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8월 32일?
조회 : 80 추천 : 0 글자수 : 3,253 자 2026-02-06
2021년 8월 31일 22:00.
나는 이상한 불안에 휩싸여 있었다. 잠을 잘 수 없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잠을 거부하는 무언가가 계속 솟아올랐다.
오늘은 더욱 심했다. 누군가 둔기로 머리를 내리친 듯한 두통은 약을 먹어도 잦아들지 않았다.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웠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9월 1일이 오는 것이 두려웠다. 이유는 모른다. 작년부터 9월부터 설명할 수 없는 우울이 온몸을 타고 돌았다.
땀에 젖은 이불 속에서 억지로 눈을 감아보았지만, 정신은 조금도 이완되지 않았다.
...그리고 눈을 떴다.
"...잠 들었었나."
온 몸이 뻐근했다.
1년내내 제대로 된 잠을 잔 적이 없어서 그런지, 피로가 축적되고 있었다. 몇시간 쯤 잔 걸까 문득 궁금해진 나는 눈짓으로 방문에 걸린 디지털 시계를 확인했다.
00:00.
"자정인가... 결국 9월 1일이... 어라?"
시간 밑에 적힌 날짜를 확인한 순간, 눈동자가 멈췄다. 믿을 수 없어 날짜를 확인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열어보았다. 핸드폰, 노트북, 달력까지. 하나라도 달랐더라면 내가 이렇게까지 놀라지 않았을 텐데.
2021년 8월 32일 00:00.
셋 모두 똑같은 숫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뭐, 뭔가 잘못됐어."
집을 나섰다. 숨죽인 듯 고요한 도로, 멀리서 지나가는 사람들과 하늘에 떠 있는 새. 모든 것이 석고상처럼 멈춰 있었다.
“...시간이 멈춘 건가?”
불과 두 시간 전까지만 해도, 술에 취한 사람들은 비틀거리며 귀가했고, 매미들은 밤인 줄도 모르고 울어댔으며, 자동차들은 쉼 없이 길을 오갔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마치 시간이 오후의 한순간에 멈춘 듯, 사람들은 각자의 일상 속에서 그대로 멈춰 있었다.
몇몇은 교복을 입은 채였고, 어린아이들은 자전거를 끌던 자세로 굳어 있었다. 자정엔 볼 수 없는 노을빛이 모든 것을 붙잡아 두고 있었다.
“안녕?”
주변을 살피던 내 귀에 낯선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놀라 돌아본 곳에는 한 소녀가 서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온 검은 생머리, 무릎까지 내려오는 흰 민소매 원피스. 그 소녀는 어디까지가 옷이고 어디서부터 살결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새하얀 피부를 갖고 있었다.
“이런 건 처음 보지?” 소녀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여긴... 어디야?”
“8월 32일이야.”
소녀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그런 날은 없잖아... 32일이라니...”
“여긴 달력 밖의 세계니까.”
소녀는 뒷짐을 진 채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원래의 세계에서 조금 벗어난... 8월 32일, 모든 게 완벽하게 멈춘 시간 속의 하루야.”
“모든 게 멈춰?”
“이 곳은 사람도, 동물도, 시간도 멈춰있어. 텔레비전과 핸드폰 같은 전자기기도 사용할 수 없는 곳이야.
나는 얼어붙은 채로 물었다.
“...넌, 누구야?”
“난 지유야! 이지유. 이곳에서 누군가와 인사를 나누는 건 처음이네.”
천진난만하게 자기소개하는 그 모습은 외로움이 스며든 표정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넌 이름이 뭐야?”
“...한세림.”
“세림... 예쁜 이름이네! 따라와, 목 말라 죽겠어.”
지유는 골목 끝에 있는 편의점을 향해 걸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 기묘한 현상에 대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뒤따랐다.
편의점에 도착해서도 의문은 멈추지 않았다. 아까 분명히 전자기기를 사용할 수 없다고 했는데, 어째서 냉장고 안의 음료는 여전히 차가운 걸까?
