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카운터
조회 : 136 추천 : 0 글자수 : 5,675 자 2026-01-07
제3화: 변수 제어 (Variable Control)
"일어나! 해가 중천이다!"
누군가의 고함에 백운은 퍼뜩 눈을 떴다.
아침이었다. 전신이 두들겨 맞은 듯 욱신거렸지만, 어제보다는 한결 가벼웠다. 잠깐의 잠이었지만 내공 수련 덕분에 회복 효율이 좋았다.
연무장에 집합한 3대 제자들 사이로 백운은 조용히 합류했다.
단상 위에는 대사형 장칠이 매서운 눈으로 제자들을 훑고 있었다.
'저 놈이 어떻게 서 있지?'
장칠의 미간이 좁혀졌다. 분명 어제 대련에서 갈비뼈가 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내상도 심각했을 터.
그런데 지금 백운은 허리를 꼿꼿이 펴고 서 있었다. 안색은 창백하기는커녕 혈색이 돌았고, 눈빛은 기이할 정도로 차분했다.
'마석, 저 멍청한 놈은 또 왜 저래?'
그때 장칠의 시야에 연무장 한쪽에서 3대 제자들을 감시하고 있던 마석이 들어왔다. 평소라면 몽둥이를 들고 윽박질렀을 그가, 지금은 자꾸 힐끔힐끔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향한 곳에 마침 백운이 서있었다.
뭔가 있다. 장칠의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각자 수련에 들어간다. 단, 백운은 남는다."
제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백운에게 쏠렸다. 동정, 조소, 무관심. 익숙한 반응들이었다. '또 시작이네', '저러다 진짜 죽는 거 아니야?' 하는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예, 대사형."
덤덤한 목소리. 장칠은 그 태도가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쥐새끼는 쥐새끼답게 구석에서 떨고 있어야 분수에 맞거늘. 장칠이 성큼성큼 다가와 백운의 코앞에 섰다. 위압적인 덩치가 백운을 그림자처럼 덮쳤다.
"몸이 꽤 좋아 보이는구나? 어제는 다 죽어가더니."
"대사형의 가르침 덕분에 맷집이 좀 늘었나 봅니다."
"가르침? "
장칠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피떡이 되어 빌빌대던 놈이, 하루 만에 멀쩡한 얼굴로 꼿꼿하게 서서 저런 소리를 지껄이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래. 기왕 맷집이 늘었으니 테스트는 해봐야지."
백운은 거절하지 않았다. 아니, 거절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조용히 연무장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 대상: 장칠 (철권문 대제자) ]
[ 경지: 삼류(三流) - 상급 ]
[ 추정 무공: 철권(鐵拳) - [범급/숙달] (숙련도: 88.50%) ]
[ 신체 상태: 양호 / 근력: 18 / 민첩: 14 ]
'근력 18. 내 두 배. 민첩도 내가 아래.'
단순 스펙만 보면 필패(必敗)다. 정면 승부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뇌가 아무리 빨라도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소용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예측'.
게다가 뒷짐 진 손, 풀어진 어깨…
'방심하고 있어!'
장칠이 한 손은 여전히 뒷짐을 진 채 대충 자세를 잡았다.
"준비됐나?"
백운은 대답 대신 가볍게 주먹을 쥐고 자세를 취했다.
"건방진 놈!"
쿵! 굉음과 함께 장칠의 거구가 포탄처럼 쏘아져 나왔다.
그렇게 모든이의 시선이 연무장 가운데에 쏠리는 순간, 구석에서 마른침을 삼키던 마석은 주변을 살피고는 몸을 최대한 웅크린 채, 연무장 기둥 뒤로 미끄러지듯 사라졌다. 그리고는 장칠의 숙소를 향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미쳤어, 미쳤어!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장칠의 방에 손을 댄다? 걸리면 죽음이다. 단순히 맞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철권문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잡일꾼이 어디 한 둘이었던가.
장칠의 숙소 앞에 도착한 마석의 발이 바닥에 붙어버린 듯 멈춰 섰다.
덜덜덜.
방문 고리를 잡으려던 손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그냥 돌아갈까?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갔다고 하면… 아니, 못 봤다고 우기면….'
마석은 무공 재능은 쥐뿔도 없었지만, 눈치 하나만큼은 타고난 놈이었다.
