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 네온 아래에서
조회 : 151 추천 : 0 글자수 : 5,365 자 2026-01-24
"입으로만 염불을 외는 땡중들보다는, 솔직하게 사는 창녀들이 더 부처에 가깝다."
잇큐 소준의 이 말은 다섯 세기를 건너뛰어 가부키쵸의 네온 아래에서 다시 숨을 쉬었다. 네온은 기도를 대신했고, 현금은 신앙을 대신했고, 진실은 어디에도 없었다. 유이는 그곳에서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걸었다.
도로에서는 자동차들이 지나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브레이크를 밟는 고무 냄새, 택시 기사와 손님의 짧은 말다툼, 술에 취한 회사원들의 비틀거리는 발걸음이 뒤섞였다. 신호등이 바뀌자 사람들은 일제히 횡단보도를 건넜고, 유이는 그 흐름에서 조금 느리게 뒤처졌다. 손에 든 비닐봉지 안에서는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샌드위치가 서로 부딪혀 작은 소리를 냈다.
별일 없는 풍경이지만 이 동네에서는 모든 것이 조금씩 틀어져 있었다. 화려한 간판은 오래된 건물 외벽을 가렸고, 웃는 얼굴의 캐릭터가 그려진 광고 아래에는 얼굴이 없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유이는 시선을 들지 않았다. 그저 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밟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그녀는 네온 사이를 빠져나와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퇴근하는 회사원들 사이에서 샌드위치 하나와 페트병에 담긴 녹차를 계산했다. 비닐봉지를 들고 나온 뒤, 유이는 가부키쵸 1가의 좁은 골목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손때가 묻은 현관문과 작은 사무실이 있었다.
그 문은 밖에서 보면 사무실 같았지만, 안에서는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현관 벨은 고장 난 지 오래였고, 대신 문이 열릴 때마다 묵은 공기와 함께 희미한 향수가 새어 나왔다. 유이는 아무 말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형광등 두 개가 떴고, 그 아래에 놓인 소파는 가죽이 벗겨진 채 테이프로 이어져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종이컵과 물티슈, 어딘가에서 가져온 잡지 몇 권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벽 한쪽에는 잘 웃는 얼굴의 아이돌 사진이 걸려 있었지만, 세심하게 붙인 흔적이 없는 걸 보아 오래전부터 그냥 그 자리에 있는 듯했다.
유이는 의자에 가방을 내려놓고, 비닐봉지를 테이블 모서리에 살짝 밀어두었다. 샌드위치가 비닐 속에서 기울어지며 다시금 작은 소리를 냈다. 아무도 묻지 않았고, 아무도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필요한 것들이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밖에서는 누군가 크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사이에 두고 같은 시간대에 존재하면서도, 서로 다른 세계였다. 유이는 자리에서 천천히 숨을 고르고, 긴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이 사무실이 가부키쵸에서 유일하게 조용한 장소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몇 분이 지나서야 문이 다시 열렸다. 이번에는 벨 소리 대신 바람이 들고, 뒤이어 하이힐 굽이 바닥을 두 번, 짧게 두드렸다. 유이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비닐봉지의 손잡이를 괜히 한 번 더 쥐었다.
여자는 향수를 뿌린 것도 아닌데 향기가 났다. 달콤한 것도, 성숙한 것도 아니고, 마치 헤어 에센스 같은 향이었다. 손에 작은 클러치를 들고 있었고, 검은 카디건 위로 금빛 체인이 슬쩍 보였다. 나이를 짐작하기는 어려웠다. 스무 살일 수도, 서른 살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 동네에서는 그런 것들이 쉽게 흐려졌다.
“왔네.”
책상 뒤에 앉아 있던 매니저가 별 감흥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자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유이와는 다른 소파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소파가 조금 움푹 꺼졌고, 스프링 소리가 미세하게 울렸다.
“오늘 몇 건 나갔어?” 여자가 물었다.
매니저는 모니터를 힐끗 보더니 “세 건. 지금 한 건 대기.” 라고 짧게 답했다.
여자는 그 정도면 만족스럽다는 듯 “오케이.” 하고 말 끝에 작은 한숨을 섞었다.