"모든 게 멈춘 곳에서 어떻게 에어컨과 냉장고가 가동되는 거지?"
"모든 게 멈췄으니, 온도도 내려가지 않는 거야."
지유는 능청스럽게 대답하며 탄산음료를 꺼냈다.
“온도도 멈춰?”
“모든 게 멈춰. 온도도, 흐르던 물줄기도, 움직이던 건 다 멈추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돼.”
딸깍! 뚜껑을 따 한 모금 마시는 소리가 고요한 편의점 안에 선명하게 울렸다.
“그냥 막 먹어도 돼?”
“응. 괜찮아! 뭘 먹어도 다시 채워지니까.”
그녀가 음료수를 내밀며 말했다.
현실감이 떨어지는 공간 속, 혼란스러운 난 말없이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우리는 두 손 가득 간식을 들고 편의점을 나섰다. 공원으로 가는 길 또한 마찬가지였다. 바람도, 자동차도, 사람도, 하늘의 구름까지 모든 것이 사진처럼 붙박여 있었다.
“진짜... 전부 멈췄어.”
내가 중얼거리자, 지유는 어깨를 으쓱이며 초콜릿 하나를 입에 넣었다.
“꽤 신기하지 않아?”
그녀의 천진난만한 질문에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에 얼마나 있었던 거야?”
“글쎄… 그리 오래 되진 않았어.”
"안 세봤어?"
“못 센 거지. 시간이 흐르지 않는 이곳에서, 어떻게 날을 세겠어.”
그녀는 해맑게 웃었지만, ‘세지 못했다’는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마치 한때는 시도해본 적이 있었던 것처럼.
공원에 이르자, 지유는 나무 그늘 아래 있는 벤치로 걸어갔다. 툭툭, 벤치를 두드리며 나를 보기에, 나는 짧은 한숨을 쉬고 그 옆에 앉았다.
“몇 살이야?”
“...18살. 너는?”
“난 17살이야!”
믿기지 않았다. 여자들은 원래 이렇게 작고 가녀린가? 남중, 남고만 다닌 탓에 여자를 접할 경험이 없어 객관적인 판단이 부족했다.
“...17살이 이렇게 작아?”
“네가 큰 거야. 나 정도면 평균이라고.”
“너무 마른 거 아니야? 팔뚝이 한 손에 잡히잖아.”
그녀를 훑으며 팔을 무심코 한손으로 움켜쥐었을 때 그녀의 반응은 눈에 띄게 삐그덕거렸다. 그 모습은 오히려 나조차 긴장하게 만들었다.
“네 손이 큰 거야…”
멎쩍은 듯 다른 곳을 바라보며 작게 소근대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 곳에 온 후 굳어버렸던 나의 얼굴 근육이 한순간에 이완되는 것을 느꼈다.
지유와의 대화는 즐거웠다. 오늘은 어디서 무엇을 먹고, 어디서 잠을 잤는지 쉬지 않고 조잘거리는 그 모습은 마치어미새에게 밥 달라며 짹짹거리는 참새 같았다.
또래와 이런 대화를 주고받은 게 얼마만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게다가 상대는 엄청난 미인. 문득, 이곳에 오게 된 것이 마냥 끔찍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이 지나가자, 세상은 다시 적막해졌다. 체감상 30분 지났을 때쯤 지유가 나지막이 말했다.
“난 언제까지 이 곳에 있는 걸까?”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 전의 삶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이곳은 저승인 걸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움직이던 나였지만, 지금만큼은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내 안에서 강렬한 확신이 솟구쳤다.
“그렇다면 나 역시 죽은 게 돼.”
나는 그녀의 말을 단호하게 끊었다.
“하지만 난 분명히 살아있어. 그러니, 날 만난 너 자신을 의심하지 마.”
