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2: 채무자의 딸
조회 : 156 추천 : 0 글자수 : 5,284 자 2026-01-25
일을 마치고 돌아온 집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그건 언제나 당연한 일이었다. 다다미 여섯 장 반 남짓한 원룸. 거실과 부엌이 따로 분리되지 않고, 욕실과 화장실마저 마찬가지였다. 누가 봐도 혼자 사는 사람의 집이었다. 분위기는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유이는 지친 몸을 이끌고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았다. 물이 채워지는 동안 그녀는 옷을 하나둘씩 벗었다. 공조기 소음과 함께 욕실 바닥의 타일이 서서히 데워졌다. 그렇게 몇 분 동안 가만히 있었다. 물이 충분히 차오르자 천천히 몸을 담갔다. 뜨거운 물이 피부를 감싸는 순간, 온종일 쌓였던 긴장이 조금씩 풀려나가는 듯했다. 손끝의 차가움도 사라졌다. 방금 전까지 호텔 방에서 맡았던 향수 냄새가 욕실의 습기와 함께 어둡게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욕조 가장자리엔 오래된 샴푸와 린스가 놓여 있었다. 원룸의 다른 물건들과 마찬가지로 그리 특별한 것은 없었다.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이 오히려 안도감을 줬다. 여기서는 누구도 유이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이름을 묻지도 않았다. 돈을 세지도 않았고, 표정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유이는 고개를 젖혀 천장을 바라보았다. 습기 때문에 흐려진 불빛이 물 위로 흔들렸다. 오늘 몇 시에 잠들 수 있을까, 내일은 몇 시에 일어나야 할까, 그런 생각이 물결처럼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특별한 여운도 희망도 없이.
유이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내쉬었다. 그러고 나서야 오늘 하루가 정말 끝났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목욕을 마친 유이는 수건으로 몸을 대충 닦고 실내복으로 갈아입었다. 머리카락에서는 아직 욕실의 습기가 남아 있었다. 거실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작은 공간이었지만, 일상에서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이기에 그 이름이 그냥 굳어졌다. 유이는 바닥에 놓인 얇은 매트 위에 걸터앉아 TV 리모컨을 눌렀다. 화면에는 저녁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내용은 어딘가 시끄러웠다.
“오노데라 도의원이 종교단체 ‘진광회’와 협력해 특정 사업을 추진한 정황이 포착됐습니다. 진광회는 지역문화 활성화 사업과 청소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단체로 알려져 있으며, 신도 수도 상당한 규모입니다.”
유이는 TV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히로유키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예전부터 선거 포스터나 현수막에서 여러 번 봐왔기 때문이었다. 그 옆에 붙어있는 종교 단체의 이름도 마찬가지였다. 겉으로는 문화행사 후원 단체, 교육 봉사단체, 지역 커뮤니티 같은 이미지였다. 그렇지만 유이에게는 다른 의미였다.
“다만 일부 시민단체 측에서는 ‘문화사업과 교육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기부와 후원을 유도해왔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오노데라 의원 측과의 자금 흐름이 있다는 주장도 있으나, 현재까지는 명확한 증거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아나운서가 흘려보내는 말들이 계속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해당 종교 단체가 최근 몇 년 동안 도쿄 지역에서 폭발적으로 신도 수를 늘려왔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오노데라 의원 측은...”
뉴스 자막에는 큼직하게 '오노데라 히로유키 — 진광회 협력, 아직은 의혹 단계’ 라고 쓰여 있었다.
유이는 뉴스 자막을 빤히 바라봤다. 사람들은 이미 히로유키가 진광회와 얽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논란도 많았지만 그만큼 지지자도 많았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단정할 수 없는 상태.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유이는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수건으로 젖은 머리카락 끝을 천천히 짜냈다. 진광회의 이름은 어딘가 낯설지 않았다. 그 로고도, 행사 영상도, 배경에 울리는 어린아이들의 합창도. 이미 오래전에 본 것들이었다. 리모컨을 내려놓고 다리를 끌어안았다. 한동안 아무 소리도 없었다. 뉴스는 계속 흘러갔다. 하지만 이제 화면 속 말들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어릴 적 기억의 조각들이 조용히 떠올랐다.
