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1 2화 편했어요. 그 사람과 있으면. 설레진 않았지만...
조회 : 94 추천 : 0 글자수 : 6,797 자 2025-12-09
상담실 문이 조용히 닫히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이상하게도, 어떤 감정을 닫기보다 여는 소리처럼 들렸다.
윤서는 작고 따뜻한 방 안에 발끝을 붙인 채,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방 안은 차분했다. 조용했고, 무해했다.
그 조용함이 오히려 윤서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처음 오신 거죠?”
맑고 낮은 여성의 목소리가 공간을 천천히 채웠다.
윤서는 고개를 들었다.
탁자 너머, 상담사가 앉아 있었다.
검은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그녀는 화장기가 거의 없었지만,
맑은 피부와 또렷한 이목구비 덕분에 오히려 눈에 띄었다.
기초 화장만으로도 단정하고 세련된 인상을 풍기는, 그런 사람이었다.
“네... 예약은 안 했어요.
그냥, 갑자기 오고 싶어져서…”
“괜찮아요. 지금 시간은 비어 있고요.”
그녀는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편하게 앉으세요. 불편하시면 말씀하시고요.”
윤서는 조심스레 의자에 앉았다.
그녀의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비를 맞고 와서인지 몸이 약간 으슬으슬했고,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여기, 처음이에요.
그리고… 이런 걸 말해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윤서는 그렇게 말하며 눈을 피했다.
그녀 스스로도 말이 시작되기 무섭게 부끄러워졌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누군가에게 설명하려는 것 자체가 어쩐지 낯설고 어리석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상담은 정답을 말하는 자리가 아니에요.
그냥, 지금 마음속에 떠오르는 말부터 꺼내셔도 괜찮습니다.
무엇을 말씀하시든, 여기선 틀리지 않아요.”
그 말이 그렇게 따뜻했던 건,
그녀가 ‘맞다’고 하지도, ‘틀렸다’고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윤서는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7년을... 친구로 지낸 사람이 있어요.
대학 때부터, 쭉.”
그 말을 꺼낸 순간부터, 윤서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앉았다.
어떤 말을 할지 정해두진 않았지만,
그 사람이 언젠가부터 마음속을 점령해 있었던 건 분명했다.
“그 사람이... 갑자기, 키스를 했어요.”
지우는 놀라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윤서는 한 번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생각보다... 낯설지가 않았어요.
놀라긴 했는데, 이상하게 익숙했어요.
그 사람의 눈빛도, 손길도… 전혀 모르는 게 아니었달까.”
그녀는 시선을 잠시 돌렸다가, 다시 지우를 바라봤다.
마치 그 감정을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듯한 눈빛이었다.
“우린 친구였어요.
나는... 친구라고 믿었고요.”
지우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되물었다.
“그런데도 익숙하게 느껴졌다는 건…
아마도, 이미 그 감정이 자라 있었단 뜻일 수도 있어요.
언제부터였다고 생각하세요?”
그 질문에 윤서는 말없이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문득 떠오른 장면 하나.
자신의 생일에, 조용히 선물과 편지를 내밀던 그.
자주 쓰는 향수를 기억하고, 아무 말 없이 주문을 바꿔주던 그.
항상 먼저 눈치 채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던 그 사람.
그 기억들이 퍼즐처럼 마음속에서 맞춰지고 있었다.
“언제부터였다고 생각하세요?”
지우의 질문이 끝나자,
윤서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는 게 아니었다.
너무 많은 순간이 한꺼번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머릿속이 아주 조용해지고,
그 빈틈을 틈타 기억이 들어왔다.
그의 손.
자신보다 먼저 커피 주문을 바꿔주던 날.
그의 눈.
말하지 않아도 오늘 기분이 어떤지 알아챘던 날들.
그의 귀.
생일을 잊지 않고, 매년 향수를 바꿔가며 선물했던 순간.
그의 말투.
항상 “괜찮아, 넌 늘 잘하고 있어”라고 끝맺던 위로의 언어들.
그 모든 기억은 편안했고, 자연스러웠다.
한 번도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 사람은요...
제가 뭘 원하는지 항상 먼저 알아채는 사람이었어요.
말 안 해도, 먼저 챙겨주고,
제가 불편해할 만한 건 미리 피하고,
제가 좋아할 만한 건 먼저 기억해놨고요.”