“그런가…”
한껏 기가 죽은 지유의 모습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 그녀에겐 환기가 필요해보였다.
나는 이상한 불안에 휩싸여 있었다. 잠을 잘 수 없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잠을 거부하는 무언가가 계속 솟아올랐다.
오늘은 더욱 심했다. 누군가 둔기로 머리를 내리친 듯한 두통은 약을 먹어도 잦아들지 않았다.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웠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9월 1일이 오는 것이 두려웠다. 이유는 모른다. 작년부터 9월부터 설명할 수 없는 우울이 온몸을 타고 돌았다.
땀에 젖은 이불 속에서 억지로 눈을 감아보았지만, 정신은 조금도 이완되지 않았다.
...그리고 눈을 떴다.
"...잠 들었었나."
온 몸이 뻐근했다.
1년내내 제대로 된 잠을 잔 적이 없어서 그런지, 피로가 축적되고 있었다. 몇시간 쯤 잔 걸까 문득 궁금해진 나는 눈짓으로 방문에 걸린 디지털 시계를 확인했다.
00:00.
"자정인가... 결국 9월 1일이... 어라?"
시간 밑에 적힌 날짜를 확인한 순간, 눈동자가 멈췄다. 믿을 수 없어 날짜를 확인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열어보았다. 핸드폰, 노트북, 달력까지. 하나라도 달랐더라면 내가 이렇게까지 놀라지 않았을 텐데.
2021년 8월 32일 00:00.
셋 모두 똑같은 숫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뭐, 뭔가 잘못됐어."
집을 나섰다. 숨죽인 듯 고요한 도로, 멀리서 지나가는 사람들과 하늘에 떠 있는 새. 모든 것이 석고상처럼 멈춰 있었다.
“...시간이 멈춘 건가?”
불과 두 시간 전까지만 해도, 술에 취한 사람들은 비틀거리며 귀가했고, 매미들은 밤인 줄도 모르고 울어댔으며, 자동차들은 쉼 없이 길을 오갔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마치 시간이 오후의 한순간에 멈춘 듯, 사람들은 각자의 일상 속에서 그대로 멈춰 있었다.
몇몇은 교복을 입은 채였고, 어린아이들은 자전거를 끌던 자세로 굳어 있었다. 자정엔 볼 수 없는 노을빛이 모든 것을 붙잡아 두고 있었다.
“안녕?”
주변을 살피던 내 귀에 낯선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놀라 돌아본 곳에는 한 소녀가 서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온 검은 생머리, 무릎까지 내려오는 흰 민소매 원피스. 그 소녀는 어디까지가 옷이고 어디서부터 살결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새하얀 피부를 갖고 있었다.
“이런 건 처음 보지?” 소녀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여긴... 어디야?”
“8월 32일이야.”
소녀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그런 날은 없잖아... 32일이라니...”
“여긴 달력 밖의 세계니까.”
소녀는 뒷짐을 진 채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원래의 세계에서 조금 벗어난... 8월 32일, 모든 게 완벽하게 멈춘 시간 속의 하루야.”
“모든 게 멈춰?”
“이 곳은 사람도, 동물도, 시간도 멈춰있어. 텔레비전과 핸드폰 같은 전자기기도 사용할 수 없는 곳이야.
나는 얼어붙은 채로 물었다.
“...넌, 누구야?”
“난 지유야! 이지유. 이곳에서 누군가와 인사를 나누는 건 처음이네.”
천진난만하게 자기소개하는 그 모습은 외로움이 스며든 표정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넌 이름이 뭐야?”
“...한세림.”
“세림... 예쁜 이름이네! 따라와, 목 말라 죽겠어.”
지유는 골목 끝에 있는 편의점을 향해 걸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 기묘한 현상에 대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뒤따랐다.
편의점에 도착해서도 의문은 멈추지 않았다. 아까 분명히 전자기기를 사용할 수 없다고 했는데, 어째서 냉장고 안의 음료는 여전히 차가운 걸까?
