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광연(狂煉)
조회 : 348 추천 : 0 글자수 : 4,723 자 2026-01-31
숙소로 돌아온 백운은 곧바로 검증 작업에 착수했다. 마석을 시켜 구해온 약탕기에 물을 채우고, 사 온 약재들을 하나둘 꺼냈다. 머릿속에는 0.1g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최적화 데이터가 구축되어 있었지만, 문제는 이 병약했던 몸뚱이였다.
"후우."
백운은 크게 심호흡을 하며 약재를 썰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뻣뻣하게 굳은 손가락은 자꾸만 엇박자를 냈다. 약초의 절단면이 뭉개지는 것은 물론, 아궁이의 화력을 조절해야 할 타이밍마저 번번이 놓치는 바람에 탕약은 수시로 끓어 넘쳤다.
치이익―.
방 안을 가득 메운 매캐한 연기에 백운은 연신 콜록거리면서도, 간신히 뽑아낸 첫 결과물을 그릇에 담았다.
[흑오강체단 (실패작)] [상태: 폐기물] [독성 제어 실패. 복용 시 근육 괴사 및 영구적 신체 손상 위험.]
“...머리로는 완벽한데, 육체의 숙련도가 따라오질 못하는군.”
백운은 실패작을 미련 없이 옆으로 밀어 놓았다. 눈앞에 놓인 건 독덩이에 불과한 폐기물이었으나, 실망하기는커녕 오히려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결과와 상관없이 스스로 쌓아온 지식이 이를 ‘흑오강체단’의 제조 시도로 정확히 인지했기 때문이다. 전생의 지식이 이 세계에서도 유효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전신에 전율이 흘랐다.
연기 자욱한 방구석에서 눈을 가늘게 뜨고 지켜보던 마석이 주춤주춤 다가왔다. 백운은 품속에서 남은 돈을 전부 꺼내 그에게 건넸다.
"이걸로 아까 사 온 약재들, 살 수 있는 만큼 더 사 와. 최대한 빨리."
"벌써 또 사 오라고? 아직 보따리 절반도 안 썼잖아. 게다가……."
말을 멈춘 마석은 방금 끓여낸 탕약을 힐끗 보더니 저도 모르게 속이 울렁거렸다. 한눈에 봐도 그것은 영약이 아니라 사약에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다.
"이거 진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거 맞긴 해? 냄새가 무슨 시체 썩는 것 같은데……."
백운은 대답 대신 새로운 약재를 손질하며 덤덤하게 덧붙였다.
"여기 남은 건 금방 다 쓸 거야. 시도를 많이 해봐야 하니까 최대한 넉넉히 사다 줘."
마석은 백운의 광기 어린 눈빛에 압도되어 몇 번 입을 벙긋거리다, 결국 한숨을 푹 내쉬고는 서둘러 방을 뛰쳐나갔다.
시장을 향해 달리는 마석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실대던 녀석이 완전히 딴판이 된 것처럼 변화의 폭이 너무 컸다. 무공이 느는 속도도 범상치 않거니와, 이제는 정체 모를 비방으로 약까지 달이고 있었다.
'저 녀석, 분명히 뭔가 있어.'
마석은 이를 악물었다. 이미 장칠의 귀에 자신이 백운과 붙어먹는다는 소문이 들어갔을 터였다. 장칠의 눈 밖에 난 이상, 백운의 곁을 지키는 것은 제 명줄을 건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백운이 무너진다면 자신 또한 철권문에서 살아남지 못할 터. 그럼에도 요 며칠간 백운이 보여준 기묘한 변화를 반추하면, 도저히 패배할 것 같다는 의구심은 들지 않았다.
마석은 어느새 백초당 앞에 도착했다. 낯익은 얼굴을 확인한 점소이가 잽싸게 달려와 허리를 굽혔다. 마석은 백운의 건네준 돈을 계산대 위에 탁 던지며 내뱉었다.
“아까 그 약재들, 비율 똑같이 맞춰서 잘 손질된 놈들로 챙겨 와.”
은전의 묵직한 무게를 확인한 점소이의 눈이 커졌다. 그는 숨을 크게 들이켜더니 안쪽으로 부리나케 뛰어갔다. 약재가 준비되는 동안 마석은 품속 깊숙이 갈무리해둔 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지난 비무에서 백운의 승리에 전 재산을 걸어 따낸 소중한 배당금이었다.
이것만 있으면 지긋지긋한 밑바닥 인생을 청산하고 몇 년은 편히 보낼 수 있는 거금. 주머니를 쥔 마석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한참을 고민하는 듯했다.
