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7: 정상으로 보이는 것들
조회 : 55 추천 : 0 글자수 : 5,484 자 2026-01-30
아침 출근길은 늘 비슷했다. 8시쯤 집을 나서면 미나토구의 공기는 전날 밤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커피 전문점은 이미 문을 열었고, 정장을 입은 직장인들이 흰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횡단보도 앞에 줄처럼 서 있었다.
나오야도 그 흐름 속에 섞였다. 특별히 바쁘지도 않고, 특별히 여유롭지도 않은 표정으로 역 방향으로 걸었다. 지하철 승강장에서 신문 속보 알림을 스쳐보며 천천히 탑승했고, 손잡이를 잡은 채 창밖으로 지나가는 건물만 바라보았다. 오늘도 교육 개편안 자료를 정리하고, 진광회 관련 후속 보도를 체크해야 했다. 그 정도가 나오야의 출근 전 머릿속 일정이었다.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그날 보도국은 평소보다 조금 시끄러웠다. 교육 개편안 브리핑이 있는 날이었는데 속보 데스크가 오전 회의부터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프린터가 쉬지 않고 돌아갔고, 영상팀은 미리 캡쳐한 화면을 모니터에 띄워두고 컷 편집을 하고 있었다. 나오야는 코트만 의자에 걸어둔 채 책상 앞에 앉아 자료를 흘려보았다.
머릿속은 일로 채워져 있었지만, 스마트폰 화면 상단에 고정된 ‘읽음 1’의 존재는 사라지지 않았다. LINE을 보낸 이의 톤은 특유의 단호함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 단호함은 보통 지시나 통보의 형태로 바뀌곤 했다. 나오야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굳이 언급하거나 맞서거나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 종류의 갈등은 이미 오래전에 피로로 분류된 일들이었다.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는 사회부 선배들이 히로유키의 이름이 들어간 신문 스크랩을 뒤적였다. 누군가는 저쪽은 오늘도 연락이 없다고 말했고, 누군가는 총선 앞두고 저게 터지면 꽤 시끄러워질 것이라고 중얼거렸다. 나오야는 반응하지 않았다. 히로유키라는 이름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은 굳이 여기서 드러낼 필요가 없는 정보였다. 기자 사이에서 사적인 정보는 오히려 방해가 될 때가 많았고, 나오야는 그걸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는 쪽이었다.
모니터 속 뉴스 큐시트는 업데이트되는 중이었다. 사람들은 일했고, 전화는 울렸고, 메신저 창에는 짧은 질문과 짧은 답변이 오갔다. 나오야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바꾸고 싶은 것도, 붙잡고 싶은 것도 없는 상태. 그저 하루가 흘러가는 소리만 있었다.
그때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화면 상단에 라인이 떴다. 이름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야메: 오늘 점심 가능해? 시간은 맞춰줄 수 있어.
나오야는 잠시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단순한 질문처럼 보였지만 그녀의 메시지는 대개 선택지가 없는 질문이었다. "가능해?" 라고 묻지만 사실상 "가능하게 해"에 가까웠다. 읽지 않은 척 두어 분 정도 흘려보내고 싶었지만, 나오야는 결국 화면을 열었다. 그 사이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아야메: 점심 전에 이야기할 것도 있어. 바쁘면 말해.
바쁘면 말하라는 문장은 배려가 아니라 면죄부였다. 나중에 문제가 되었을 때 “말할 기회를 줬다”는 증거로 쓰기 좋은 타입. 나오야는 손가락을 멈추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데스크 쪽에서 누군가가 전화를 받고 있었고, 바로 옆자리 기자는 속보를 정리하느라 헤드셋을 고쳐 쓰고 있었다. 모든 것이 일상이었다. 불필요한 감정만 빼면. 나오야는 결국 짧게 답장을 보냈다.
나오야: 오늘 일정 아직 몰라. 중간에 연락할게.
아야메는 1분도 안 되어 답했다.
아야메: 응. 기다릴게.
말투는 공손하면서도 문장에 하자가 없었다. 그러나 읽는 순간 기한이 생겼고, 약속이 생겼고, 선택지가 줄어들었다. 나오야는 휴대폰 화면을 엎어두고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답장 자체는 간단했지만 묘하게 관리되는 기분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모니터에 시선을 돌렸지만 집중이 되지 않았다. 알림창 하나로 하루 일정이 이미 절반쯤 결정된 느낌이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고, 누구도 명령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오야는 자유롭지 않았다.
