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조회 : 121 추천 : 0 글자수 : 6,574 자 2025-12-19
제20화
지하 실험실의 차가운 공기는 그 소리에 공명하며 섬뜩하게 진동했다. '철컹, 콰앙!' 육중한 강철 격벽들이 연달아 닫히는 소리가 마치 사형 집행을 알리는 망치 소리처럼 귓가를 때렸다. 붉은 비상등이 심장 박동처럼 불규칙하게 깜박이며 강윤과 지호의 창백한 얼굴을 비췄다. 산소가 희박해지는 듯한 압박감, 모든 퇴로가 차단된 밀실의 공포가 그들의 목을 조여왔다. 이곳은 연구실이 아니었다. 표진석이 오직 그들을 위해 준비한 거대한 강철 관이었다.
지호는 패닉에 빠져 출입문 제어 패널에 매달렸다. 그의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렸지만, 모니터에는 붉은색 [ACCESS DENIED (접근 거부)] 메시지만이 잔인하게 떠올랐다.
"강윤아, 어떡해? 이 문… 해킹으로도 안 열려! 소프트웨어적인 잠금이 아니야. 외부에서 유압 장치를 물리적으로 차단해버렸어! 하드웨어적인 봉쇄라고! 여기서 나갈 방법이 없어!"
지호의 목소리는 절망으로 갈라졌다. 이마에서 흐른 식은땀이 눈으로 들어가 따가웠지만, 그는 닦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지만, 결국은 아버지의 손바닥 안이었다는 무력감이 그를 짓눌렀다.
하지만 강윤은 달랐다. 그의 푸른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더욱 선명하고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공포에 질리는 대신, 사냥꾼의 냉혹한 눈으로 이 강철 감옥의 구조를 뜯어보고 있었다.
"아직… 축하받기는 일러."
강윤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는 패배자의 비탄 대신, 판을 뒤집으려는 승부사의 서늘한 살기가 서려 있었다.
"물리적으로 닫혀 있다면, 논리적으로 열면 돼. 이 시스템의 심장을 멈추게 한다."
강윤은 서버실 중앙에 우뚝 솟은 메인 서버, '블랙 모노리스'라 불리는 거대한 검은색 기둥에 양손을 얹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순간, 그는 눈을 감았다.
그 즉시, 강윤의 뇌리에 현실 세계가 지워지고 거대한 데이터의 바다가 펼쳐졌다.
그것은 시각적인 환영이 아니었다. 0과 1로 이루어진 정보의 우주가 그의 감각 기관으로 직접 쏟아져 들어오는, 초감각적인 경험이었다. 수십억 개의 데이터 스트림이 빛의 강물처럼 흘러다니고, 복잡한 보안 알고리즘들이 거대한 성벽처럼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표진석은 강윤의 심리를 읽었다고 자만했지만, 단 하나 간과한 것이 있었다. 강윤의 각성한 능력이 단순히 물건을 움직이는 물리적 염력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시간의 공허를 경험하고 돌아온 강윤은, 이제 물질의 근원을 넘어 정보의 구조 자체를 이해하고 간섭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찾아라. 이 시스템의 중추신경을. 논리의 허점을.'
강윤의 의지는 날카로운 송곳이 되어 서버의 방화벽을 찢고 들어갔다. 표진석이 자랑하던 양자 암호 체계도, 다중 보안 프로토콜도 강윤의 의지 앞에서는 얇은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 그는 데이터의 미로를 빛의 속도로 질주하며 시스템의 가장 깊은 곳, 커널(Kernel) 영역으로 침투했다. 그곳에는 연구소 전체를 통제하는 인공지능 '마더(Mother)'의 코드가 펄떡이는 심장처럼 붉게 빛나고 있었다.
[경고. 미확인 침입 감지. 방어 프로토콜 가동.]
가상 공간 속에서 '마더'가 강윤의 의식을 거부하며 수천 개의 데이터 가시를 쏘아 보냈다. 현실 세계의 강윤의 코에서 검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뇌가 타버릴 듯한 고통이 엄습했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내 앞에서… 꺼져!"
강윤은 자신의 염력을 미세한 전기 신호로 변환하여 '마더'의 코드에 직접 쑤셔 넣었다. 그것은 해킹이라는 우아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무자비한 데이터의 재작성이었다. 그는 '마더'의 논리 회로를 강제로 뜯어고치고, 관리자 권한을 찬탈했다.
