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첫키스
조회 : 53 추천 : 0 글자수 : 3,154 자 2026-02-07
내 말에 지유는 달아오른 얼굴을 감추려는 듯 내 품에 고개를 묻었다.
“네 생각만 했어. 1년 내내.”
"...나도..."
지유가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응?"
“나도 보고 싶었다고...”
지유는 내가 되묻자 다시 대답하기 창피하단 듯 더 깊이 얼굴을 묻었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웃음이 터졌고, 그녀는 머뭇거리다 이내 고개를 들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우리 둘 사이의 긴장이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세림아, 나 신기한 일 있었다?”
지유는 자세를 고쳐 나와 마주 본 채 얘기했다. 그녀의 시선이 내 얼굴에 닿을 때마다 심장이 요동쳤다.
“내가 이곳에 온 후로 아무 기억도 없다고 했잖아.”
그녀는 내 속사정을 알 리 없다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응, 나이랑 이름 빼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며.”
그 무심한 말에 오히려 내가 민망해져,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을 이었다.
“맞아. 근데 너랑 헤어진 후로, 조금씩 생각이 나기 시작했어.”
“진짜?”
“응, 난 무학동에서 무학중학교를 다니고, 무학고로 입학할 예정이었어.”
“부모님은?”
“엄마 아빠는… 아직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워. 기억이 떠오른 뒤로 눈물만 나서.”
지유의 눈가가 작게 떨렸다.
“…미안해.”
“아니야! 내가 먼저 말했잖아.”
지유는 억지로라도 웃음을 띠며 고개를 흔들었다.
“여기서 나갈 방법만 찾는다면, 만나러 갈 수 있겠지.”
“나도 도와줄게. 어떻게든 네가 달력 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응, 꼭 기다려야 된다?”
그녀가 내 무릎 위에 살포시 손을 올리며 말했다.
“…당연하지.”
순간 얼굴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걸 들키지 않으려 손으로 입을 가린 채, 고개를 살짝 돌려 말했다.
지유의 입술이 아주 천천히 열렸다.
“...여기에 적은 첫인상은 다 진심이야?”
처음 고백을 받은 소녀처럼 수줍게 묻는 지유의 모습에,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내 고백을 받아들인다면, 물러설 곳이 없다는 듯 단호하게.
“응. 네가 너무 좋아.”
지유는 나의 어깨에 기댄 채 대답했다.
“나도… 넌 외로웠던 나에게, 나는 혼란스러웠던 너에게 다가온 우린 운명이야.”
그녀의 말에 한순간 숨이 멎었다.
“지유야…”
입안이 바짝 말라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나는 어설프게 웃으며, 그녀의 눈을 마주했다. 무슨 말을 꺼내야할까 고민하던 나는 이내 내 입술을 톡톡 치며 한번 더 닿아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싫거든!”
지유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가 붙잡기도 전에, 그녀는 허둥지둥 도망치듯 달려갔다.
“어디 가!”
나는 잠시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도망간다고 못 잡을 것 같아?”
몸이 저절로 앞으로 움직였고, 어느새 나는 지유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녀의 웃음소리가 다시 가까워졌다. 그 순간만큼은, 8월 32일은 우리에게 안식처가 되어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마치 숨을 내뱉듯 나를 밀어냈다.모든 빛이 꺼졌다. 차가운 공기가 볼을 스쳤다. 눈을 떴을 때, 지유의 손은 사라져 있었다.
2022년 9월 1일.
눈을 뜨자마자 나는 습관처럼 날짜를 확인했다. 9월 1일... 달력 안으로 돌아와 버렸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지유와 제대로 된 인사를 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나는 곧장 공원으로 달려 나갔다. 지난 1년 동안 간절히 바라 온 그녀와의 연결고리… 오늘은 그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공원에 도착한 나는 망설임 없이 곧장 그 벤치로 향했다.
'전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머릿속으로 주문을 외우듯 되뇌었다.
난 벤치 등받이에 조심스럽게 확인했다.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찰나, 거기엔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나와 그녀가 함께 남긴 투박한 흔적이.
[갑자기 나타난 미인, 첫눈에 반했어.]
“이건…”
내가 적은 글이다. 그 옆엔 지유가 적은 글까지… 모두 시간의 경계를 넘어와 있었다. 전하고자 하는 의지만 담겨있다면 글 같은 형태로는 시간을 넘을 수 있는 걸까? 알 수 없지만 하나 확실한 건 이걸 통해 대화할 수 있게 됐단 것이다.
나는 곧바로 벤치 밑 돌멩이를 주워 다시 글을 적기 시작했다. 뭉뜩한 모양 탓에 잘 적히지 않아 괜히 짜증이 났다.
[놀랐지, 미안해... 난 지금 9월 1일이야. 달력 안으로 돌아왔어.]