화면에 시선을 얹은 채 보고만 있는데, 옆자리에서 누가 팔꿈치로 책상을 살짝 두드렸다. “야, 너 아까 뉴스에 잠깐 나왔지?” 같은 부서의 선배였다. 가벼운 농담 반, 확인 반. 방송에 얼굴 나오는 사람은 흔치 않았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다들 기억했다.
나오야는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응. 그냥 짧게.”
“짧아도 나오는 게 어디냐.” 선배는 웃으면서 다시 키보드를 두드렸다. 진짜 관심이 있어서 말한 건 아니었다. 기자들끼리는 서로의 출연 시간보다 서로의 데드라인에 더 신경을 썼다.
그때 보도국 쪽에서 과장 목소리가 울렸다. “사회부! 잠깐만 회의실로 모여주세요!”
회의가 자주 있는 편은 아니었다. 특히 오전 시간대에는 속보 아니면 갑자기 소환되지 않았다. 나오야는 볼펜을 챙기고 노트북을 닫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실로 들어가자 이미 사회부 사람들이 반쯤 모여 있었다. 데스크가 프린트를 여러 장 들고 들어왔다. 인쇄된 종이 맨 위에는 굵은 글씨로 ‘진광회 행사 건’이라고 적혀 있었다.
“일단 상황 공유부터 할게요.” 데스크가 앉지도 않은 채 말했다. “주말 행사 나간 방송팀이 확보한 그림이 생각보다 좋아요. 지역 행사+청소년 문화 라인으로 깔끔하게 보도됐고, 오노데라 의원 얼굴도 많이 잡혔어. 지금 SNS 반응도 나쁘지는 않아요.”
회의실 공기는 잠깐 정지됐다. 누구나 알았다. 나쁘지 않다는 게 좋은 의미가 아니라는 걸. 논란이 터질 여지가 없다는 뜻이었으니까.
데스크가 종이를 넘겼다. “다만 진광회 관련 제보가 지방 쪽에서 조금씩 들어오고 있어요. 내용은 불명. 신도 운영 방식, 헌금 구조, 행사 동원, 청소년 프로그램… 이쪽인데 아직 팩트 확인은 안 됐어요.”
사회부 누군가가 물었다. “정치 라인은요?”
“직접적인 증거 없음. 히로유키 쪽은 ‘지역 행사 협력’이라는 입장 유지 중. 건드려도 스캔들은 안 된다. 이 상태에서는.”
누군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자들에게 가장 어려운 건 없는 스캔들을 만들지 않는 것이었다. 없는 걸 만들면 기자가 죽었다.
데스크가 종이를 내려놓으며 마무리했다. “일단 후속은 우리가 잡을 거고, 방송은 사진 중심으로. 사회부는 당장은 건드리지 말고 모니터링만. 제보 들어오면 나한테 바로. 알겠죠?”
“네."
회의는 10분 만에 끝났다. 회의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은 제각기 흩어졌다. 커피 머신으로 가는 사람, 자리로 돌아가는 사람, 속보 확인하는 사람. 공기는 전혀 무겁지 않았지만, 가볍지도 않았다. 중간 어디쯤이었다. 진광회라는 단어가 여기서 사건도 아무것도 아닌 것도 아닌 상태였다는 뜻이었다.
나오야는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노트북 화면을 다시 켜고, 메일함을 열고, 속보를 확인했다. 평소의 작업 흐름이었다. 하지만 탭 한 칸 오른쪽에는 ‘진광회 — 제보 모니터링’이라는 제목의 문서가 새로 떠 있었다. 데스크가 강제로 공유한 파일이었다. 열어보지 않아도 내용은 알 수 있었다. 이건 아직 움직이지 않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아주 천천히, 조용히, 테이블 위로 올라오고 있는 종류의 사건이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휴대폰이 책상 위에서 짧게 진동했다. 화면에는 아야메의 이름과 함께 단 세 글자가 떠 있었다.
아야메: 몇 시 가능해?
마침내 눌러온 압박이었다. 나오야는 모니터에 띄워둔 교육 개편안 기사를 한 번 훑어본 뒤, 천천히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답장을 미루는 건 별 의미가 없었다. 아야메는 예약처럼 다시 연락할 것이고, 결국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부 동료들이 도시락을 꺼내며 잡담을 시작했을 때 나오야는 단 한 줄만 적었다.
