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수련
조회 : 111 추천 : 0 글자수 : 4,576 자 2026-01-06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창틈으로 달빛이 스며들 무렵. 백운의 온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입술은 터졌고, 인상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의 호흡만은 기이할 정도로 고요했다.
[ 삼재심법(三才心法) - [범급/초입] (숙련도: 13.80%) ] [ 내공: 내상 일부 회복, 탁기 배출 중 ]
반나절 만에 1%가 넘게 올랐다. 이전의 백운이 한 달을 매달려도 불가능했던 성과.
그때였다.
쾅!
낡은 문짝이 비명을 지르며 열렸다. 찬바람과 역한 술 냄새와 함께 한 거구의 사내가 들어왔다. 대사형 장칠의 개 노릇을 하며 백운을 괴롭히던 '마석'이었다.
"어이, 백운. 아직 안 뒤졌냐?"
마석은 수련중인 백운을 한번 훑어 보더니 입을 열었다.
"대사형께서 찾으신다. 지금 몸 좀 풀고 싶으시대."
또다시 샌드백 호출. 백운은 천천히 눈을 떴다. 깊고 어두운 심연 같은 눈동자가 마석을 꿰뚫듯 응시했다.
[ 이름: 마석 ]
[ 경지: 삼류(三流) ]
[ 보유 무공: 철권(鐵拳) - [범급/숙달] (숙련도: 35.20%) ]
숫자가 보였다. 숙달 단계. 나보다 위다. 하지만 고작 35%다.
백운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못 가겠습니다."
"…뭐?"
"몸이 좋지 않아 못 가겠습니다. 돌아가시죠."
마석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늘 쥐새끼처럼 떨던 놈이 눈을 똑바로 뜨고 거절을 해? 술기운에 이성이 날아간 마석이 주먹을 치켜들었다.
"이 새끼가 돌았나, 죽고 싶어 환장했지!"
붕-! 솥뚜껑 같은 손바닥이 백운의 멱살을 잡기 위해 날아들었다. 위협적인 기세. 하지만 백운의 눈에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세상이 느려졌다. 0.1초의 프레임을 쪼개보던 전생의 감각이, 술에 취해 둔해진 마석의 움직임을 적나라하게 분해하고 있었다.
'하체는 풀려 있고, 어깨가 과도하게 들렸다.'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 있어.'
빈틈이 보였다. 너무나도 크고 명확하게.
백운은 왼발을 반 보 뒤로 빼며 가볍게 상체를 틀었다.
허공을 가르는 마석의 손. 그 순간, 반나절 동안 고통을 갈무리하며 벼려낸 집중력이, 전생의 감각과 맞물려 단 한 번의 지르기로 폭발했다.
퍼억!
"커헉!"
둔탁한 타격음. 마석의 눈이 뒤집혔다. 거구의 몸이 숨을 헐떡이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단 한 방.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카운터였다.
[ 철권(鐵拳) - [범급/초입] (숙련도: 4.12% -> 5.50%) ]
백운은 쓰러진 마석을 내려다보며 거칠어진 호흡을 골랐다. 내공을 쥐어짜 낸 일격이었지만, 빈약한 육체 탓에 손목이 시큰거렸다.
'운이 좋았어.'
상대가 방심했고, 술에 취해 있었다. 정면 승부였다면 체급 차이로 뼈도 못 추렸을 것이다. 백운은 감상에 젖는 대신 즉시 마석의 품을 뒤졌다. 무림은 힘이 곧 법인 세상. 패자의 모든 것은 승자의 전리품이다.
마석의 허리춤에서 나온 것은 동전 20문과 꼬깃꼬깃한 종이에 싸인 환약 한 알.
[ 아이템: 하급 소행단(小行丹) ]
[ 등급: 양급(良級) - 하품 (손상됨) ]
[ 재료: 10년근 도라지, 뱀 허물 등 (범급 재료) ]
[ 상태: 보관 불량. 약효 30% 소실. 복용 시 복통 유발 확률 높음. ]
"쓰레기 같군."
백운은 짧게 혀를 찼지만, 환약을 소중히 챙겼다. 지금 그에게는 썩은 동아줄이라도 필요했다. 그는 동전과 환약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쓰러진 마석의 멱살을 잡아 흔들어 깨웠다.
