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조회 : 442 추천 : 0 글자수 : 6,155 자 2025-10-27
제10화
[지호야. 도와줘.]
[언제나. 내가 옆에 있을게.]
그 짧지만 묵직한 메시지 교환 이후, 차강윤과 표지호의 관계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겉보기에는 예전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고등학생들이었다. 함께 등교하고, 지루한 수학 시간에 몰래 쪽지를 주고받으며 웃음을 터뜨리고, 점심시간이면 마지막 남은 돈가스 조각을 두고 유치한 신경전을 벌였다. 하지만 그 평범한 일상의 수면 아래에서는, 누구도 모르는 비밀스럽고도 위험한 협력이 조용히 시작되었다. 그들의 동맹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통하는, 오랜 세월이 만들어낸 끈끈한 유대 위에 세워졌다. 쉬는 시간 복도에서, 급식을 먹으러 가는 길에, 하굣길 만원 버스 안에서, 그들은 스쳐 지나가는 눈빛과 짧은 단어만으로 서로의 의도를 파악하고 정보를 교환했다. “오늘 야자 땡땡이?”라는 평범한 질문은 “오늘 밤 훈련, 어때?”라는 의미였고, “숙제 다 했냐?”는 물음은 “새로운 정보 찾았어?”라는 신호였다.
지호는 강윤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이자 냉철한 실험 파트너가 되었다. 그는 더 이상 죄책감에 짓눌린 방관자가 아니었다. 그는 이제 아버지의 거대한 감시망을 역이용하여 정보를 빼내는, 대담한 이중 스파이가 되었다. 그는 밤마다 아버지, 표진석의 서재에 몰래 들어가 심리학, 뇌과학, 양자물리학 관련 서적들을 폰으로 찍어 강윤에게 전송했다. 서재에 들어설 때마다 심장이 발소리를 죽인 고양이처럼 조심스러워졌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 책들에는 감정 통제 훈련법, 고도의 집중력 강화 기법, 심지어 에너지 파동에 대한 이론까지, 강윤의 능력 제어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이 가득했다.
“아버지가 그러셨어. 네 힘은 단순한 물리력이 아니라, 네 뇌파와 감정 상태에 따라 그 형태와 위력이 달라지는 에너지 파동에 가깝다고. 그러니까… 네 마음을 다스리는 법부터 완벽하게 배워야 해. 분노나 공포는 힘을 폭발시키지만, 제어는 불가능하게 만들어.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핵심이야.”
지호는 아버지에게서 얻어들은 단편적인 정보들을 조합하고 자신만의 추론을 더하여 강윤에게 전달했다. 그는 자신이 여전히 아버지를 속이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지만, 친구를 돕는다는 명확하고도 절실한 목표가 생기자 이전보다 훨씬 단단하고 대담해질 수 있었다.
강윤은 지호의 도움을 받아 체계적인 훈련에 돌입했다. 그는 더 이상 어둠 속에서 무작정 힘을 시험하지 않았다. 지호가 보내준 자료들을 바탕으로, 그는 매일 아침 명상을 통해 자신의 감정 상태를 점검하고 다스리는 법을 익혔고, 복잡한 수학 문제를 풀며 극한의 집중력을 유지하는 연습을 했다. 주말이면 두 사람은 인적이 드문 산이나 오래전에 버려진 폐공장을 찾아다니며 안전하게 능력을 테스트했다. 녹슨 철문과 깨진 유리창, 잡초가 무성한 그곳은 그들만의 비밀 훈련장이자 성역이었다.
“좋아, 강윤아. 저기 저 녹슨 드럼통, 정확히 3초만 띄워봐. 속으로 숫자를 세면서! 너무 힘주지 말고, 부드럽게 들어 올린다는 느낌으로.”
지호가 스톱워치를 들고 코치처럼 외쳤다. 강윤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드럼통에 집중했다. 묵직한 드럼통이 ‘끼익’ 소리를 내며 아주 천천히, 부드럽게 떠올랐다. 하나, 둘, 셋. 정확히 3초 후, 드럼통은 먼지를 살짝 일으키며 원래 자리에 내려앉았다.
