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조회 : 21 추천 : 0 글자수 : 4,037 자 2026-02-14
2화
다음 날 새벽, 시우는 물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논길을 지나 읍내 장터로 향했다. 짚신 사이로 스며드는 축축한 흙의 감촉과 코끝을 찌르는 거름 냄새가 비로소 그가 조선에 와 있음을 실감케 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이 구질구질한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차가운 숫자로 가득한 **‘데이터 시트’**가 정교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읍내 장터는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좁고 구불구불한 길목마다 봇짐장수들이 내지르는 고함이 섞였고, 바닥은 사람과 짐승의 발길에 이겨진 진흙탕으로 질척였다. 비릿한 생선 냄새와 눅눅한 삼베 냄새, 그리고 누군가 태우는 마른 볏짚 탄내가 뒤섞여 공중에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시우는 이 무질서한 소음 속에서 **‘유의미한 정보’**만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정보의 비대칭이 극에 달해 있군.’
어느 가판대에서는 말라비틀어진 나물이 평소보다 두 배 값에 팔리고 있었고, 저쪽에서는 상태가 좋은 보리가 헐값에 넘겨지고 있었다. 물류의 흐름이 막히고 시장의 기준점이 사라진, 전형적인 **‘정보 공백 상태’**였다. 시우는 무작정 발을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장터 귀퉁이, 국밥집에서 흘러나오는 장꾼들의 대화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글쎄, 한양 쪽 김 대감댁에서 칠순 잔치를 연다고 서해안 굴비를 몽땅 사들였다지 뭔가? 덕분에 이 근방 조기는 구경도 못 하게 생겼어.”
“말도 마게. 설상가상으로 강화도 소금 배가 풍랑에 뒤집혔다네. 조기가 있어도 절일 소금이 없으니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지.”
시우의 눈이 번뜩였다. ‘조기 부족’과 ‘소금 공급망 단절’.
현대 경영학 관점에서 보자면 이것은 단순한 악재가 아니라, 거대한 **‘매점매석’**이나 **‘독점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는 완벽한 기회였다. 하지만 그의 수중엔 엽전 네 닢뿐. 소금 한 바가지도 사기 힘든 푼돈이었다.
‘자본이 부족할 땐 아이디어를 담보로 잡아야지.’
시우의 시선이 장터에서 가장 거대한 기와지붕을 가진 ‘금성상단’의 포목 창고로 향했다. 낡은 회색 벽면 위로 이끼가 낀 창고는 겉보기엔 화려했으나, 담벼락 곳곳에 습기가 차올라 있었다.
‘저 정도 습기라면... 안쪽 재고 관리가 엉망이겠군.’
시우는 거침없이 상단의 육중한 대문을 밀치고 들어갔다.
“이봐요, 젊은이! 어딜 함부로 발을 들여?”
기름기 흐르는 비단옷을 입은 점원이 눈을 치켜떴다. 시우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점원의 옷소매를 가리켰다.
“상단 창고 안쪽에서 쉰내가 진동을 하는군요. 장마철 습기에 면포들이 좀 먹기 시작했죠? 대행수님께 전하십시오. 오늘 안에 그 쓰레기들을 금(金)으로 바꿔줄 사람이 왔다고.”
점원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상단의 치명적인 약점을 단숨에 꿰뚫어 본 이 농민의 눈빛은, 이미 흙먼지 묻은 청년의 것이 아니었다.
*
금성상단의 대행수 최 씨는 시우를 좁은 방으로 불러들였다. 방 안에는 습기로 눅눅해진 종이 냄새가 가득했다. 최 씨는 초조한 듯 곰방대를 까딱거리며 시우를 노려보았다.
“재고 면포를 금으로 바꾸겠다고?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아느냐? 이미 좀이 슬고 냄새가 배어 도성 상인들도 고개를 젓는 물건이다.”
시우는 방 한구석에 쌓인 면포 뭉치를 손으로 쓸어보았다. 전생에 익혔던 ‘상품 기획’ 능력이 차갑게 가동되었다.
“대행수님, 사람들은 물건의 ‘질’을 보고 사는 게 아닙니다. 그 물건이 나에게 ‘필요한 이유’를 보고 사지요. 지금 읍내 사람들에게 가장 큰 공포가 무엇입니까?”
“그야... 소금이 없어서 금값인 조기를 다 썩히게 생긴 것이지.”
시우가 비릿하게 웃으며 면포를 높이 들어 올렸다.
“바로 그겁니다. 이 면포들은 좀이 슬어 옷감으로는 가치가 없지만, 조직이 헐거워져 물기가 잘 빠지고 통기성이 극대화되어 있죠. 이걸 작게 잘라 ‘소금 절임용 특수 망사’로 둔갑시키는 겁니다.”
“특수... 뭐?”
“소금을 아끼려면 조기를 공중에 매달아 말려야 하는데, 그냥 두면 파리가 꼬이고 썩습니다. 하지만 이 면포로 조기를 감싸면 소금 사용량을 절반으로 줄이면서도 바람이 잘 통해 최상급 굴비를 만들 수 있다고 선전하는 겁니다. 이름하여 **‘금성상단 특제 굴비 보호망’**입니다.”
