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으으…."
전신의 뼈를 맷돌에 억지로 갈아 넣은 듯한 끔찍한 통증. 그것이 강진호가 느낀 첫 번째 감각이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뼈마디는 비명을 지르고, 근육은 끊어질 듯 경련했다. 핏줄을 타고 흐르는 혈액조차 모래알처럼 까끌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는 억지로 납덩이처럼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흐릿한 시야에 들어온 것은 익숙한 하얀 병실 천장이나, 최첨단 장비가 즐비한 게임 하우스가 아니었다.
거미줄이 쳐진 낡고 썩은 나무 서까래.
군데군데 뚫린 창호지 문틈으로 들어오는 황소바람.
그리고 코끝을 찌르는 퀴퀴한 흙냄새와 곰팡이 내음, 섞여 들어오는 피 비린내.
'여긴… 어디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머릿속이 도끼로 찍힌 듯 쪼개질 듯 울렸다.
"윽…!"
날카로운 이명과 함께 타인의 기억이 뇌를 찢고 억지로 비집고 들어왔다. 그것은 마치 용량이 큰 데이터 파일을 구식 하드디스크에 강제로 덮어쓰는 듯한 불쾌하고 폭력적인 감각이었다.
철권문(鐵拳門) 삼대 제자 백운(白雲).
나이 십일곱.
천애고아.
재능 없는 쓰레기.
그리고… 대사형 장칠의 전용 '샌드백'.
"하…."
진호, 아니 백운은 터진 입술 사이로 헛웃음을 흘렸다. 뻔한 스토리다. 소설이나 게임에서나 보던 빙의(憑依). 그것도 내일 당장 객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밑바닥 인생으로.
밀려온 기억을 정리해 보니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이 몸의 주인인 백운은 부모 얼굴조차 모르는 고아였다. 시궁창 같은 뒷골목에서 개밥을 훔쳐 먹으며 짐승처럼 살던 그는, '무공을 익히면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일념 하나로 십수 년간 악착같이 푼돈을 모았다. 구걸을 하고, 짐을 나르고, 남들이 버린 옷을 기워 입으며 모은 전 재산을 털어 입문비를 마련해 들어온 곳이 바로 이곳, 철권문이었다.
중원 대륙 서부, 변방의 소도시인 천곡현(天谷縣) 구석에 처박힌 삼류 문파.
한때는 '철권신'이라 불리던 조사가 맨손으로 강철을 종잇장처럼 찢고, 권풍(拳風) 한 번으로 성벽을 허물었다는 전설이 전해지지만, 그것도 200년 전의 흘러간 영광일 뿐이었다.
지금의 철권문은 이름값조차 못 하는 신세였다. 문도라곤 고작 오십여 명. 그마저도 무공을 연마하는 무인이라기보다, 시장통 상인들에게 보호비나 뜯어내는 시정잡배에 가까웠다. 게다가 천곡현의 한정된 자원마저 경쟁 상대인 '청수문'에게 대부분 잠식당한 상태였다. 같은 삼류 문파임에도 머릿수에서 밀리는 철권문은 그들의 눈치를 보며 찌그러져 살아야 했다.
꿈에 그리던 무림 문파에 들어왔건만, 현실은 냉혹했다. 돈만 밝히는 문주 왕대협은 기초 심법과 철권 비급만 던져주고 방치했고, 가진 것 없는 늦깎이 입문자 백운은 그저 문파의 잡일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가 진짜 지옥을 맛보게 된 건, 대사형 장칠의 눈 밖에 나면서부터였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찍힌 이유조차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입문 초기, 동기 녀석들이 모여 장칠의 뒷담화를 늘어놓다가 그 내용이 장칠의 귀에 들어가는 사단이 났다. 범인 색출이 시작되자, 주동자였던 동기는 급한 나머지 만만한 백운을 지목했다.
"저, 제가 아니라 백운이 그랬습니다! 대사형의 무공이 형편없다고…."
뒷배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고아 출신 백운은 완벽한 희생양이었다. 그가 필사적으로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이곳에서 약자의 진실은 통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백운은 철권문의 공식 동네북이 되었다. 숨만 쉬어도 얻어맞았고, 눈이 마주치면 건방지다고 밟혔다. 어제도 장칠의 화풀이 대련 상대로 끌려나가 반죽음이 되도록 맞고 기절한 것이었다.
백운은 욱신거리는 옆구리를 감싸 쥐었다. 숨을 쉴 때마다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갈비뼈에 금이 간 것이 분명했다.
'최악이군.'
하지만 그는 절망에 빠져 좌절하는 대신, 냉철하게 현실을 파악했다.
강진호. 그는 전생에 평범한 게이머가 아니었다. 0.16초라는 찰나의 프레임 단위로 승부를 가르는 격투 게임의 정점이자, 수만 건의 데이터를 분석해 상대의 패턴을 완벽하게 파해하던 전략가. '나노 컨트롤의 황제'라 불리던 그에게, 눈앞의 상황은 단지 난이도가 극악인 '새로운 게임'일 뿐이었다.
'살아남으려면 정보가 필요해.'
그때였다. 허공에 아무런 전조 없이 푸른 빛이 일렁였다.
[ 이름: 백운 (17세) ]
[ 경지: 삼류(三流) - 하수 ]
[ 상태: 늑골 골절, 심각한 내상, 영양실조 ]
기계적이고 건조한 텍스트. 어떤 음성 안내도, 친절한 설명도 없는 그저 허공에 뜬 데이터 덩어리.
[ 근력: 8 ] [ 민첩: 11 ] [ 체력: 7 (회복 불가) ] [ 내공: 5년 (탁기 40% 혼재) ] [ 기능점: 0 ]
[ 보유 무공 ]
[ 철권(鐵拳) - [범급/초입] (숙련도: 4.12%) ]
[ 삼재심법(三才心法) - [범급/초입] (숙련도: 12.05%) ]
"……."
처참한 수치였다. 탁기가 섞인 쓰레기 내공에, 일반인보다 못한 근력. 무공 등급은 가장 낮은 '범급'. 당장 동네 깡패도 못 이길 수준이다. 하지만 백운의 입가에는 오히려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숫자가 보인다는 건, 측정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측정할 수 있다면, 공략할 수 있다.
"확인해 보지."
백운은 신음을 삼키며 가부좌를 틀고 기억속에 '삼재심법'의 구결을 떠올렸다. 호흡을 들이마시고, 아랫배로 기운을 내린다. 백운의 기억 속에서 수백 번 실패했던 그 과정. 꽉 막힌 도로처럼 답답하고, 기가 모이는지조차 알 수 없었던 깜깜이 수련.
'흡(吸).'
숨을 들이켰다. 시선은 허공의 상태창에 고정했다.
[ 삼재심법(三才心法) - [범급/초입] (숙련도: 12.05%) ]
백운은 미간을 좁혔다. 다시. 이번엔 호흡을 조금 더 길게.
[ 삼재심법(三才心法) - [범급/초입] (숙련도: 12.05%) ]
몇번 반복해서 시도를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짜증을 내거나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백운은 냉정했다. 오답은 곧 정답으로 가는 과정일 뿐.
다시 한번, 흡(吸)…
그렇게 몇십번의 시도끝에 미약하지만 따뜻한 열기가 단전 근처를 스치고 지나갔다.
[ 삼재심법(三才心法) - [범급/초입] (숙련도: 12.06%) ]
"…됐어."
단 0.01%. 먼지 같은 수치였지만, 백운에게는 어둠 속의 등대와 같았다.
"이거면 돼."
백운은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고통 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눈을 감았다. 이제 필요한 건 광기 어린 반복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