“성공이야! 시간 정확했어! 두통은 어때? 코피는?”
“괜찮아. 예전보다 훨씬 나아. 머리가 살짝 띵한 정도야.”
강윤의 얼굴에 오랜만에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번졌다. 그는 이제 자신의 힘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치 거친 야생마를 길들이는 기수처럼, 그는 자신의 힘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평화롭고 희망적인 훈련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호는 아버지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깊숙이, 그리고 위험하게 자신들의 삶에 개입하고 있다는 끔찍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어느 날 밤, 지호는 자신의 스마트폰 배터리가 유난히 빨리 닳는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여겨, 전문적인 분석 프로그램을 돌려보았다. 그리고 그 결과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의 스마트폰이 주기적으로, 그가 알지 못하는 특정 서버에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전송하고 있었다. 해킹에 가까운 방법으로 파일 경로를 역추적한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자신의 모든 통화 기록, 메시지, 사진, 심지어 실시간 위치 정보까지 고스란히 아버지의 연구소 서버로 전송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입학 선물’이라며 자신에게 주었던 스마트 워치, 생일 선물이었던 필통, 심지어 가방에 달린 작은 열쇠고리까지. 그 모든 물건에 초소형 도청 장치와 카메라가 교묘하게 숨겨져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손바닥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인다고 착각하며 놀아나는 인형에 불과했다. 아버지의 ‘보호’와 ‘통제’는 자신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집요하고 무서운, 거대한 감옥이었다.
‘아버지… 대체 어디까지, 무엇을 하시려는 거예요?’
지호의 등줄기에 차가운 식은땀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그는 이 끔찍한 사실을 강윤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너무나도 거대한 문제였다.
“우리 아버지가… 널 감시하고 있어. 아니, 우리를. 아주 오래전부터.”
다음 날, 인적 없는 학교 옥상에서 지호는 떨리는 목소리로 모든 것을 고백했다. 자신의 스마트폰에 설치된 감시 앱, 곳곳에 숨겨진 도청 장치, 그리고 매일 밤 아버지에게 보고해야 했던 관찰일지까지. 강윤은 말없이 그의 고백을 들었다. 놀라거나 분노하는 대신, 그의 얼굴에는 모든 퍼즐 조각이 차례로 맞춰졌다는 듯한 씁쓸하고 서늘한 표정이 떠올랐다.
“역시… 그랬구나.”
유치원 시절부터 느껴왔던 막연한 위화감, 지호의 부자연스러웠던 행동들, 그리고 자신을 꿰뚫어 보는 듯했던 그의 아버지, 표진석의 눈빛.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
“미안하다, 강윤아. 정말 미안해. 난 널 지키고 싶었어. 그런데… 그런데 난 너무 어렸고, 아버지는 너무 거대했어.”
“알아.”
강윤이 지호의 말을 잘랐다. 그의 목소리는 흔들림 없이 단단했다. “네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아. 괜찮아. 이제부터는… 우리가 같이 싸우면 돼. 더 이상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거야.”
강윤의 눈빛은 더 이상 혼란에 빠진 소년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친구와 함께 진실을 파헤치고 거대한 운명에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네 아버지가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하는지, 그 진짜 이유를 알아내야겠어. 그냥 단순한 과학적 호기심은 아닐 거야. 그 뒤에는 분명 더 큰 비밀이 숨어있어.”
두 소년의 눈빛이 마주쳤다. 그들은 그날 밤, 대담하고도 무모한 계획을 세웠다. 표진석의 비밀 실험실에 직접 잠입하기로 한 것이다.
표진석은 매주 금요일 밤, 학회 참석을 이유로 집을 비웠다. 지호는 그가 도시 외곽에 있는 개인 연구소에서 밤샘 연구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몇 번인가 보았던 연구소의 위치와 보안 시스템 설계도를 기억해냈다. 아버지가 자리를 비우는 단 몇 시간. 그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유일하고도 마지막 기회였다.
금요일 밤, 지호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몰래 빼낸 비상용 출입 카드를 손에 쥐고 강윤과 함께 연구소로 향했다. 연구소는 낡은 물류 창고 건물을 위장한 채, 깊은 어둠과 정적 속에 숨어 있었다.
