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톱니바퀴(3)
조회 : 96 추천 : 0 글자수 : 6,361 자 2026-01-31
“그러니깐, 우리 이제 그만 헤어지자. 지금 나는 너의 옆에 있을 힘이 없고, 더이상 버틸 자신도 없어. 그래서 너와 헤어지고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어. 애들이 나란 존재를 아예 신경도 쓰질 않는 투명인간 같은 그런 존재로 살고 싶어, 제이시.“
“안 돼! 싫어! 헤어지기 싫어, 크리스! 헤어지기 싫어!”
“그동안 이런 보잘 것 없는 남자인 나의 여친이 되어 줘서, 정말 고마워 제이시.“
이 말을 남기고 내가 애써 눈물을 참고 있는 얼굴로 뒤로 돌아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데, 제이시가 바람결에 눈물을 흩트리며 달려와 등을 감싸 안았다.
“가지마! 가지 마, 크리스! 내겐 너뿐이야, 그러니 날 떠나지마. 제발, 크리스!"
제이시의 애절한 매달림에 고여있던 눈물을 주르륵 떨어트린 내가, 몸을 감싸고 있는 제이시의 손을 풀고 미친듯이 앞으로 달려갔다.
“크리스! 크리스~!”
내가 비 내리는 길가를 달리고 있다, 서럽게 눈물을 쏟아내며 미친 듯이 달리고 있다.
자신의 방에서 눈이 퉁퉁 부은 상태로 서럽게 울고있는 제이시를 트레샤 아줌마가 달래고 있었다.
“제이시, 도대체 무슨 일인지 말 좀 해보렴. 응, 제이시?”
“흑흑. 크리스가, 크리스가 나랑 헤어지자고 했어.”
“뭐, 뭐라고!? 개같은 놈이, 감히 우리 제이시를 차!”
“크리스를 욕하지 마, 엄마. 크리스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이 세상에 없었을 거야. 그러니깐, 욕하지 마.“
트레샤 아줌마는 순간 시선이 조금 떨리며, 제이시에게 물었다.
“기억하고 있었던 거야? 10년 전, 피터 집에 놀러 왔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뱀에 놀라서 무작정 앞으로 달려가던 널 향해, 균형을 잃고 앞마당으로 돌진해 오는 차에 치일번 했던 너를 크리스가 몸을 날려 구해주었던 일을?”
제이시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계속 닦아내며 고갤 끄떡였다.
“응. 내게 운명이 찾아온 그 날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어.“
“그래서, 캐리지로 이사 가자고 떼를 쓴 거야? 크리스 때문에.”
“흑흑, 맞아. 그때부터야, 크리스가 내 가슴속에 들어 온 게. 그리고 처음 캐리지로 이사왔을 때. 나는 몸이 약해서 운동도 잘 못하고 숫기가 없어서, 애들하고 친하게 지내지 못 했어. 그런데 크리스만 홀로 내게 말을 걸어주고, 나와 같이 어울려 줬어. 그래서 조금씩 용기가 생겨서 애들하고 말도 하고 운동도 해서, 지금의 내가 된 거야."
눈동자가 조금 흔들리던 트레샤 아줌마는 울고있는 제이시를 말없이 꼭 안고 머릿결을 쓸어 넘겼다. 그러자 제이시는 품에 안겨 서럽게 울었다.
“그래서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애들에게 놀림 받는 크리스를 그렇게 감싸주고 항상 옆에 있었던 거야? 크리스가 어렸을 때, 항상 옆에서 널 감싸준 것처럼.“
“응, 그런데 크리스가 나 때문에 힘들데. 엄마도 알잖아, 크리스가 점점 갈수로 몸이 더 안좋아졌어 조금씩 기억을 잃어버리고 있는 걸. 그리고 부모님이 지금 이혼 소송중이라 가득이나 부모님 때문에 힘든데, 내가 자신의 여친이라 애들이 계속 이유도 없이 조롱하고 괴롭혀서 죽고 싶을 만큼 힘들데. 그래서, 크리스가 원하는 대로 헤어졌어.“
자신의 품에 안겨 서럽게 울고있는 제이시를 트레샤 아줌마는 괜찮다는 듯이 등을 쓰담으며 꼭 안아줘다.