[시스템 오류 발생. 치명적인 논리 충돌. 관리자 권한 강제 재설정. 새로운 관리자 인식: Kang-Yoon.]
갑자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표진석의 웃음소리가 뚝 끊겼다. 지지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기계적인 여성의 음성이 연구소 전체에 울려 퍼졌다.
"뭐, 뭐냐! 시스템이 왜 이래! 통제권이 왜 넘어간 거야! 당장 복구해!"
스피커 너머로 당황한 표진석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완벽했던 계획에 처음으로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지호야, 지금이야! 내가 보안 프로토콜을 일시적으로 마비시켰어. 유압 장치의 제어권도 가져왔어. 10초! 그 안에 탈출해야 해!"
강윤의 외침과 동시에, 꿈쩍도 않던 육중한 강철 문이 '쿠구구궁-' 하는 지축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강제로 개방되었다. 동시에 연구소 내부의 모든 조명이 꺼지고, 오직 붉은색 비상 유도등만이 핏줄처럼 희미하게 켜졌다.
"가자!"
두 사람은 열린 문틈으로 몸을 날렸다. 복도에는 이미 진입을 준비하고 있던 수십 명의 무장 병력들이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정전과 통신 두절에 당황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암흑은 강윤과 지호에게 최고의 은폐막이 되어주었다.
"길을 뚫는다."
강윤은 손을 뻗어 복도 천장에 설치된 스프링클러 배관과 소화전 배관을 동시에 터뜨렸다. '푸슈슈슈-' 하는 소리와 함께 강력한 수압의 물줄기와 소화액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병력들은 시야를 잃고 미끄러지며 혼란에 빠졌다. 그 틈을 타 두 사람은 어둠 속의 유령처럼 병력들 사이를 빠져나가 비상계단을 향해 질주했다.
하지만 표진석은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들이 1층 로비에 다다랐을 때, 천장의 강화 유리가 와장창 깨지며 거대한 그림자 세 개가 굉음과 함께 바닥으로 낙하했다.
쿵! 쿵! 쿵!
바닥의 대리석 타일이 박살 나며 먼지 구름이 피어올랐다.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표진석이 숨겨두었던 히든카드, 전투형 안드로이드 '타이탄' 세 기였다. 2.5미터가 넘는 거대한 금속 덩어리, 유압 실린더가 움직일 때마다 들리는 소름 끼치는 기계음, 그리고 머리 부분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색 모노아이 센서는 압도적인 공포 그 자체였다.
"침입자 발견. 말살 모드 가동. 타겟: 차강윤, 표지호."
타이탄의 팔에 장착된 6열 개틀링 건이 '위이잉-' 소리를 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젠장! 엎드려!"
강윤이 소리치며 양손을 뻗어 염력 방어막을 펼쳤다.
두두두두두두두!
개틀링 건이 불을 뿜으며 수천 발의 탄환을 쏟아냈다. 염력 방어막 위로 빗발치는 총알들이 튕겨 나가며 불꽃놀이처럼 사방으로 튀었다. 하지만 이번 상대는 드론이 아니었다. 중화기의 막강한 화력은 강윤의 방어막을 순식간에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방어막이 깨질 듯 위태롭게 흔들렸고, 그 충격은 고스란히 강윤의 뇌로 전달되었다. 서버 해킹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 탓에, 강윤의 코와 입에서 동시에 피가 터져 나왔다. 시야가 핑 돌며 무릎이 꺾였다.
"강윤아!"
지호가 강윤을 부축하려 했지만, 화력은 점점 더 거세졌다. 타이탄 한 기가 어깨에 장착된 로켓 런처를 겨누었다.
"젠장, 여기서 끝인가…!"
지호가 절망적으로 중얼거리며 눈을 질끈 감는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앙-!
어디선가 날아온 푸른빛의 섬광이 선두에 있던 타이탄의 머리 부분을 정확히 강타했다. 일반적인 포탄이 아니었다. 고주파 진동을 일으키는 특수 충격탄이었다. 머리가 반쯤 날아간 타이탄은 격렬하게 스파크를 튀기며, 마치 거대한 고목이 쓰러지듯 앞으로 고꾸라졌다.