“보안 시스템은 내가 해제할 수 있어. 3분 정도 걸릴 거야. 하지만 내부에 순찰 로봇이 있을지도 몰라. 절대 소리 내면 안 돼.”
지호가 노트북을 펼치며 속삭였다. 두 사람은 어둠을 틈타 건물 안으로 그림자처럼 잠입했다. 내부는 밖에서 본 허름한 모습과 달리, 마치 SF 영화 세트장처럼 최첨단 시설로 가득했다. 수십 개의 모니터가 어둠 속에서 푸른빛을 내며 깜박이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기계들이 낮은 소음을 내며 규칙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저쪽이야. 아버지의 메인 컴퓨터가 있는 중앙 통제실.”
지호의 안내에 따라 두 사람은 미로처럼 얽힌 복도를 지나 중앙 통제실로 향했다. 바로 그때, 복도 저편에서 ‘위잉-’ 하는 섬뜩한 기계음과 함께 바퀴 달린 순찰 로봇 한 대가 나타났다. 붉은색 센서 불빛이 복도를 훑으며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젠장, 들키면 끝이야!”
지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도망칠 곳도, 숨을 곳도 없었다. 로봇의 센서가 그들을 향해 돌아오는 결정적인 순간, 강윤이 지호의 앞을 막아서며 손을 뻗었다.
“걱정 마. 내가 할게.”
강윤은 눈을 감고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는 로봇을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멈추게’ 하고 싶었다. 그의 손끝에서 희미한 푸른빛의 스파크가 파직, 하고 튀었다. 그러자 다가오던 순찰 로봇의 센서 불빛이 지지직거리며 노이즈 낀 화면처럼 불안정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로봇은 잠시 제자리에서 바보처럼 맴돌더니, 이내 모든 작동을 멈추고 고철 덩어리처럼 복도에 서버렸다.
“너… EMP(전자기 펄스) 같은 걸 쓴 거야? 어떻게 한 거야?”
지호가 경악하며 물었다.
“나도 몰라. 그냥… 저 기계의 전원을 꺼버려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강윤은 자신의 새로운 능력을 발견했지만, 기뻐할 틈이 없었다. 그는 방금 전의 능력 사용으로 극심한 현기증을 느끼며 차가운 벽에 몸을 기댔다.
중앙 통제실에 도착한 두 사람은 표진석의 거대한 메인 컴퓨터 앞에 섰다. 지호는 떨리는 손으로 익숙하게 암호를 풀고 파일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프로젝트 프로메테우스(Project Prometheus)’라는 이름의, 자물쇠 아이콘이 걸린 최상위 보안 폴더를 발견했다.
폴더 안에는 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충격적인 내용들이 가득했다.
그것은 강윤 개인에 대한 단순한 관찰 기록이 아니었다. ‘제노-7’ 샘플을 기반으로 한 초능력 인간 병기화 계획의 전모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끔찍한 계획의 중심에는, ‘최초의 성공적인 2세대 안정화 샘플’이라는 코드네임으로 불리는 강윤이 있었다.
폴더 안에는 강윤의 부모, 차태주와 서지윤에 대한 파일도 있었다. 그들은 단순한 연구원이 아니었다. 그들은 ‘제노-7’의 비인간적인 활용에 반대하여 내부 고발을 준비하다가, 그 사실을 눈치챈 표진석과 그 배후 세력에 의해 제거될 위기에 처했던 것이었다. 연구소 화재는 사고가 아니라, 모든 증거를 인멸하고 그들을 제거하기 위한 계획된 방화였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인 파일. 그것은 ‘차기 관찰 대상: Project Icarus’라는 이름의 파일이었다. 그 안에는 표지호, 바로 자신의 어릴 적 사진과 신상 정보, 그리고 잠재 능력 예측 데이터가 들어 있었다. 아버지에게 자신은 사랑하는 아들이 아니라, 강윤 다음 차례의, 통제 가능한 환경에서 성장한 비교 실험체에 불과했다.