“하지만 나는, 크리스의 마음을 알고 있어. 분명 진심으로 한말이 아니야, 크리스의 눈이 진심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어. 그러니깐 나는 기다릴 거야. 크리스가 다시 마음을 다잡고, 내게 돌아 올 때까지 난 기다릴 거야. 하지만, 하지만… 지금 가슴이 너무나 아파.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데, 가슴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파서 죽을 것 같아, 엄마.“
울고있는 제이시의 모습이 점점 갈수록 흩어지며 공간이 환하게 물들었다.
단풍이 점점 물드어 떨어지는 늦가을 날의 교문 앞은 등교시간이라 길가가 번잡했다. 바가지 머리에 왕눈이 안경을 쓴 내가 힘없이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는데, 교문 앞에 서있던 토니와 렌튼이 나를 비웃으며 다가왔다. 나는 키가 더 컸지만 몸이 극심히 말라서 이제는 광대뼈 때문에 얼굴이 뾰족해 보였다.
"요즘 학교에 돌고있는 핫한 소문의 주인공인 크리스 볼던. 우리랑 잠시 담소 좀 나누자."
나를 렌튼과 같이 둘러싼 채 학교 건물 정문 앞으로 끌고 온 토니가, 한쪽 눈섭을 찌푸리며 인상을 썼다.
"햐~, 크리스. 내가 제이시 앞에서 알짱알짱 거리지 말라고 그렇게 경고 했는데, 정말로 애들에게 쓴맛을 거하게 봐야지 말귀를 알아들을 거야!"
"나는 알짱되지 않았어. 자기가 내 여친이라고 말하면서 계속 쫒아오는 제이시를, 오히려 피해 다니고 있단 말이야."
"피해 다닐려면, 아예 눈에 띠지 않게 제대로 피해 다니야지 병신아. 아무리 제이시가 너같은 찌질한 놈을 가지고 놀려고 장난치고 있다고는 하지만. 많은 애들이 그꼴을 더는 못보겠다고 하면서, 널 손봐주고 싶어해."
렌튼이 껌을 쫙쫙 씹으며 주먹을 풀었다.
"나와 토니도 널 손봐주고 싶어하는 애들중 하나야. 그러니깐,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들어. 넌 지금부터 존재 자체가 아예 없는 투명인간처럼 행동해. 제이시가 말을 건네며 쫒아와도, 없는 사람처럼 무조건 무시하라고."
"하지만, 그건 좀 너무하잖아."
"병신 새끼야! 너 진짜 옥수수 밭에 묻히고 싶냐! 제이시 사진을 보면서 딸치는 놈들 중에서 몇놈이 조만간 널, 옥수수 밭으로 끌고 가려하고 있다고! 그러니깐 살고 싶으면 내가 시키는 데로해, 알았냐!"
죽일듯이 노려보는 토니와 렌튼의 눈을 내가 피하며 무섭다는 듯이 대답했다.
"알, 알았어. 투명인간처럼, 무시할께."
"찌질한 병신 새끼지만, 그래도 말귀를 잘 알아듣네. 재수없게 뒈지고 싶지 않으면, 행동거지 조심해서 잘 피해다녀."
내가 고개를 끄떡이자, 렌튼이 날 비웃으며 등을 세게 밀었다.
"그럼 가봐. 빨리 가라고 병신 새끼야!"
다급히 학교 건물로 들어가는 내 뒷모습을 썩소를 지은 채, 지켜보고 있던 토니와 렌튼에게 마이클과 풋볼팀이 천천히 다가왔다.
"토니, 렌튼. 역시 너희 둘은 엿같은 개새끼들이야."