남은 두 기의 타이탄이 공격 방향을 돌리려는 찰나, 로비의 양쪽 창문이 깨지며 검은색 전술 슈트를 입은 정체불명의 인물 다섯 명이 레펠을 타고 난입했다. 그들의 동작은 군더더기 없이 완벽했다. 그들은 착지와 동시에 연막탄을 터뜨리고, 특수 제작된 EMP 수류탄을 타이탄들의 다리 사이로 굴려 넣었다.
파직! 파지직!
강력한 전자기 펄스가 터지며 타이탄들의 회로가 타버렸다. 거대한 기계 괴물들이 일순간에 작동을 멈추고 고철 덩어리처럼 굳어버렸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누군가 강윤과 지호의 팔을 낚아챘다.
"살고 싶으면 따라와요. 설명은 나중에."
헬멧을 쓴 인물은 기계적으로 변조된 목소리로 짧게 말하고는, 두 사람을 이끌고 건물 뒤편 하수구와 연결된 비밀 통로로 달렸다. 그들은 복잡한 미로 같은 지하 수로를 지나, 연구소 외곽의 숲속 도로로 빠져나왔다. 그곳에는 엔진 시동을 켜놓은 검은색 무광 밴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밴의 슬라이딩 도어가 열리자마자 두 사람은 짐짝처럼 안으로 던져졌다. 차는 맹렬한 속도로 출발하여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표진석의 추격대가 숲으로 진입했을 때, 그곳에는 타이어 자국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한참을 달려 도심의 불빛마저 희미해진 어느 폐공장 단지에 이르러서야 밴이 멈췄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인물이 천천히 헬멧을 벗었다. 날카로운 눈매와 단호한 입술,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강윤의 어머니를 닮은 분위기를 풍기는 30대 초반의 여성이었다. 그녀의 눈빛은 강인했지만, 강윤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깊은 슬픔과 안도가 섞여 있었다.
"늦어서 미안해요. 표진석의 감시망이 생각보다 촘촘해서, 뚫는 데 시간이 좀 걸렸거든요."
강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피 묻은 입가를 닦았다.
"당신은… 대체 누구죠? 왜 우리를 구해준 겁니까?"
여성은 백미러로 강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짧고 명확하게 대답했다.
"민서영. 당신 어머니, 서지윤 박사님의 옛 제자이자… 당신 부모님의 유지를 이어받아 알키미스트와 싸우고 있는 레지스탕스, '새벽'의 리더입니다."
'새벽'. 강윤은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얼어붙어 있던 심장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뜨거움이 울컥하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이자, 부모님의 흔적을 찾았다는 그리움이었다.
민서영은 그들을 버려진 방직 공장 지하를 개조한 비밀 기지로 데려갔다. 겉보기엔 폐허였지만, 내부는 최첨단 장비로 가득 찬 작전 통제실이었다. 수십 명의 요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벽면 가득한 모니터에는 표진석과 배후 세력인 '알키미스트 재단'의 자금 흐름, 거점 정보, 그리고 강윤의 생체 데이터가 빼곡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민서영은 강윤을 자신의 사무실로 데려가 책상 위에 놓인 낡은 앨범 하나를 펼쳤다. 그 속에는 젊은 시절의 서지윤과, 앳된 얼굴의 민서영이 연구 가운을 입고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다. 사진 속의 어머니는 강윤이 기억하는 모습보다 훨씬 젊고, 희망에 차 있었다.
"박사님은 당신을 낳기 전부터 '제노-7' 프로젝트의 위험성을 경고하셨어요. 인간을 무기로 만드는 비인도적인 실험에 반대하셨죠. 그리고 만약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훗날 태어날 당신을 지켜달라고 제게 부탁하셨습니다. 17년 전 그 화재 사건 이후… 저는 줄곧 당신을 찾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표진석이 당신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숨겨둔 탓에 접근할 수가 없었어요."
민서영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는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서 낡은, 하지만 관리가 잘 된 금속 메모리 칩 하나를 꺼내 강윤에게 건넸다.