그때 점소이가 정성껏 포장한 약초 보따리를 내밀었다. 마석은 잠시 주저하는 듯하더니, 이내 결연한 표정으로 은자 20냥을 추가로 꺼내 탁자 위에 거칠게 내던졌다.
“이 돈만큼 아까 그 약재들 더 내놔!”
‘그래. 장칠 그 등신 같은 놈 밑에서 평생 찌꺼기나 핥다 죽을 바엔, 차라리 인생 건 도박을 한 번 더 하는 게 낫지. 게다가 장칠보다는 저놈이 좀 더 사람 냄새가 나기도 하고.’
결심을 굳히자 오히려 가슴 속이 뻥 뚫린 듯 후련해졌다. 점소이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은자만 멍하니 바라보자, 마석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 해, 얼른 안 움직이고!”
점소이는 화들짝 놀라며 그제야 다시 안으로 부리나케 뛰어 들어갔다.
한참 후, 어깨가 빠질 듯 무거운 보따리를 두 개나 짊어지고 돌아온 마석은 숙소 문을 열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쿨럭! 컥, 야! 백운! 살아 있냐?"
방 안은 이미 사람의 거처가 아니었다. 찌는 듯한 열기와 매캐한 탄내가 뒤섞여 숨을 쉴 때마다 폐가 타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시야를 가로막는 청백색의 연기 속에서 백운은 아궁이의 열기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땀에 젖어 떡진 머리카락 사이로 번들거리는 눈동자는 이미 인간의 것이라고 보기 힘들 만큼 기괴한 집중력을 보이고 있었다.
백운의 손은 기계처럼 일정하게 약탕기를 저었다.
"조금만 더..."
백운의 서늘한 목소리와 함께 약탕기 안에서 끓던 검은 액체가 순식간에 응축되며, 방 안을 가득 채웠던 매캐한 냄새가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향기로 변하기 시작했다.
"약재... 가져왔어?"
백운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마석은 서둘러 보따리를 내려놓았다.
"여기 있다. 네가 말한 거에 내 돈까지 털어서 최상품으로만 꽉꽉 채워 왔다."
백운은 대답 대신 보따리를 풀어 헤쳤다. 그의 손은 이미 화상과 약물 독성에 절어 엉망이었지만, 약재를 고르는 손길만큼은 소름 끼칠 정도로 정확했다.
"고마워. 빚은 나중에 갚을게."
다시 지옥 같은 연단이 시작되었다.
"야, 너 그러다 진짜 죽어! 좀 쉬었다 해!"
마석이 보다 못해 만류했지만, 백운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오직 약탕기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약액의 변화만이 보였다. 수천 번의 시뮬레이션 데이터가 현실의 감각과 서서히 일치하기 시작했다.
약초를 넣는 타이밍, 물이 끓는 소리의 고저, 연기의 색깔. 모든 것이 그가 머릿속으로 설계한 '완벽한 균형'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챙강!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약탕기가 조각났다. 찰나의 손떨림, 단 1도의 화력 조절 실패가 초래한 참혹한 결과였다. 바닥을 적신 검은 액체는 마치 백운의 집념을 비웃듯 자욱한 김을 내뿜으며 흩어졌다.
"다시."
백운의 목소리는 감정 한 조각 섞이지 않은 채 서늘하게 울렸다.
"미친놈... 진짜 미친놈이야..."
마석은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렸지만, 어느새 예비로 사 온 새로운 약탕기를 그에게 내밀고 있었다. 백운은 땀과 연기에 절어 엉망이 된 안색으로 다시 아궁이 앞에 앉았다. 마석이 피 같은 돈을 털어 마련해 온 최상품 약재들이 다시금 탕기 속으로 아낌없이 쏟아져 들어갔다.
그렇게 사흘이 흘렀다.
숙소 주변은 온종일 기괴한 연기와 악취가 가시지 않았으나, 조영을 박살 낸 백운의 실력과 배당금을 받으러 갈 때 왕호와 동행했던 모습 때문인지는 몰라도 누구 하나 찾아와 불만을 표하는 이는 없었다. 마석은 그 기묘한 침묵 속에서 매일같이 시장을 오가며 약재와 숯, 그리고 백운의 끼니를 챙길 음식들을 부지런히 날랐다.