"마, 마이클. 네가 시키는데로 제이시 눈에 띠지 말라고 크리스를 겁박하고 있으니깐, 이제 그만 우리를 용서해줘."
마이클을 본 토니와 렌튼이 무섭다는 얼굴로 조금씩 뒷걸음 치자, 풋볼팀이 다가와 둘러쌌다.
"엿만한 개새끼들이 감히, 내 여자인 제이시를 넘보고 집적거린 죄값은 옥수수 밭에 묻혀야 하는데. 다행이 악역이 필요해서 너희 둘이 안 끌려가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겠지?"
"다, 당연히 잘 알고있지. 우린 원래 개새끼들이라 책임지고 크리스를 계속 겁박해서, 제이시와 찢어 놓을 테니깐. 넌 힘들어 하는 제이시를 위로하면서, 계획대로 호감을 얻어."
"역시 개새끼들이라, 시키는 대로 알았어 잘하고 있네. 하지만 나중에 제이시가 이런 사실을 알게되면, 너희 둘이 독단으로 크리스를 겁박한 거다."
"당연하지, 제이시는 어려서 부터 우릴 싫어해서 의심초자 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깐 마이클, 제발 우릴 용서해 줘."
마이클은 토니와 렌튼을 비웃으며 가볍게 뺨을 톡톡 건드렸다. 뺨을 건드릴 때마다 토니와 렌튼은 몸을 움찔 거리며 공포 떠는 얼굴이었다.
"좋아. 그럼 제이시와 크리스를 완전히 찢어 놓으면, 소원대로 용서해 줄테니 이만 가봐."
"고마워, 마이클. 정말로 고마워."
마이클이 가보라는 듯이 고개를 옆으로 까닥거리자, 토니와 렌튼은 도망치듯이 건물로 들어갔다. 교실 앞에 렌과 슈와 함께 서있던 제이시는 내가 힘없이 걸어오고 있자, 굳어진 얼굴로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크리스, 잠깐 나랑 얘기 좀 해.”
내가 다가오는 자신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그냥 지나치자, 제이시는 화가 난 얼굴로 내 팔을 잡았다.
“얘기 좀 하자고, 크리스!”
“제이시.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 거야? 나는 너의 남친이 아니야."
"아니. 기억 못하겠지만, 너는 분명 내 남친이야."
제이시 뒤로 날 노려보고 있는 토니와 렌튼 그리고 다른 남자애들의 따가운 시선에, 내 팔을 잡고 있는 손을 밀어냈다.
"제발 장난 좀 그만 쳐, 제이시. 나는 기억을 잃어버리지 않았어. 왜? 계속 기억을 잃어버렸어, 너와 사귀고 있었다는 걸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는 건데. 너는 8살때 캐리지로 이사왔고, 미들 스쿨까지 모두 나와 같은 반이였어."
"그럼, 애디랑 라라는 기억나? 애디랑 라라가 기억나 냐고?"
애디와 라라 이야기가 나오자, 제이시와 나를 지켜보고 있던 애들이 갑자기 모두 내 시선을 피했다.
"애디랑 라라가 누군데? 제이시, 더이상 이러지마. 아무리 내가 찌질해도 너의 장난을 더는 받아주지 않을 거야."
짜증난다는 얼굴로 내가 앞으로 묵묵히 계속 걸어가자, 제이시가 떨리는 눈으로 내 뒷모습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크리스. 크리스!”
제이시가 내 이름을 소리쳐 부르자, 눈을 감은 내가 짜증 스러운 얼굴로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한 번도 뒤돌아 보지 않자, 제이시는 눈가에 눈물이 고이며 내 뒷모습을 슬프게 바라만 봤다.
“제이시, 괜찮아?”