“이럴 수가… 아버지가… 나를…”
지호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배신감과 절망이 거대한 해일처럼 그의 온몸을 덮쳤다. 강윤은 아무 말 없이 친구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는 이제 모든 것을 이해했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불행과 비밀의 거대한 뿌리를. 그리고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가 얼마나 끔찍한 지옥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바로 그때였다.
[경고! 외부 침입 발생! 비상 프로토콜 가동!]
연구소 전체에 고막을 찢는 듯한 날카로운 경보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컴퓨터에 접속한 기록이 표진석의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전송된 것이다.
“젠장! 아버지가 오고 있어! 여기서 빨리 나가야 해!”
지호가 충격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두 사람은 중요한 파일들을 USB에 복사하고 서둘러 출구를 향해 달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연구소의 모든 출입문이 굉음과 함께 굳게 닫히고, 복도 천장에서 묵직한 티타늄 셔터들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은 단순한 순찰 로봇이 아니었다. 천장에서 내려온 여러 대의 공격용 드론들이 붉은 레이저 포인트를 그들에게 겨누고 있었다.
“침입자 확인. 공격 모드로 전환합니다.”
기계적인 음성과 함께, 드론들의 총구에서 푸른빛의 에너지탄이 비 오듯 발사되기 시작했다.
“지호야, 내 뒤로 피해!”
강윤은 지호를 자신의 등 뒤로 밀치고, 양팔을 벌려 자신의 앞에 투명한 방어막을 생성했다. 푸른빛의 에너지탄들이 투명한 방어막에 부딪히며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 방어막은 격렬하게 흔들렸고, 그 충격이 고스란히 강윤에게 전해졌다. 강윤의 입에서 신음과 함께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강윤아!”
지호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고, 그 안에서 나온 것은 희망이 아닌 끔찍한 진실과 절망, 그리고 냉혹한 추격이었다. 두 소년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들은 더 이상 평범한 고등학생이 아니었다. 거대한 음모의 진실을 알아버린, 세상으로부터 쫓기는 자들이었다. 그들의 진짜 싸움은, 바로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지호야. 도와줘.]
[언제나. 내가 옆에 있을게.]
그 짧지만 묵직한 메시지 교환 이후, 차강윤과 표지호의 관계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겉보기에는 예전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고등학생들이었다. 함께 등교하고, 지루한 수학 시간에 몰래 쪽지를 주고받으며 웃음을 터뜨리고, 점심시간이면 마지막 남은 돈가스 조각을 두고 유치한 신경전을 벌였다. 하지만 그 평범한 일상의 수면 아래에서는, 누구도 모르는 비밀스럽고도 위험한 협력이 조용히 시작되었다. 그들의 동맹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통하는, 오랜 세월이 만들어낸 끈끈한 유대 위에 세워졌다. 쉬는 시간 복도에서, 급식을 먹으러 가는 길에, 하굣길 만원 버스 안에서, 그들은 스쳐 지나가는 눈빛과 짧은 단어만으로 서로의 의도를 파악하고 정보를 교환했다. “오늘 야자 땡땡이?”라는 평범한 질문은 “오늘 밤 훈련, 어때?”라는 의미였고, “숙제 다 했냐?”는 물음은 “새로운 정보 찾았어?”라는 신호였다.
지호는 강윤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이자 냉철한 실험 파트너가 되었다. 그는 더 이상 죄책감에 짓눌린 방관자가 아니었다. 그는 이제 아버지의 거대한 감시망을 역이용하여 정보를 빼내는, 대담한 이중 스파이가 되었다. 그는 밤마다 아버지, 표진석의 서재에 몰래 들어가 심리학, 뇌과학, 양자물리학 관련 서적들을 폰으로 찍어 강윤에게 전송했다. 서재에 들어설 때마다 심장이 발소리를 죽인 고양이처럼 조심스러워졌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 책들에는 감정 통제 훈련법, 고도의 집중력 강화 기법, 심지어 에너지 파동에 대한 이론까지, 강윤의 능력 제어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이 가득했다.