"이건 서지윤 박사님이 돌아가시기 직전, 목숨을 걸고 빼돌려 제게 맡기신 마지막 유산입니다. 이 안에는 '제노-7'의 모든 데이터와 함께, 당신의 능력, 그 불안정한 힘의 부작용을 억제하고 안정화시킬 수 있는 '리미터 해제 코드'와 특수 훈련 프로그램이 들어있어요."
강윤은 떨리는 손으로 메모리 칩을 받아들었다. 차가운 금속 조각에서 설명할 수 없는 어머니의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박사님은 당신이 괴물이 되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 누구보다 강하지만, 스스로 힘을 통제하고 사람을 지키는 온전한 인간으로 살기를 바라셨어요. 강윤 씨, 표진석은 당신을 실험체로 보지만, 우리는 당신을 이 지옥 같은 싸움을 끝낼 '희망'으로 봅니다."
민서영이 굳은살 박인 손을 내밀었다.
"우리와 함께 싸워주겠습니까? 당신의 힘과 우리의 정보가 합쳐진다면, 표진석뿐만 아니라 그 뒤에 숨어있는 알키미스트 재단까지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강윤은 자신의 손에 들린 칩과 민서영의 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는 혼자만의 외롭고 처절한 복수극이었다. 감정을 버리고 스스로 괴물이 되어야만 했던 싸움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그에게는 부모님의 유지가 있었고, 믿을 수 있는 동료들이 생겼다.
옆에 있던 지호가 먼저 다가와 강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강윤아. 이제 혼자가 아니야. 우리 같이 끝내자. 내 아버지… 아니, 저 괴물들을."
강윤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동자에 서려 있던 공허함과 살기는 사라지고, 대신 깊고 묵직한, 흔들리지 않는 결의가 차올랐다. 그는 민서영의 손을 굳게 맞잡았다.
"표진석, 그리고 알키미스트… 그들의 모든 것을 무너뜨리겠습니다. 제 손으로, 그리고 우리의 힘으로. 더 이상의 비극은 없습니다."
어둠 속에서 새로운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소년들의 반격은 이제 조직적인 전쟁으로 확대되었고, 그들의 칼끝은 표진석을 넘어 더 거대한 악의 심장을 정조준하고 있었다. 강윤의 손에 쥐어진 '리미터 해제 코드'가 희미하게 푸른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진정한 각성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지하 실험실의 차가운 공기는 그 소리에 공명하며 섬뜩하게 진동했다. '철컹, 콰앙!' 육중한 강철 격벽들이 연달아 닫히는 소리가 마치 사형 집행을 알리는 망치 소리처럼 귓가를 때렸다. 붉은 비상등이 심장 박동처럼 불규칙하게 깜박이며 강윤과 지호의 창백한 얼굴을 비췄다. 산소가 희박해지는 듯한 압박감, 모든 퇴로가 차단된 밀실의 공포가 그들의 목을 조여왔다. 이곳은 연구실이 아니었다. 표진석이 오직 그들을 위해 준비한 거대한 강철 관이었다.
지호는 패닉에 빠져 출입문 제어 패널에 매달렸다. 그의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렸지만, 모니터에는 붉은색 [ACCESS DENIED (접근 거부)] 메시지만이 잔인하게 떠올랐다.
"강윤아, 어떡해? 이 문… 해킹으로도 안 열려! 소프트웨어적인 잠금이 아니야. 외부에서 유압 장치를 물리적으로 차단해버렸어! 하드웨어적인 봉쇄라고! 여기서 나갈 방법이 없어!"
지호의 목소리는 절망으로 갈라졌다. 이마에서 흐른 식은땀이 눈으로 들어가 따가웠지만, 그는 닦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지만, 결국은 아버지의 손바닥 안이었다는 무력감이 그를 짓눌렀다.
하지만 강윤은 달랐다. 그의 푸른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더욱 선명하고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공포에 질리는 대신, 사냥꾼의 냉혹한 눈으로 이 강철 감옥의 구조를 뜯어보고 있었다.
"아직… 축하받기는 일러."
강윤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는 패배자의 비탄 대신, 판을 뒤집으려는 승부사의 서늘한 살기가 서려 있었다.
"물리적으로 닫혀 있다면, 논리적으로 열면 돼. 이 시스템의 심장을 멈추게 한다."
강윤은 서버실 중앙에 우뚝 솟은 메인 서버, '블랙 모노리스'라 불리는 거대한 검은색 기둥에 양손을 얹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순간, 그는 눈을 감았다.