장칠이 미간을 찌푸리면 알아서 시원한 물을 대령하고, 기분이 더러워 보이면 쥐 죽은 듯 엎어져 화풀이 대상을 물색해 바치는 기민함. 그것이 짐승들이 우글거리는 이 철권문 바닥에서, 약해빠진 그가 장칠의 최측근 꼬붕 노릇이라도 하며 편하게 지낼 수 있었던 유일한 생존 전략이었다.
그 탁월한 '생존 본능'이 지금 맹렬하게 경고등을 울리고 있었다.
몇 번이고 도망치고 싶었다. 장칠이 줄 공포는 너무나 명확했고 현실적이었으니까. 하지만 문고리에서 손을 떼려던 그 순간, 뇌리에 서늘한 기억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제 자신을 내려다보던 백운의 눈. 그것은 십수년간 바닥에서 처절하게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맹수의 눈이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深淵)처럼, 모든 감정이 말라비틀어진 차가운 눈빛. 지금까지 그를 살려온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장칠은 폭군이라면, 백운은 악귀라고. 장칠의 방을 터는 건 목숨을 건 도박이지만, 적어도 '안 걸릴 수도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빈손으로 백운에게 돌아간다면? 그건 도박조차 성립하지 않는다. 그놈은 반드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숨통을 끊어놓을 것이다. '걸릴지도 모르는' 공포보다, '반드시 죽일' 공포가 마석의 등을 떠밀었다.
"으으윽… 제기랄!"
마석은 이를 악물고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문을 열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서랍을 뒤지고, 옷장을 털었다.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지만, 머릿속엔 오직 하나, 백운의 말한 '쓸만한 약'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다시 연무장.
단숨에 거리를 좁힌 장칠의 주먹이 백운의 머리통을 향해 날아들었다.
'빠르다.'
머리로는 궤적이 보였지만, 병약한 몸은 한 템포 늦게 반응했다.
백운은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퍽!
완전히 피하지 못한 주먹이 어깨를 강타했다.
"으윽!"
뼛속까지 울리는 충격에 백운은 뒷걸음질 쳤다.
역시 스펙 차이가 너무 커 힘을 대부분 흘렸는데도 이정도 위력!
한 대라도 정통으로 맞으면 끝이다.
장칠의 연타가 쏟아졌다.
백운은 구르고, 막고, 피하며 처절하게 버텼다. 흙투성이가 되고 옷이 찢어졌다.
'아직이야. 아직….'
그는 비명을 지르는 몸을 억지로 움직이며 데이터를 수집했다.
장칠의 호흡, 발을 딛는 습관, 주먹을 뻗기 전 왼쪽 어깨가 먼저 움찔하는 미세한 버릇.
맞을 때마다, 피할 때마다 정보가 쌓였다.
그리고 백운이 체력이 다 떨어져가고 시야도 점차 흐려지려던 그 때.
장칠이 결정타를 날리기 위해 크게 팔을 들어 올렸다.
[ 약점 포착: 우측 늑골 (방어력 0 - 무방비) ]
백운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다.
그 순간 백운은 맞으면 죽는다는 공포를 억누르고 피하는 대신, 장칠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어…?"
그 행동에 장칠은 당황했고 주먹은 멈칫했다.
0.1초의 틈!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밤새 뼈가 으스러지도록 반복했던 그 동작. 머리가 명령하기도 전에, 근육에 각인된 '최적화된 데이터'가 제멋대로 폭발했다. 발끝에서 척추를 타고 올라온 전신의 힘이 수천 번의 헛손질 끝에 찾아낸, 오차 범위 0%에 가까운 완벽한 일격. 백운의 주먹이 장칠의 텅 빈 옆구리를 꿰뚫듯이 파고들었다.
퍼억!
둔탁하고 묵직한 타격음. 단순한 주먹질이 아닌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는 결정적인 한 방. 카운터!
"크윽!"
장칠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
갈비뼈가 울리는 고통에 장칠의 몸이 순간적으로 움츠러들었다.
백운은 그 틈을 즉시 잡아 중심을 한 치 낮췄고, 늑골을 때린 반동을 끊지 않은 채 철권 제2형(鐵拳 第二形)으로 이어갔다.