윤서는 그 말을 하면서도 어딘가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너무... 자연스러웠다는 게 좀...
좀 이상해요.”
그녀는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말끝을 더듬었다.
“예전엔 좋았거든요.
편하다고 느꼈고, 배려라고 생각했고…
근데 지금은...”
말이 흐려졌다.
그 감정의 이름을 어떻게 붙여야 할지 몰랐다.
편안함이 불쾌해지는 순간이 있다는 걸,
이 상담실 안에서야 처음 느꼈다.
지우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조용히 말했다.
“가끔은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사람’이 아니라
‘말하지 못하게 만드는 관계’일 수도 있어요.”
그 말에, 윤서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동안 한 번도 그 사람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자신조차도, 그 관계에 안주하고 있었다는 걸
지금에서야, 아주 작게, 인식하게 된 것이었다.
“전 그냥...
제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게 고마웠어요.”
그녀는 속삭이듯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고백이라기보다,
스스로를 설득하는 변명처럼 들렸다.
‘편했다고 말했다.
설레진 않았지만, 불편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지우는 윤서의 말을 들으며 조용히 눈을 내리깠다.
어떤 감정은, 그 조용함 속에서 더 잘 보였다.
오히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관계가
가장 많은 감정을 누르고 있었던 경우도 많았다.
‘익숙했다는 말.
낯설지 않았다는 말.
그건 감정이 이미 자라 있었다는 증거기도 하지만,
동시에 경계심이 무뎌졌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지우는 상담 초기, 내담자의 말보다
그 말과 말 사이의 정적을 더 유심히 듣는다.
말은 조심해서 고를 수 있지만,
침묵은 조작되지 않기 때문이다.
윤서는 지금, 스스로 느끼지 못한 감정의 언어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항상 제가 불편해할 만한 상황을 피해줬어요.
항상 먼저 챙기고, 먼저 물어보고, 제가 뭐 좋아하는지도 다 알고 있었고요...”
그녀의 말은 감사의 고백 같았다.
하지만 지우는 그 안에 흐르는 정서를 놓치지 않았다.
그것은 ‘기억’이 아니라 ‘혼란’이었다.
“제가 뭘 말하기도 전에, 다 알아서 해주니까...
전 그냥, 그게 고맙다고 생각했는데...”
지우는 눈을 들었다.
그녀의 시선은 윤서를 향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그 말의 결을 더듬고 있었다.
‘과도한 배려는 자주 감정 통제로 이어진다.
감정의 불균형은 오히려, 가장 조용한 순간에 뚫고 들어온다.’
지우는 예전에 한 내담자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저 사람은 날 너무 잘 아니까, 내가 뭘 생각하기도 전에 다 해버려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턴가, 내가 뭘 원하는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 말과 지금 윤서의 말은 본질적으로 닮아 있었다.
‘사랑은 때때로, 배려라는 얼굴을 쓴 통제다.
그리고 통제를 모르는 사람은, 그 안에서 안심해버린다.’
지우는 윤서가 감정을 조심스럽게 털어놓는 모습을 바라보며
지금 이 상담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가늠했다.
이 관계의 핵심은 '사랑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감정이 주고받는 힘이 균형을 이루고 있었는가’였다.
“그 사람이... 전에 사귀던 여자 이야기를 한 적 있어요.”
윤서는 말끝을 흘리며, 잠깐 시선을 내렸다.
지우는 아무 말 없이 기다렸다.
윤서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 여자, 저랑 스타일이 좀 비슷했대요.
생긴 것도, 목소리도, 쓰는 말투도...
심지어 같은 향수를 썼다고 했어요.”
지우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 말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었다.
윤서가 처음으로 ‘기억을 경계의 시선으로 되짚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그 말 듣고 나니까...
이상하게 머리가 띵했어요.
그때까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그 얘기를 듣고 나니까—
뭔가... 갑자기 되게 이상해졌어요.”
그녀는 팔을 스스로 감싸듯 움켜쥐었다.
감정이 조금씩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 사람이 좋아하던 것들이,
사실... 그냥 ‘그 사람의 취향’이었던 거 아닐까 싶더라고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아는 게 아니라,
자기가 좋아했던 사람의 습관을… 나에게서도 찾은 거면...”
그 말은 던지는 순간부터,
윤서에게도 생소하고 낯선 고백이었다.
