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9월 1일
조회 : 84 추천 : 0 글자수 : 3,061 자 2026-02-06
“학교에 가볼까.”
넌지시 던진 나의 말에 지유는 반응했다.
“학교?”
“이 주변에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가 있어. 멈춘 세계에선 어떤 모습일지… 좀 궁금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벤치에 앉은 지유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내 손을 잡았다.
우린 바람 한 점 없는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멈춘 세상 속에서, 우리의 발소리가 길을 채웠다. 학교까지는 멀지 않았다.
“혼자였을 땐, 내가 이 공간 속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었어. 근데 네가 있으니까…조금은 살아있는 것 같아.”
지유가 말을 내뱉으며, 잡고 있던 내 손을 더욱 세게 붙잡았다, 나는 알 수 없는 책임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학교 정문이 보이자, 바람에 반쯤 젖혀진 현수막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뜨거운 여름, 잠시 멈춰 숨 고르기!]
“저거…”
내가 말을 잇자, 지유가 고개를 돌렸다.
“응?”
“저 문구, 여름방학 때 정문에 달 현수막 문구 공모전에서 투표로 뽑혔던 글이야. 저게 아직 걸려 있다는 건, 이 세계가 여름방학 중에 멈췄다는 뜻이겠지.”
“여름방학은 언제 끝나는데?”
“8월 11일이 개학이었어. 이 곳은 11일 이전, 방학이 끝나기 전이야.”
나는 멈춘 현수막을 한참 바라보다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왜… 모든 달력엔 32일이라 적혀있던 거지? 온전한 8월에 머물 수도, 9월로 넘어가지도 못하는 곳인가?”
지유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은 이곳에 대해 고민하기 싫은 얼굴이었다. 그녀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교문 옆 열린 문으로 들어섰다.
우린 운동장을 지나, 내가 다니던 교실로 향했다. 도착한 교실은 고요했고, 창문 밖 햇빛이 벽면을 길게 가로질렀다.
“여기가… 내가 다니던 반이야.”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교실에 들어선 후, 나는 맨 앞자리 의자를 살짝 당겨주었고 지유는 조심스럽게 앉았다. 호기심이 가득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지유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개학 후엔 바로 중간고사 시즌인가?”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저었다.
“몰라… 나도 개학식 전에 그만뒀거든.”
지유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
“할머니 건강 때문이었나… 기억은 잘 안 나.”
나는 얼버무렸다. 사실 나도 왜 학교를 그만뒀는지 명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자퇴서를 작성하던 나와, 보호자란에 사인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단편적으로 떠오를 뿐이었다.
지유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그럼 이제부터 나랑 같이 다니면 되겠다. 여기 와서 책도 읽고,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칠판에 낙서도 하면서 지내는 거야.”
나는 팔짱을 끼고 그녀를 힐끗 쳐다보며, 입꼬리에 걸린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여보세요, 이지유 씨. 칠판은 낙서하라고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리고 운동장에서 뛰어놀자니… 초등학생이에요?”
내 시선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그녀의 움직임을 쫓았다.
그러자 지유는 책상에 살짝 엎드린 채, 나를 올려다봤다. 그 아찔한 자세에, 방금 전까지 내가 띄웠던 장난기는 사라져버렸다.
새하얀 피부 위로 번진 핑크빛 혈색, 머리카락이 옆으로 쏠리며 드러난 목선, 엎드린 탓에 살짝 엿보이는 쇄골, 그리고 쭉 뻗은 팔뚝까지. 그녀의 모든 것이 나를 자극했다. 고양이처럼 반짝이는 눈과 살짝 치켜올린 눈꼬리, 장난기 어린 미소가 단숨에 나를 꿰뚫고 들어왔다.
순식간에 심장은 미친 듯이 날뛰었다. 손끝은 간질거렸고, 얼굴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시선을 돌리려 했지만, 자석에 이끌리듯 지유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고 머릿속은 강제로 정지된 것처럼 텅 비어 버렸다. 그저 지유의 모습이 머릿속 깊숙이 박혀버린 기분이었다.
그때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오빠가… 나랑 놀아주면 되잖아요.”
‘…오, 오빠?’
머리가 띵했다. 방금까지 너, 세림아 라고 불렀던 그녀가, 이토록 나른한 시선으로 오빠라니… 온몸의 감각이 곤두섰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의 입술에 자꾸만 눈에 밟혔다. 살짝 벌어진 핑크빛 입술이 아까보다 더 붉게 느껴졌다. 애써 시선을 피하려던 노력은 완전히 실패했다. 지금은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손을 뻗어 쇄골의 굴곡을 따라 손가락을 대보고 싶다는 충동이 온몸을 휘감았다.