아래에서 위로 힘을 끌어올리듯 팔꿈치를 솟구쳐, 장칠의 턱을 정확히 가격했다.
빡!
고개가 뒤로 젖혀진 장칠이 비틀거렸다.
정적.
연무장에 있던 삼십여 명의 제자들이 숨을 멈췄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철권문의 실세, 대사형 장칠이 고작 입문한 지 얼마 안 된 삼대 제자에게 밀리고 있었다.
모두가 넋을 잃고 있는 틈을 타, 옷매무새를 다듬은 마석이 무리 뒤편에 슬그머니 합류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든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비틀거리는 장칠과 그 앞에 선 백운이었다.
'말도 안 돼… 저게 정말 백운이라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단순히 뛰어서가 아니었다. 방금 목격한 일격은 우연이라기엔 너무나 날카로웠다.
마석은 품속의 약병을 무의식적으로 꽉 움켜쥐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것이 자신의 목숨을 죌 밧줄처럼 느껴졌는데, 어쩌면… 다른 무언가가 될 수도 있겠다는 묘한 예감이 스쳤다.
마석의 시선이 백운의 등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그 눈빛에는 이전의 경멸 대신, 알 수 없는 기대감이 희미하게 서리기 시작했다.
백운은 후속타를 날리는 대신 뒤로 훌쩍 물러섰다.
여기서 더 욕심을 내면 안 된다. 그의 체력은 이미 바닥이었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헉, 헉…."
장칠이 턱을 부여잡고 핏발 선 눈으로 백운을 노려봤다. 당장이라도 찢어 죽일 기세였다.
하지만 지금은 턱을 맞은 충격으로 뇌가 흔들려 중심을 잡기조차 힘들다.
"대사형."
백운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호흡은 가빴지만 목소리는 침착했다.
"아직 몸이 덜 풀리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지요."
그것은 장칠에게 주는 명분이었다. '몸이 덜 풀려서 맞은 것'이라는 핑계.
장칠은 부들부들 떨며 주먹을 쥐었다. 지금 당장 백운을 죽이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그래.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군."
장칠은 거칠게 몸을 돌려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그의 뒷모습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누가 봐도 '다음에 널 죽여버리겠다'는 예고였다.
그가 사라지자, 멈춰 있던 연무장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웅성거림이 폭발했다.
"봤어? 방금 그거?"
"백운 저 자식, 언제 저렇게 빨라졌지?"
"대사형 턱이 돌아갔어. 미친…."
제자들의 시선이 달라져 있었다. 경멸과 무시에서, 경악과 두려움으로.
백운은 그 시선들을 무시한 채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주먹이 까져 피가 배어 나왔고, 욱신거리는 통증에 손끝이 잘게 떨려왔다. 마석과 눈이 마주쳤다.
창백하게 질린 마석이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성공했군.
"후우, 후우...."
심장이 흉곽을 부술 듯이 거칠게 뛰고 있었다. 전생에서 수만 번의 게임을 치렀고, 세계 대회 결승전 무대에도 서 봤다. 하지만 지금 느끼는 이 감각은 그것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모니터 너머의 캐릭터가 아닌, 내 살이 찢어지고 내 뼈가 부러질 수 있는 진짜 투쟁. 상대의 턱을 올려쳤을 때 전해져 오던 그 짜릿한 진동이 팔뚝을 타고 뇌수까지 찌릿하게 만들었다.
'무섭지가... 않아.'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전신의 혈액이 끓어오르는 듯한 고양감.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할 정도의 강렬한 환희. 그것은 생존 본능이 만들어낸, 마약보다 지독한 쾌락이었다.
[ 철권(鐵拳) - [범급/숙달] (숙련도: 41.00% -> 95.20%) ]
[ 실전 승리 보상: 민첩 +1, 담력(膽力) +1 ]
허공에 뜬 푸른 메시지가 눈에 들어오자, 백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 하하...!"
주변의 제자들은 백운이 실성했다며 수군거렸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세계는 게임보다 불합리하고 잔혹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승리의 맛은 비교할 수 없이 달콤했다.
백운은 피 묻은 주먹을 꽉 쥐었다. 더 강한 자와 싸우고 싶다. 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더 완벽하게 승리하고 싶다.