"으으…."
마석이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몽롱하던 눈동자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백운의 서늘한 눈빛과 마주치자 공포로 물들었다.
"이, 이거 놔! 너, 너…!"
"조용히 해."
백운의 목소리는 낮게 깔려 있었다.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넌 술에 취해서 혼자 자빠진 거야. 알겠어?"
"무, 무슨 소리야! 네놈이 나를…!"
"내가 널 때렸다고? 누가 믿을까? 천하의 이대 제자가 고작 병신 같은 삼대 제자한테 맞고 뻗었다고 소문이 나면, 대사형이 널 어떻게 볼 것 같나?"
마석의 입이 턱 막혔다. 철권문은 철저한 힘의 논리로 돌아가는 곳. 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 그는 장칠의 눈 밖에 날 것이고 먹이사슬의 최하위로 추락할 것이다. 그 공포가 분노를 압도했다.
"너… 원하는 게 뭐야."
"입 다물고 꺼져. 그리고 앞으로 내 식사는 네가 직접 챙겨와. 남들이 손대지 않은 온전한 걸로."
백운은 잠시 생각하더니, 턱짓으로 문밖을 가리켰다.
"아, 하나 더. 대사형 방에 굴러다니는 쓸만한 약이나 하나 가져와. 그 정도는 해줄 수있지?"
"뭐, 뭐? 미쳤어? 대사형 물건에 손을 대라고? 걸리면 죽어!"
"안 걸리면 되지. 네가 훔쳐오든, 구걸해서 받아오든 상관없어. 그동안 네가 나한테 한 행동들에 대한 사과라고 생각해."
"이 미친 새끼가..."
마석의 울분이 치솟았다. 아무리 약점을 잡혔다지만, 대사형의 물건에 손을 대는 건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굴욕감과 분노가 뒤섞여 이성이 마비되려던 찰나.
백운의 눈.
깊고 메마른 그 눈동자에는 십수 년간 바닥을 구르며 씹어 삼킨 멸시와 오기가 굳은살처럼 박혀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무서운 눈빛이 아니었다. 한겨울 길바닥에서 썩은 음식을 두고 들개와 다투던 자, 생존을 위해서라면 인간의 존엄마저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처절한 냉기였다. 잃을 것이 없는 자가 품은, 섬뜩할 정도로 차분한 광기.
등골을 타고 소름 끼치는 한기가 흘러내렸다. 짐승 같은 직감이 경고하고 있었다. 여기서 거절하면, 단순히 얻어맞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눈앞의 저 놈은 자신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것에 주저함이 없을 것이라는 원초적인 공포가 마석의 뇌리를 지배했다.
방금 전까지 타오르던 반항심은 순식간에 증발하고, 그 자리를 비굴한 생존 본능이 채웠다. 마석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아, 알았어."
마석은 도망치듯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방을 빠져나갔다. 백운은 닫힌 문을 싸늘하게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시간 따위 없어."
이건 임시방편이다. 마석이 정신을 차리면 언제든 보복하려 들거나, 장칠이 의심을 품을 수 있다. 그전에 힘을 키워야 한다. 압도적인 힘을.
백운은 즉시 자리에 앉아 품에서 '하급 소행단'을 꺼냈다. 흙냄새가 나는 조악한 단약. 그는 상태창을 응시하며 환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환약이 녹으며 뜨거운 기운이 위장에서 퍼져 나감과 동시에 역한 탁기가 뒤섞여 속을 메스껍게 만들었다.
[ 내공 수치 불안정 ]
상태창의 내공 그래프가 미친 듯이 요동쳤다. 백운은 즉시 삼재심법을 운용했다. 하지만 단순히 구결을 따르는 게 아니었다. 탁한 기운이 섞여 들어오면 의도적으로 호흡을 멈추고 내뱉었다. 순수한 열기만이 느껴질 때, 깊게 들이마셔 단전으로 보냈다.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내장은 뒤틀리는 것 같았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입술을 꽉 깨물어 피 맛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수치가 떨어지면 즉시 호흡법을 바꿨고, 수치가 오르면 그 감각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시스템은 답을 알려주지 않지만, 오답인지 정답인지는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 내공: 5년 -> 5년 6개월 ]
[ 내공: 5년 6개월 -> 5년 9개월 ]
수치가 오르는 것을 확인한 백운의 눈동자에는 탐욕스러운 빛이 스쳤다. 고통은 끔찍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결과값이 우상향하고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후우…."