유이는 여자를 힐끗 보고 눈을 다시 내려 깔았다. 여자는 눈썹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손톱에는 연한 분홍색 젤이 칠해져 있었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렇듯, 돈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의 손이었다. 한동안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형광등이 약하게 깜빡이며 사무실 안의 오래된 공기가 한 바퀴 더 돌았다.
그때, 여자가 유이를 향해 물었다. “오늘은 늦게 들어왔네?”
유이는 잠시 망설인 뒤 조용히 대답했다. “잠깐 편의점에 들렀어요.”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거기 샌드위치 맛없지.”
말투는 무심했지만 이상하게 따뜻한 구석이 있었다. 유이는 대답 대신 비닐봉지를 살짝 밀어두었다. 사무실은 다시 조용해졌고, 밖에서는 또 누군가 크게 웃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철제로 된 문에 부딪히며 조금 다른 형태로 사무실 안에 들어왔다.
사무실의 공기가 다시 굳어갈 무렵, 책상 위에 놓인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매니저는 화면을 확인하고, 손가락으로 두 번 가볍게 두드린 뒤 책상에 놓여 있던 무전기 같은 기계를 켰다. 작은 잡음이 지나가고, 그 다음에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렸다.
“콜 들어왔다.”
말은 짧았고, 감정은 없었다. 그럼에도 그 한 마디가 사무실의 온도를 아주 조금 바꿨다. 여자는 가방에서 립밤을 꺼내 입술에 한 번 바르고는 매니저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누구?”
매니저는 모니터를 보고 숫자 몇 개를 읊었다. “호텔 XX. 305호. 시간은 한 시간짜리. 지명은 아니고, 그냥 핫.”
여자는 그 말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잠깐만 카디건을 고쳐 입고, 클러치를 닫는 소리가 들렸다. 익숙하고 빠른 동작이었다. 손에 대충 향수라도 뿌릴 줄 알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여기서는 시간과 기회가 더 중요한 것들이었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동안, 밖의 소음이 잠깐 유입됐다 다시 차단됐다. 여자가 떠난 사무실에는 오래된 형광등과 유이의 비닐봉지, 그리고 매니저의 타자 소리만 남았다. 유이는 다시 손을 모은 채 조용히 숨을 골랐다. 밤은 여전히 빛났고 사무실은 여전히 조용했다. 도시가 계속 움직이는 사이에 유이는 자리가 아닌 방향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가 떠난 뒤의 사무실은 잠시 진공 같았다. 형광등의 은색 빛은 유이의 손등 위에 고르게 떨어졌고, 비닐봉지 안의 투명 용기는 식어가며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매니저는 모니터 앞에서 무언가를 계산하거나 확인하는 듯, 마우스를 쥔 손을 천천히 움직였다. 말없이 흐르는 시간은 이상하게 편안하면서도 무거웠다.
그때였다. 탁. 모니터 오른편에 놓인 스마트폰이 다시 한 번 진동했다. 이번엔 더 길었다. 매니저는 화면을 확인하더니 입을 다물고 있다가, 눈길만 유이 쪽으로 슬쩍 던졌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신호였다. 유이의 심장이 아주 조금 빠르게 뛰었다. 별것 아닌데도 그랬다. 그녀는 비닐봉지를 더 깊숙이 테이블 모서리에 밀어두었다.
“콜.” 매니저가 짧게 말했다. 그리고 모니터를 보고 정보 몇 가지를 천천히 읽었다. “호텔 XX. 507호. 한 시간. 지명은 아니고… 처음.”
유이는 고개를 들었다. 처음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 대부분은 좋은 뜻이 아니었다.
매니저는 수수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급하게 들어온 거라 바로 가야 해.”
유이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가방을 들고,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고, 숨을 한 번 길게 들이쉬었다. 익숙한 움직임이지만 몸은 매번 조금씩 긴장했다. 그것도 어쩔 수 없었다.
문을 열기 직전, 매니저가 말을 덧붙였다. “시간은 맞춰. 늦지 말고.”
유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말했다. “네.”