아마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였을 것이다. 아버지는 사업 실패 이후, 파칭코와 경마에 빠져 있었다. 처음에는 "이번만 성공하면 된다"고 말했지만, 유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늘 텔레비전 앞에서 경마 중계를 보며 담배를 피우거나, 주말마다 동네 파칭코점으로 들어가는 뒷모습뿐이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와 거의 말을 섞지 않았다.
그러다 유이가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어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친절한 사람들이 있는 모임"이라는 곳에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말만, 그 다음에는 평일 저녁까지. 돌아올 때면 작은 책자와 전단지를 들고 있었고, 그 위에는 ‘光(빛)’과 ‘法(법)’ 같은 단어들이 많이 적혀 있었다.
그때는 그냥 어머니가 기도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선생님들이나 텔레비전에서 보던 절과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각종 문화행사에 참여하고, 봉사활동에 따라 나갔다. 그 중 일부에는 유이도 함께 데려갔다. 오래된 체육관에서 떡을 썰고, 지역 어린이들과 연필을 나눠주고, 웃는 사진을 찍었다. 그것만 놓고 보면 나쁜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집안은 점점 조용해졌다. 어머니는 집에 거의 없었고, 아버지는 밤마다 계산기를 두드리며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는 유이에게 작은 복주머니와 책자를 건네며 말했다.
“이거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 시험도 잘 보고, 좋은 일도 생겨.”
유이는 그게 그냥 어른들의 부적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진광회의 이름을 제대로 알게 된 건 훨씬 나중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1년 정도가 지났다. 이미 생활비가 빠듯해졌고,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아버지는 TV 볼륨을 높였다. 우편함에는 정체 모를 서류가 쌓이며 아버지가 집으로 들고 오는 봉투는 점점 늘어갔다. 유이는 그것이 빚이라는 걸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알았다.
어느 날 밤, 부모가 거실에서 낮은 목소리로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대출”, “이자”, “보증인”, “프로젝트”, “다음 달” 같은 단어들이 겹쳐졌다. 어머니는 조용히 울었고, 아버지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때 유이는 방문 뒤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한다고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어린 나이에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결국 사채에 손을 댔다. 전화는 더 자주 울렸고, 우편함에 꽂히는 종이들은 더 두툼해졌다. 어머니는 그 무렵부터 진광회에 더 깊이 매달렸다. 그곳만이 빚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고 믿게 된 것처럼 보였다. 헌금이라는 이름으로 돈이 빠져나갔고, 아버지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척했다.
유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는 모든 것이 한 번에 무너졌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거실 테이블 위에는 열쇠와 주민등록등본, 그리고 얇은 노란 서류봉투가 놓여 있었다. 부모는 없었다. 전화를 걸어도 연결되지 않았다. 다음 날, 그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봉투 안에는 짧은 메모와 몇 장의 서류가 전부였다.
“미안하다. 언젠가 상황이 정리되면 돌아오겠다.”
유이는 그 문장을 끝까지 읽고도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며칠 후, 사채업자가 집에 찾아와 문을 두드렸다. 다음 주에는 은행에서 온 편지가 도착했다. 그리고 그 다음 달, 유이가 만 18세가 되던 해, 모든 빚은 유이 명의로 전환되었다. 법적 절차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유이에게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성인이 된 유이는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다. 등록금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장학금 서류를 도와줄 보호자도 없었다. 아르바이트로는 생활비를 충당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취업을 하고, 대학으로 가고, 집을 나가 새로운 방을 구했다. 유이는 빚이 적힌 우편물과 싸우는 방법을 몰랐다.
그 모든 과정 속에서, 부모는 한 번도 돌아오지 않았다. 연락도 없었다. 유이는 이름뿐인 채무자이자 보호자 없는 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가부키쵸의 작은 사무실에서 데리헤루라는 단어를 처음 듣게 되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신주쿠역 동쪽 출구 근처에서였다. 남자는 깔끔한 코트 차림이었고, 손에는 명함이 들려 있었다. “쉬운 일 있어요. 힘들면 연락해요.” 그런 말이었다. 그때는 그냥 무시하고 지나쳤다.
하지만 스카우트는 그 한 번이 끝이 아니었다. 밤에 천 엔짜리 편의점 도시락을 먹고 있을 때, 전기세 고지서가 도착했을 때, 은행에서 온 우편을 열어봤을 때, 그런 녀석들은 유이가 있는 자리에 언제나 있었다. “자리 있어요.” “조건 괜찮아요.” 남의 문제처럼 말하던 그 목소리들이 결국 현실이 되어갔다.
