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회
조회 : 55 추천 : 0 글자수 : 5,848 자 2025-12-25
마지막회
쿠구구구궁!
강윤의 최후의 일격인 보랏빛 에너지 포격이 중앙 통제실의 심장부를 강타하자, 지하 기지 전체가 거대한 지진이라도 난 듯 요동쳤다. 수십 년간 굳건히 버텨온 티타늄 기둥들이 비명을 지르며 엿가락처럼 휘어졌고, 천장의 강화 유리가 굉음을 내며 깨져 불꽃처럼 쏟아져 내렸다. 자욱한 흙먼지가 폭풍처럼 일어 시야를 가렸고, 곳곳에서 연쇄적인 폭발음이 고막을 찢었다.
"무너진다! 전원, 즉시 탈출하라! 이건 훈련 상황이 아니다!"
민서영이 무전기에 대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요원들은 부상당한 동료들을 부축하며, 무너지는 잔해를 피해 필사적으로 비상구를 향해 달렸다. 하지만 강윤은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오메가의 거대한 에너지를 흡수하고, 다시 그것을 자신의 힘으로 변환하여 방출하는 과정에서 '프로젝트 제로' 슈트에 치명적인 과부하가 걸렸기 때문이다. 슈트 곳곳에서 붉은 경고등이 번쩍이며 스파크가 튀었고, 강윤의 시야는 텔레비전 노이즈처럼 지직거렸다.
"강윤아! 일어나! 여기서 멈추면 안 돼!"
지호가 달려와 강윤을 부축했다. 강윤의 몸은 용광로처럼 뜨거웠고, 피부는 열기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지호야… 먼저 가… 난… 좀 쉬어야겠어…"
"웃기지 마! 같이 죽고 같이 산다고 했잖아! 날 두고 혼자 영웅 놀이 할 생각 마!"
지호는 이를 악물고 강윤을 어깨에 메었다. 그의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들의 뒤로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굉음과 함께 떨어져 내리며 퇴로를 막았다.
그들이 간신히 무너지는 중앙 통제실을 빠져나와 비상 통로로 접어들었을 때였다. 기지의 진동이 일순간 멈추고, 꺼진 줄 알았던 스피커에서 낯익은,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미쳐버린 듯한 목소리가 지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들려왔다.
[크크크… 하하하하! 대단하군. 오메가마저 파괴하다니. 정말 놀라워. 내 예상을 뛰어넘는 괴물들이었어.]
표진석이었다. 그는 아직 살아 있었다.
[하지만 너희는 내 계획의 껍데기만 부쉈을 뿐이야. 진정한 '성소', 내 모든 것이 담긴 그곳은 아직 건재하다. 너희에게 내 마지막 비밀을, 그리고 진정한 절망을 보여주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비상 통로의 바닥이 갑자기 꺼졌다.
"으아아악!"
강윤과 지호, 민서영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끝없는 어둠 속으로 추락했다. 마치 롤러코스터가 궤도를 이탈하여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공포였다.
그들이 떨어진 곳은 기지의 가장 깊숙한 지하, 지하 10층도 더 되어 보이는 거대한 지하 공동(空洞)이었다. 그곳은 위쪽의 차가운 연구 시설과는 전혀 다른, 신비롭고도 기괴한 분위기를 풍겼다. 사방이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지만, 공간 중앙에 있는 거대한 수정체 모양의 장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영롱한 푸른빛이 모든 것을 비추고 있었다.
그 수정체 안에는 수많은 튜명한 튜브와 전선에 연결된 채, 마치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평온하게 눈을 감고 있는 한 여자가 떠 있었다. 17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만큼, 그녀는 늙지도 변하지도 않은 채, 마치 어제 잠든 사람처럼 생생한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수정체 앞, 마치 제단처럼 꾸며진 높은 단 위에 표진석이 서 있었다. 그의 몰골은 처참했다. 폭발에 휘말렸는지 얼굴 반쪽이 화상으로 흉측하게 일그러져 붉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고, 검은 코트는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만은 광기로 번들거리며, 마치 지옥에서 돌아온 악귀처럼 빛나고 있었다.
"어서 와라. 내 진짜 성소에 온 것을 환영한다. 이곳이 바로…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다."
표진석의 목소리가 거대한 공동에 울려 퍼졌다.
"저… 저분은…?"