최 씨의 눈이 커졌다. 시우는 멈추지 않고 **‘한정판 마케팅’**의 정수를 쏟아냈다.
“지금 당장 장터에 방을 붙이십시오. 강화도 소금 배가 침몰하여 조기를 살릴 방법은 오직 이 보호망뿐이라고요. 딱 오늘만 상단의 명예를 걸고 재고를 푼다고 소문을 내는 겁니다.”
한 시진 뒤, 금성상단 앞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거 하나면 소금을 아낄 수 있다면서요!”
“나도 주시오! 조기 백 마리가 마당에서 썩어가고 있단 말이오!”
사람들은 평소라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좀 먹은 면포 조각을 서로 사겠다며 엽전을 던졌다. 시우는 그 아수라장 속에서 팔짱을 낀 채 차분히 수익률을 계산했다. 재고 처리 비용은 제로, 수익은 원가의 다섯 배 상회. 완벽한 **‘재고 자산의 현금화’**였다.
해가 저물 무렵, 텅 빈 창고 안에서 대행수 최 씨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의 앞에는 엽전이 가득 담긴 궤짝이 놓여 있었다.
“자네... 도대체 정체가 뭔가? 일개 농민의 머리에서 나올 계책이 아니지 않은가.”
시우는 대행수가 건네는 두둑한 보너스 주머니를 챙기며 가볍게 대답했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때맞춰 내리는 단비라고요.”
시우는 상단을 나서며 붉게 물든 노을을 바라보았다.
*
창고 밖은 여전히 면포를 구하려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했지만, 대행수의 집무실 안은 무거울 정도로 정적이 감돌았다. 최 씨는 탁자 위에 쌓인 엽전 더미와 시우를 번갈아 보며 곰방대를 거칠게 빨았다.
“그래, 단비라... 이름 한 번 잘 지었군. 한데 한 시우, 자네. 이 많은 돈을 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구먼? 보통 농민 놈들이라면 이 돈더미에 머리를 박고 절부터 했을 텐데.”
시우는 대행수가 내준 식은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담담하게 대꾸했다.
“절은 돈이 아니라 기회에 하는 법이지요. 대행수님, 설마 이 푼돈에 만족해서 저를 부르신 건 아니잖습니까?”
“푼돈? 이놈 보게. 이게 자네 평생 일해도 못 만질 거금이야!”
최 씨가 짐짓 호통을 쳤지만, 시우는 눈길조차 피하지 않고 말을 받았다.
“이 돈은 금성상단의 ‘급한 불’을 끈 것에 불과합니다. 진짜 문제는 내일이지요. 소금 배는 여전히 오지 않고 있고, 읍내 사람들은 내일이면 이 보호망이 사실 좀 먹은 면포라는 걸 눈치챌 겁니다. 그때가 되면 상단의 신용(Credit)은 바닥을 치겠지요.”
최 씨의 곰방대가 허공에서 멈췄다. 정확한 지적이었다. **‘단기적 이익’**에 눈이 멀어 **‘브랜드 가치’**를 훼손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상황.
“...그럼 어쩌라는 건가? 이미 엎질러진 물 아닌가.”
“엎질러진 물은 닦는 게 아니라, 더 큰 물길을 내서 덮어야죠. 대행수님, 상단이 보유한 선박 중 가장 빠른 배가 몇 척이나 됩니까?”
“갑자기 배는 왜 묻나? 세 척 정도 있네만.”
시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지도 위 강화도 반대편, 남해 쪽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강화도 소금이 안 오면, 낙동강 하구의 자염(煮鹽)을 끌어와야 합니다. 지금 당장 배를 띄우십시오. 남들이 서해안만 바라보며 발을 구를 때, 우리는 남해의 소금을 선점하는 겁니다. 상단의 재고 면포로 번 이 돈을 전부 ‘선도 거래’에 투자하십시오.”
“선도 거래? 그게 무슨 해괴한 소린가?”
“물건이 도착하기 전에 미리 값을 치르고 독점권을 사는 겁니다. 소금이 도착하는 순간, 금성상단은 이 근방 모든 어촌의 생사여탈권을 쥐게 될 겁니다. 그때가 되면 ‘좀 먹은 면포’ 따위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겠죠. 오히려 ‘위기 속에 소금을 구해온 구세주’로 칭송받을 겁니다.”
최 씨는 멍하니 시우를 바라보았다. 이놈은 농민의 탈을 쓴 능구렁이인가, 아니면 하늘이 내린 괴물인가.
“...자네, 대체 원하는 게 뭔가? 이 큰 판을 나에게 그냥 넘겨줄 리는 없고.”
시우가 문을 열고 나가며 어깨너머로 짧게 던졌다.
“제 몫의 수수료는 소금이 도착하면 ‘현물’로 받겠습니다. 그리고 다음엔... 읍내 장터 말고, 감영(監營)의 물자를 건드려 볼 생각인데, 관심 있으십니까?”