기다려도 답장이 없자, 집으로 돌아가 씻고 점심을 먹은 후 다시 나와 확인했다. 점심시간이 지나니 나의 글 밑에 작게 글이 하나 더 적혀있었다.
[괜찮아, 그나저나 이게 진짜 가능하네!]
"...됐다. 이제 이렇게 대화 나누면 돼."
[계속 말을 주고 받긴 어려울 거야. 그래도 하루에 한번은 꼭 주고 받자.]
다시 기다려봤지만 바로 답장이 달리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답장이 온 걸 보면, 지유가 그때 왔거나 아니면 그때 내 글이 전달 됐거나 둘 중 하나겠지. 그러나 지유가 자리를 비웠을 확률은 적다. 8월 32일이란 매우 심심한 세계에서 찾은 재미를 놓칠리가 없지.
'아침에 적은 글은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전달되는 게 분명해... 글이 오가는 게 적어도 4시간은 걸리는 거야, 4시간 동안 계속 들릴 순 없어 일정이 있는 날도 있고 할머니가 걱정할 수도 있으니까... 하루에 한번이 최선일 수도 있겠네.'
그렇게 난 한달 꼬박 아침마다 나가서 공원 벤치에 글을 적었다.
[오늘은 또 병원에 가는 날이야, 나에게서 뭘 고치려는 걸까.]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김없이 그 밑엔 답장이 달려 있었다.
[네가 모르는 마음의 병이 있는 거 아닐까? 내가 있었더라면 널 꼬옥 안아줬을 거야.]
많은 대화를 주고받는 건 아니었지만, 하루에 한 번은 꼭 안부처럼 그렇게 서로의 흔적을 남겼다. 누군가와 나누는 짧은 문장들이 지유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작은 행복이 되곤 했다.
우리가 적은 글이 벤치 등받이를 채우면 우린 등받이 뒤에 적었다. 더 적을 자리가 있었지만, 더 많아진다면 다른 사람들이 읽을 수도 있으니까.
다음날도 평소처럼 벤치에 글을 남기고, 네 시간쯤 지나 다시 들렀다.
“어?”
답장이 없었다. 지유에게 어떤 일이라도 생긴 걸까. 나는 조심스레 한 문장을 더 남겼다.
[무슨 일 있어?]
그러나 답장은 적히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귀찮아진 건가?'
그런 의심이 고개를 들었지만, 그보다는 어딘가 불길한 예감이 자꾸만 맴돌았다.
지유와의 소통이 끊긴 지도 어느덧 4개월. 2023년 겨울의 끝자락, 2월이 되어서야 나는 뜻밖의 답장을 받았다.
“네 생각만 했어. 1년 내내.”
"...나도..."
지유가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응?"
“나도 보고 싶었다고...”
지유는 내가 되묻자 다시 대답하기 창피하단 듯 더 깊이 얼굴을 묻었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웃음이 터졌고, 그녀는 머뭇거리다 이내 고개를 들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우리 둘 사이의 긴장이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세림아, 나 신기한 일 있었다?”
지유는 자세를 고쳐 나와 마주 본 채 얘기했다. 그녀의 시선이 내 얼굴에 닿을 때마다 심장이 요동쳤다.
“내가 이곳에 온 후로 아무 기억도 없다고 했잖아.”
그녀는 내 속사정을 알 리 없다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응, 나이랑 이름 빼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며.”
그 무심한 말에 오히려 내가 민망해져,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을 이었다.
“맞아. 근데 너랑 헤어진 후로, 조금씩 생각이 나기 시작했어.”
“진짜?”
“응, 난 무학동에서 무학중학교를 다니고, 무학고로 입학할 예정이었어.”
“부모님은?”
“엄마 아빠는… 아직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워. 기억이 떠오른 뒤로 눈물만 나서.”
지유의 눈가가 작게 떨렸다.
“…미안해.”
“아니야! 내가 먼저 말했잖아.”
지유는 억지로라도 웃음을 띠며 고개를 흔들었다.
“여기서 나갈 방법만 찾는다면, 만나러 갈 수 있겠지.”
“나도 도와줄게. 어떻게든 네가 달력 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응, 꼭 기다려야 된다?”
그녀가 내 무릎 위에 살포시 손을 올리며 말했다.
“…당연하지.”
순간 얼굴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걸 들키지 않으려 손으로 입을 가린 채, 고개를 살짝 돌려 말했다.
지유의 입술이 아주 천천히 열렸다.
“...여기에 적은 첫인상은 다 진심이야?”
처음 고백을 받은 소녀처럼 수줍게 묻는 지유의 모습에,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내 고백을 받아들인다면, 물러설 곳이 없다는 듯 단호하게.
“응. 네가 너무 좋아.”
지유는 나의 어깨에 기댄 채 대답했다.
“나도… 넌 외로웠던 나에게, 나는 혼란스러웠던 너에게 다가온 우린 운명이야.”
그녀의 말에 한순간 숨이 멎었다.