민서영이 수정체 속의 여자를 보고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는 그 얼굴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의 낡은 앨범 속에서, 그리고 강윤의 부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 속에서 늘 환하게 웃고 있던 그 얼굴. 네오젠 연구소의 또 다른 천재, 한정민 박사였다.
"지호야, 저분은… 네 어머니잖아?"
강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지호를 바라보았다. 지호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그는 어머니가 자신이 아주 어릴 때 병으로 돌아가셨다고만 알고 있었다. 장례식도 치르지 못하고 급히 화장했다는 아버지의 말만 철썩같이 믿고 살아왔던 것이다.
"어머니…? 엄마가 왜… 여기에…?"
"그래. 내 아내이자, 네 어머니. 그리고 한때는 차태주, 서지윤과 함께 이 세상을 바꿀 뻔했던 비운의 천재, 한정민 박사다."
표진석은 화상 입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미친 듯이 웃었다.
"거짓말… 거짓말이야! 우리 엄마는… 병으로 돌아가셨어! 아버지가 그랬잖아요! 내가 어릴 때, 내 손을 잡고 울면서 그랬잖아요!"
"육체적으로는 죽었지. 17년 전, 그 빌어먹을 화재 사건 때, 그녀는 어리석게도 차태주 부부를 구하려다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뇌사 상태에 빠졌지. 의사들은 가망이 없다고, 장례를 준비하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내 아내를 사랑했다. 그녀 없이는 나도, 내 연구도, 이 세상도 아무 의미가 없었어! 그녀가 없는 세상은 내게 지옥일 뿐이야!"
표진석의 목소리가 절규처럼 울려 퍼졌다. 그의 눈에서 광기 어린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맹세했다. 신이 버린 그녀를, 과학의 힘으로 내가 되살려내겠다고. 내 모든 연구, '프로젝트 프로메테우스', 제노-7… 이 모든 것은 오직 그녀를 되살리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인류의 진화? 세계 정복? 웃기지 마라. 그런 건 내 아내의 손톱만큼의 가치도 없어! 너희가 지키려던 평화도, 정의도, 내 사랑 앞에서는 쓰레기일 뿐이야!"
그의 광적인 외침에 강윤은 소름이 돋았다. 모든 진실이 밝혀졌다. 인류를 위한 척 포장했던 그의 거대한 야망 뒤에는, 한 여자를 향한 맹목적이고 뒤틀린 집착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었고,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다.
"아버지… 그래서… 그래서 저를… 강윤이를… 이 모든 짓을…?"
지호는 오열했다.
"그래! 강윤이는 완벽한 '배터리'였다. 녀석의 몸에 흐르는 순수한 제노-7 에너지만이 아내의 멈춰버린 뇌세포를 다시 깨울 수 있었으니까. 일반적인 전기나 약물로는 불가능해. 생명 그 자체의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리고 너, 지호야. 너는 내 아내의 유전자를 가진 유일한 혈육이자,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스페어'였다."
"스페어…?"
"강윤의 에너지를 추출해서 아내에게 주입할 때, 유전적 거부 반응을 막기 위한 '필터'. 그게 너의 역할이었다. 네가 태어난 이유도, 내가 너를 지금까지 살려둔 이유도 오직 그것뿐이야! 넌 아들이 아니라, 부품이었다!"
"당신은… 미쳤어. 당신은 아버지가 아니야. 괴물이야!"
지호가 비명을 지르며 아버지에게 달려들려 했다.
"가까이 오지 마라!"
표진석이 품에서 리모컨을 꺼내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수정체 주변에서 '파지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강력한 전류가 흐르며 투명한 방어막이 형성되었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강윤이 네가 오메가의 에너지를 흡수한 덕분에, 네 몸 안에는 지금 상상을 초월하는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지. 그게 바로 내가 원하던 바다! 오메가는 너를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너를 완성시키기 위한 제물이었다! 이제 네 몸을 통째로 갈아 넣어, 내 아내를 신으로 부활시킬 것이다!"
표진석이 광소하며 단 아래의 거대한 레버를 당겼다. 그러자 수정체와 연결된 거대한 기계 장치들이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강윤의 '프로젝트 제로' 슈트가 붉게 변하며 강제로 제어권을 뺏겼다. 슈트가 강윤의 몸을 옭아매며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으아아악!"