“아버지가 그러셨어. 네 힘은 단순한 물리력이 아니라, 네 뇌파와 감정 상태에 따라 그 형태와 위력이 달라지는 에너지 파동에 가깝다고. 그러니까… 네 마음을 다스리는 법부터 완벽하게 배워야 해. 분노나 공포는 힘을 폭발시키지만, 제어는 불가능하게 만들어.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핵심이야.”
지호는 아버지에게서 얻어들은 단편적인 정보들을 조합하고 자신만의 추론을 더하여 강윤에게 전달했다. 그는 자신이 여전히 아버지를 속이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지만, 친구를 돕는다는 명확하고도 절실한 목표가 생기자 이전보다 훨씬 단단하고 대담해질 수 있었다.
강윤은 지호의 도움을 받아 체계적인 훈련에 돌입했다. 그는 더 이상 어둠 속에서 무작정 힘을 시험하지 않았다. 지호가 보내준 자료들을 바탕으로, 그는 매일 아침 명상을 통해 자신의 감정 상태를 점검하고 다스리는 법을 익혔고, 복잡한 수학 문제를 풀며 극한의 집중력을 유지하는 연습을 했다. 주말이면 두 사람은 인적이 드문 산이나 오래전에 버려진 폐공장을 찾아다니며 안전하게 능력을 테스트했다. 녹슨 철문과 깨진 유리창, 잡초가 무성한 그곳은 그들만의 비밀 훈련장이자 성역이었다.
“좋아, 강윤아. 저기 저 녹슨 드럼통, 정확히 3초만 띄워봐. 속으로 숫자를 세면서! 너무 힘주지 말고, 부드럽게 들어 올린다는 느낌으로.”
지호가 스톱워치를 들고 코치처럼 외쳤다. 강윤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드럼통에 집중했다. 묵직한 드럼통이 ‘끼익’ 소리를 내며 아주 천천히, 부드럽게 떠올랐다. 하나, 둘, 셋. 정확히 3초 후, 드럼통은 먼지를 살짝 일으키며 원래 자리에 내려앉았다.
“성공이야! 시간 정확했어! 두통은 어때? 코피는?”
“괜찮아. 예전보다 훨씬 나아. 머리가 살짝 띵한 정도야.”
강윤의 얼굴에 오랜만에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번졌다. 그는 이제 자신의 힘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치 거친 야생마를 길들이는 기수처럼, 그는 자신의 힘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평화롭고 희망적인 훈련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호는 아버지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깊숙이, 그리고 위험하게 자신들의 삶에 개입하고 있다는 끔찍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어느 날 밤, 지호는 자신의 스마트폰 배터리가 유난히 빨리 닳는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여겨, 전문적인 분석 프로그램을 돌려보았다. 그리고 그 결과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의 스마트폰이 주기적으로, 그가 알지 못하는 특정 서버에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전송하고 있었다. 해킹에 가까운 방법으로 파일 경로를 역추적한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자신의 모든 통화 기록, 메시지, 사진, 심지어 실시간 위치 정보까지 고스란히 아버지의 연구소 서버로 전송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입학 선물’이라며 자신에게 주었던 스마트 워치, 생일 선물이었던 필통, 심지어 가방에 달린 작은 열쇠고리까지. 그 모든 물건에 초소형 도청 장치와 카메라가 교묘하게 숨겨져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손바닥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인다고 착각하며 놀아나는 인형에 불과했다. 아버지의 ‘보호’와 ‘통제’는 자신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집요하고 무서운, 거대한 감옥이었다.
‘아버지… 대체 어디까지, 무엇을 하시려는 거예요?’
지호의 등줄기에 차가운 식은땀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그는 이 끔찍한 사실을 강윤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너무나도 거대한 문제였다.
“우리 아버지가… 널 감시하고 있어. 아니, 우리를. 아주 오래전부터.”
다음 날, 인적 없는 학교 옥상에서 지호는 떨리는 목소리로 모든 것을 고백했다. 자신의 스마트폰에 설치된 감시 앱, 곳곳에 숨겨진 도청 장치, 그리고 매일 밤 아버지에게 보고해야 했던 관찰일지까지. 강윤은 말없이 그의 고백을 들었다. 놀라거나 분노하는 대신, 그의 얼굴에는 모든 퍼즐 조각이 차례로 맞춰졌다는 듯한 씁쓸하고 서늘한 표정이 떠올랐다.