그 즉시, 강윤의 뇌리에 현실 세계가 지워지고 거대한 데이터의 바다가 펼쳐졌다.
그것은 시각적인 환영이 아니었다. 0과 1로 이루어진 정보의 우주가 그의 감각 기관으로 직접 쏟아져 들어오는, 초감각적인 경험이었다. 수십억 개의 데이터 스트림이 빛의 강물처럼 흘러다니고, 복잡한 보안 알고리즘들이 거대한 성벽처럼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표진석은 강윤의 심리를 읽었다고 자만했지만, 단 하나 간과한 것이 있었다. 강윤의 각성한 능력이 단순히 물건을 움직이는 물리적 염력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시간의 공허를 경험하고 돌아온 강윤은, 이제 물질의 근원을 넘어 정보의 구조 자체를 이해하고 간섭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찾아라. 이 시스템의 중추신경을. 논리의 허점을.'
강윤의 의지는 날카로운 송곳이 되어 서버의 방화벽을 찢고 들어갔다. 표진석이 자랑하던 양자 암호 체계도, 다중 보안 프로토콜도 강윤의 의지 앞에서는 얇은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 그는 데이터의 미로를 빛의 속도로 질주하며 시스템의 가장 깊은 곳, 커널(Kernel) 영역으로 침투했다. 그곳에는 연구소 전체를 통제하는 인공지능 '마더(Mother)'의 코드가 펄떡이는 심장처럼 붉게 빛나고 있었다.
[경고. 미확인 침입 감지. 방어 프로토콜 가동.]
가상 공간 속에서 '마더'가 강윤의 의식을 거부하며 수천 개의 데이터 가시를 쏘아 보냈다. 현실 세계의 강윤의 코에서 검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뇌가 타버릴 듯한 고통이 엄습했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내 앞에서… 꺼져!"
강윤은 자신의 염력을 미세한 전기 신호로 변환하여 '마더'의 코드에 직접 쑤셔 넣었다. 그것은 해킹이라는 우아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무자비한 데이터의 재작성이었다. 그는 '마더'의 논리 회로를 강제로 뜯어고치고, 관리자 권한을 찬탈했다.
[시스템 오류 발생. 치명적인 논리 충돌. 관리자 권한 강제 재설정. 새로운 관리자 인식: Kang-Yoon.]
갑자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표진석의 웃음소리가 뚝 끊겼다. 지지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기계적인 여성의 음성이 연구소 전체에 울려 퍼졌다.
"뭐, 뭐냐! 시스템이 왜 이래! 통제권이 왜 넘어간 거야! 당장 복구해!"
스피커 너머로 당황한 표진석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완벽했던 계획에 처음으로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지호야, 지금이야! 내가 보안 프로토콜을 일시적으로 마비시켰어. 유압 장치의 제어권도 가져왔어. 10초! 그 안에 탈출해야 해!"
강윤의 외침과 동시에, 꿈쩍도 않던 육중한 강철 문이 '쿠구구궁-' 하는 지축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강제로 개방되었다. 동시에 연구소 내부의 모든 조명이 꺼지고, 오직 붉은색 비상 유도등만이 핏줄처럼 희미하게 켜졌다.
"가자!"
두 사람은 열린 문틈으로 몸을 날렸다. 복도에는 이미 진입을 준비하고 있던 수십 명의 무장 병력들이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정전과 통신 두절에 당황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암흑은 강윤과 지호에게 최고의 은폐막이 되어주었다.
"길을 뚫는다."
강윤은 손을 뻗어 복도 천장에 설치된 스프링클러 배관과 소화전 배관을 동시에 터뜨렸다. '푸슈슈슈-' 하는 소리와 함께 강력한 수압의 물줄기와 소화액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병력들은 시야를 잃고 미끄러지며 혼란에 빠졌다. 그 틈을 타 두 사람은 어둠 속의 유령처럼 병력들 사이를 빠져나가 비상계단을 향해 질주했다.
하지만 표진석은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들이 1층 로비에 다다랐을 때, 천장의 강화 유리가 와장창 깨지며 거대한 그림자 세 개가 굉음과 함께 바닥으로 낙하했다.
쿵! 쿵! 쿵!