그녀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저를... 저로서 본 게 아니라,
그냥... 익숙한 누군가의 그림자처럼 본 거면...
그동안의 배려도 다—”
말끝이 뚝 끊겼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말을 이어가면 안 될 것 같았다.
감정이 어떤 선을 넘어버릴까봐,
스스로 그 선을 움켜쥐고 있는 것 같았다.
지우는 조용히 윤서를 바라봤다.
‘그 사람은 그녀를 ‘알아챈’ 게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누군가를 ‘재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감정이란 건 늘 주관적인 거라
받는 사람은 그것이 ‘나를 향한 것’이라 믿고 싶어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감정이
‘패턴화된 관심’일 경우,
그 안엔 ‘진심’이 빠져 있을 수도 있다.
지우는 속으로 그 단서를 놓지 않았다.
“그래서요... 그 얘길 듣고 나서,
그 사람한테 말했어요.”
윤서는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지우는 여전히 말없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판단하지 않고, 대신해주지도 않는 그 시선이
이상하게 말을 계속하게 만들었다.
“내가 그 여자랑 닮았다는 말,
그렇게 쉽게 하지 말라고.
그랬더니... 그냥 웃더라고요.
‘좋은 의미로 그런 거지’ 하면서.”
그 웃음이, 그날 따라 어쩐지 이상하게 느껴졌다.
당시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부터 뭔가 어긋나 있었던 것 같았다.
“근데 그때...
왜 그 말을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까요?”
윤서는 마치 그 질문을 지우에게 던진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 되묻듯 중얼거렸다.
“속으로는 되게 신경 쓰였는데,
말로 꺼내는 순간
내가 예민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그냥, 입 다물었어요.”
그녀는 손끝을 비볐다.
불안이 손끝에 모여 흔들리는 것 같았다.
지우는 조용히, 그러나 선명하게 말했다.
“그 순간이요.
그게 바로 균열이에요.”
윤서는 고개를 들었다.
그 말이 낯설지 않게 다가온 게 이상했다.
“감정의 균형이 깨질 땐
항상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요.
오히려 너무 사소한 말,
너무 익숙한 표정,
너무 조용한 반응이
처음엔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다가...
나중에야, 무언가 틀어져 있었다는 걸 알아차리죠.”
윤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오래전 기억 속 어떤 퍼즐 조각이
지금 막 맞춰진 듯한 얼굴이었다.
“처음부터 불편했던 게 아니었어요.
그 사람은... 늘 친절했거든요.
늘 내가 원하는 걸 먼저 생각해줬고,
늘 괜찮다고, 괜찮다고... 말해줬어요.”
말을 하면서도 윤서는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 모든 ‘괜찮다’는 말이,
사실은 자신이 스스로 느끼고 말해야 했던 감정이라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나는 괜찮다고 느낀 적이 있었던가?’
지우는 그 질문이 윤서 안에서 시작되었다는 걸 알아챘다.
말은 아직 하지 않았지만,
그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감정의 균열은,
가장 조용한 순간에 스며든다.
그리고 그 균열은,
늘 “괜찮다”는 말 바로 옆에 숨어 있다.
“근데... 너무 이상하죠?”
윤서가 말을 꺼냈다.
그 말은 마치 낯선 질문처럼 공간에 떠돌았다.
“그 사람이요...
제가 뭘 하고 있는지, 항상 먼저 알고 있었어요.”
지우는 고개를 들었다.
윤서는 그 말이 스스로도 이상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제가 뭐 좋아할지,
무슨 말에 상처받을지,
어디쯤에서 피곤해할지도…
그 사람이 먼저 알았어요.”
말을 하던 윤서는 순간,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차가운 기분에 사로잡혔다.
“처음엔 그게 너무 고마웠거든요.
이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세심할까,
나한테 정말 집중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녀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숨이 가빠졌다.
그 다음 말은 더 조용한 목소리로 흘러나왔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아직 말도 안 했는데,
이걸 어떻게 알지?’
그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머릿속에 과거의 장면이 하나씩 떠올랐다.
말하지 않았던 짜증,
혼자 있고 싶던 날,
아무 말 없이 울고 싶었던 저녁.
그 사람은 늘 그 타이밍에 전화를 걸었고,
그 사람은 늘 그 말투로 다가왔다.
“너 요즘 좀 힘들지?”