“지유야…”
입안이 바짝 말라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나는 어설프게 웃으며, 그녀의 눈을 마주했다. 무슨 말을 꺼내야할까 고민하던 나는 이내 내 입술을 톡톡 치며 한번 더 닿아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싫거든!”
지유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가 붙잡기도 전에, 그녀는 허둥지둥 도망치듯 달려갔다.
“어디 가!”
나는 잠시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도망간다고 못 잡을 것 같아?”
몸이 저절로 앞으로 움직였고, 어느새 나는 지유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녀의 웃음소리가 다시 가까워졌다. 그 순간만큼은, 8월 32일은 우리에게 안식처가 되어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마치 숨을 내뱉듯 나를 밀어냈다.모든 빛이 꺼졌다. 차가운 공기가 볼을 스쳤다. 눈을 떴을 때, 지유의 손은 사라져 있었다.
2022년 9월 1일.
눈을 뜨자마자 나는 습관처럼 날짜를 확인했다. 9월 1일... 달력 안으로 돌아와 버렸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지유와 제대로 된 인사를 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나는 곧장 공원으로 달려 나갔다. 지난 1년 동안 간절히 바라 온 그녀와의 연결고리… 오늘은 그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공원에 도착한 나는 망설임 없이 곧장 그 벤치로 향했다.
'전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머릿속으로 주문을 외우듯 되뇌었다.
난 벤치 등받이에 조심스럽게 확인했다.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찰나, 거기엔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나와 그녀가 함께 남긴 투박한 흔적이.
[갑자기 나타난 미인, 첫눈에 반했어.]
“이건…”
내가 적은 글이다. 그 옆엔 지유가 적은 글까지… 모두 시간의 경계를 넘어와 있었다. 전하고자 하는 의지만 담겨있다면 글 같은 형태로는 시간을 넘을 수 있는 걸까? 알 수 없지만 하나 확실한 건 이걸 통해 대화할 수 있게 됐단 것이다.
나는 곧바로 벤치 밑 돌멩이를 주워 다시 글을 적기 시작했다. 뭉뜩한 모양 탓에 잘 적히지 않아 괜히 짜증이 났다.
[놀랐지, 미안해... 난 지금 9월 1일이야. 달력 안으로 돌아왔어.]
기다려도 답장이 없자, 집으로 돌아가 씻고 점심을 먹은 후 다시 나와 확인했다. 점심시간이 지나니 나의 글 밑에 작게 글이 하나 더 적혀있었다.
[괜찮아, 그나저나 이게 진짜 가능하네!]
"...됐다. 이제 이렇게 대화 나누면 돼."
[계속 말을 주고 받긴 어려울 거야. 그래도 하루에 한번은 꼭 주고 받자.]
다시 기다려봤지만 바로 답장이 달리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답장이 온 걸 보면, 지유가 그때 왔거나 아니면 그때 내 글이 전달 됐거나 둘 중 하나겠지. 그러나 지유가 자리를 비웠을 확률은 적다. 8월 32일이란 매우 심심한 세계에서 찾은 재미를 놓칠리가 없지.
'아침에 적은 글은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전달되는 게 분명해... 글이 오가는 게 적어도 4시간은 걸리는 거야, 4시간 동안 계속 들릴 순 없어 일정이 있는 날도 있고 할머니가 걱정할 수도 있으니까... 하루에 한번이 최선일 수도 있겠네.'
그렇게 난 한달 꼬박 아침마다 나가서 공원 벤치에 글을 적었다.
[오늘은 또 병원에 가는 날이야, 나에게서 뭘 고치려는 걸까.]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김없이 그 밑엔 답장이 달려 있었다.
[네가 모르는 마음의 병이 있는 거 아닐까? 내가 있었더라면 널 꼬옥 안아줬을 거야.]
많은 대화를 주고받는 건 아니었지만, 하루에 한 번은 꼭 안부처럼 그렇게 서로의 흔적을 남겼다. 누군가와 나누는 짧은 문장들이 지유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작은 행복이 되곤 했다.
우리가 적은 글이 벤치 등받이를 채우면 우린 등받이 뒤에 적었다. 더 적을 자리가 있었지만, 더 많아진다면 다른 사람들이 읽을 수도 있으니까.
다음날도 평소처럼 벤치에 글을 남기고, 네 시간쯤 지나 다시 들렀다.
“어?”
답장이 없었다. 지유에게 어떤 일이라도 생긴 걸까. 나는 조심스레 한 문장을 더 남겼다.
[무슨 일 있어?]
그러나 답장은 적히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귀찮아진 건가?'
그런 의심이 고개를 들었지만, 그보다는 어딘가 불길한 예감이 자꾸만 맴돌았다.
지유와의 소통이 끊긴 지도 어느덧 4개월. 2023년 겨울의 끝자락, 2월이 되어서야 나는 뜻밖의 답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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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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