문을 닫는 순간, 사무실의 공기와 바깥의 공기는 분명히 달랐다. 네온은 여전히 빛났고 도시도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유이의 걸음은 조금 더 빠르게, 조금 더 조용하게 이어졌다.
호텔 입구는 늘 그렇듯 밝았다. 지나가는 사람들 눈에는 그냥 회식 끝난 회사원이나 여행객으로 보였을 것이다. 유이는 자동문을 지나 프론트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곳에서 특히나 이름은 중요하지 않았다. 507호. 엘리베이터 안의 거울은 지나치게 선명했고, 유이는 그 앞에서 표정을 정리했다. 층수가 올라갈수록 그녀의 심장은 평소보다 조금 빠르게 뛰었다. 처음이라는 말은, 언제나 익숙해지지 않는 종류의 단어였다.
복도는 카페트 냄새와 희미한 방향제 냄새가 섞여 있었다. 유이는 핸드폰 화면을 켜서 방 번호를 다시 확인하고, 노크를 했다. 두 번, 천천히. 문이 열렸다. 안쪽에서 나온 남자는 그저 평범한 남자였다. 수트 재킷을 풀어놓은 회사원, 넥타이는 느슨하게 풀려 있고 셔츠는 구겨져 있었다. 술 냄새는 거의 없었고, 향수가 지나치게 세지도 않았다. 그냥 피곤해 보였다.
“들어와.”
남자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시선은 피했다. 유이는 신발을 벗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의 공기는 호텔 특유의 깨끗한 냄새가 났고, 침대 위에는 새로 갈아놓은 시트가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미니바 쪽에는 생수 두 병이 놓여 있었다. 남자가 준비한 건 아니었다.
남자는 커튼을 반쯤 친 채 손목시계를 풀어두었다. 유이는 가방을 조용히 내려놓으며 말했다. “시간 확인할게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만큼은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모르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더 선명했다. 이름도, 직업도, 사는 곳도, 좋아하는 음식도 모르는 두 사람이 한 공간에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동네의 질서였다. 남자는 생수를 하나 열어 유이 쪽으로 밀었다. 그 단순한 동작에도 약간의 미안함인지, 습관인지 모를 감정이 섞여 있었다.
유이는 병을 받지 않고 말했다. “괜찮아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다음엔 침묵이 길게 이어졌다. 에어컨 바람 소리, 커튼이 흔들리는 작은 마찰음, 복도에서 들려오는 카트 바퀴 소리. 이름 없는 소음들이 방 안을 채웠다. 유이는 그 침묵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여기서 서두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
*
시간이 지나 모든 것이 조용히 끝났을 때, 방 안에는 체온 대신 호텔의 냄새만이 남아 있었다. 남자는 먼저 침대에서 일어나 셔츠를 여몄다. 버튼을 잠그는 손동작은 서둘렀지만 조심스러웠다. 그는 넥타이를 다시 맸다가 곧 풀어놓았고, 결국 셔츠 위에 재킷만 걸쳤다. 거울 앞에 한 번 섰지만 자신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는 않았다.
유이는 침대 위에서 옷을 대충 걸친 채 현금을 세었다. 이걸로 오늘 2만 5천 엔. 그 숫자는 이상하게 또렷했다. 희망도 절망도 섞이지 않은 숫자였다. 현금을 지갑에 접어 넣고, 손바닥에 묻은 약간의 땀을 천천히 닦았다. 방 안에는 이제 몸의 온도가 아니라 호텔의 공조기 바람만이 남아 있었다. 어디에도 향수 냄새나 담배 냄새는 남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더 어색하게 느껴졌다.
시트를 고치거나 테이블을 정리할 필요는 없었다. 그건 이 호텔의 직원들이 할 일이었다. 유이에게 남은 건 숫자와 시간였다. 그녀는 가방을 들어 어깨에 걸고, 출입문 쪽으로 걸었다. 문고리를 잡을 때, 손끝이 잠깐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손은 멈추지 않았다.