어느 날 고지서들을 한 번에 펼쳐놓고 금액을 더해보니, 그 숫자는 아르바이트 다섯 개가 있어도 감당할 수 없는 종류였다. 그 순간 유이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살아남는 방법이 몇 가지나 더 있을까. 대답은 생각보다 짧았다.
처음 방문한 사무실은 가부키쵸의 뒷골목에 있었다. 조명은 밝았지만 방 안의 공기는 어딘가 눅눅했고, 직원들은 친절했지만 표정이 피곤해 보였다. 유이는 서류를 작성했고, 사진을 찍었고,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조건은 이상하리만큼 현실적이었다. 첫 출근 날, 다른 여자들은 유이에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은 이미 자기 방식대로 하루를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이 끝나고 돈을 받을 때, 유이는 숫자만 바라보았다. 숫자는 감정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었다.
첫 달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낮에는 편의점이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밤에는 사무실을 오갔다. 휴식이라고 부를 만한 시간은 거의 없었지만, 유이는 불평하지 않았다. 불평할 상대도, 들어줄 상대도 없었기 때문이다. 바쁜 만큼 우편함에서 새로 나오는 고지서들을 부담 없이 뜯을 수 있었다. 금액을 확인한 뒤, 그 위에 작은 메모지로 ‘지금은 가능’, ‘다음 달로 미루기’, ‘조금 더 필요’ 같은 단어들을 붙였다. 생존 방식을 정리하는 것처럼.
사무실의 공기는 여전히 눅눅했고, 동료들의 표정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유이는 그곳에서 다른 어떤 공간보다 명확한 규칙을 느꼈다. 사무실에서는 일과 돈이 바뀌었고, 호텔에서는 시간과 돈이 바뀌었다.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하든 결국 돈과 시간으로 돌아왔다. 그 단순함이 마음을 편하게 만들었다. 거기에는 희망도 없지만 절망도 없었다. 오직 계산만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 유이는 TV 앞에서 젖은 머리를 말리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 뉴스 화면에서는 여전히 오노데라 히로유키와 진광회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었고, 기자는 ‘진실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는 말을 반복했다. TV 아래 작은 테이블에는 계산된 금액이 적힌 영수증들이 놓여 있었다. 그 숫자들은 유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 같은 것들이었다.
유이는 리모컨을 눌러 TV를 껐다. 방 안은 다시 어두워졌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원룸이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유이는 지친 몸을 이끌고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았다. 물이 채워지는 동안 그녀는 옷을 하나둘씩 벗었다. 공조기 소음과 함께 욕실 바닥의 타일이 서서히 데워졌다. 그렇게 몇 분 동안 가만히 있었다. 물이 충분히 차오르자 천천히 몸을 담갔다. 뜨거운 물이 피부를 감싸는 순간, 온종일 쌓였던 긴장이 조금씩 풀려나가는 듯했다. 손끝의 차가움도 사라졌다. 방금 전까지 호텔 방에서 맡았던 향수 냄새가 욕실의 습기와 함께 어둡게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욕조 가장자리엔 오래된 샴푸와 린스가 놓여 있었다. 원룸의 다른 물건들과 마찬가지로 그리 특별한 것은 없었다.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이 오히려 안도감을 줬다. 여기서는 누구도 유이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이름을 묻지도 않았다. 돈을 세지도 않았고, 표정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유이는 고개를 젖혀 천장을 바라보았다. 습기 때문에 흐려진 불빛이 물 위로 흔들렸다. 오늘 몇 시에 잠들 수 있을까, 내일은 몇 시에 일어나야 할까, 그런 생각이 물결처럼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특별한 여운도 희망도 없이.
유이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내쉬었다. 그러고 나서야 오늘 하루가 정말 끝났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목욕을 마친 유이는 수건으로 몸을 대충 닦고 실내복으로 갈아입었다. 머리카락에서는 아직 욕실의 습기가 남아 있었다. 거실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작은 공간이었지만, 일상에서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이기에 그 이름이 그냥 굳어졌다. 유이는 바닥에 놓인 얇은 매트 위에 걸터앉아 TV 리모컨을 눌렀다. 화면에는 저녁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내용은 어딘가 시끄러웠다.
“오노데라 도의원이 종교단체 ‘진광회’와 협력해 특정 사업을 추진한 정황이 포착됐습니다. 진광회는 지역문화 활성화 사업과 청소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단체로 알려져 있으며, 신도 수도 상당한 규모입니다.”