내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확인한 지유는, 만족스러운 고양이처럼 깊고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흐음, 대답이 없네. 거절인가?“
그녀는 턱을 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은 언제, 어디서든 불쑥 생각날 것만 같았다.
"갑자기 오빠는 무슨…”
말할 때마다 벌어지는 내 입을 통해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머릿속엔 여전히 ‘오빠’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마음에 안 들어?”
그녀는 책상에서 일어나 고양이처럼 사뿐히 다가오며 말했다.
“오글거리기만 해.”
부끄러움을 감추려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녀는 굴하지 않았다. 마치 분하다는 듯 나를 더 자극해왔다. 18년 인생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것 같다.
"얼굴 빨개지는 거 내가 다 봤는데 그럴 거야?“
내 한쪽 뺨에 손을 올린 채 말을 하는 그녀였다.
고등학생 주제에 도발이 수준급이다. 나는 내 뺨에 올라온 그녀의 손을 잡아챘다. 그녀는 나의 행동에 잠시 당황하는 듯했다. 나는 그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마치 길들여지지 않은 고양이에게 목줄을 채워 놓아주지 않으려는 듯이.
손을 쥐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그런 주제에 대담한 도발을 했다는 사실이 몹시 귀엽게 느껴졌다.
“지금은 네가 더 빨간 것 같은데.”
“아파서 그런 거야! 그렇게 세게 잡으면 어떡해?”
그녀는 잡힌 손을 뿌리치고는 뒤로 물러났다. 삐졌다는 듯 입술을 툭 내밀고 나를 쏘아보는 모습이었다. 세상에 그녀보다 더 사랑스러운 사람이 있을까? 모든 게 멈춘 고요한 세상 속에서, 내 심장만이 홀로 시간을 세고 있었다. 그녀를 마주하고 있자니 낯선 어지러움이 밀려왔다.
“어…라…”
눈앞이 흐려졌다. 두통이 밀려왔고, 다리엔 힘이 빠졌다.
“어어, 세림아! 왜 그래?!”
지유는 나에게 달려들었다.
쿵!
그녀는 쓰러지는 내 몸을 필사적으로 붙잡았지만, 내 무게를 온전히 받쳐주기에 터무니없이 작고 여렸다. 내 귀에 들리는 지유의 다급한 외침이 점점 웅웅거리며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을 떴다.
넌지시 던진 나의 말에 지유는 반응했다.
“학교?”
“이 주변에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가 있어. 멈춘 세계에선 어떤 모습일지… 좀 궁금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벤치에 앉은 지유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내 손을 잡았다.
우린 바람 한 점 없는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멈춘 세상 속에서, 우리의 발소리가 길을 채웠다. 학교까지는 멀지 않았다.
“혼자였을 땐, 내가 이 공간 속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었어. 근데 네가 있으니까…조금은 살아있는 것 같아.”
지유가 말을 내뱉으며, 잡고 있던 내 손을 더욱 세게 붙잡았다, 나는 알 수 없는 책임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학교 정문이 보이자, 바람에 반쯤 젖혀진 현수막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뜨거운 여름, 잠시 멈춰 숨 고르기!]
“저거…”
내가 말을 잇자, 지유가 고개를 돌렸다.
“응?”
“저 문구, 여름방학 때 정문에 달 현수막 문구 공모전에서 투표로 뽑혔던 글이야. 저게 아직 걸려 있다는 건, 이 세계가 여름방학 중에 멈췄다는 뜻이겠지.”
“여름방학은 언제 끝나는데?”
“8월 11일이 개학이었어. 이 곳은 11일 이전, 방학이 끝나기 전이야.”
나는 멈춘 현수막을 한참 바라보다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왜… 모든 달력엔 32일이라 적혀있던 거지? 온전한 8월에 머물 수도, 9월로 넘어가지도 못하는 곳인가?”
지유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은 이곳에 대해 고민하기 싫은 얼굴이었다. 그녀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교문 옆 열린 문으로 들어섰다.
우린 운동장을 지나, 내가 다니던 교실로 향했다. 도착한 교실은 고요했고, 창문 밖 햇빛이 벽면을 길게 가로질렀다.
“여기가… 내가 다니던 반이야.”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교실에 들어선 후, 나는 맨 앞자리 의자를 살짝 당겨주었고 지유는 조심스럽게 앉았다. 호기심이 가득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지유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개학 후엔 바로 중간고사 시즌인가?”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저었다.
“몰라… 나도 개학식 전에 그만뒀거든.”
지유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
“할머니 건강 때문이었나… 기억은 잘 안 나.”