문이 열리자 복도의 밝은 공기가 허공을 스쳤다. 유이는 뒤돌아보지 않고 조용히 나왔다. 방 안에서 잊힌 체온과 숫자는 그대로 남았고, 도쿄의 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흘러가고 있었다.
잇큐 소준의 이 말은 다섯 세기를 건너뛰어 가부키쵸의 네온 아래에서 다시 숨을 쉬었다. 네온은 기도를 대신했고, 현금은 신앙을 대신했고, 진실은 어디에도 없었다. 유이는 그곳에서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걸었다.
도로에서는 자동차들이 지나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브레이크를 밟는 고무 냄새, 택시 기사와 손님의 짧은 말다툼, 술에 취한 회사원들의 비틀거리는 발걸음이 뒤섞였다. 신호등이 바뀌자 사람들은 일제히 횡단보도를 건넜고, 유이는 그 흐름에서 조금 느리게 뒤처졌다. 손에 든 비닐봉지 안에서는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샌드위치가 서로 부딪혀 작은 소리를 냈다.
별일 없는 풍경이지만 이 동네에서는 모든 것이 조금씩 틀어져 있었다. 화려한 간판은 오래된 건물 외벽을 가렸고, 웃는 얼굴의 캐릭터가 그려진 광고 아래에는 얼굴이 없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유이는 시선을 들지 않았다. 그저 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밟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그녀는 네온 사이를 빠져나와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퇴근하는 회사원들 사이에서 샌드위치 하나와 페트병에 담긴 녹차를 계산했다. 비닐봉지를 들고 나온 뒤, 유이는 가부키쵸 1가의 좁은 골목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손때가 묻은 현관문과 작은 사무실이 있었다.
그 문은 밖에서 보면 사무실 같았지만, 안에서는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현관 벨은 고장 난 지 오래였고, 대신 문이 열릴 때마다 묵은 공기와 함께 희미한 향수가 새어 나왔다. 유이는 아무 말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형광등 두 개가 떴고, 그 아래에 놓인 소파는 가죽이 벗겨진 채 테이프로 이어져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종이컵과 물티슈, 어딘가에서 가져온 잡지 몇 권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벽 한쪽에는 잘 웃는 얼굴의 아이돌 사진이 걸려 있었지만, 세심하게 붙인 흔적이 없는 걸 보아 오래전부터 그냥 그 자리에 있는 듯했다.
유이는 의자에 가방을 내려놓고, 비닐봉지를 테이블 모서리에 살짝 밀어두었다. 샌드위치가 비닐 속에서 기울어지며 다시금 작은 소리를 냈다. 아무도 묻지 않았고, 아무도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필요한 것들이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밖에서는 누군가 크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사이에 두고 같은 시간대에 존재하면서도, 서로 다른 세계였다. 유이는 자리에서 천천히 숨을 고르고, 긴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이 사무실이 가부키쵸에서 유일하게 조용한 장소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몇 분이 지나서야 문이 다시 열렸다. 이번에는 벨 소리 대신 바람이 들고, 뒤이어 하이힐 굽이 바닥을 두 번, 짧게 두드렸다. 유이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비닐봉지의 손잡이를 괜히 한 번 더 쥐었다.
여자는 향수를 뿌린 것도 아닌데 향기가 났다. 달콤한 것도, 성숙한 것도 아니고, 마치 헤어 에센스 같은 향이었다. 손에 작은 클러치를 들고 있었고, 검은 카디건 위로 금빛 체인이 슬쩍 보였다. 나이를 짐작하기는 어려웠다. 스무 살일 수도, 서른 살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 동네에서는 그런 것들이 쉽게 흐려졌다.
“왔네.”
책상 뒤에 앉아 있던 매니저가 별 감흥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자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유이와는 다른 소파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소파가 조금 움푹 꺼졌고, 스프링 소리가 미세하게 울렸다.
“오늘 몇 건 나갔어?” 여자가 물었다.
매니저는 모니터를 힐끗 보더니 “세 건. 지금 한 건 대기.” 라고 짧게 답했다.
여자는 그 정도면 만족스럽다는 듯 “오케이.” 하고 말 끝에 작은 한숨을 섞었다.
