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1일
[날 찾아.]
처음 그 문장을 봤을 땐,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남긴 이야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말이었는데. 오랜 시간 침묵한 이유는 커녕, 뜬금없이 자신을 찾으라니… 그게 대체 무슨 뜻이란 말인가.
지유는 분명, 지금의 나로선 만날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을 텐데. 혼란스러운 마음을 눌러가며 나는 답장을 적었다.
[8월 32일이 돼야 만날 수 있는 걸...]
그렇게 남기고 돌아섰지만, 마음은 계속 벤치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네 시간이 지나, 나는 다시 돌아갔다. 그곳엔, 또 다른 글이 남겨져 있었다.
[아니, 달력 안에서의 나 말이야.]
달력 안? 이곳에서 널 찾으라고?
나는 벤치 앞에 조용히 서서, 지유가 남긴 짧은 문장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읽었다.
“달력 안에서의 나...?”
갑작스레 끊겼던 4개월의 공백.
그 시간 동안 지유는 혹시,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간 안으로 들어오려고 애쓰고 있었던 걸까. 그저 잠수가 아닌, 어떻게든 여기로 오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생각이란 건 알지만, 그 말 한마디가 자꾸 그런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그 밑으로 지금 이 곳에 있냐는 글을 적어뒀지만 또 다시 답장은 달리지 않았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 봄이 왔다.
2023년 3월 1일
나는 지유의 행방을 찾아보려 애썼다. 이 근방을 다 돌았지만 벤치를 제외하면 그녀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자신을 찾아보라는 말이 단순히 숨바꼭질처럼 여기면 안될 것 같단 걸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둘러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지금부턴 사람들에게 그녀를 아는지 수소문해볼 차례이다.
'설명으로는 부족해, 사진이 필요한데 어떡하지... 그림이라도 그려볼까'
방 안 책상에 앉아 연필을 들고 그림을 그려봤지만... 내가 미술엔 재능이 없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은 나는 공책을 치우고 노트북을 켰다.
'요즘 AI가 대단하다던데... 한번 부탁해봐?'
나는 실종된 사람의 몽타주를 그리는 형사처럼, 조심스레 손을 움직였다.
[ZQT , 한 소녀의 얼굴을 그려줘. 허리까지 오는 검은 머리칼과, 새하얀 피부를 가진 열아홉살의 소녀야.]
그렇게 입력을 마치자, 곧 ZQT가 답했다.
[확실한 인상착의나 사진이 없어도, 말씀해주신 정보만으로 그려볼게요. 혹시 그녀의 표정이나 분위기, 자주 입던 옷 같은 것도 기억나면 알려줄래요? 최대한 그 아이를 닮은 모습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줄게요.]
[차가운 얼굴인데, 이상하게 따스함도 느껴져. 그 두 가지가 동시에 있는 얼굴이야.]
나는 손끝으로 자판을 더듬듯 눌렀다. 모호하고 구체적인 기억을 최대한 꺼내어 적었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 화면에 ZQT의 답변이 떠올랐다.
[알겠습니다. 말해준 인상을 바탕으로 최대한 그 소녀의 분위기를 담아볼게요. 따뜻하지만 차가운, 웃고 있지만 어딘가 슬퍼 보이는 그런 얼굴. 곧 완성해서 보여줄게요.”
로딩 표시가 몇 번이고 깜빡이는 동안, 나는 화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내, 천천히 한 장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검은 머리칼 덕분인지 뺨이 눈부실 정도로 하얀 빛이 감돌았다. 입꼬리는 분명히 올라가 있었지만, 웃고 있다고 단정짓기엔 어딘가 흐릿했다. 나는 그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거면 충분하겠어.’
이미지를 출력하고, 그대로 밖으로 나섰다. 나는 가장 먼저 편의점으로 향했다. 달력 밖에서 지유가 자주 찾던 그곳. 어쩌면 달력 안에서도 이 편의점을 들렀을지도 모른다.
“어서 오세요.”
나는 조심스레 카운터로 다가가 안경을 쓴 직원에게 출력한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혹시… 이 여자애를 보신 적 있으세요?”
직원은 고개를 살짝 갸웃하더니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음… 글쎄요.”
“아, 네... 감사합니다.”
나의 표정에선 어색함을 감출 수 없었다. 내가 무슨 이상한 장난이라도 치는 사람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나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편의점을 빠져나왔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동네 공원. 지유와 내가 글을 주고받던 벤치 근처에서 순찰하던 두 분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노란 조끼를 입은 어르신들이었고, 오랫동안 이 일대를 지켜본 분들 같았다.
“저기 실례지만요. 혹시 이렇게 생긴 여자애를 본 적 있으신가요? 이 공원에 자주 오는 애인데...”
사진을 내밀자 두 분은 동시에 고개를 숙이고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아이고, 예쁘게도 생겼네요. 이렇게 생긴 사람은 못 봤는데?”
한 분이 이마를 긁으며 말했다.
“우리가 봤다면 기억 못할리가 없지, 이렇게 예쁜데 말이야.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괜히 번거롭게 해드렸네요.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아니에요, 별말씀을. 찾으시는 분이 꼭 나타나길 바랄게요.”
정중히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면서, 종이에 인쇄된 지유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달력 안의 본인을 찾으라고 했음에도, 그녀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찾아주길 바랐다면 흔적은 남겨야 했던 것 아닐까? 이렇게 어려운 숨바꼭질이 될 줄은 몰랐는데… 제대로 된 사진이 아니라서 그런걸까? 이대로 기다렸다가 8월 32일이 되면, 직접 얼굴을 보고 묻는 게 빠르지 않을까?
하지만 지유는 분명히 말했다.
‘달력 안의 나를 찾아.’
그 말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말해봤자 모를 게 뻔하지만... 내일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께 한번 여쭤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할머니와 함께 병원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