이날, 백운의 안에 잠들어 있던 더 강한 무언가가, 굶주린 짐승처럼 눈을 떴다.
"일어나! 해가 중천이다!"
누군가의 고함에 백운은 퍼뜩 눈을 떴다.
아침이었다. 전신이 두들겨 맞은 듯 욱신거렸지만, 어제보다는 한결 가벼웠다. 잠깐의 잠이었지만 내공 수련 덕분에 회복 효율이 좋았다.
연무장에 집합한 3대 제자들 사이로 백운은 조용히 합류했다.
단상 위에는 대사형 장칠이 매서운 눈으로 제자들을 훑고 있었다.
'저 놈이 어떻게 서 있지?'
장칠의 미간이 좁혀졌다. 분명 어제 대련에서 갈비뼈가 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내상도 심각했을 터.
그런데 지금 백운은 허리를 꼿꼿이 펴고 서 있었다. 안색은 창백하기는커녕 혈색이 돌았고, 눈빛은 기이할 정도로 차분했다.
'마석, 저 멍청한 놈은 또 왜 저래?'
그때 장칠의 시야에 연무장 한쪽에서 3대 제자들을 감시하고 있던 마석이 들어왔다. 평소라면 몽둥이를 들고 윽박질렀을 그가, 지금은 자꾸 힐끔힐끔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향한 곳에 마침 백운이 서있었다.
뭔가 있다. 장칠의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각자 수련에 들어간다. 단, 백운은 남는다."
제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백운에게 쏠렸다. 동정, 조소, 무관심. 익숙한 반응들이었다. '또 시작이네', '저러다 진짜 죽는 거 아니야?' 하는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예, 대사형."
덤덤한 목소리. 장칠은 그 태도가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쥐새끼는 쥐새끼답게 구석에서 떨고 있어야 분수에 맞거늘. 장칠이 성큼성큼 다가와 백운의 코앞에 섰다. 위압적인 덩치가 백운을 그림자처럼 덮쳤다.
"몸이 꽤 좋아 보이는구나? 어제는 다 죽어가더니."
"대사형의 가르침 덕분에 맷집이 좀 늘었나 봅니다."
"가르침? "
장칠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피떡이 되어 빌빌대던 놈이, 하루 만에 멀쩡한 얼굴로 꼿꼿하게 서서 저런 소리를 지껄이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래. 기왕 맷집이 늘었으니 테스트는 해봐야지."
백운은 거절하지 않았다. 아니, 거절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조용히 연무장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 대상: 장칠 (철권문 대제자) ]
[ 경지: 삼류(三流) - 상급 ]
[ 추정 무공: 철권(鐵拳) - [범급/숙달] (숙련도: 88.50%) ]
[ 신체 상태: 양호 / 근력: 18 / 민첩: 14 ]
'근력 18. 내 두 배. 민첩도 내가 아래.'
단순 스펙만 보면 필패(必敗)다. 정면 승부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뇌가 아무리 빨라도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소용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예측'.
게다가 뒷짐 진 손, 풀어진 어깨…
'방심하고 있어!'
장칠이 한 손은 여전히 뒷짐을 진 채 대충 자세를 잡았다.
"준비됐나?"
백운은 대답 대신 가볍게 주먹을 쥐고 자세를 취했다.
"건방진 놈!"
쿵! 굉음과 함께 장칠의 거구가 포탄처럼 쏘아져 나왔다.
그렇게 모든이의 시선이 연무장 가운데에 쏠리는 순간, 구석에서 마른침을 삼키던 마석은 주변을 살피고는 몸을 최대한 웅크린 채, 연무장 기둥 뒤로 미끄러지듯 사라졌다. 그리고는 장칠의 숙소를 향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미쳤어, 미쳤어!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장칠의 방에 손을 댄다? 걸리면 죽음이다. 단순히 맞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철권문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잡일꾼이 어디 한 둘이었던가.
장칠의 숙소 앞에 도착한 마석의 발이 바닥에 붙어버린 듯 멈춰 섰다.
덜덜덜.
방문 고리를 잡으려던 손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그냥 돌아갈까?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갔다고 하면… 아니, 못 봤다고 우기면….'
마석은 무공 재능은 쥐뿔도 없었지만, 눈치 하나만큼은 타고난 놈이었다.