사흘 내내 이어진 광기는 방 안의 풍경을 처참하게 바꿔놓았다. 바닥에는 깨진 약탕기 파편과 시커멓게 타 찌꺼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였고, 백운은 단 한숨도 자지 않은 채 아궁이 앞을 지켰다. 수십 번의 실패가 반복될수록 그의 안색은 창백해지다 못해 생기가 완전히 메말라 버린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백운, 너 이러다 진짜 제명에 못 죽어. 벌써 약재만 세 보따리째야. 돈도 이제 바닥을 보인다고!"
마석이 갈라진 목소리로 외쳤지만, 백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기운조차 아껴가며 약탕기 속의 액체를 관찰하고 있었다. 사흘간의 반복 학습. 비록 육체는 부서질 듯 한계에 다다랐으나, 마침내 손끝의 감각이 뇌리에 각인된 완벽한 황금비율을 오차 없이 현실로 구현해내기 시작했다. 약초를 써는 칼날의 각도, 불의 온도를 느끼는 손끝의 감각이 소름 끼치도록 정교해졌다.
"거의... 다 됐어."
백운의 목소리는 쇳소리가 섞여 있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 남은 최상품 '강력근'을 탕기에 넣었다. 사흘간의 실패를 통해 얻은 임계점의 데이터가 그의 뇌 속에서 불꽃을 튀겼다.
넷째 날 새벽.
어느덧 방 안을 메웠던 지독한 탄내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폐부 깊숙한 곳까지 시리게 만드는 맑고 기묘한 향취였다. 핏발이 선 채 번들거리는 백운의 눈동자는 약탕기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약액의 변화를 집요하게 쫓았다.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수없이 계산했던 최적의 타이밍. 단 한 번의 불 조절만 성공하면, 머릿속의 수치가 마침내 현실의 영약으로 완성될 터였다. 그 끝에 과연 무엇이 남을지는 알 수 없었으나 오직 계산된 ‘임계점’에 도달해야 한다는 집념만이 그를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 찰나를 앞두고 백운의 몸이 먼저 한계를 드러냈다. 심장은 비정상적으로 요동쳤고, 흐릿해지던 시야는 순식간에 암전되었다.
쿵.
백운의 몸이 맥없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야, 백운! 정신 차려! 야!"
놀란 마석이 달려와 그를 거칠게 흔들었지만, 백운은 이미 깊은 혼절 상태에 빠져 있었다. 마석의 당혹스러운 외침만이 공허하게 울려 퍼지는 방 안. 아궁이의 열기가 서서히 잦아들며 사위에는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 차갑게 식어가는 고요함 속에서, 탕기 바닥에 남은 약액만이 은은한 서기를 내뿜으며 영롱한 알갱이로 맺히고 있었다.
"후우."
백운은 크게 심호흡을 하며 약재를 썰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뻣뻣하게 굳은 손가락은 자꾸만 엇박자를 냈다. 약초의 절단면이 뭉개지는 것은 물론, 아궁이의 화력을 조절해야 할 타이밍마저 번번이 놓치는 바람에 탕약은 수시로 끓어 넘쳤다.
치이익―.
방 안을 가득 메운 매캐한 연기에 백운은 연신 콜록거리면서도, 간신히 뽑아낸 첫 결과물을 그릇에 담았다.
[흑오강체단 (실패작)] [상태: 폐기물] [독성 제어 실패. 복용 시 근육 괴사 및 영구적 신체 손상 위험.]
“...머리로는 완벽한데, 육체의 숙련도가 따라오질 못하는군.”
백운은 실패작을 미련 없이 옆으로 밀어 놓았다. 눈앞에 놓인 건 독덩이에 불과한 폐기물이었으나, 실망하기는커녕 오히려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결과와 상관없이 스스로 쌓아온 지식이 이를 ‘흑오강체단’의 제조 시도로 정확히 인지했기 때문이다. 전생의 지식이 이 세계에서도 유효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전신에 전율이 흘랐다.
연기 자욱한 방구석에서 눈을 가늘게 뜨고 지켜보던 마석이 주춤주춤 다가왔다. 백운은 품속에서 남은 돈을 전부 꺼내 그에게 건넸다.
"이걸로 아까 사 온 약재들, 살 수 있는 만큼 더 사 와. 최대한 빨리."
"벌써 또 사 오라고? 아직 보따리 절반도 안 썼잖아. 게다가……."
말을 멈춘 마석은 방금 끓여낸 탕약을 힐끗 보더니 저도 모르게 속이 울렁거렸다. 한눈에 봐도 그것은 영약이 아니라 사약에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다.
"이거 진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거 맞긴 해? 냄새가 무슨 시체 썩는 것 같은데……."
백운은 대답 대신 새로운 약재를 손질하며 덤덤하게 덧붙였다.