“오늘은 밖에 나가지 말자. 너 피곤해 보여.”
그땐 신기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딘가 너무 정확했다.
너무 정확해서,
오히려 숨이 막혔다.
“제가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
말 안 해도 다 아는 거 같았어요.”
윤서는 말을 멈췄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속마음을 꺼냈다.
“근데요... 그게 어느 순간
‘편하다’가 아니라
‘들켜버렸다’는 기분으로 바뀌었어요.”
그 말은 조용했지만,
그녀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의 방향을
가장 정확하게 말해주는 문장이었다.
‘들켰다.’
자기 자신조차 정리하지 못한 마음의 흐름을
누군가가 먼저 읽고, 먼저 개입하고,
먼저 해석해버리는 관계.
처음엔 이해받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점점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감정이었다.
“그 사람은 제가 어떤 말 하기도 전에
이미 대답을 준비해놓은 느낌이었어요.
그게... 이상하죠?”
윤서는 다시 한번 되물었다.
이번엔 정말로 누군가에게 확인받고 싶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 사람은,
제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
뭘 하고 있는지… 늘 알고 있었어요.”
윤서의 말은 아주 단순한 문장이었다.
하지만 지우는 그 단어들이 얼마나 무거운 무게로 쌓여 있었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통한다는 관계.
말할 필요조차 없었던 감정.
그건 깊은 공감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지우는 알고 있었다.
그런 관계일수록
상대의 숨을 먼저 알아차리는 쪽보다
그 숨을 오래 참고 있었던 쪽이
더 많은 걸 감당하고 있었다는 걸.
지우는 말없이 윤서를 바라보다가
속으로 아주 조용히 되뇌었다.
‘모른다는 건, 방관과 다르다.’
‘감정은, 알지 못해도… 느껴지는 법이다.’
그리고 그걸 외면하는 사람은,
결코 몰랐던 게 아니다.
단지 모르는 척했을 뿐이다.
“오늘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우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 될 수 있어요.”
윤서는 잠시 고개를 숙인 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눈빛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그날, 상담실을 나서며
윤서는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나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었는지도 몰라.’
사랑은 때때로 배려라는 얼굴을 쓴 통제다.
그러나 통제를 모르는 사람은, 그 안에서 안심해버린다.
그 소리는 이상하게도, 어떤 감정을 닫기보다 여는 소리처럼 들렸다.
윤서는 작고 따뜻한 방 안에 발끝을 붙인 채,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방 안은 차분했다. 조용했고, 무해했다.
그 조용함이 오히려 윤서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처음 오신 거죠?”
맑고 낮은 여성의 목소리가 공간을 천천히 채웠다.
윤서는 고개를 들었다.
탁자 너머, 상담사가 앉아 있었다.
검은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그녀는 화장기가 거의 없었지만,
맑은 피부와 또렷한 이목구비 덕분에 오히려 눈에 띄었다.
기초 화장만으로도 단정하고 세련된 인상을 풍기는, 그런 사람이었다.
“네... 예약은 안 했어요.
그냥, 갑자기 오고 싶어져서…”
“괜찮아요. 지금 시간은 비어 있고요.”
그녀는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편하게 앉으세요. 불편하시면 말씀하시고요.”
윤서는 조심스레 의자에 앉았다.
그녀의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비를 맞고 와서인지 몸이 약간 으슬으슬했고,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여기, 처음이에요.
그리고… 이런 걸 말해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윤서는 그렇게 말하며 눈을 피했다.
그녀 스스로도 말이 시작되기 무섭게 부끄러워졌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누군가에게 설명하려는 것 자체가 어쩐지 낯설고 어리석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상담은 정답을 말하는 자리가 아니에요.
그냥, 지금 마음속에 떠오르는 말부터 꺼내셔도 괜찮습니다.
무엇을 말씀하시든, 여기선 틀리지 않아요.”
그 말이 그렇게 따뜻했던 건,
그녀가 ‘맞다’고 하지도, ‘틀렸다’고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윤서는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7년을... 친구로 지낸 사람이 있어요.
대학 때부터, 쭉.”
그 말을 꺼낸 순간부터, 윤서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앉았다.
어떤 말을 할지 정해두진 않았지만,
그 사람이 언젠가부터 마음속을 점령해 있었던 건 분명했다.