바닥의 대리석 타일이 박살 나며 먼지 구름이 피어올랐다.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표진석이 숨겨두었던 히든카드, 전투형 안드로이드 '타이탄' 세 기였다. 2.5미터가 넘는 거대한 금속 덩어리, 유압 실린더가 움직일 때마다 들리는 소름 끼치는 기계음, 그리고 머리 부분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색 모노아이 센서는 압도적인 공포 그 자체였다.
"침입자 발견. 말살 모드 가동. 타겟: 차강윤, 표지호."
타이탄의 팔에 장착된 6열 개틀링 건이 '위이잉-' 소리를 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젠장! 엎드려!"
강윤이 소리치며 양손을 뻗어 염력 방어막을 펼쳤다.
두두두두두두두!
개틀링 건이 불을 뿜으며 수천 발의 탄환을 쏟아냈다. 염력 방어막 위로 빗발치는 총알들이 튕겨 나가며 불꽃놀이처럼 사방으로 튀었다. 하지만 이번 상대는 드론이 아니었다. 중화기의 막강한 화력은 강윤의 방어막을 순식간에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방어막이 깨질 듯 위태롭게 흔들렸고, 그 충격은 고스란히 강윤의 뇌로 전달되었다. 서버 해킹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 탓에, 강윤의 코와 입에서 동시에 피가 터져 나왔다. 시야가 핑 돌며 무릎이 꺾였다.
"강윤아!"
지호가 강윤을 부축하려 했지만, 화력은 점점 더 거세졌다. 타이탄 한 기가 어깨에 장착된 로켓 런처를 겨누었다.
"젠장, 여기서 끝인가…!"
지호가 절망적으로 중얼거리며 눈을 질끈 감는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앙-!
어디선가 날아온 푸른빛의 섬광이 선두에 있던 타이탄의 머리 부분을 정확히 강타했다. 일반적인 포탄이 아니었다. 고주파 진동을 일으키는 특수 충격탄이었다. 머리가 반쯤 날아간 타이탄은 격렬하게 스파크를 튀기며, 마치 거대한 고목이 쓰러지듯 앞으로 고꾸라졌다.
남은 두 기의 타이탄이 공격 방향을 돌리려는 찰나, 로비의 양쪽 창문이 깨지며 검은색 전술 슈트를 입은 정체불명의 인물 다섯 명이 레펠을 타고 난입했다. 그들의 동작은 군더더기 없이 완벽했다. 그들은 착지와 동시에 연막탄을 터뜨리고, 특수 제작된 EMP 수류탄을 타이탄들의 다리 사이로 굴려 넣었다.
파직! 파지직!
강력한 전자기 펄스가 터지며 타이탄들의 회로가 타버렸다. 거대한 기계 괴물들이 일순간에 작동을 멈추고 고철 덩어리처럼 굳어버렸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누군가 강윤과 지호의 팔을 낚아챘다.
"살고 싶으면 따라와요. 설명은 나중에."
헬멧을 쓴 인물은 기계적으로 변조된 목소리로 짧게 말하고는, 두 사람을 이끌고 건물 뒤편 하수구와 연결된 비밀 통로로 달렸다. 그들은 복잡한 미로 같은 지하 수로를 지나, 연구소 외곽의 숲속 도로로 빠져나왔다. 그곳에는 엔진 시동을 켜놓은 검은색 무광 밴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밴의 슬라이딩 도어가 열리자마자 두 사람은 짐짝처럼 안으로 던져졌다. 차는 맹렬한 속도로 출발하여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표진석의 추격대가 숲으로 진입했을 때, 그곳에는 타이어 자국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한참을 달려 도심의 불빛마저 희미해진 어느 폐공장 단지에 이르러서야 밴이 멈췄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인물이 천천히 헬멧을 벗었다. 날카로운 눈매와 단호한 입술,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강윤의 어머니를 닮은 분위기를 풍기는 30대 초반의 여성이었다. 그녀의 눈빛은 강인했지만, 강윤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깊은 슬픔과 안도가 섞여 있었다.
"늦어서 미안해요. 표진석의 감시망이 생각보다 촘촘해서, 뚫는 데 시간이 좀 걸렸거든요."
강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피 묻은 입가를 닦았다.