렌과 슈가 눈가에 고인 눈물을 스르륵 떨어트리는 자신에게 다가오자, 제이시는 말없이 흐르는 눈물을 애써 닦아냈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제이시, 이제 그만 크리스를 잊어. 너와 사겼다는 걸 기억 조차 못해서, 싫다고 하는 크리스에게 왜? 계속 목을 매.“
“그래. 저런 찌질한 크리스보다, 너에게 계속 대쉬하는 킹카 마이클이랑 사겨보는 게 어때?“
제이시가 순간 자신들을 쏘아보자, 렌과 슈는 미안하다는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미, 미안해 제이시. 나는 네가 걱정 되서.”
제이시는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다.
"웨스커 오빠, 나야 제이시... 크리스가 일주일 동안 무단 결석한거 감기때문이 아니지?... 보안관하고 같이 집으로 찾아가기 전에 솔직히 말해... 뭐!? 삼일 동안 몸이 불덩어리 처럼 끓어서, 거의 혼수 상태였다고!? 그런데 왜, 병원에 안 데리고 갔어!... 그래도 그렇지, 이제는 자기가 헤리성 기억 상실증이라는 것도 모르잖아! 빨리 병원에 데려가서 검사받게 해... 병원비는 엄마에게 부탁해서 무료로 해줄테니까, 데리고가... 알았어 그럼 믿고 끊을 게."
눈물을 조금 글썽거리며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깊은 한숨을 내 쉬고 있던 제이시는,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에 자신의 교실로 들어갔다. 수줍은 듯이 교탁 앞에 서있는 17살에 엘산나가 나를 바라보며 반갑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오늘부터 여러분들의 새로운 친구가 된 캔자스에서 캐리지로 전학온, 엘산나 아틀란을 모두 환영해 주세요."
여선생님의 말이 끝나자, 엘산나는 수줍게 인사했다.
"캔자스에서 온 엘산나 아틀란이에요. 모두 친하게 지내요."
반 애들의 박수와 함께 여선생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크리스 옆자리가 비었으니깐, 가서 앉으렴."
엘사나는 반갑다는 미소지으며 내 옆에 와서 앉았다.
“반가워 크리스. 난 새로 전학 와서 친구가 전혀 없는데, 신기하게 이웃사촌이 된 너와 같은 반이네. 그러니깐 서로 친하게 지내자.“
“그래, 친하게 지내자.”
모든 수업이 종료되었다고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애들이 가방을 들고 교실을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나 또한 엘산나와 간단하게 얘기하며 복도를 지나가고 있었다. 사물함 앞에 서있던 제이시는 자신의 앞을 지나쳐 가고 있는 나와 엘산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슈에게 물었다.
“슈, 크리스 옆에 있는 년 누구야?”
“엘산나 아틀란이라고 오늘 새로 전학 온 애야. 선생님에게 물어보니깐, 완전 시골 촌닭이야.”
“그래, 촌닭은 맞는데. 꾸며 놓으면 남자들이 침을 흘리만한 꽤 괜찮은 미모야. 물론 제이시 너와 비교하면 완전 평범한데, 그래도 인기는 좀 있겠어.“
렌이 엘산나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옷이 꾸져서 그런데, 몸매도 좋은 것 같아. 골반도 제법 크고 엉덩이 라인도 예쁜 편이니깐, 당연히 가슴도 꽤 있을 거야."
"뜬금없이 무슨 말이야, 렌. 그게 제이시랑 무슨 상관인데?"
"크리스의 짝궁이 된 촌년이 남자들을 은근히 끌리게 하는 색기가 있다는 얘기야. 원래 남자들은 제이시같은 여신 포스는 로망이라 잘 대쉬하지 않지만, 꽤 괜찮고 은근히 색기가 있는 여자는 현실로 생각해서 쉽게 대쉬해. 그래서 저 촌년이 맘먹고 남자를 꼬시면, 금방 사귈수가 있어."
"그럼 뭐야? 제이시 보다 저 촌년이 크리스랑 사귀게 될 확률이 높다는 거잖아, 내말 맞지 렌?"