“그 사람이... 갑자기, 키스를 했어요.”
지우는 놀라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윤서는 한 번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생각보다... 낯설지가 않았어요.
놀라긴 했는데, 이상하게 익숙했어요.
그 사람의 눈빛도, 손길도… 전혀 모르는 게 아니었달까.”
그녀는 시선을 잠시 돌렸다가, 다시 지우를 바라봤다.
마치 그 감정을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듯한 눈빛이었다.
“우린 친구였어요.
나는... 친구라고 믿었고요.”
지우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되물었다.
“그런데도 익숙하게 느껴졌다는 건…
아마도, 이미 그 감정이 자라 있었단 뜻일 수도 있어요.
언제부터였다고 생각하세요?”
그 질문에 윤서는 말없이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문득 떠오른 장면 하나.
자신의 생일에, 조용히 선물과 편지를 내밀던 그.
자주 쓰는 향수를 기억하고, 아무 말 없이 주문을 바꿔주던 그.
항상 먼저 눈치 채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던 그 사람.
그 기억들이 퍼즐처럼 마음속에서 맞춰지고 있었다.
“언제부터였다고 생각하세요?”
지우의 질문이 끝나자,
윤서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는 게 아니었다.
너무 많은 순간이 한꺼번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머릿속이 아주 조용해지고,
그 빈틈을 틈타 기억이 들어왔다.
그의 손.
자신보다 먼저 커피 주문을 바꿔주던 날.
그의 눈.
말하지 않아도 오늘 기분이 어떤지 알아챘던 날들.
그의 귀.
생일을 잊지 않고, 매년 향수를 바꿔가며 선물했던 순간.
그의 말투.
항상 “괜찮아, 넌 늘 잘하고 있어”라고 끝맺던 위로의 언어들.
그 모든 기억은 편안했고, 자연스러웠다.
한 번도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 사람은요...
제가 뭘 원하는지 항상 먼저 알아채는 사람이었어요.
말 안 해도, 먼저 챙겨주고,
제가 불편해할 만한 건 미리 피하고,
제가 좋아할 만한 건 먼저 기억해놨고요.”
윤서는 그 말을 하면서도 어딘가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너무... 자연스러웠다는 게 좀...
좀 이상해요.”
그녀는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말끝을 더듬었다.
“예전엔 좋았거든요.
편하다고 느꼈고, 배려라고 생각했고…
근데 지금은...”
말이 흐려졌다.
그 감정의 이름을 어떻게 붙여야 할지 몰랐다.
편안함이 불쾌해지는 순간이 있다는 걸,
이 상담실 안에서야 처음 느꼈다.
지우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조용히 말했다.
“가끔은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사람’이 아니라
‘말하지 못하게 만드는 관계’일 수도 있어요.”
그 말에, 윤서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동안 한 번도 그 사람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자신조차도, 그 관계에 안주하고 있었다는 걸
지금에서야, 아주 작게, 인식하게 된 것이었다.
“전 그냥...
제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게 고마웠어요.”
그녀는 속삭이듯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고백이라기보다,
스스로를 설득하는 변명처럼 들렸다.
‘편했다고 말했다.
설레진 않았지만, 불편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지우는 윤서의 말을 들으며 조용히 눈을 내리깠다.
어떤 감정은, 그 조용함 속에서 더 잘 보였다.
오히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관계가
가장 많은 감정을 누르고 있었던 경우도 많았다.
‘익숙했다는 말.
낯설지 않았다는 말.
그건 감정이 이미 자라 있었다는 증거기도 하지만,
동시에 경계심이 무뎌졌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지우는 상담 초기, 내담자의 말보다
그 말과 말 사이의 정적을 더 유심히 듣는다.
말은 조심해서 고를 수 있지만,
침묵은 조작되지 않기 때문이다.
윤서는 지금, 스스로 느끼지 못한 감정의 언어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항상 제가 불편해할 만한 상황을 피해줬어요.
항상 먼저 챙기고, 먼저 물어보고, 제가 뭐 좋아하는지도 다 알고 있었고요...”
그녀의 말은 감사의 고백 같았다.
하지만 지우는 그 안에 흐르는 정서를 놓치지 않았다.
그것은 ‘기억’이 아니라 ‘혼란’이었다.
“제가 뭘 말하기도 전에, 다 알아서 해주니까...
전 그냥, 그게 고맙다고 생각했는데...”