유이는 여자를 힐끗 보고 눈을 다시 내려 깔았다. 여자는 눈썹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손톱에는 연한 분홍색 젤이 칠해져 있었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렇듯, 돈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의 손이었다. 한동안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형광등이 약하게 깜빡이며 사무실 안의 오래된 공기가 한 바퀴 더 돌았다.
그때, 여자가 유이를 향해 물었다. “오늘은 늦게 들어왔네?”
유이는 잠시 망설인 뒤 조용히 대답했다. “잠깐 편의점에 들렀어요.”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거기 샌드위치 맛없지.”
말투는 무심했지만 이상하게 따뜻한 구석이 있었다. 유이는 대답 대신 비닐봉지를 살짝 밀어두었다. 사무실은 다시 조용해졌고, 밖에서는 또 누군가 크게 웃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철제로 된 문에 부딪히며 조금 다른 형태로 사무실 안에 들어왔다.
사무실의 공기가 다시 굳어갈 무렵, 책상 위에 놓인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매니저는 화면을 확인하고, 손가락으로 두 번 가볍게 두드린 뒤 책상에 놓여 있던 무전기 같은 기계를 켰다. 작은 잡음이 지나가고, 그 다음에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렸다.
“콜 들어왔다.”
말은 짧았고, 감정은 없었다. 그럼에도 그 한 마디가 사무실의 온도를 아주 조금 바꿨다. 여자는 가방에서 립밤을 꺼내 입술에 한 번 바르고는 매니저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누구?”
매니저는 모니터를 보고 숫자 몇 개를 읊었다. “호텔 XX. 305호. 시간은 한 시간짜리. 지명은 아니고, 그냥 핫.”
여자는 그 말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잠깐만 카디건을 고쳐 입고, 클러치를 닫는 소리가 들렸다. 익숙하고 빠른 동작이었다. 손에 대충 향수라도 뿌릴 줄 알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여기서는 시간과 기회가 더 중요한 것들이었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동안, 밖의 소음이 잠깐 유입됐다 다시 차단됐다. 여자가 떠난 사무실에는 오래된 형광등과 유이의 비닐봉지, 그리고 매니저의 타자 소리만 남았다. 유이는 다시 손을 모은 채 조용히 숨을 골랐다. 밤은 여전히 빛났고 사무실은 여전히 조용했다. 도시가 계속 움직이는 사이에 유이는 자리가 아닌 방향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가 떠난 뒤의 사무실은 잠시 진공 같았다. 형광등의 은색 빛은 유이의 손등 위에 고르게 떨어졌고, 비닐봉지 안의 투명 용기는 식어가며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매니저는 모니터 앞에서 무언가를 계산하거나 확인하는 듯, 마우스를 쥔 손을 천천히 움직였다. 말없이 흐르는 시간은 이상하게 편안하면서도 무거웠다.
그때였다. 탁. 모니터 오른편에 놓인 스마트폰이 다시 한 번 진동했다. 이번엔 더 길었다. 매니저는 화면을 확인하더니 입을 다물고 있다가, 눈길만 유이 쪽으로 슬쩍 던졌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신호였다. 유이의 심장이 아주 조금 빠르게 뛰었다. 별것 아닌데도 그랬다. 그녀는 비닐봉지를 더 깊숙이 테이블 모서리에 밀어두었다.
“콜.” 매니저가 짧게 말했다. 그리고 모니터를 보고 정보 몇 가지를 천천히 읽었다. “호텔 XX. 507호. 한 시간. 지명은 아니고… 처음.”
유이는 고개를 들었다. 처음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 대부분은 좋은 뜻이 아니었다.
매니저는 수수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급하게 들어온 거라 바로 가야 해.”
유이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가방을 들고,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고, 숨을 한 번 길게 들이쉬었다. 익숙한 움직임이지만 몸은 매번 조금씩 긴장했다. 그것도 어쩔 수 없었다.
문을 열기 직전, 매니저가 말을 덧붙였다. “시간은 맞춰. 늦지 말고.”
유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말했다. “네.”