"당신은… 대체 누구죠? 왜 우리를 구해준 겁니까?"
여성은 백미러로 강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짧고 명확하게 대답했다.
"민서영. 당신 어머니, 서지윤 박사님의 옛 제자이자… 당신 부모님의 유지를 이어받아 알키미스트와 싸우고 있는 레지스탕스, '새벽'의 리더입니다."
'새벽'. 강윤은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얼어붙어 있던 심장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뜨거움이 울컥하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이자, 부모님의 흔적을 찾았다는 그리움이었다.
민서영은 그들을 버려진 방직 공장 지하를 개조한 비밀 기지로 데려갔다. 겉보기엔 폐허였지만, 내부는 최첨단 장비로 가득 찬 작전 통제실이었다. 수십 명의 요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벽면 가득한 모니터에는 표진석과 배후 세력인 '알키미스트 재단'의 자금 흐름, 거점 정보, 그리고 강윤의 생체 데이터가 빼곡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민서영은 강윤을 자신의 사무실로 데려가 책상 위에 놓인 낡은 앨범 하나를 펼쳤다. 그 속에는 젊은 시절의 서지윤과, 앳된 얼굴의 민서영이 연구 가운을 입고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다. 사진 속의 어머니는 강윤이 기억하는 모습보다 훨씬 젊고, 희망에 차 있었다.
"박사님은 당신을 낳기 전부터 '제노-7' 프로젝트의 위험성을 경고하셨어요. 인간을 무기로 만드는 비인도적인 실험에 반대하셨죠. 그리고 만약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훗날 태어날 당신을 지켜달라고 제게 부탁하셨습니다. 17년 전 그 화재 사건 이후… 저는 줄곧 당신을 찾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표진석이 당신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숨겨둔 탓에 접근할 수가 없었어요."
민서영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는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서 낡은, 하지만 관리가 잘 된 금속 메모리 칩 하나를 꺼내 강윤에게 건넸다.
"이건 서지윤 박사님이 돌아가시기 직전, 목숨을 걸고 빼돌려 제게 맡기신 마지막 유산입니다. 이 안에는 '제노-7'의 모든 데이터와 함께, 당신의 능력, 그 불안정한 힘의 부작용을 억제하고 안정화시킬 수 있는 '리미터 해제 코드'와 특수 훈련 프로그램이 들어있어요."
강윤은 떨리는 손으로 메모리 칩을 받아들었다. 차가운 금속 조각에서 설명할 수 없는 어머니의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박사님은 당신이 괴물이 되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 누구보다 강하지만, 스스로 힘을 통제하고 사람을 지키는 온전한 인간으로 살기를 바라셨어요. 강윤 씨, 표진석은 당신을 실험체로 보지만, 우리는 당신을 이 지옥 같은 싸움을 끝낼 '희망'으로 봅니다."
민서영이 굳은살 박인 손을 내밀었다.
"우리와 함께 싸워주겠습니까? 당신의 힘과 우리의 정보가 합쳐진다면, 표진석뿐만 아니라 그 뒤에 숨어있는 알키미스트 재단까지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강윤은 자신의 손에 들린 칩과 민서영의 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는 혼자만의 외롭고 처절한 복수극이었다. 감정을 버리고 스스로 괴물이 되어야만 했던 싸움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그에게는 부모님의 유지가 있었고, 믿을 수 있는 동료들이 생겼다.
옆에 있던 지호가 먼저 다가와 강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강윤아. 이제 혼자가 아니야. 우리 같이 끝내자. 내 아버지… 아니, 저 괴물들을."
강윤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동자에 서려 있던 공허함과 살기는 사라지고, 대신 깊고 묵직한, 흔들리지 않는 결의가 차올랐다. 그는 민서영의 손을 굳게 맞잡았다.
"표진석, 그리고 알키미스트… 그들의 모든 것을 무너뜨리겠습니다. 제 손으로, 그리고 우리의 힘으로. 더 이상의 비극은 없습니다."
어둠 속에서 새로운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소년들의 반격은 이제 조직적인 전쟁으로 확대되었고, 그들의 칼끝은 표진석을 넘어 더 거대한 악의 심장을 정조준하고 있었다. 강윤의 손에 쥐어진 '리미터 해제 코드'가 희미하게 푸른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진정한 각성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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