“역시… 그랬구나.”
유치원 시절부터 느껴왔던 막연한 위화감, 지호의 부자연스러웠던 행동들, 그리고 자신을 꿰뚫어 보는 듯했던 그의 아버지, 표진석의 눈빛.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
“미안하다, 강윤아. 정말 미안해. 난 널 지키고 싶었어. 그런데… 그런데 난 너무 어렸고, 아버지는 너무 거대했어.”
“알아.”
강윤이 지호의 말을 잘랐다. 그의 목소리는 흔들림 없이 단단했다. “네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아. 괜찮아. 이제부터는… 우리가 같이 싸우면 돼. 더 이상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거야.”
강윤의 눈빛은 더 이상 혼란에 빠진 소년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친구와 함께 진실을 파헤치고 거대한 운명에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네 아버지가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하는지, 그 진짜 이유를 알아내야겠어. 그냥 단순한 과학적 호기심은 아닐 거야. 그 뒤에는 분명 더 큰 비밀이 숨어있어.”
두 소년의 눈빛이 마주쳤다. 그들은 그날 밤, 대담하고도 무모한 계획을 세웠다. 표진석의 비밀 실험실에 직접 잠입하기로 한 것이다.
표진석은 매주 금요일 밤, 학회 참석을 이유로 집을 비웠다. 지호는 그가 도시 외곽에 있는 개인 연구소에서 밤샘 연구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몇 번인가 보았던 연구소의 위치와 보안 시스템 설계도를 기억해냈다. 아버지가 자리를 비우는 단 몇 시간. 그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유일하고도 마지막 기회였다.
금요일 밤, 지호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몰래 빼낸 비상용 출입 카드를 손에 쥐고 강윤과 함께 연구소로 향했다. 연구소는 낡은 물류 창고 건물을 위장한 채, 깊은 어둠과 정적 속에 숨어 있었다.
“보안 시스템은 내가 해제할 수 있어. 3분 정도 걸릴 거야. 하지만 내부에 순찰 로봇이 있을지도 몰라. 절대 소리 내면 안 돼.”
지호가 노트북을 펼치며 속삭였다. 두 사람은 어둠을 틈타 건물 안으로 그림자처럼 잠입했다. 내부는 밖에서 본 허름한 모습과 달리, 마치 SF 영화 세트장처럼 최첨단 시설로 가득했다. 수십 개의 모니터가 어둠 속에서 푸른빛을 내며 깜박이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기계들이 낮은 소음을 내며 규칙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저쪽이야. 아버지의 메인 컴퓨터가 있는 중앙 통제실.”
지호의 안내에 따라 두 사람은 미로처럼 얽힌 복도를 지나 중앙 통제실로 향했다. 바로 그때, 복도 저편에서 ‘위잉-’ 하는 섬뜩한 기계음과 함께 바퀴 달린 순찰 로봇 한 대가 나타났다. 붉은색 센서 불빛이 복도를 훑으며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젠장, 들키면 끝이야!”
지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도망칠 곳도, 숨을 곳도 없었다. 로봇의 센서가 그들을 향해 돌아오는 결정적인 순간, 강윤이 지호의 앞을 막아서며 손을 뻗었다.
“걱정 마. 내가 할게.”
강윤은 눈을 감고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는 로봇을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멈추게’ 하고 싶었다. 그의 손끝에서 희미한 푸른빛의 스파크가 파직, 하고 튀었다. 그러자 다가오던 순찰 로봇의 센서 불빛이 지지직거리며 노이즈 낀 화면처럼 불안정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로봇은 잠시 제자리에서 바보처럼 맴돌더니, 이내 모든 작동을 멈추고 고철 덩어리처럼 복도에 서버렸다.
“너… EMP(전자기 펄스) 같은 걸 쓴 거야? 어떻게 한 거야?”
지호가 경악하며 물었다.