슈의 말에 제이시의 인상이 조금 굳어졌다. 제이시 뒤로 보이던 학교 창가에 눈송이들이 하나둘씩 떨어지자, 갑자기 공간이 흩어지며 세상이 온통 아름다운 얼음성처럼 눈이 수북하게 쌓여있는 길가로 변했다.
“안 돼! 싫어! 헤어지기 싫어, 크리스! 헤어지기 싫어!”
“그동안 이런 보잘 것 없는 남자인 나의 여친이 되어 줘서, 정말 고마워 제이시.“
이 말을 남기고 내가 애써 눈물을 참고 있는 얼굴로 뒤로 돌아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데, 제이시가 바람결에 눈물을 흩트리며 달려와 등을 감싸 안았다.
“가지마! 가지 마, 크리스! 내겐 너뿐이야, 그러니 날 떠나지마. 제발, 크리스!"
제이시의 애절한 매달림에 고여있던 눈물을 주르륵 떨어트린 내가, 몸을 감싸고 있는 제이시의 손을 풀고 미친듯이 앞으로 달려갔다.
“크리스! 크리스~!”
내가 비 내리는 길가를 달리고 있다, 서럽게 눈물을 쏟아내며 미친 듯이 달리고 있다.
자신의 방에서 눈이 퉁퉁 부은 상태로 서럽게 울고있는 제이시를 트레샤 아줌마가 달래고 있었다.
“제이시, 도대체 무슨 일인지 말 좀 해보렴. 응, 제이시?”
“흑흑. 크리스가, 크리스가 나랑 헤어지자고 했어.”
“뭐, 뭐라고!? 개같은 놈이, 감히 우리 제이시를 차!”
“크리스를 욕하지 마, 엄마. 크리스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이 세상에 없었을 거야. 그러니깐, 욕하지 마.“
트레샤 아줌마는 순간 시선이 조금 떨리며, 제이시에게 물었다.
“기억하고 있었던 거야? 10년 전, 피터 집에 놀러 왔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뱀에 놀라서 무작정 앞으로 달려가던 널 향해, 균형을 잃고 앞마당으로 돌진해 오는 차에 치일번 했던 너를 크리스가 몸을 날려 구해주었던 일을?”
제이시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계속 닦아내며 고갤 끄떡였다.
“응. 내게 운명이 찾아온 그 날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어.“
“그래서, 캐리지로 이사 가자고 떼를 쓴 거야? 크리스 때문에.”
“흑흑, 맞아. 그때부터야, 크리스가 내 가슴속에 들어 온 게. 그리고 처음 캐리지로 이사왔을 때. 나는 몸이 약해서 운동도 잘 못하고 숫기가 없어서, 애들하고 친하게 지내지 못 했어. 그런데 크리스만 홀로 내게 말을 걸어주고, 나와 같이 어울려 줬어. 그래서 조금씩 용기가 생겨서 애들하고 말도 하고 운동도 해서, 지금의 내가 된 거야."
눈동자가 조금 흔들리던 트레샤 아줌마는 울고있는 제이시를 말없이 꼭 안고 머릿결을 쓸어 넘겼다. 그러자 제이시는 품에 안겨 서럽게 울었다.
“그래서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애들에게 놀림 받는 크리스를 그렇게 감싸주고 항상 옆에 있었던 거야? 크리스가 어렸을 때, 항상 옆에서 널 감싸준 것처럼.“
“응, 그런데 크리스가 나 때문에 힘들데. 엄마도 알잖아, 크리스가 점점 갈수로 몸이 더 안좋아졌어 조금씩 기억을 잃어버리고 있는 걸. 그리고 부모님이 지금 이혼 소송중이라 가득이나 부모님 때문에 힘든데, 내가 자신의 여친이라 애들이 계속 이유도 없이 조롱하고 괴롭혀서 죽고 싶을 만큼 힘들데. 그래서, 크리스가 원하는 대로 헤어졌어.“
자신의 품에 안겨 서럽게 울고있는 제이시를 트레샤 아줌마는 괜찮다는 듯이 등을 쓰담으며 꼭 안아줘다.