나는 얼버무렸다. 사실 나도 왜 학교를 그만뒀는지 명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자퇴서를 작성하던 나와, 보호자란에 사인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단편적으로 떠오를 뿐이었다.
지유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그럼 이제부터 나랑 같이 다니면 되겠다. 여기 와서 책도 읽고,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칠판에 낙서도 하면서 지내는 거야.”
나는 팔짱을 끼고 그녀를 힐끗 쳐다보며, 입꼬리에 걸린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여보세요, 이지유 씨. 칠판은 낙서하라고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리고 운동장에서 뛰어놀자니… 초등학생이에요?”
내 시선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그녀의 움직임을 쫓았다.
그러자 지유는 책상에 살짝 엎드린 채, 나를 올려다봤다. 그 아찔한 자세에, 방금 전까지 내가 띄웠던 장난기는 사라져버렸다.
새하얀 피부 위로 번진 핑크빛 혈색, 머리카락이 옆으로 쏠리며 드러난 목선, 엎드린 탓에 살짝 엿보이는 쇄골, 그리고 쭉 뻗은 팔뚝까지. 그녀의 모든 것이 나를 자극했다. 고양이처럼 반짝이는 눈과 살짝 치켜올린 눈꼬리, 장난기 어린 미소가 단숨에 나를 꿰뚫고 들어왔다.
순식간에 심장은 미친 듯이 날뛰었다. 손끝은 간질거렸고, 얼굴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시선을 돌리려 했지만, 자석에 이끌리듯 지유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고 머릿속은 강제로 정지된 것처럼 텅 비어 버렸다. 그저 지유의 모습이 머릿속 깊숙이 박혀버린 기분이었다.
그때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오빠가… 나랑 놀아주면 되잖아요.”
‘…오, 오빠?’
머리가 띵했다. 방금까지 너, 세림아 라고 불렀던 그녀가, 이토록 나른한 시선으로 오빠라니… 온몸의 감각이 곤두섰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의 입술에 자꾸만 눈에 밟혔다. 살짝 벌어진 핑크빛 입술이 아까보다 더 붉게 느껴졌다. 애써 시선을 피하려던 노력은 완전히 실패했다. 지금은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손을 뻗어 쇄골의 굴곡을 따라 손가락을 대보고 싶다는 충동이 온몸을 휘감았다.
내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확인한 지유는, 만족스러운 고양이처럼 깊고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흐음, 대답이 없네. 거절인가?“
그녀는 턱을 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은 언제, 어디서든 불쑥 생각날 것만 같았다.
"갑자기 오빠는 무슨…”
말할 때마다 벌어지는 내 입을 통해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머릿속엔 여전히 ‘오빠’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마음에 안 들어?”
그녀는 책상에서 일어나 고양이처럼 사뿐히 다가오며 말했다.
“오글거리기만 해.”
부끄러움을 감추려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녀는 굴하지 않았다. 마치 분하다는 듯 나를 더 자극해왔다. 18년 인생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것 같다.
"얼굴 빨개지는 거 내가 다 봤는데 그럴 거야?“
내 한쪽 뺨에 손을 올린 채 말을 하는 그녀였다.
고등학생 주제에 도발이 수준급이다. 나는 내 뺨에 올라온 그녀의 손을 잡아챘다. 그녀는 나의 행동에 잠시 당황하는 듯했다. 나는 그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마치 길들여지지 않은 고양이에게 목줄을 채워 놓아주지 않으려는 듯이.
손을 쥐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그런 주제에 대담한 도발을 했다는 사실이 몹시 귀엽게 느껴졌다.
“지금은 네가 더 빨간 것 같은데.”
“아파서 그런 거야! 그렇게 세게 잡으면 어떡해?”
그녀는 잡힌 손을 뿌리치고는 뒤로 물러났다. 삐졌다는 듯 입술을 툭 내밀고 나를 쏘아보는 모습이었다. 세상에 그녀보다 더 사랑스러운 사람이 있을까? 모든 게 멈춘 고요한 세상 속에서, 내 심장만이 홀로 시간을 세고 있었다. 그녀를 마주하고 있자니 낯선 어지러움이 밀려왔다.
“어…라…”
눈앞이 흐려졌다. 두통이 밀려왔고, 다리엔 힘이 빠졌다.
“어어, 세림아! 왜 그래?!”
지유는 나에게 달려들었다.
쿵!
그녀는 쓰러지는 내 몸을 필사적으로 붙잡았지만, 내 무게를 온전히 받쳐주기에 터무니없이 작고 여렸다. 내 귀에 들리는 지유의 다급한 외침이 점점 웅웅거리며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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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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