나오야 : 점심 시간에 잠깐 가능.
읽음 표시가 뜨는 데 2초도 걸리지 않았다.
아야메 : 좋아. 로비에서 봐.
말투는 요구에 가까웠지만 나오야는 감정을 싣지 않았다. 감정을 싣는 순간 피곤해졌다. 그렇게 몇 분 뒤, 점심 알림이 울리자 나오야는 재킷을 챙겨 입었다. 주변 사람들은 각자 도시락을 먹거나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보통의 기자들처럼 점심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나오야는 건물 로비로 내려가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은 조용했고, 스피커에서는 광고성 음악이 작게 흘러나왔다. 나오야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어차피 거절할 수 없는 약속이었다. 히로유키의 비서이자 나오야의 여자친구이며, 아직도 묘하게 연장선 위에 있는 사람. 그 관계에 이름을 붙이기 어렵다는 사실이 더 피곤했다.
로비에 도착했을 때 유리문 밖으로 정장이 잘 맞는 여성이 서 있었다. 아야메였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가 나오야를 발견하자 손목을 가볍게 떨어뜨렸다. 표정은 불쾌하지도 않았고, 반갑지도 않았다. 업무적인 순간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점심시간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휴식이었고, 나오야에게는 협상에 가깝고, 아야메에게는 확인 과정에 가까운 시간이 시작되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아야메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요즘 바쁜가 봐.”
질문이라기보다 확인에 가까웠다. 나오야는 잠깐 숨을 골랐다. “교육 개편안이 좀 복잡해서. 일정도 밀리고.”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전체는 아니었다.
아야메는 고개를 기울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래도 중요한 일정 같던데. 히로유키 의원님이 많이 신경 쓰시잖아.”
그 문장은 가볍게 던져진 것처럼 보였지만, 안에 들어 있는 의미는 익숙했다. 히로유키. 의원. 정치. 그리고 가족. 아야메가 활용 가능한 수단들은 대개 그쪽에 있었다.
“그 문제는 따로 보고하고 있어.” 나오야는 과잉 설명 없이 짧게 답했다.
그러자 아야메는 시선을 잠시 멈추었다. “그래. 근데 우리 얘기도 해야지.”
목소리에는 압박이 실려 있지도 않았지만 무게가 없지도 않았다. 둘 사이의 관계는 이미 감정보다 규칙에 가까웠다. 만나고, 확인하고, 일정 조율하고, 다투고, 다시 조용해지고. 어느 쪽도 끝내지 않은 상태로 유지되는 관계.
“주말, 시간 좀 내줄 수 있어?” 아야메는 커피잔을 건드리며 말했다. 손목 동작은 우아했지만, 표현은 정확했다.
“아직 몰라. 집안 일도 있고.” 조용한 회피였다. 그러나 아야메는 곧바로 받아쳤다. “집안 일? 히로유키 의원님 일정 말하는 거야?”
나오야는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그냥 집안 일.”
아야메는 그제야 얇게 웃었다. 웃음이 친절해서가 아니라, 방향을 바꿨다는 신호라서 더 불편했다.
“그래.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녀는 잠시 멈췄다가 덧붙였다. “근데 내가 기다리는 건 비효율이잖아. 너도 알잖아. 그렇게 오래 끌 이유 없다는 거.”
나오야는 그 문장에서 아주 작은 눌림을 느꼈다. 논리, 압박, 정당성. 이 관계가 감정으로 시작했더라도, 유지되는 방식은 감정이 아니었다.
잠깐의 정적 끝에 나오야는 고개를 들었다. “알았어. 다시 얘기할게.”
확답도, 거절도 아닌 문장. 그러나 아야메는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듯 컵을 이동시켰다. “그래. 그 정도면 돼.” 그 말은 허용이 아니라 승인에 가까웠다.
로비 밖으로 나가자 도시의 점심 소음이 쏟아졌다. 사람들의 이야기, 배달 오토바이, 지나치는 행인들. 모두 평범한 낮의 풍경이었다. 하지만 나오야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런 건 인터뷰보다 피곤한 상황이었다. 질문은 있는데 답이 없고, 구조는 있는데 출구가 없는 장면. 도시의 공기는 밝았고 나오야의 생각은 그만큼 명확하지 않았다. 점심 휴식 시간은 절반이나 남아 있었지만, 휴식의 기능은 거의 없었다.
