계의 역학까지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친구의 배신감, 또 다른 친구의 공포심이 대상에게 어떤 자극을 줄 것인가. 그는 마치 흥미로운 연극을 관람하는 관객처럼 다음 막을 기대하고 있었다.
빗속의 골목길. 세 명의 소년 소녀는 각기 다른 충격과 혼란, 그리고 배신감 속에서 아무 말도 못한 채 서 있었다. 그들의 우정과 평범했던 교우 관계, 그리고 일상은 오늘 밤을 기점으로 돌이킬 수 없는, 깊고 선명한 균열을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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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 아이 더 오리지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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