장칠이 미간을 찌푸리면 알아서 시원한 물을 대령하고, 기분이 더러워 보이면 쥐 죽은 듯 엎어져 화풀이 대상을 물색해 바치는 기민함. 그것이 짐승들이 우글거리는 이 철권문 바닥에서, 약해빠진 그가 장칠의 최측근 꼬붕 노릇이라도 하며 편하게 지낼 수 있었던 유일한 생존 전략이었다.
그 탁월한 '생존 본능'이 지금 맹렬하게 경고등을 울리고 있었다.
몇 번이고 도망치고 싶었다. 장칠이 줄 공포는 너무나 명확했고 현실적이었으니까. 하지만 문고리에서 손을 떼려던 그 순간, 뇌리에 서늘한 기억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제 자신을 내려다보던 백운의 눈. 그것은 십수년간 바닥에서 처절하게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맹수의 눈이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深淵)처럼, 모든 감정이 말라비틀어진 차가운 눈빛. 지금까지 그를 살려온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장칠은 폭군이라면, 백운은 악귀라고. 장칠의 방을 터는 건 목숨을 건 도박이지만, 적어도 '안 걸릴 수도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빈손으로 백운에게 돌아간다면? 그건 도박조차 성립하지 않는다. 그놈은 반드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숨통을 끊어놓을 것이다. '걸릴지도 모르는' 공포보다, '반드시 죽일' 공포가 마석의 등을 떠밀었다.
"으으윽… 제기랄!"
마석은 이를 악물고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문을 열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서랍을 뒤지고, 옷장을 털었다.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지만, 머릿속엔 오직 하나, 백운의 말한 '쓸만한 약'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다시 연무장.
단숨에 거리를 좁힌 장칠의 주먹이 백운의 머리통을 향해 날아들었다.
'빠르다.'
머리로는 궤적이 보였지만, 병약한 몸은 한 템포 늦게 반응했다.
백운은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퍽!
완전히 피하지 못한 주먹이 어깨를 강타했다.
"으윽!"
뼛속까지 울리는 충격에 백운은 뒷걸음질 쳤다.
역시 스펙 차이가 너무 커 힘을 대부분 흘렸는데도 이정도 위력!
한 대라도 정통으로 맞으면 끝이다.
장칠의 연타가 쏟아졌다.
백운은 구르고, 막고, 피하며 처절하게 버텼다. 흙투성이가 되고 옷이 찢어졌다.
'아직이야. 아직….'
그는 비명을 지르는 몸을 억지로 움직이며 데이터를 수집했다.
장칠의 호흡, 발을 딛는 습관, 주먹을 뻗기 전 왼쪽 어깨가 먼저 움찔하는 미세한 버릇.
맞을 때마다, 피할 때마다 정보가 쌓였다.
그리고 백운이 체력이 다 떨어져가고 시야도 점차 흐려지려던 그 때.
장칠이 결정타를 날리기 위해 크게 팔을 들어 올렸다.
[ 약점 포착: 우측 늑골 (방어력 0 - 무방비) ]
백운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다.
그 순간 백운은 맞으면 죽는다는 공포를 억누르고 피하는 대신, 장칠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어…?"
그 행동에 장칠은 당황했고 주먹은 멈칫했다.
0.1초의 틈!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밤새 뼈가 으스러지도록 반복했던 그 동작. 머리가 명령하기도 전에, 근육에 각인된 '최적화된 데이터'가 제멋대로 폭발했다. 발끝에서 척추를 타고 올라온 전신의 힘이 수천 번의 헛손질 끝에 찾아낸, 오차 범위 0%에 가까운 완벽한 일격. 백운의 주먹이 장칠의 텅 빈 옆구리를 꿰뚫듯이 파고들었다.
퍼억!
둔탁하고 묵직한 타격음. 단순한 주먹질이 아닌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는 결정적인 한 방. 카운터!
"크윽!"
장칠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
갈비뼈가 울리는 고통에 장칠의 몸이 순간적으로 움츠러들었다.
백운은 그 틈을 즉시 잡아 중심을 한 치 낮췄고, 늑골을 때린 반동을 끊지 않은 채 철권 제2형(鐵拳 第二形)으로 이어갔다.
아래에서 위로 힘을 끌어올리듯 팔꿈치를 솟구쳐, 장칠의 턱을 정확히 가격했다.