한 시진(2시간) 후. 백운은 입에서 검은 핏덩이를 뱉어냈다. 체내에 쌓여 있던 탁기 덩어리였다.
[ 내공: 6년 4개월 (정제됨) ]
[ 삼재심법(三才心法) - [범급/숙달] (숙련도: 21.50%) ]
[ 기능점: 0 ]
약효의 9할 이상을 흡수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반도 흡수하지 못했을 저질 단약을, 극한의 효율로 빨아먹은 것이다. 내공이 정화되자 몸놀림이 한결 가벼워졌다.
"아직 멀었어."
백운은 만족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이 트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다. 그는 좁은 방 안에서 '철권'의 자세를 잡았다. 가장 기초적인 정권 지르기.
하나. 주먹을 내지른다. 어깨가 결리고 자세가 무너진다. 시스템 수치는 요지부동이다.
둘. 다시. 이번엔 허리를 좀 더 쓴다. 미세하게 수치가 오른다.
셋, 넷, 다섯…. 수백 번의 주먹질이 이어졌다. 단순한 반복이 아니었다. 한 번 지를 때마다 각도, 속도, 힘의 배분을 달리하며 최적의 효율을 찾아가는 실험이었다.
[ 철권(鐵拳) - [범급/초입] (숙련도: 15.30%) ]
[ 철권(鐵拳) - [범급/초입] (숙련도: 28.90%) ]
새벽빛이 창호지 문을 푸르스름하게 물들일 때쯤. 백운의 주먹에서는 처음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날카로운 파열음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 철권(鐵拳) - [범급/숙달] (숙련도: 41.00%) ]
"하아, 하아…."
한계였다. 아무리 내공으로 기력을 보충한다 해도, 오랫동안 영양실조에 시달린 육체는 휴식을 원하고 있었다. 눈앞이 핑 돌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백운은 그대로 낡은 침상 위로 쓰러졌다. 시스템 알람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깊고 무거운 수면이 그를 덮쳤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강제 셧다운이었다.
입술은 터졌고, 인상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의 호흡만은 기이할 정도로 고요했다.
[ 삼재심법(三才心法) - [범급/초입] (숙련도: 13.80%) ] [ 내공: 내상 일부 회복, 탁기 배출 중 ]
반나절 만에 1%가 넘게 올랐다. 이전의 백운이 한 달을 매달려도 불가능했던 성과.
그때였다.
쾅!
낡은 문짝이 비명을 지르며 열렸다. 찬바람과 역한 술 냄새와 함께 한 거구의 사내가 들어왔다. 대사형 장칠의 개 노릇을 하며 백운을 괴롭히던 '마석'이었다.
"어이, 백운. 아직 안 뒤졌냐?"
마석은 수련중인 백운을 한번 훑어 보더니 입을 열었다.
"대사형께서 찾으신다. 지금 몸 좀 풀고 싶으시대."
또다시 샌드백 호출. 백운은 천천히 눈을 떴다. 깊고 어두운 심연 같은 눈동자가 마석을 꿰뚫듯 응시했다.
[ 이름: 마석 ]
[ 경지: 삼류(三流) ]
[ 보유 무공: 철권(鐵拳) - [범급/숙달] (숙련도: 35.20%) ]
숫자가 보였다. 숙달 단계. 나보다 위다. 하지만 고작 35%다.
백운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못 가겠습니다."
"…뭐?"
"몸이 좋지 않아 못 가겠습니다. 돌아가시죠."
마석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늘 쥐새끼처럼 떨던 놈이 눈을 똑바로 뜨고 거절을 해? 술기운에 이성이 날아간 마석이 주먹을 치켜들었다.
"이 새끼가 돌았나, 죽고 싶어 환장했지!"
붕-! 솥뚜껑 같은 손바닥이 백운의 멱살을 잡기 위해 날아들었다. 위협적인 기세. 하지만 백운의 눈에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세상이 느려졌다. 0.1초의 프레임을 쪼개보던 전생의 감각이, 술에 취해 둔해진 마석의 움직임을 적나라하게 분해하고 있었다.