"여기 남은 건 금방 다 쓸 거야. 시도를 많이 해봐야 하니까 최대한 넉넉히 사다 줘."
마석은 백운의 광기 어린 눈빛에 압도되어 몇 번 입을 벙긋거리다, 결국 한숨을 푹 내쉬고는 서둘러 방을 뛰쳐나갔다.
시장을 향해 달리는 마석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실대던 녀석이 완전히 딴판이 된 것처럼 변화의 폭이 너무 컸다. 무공이 느는 속도도 범상치 않거니와, 이제는 정체 모를 비방으로 약까지 달이고 있었다.
'저 녀석, 분명히 뭔가 있어.'
마석은 이를 악물었다. 이미 장칠의 귀에 자신이 백운과 붙어먹는다는 소문이 들어갔을 터였다. 장칠의 눈 밖에 난 이상, 백운의 곁을 지키는 것은 제 명줄을 건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백운이 무너진다면 자신 또한 철권문에서 살아남지 못할 터. 그럼에도 요 며칠간 백운이 보여준 기묘한 변화를 반추하면, 도저히 패배할 것 같다는 의구심은 들지 않았다.
마석은 어느새 백초당 앞에 도착했다. 낯익은 얼굴을 확인한 점소이가 잽싸게 달려와 허리를 굽혔다. 마석은 백운의 건네준 돈을 계산대 위에 탁 던지며 내뱉었다.
“아까 그 약재들, 비율 똑같이 맞춰서 잘 손질된 놈들로 챙겨 와.”
은전의 묵직한 무게를 확인한 점소이의 눈이 커졌다. 그는 숨을 크게 들이켜더니 안쪽으로 부리나케 뛰어갔다. 약재가 준비되는 동안 마석은 품속 깊숙이 갈무리해둔 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지난 비무에서 백운의 승리에 전 재산을 걸어 따낸 소중한 배당금이었다.
이것만 있으면 지긋지긋한 밑바닥 인생을 청산하고 몇 년은 편히 보낼 수 있는 거금. 주머니를 쥔 마석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한참을 고민하는 듯했다.
그때 점소이가 정성껏 포장한 약초 보따리를 내밀었다. 마석은 잠시 주저하는 듯하더니, 이내 결연한 표정으로 은자 20냥을 추가로 꺼내 탁자 위에 거칠게 내던졌다.
“이 돈만큼 아까 그 약재들 더 내놔!”
‘그래. 장칠 그 등신 같은 놈 밑에서 평생 찌꺼기나 핥다 죽을 바엔, 차라리 인생 건 도박을 한 번 더 하는 게 낫지. 게다가 장칠보다는 저놈이 좀 더 사람 냄새가 나기도 하고.’
결심을 굳히자 오히려 가슴 속이 뻥 뚫린 듯 후련해졌다. 점소이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은자만 멍하니 바라보자, 마석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 해, 얼른 안 움직이고!”
점소이는 화들짝 놀라며 그제야 다시 안으로 부리나케 뛰어 들어갔다.
한참 후, 어깨가 빠질 듯 무거운 보따리를 두 개나 짊어지고 돌아온 마석은 숙소 문을 열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쿨럭! 컥, 야! 백운! 살아 있냐?"
방 안은 이미 사람의 거처가 아니었다. 찌는 듯한 열기와 매캐한 탄내가 뒤섞여 숨을 쉴 때마다 폐가 타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시야를 가로막는 청백색의 연기 속에서 백운은 아궁이의 열기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땀에 젖어 떡진 머리카락 사이로 번들거리는 눈동자는 이미 인간의 것이라고 보기 힘들 만큼 기괴한 집중력을 보이고 있었다.
백운의 손은 기계처럼 일정하게 약탕기를 저었다.
"조금만 더..."
백운의 서늘한 목소리와 함께 약탕기 안에서 끓던 검은 액체가 순식간에 응축되며, 방 안을 가득 채웠던 매캐한 냄새가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향기로 변하기 시작했다.
"약재... 가져왔어?"
백운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마석은 서둘러 보따리를 내려놓았다.
"여기 있다. 네가 말한 거에 내 돈까지 털어서 최상품으로만 꽉꽉 채워 왔다."
백운은 대답 대신 보따리를 풀어 헤쳤다. 그의 손은 이미 화상과 약물 독성에 절어 엉망이었지만, 약재를 고르는 손길만큼은 소름 끼칠 정도로 정확했다.
"고마워. 빚은 나중에 갚을게."
다시 지옥 같은 연단이 시작되었다.