강윤의 몸에서 푸른 에너지가 강제로 추출되어, 굵은 튜브를 타고 수정체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했다.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뼈가 으스러지고 영혼이 빨대처럼 빨려 나가는 듯한 끔찍한 느낌이었다.
"강윤아!"
지호와 민서영이 달려들었지만, 어디선가 나타난 기계 촉수들이 그들을 휘감아 벽에 고정시켰다.
"지켜봐라. 새로운 여신이 탄생하는 순간을!"
표진석은 환희에 찬 표정으로 수정체를 바라보았다. 수정체 속의 여자가 미세하게 눈꺼풀을 떨기 시작했다. 창백했던 뺨에 혈색이 돌고 있었다.
"안 돼… 이대로는…!"
강윤은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하지만 슈트는 이미 표진석의 제어 하에 있었다. 에너지가 빠져나갈수록 강윤의 생명력은 꺼져가는 촛불처럼 위태로워졌다. 시야가 점점 어두워졌다.
그때였다.
[강윤아… 들리니?]
어디선가 따뜻하고 그리운 목소리가 강윤의 의식 속에 울려 퍼졌다.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아니, 그것은 단순한 환청이 아니었다. 슈트의 깊은 곳, 아버지 차태주가 표진석조차 모르게 숨겨놓은 또 다른 히든 코드가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프로젝트 제로' 최종 단계: 오버로드(Overload). 에너지의 주인을 바꾸어라. 흐름을 역류시켜라.]
강윤은 깨달았다. 아버지는 표진석이 강윤의 힘을 이용하려 할 것까지 예측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힘을 역이용해 시스템 전체를 파괴할 수 있는 자폭 코드를 심어놓았던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최후의 안전장치를 마련해둔 것이다.
하지만 그 코드를 실행하면, 강윤 자신도 무사할 수 없었다. 거대한 에너지 폭발의 중심에 서야 하기 때문이었다.
강윤은 고개를 돌려 벽에 묶인 지호와 민서영, 그리고 저 멀리 어둠 속에 있을,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다솜을 생각했다.
'미안해… 약속은… 지키지 못할 것 같아.'
강윤은 눈을 감고, 마지막 힘을 다해 슈트의 코드를 재작성했다.
"표진석! 네가 원하던 에너지… 다 가져가라! 하지만 그 대가는… 네 모든 것의 파멸이다!"
"뭐라고?"
표진석이 당황하는 순간, 강윤의 몸에서 수정체로 흘러나가던 에너지가 역류하기 시작했다. 푸른빛이 아닌, 눈부신 백색의 빛이 강윤의 몸을 감쌌다.
"오버로드, 개시!"
콰아아아아아아!
수정체로 흘러들어 가던 에너지가 폭주하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수정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쩡! 쩡!'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에 균열이 갔다.
"안 돼! 내 아내! 멈춰! 멈추란 말이야!"
표진석이 비명을 지르며 제어판으로 달려들었지만, 폭발의 충격파가 그를 덮쳤다. 그는 허공으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지호야! 민 실장님! 지금이에요! 도망쳐요!"
강윤이 마지막 힘을 다해 염력을 발산하여 기계 촉수들을 파괴했다. 지호와 민서영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강윤아! 너는!"
"난… 여기서 끝내야 해. 이걸 멈추면 다시 에너지가 표진석에게 넘어갈 거야. 내가 잡고 있어야 해. 어서 가!"
지호는 울부짖으며 강윤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민서영이 그를 낚아채고 억지로 비상구로 끌고 갔다. 거대한 붕괴가 시작되었다. 천장이 무너지고 바닥이 갈라졌다. 지하수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강윤은 무너져가는 성소의 중심에서, 깨져버린 수정체 속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을 뜨지 못했지만, 마치 미소 짓는 것처럼 평온해 보였다. 그녀의 몸은 서서히 빛으로 변해 흩어지고 있었다.
'죄송해요… 하지만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어요. 부디 편히 쉬세요.'
강윤은 눈을 감았다. 거대한 빛이 그를 집어삼켰다. 모든 것이 하얗게 변해갔다. 뜨거움도, 고통도 사라지고, 오직 평온함만이 남았다.
'엄마, 아빠. 저… 잘한 거죠?'
길고 길었던 싸움이, 소년의 희생과 함께 막을 내리고 있었다. 지하 깊은 곳에서 거대한 섬광이 터져 나오며 네오젠 연구소의 폐허를 완전히 집어삼켰다. 그것은 끝이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빛이었다.