유이는 TV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히로유키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예전부터 선거 포스터나 현수막에서 여러 번 봐왔기 때문이었다. 그 옆에 붙어있는 종교 단체의 이름도 마찬가지였다. 겉으로는 문화행사 후원 단체, 교육 봉사단체, 지역 커뮤니티 같은 이미지였다. 그렇지만 유이에게는 다른 의미였다.
“다만 일부 시민단체 측에서는 ‘문화사업과 교육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기부와 후원을 유도해왔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오노데라 의원 측과의 자금 흐름이 있다는 주장도 있으나, 현재까지는 명확한 증거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아나운서가 흘려보내는 말들이 계속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해당 종교 단체가 최근 몇 년 동안 도쿄 지역에서 폭발적으로 신도 수를 늘려왔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오노데라 의원 측은...”
뉴스 자막에는 큼직하게 '오노데라 히로유키 — 진광회 협력, 아직은 의혹 단계’ 라고 쓰여 있었다.
유이는 뉴스 자막을 빤히 바라봤다. 사람들은 이미 히로유키가 진광회와 얽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논란도 많았지만 그만큼 지지자도 많았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단정할 수 없는 상태.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유이는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수건으로 젖은 머리카락 끝을 천천히 짜냈다. 진광회의 이름은 어딘가 낯설지 않았다. 그 로고도, 행사 영상도, 배경에 울리는 어린아이들의 합창도. 이미 오래전에 본 것들이었다. 리모컨을 내려놓고 다리를 끌어안았다. 한동안 아무 소리도 없었다. 뉴스는 계속 흘러갔다. 하지만 이제 화면 속 말들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어릴 적 기억의 조각들이 조용히 떠올랐다.
아마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였을 것이다. 아버지는 사업 실패 이후, 파칭코와 경마에 빠져 있었다. 처음에는 "이번만 성공하면 된다"고 말했지만, 유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늘 텔레비전 앞에서 경마 중계를 보며 담배를 피우거나, 주말마다 동네 파칭코점으로 들어가는 뒷모습뿐이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와 거의 말을 섞지 않았다.
그러다 유이가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어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친절한 사람들이 있는 모임"이라는 곳에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말만, 그 다음에는 평일 저녁까지. 돌아올 때면 작은 책자와 전단지를 들고 있었고, 그 위에는 ‘光(빛)’과 ‘法(법)’ 같은 단어들이 많이 적혀 있었다.
그때는 그냥 어머니가 기도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선생님들이나 텔레비전에서 보던 절과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각종 문화행사에 참여하고, 봉사활동에 따라 나갔다. 그 중 일부에는 유이도 함께 데려갔다. 오래된 체육관에서 떡을 썰고, 지역 어린이들과 연필을 나눠주고, 웃는 사진을 찍었다. 그것만 놓고 보면 나쁜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집안은 점점 조용해졌다. 어머니는 집에 거의 없었고, 아버지는 밤마다 계산기를 두드리며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는 유이에게 작은 복주머니와 책자를 건네며 말했다.
“이거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 시험도 잘 보고, 좋은 일도 생겨.”
유이는 그게 그냥 어른들의 부적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진광회의 이름을 제대로 알게 된 건 훨씬 나중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1년 정도가 지났다. 이미 생활비가 빠듯해졌고,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아버지는 TV 볼륨을 높였다. 우편함에는 정체 모를 서류가 쌓이며 아버지가 집으로 들고 오는 봉투는 점점 늘어갔다. 유이는 그것이 빚이라는 걸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알았다.
어느 날 밤, 부모가 거실에서 낮은 목소리로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대출”, “이자”, “보증인”, “프로젝트”, “다음 달” 같은 단어들이 겹쳐졌다. 어머니는 조용히 울었고, 아버지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때 유이는 방문 뒤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한다고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어린 나이에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결국 사채에 손을 댔다. 전화는 더 자주 울렸고, 우편함에 꽂히는 종이들은 더 두툼해졌다. 어머니는 그 무렵부터 진광회에 더 깊이 매달렸다. 그곳만이 빚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고 믿게 된 것처럼 보였다. 헌금이라는 이름으로 돈이 빠져나갔고, 아버지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척했다.