지우는 눈을 들었다.
그녀의 시선은 윤서를 향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그 말의 결을 더듬고 있었다.
‘과도한 배려는 자주 감정 통제로 이어진다.
감정의 불균형은 오히려, 가장 조용한 순간에 뚫고 들어온다.’
지우는 예전에 한 내담자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저 사람은 날 너무 잘 아니까, 내가 뭘 생각하기도 전에 다 해버려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턴가, 내가 뭘 원하는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 말과 지금 윤서의 말은 본질적으로 닮아 있었다.
‘사랑은 때때로, 배려라는 얼굴을 쓴 통제다.
그리고 통제를 모르는 사람은, 그 안에서 안심해버린다.’
지우는 윤서가 감정을 조심스럽게 털어놓는 모습을 바라보며
지금 이 상담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가늠했다.
이 관계의 핵심은 '사랑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감정이 주고받는 힘이 균형을 이루고 있었는가’였다.
“그 사람이... 전에 사귀던 여자 이야기를 한 적 있어요.”
윤서는 말끝을 흘리며, 잠깐 시선을 내렸다.
지우는 아무 말 없이 기다렸다.
윤서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 여자, 저랑 스타일이 좀 비슷했대요.
생긴 것도, 목소리도, 쓰는 말투도...
심지어 같은 향수를 썼다고 했어요.”
지우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 말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었다.
윤서가 처음으로 ‘기억을 경계의 시선으로 되짚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그 말 듣고 나니까...
이상하게 머리가 띵했어요.
그때까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그 얘기를 듣고 나니까—
뭔가... 갑자기 되게 이상해졌어요.”
그녀는 팔을 스스로 감싸듯 움켜쥐었다.
감정이 조금씩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 사람이 좋아하던 것들이,
사실... 그냥 ‘그 사람의 취향’이었던 거 아닐까 싶더라고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아는 게 아니라,
자기가 좋아했던 사람의 습관을… 나에게서도 찾은 거면...”
그 말은 던지는 순간부터,
윤서에게도 생소하고 낯선 고백이었다.
그녀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저를... 저로서 본 게 아니라,
그냥... 익숙한 누군가의 그림자처럼 본 거면...
그동안의 배려도 다—”
말끝이 뚝 끊겼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말을 이어가면 안 될 것 같았다.
감정이 어떤 선을 넘어버릴까봐,
스스로 그 선을 움켜쥐고 있는 것 같았다.
지우는 조용히 윤서를 바라봤다.
‘그 사람은 그녀를 ‘알아챈’ 게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누군가를 ‘재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감정이란 건 늘 주관적인 거라
받는 사람은 그것이 ‘나를 향한 것’이라 믿고 싶어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감정이
‘패턴화된 관심’일 경우,
그 안엔 ‘진심’이 빠져 있을 수도 있다.
지우는 속으로 그 단서를 놓지 않았다.
“그래서요... 그 얘길 듣고 나서,
그 사람한테 말했어요.”
윤서는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지우는 여전히 말없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판단하지 않고, 대신해주지도 않는 그 시선이
이상하게 말을 계속하게 만들었다.
“내가 그 여자랑 닮았다는 말,
그렇게 쉽게 하지 말라고.
그랬더니... 그냥 웃더라고요.
‘좋은 의미로 그런 거지’ 하면서.”
그 웃음이, 그날 따라 어쩐지 이상하게 느껴졌다.
당시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부터 뭔가 어긋나 있었던 것 같았다.
“근데 그때...
왜 그 말을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까요?”
윤서는 마치 그 질문을 지우에게 던진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 되묻듯 중얼거렸다.
“속으로는 되게 신경 쓰였는데,
말로 꺼내는 순간
내가 예민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그냥, 입 다물었어요.”
그녀는 손끝을 비볐다.
불안이 손끝에 모여 흔들리는 것 같았다.
지우는 조용히, 그러나 선명하게 말했다.
“그 순간이요.
그게 바로 균열이에요.”
윤서는 고개를 들었다.
그 말이 낯설지 않게 다가온 게 이상했다.
“감정의 균형이 깨질 땐
항상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요.
오히려 너무 사소한 말,
너무 익숙한 표정,
너무 조용한 반응이
처음엔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다가...
나중에야, 무언가 틀어져 있었다는 걸 알아차리죠.”