END
쿠구구구궁!
강윤의 최후의 일격인 보랏빛 에너지 포격이 중앙 통제실의 심장부를 강타하자, 지하 기지 전체가 거대한 지진이라도 난 듯 요동쳤다. 수십 년간 굳건히 버텨온 티타늄 기둥들이 비명을 지르며 엿가락처럼 휘어졌고, 천장의 강화 유리가 굉음을 내며 깨져 불꽃처럼 쏟아져 내렸다. 자욱한 흙먼지가 폭풍처럼 일어 시야를 가렸고, 곳곳에서 연쇄적인 폭발음이 고막을 찢었다.
"무너진다! 전원, 즉시 탈출하라! 이건 훈련 상황이 아니다!"
민서영이 무전기에 대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요원들은 부상당한 동료들을 부축하며, 무너지는 잔해를 피해 필사적으로 비상구를 향해 달렸다. 하지만 강윤은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오메가의 거대한 에너지를 흡수하고, 다시 그것을 자신의 힘으로 변환하여 방출하는 과정에서 '프로젝트 제로' 슈트에 치명적인 과부하가 걸렸기 때문이다. 슈트 곳곳에서 붉은 경고등이 번쩍이며 스파크가 튀었고, 강윤의 시야는 텔레비전 노이즈처럼 지직거렸다.
"강윤아! 일어나! 여기서 멈추면 안 돼!"
지호가 달려와 강윤을 부축했다. 강윤의 몸은 용광로처럼 뜨거웠고, 피부는 열기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지호야… 먼저 가… 난… 좀 쉬어야겠어…"
"웃기지 마! 같이 죽고 같이 산다고 했잖아! 날 두고 혼자 영웅 놀이 할 생각 마!"
지호는 이를 악물고 강윤을 어깨에 메었다. 그의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들의 뒤로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굉음과 함께 떨어져 내리며 퇴로를 막았다.
그들이 간신히 무너지는 중앙 통제실을 빠져나와 비상 통로로 접어들었을 때였다. 기지의 진동이 일순간 멈추고, 꺼진 줄 알았던 스피커에서 낯익은,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미쳐버린 듯한 목소리가 지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들려왔다.
[크크크… 하하하하! 대단하군. 오메가마저 파괴하다니. 정말 놀라워. 내 예상을 뛰어넘는 괴물들이었어.]
표진석이었다. 그는 아직 살아 있었다.
[하지만 너희는 내 계획의 껍데기만 부쉈을 뿐이야. 진정한 '성소', 내 모든 것이 담긴 그곳은 아직 건재하다. 너희에게 내 마지막 비밀을, 그리고 진정한 절망을 보여주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비상 통로의 바닥이 갑자기 꺼졌다.
"으아아악!"
강윤과 지호, 민서영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끝없는 어둠 속으로 추락했다. 마치 롤러코스터가 궤도를 이탈하여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공포였다.
그들이 떨어진 곳은 기지의 가장 깊숙한 지하, 지하 10층도 더 되어 보이는 거대한 지하 공동(空洞)이었다. 그곳은 위쪽의 차가운 연구 시설과는 전혀 다른, 신비롭고도 기괴한 분위기를 풍겼다. 사방이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지만, 공간 중앙에 있는 거대한 수정체 모양의 장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영롱한 푸른빛이 모든 것을 비추고 있었다.
그 수정체 안에는 수많은 튜명한 튜브와 전선에 연결된 채, 마치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평온하게 눈을 감고 있는 한 여자가 떠 있었다. 17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만큼, 그녀는 늙지도 변하지도 않은 채, 마치 어제 잠든 사람처럼 생생한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수정체 앞, 마치 제단처럼 꾸며진 높은 단 위에 표진석이 서 있었다. 그의 몰골은 처참했다. 폭발에 휘말렸는지 얼굴 반쪽이 화상으로 흉측하게 일그러져 붉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고, 검은 코트는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만은 광기로 번들거리며, 마치 지옥에서 돌아온 악귀처럼 빛나고 있었다.
"어서 와라. 내 진짜 성소에 온 것을 환영한다. 이곳이 바로…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다."
표진석의 목소리가 거대한 공동에 울려 퍼졌다.
"저… 저분은…?"