나오야도 그 흐름 속에 섞였다. 특별히 바쁘지도 않고, 특별히 여유롭지도 않은 표정으로 역 방향으로 걸었다. 지하철 승강장에서 신문 속보 알림을 스쳐보며 천천히 탑승했고, 손잡이를 잡은 채 창밖으로 지나가는 건물만 바라보았다. 오늘도 교육 개편안 자료를 정리하고, 진광회 관련 후속 보도를 체크해야 했다. 그 정도가 나오야의 출근 전 머릿속 일정이었다.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그날 보도국은 평소보다 조금 시끄러웠다. 교육 개편안 브리핑이 있는 날이었는데 속보 데스크가 오전 회의부터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프린터가 쉬지 않고 돌아갔고, 영상팀은 미리 캡쳐한 화면을 모니터에 띄워두고 컷 편집을 하고 있었다. 나오야는 코트만 의자에 걸어둔 채 책상 앞에 앉아 자료를 흘려보았다.
머릿속은 일로 채워져 있었지만, 스마트폰 화면 상단에 고정된 ‘읽음 1’의 존재는 사라지지 않았다. LINE을 보낸 이의 톤은 특유의 단호함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 단호함은 보통 지시나 통보의 형태로 바뀌곤 했다. 나오야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굳이 언급하거나 맞서거나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 종류의 갈등은 이미 오래전에 피로로 분류된 일들이었다.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는 사회부 선배들이 히로유키의 이름이 들어간 신문 스크랩을 뒤적였다. 누군가는 저쪽은 오늘도 연락이 없다고 말했고, 누군가는 총선 앞두고 저게 터지면 꽤 시끄러워질 것이라고 중얼거렸다. 나오야는 반응하지 않았다. 히로유키라는 이름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은 굳이 여기서 드러낼 필요가 없는 정보였다. 기자 사이에서 사적인 정보는 오히려 방해가 될 때가 많았고, 나오야는 그걸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는 쪽이었다.
모니터 속 뉴스 큐시트는 업데이트되는 중이었다. 사람들은 일했고, 전화는 울렸고, 메신저 창에는 짧은 질문과 짧은 답변이 오갔다. 나오야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바꾸고 싶은 것도, 붙잡고 싶은 것도 없는 상태. 그저 하루가 흘러가는 소리만 있었다.
그때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화면 상단에 라인이 떴다. 이름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야메: 오늘 점심 가능해? 시간은 맞춰줄 수 있어.
나오야는 잠시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단순한 질문처럼 보였지만 그녀의 메시지는 대개 선택지가 없는 질문이었다. "가능해?" 라고 묻지만 사실상 "가능하게 해"에 가까웠다. 읽지 않은 척 두어 분 정도 흘려보내고 싶었지만, 나오야는 결국 화면을 열었다. 그 사이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아야메: 점심 전에 이야기할 것도 있어. 바쁘면 말해.
바쁘면 말하라는 문장은 배려가 아니라 면죄부였다. 나중에 문제가 되었을 때 “말할 기회를 줬다”는 증거로 쓰기 좋은 타입. 나오야는 손가락을 멈추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데스크 쪽에서 누군가가 전화를 받고 있었고, 바로 옆자리 기자는 속보를 정리하느라 헤드셋을 고쳐 쓰고 있었다. 모든 것이 일상이었다. 불필요한 감정만 빼면. 나오야는 결국 짧게 답장을 보냈다.
나오야: 오늘 일정 아직 몰라. 중간에 연락할게.
아야메는 1분도 안 되어 답했다.
아야메: 응. 기다릴게.
말투는 공손하면서도 문장에 하자가 없었다. 그러나 읽는 순간 기한이 생겼고, 약속이 생겼고, 선택지가 줄어들었다. 나오야는 휴대폰 화면을 엎어두고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답장 자체는 간단했지만 묘하게 관리되는 기분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모니터에 시선을 돌렸지만 집중이 되지 않았다. 알림창 하나로 하루 일정이 이미 절반쯤 결정된 느낌이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고, 누구도 명령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오야는 자유롭지 않았다.