“나도 몰라. 그냥… 저 기계의 전원을 꺼버려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강윤은 자신의 새로운 능력을 발견했지만, 기뻐할 틈이 없었다. 그는 방금 전의 능력 사용으로 극심한 현기증을 느끼며 차가운 벽에 몸을 기댔다.
중앙 통제실에 도착한 두 사람은 표진석의 거대한 메인 컴퓨터 앞에 섰다. 지호는 떨리는 손으로 익숙하게 암호를 풀고 파일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프로젝트 프로메테우스(Project Prometheus)’라는 이름의, 자물쇠 아이콘이 걸린 최상위 보안 폴더를 발견했다.
폴더 안에는 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충격적인 내용들이 가득했다.
그것은 강윤 개인에 대한 단순한 관찰 기록이 아니었다. ‘제노-7’ 샘플을 기반으로 한 초능력 인간 병기화 계획의 전모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끔찍한 계획의 중심에는, ‘최초의 성공적인 2세대 안정화 샘플’이라는 코드네임으로 불리는 강윤이 있었다.
폴더 안에는 강윤의 부모, 차태주와 서지윤에 대한 파일도 있었다. 그들은 단순한 연구원이 아니었다. 그들은 ‘제노-7’의 비인간적인 활용에 반대하여 내부 고발을 준비하다가, 그 사실을 눈치챈 표진석과 그 배후 세력에 의해 제거될 위기에 처했던 것이었다. 연구소 화재는 사고가 아니라, 모든 증거를 인멸하고 그들을 제거하기 위한 계획된 방화였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인 파일. 그것은 ‘차기 관찰 대상: Project Icarus’라는 이름의 파일이었다. 그 안에는 표지호, 바로 자신의 어릴 적 사진과 신상 정보, 그리고 잠재 능력 예측 데이터가 들어 있었다. 아버지에게 자신은 사랑하는 아들이 아니라, 강윤 다음 차례의, 통제 가능한 환경에서 성장한 비교 실험체에 불과했다.
“이럴 수가… 아버지가… 나를…”
지호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배신감과 절망이 거대한 해일처럼 그의 온몸을 덮쳤다. 강윤은 아무 말 없이 친구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는 이제 모든 것을 이해했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불행과 비밀의 거대한 뿌리를. 그리고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가 얼마나 끔찍한 지옥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바로 그때였다.
[경고! 외부 침입 발생! 비상 프로토콜 가동!]
연구소 전체에 고막을 찢는 듯한 날카로운 경보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컴퓨터에 접속한 기록이 표진석의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전송된 것이다.
“젠장! 아버지가 오고 있어! 여기서 빨리 나가야 해!”
지호가 충격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두 사람은 중요한 파일들을 USB에 복사하고 서둘러 출구를 향해 달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연구소의 모든 출입문이 굉음과 함께 굳게 닫히고, 복도 천장에서 묵직한 티타늄 셔터들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은 단순한 순찰 로봇이 아니었다. 천장에서 내려온 여러 대의 공격용 드론들이 붉은 레이저 포인트를 그들에게 겨누고 있었다.
“침입자 확인. 공격 모드로 전환합니다.”
기계적인 음성과 함께, 드론들의 총구에서 푸른빛의 에너지탄이 비 오듯 발사되기 시작했다.
“지호야, 내 뒤로 피해!”
강윤은 지호를 자신의 등 뒤로 밀치고, 양팔을 벌려 자신의 앞에 투명한 방어막을 생성했다. 푸른빛의 에너지탄들이 투명한 방어막에 부딪히며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 방어막은 격렬하게 흔들렸고, 그 충격이 고스란히 강윤에게 전해졌다. 강윤의 입에서 신음과 함께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강윤아!”
지호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고, 그 안에서 나온 것은 희망이 아닌 끔찍한 진실과 절망, 그리고 냉혹한 추격이었다. 두 소년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들은 더 이상 평범한 고등학생이 아니었다. 거대한 음모의 진실을 알아버린, 세상으로부터 쫓기는 자들이었다. 그들의 진짜 싸움은, 바로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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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 아이 더 오리지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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