문을 닫는 순간, 사무실의 공기와 바깥의 공기는 분명히 달랐다. 네온은 여전히 빛났고 도시도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유이의 걸음은 조금 더 빠르게, 조금 더 조용하게 이어졌다.
호텔 입구는 늘 그렇듯 밝았다. 지나가는 사람들 눈에는 그냥 회식 끝난 회사원이나 여행객으로 보였을 것이다. 유이는 자동문을 지나 프론트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곳에서 특히나 이름은 중요하지 않았다. 507호. 엘리베이터 안의 거울은 지나치게 선명했고, 유이는 그 앞에서 표정을 정리했다. 층수가 올라갈수록 그녀의 심장은 평소보다 조금 빠르게 뛰었다. 처음이라는 말은, 언제나 익숙해지지 않는 종류의 단어였다.
복도는 카페트 냄새와 희미한 방향제 냄새가 섞여 있었다. 유이는 핸드폰 화면을 켜서 방 번호를 다시 확인하고, 노크를 했다. 두 번, 천천히. 문이 열렸다. 안쪽에서 나온 남자는 그저 평범한 남자였다. 수트 재킷을 풀어놓은 회사원, 넥타이는 느슨하게 풀려 있고 셔츠는 구겨져 있었다. 술 냄새는 거의 없었고, 향수가 지나치게 세지도 않았다. 그냥 피곤해 보였다.
“들어와.”
남자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시선은 피했다. 유이는 신발을 벗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의 공기는 호텔 특유의 깨끗한 냄새가 났고, 침대 위에는 새로 갈아놓은 시트가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미니바 쪽에는 생수 두 병이 놓여 있었다. 남자가 준비한 건 아니었다.
남자는 커튼을 반쯤 친 채 손목시계를 풀어두었다. 유이는 가방을 조용히 내려놓으며 말했다. “시간 확인할게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만큼은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모르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더 선명했다. 이름도, 직업도, 사는 곳도, 좋아하는 음식도 모르는 두 사람이 한 공간에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동네의 질서였다. 남자는 생수를 하나 열어 유이 쪽으로 밀었다. 그 단순한 동작에도 약간의 미안함인지, 습관인지 모를 감정이 섞여 있었다.
유이는 병을 받지 않고 말했다. “괜찮아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다음엔 침묵이 길게 이어졌다. 에어컨 바람 소리, 커튼이 흔들리는 작은 마찰음, 복도에서 들려오는 카트 바퀴 소리. 이름 없는 소음들이 방 안을 채웠다. 유이는 그 침묵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여기서 서두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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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 모든 것이 조용히 끝났을 때, 방 안에는 체온 대신 호텔의 냄새만이 남아 있었다. 남자는 먼저 침대에서 일어나 셔츠를 여몄다. 버튼을 잠그는 손동작은 서둘렀지만 조심스러웠다. 그는 넥타이를 다시 맸다가 곧 풀어놓았고, 결국 셔츠 위에 재킷만 걸쳤다. 거울 앞에 한 번 섰지만 자신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는 않았다.
유이는 침대 위에서 옷을 대충 걸친 채 현금을 세었다. 이걸로 오늘 2만 5천 엔. 그 숫자는 이상하게 또렷했다. 희망도 절망도 섞이지 않은 숫자였다. 현금을 지갑에 접어 넣고, 손바닥에 묻은 약간의 땀을 천천히 닦았다. 방 안에는 이제 몸의 온도가 아니라 호텔의 공조기 바람만이 남아 있었다. 어디에도 향수 냄새나 담배 냄새는 남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더 어색하게 느껴졌다.
시트를 고치거나 테이블을 정리할 필요는 없었다. 그건 이 호텔의 직원들이 할 일이었다. 유이에게 남은 건 숫자와 시간였다. 그녀는 가방을 들어 어깨에 걸고, 출입문 쪽으로 걸었다. 문고리를 잡을 때, 손끝이 잠깐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손은 멈추지 않았다.
문이 열리자 복도의 밝은 공기가 허공을 스쳤다. 유이는 뒤돌아보지 않고 조용히 나왔다. 방 안에서 잊힌 체온과 숫자는 그대로 남았고, 도쿄의 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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