화면에 시선을 얹은 채 보고만 있는데, 옆자리에서 누가 팔꿈치로 책상을 살짝 두드렸다. “야, 너 아까 뉴스에 잠깐 나왔지?” 같은 부서의 선배였다. 가벼운 농담 반, 확인 반. 방송에 얼굴 나오는 사람은 흔치 않았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다들 기억했다.
나오야는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응. 그냥 짧게.”
“짧아도 나오는 게 어디냐.” 선배는 웃으면서 다시 키보드를 두드렸다. 진짜 관심이 있어서 말한 건 아니었다. 기자들끼리는 서로의 출연 시간보다 서로의 데드라인에 더 신경을 썼다.
그때 보도국 쪽에서 과장 목소리가 울렸다. “사회부! 잠깐만 회의실로 모여주세요!”
회의가 자주 있는 편은 아니었다. 특히 오전 시간대에는 속보 아니면 갑자기 소환되지 않았다. 나오야는 볼펜을 챙기고 노트북을 닫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실로 들어가자 이미 사회부 사람들이 반쯤 모여 있었다. 데스크가 프린트를 여러 장 들고 들어왔다. 인쇄된 종이 맨 위에는 굵은 글씨로 ‘진광회 행사 건’이라고 적혀 있었다.
“일단 상황 공유부터 할게요.” 데스크가 앉지도 않은 채 말했다. “주말 행사 나간 방송팀이 확보한 그림이 생각보다 좋아요. 지역 행사+청소년 문화 라인으로 깔끔하게 보도됐고, 오노데라 의원 얼굴도 많이 잡혔어. 지금 SNS 반응도 나쁘지는 않아요.”
회의실 공기는 잠깐 정지됐다. 누구나 알았다. 나쁘지 않다는 게 좋은 의미가 아니라는 걸. 논란이 터질 여지가 없다는 뜻이었으니까.
데스크가 종이를 넘겼다. “다만 진광회 관련 제보가 지방 쪽에서 조금씩 들어오고 있어요. 내용은 불명. 신도 운영 방식, 헌금 구조, 행사 동원, 청소년 프로그램… 이쪽인데 아직 팩트 확인은 안 됐어요.”
사회부 누군가가 물었다. “정치 라인은요?”
“직접적인 증거 없음. 히로유키 쪽은 ‘지역 행사 협력’이라는 입장 유지 중. 건드려도 스캔들은 안 된다. 이 상태에서는.”
누군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자들에게 가장 어려운 건 없는 스캔들을 만들지 않는 것이었다. 없는 걸 만들면 기자가 죽었다.
데스크가 종이를 내려놓으며 마무리했다. “일단 후속은 우리가 잡을 거고, 방송은 사진 중심으로. 사회부는 당장은 건드리지 말고 모니터링만. 제보 들어오면 나한테 바로. 알겠죠?”
“네."
회의는 10분 만에 끝났다. 회의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은 제각기 흩어졌다. 커피 머신으로 가는 사람, 자리로 돌아가는 사람, 속보 확인하는 사람. 공기는 전혀 무겁지 않았지만, 가볍지도 않았다. 중간 어디쯤이었다. 진광회라는 단어가 여기서 사건도 아무것도 아닌 것도 아닌 상태였다는 뜻이었다.
나오야는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노트북 화면을 다시 켜고, 메일함을 열고, 속보를 확인했다. 평소의 작업 흐름이었다. 하지만 탭 한 칸 오른쪽에는 ‘진광회 — 제보 모니터링’이라는 제목의 문서가 새로 떠 있었다. 데스크가 강제로 공유한 파일이었다. 열어보지 않아도 내용은 알 수 있었다. 이건 아직 움직이지 않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아주 천천히, 조용히, 테이블 위로 올라오고 있는 종류의 사건이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휴대폰이 책상 위에서 짧게 진동했다. 화면에는 아야메의 이름과 함께 단 세 글자가 떠 있었다.
아야메: 몇 시 가능해?
마침내 눌러온 압박이었다. 나오야는 모니터에 띄워둔 교육 개편안 기사를 한 번 훑어본 뒤, 천천히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답장을 미루는 건 별 의미가 없었다. 아야메는 예약처럼 다시 연락할 것이고, 결국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부 동료들이 도시락을 꺼내며 잡담을 시작했을 때 나오야는 단 한 줄만 적었다.