"모든 게 멈춘 곳에서 어떻게 에어컨과 냉장고가 가동되는 거지?"
"모든 게 멈췄으니, 온도도 내려가지 않는 거야."
지유는 능청스럽게 대답하며 탄산음료를 꺼냈다.
“온도도 멈춰?”
“모든 게 멈춰. 온도도, 흐르던 물줄기도, 움직이던 건 다 멈추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돼.”
딸깍! 뚜껑을 따 한 모금 마시는 소리가 고요한 편의점 안에 선명하게 울렸다.
“그냥 막 먹어도 돼?”
“응. 괜찮아! 뭘 먹어도 다시 채워지니까.”
그녀가 음료수를 내밀며 말했다.
현실감이 떨어지는 공간 속, 혼란스러운 난 말없이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우리는 두 손 가득 간식을 들고 편의점을 나섰다. 공원으로 가는 길 또한 마찬가지였다. 바람도, 자동차도, 사람도, 하늘의 구름까지 모든 것이 사진처럼 붙박여 있었다.
“진짜... 전부 멈췄어.”
내가 중얼거리자, 지유는 어깨를 으쓱이며 초콜릿 하나를 입에 넣었다.
“꽤 신기하지 않아?”
그녀의 천진난만한 질문에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에 얼마나 있었던 거야?”
“글쎄… 그리 오래 되진 않았어.”
"안 세봤어?"
“못 센 거지. 시간이 흐르지 않는 이곳에서, 어떻게 날을 세겠어.”
그녀는 해맑게 웃었지만, ‘세지 못했다’는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마치 한때는 시도해본 적이 있었던 것처럼.
공원에 이르자, 지유는 나무 그늘 아래 있는 벤치로 걸어갔다. 툭툭, 벤치를 두드리며 나를 보기에, 나는 짧은 한숨을 쉬고 그 옆에 앉았다.
“몇 살이야?”
“...18살. 너는?”
“난 17살이야!”
믿기지 않았다. 여자들은 원래 이렇게 작고 가녀린가? 남중, 남고만 다닌 탓에 여자를 접할 경험이 없어 객관적인 판단이 부족했다.
“...17살이 이렇게 작아?”
“네가 큰 거야. 나 정도면 평균이라고.”
“너무 마른 거 아니야? 팔뚝이 한 손에 잡히잖아.”
그녀를 훑으며 팔을 무심코 한손으로 움켜쥐었을 때 그녀의 반응은 눈에 띄게 삐그덕거렸다. 그 모습은 오히려 나조차 긴장하게 만들었다.
“네 손이 큰 거야…”
멎쩍은 듯 다른 곳을 바라보며 작게 소근대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 곳에 온 후 굳어버렸던 나의 얼굴 근육이 한순간에 이완되는 것을 느꼈다.
지유와의 대화는 즐거웠다. 오늘은 어디서 무엇을 먹고, 어디서 잠을 잤는지 쉬지 않고 조잘거리는 그 모습은 마치어미새에게 밥 달라며 짹짹거리는 참새 같았다.
또래와 이런 대화를 주고받은 게 얼마만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게다가 상대는 엄청난 미인. 문득, 이곳에 오게 된 것이 마냥 끔찍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이 지나가자, 세상은 다시 적막해졌다. 체감상 30분 지났을 때쯤 지유가 나지막이 말했다.
“난 언제까지 이 곳에 있는 걸까?”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 전의 삶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이곳은 저승인 걸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움직이던 나였지만, 지금만큼은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내 안에서 강렬한 확신이 솟구쳤다.
“그렇다면 나 역시 죽은 게 돼.”
나는 그녀의 말을 단호하게 끊었다.
“하지만 난 분명히 살아있어. 그러니, 날 만난 너 자신을 의심하지 마.”
“그런가…”
한껏 기가 죽은 지유의 모습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 그녀에겐 환기가 필요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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