"야, 너 그러다 진짜 죽어! 좀 쉬었다 해!"
마석이 보다 못해 만류했지만, 백운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오직 약탕기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약액의 변화만이 보였다. 수천 번의 시뮬레이션 데이터가 현실의 감각과 서서히 일치하기 시작했다.
약초를 넣는 타이밍, 물이 끓는 소리의 고저, 연기의 색깔. 모든 것이 그가 머릿속으로 설계한 '완벽한 균형'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챙강!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약탕기가 조각났다. 찰나의 손떨림, 단 1도의 화력 조절 실패가 초래한 참혹한 결과였다. 바닥을 적신 검은 액체는 마치 백운의 집념을 비웃듯 자욱한 김을 내뿜으며 흩어졌다.
"다시."
백운의 목소리는 감정 한 조각 섞이지 않은 채 서늘하게 울렸다.
"미친놈... 진짜 미친놈이야..."
마석은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렸지만, 어느새 예비로 사 온 새로운 약탕기를 그에게 내밀고 있었다. 백운은 땀과 연기에 절어 엉망이 된 안색으로 다시 아궁이 앞에 앉았다. 마석이 피 같은 돈을 털어 마련해 온 최상품 약재들이 다시금 탕기 속으로 아낌없이 쏟아져 들어갔다.
그렇게 사흘이 흘렀다.
숙소 주변은 온종일 기괴한 연기와 악취가 가시지 않았으나, 조영을 박살 낸 백운의 실력과 배당금을 받으러 갈 때 왕호와 동행했던 모습 때문인지는 몰라도 누구 하나 찾아와 불만을 표하는 이는 없었다. 마석은 그 기묘한 침묵 속에서 매일같이 시장을 오가며 약재와 숯, 그리고 백운의 끼니를 챙길 음식들을 부지런히 날랐다.
사흘 내내 이어진 광기는 방 안의 풍경을 처참하게 바꿔놓았다. 바닥에는 깨진 약탕기 파편과 시커멓게 타 찌꺼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였고, 백운은 단 한숨도 자지 않은 채 아궁이 앞을 지켰다. 수십 번의 실패가 반복될수록 그의 안색은 창백해지다 못해 생기가 완전히 메말라 버린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백운, 너 이러다 진짜 제명에 못 죽어. 벌써 약재만 세 보따리째야. 돈도 이제 바닥을 보인다고!"
마석이 갈라진 목소리로 외쳤지만, 백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기운조차 아껴가며 약탕기 속의 액체를 관찰하고 있었다. 사흘간의 반복 학습. 비록 육체는 부서질 듯 한계에 다다랐으나, 마침내 손끝의 감각이 뇌리에 각인된 완벽한 황금비율을 오차 없이 현실로 구현해내기 시작했다. 약초를 써는 칼날의 각도, 불의 온도를 느끼는 손끝의 감각이 소름 끼치도록 정교해졌다.
"거의... 다 됐어."
백운의 목소리는 쇳소리가 섞여 있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 남은 최상품 '강력근'을 탕기에 넣었다. 사흘간의 실패를 통해 얻은 임계점의 데이터가 그의 뇌 속에서 불꽃을 튀겼다.
넷째 날 새벽.
어느덧 방 안을 메웠던 지독한 탄내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폐부 깊숙한 곳까지 시리게 만드는 맑고 기묘한 향취였다. 핏발이 선 채 번들거리는 백운의 눈동자는 약탕기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약액의 변화를 집요하게 쫓았다.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수없이 계산했던 최적의 타이밍. 단 한 번의 불 조절만 성공하면, 머릿속의 수치가 마침내 현실의 영약으로 완성될 터였다. 그 끝에 과연 무엇이 남을지는 알 수 없었으나 오직 계산된 ‘임계점’에 도달해야 한다는 집념만이 그를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 찰나를 앞두고 백운의 몸이 먼저 한계를 드러냈다. 심장은 비정상적으로 요동쳤고, 흐릿해지던 시야는 순식간에 암전되었다.
쿵.
백운의 몸이 맥없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야, 백운! 정신 차려! 야!"
놀란 마석이 달려와 그를 거칠게 흔들었지만, 백운은 이미 깊은 혼절 상태에 빠져 있었다. 마석의 당혹스러운 외침만이 공허하게 울려 퍼지는 방 안. 아궁이의 열기가 서서히 잦아들며 사위에는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 차갑게 식어가는 고요함 속에서, 탕기 바닥에 남은 약액만이 은은한 서기를 내뿜으며 영롱한 알갱이로 맺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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