나오야 : 점심 시간에 잠깐 가능.
읽음 표시가 뜨는 데 2초도 걸리지 않았다.
아야메 : 좋아. 로비에서 봐.
말투는 요구에 가까웠지만 나오야는 감정을 싣지 않았다. 감정을 싣는 순간 피곤해졌다. 그렇게 몇 분 뒤, 점심 알림이 울리자 나오야는 재킷을 챙겨 입었다. 주변 사람들은 각자 도시락을 먹거나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보통의 기자들처럼 점심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나오야는 건물 로비로 내려가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은 조용했고, 스피커에서는 광고성 음악이 작게 흘러나왔다. 나오야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어차피 거절할 수 없는 약속이었다. 히로유키의 비서이자 나오야의 여자친구이며, 아직도 묘하게 연장선 위에 있는 사람. 그 관계에 이름을 붙이기 어렵다는 사실이 더 피곤했다.
로비에 도착했을 때 유리문 밖으로 정장이 잘 맞는 여성이 서 있었다. 아야메였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가 나오야를 발견하자 손목을 가볍게 떨어뜨렸다. 표정은 불쾌하지도 않았고, 반갑지도 않았다. 업무적인 순간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점심시간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휴식이었고, 나오야에게는 협상에 가깝고, 아야메에게는 확인 과정에 가까운 시간이 시작되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아야메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요즘 바쁜가 봐.”
질문이라기보다 확인에 가까웠다. 나오야는 잠깐 숨을 골랐다. “교육 개편안이 좀 복잡해서. 일정도 밀리고.”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전체는 아니었다.
아야메는 고개를 기울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래도 중요한 일정 같던데. 히로유키 의원님이 많이 신경 쓰시잖아.”
그 문장은 가볍게 던져진 것처럼 보였지만, 안에 들어 있는 의미는 익숙했다. 히로유키. 의원. 정치. 그리고 가족. 아야메가 활용 가능한 수단들은 대개 그쪽에 있었다.
“그 문제는 따로 보고하고 있어.” 나오야는 과잉 설명 없이 짧게 답했다.
그러자 아야메는 시선을 잠시 멈추었다. “그래. 근데 우리 얘기도 해야지.”
목소리에는 압박이 실려 있지도 않았지만 무게가 없지도 않았다. 둘 사이의 관계는 이미 감정보다 규칙에 가까웠다. 만나고, 확인하고, 일정 조율하고, 다투고, 다시 조용해지고. 어느 쪽도 끝내지 않은 상태로 유지되는 관계.
“주말, 시간 좀 내줄 수 있어?” 아야메는 커피잔을 건드리며 말했다. 손목 동작은 우아했지만, 표현은 정확했다.
“아직 몰라. 집안 일도 있고.” 조용한 회피였다. 그러나 아야메는 곧바로 받아쳤다. “집안 일? 히로유키 의원님 일정 말하는 거야?”
나오야는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그냥 집안 일.”
아야메는 그제야 얇게 웃었다. 웃음이 친절해서가 아니라, 방향을 바꿨다는 신호라서 더 불편했다.
“그래.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녀는 잠시 멈췄다가 덧붙였다. “근데 내가 기다리는 건 비효율이잖아. 너도 알잖아. 그렇게 오래 끌 이유 없다는 거.”
나오야는 그 문장에서 아주 작은 눌림을 느꼈다. 논리, 압박, 정당성. 이 관계가 감정으로 시작했더라도, 유지되는 방식은 감정이 아니었다.
잠깐의 정적 끝에 나오야는 고개를 들었다. “알았어. 다시 얘기할게.”
확답도, 거절도 아닌 문장. 그러나 아야메는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듯 컵을 이동시켰다. “그래. 그 정도면 돼.” 그 말은 허용이 아니라 승인에 가까웠다.
로비 밖으로 나가자 도시의 점심 소음이 쏟아졌다. 사람들의 이야기, 배달 오토바이, 지나치는 행인들. 모두 평범한 낮의 풍경이었다. 하지만 나오야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런 건 인터뷰보다 피곤한 상황이었다. 질문은 있는데 답이 없고, 구조는 있는데 출구가 없는 장면. 도시의 공기는 밝았고 나오야의 생각은 그만큼 명확하지 않았다. 점심 휴식 시간은 절반이나 남아 있었지만, 휴식의 기능은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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