“하지만 나는, 크리스의 마음을 알고 있어. 분명 진심으로 한말이 아니야, 크리스의 눈이 진심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어. 그러니깐 나는 기다릴 거야. 크리스가 다시 마음을 다잡고, 내게 돌아 올 때까지 난 기다릴 거야. 하지만, 하지만… 지금 가슴이 너무나 아파.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데, 가슴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파서 죽을 것 같아, 엄마.“
울고있는 제이시의 모습이 점점 갈수록 흩어지며 공간이 환하게 물들었다.
단풍이 점점 물드어 떨어지는 늦가을 날의 교문 앞은 등교시간이라 길가가 번잡했다. 바가지 머리에 왕눈이 안경을 쓴 내가 힘없이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는데, 교문 앞에 서있던 토니와 렌튼이 나를 비웃으며 다가왔다. 나는 키가 더 컸지만 몸이 극심히 말라서 이제는 광대뼈 때문에 얼굴이 뾰족해 보였다.
"요즘 학교에 돌고있는 핫한 소문의 주인공인 크리스 볼던. 우리랑 잠시 담소 좀 나누자."
나를 렌튼과 같이 둘러싼 채 학교 건물 정문 앞으로 끌고 온 토니가, 한쪽 눈섭을 찌푸리며 인상을 썼다.
"햐~, 크리스. 내가 제이시 앞에서 알짱알짱 거리지 말라고 그렇게 경고 했는데, 정말로 애들에게 쓴맛을 거하게 봐야지 말귀를 알아들을 거야!"
"나는 알짱되지 않았어. 자기가 내 여친이라고 말하면서 계속 쫒아오는 제이시를, 오히려 피해 다니고 있단 말이야."
"피해 다닐려면, 아예 눈에 띠지 않게 제대로 피해 다니야지 병신아. 아무리 제이시가 너같은 찌질한 놈을 가지고 놀려고 장난치고 있다고는 하지만. 많은 애들이 그꼴을 더는 못보겠다고 하면서, 널 손봐주고 싶어해."
렌튼이 껌을 쫙쫙 씹으며 주먹을 풀었다.
"나와 토니도 널 손봐주고 싶어하는 애들중 하나야. 그러니깐,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들어. 넌 지금부터 존재 자체가 아예 없는 투명인간처럼 행동해. 제이시가 말을 건네며 쫒아와도, 없는 사람처럼 무조건 무시하라고."
"하지만, 그건 좀 너무하잖아."
"병신 새끼야! 너 진짜 옥수수 밭에 묻히고 싶냐! 제이시 사진을 보면서 딸치는 놈들 중에서 몇놈이 조만간 널, 옥수수 밭으로 끌고 가려하고 있다고! 그러니깐 살고 싶으면 내가 시키는 데로해, 알았냐!"
죽일듯이 노려보는 토니와 렌튼의 눈을 내가 피하며 무섭다는 듯이 대답했다.
"알, 알았어. 투명인간처럼, 무시할께."
"찌질한 병신 새끼지만, 그래도 말귀를 잘 알아듣네. 재수없게 뒈지고 싶지 않으면, 행동거지 조심해서 잘 피해다녀."
내가 고개를 끄떡이자, 렌튼이 날 비웃으며 등을 세게 밀었다.
"그럼 가봐. 빨리 가라고 병신 새끼야!"
다급히 학교 건물로 들어가는 내 뒷모습을 썩소를 지은 채, 지켜보고 있던 토니와 렌튼에게 마이클과 풋볼팀이 천천히 다가왔다.
"토니, 렌튼. 역시 너희 둘은 엿같은 개새끼들이야."
"마, 마이클. 네가 시키는데로 제이시 눈에 띠지 말라고 크리스를 겁박하고 있으니깐, 이제 그만 우리를 용서해줘."