빡!
고개가 뒤로 젖혀진 장칠이 비틀거렸다.
정적.
연무장에 있던 삼십여 명의 제자들이 숨을 멈췄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철권문의 실세, 대사형 장칠이 고작 입문한 지 얼마 안 된 삼대 제자에게 밀리고 있었다.
모두가 넋을 잃고 있는 틈을 타, 옷매무새를 다듬은 마석이 무리 뒤편에 슬그머니 합류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든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비틀거리는 장칠과 그 앞에 선 백운이었다.
'말도 안 돼… 저게 정말 백운이라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단순히 뛰어서가 아니었다. 방금 목격한 일격은 우연이라기엔 너무나 날카로웠다.
마석은 품속의 약병을 무의식적으로 꽉 움켜쥐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것이 자신의 목숨을 죌 밧줄처럼 느껴졌는데, 어쩌면… 다른 무언가가 될 수도 있겠다는 묘한 예감이 스쳤다.
마석의 시선이 백운의 등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그 눈빛에는 이전의 경멸 대신, 알 수 없는 기대감이 희미하게 서리기 시작했다.
백운은 후속타를 날리는 대신 뒤로 훌쩍 물러섰다.
여기서 더 욕심을 내면 안 된다. 그의 체력은 이미 바닥이었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헉, 헉…."
장칠이 턱을 부여잡고 핏발 선 눈으로 백운을 노려봤다. 당장이라도 찢어 죽일 기세였다.
하지만 지금은 턱을 맞은 충격으로 뇌가 흔들려 중심을 잡기조차 힘들다.
"대사형."
백운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호흡은 가빴지만 목소리는 침착했다.
"아직 몸이 덜 풀리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지요."
그것은 장칠에게 주는 명분이었다. '몸이 덜 풀려서 맞은 것'이라는 핑계.
장칠은 부들부들 떨며 주먹을 쥐었다. 지금 당장 백운을 죽이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그래.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군."
장칠은 거칠게 몸을 돌려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그의 뒷모습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누가 봐도 '다음에 널 죽여버리겠다'는 예고였다.
그가 사라지자, 멈춰 있던 연무장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웅성거림이 폭발했다.
"봤어? 방금 그거?"
"백운 저 자식, 언제 저렇게 빨라졌지?"
"대사형 턱이 돌아갔어. 미친…."
제자들의 시선이 달라져 있었다. 경멸과 무시에서, 경악과 두려움으로.
백운은 그 시선들을 무시한 채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주먹이 까져 피가 배어 나왔고, 욱신거리는 통증에 손끝이 잘게 떨려왔다. 마석과 눈이 마주쳤다.
창백하게 질린 마석이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성공했군.
"후우, 후우...."
심장이 흉곽을 부술 듯이 거칠게 뛰고 있었다. 전생에서 수만 번의 게임을 치렀고, 세계 대회 결승전 무대에도 서 봤다. 하지만 지금 느끼는 이 감각은 그것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모니터 너머의 캐릭터가 아닌, 내 살이 찢어지고 내 뼈가 부러질 수 있는 진짜 투쟁. 상대의 턱을 올려쳤을 때 전해져 오던 그 짜릿한 진동이 팔뚝을 타고 뇌수까지 찌릿하게 만들었다.
'무섭지가... 않아.'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전신의 혈액이 끓어오르는 듯한 고양감.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할 정도의 강렬한 환희. 그것은 생존 본능이 만들어낸, 마약보다 지독한 쾌락이었다.
[ 철권(鐵拳) - [범급/숙달] (숙련도: 41.00% -> 95.20%) ]
[ 실전 승리 보상: 민첩 +1, 담력(膽力) +1 ]
허공에 뜬 푸른 메시지가 눈에 들어오자, 백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 하하...!"
주변의 제자들은 백운이 실성했다며 수군거렸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세계는 게임보다 불합리하고 잔혹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승리의 맛은 비교할 수 없이 달콤했다.
백운은 피 묻은 주먹을 꽉 쥐었다. 더 강한 자와 싸우고 싶다. 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더 완벽하게 승리하고 싶다.
이날, 백운의 안에 잠들어 있던 더 강한 무언가가, 굶주린 짐승처럼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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