민서영이 수정체 속의 여자를 보고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는 그 얼굴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의 낡은 앨범 속에서, 그리고 강윤의 부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 속에서 늘 환하게 웃고 있던 그 얼굴. 네오젠 연구소의 또 다른 천재, 한정민 박사였다.
"지호야, 저분은… 네 어머니잖아?"
강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지호를 바라보았다. 지호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그는 어머니가 자신이 아주 어릴 때 병으로 돌아가셨다고만 알고 있었다. 장례식도 치르지 못하고 급히 화장했다는 아버지의 말만 철썩같이 믿고 살아왔던 것이다.
"어머니…? 엄마가 왜… 여기에…?"
"그래. 내 아내이자, 네 어머니. 그리고 한때는 차태주, 서지윤과 함께 이 세상을 바꿀 뻔했던 비운의 천재, 한정민 박사다."
표진석은 화상 입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미친 듯이 웃었다.
"거짓말… 거짓말이야! 우리 엄마는… 병으로 돌아가셨어! 아버지가 그랬잖아요! 내가 어릴 때, 내 손을 잡고 울면서 그랬잖아요!"
"육체적으로는 죽었지. 17년 전, 그 빌어먹을 화재 사건 때, 그녀는 어리석게도 차태주 부부를 구하려다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뇌사 상태에 빠졌지. 의사들은 가망이 없다고, 장례를 준비하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내 아내를 사랑했다. 그녀 없이는 나도, 내 연구도, 이 세상도 아무 의미가 없었어! 그녀가 없는 세상은 내게 지옥일 뿐이야!"
표진석의 목소리가 절규처럼 울려 퍼졌다. 그의 눈에서 광기 어린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맹세했다. 신이 버린 그녀를, 과학의 힘으로 내가 되살려내겠다고. 내 모든 연구, '프로젝트 프로메테우스', 제노-7… 이 모든 것은 오직 그녀를 되살리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인류의 진화? 세계 정복? 웃기지 마라. 그런 건 내 아내의 손톱만큼의 가치도 없어! 너희가 지키려던 평화도, 정의도, 내 사랑 앞에서는 쓰레기일 뿐이야!"
그의 광적인 외침에 강윤은 소름이 돋았다. 모든 진실이 밝혀졌다. 인류를 위한 척 포장했던 그의 거대한 야망 뒤에는, 한 여자를 향한 맹목적이고 뒤틀린 집착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었고,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다.
"아버지… 그래서… 그래서 저를… 강윤이를… 이 모든 짓을…?"
지호는 오열했다.
"그래! 강윤이는 완벽한 '배터리'였다. 녀석의 몸에 흐르는 순수한 제노-7 에너지만이 아내의 멈춰버린 뇌세포를 다시 깨울 수 있었으니까. 일반적인 전기나 약물로는 불가능해. 생명 그 자체의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리고 너, 지호야. 너는 내 아내의 유전자를 가진 유일한 혈육이자,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스페어'였다."
"스페어…?"
"강윤의 에너지를 추출해서 아내에게 주입할 때, 유전적 거부 반응을 막기 위한 '필터'. 그게 너의 역할이었다. 네가 태어난 이유도, 내가 너를 지금까지 살려둔 이유도 오직 그것뿐이야! 넌 아들이 아니라, 부품이었다!"
"당신은… 미쳤어. 당신은 아버지가 아니야. 괴물이야!"
지호가 비명을 지르며 아버지에게 달려들려 했다.
"가까이 오지 마라!"
표진석이 품에서 리모컨을 꺼내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수정체 주변에서 '파지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강력한 전류가 흐르며 투명한 방어막이 형성되었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강윤이 네가 오메가의 에너지를 흡수한 덕분에, 네 몸 안에는 지금 상상을 초월하는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지. 그게 바로 내가 원하던 바다! 오메가는 너를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너를 완성시키기 위한 제물이었다! 이제 네 몸을 통째로 갈아 넣어, 내 아내를 신으로 부활시킬 것이다!"
표진석이 광소하며 단 아래의 거대한 레버를 당겼다. 그러자 수정체와 연결된 거대한 기계 장치들이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강윤의 '프로젝트 제로' 슈트가 붉게 변하며 강제로 제어권을 뺏겼다. 슈트가 강윤의 몸을 옭아매며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으아아악!"
강윤의 몸에서 푸른 에너지가 강제로 추출되어, 굵은 튜브를 타고 수정체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했다.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뼈가 으스러지고 영혼이 빨대처럼 빨려 나가는 듯한 끔찍한 느낌이었다.