마이클을 본 토니와 렌튼이 무섭다는 얼굴로 조금씩 뒷걸음 치자, 풋볼팀이 다가와 둘러쌌다.
"엿만한 개새끼들이 감히, 내 여자인 제이시를 넘보고 집적거린 죄값은 옥수수 밭에 묻혀야 하는데. 다행이 악역이 필요해서 너희 둘이 안 끌려가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겠지?"
"다, 당연히 잘 알고있지. 우린 원래 개새끼들이라 책임지고 크리스를 계속 겁박해서, 제이시와 찢어 놓을 테니깐. 넌 힘들어 하는 제이시를 위로하면서, 계획대로 호감을 얻어."
"역시 개새끼들이라, 시키는 대로 알았어 잘하고 있네. 하지만 나중에 제이시가 이런 사실을 알게되면, 너희 둘이 독단으로 크리스를 겁박한 거다."
"당연하지, 제이시는 어려서 부터 우릴 싫어해서 의심초자 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깐 마이클, 제발 우릴 용서해 줘."
마이클은 토니와 렌튼을 비웃으며 가볍게 뺨을 톡톡 건드렸다. 뺨을 건드릴 때마다 토니와 렌튼은 몸을 움찔 거리며 공포 떠는 얼굴이었다.
"좋아. 그럼 제이시와 크리스를 완전히 찢어 놓으면, 소원대로 용서해 줄테니 이만 가봐."
"고마워, 마이클. 정말로 고마워."
마이클이 가보라는 듯이 고개를 옆으로 까닥거리자, 토니와 렌튼은 도망치듯이 건물로 들어갔다. 교실 앞에 렌과 슈와 함께 서있던 제이시는 내가 힘없이 걸어오고 있자, 굳어진 얼굴로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크리스, 잠깐 나랑 얘기 좀 해.”
내가 다가오는 자신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그냥 지나치자, 제이시는 화가 난 얼굴로 내 팔을 잡았다.
“얘기 좀 하자고, 크리스!”
“제이시.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 거야? 나는 너의 남친이 아니야."
"아니. 기억 못하겠지만, 너는 분명 내 남친이야."
제이시 뒤로 날 노려보고 있는 토니와 렌튼 그리고 다른 남자애들의 따가운 시선에, 내 팔을 잡고 있는 손을 밀어냈다.
"제발 장난 좀 그만 쳐, 제이시. 나는 기억을 잃어버리지 않았어. 왜? 계속 기억을 잃어버렸어, 너와 사귀고 있었다는 걸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는 건데. 너는 8살때 캐리지로 이사왔고, 미들 스쿨까지 모두 나와 같은 반이였어."
"그럼, 애디랑 라라는 기억나? 애디랑 라라가 기억나 냐고?"
애디와 라라 이야기가 나오자, 제이시와 나를 지켜보고 있던 애들이 갑자기 모두 내 시선을 피했다.
"애디랑 라라가 누군데? 제이시, 더이상 이러지마. 아무리 내가 찌질해도 너의 장난을 더는 받아주지 않을 거야."
짜증난다는 얼굴로 내가 앞으로 묵묵히 계속 걸어가자, 제이시가 떨리는 눈으로 내 뒷모습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크리스. 크리스!”
제이시가 내 이름을 소리쳐 부르자, 눈을 감은 내가 짜증 스러운 얼굴로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한 번도 뒤돌아 보지 않자, 제이시는 눈가에 눈물이 고이며 내 뒷모습을 슬프게 바라만 봤다.
“제이시, 괜찮아?”
렌과 슈가 눈가에 고인 눈물을 스르륵 떨어트리는 자신에게 다가오자, 제이시는 말없이 흐르는 눈물을 애써 닦아냈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제이시, 이제 그만 크리스를 잊어. 너와 사겼다는 걸 기억 조차 못해서, 싫다고 하는 크리스에게 왜? 계속 목을 매.“
“그래. 저런 찌질한 크리스보다, 너에게 계속 대쉬하는 킹카 마이클이랑 사겨보는 게 어때?“
제이시가 순간 자신들을 쏘아보자, 렌과 슈는 미안하다는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미, 미안해 제이시. 나는 네가 걱정 되서.”