'하체는 풀려 있고, 어깨가 과도하게 들렸다.'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 있어.'
빈틈이 보였다. 너무나도 크고 명확하게.
백운은 왼발을 반 보 뒤로 빼며 가볍게 상체를 틀었다.
허공을 가르는 마석의 손. 그 순간, 반나절 동안 고통을 갈무리하며 벼려낸 집중력이, 전생의 감각과 맞물려 단 한 번의 지르기로 폭발했다.
퍼억!
"커헉!"
둔탁한 타격음. 마석의 눈이 뒤집혔다. 거구의 몸이 숨을 헐떡이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단 한 방.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카운터였다.
[ 철권(鐵拳) - [범급/초입] (숙련도: 4.12% -> 5.50%) ]
백운은 쓰러진 마석을 내려다보며 거칠어진 호흡을 골랐다. 내공을 쥐어짜 낸 일격이었지만, 빈약한 육체 탓에 손목이 시큰거렸다.
'운이 좋았어.'
상대가 방심했고, 술에 취해 있었다. 정면 승부였다면 체급 차이로 뼈도 못 추렸을 것이다. 백운은 감상에 젖는 대신 즉시 마석의 품을 뒤졌다. 무림은 힘이 곧 법인 세상. 패자의 모든 것은 승자의 전리품이다.
마석의 허리춤에서 나온 것은 동전 20문과 꼬깃꼬깃한 종이에 싸인 환약 한 알.
[ 아이템: 하급 소행단(小行丹) ]
[ 등급: 양급(良級) - 하품 (손상됨) ]
[ 재료: 10년근 도라지, 뱀 허물 등 (범급 재료) ]
[ 상태: 보관 불량. 약효 30% 소실. 복용 시 복통 유발 확률 높음. ]
"쓰레기 같군."
백운은 짧게 혀를 찼지만, 환약을 소중히 챙겼다. 지금 그에게는 썩은 동아줄이라도 필요했다. 그는 동전과 환약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쓰러진 마석의 멱살을 잡아 흔들어 깨웠다.
"으으…."
마석이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몽롱하던 눈동자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백운의 서늘한 눈빛과 마주치자 공포로 물들었다.
"이, 이거 놔! 너, 너…!"
"조용히 해."
백운의 목소리는 낮게 깔려 있었다.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넌 술에 취해서 혼자 자빠진 거야. 알겠어?"
"무, 무슨 소리야! 네놈이 나를…!"
"내가 널 때렸다고? 누가 믿을까? 천하의 이대 제자가 고작 병신 같은 삼대 제자한테 맞고 뻗었다고 소문이 나면, 대사형이 널 어떻게 볼 것 같나?"
마석의 입이 턱 막혔다. 철권문은 철저한 힘의 논리로 돌아가는 곳. 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 그는 장칠의 눈 밖에 날 것이고 먹이사슬의 최하위로 추락할 것이다. 그 공포가 분노를 압도했다.
"너… 원하는 게 뭐야."
"입 다물고 꺼져. 그리고 앞으로 내 식사는 네가 직접 챙겨와. 남들이 손대지 않은 온전한 걸로."
백운은 잠시 생각하더니, 턱짓으로 문밖을 가리켰다.
"아, 하나 더. 대사형 방에 굴러다니는 쓸만한 약이나 하나 가져와. 그 정도는 해줄 수있지?"
"뭐, 뭐? 미쳤어? 대사형 물건에 손을 대라고? 걸리면 죽어!"
"안 걸리면 되지. 네가 훔쳐오든, 구걸해서 받아오든 상관없어. 그동안 네가 나한테 한 행동들에 대한 사과라고 생각해."
"이 미친 새끼가..."
마석의 울분이 치솟았다. 아무리 약점을 잡혔다지만, 대사형의 물건에 손을 대는 건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굴욕감과 분노가 뒤섞여 이성이 마비되려던 찰나.
백운의 눈.
깊고 메마른 그 눈동자에는 십수 년간 바닥을 구르며 씹어 삼킨 멸시와 오기가 굳은살처럼 박혀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무서운 눈빛이 아니었다. 한겨울 길바닥에서 썩은 음식을 두고 들개와 다투던 자, 생존을 위해서라면 인간의 존엄마저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처절한 냉기였다. 잃을 것이 없는 자가 품은, 섬뜩할 정도로 차분한 광기.