유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는 모든 것이 한 번에 무너졌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거실 테이블 위에는 열쇠와 주민등록등본, 그리고 얇은 노란 서류봉투가 놓여 있었다. 부모는 없었다. 전화를 걸어도 연결되지 않았다. 다음 날, 그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봉투 안에는 짧은 메모와 몇 장의 서류가 전부였다.
“미안하다. 언젠가 상황이 정리되면 돌아오겠다.”
유이는 그 문장을 끝까지 읽고도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며칠 후, 사채업자가 집에 찾아와 문을 두드렸다. 다음 주에는 은행에서 온 편지가 도착했다. 그리고 그 다음 달, 유이가 만 18세가 되던 해, 모든 빚은 유이 명의로 전환되었다. 법적 절차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유이에게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성인이 된 유이는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다. 등록금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장학금 서류를 도와줄 보호자도 없었다. 아르바이트로는 생활비를 충당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취업을 하고, 대학으로 가고, 집을 나가 새로운 방을 구했다. 유이는 빚이 적힌 우편물과 싸우는 방법을 몰랐다.
그 모든 과정 속에서, 부모는 한 번도 돌아오지 않았다. 연락도 없었다. 유이는 이름뿐인 채무자이자 보호자 없는 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가부키쵸의 작은 사무실에서 데리헤루라는 단어를 처음 듣게 되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신주쿠역 동쪽 출구 근처에서였다. 남자는 깔끔한 코트 차림이었고, 손에는 명함이 들려 있었다. “쉬운 일 있어요. 힘들면 연락해요.” 그런 말이었다. 그때는 그냥 무시하고 지나쳤다.
하지만 스카우트는 그 한 번이 끝이 아니었다. 밤에 천 엔짜리 편의점 도시락을 먹고 있을 때, 전기세 고지서가 도착했을 때, 은행에서 온 우편을 열어봤을 때, 그런 녀석들은 유이가 있는 자리에 언제나 있었다. “자리 있어요.” “조건 괜찮아요.” 남의 문제처럼 말하던 그 목소리들이 결국 현실이 되어갔다.
어느 날 고지서들을 한 번에 펼쳐놓고 금액을 더해보니, 그 숫자는 아르바이트 다섯 개가 있어도 감당할 수 없는 종류였다. 그 순간 유이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살아남는 방법이 몇 가지나 더 있을까. 대답은 생각보다 짧았다.
처음 방문한 사무실은 가부키쵸의 뒷골목에 있었다. 조명은 밝았지만 방 안의 공기는 어딘가 눅눅했고, 직원들은 친절했지만 표정이 피곤해 보였다. 유이는 서류를 작성했고, 사진을 찍었고,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조건은 이상하리만큼 현실적이었다. 첫 출근 날, 다른 여자들은 유이에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은 이미 자기 방식대로 하루를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이 끝나고 돈을 받을 때, 유이는 숫자만 바라보았다. 숫자는 감정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었다.
첫 달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낮에는 편의점이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밤에는 사무실을 오갔다. 휴식이라고 부를 만한 시간은 거의 없었지만, 유이는 불평하지 않았다. 불평할 상대도, 들어줄 상대도 없었기 때문이다. 바쁜 만큼 우편함에서 새로 나오는 고지서들을 부담 없이 뜯을 수 있었다. 금액을 확인한 뒤, 그 위에 작은 메모지로 ‘지금은 가능’, ‘다음 달로 미루기’, ‘조금 더 필요’ 같은 단어들을 붙였다. 생존 방식을 정리하는 것처럼.
사무실의 공기는 여전히 눅눅했고, 동료들의 표정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유이는 그곳에서 다른 어떤 공간보다 명확한 규칙을 느꼈다. 사무실에서는 일과 돈이 바뀌었고, 호텔에서는 시간과 돈이 바뀌었다.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하든 결국 돈과 시간으로 돌아왔다. 그 단순함이 마음을 편하게 만들었다. 거기에는 희망도 없지만 절망도 없었다. 오직 계산만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 유이는 TV 앞에서 젖은 머리를 말리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 뉴스 화면에서는 여전히 오노데라 히로유키와 진광회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었고, 기자는 ‘진실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는 말을 반복했다. TV 아래 작은 테이블에는 계산된 금액이 적힌 영수증들이 놓여 있었다. 그 숫자들은 유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 같은 것들이었다.
유이는 리모컨을 눌러 TV를 껐다. 방 안은 다시 어두워졌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원룸이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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