제이시는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다.
"웨스커 오빠, 나야 제이시... 크리스가 일주일 동안 무단 결석한거 감기때문이 아니지?... 보안관하고 같이 집으로 찾아가기 전에 솔직히 말해... 뭐!? 삼일 동안 몸이 불덩어리 처럼 끓어서, 거의 혼수 상태였다고!? 그런데 왜, 병원에 안 데리고 갔어!... 그래도 그렇지, 이제는 자기가 헤리성 기억 상실증이라는 것도 모르잖아! 빨리 병원에 데려가서 검사받게 해... 병원비는 엄마에게 부탁해서 무료로 해줄테니까, 데리고가... 알았어 그럼 믿고 끊을 게."
눈물을 조금 글썽거리며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깊은 한숨을 내 쉬고 있던 제이시는,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에 자신의 교실로 들어갔다. 수줍은 듯이 교탁 앞에 서있는 17살에 엘산나가 나를 바라보며 반갑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오늘부터 여러분들의 새로운 친구가 된 캔자스에서 캐리지로 전학온, 엘산나 아틀란을 모두 환영해 주세요."
여선생님의 말이 끝나자, 엘산나는 수줍게 인사했다.
"캔자스에서 온 엘산나 아틀란이에요. 모두 친하게 지내요."
반 애들의 박수와 함께 여선생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크리스 옆자리가 비었으니깐, 가서 앉으렴."
엘사나는 반갑다는 미소지으며 내 옆에 와서 앉았다.
“반가워 크리스. 난 새로 전학 와서 친구가 전혀 없는데, 신기하게 이웃사촌이 된 너와 같은 반이네. 그러니깐 서로 친하게 지내자.“
“그래, 친하게 지내자.”
모든 수업이 종료되었다고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애들이 가방을 들고 교실을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나 또한 엘산나와 간단하게 얘기하며 복도를 지나가고 있었다. 사물함 앞에 서있던 제이시는 자신의 앞을 지나쳐 가고 있는 나와 엘산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슈에게 물었다.
“슈, 크리스 옆에 있는 년 누구야?”
“엘산나 아틀란이라고 오늘 새로 전학 온 애야. 선생님에게 물어보니깐, 완전 시골 촌닭이야.”
“그래, 촌닭은 맞는데. 꾸며 놓으면 남자들이 침을 흘리만한 꽤 괜찮은 미모야. 물론 제이시 너와 비교하면 완전 평범한데, 그래도 인기는 좀 있겠어.“
렌이 엘산나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옷이 꾸져서 그런데, 몸매도 좋은 것 같아. 골반도 제법 크고 엉덩이 라인도 예쁜 편이니깐, 당연히 가슴도 꽤 있을 거야."
"뜬금없이 무슨 말이야, 렌. 그게 제이시랑 무슨 상관인데?"
"크리스의 짝궁이 된 촌년이 남자들을 은근히 끌리게 하는 색기가 있다는 얘기야. 원래 남자들은 제이시같은 여신 포스는 로망이라 잘 대쉬하지 않지만, 꽤 괜찮고 은근히 색기가 있는 여자는 현실로 생각해서 쉽게 대쉬해. 그래서 저 촌년이 맘먹고 남자를 꼬시면, 금방 사귈수가 있어."
"그럼 뭐야? 제이시 보다 저 촌년이 크리스랑 사귀게 될 확률이 높다는 거잖아, 내말 맞지 렌?"
슈의 말에 제이시의 인상이 조금 굳어졌다. 제이시 뒤로 보이던 학교 창가에 눈송이들이 하나둘씩 떨어지자, 갑자기 공간이 흩어지며 세상이 온통 아름다운 얼음성처럼 눈이 수북하게 쌓여있는 길가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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