윤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오래전 기억 속 어떤 퍼즐 조각이
지금 막 맞춰진 듯한 얼굴이었다.
“처음부터 불편했던 게 아니었어요.
그 사람은... 늘 친절했거든요.
늘 내가 원하는 걸 먼저 생각해줬고,
늘 괜찮다고, 괜찮다고... 말해줬어요.”
말을 하면서도 윤서는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 모든 ‘괜찮다’는 말이,
사실은 자신이 스스로 느끼고 말해야 했던 감정이라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나는 괜찮다고 느낀 적이 있었던가?’
지우는 그 질문이 윤서 안에서 시작되었다는 걸 알아챘다.
말은 아직 하지 않았지만,
그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감정의 균열은,
가장 조용한 순간에 스며든다.
그리고 그 균열은,
늘 “괜찮다”는 말 바로 옆에 숨어 있다.
“근데... 너무 이상하죠?”
윤서가 말을 꺼냈다.
그 말은 마치 낯선 질문처럼 공간에 떠돌았다.
“그 사람이요...
제가 뭘 하고 있는지, 항상 먼저 알고 있었어요.”
지우는 고개를 들었다.
윤서는 그 말이 스스로도 이상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제가 뭐 좋아할지,
무슨 말에 상처받을지,
어디쯤에서 피곤해할지도…
그 사람이 먼저 알았어요.”
말을 하던 윤서는 순간,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차가운 기분에 사로잡혔다.
“처음엔 그게 너무 고마웠거든요.
이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세심할까,
나한테 정말 집중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녀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숨이 가빠졌다.
그 다음 말은 더 조용한 목소리로 흘러나왔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아직 말도 안 했는데,
이걸 어떻게 알지?’
그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머릿속에 과거의 장면이 하나씩 떠올랐다.
말하지 않았던 짜증,
혼자 있고 싶던 날,
아무 말 없이 울고 싶었던 저녁.
그 사람은 늘 그 타이밍에 전화를 걸었고,
그 사람은 늘 그 말투로 다가왔다.
“너 요즘 좀 힘들지?”
“오늘은 밖에 나가지 말자. 너 피곤해 보여.”
그땐 신기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딘가 너무 정확했다.
너무 정확해서,
오히려 숨이 막혔다.
“제가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
말 안 해도 다 아는 거 같았어요.”
윤서는 말을 멈췄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속마음을 꺼냈다.
“근데요... 그게 어느 순간
‘편하다’가 아니라
‘들켜버렸다’는 기분으로 바뀌었어요.”
그 말은 조용했지만,
그녀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의 방향을
가장 정확하게 말해주는 문장이었다.
‘들켰다.’
자기 자신조차 정리하지 못한 마음의 흐름을
누군가가 먼저 읽고, 먼저 개입하고,
먼저 해석해버리는 관계.
처음엔 이해받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점점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감정이었다.
“그 사람은 제가 어떤 말 하기도 전에
이미 대답을 준비해놓은 느낌이었어요.
그게... 이상하죠?”
윤서는 다시 한번 되물었다.
이번엔 정말로 누군가에게 확인받고 싶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 사람은,
제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
뭘 하고 있는지… 늘 알고 있었어요.”
윤서의 말은 아주 단순한 문장이었다.
하지만 지우는 그 단어들이 얼마나 무거운 무게로 쌓여 있었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통한다는 관계.
말할 필요조차 없었던 감정.
그건 깊은 공감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지우는 알고 있었다.
그런 관계일수록
상대의 숨을 먼저 알아차리는 쪽보다
그 숨을 오래 참고 있었던 쪽이
더 많은 걸 감당하고 있었다는 걸.
지우는 말없이 윤서를 바라보다가
속으로 아주 조용히 되뇌었다.
‘모른다는 건, 방관과 다르다.’
‘감정은, 알지 못해도… 느껴지는 법이다.’
그리고 그걸 외면하는 사람은,
결코 몰랐던 게 아니다.
단지 모르는 척했을 뿐이다.
“오늘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우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 될 수 있어요.”
윤서는 잠시 고개를 숙인 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눈빛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그날, 상담실을 나서며
윤서는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나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었는지도 몰라.’
사랑은 때때로 배려라는 얼굴을 쓴 통제다.
그러나 통제를 모르는 사람은, 그 안에서 안심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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