등골을 타고 소름 끼치는 한기가 흘러내렸다. 짐승 같은 직감이 경고하고 있었다. 여기서 거절하면, 단순히 얻어맞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눈앞의 저 놈은 자신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것에 주저함이 없을 것이라는 원초적인 공포가 마석의 뇌리를 지배했다.
방금 전까지 타오르던 반항심은 순식간에 증발하고, 그 자리를 비굴한 생존 본능이 채웠다. 마석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아, 알았어."
마석은 도망치듯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방을 빠져나갔다. 백운은 닫힌 문을 싸늘하게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시간 따위 없어."
이건 임시방편이다. 마석이 정신을 차리면 언제든 보복하려 들거나, 장칠이 의심을 품을 수 있다. 그전에 힘을 키워야 한다. 압도적인 힘을.
백운은 즉시 자리에 앉아 품에서 '하급 소행단'을 꺼냈다. 흙냄새가 나는 조악한 단약. 그는 상태창을 응시하며 환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환약이 녹으며 뜨거운 기운이 위장에서 퍼져 나감과 동시에 역한 탁기가 뒤섞여 속을 메스껍게 만들었다.
[ 내공 수치 불안정 ]
상태창의 내공 그래프가 미친 듯이 요동쳤다. 백운은 즉시 삼재심법을 운용했다. 하지만 단순히 구결을 따르는 게 아니었다. 탁한 기운이 섞여 들어오면 의도적으로 호흡을 멈추고 내뱉었다. 순수한 열기만이 느껴질 때, 깊게 들이마셔 단전으로 보냈다.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내장은 뒤틀리는 것 같았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입술을 꽉 깨물어 피 맛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수치가 떨어지면 즉시 호흡법을 바꿨고, 수치가 오르면 그 감각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시스템은 답을 알려주지 않지만, 오답인지 정답인지는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 내공: 5년 -> 5년 6개월 ]
[ 내공: 5년 6개월 -> 5년 9개월 ]
수치가 오르는 것을 확인한 백운의 눈동자에는 탐욕스러운 빛이 스쳤다. 고통은 끔찍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결과값이 우상향하고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후우…."
한 시진(2시간) 후. 백운은 입에서 검은 핏덩이를 뱉어냈다. 체내에 쌓여 있던 탁기 덩어리였다.
[ 내공: 6년 4개월 (정제됨) ]
[ 삼재심법(三才心法) - [범급/숙달] (숙련도: 21.50%) ]
[ 기능점: 0 ]
약효의 9할 이상을 흡수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반도 흡수하지 못했을 저질 단약을, 극한의 효율로 빨아먹은 것이다. 내공이 정화되자 몸놀림이 한결 가벼워졌다.
"아직 멀었어."
백운은 만족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이 트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다. 그는 좁은 방 안에서 '철권'의 자세를 잡았다. 가장 기초적인 정권 지르기.
하나. 주먹을 내지른다. 어깨가 결리고 자세가 무너진다. 시스템 수치는 요지부동이다.
둘. 다시. 이번엔 허리를 좀 더 쓴다. 미세하게 수치가 오른다.
셋, 넷, 다섯…. 수백 번의 주먹질이 이어졌다. 단순한 반복이 아니었다. 한 번 지를 때마다 각도, 속도, 힘의 배분을 달리하며 최적의 효율을 찾아가는 실험이었다.
[ 철권(鐵拳) - [범급/초입] (숙련도: 15.30%) ]
[ 철권(鐵拳) - [범급/초입] (숙련도: 28.90%) ]
새벽빛이 창호지 문을 푸르스름하게 물들일 때쯤. 백운의 주먹에서는 처음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날카로운 파열음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 철권(鐵拳) - [범급/숙달] (숙련도: 41.00%) ]
"하아, 하아…."
한계였다. 아무리 내공으로 기력을 보충한다 해도, 오랫동안 영양실조에 시달린 육체는 휴식을 원하고 있었다. 눈앞이 핑 돌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백운은 그대로 낡은 침상 위로 쓰러졌다. 시스템 알람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깊고 무거운 수면이 그를 덮쳤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강제 셧다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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