"강윤아!"
지호와 민서영이 달려들었지만, 어디선가 나타난 기계 촉수들이 그들을 휘감아 벽에 고정시켰다.
"지켜봐라. 새로운 여신이 탄생하는 순간을!"
표진석은 환희에 찬 표정으로 수정체를 바라보았다. 수정체 속의 여자가 미세하게 눈꺼풀을 떨기 시작했다. 창백했던 뺨에 혈색이 돌고 있었다.
"안 돼… 이대로는…!"
강윤은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하지만 슈트는 이미 표진석의 제어 하에 있었다. 에너지가 빠져나갈수록 강윤의 생명력은 꺼져가는 촛불처럼 위태로워졌다. 시야가 점점 어두워졌다.
그때였다.
[강윤아… 들리니?]
어디선가 따뜻하고 그리운 목소리가 강윤의 의식 속에 울려 퍼졌다.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아니, 그것은 단순한 환청이 아니었다. 슈트의 깊은 곳, 아버지 차태주가 표진석조차 모르게 숨겨놓은 또 다른 히든 코드가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프로젝트 제로' 최종 단계: 오버로드(Overload). 에너지의 주인을 바꾸어라. 흐름을 역류시켜라.]
강윤은 깨달았다. 아버지는 표진석이 강윤의 힘을 이용하려 할 것까지 예측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힘을 역이용해 시스템 전체를 파괴할 수 있는 자폭 코드를 심어놓았던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최후의 안전장치를 마련해둔 것이다.
하지만 그 코드를 실행하면, 강윤 자신도 무사할 수 없었다. 거대한 에너지 폭발의 중심에 서야 하기 때문이었다.
강윤은 고개를 돌려 벽에 묶인 지호와 민서영, 그리고 저 멀리 어둠 속에 있을,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다솜을 생각했다.
'미안해… 약속은… 지키지 못할 것 같아.'
강윤은 눈을 감고, 마지막 힘을 다해 슈트의 코드를 재작성했다.
"표진석! 네가 원하던 에너지… 다 가져가라! 하지만 그 대가는… 네 모든 것의 파멸이다!"
"뭐라고?"
표진석이 당황하는 순간, 강윤의 몸에서 수정체로 흘러나가던 에너지가 역류하기 시작했다. 푸른빛이 아닌, 눈부신 백색의 빛이 강윤의 몸을 감쌌다.
"오버로드, 개시!"
콰아아아아아아!
수정체로 흘러들어 가던 에너지가 폭주하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수정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쩡! 쩡!'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에 균열이 갔다.
"안 돼! 내 아내! 멈춰! 멈추란 말이야!"
표진석이 비명을 지르며 제어판으로 달려들었지만, 폭발의 충격파가 그를 덮쳤다. 그는 허공으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지호야! 민 실장님! 지금이에요! 도망쳐요!"
강윤이 마지막 힘을 다해 염력을 발산하여 기계 촉수들을 파괴했다. 지호와 민서영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강윤아! 너는!"
"난… 여기서 끝내야 해. 이걸 멈추면 다시 에너지가 표진석에게 넘어갈 거야. 내가 잡고 있어야 해. 어서 가!"
지호는 울부짖으며 강윤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민서영이 그를 낚아채고 억지로 비상구로 끌고 갔다. 거대한 붕괴가 시작되었다. 천장이 무너지고 바닥이 갈라졌다. 지하수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강윤은 무너져가는 성소의 중심에서, 깨져버린 수정체 속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을 뜨지 못했지만, 마치 미소 짓는 것처럼 평온해 보였다. 그녀의 몸은 서서히 빛으로 변해 흩어지고 있었다.
'죄송해요… 하지만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어요. 부디 편히 쉬세요.'
강윤은 눈을 감았다. 거대한 빛이 그를 집어삼켰다. 모든 것이 하얗게 변해갔다. 뜨거움도, 고통도 사라지고, 오직 평온함만이 남았다.
'엄마, 아빠. 저… 잘한 거죠?'
길고 길었던 싸움이, 소년의 희생과 함께 막을 내리고 있었다. 지하 깊은 곳에서 거대한 섬광이 터져 나오며 네오젠 연구소의 폐허를 완전히 집어삼켰다. 그것은 끝이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빛이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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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 아이 더 오리지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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