"그리고 다음엔... 읍내 장터 말고, 감영(監營)의 물자를 건드려 볼 생각인데, 관심 있으십니까?”
최 씨는 대답 대신 헛웃음을 터뜨렸다.
다음 날 새벽, 시우는 물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논길을 지나 읍내 장터로 향했다. 짚신 사이로 스며드는 축축한 흙의 감촉과 코끝을 찌르는 거름 냄새가 비로소 그가 조선에 와 있음을 실감케 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이 구질구질한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차가운 숫자로 가득한 **‘데이터 시트’**가 정교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읍내 장터는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좁고 구불구불한 길목마다 봇짐장수들이 내지르는 고함이 섞였고, 바닥은 사람과 짐승의 발길에 이겨진 진흙탕으로 질척였다. 비릿한 생선 냄새와 눅눅한 삼베 냄새, 그리고 누군가 태우는 마른 볏짚 탄내가 뒤섞여 공중에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시우는 이 무질서한 소음 속에서 **‘유의미한 정보’**만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정보의 비대칭이 극에 달해 있군.’
어느 가판대에서는 말라비틀어진 나물이 평소보다 두 배 값에 팔리고 있었고, 저쪽에서는 상태가 좋은 보리가 헐값에 넘겨지고 있었다. 물류의 흐름이 막히고 시장의 기준점이 사라진, 전형적인 **‘정보 공백 상태’**였다. 시우는 무작정 발을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장터 귀퉁이, 국밥집에서 흘러나오는 장꾼들의 대화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글쎄, 한양 쪽 김 대감댁에서 칠순 잔치를 연다고 서해안 굴비를 몽땅 사들였다지 뭔가? 덕분에 이 근방 조기는 구경도 못 하게 생겼어.”
“말도 마게. 설상가상으로 강화도 소금 배가 풍랑에 뒤집혔다네. 조기가 있어도 절일 소금이 없으니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지.”
시우의 눈이 번뜩였다. ‘조기 부족’과 ‘소금 공급망 단절’.
현대 경영학 관점에서 보자면 이것은 단순한 악재가 아니라, 거대한 **‘매점매석’**이나 **‘독점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는 완벽한 기회였다. 하지만 그의 수중엔 엽전 네 닢뿐. 소금 한 바가지도 사기 힘든 푼돈이었다.
‘자본이 부족할 땐 아이디어를 담보로 잡아야지.’
시우의 시선이 장터에서 가장 거대한 기와지붕을 가진 ‘금성상단’의 포목 창고로 향했다. 낡은 회색 벽면 위로 이끼가 낀 창고는 겉보기엔 화려했으나, 담벼락 곳곳에 습기가 차올라 있었다.
‘저 정도 습기라면... 안쪽 재고 관리가 엉망이겠군.’
시우는 거침없이 상단의 육중한 대문을 밀치고 들어갔다.
“이봐요, 젊은이! 어딜 함부로 발을 들여?”
기름기 흐르는 비단옷을 입은 점원이 눈을 치켜떴다. 시우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점원의 옷소매를 가리켰다.
“상단 창고 안쪽에서 쉰내가 진동을 하는군요. 장마철 습기에 면포들이 좀 먹기 시작했죠? 대행수님께 전하십시오. 오늘 안에 그 쓰레기들을 금(金)으로 바꿔줄 사람이 왔다고.”
점원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상단의 치명적인 약점을 단숨에 꿰뚫어 본 이 농민의 눈빛은, 이미 흙먼지 묻은 청년의 것이 아니었다.
*
금성상단의 대행수 최 씨는 시우를 좁은 방으로 불러들였다. 방 안에는 습기로 눅눅해진 종이 냄새가 가득했다. 최 씨는 초조한 듯 곰방대를 까딱거리며 시우를 노려보았다.
“재고 면포를 금으로 바꾸겠다고?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아느냐? 이미 좀이 슬고 냄새가 배어 도성 상인들도 고개를 젓는 물건이다.”
시우는 방 한구석에 쌓인 면포 뭉치를 손으로 쓸어보았다. 전생에 익혔던 ‘상품 기획’ 능력이 차갑게 가동되었다.
“대행수님, 사람들은 물건의 ‘질’을 보고 사는 게 아닙니다. 그 물건이 나에게 ‘필요한 이유’를 보고 사지요. 지금 읍내 사람들에게 가장 큰 공포가 무엇입니까?”
“그야... 소금이 없어서 금값인 조기를 다 썩히게 생긴 것이지.”
시우가 비릿하게 웃으며 면포를 높이 들어 올렸다.
“바로 그겁니다. 이 면포들은 좀이 슬어 옷감으로는 가치가 없지만, 조직이 헐거워져 물기가 잘 빠지고 통기성이 극대화되어 있죠. 이걸 작게 잘라 ‘소금 절임용 특수 망사’로 둔갑시키는 겁니다.”
“특수... 뭐?”
“소금을 아끼려면 조기를 공중에 매달아 말려야 하는데, 그냥 두면 파리가 꼬이고 썩습니다. 하지만 이 면포로 조기를 감싸면 소금 사용량을 절반으로 줄이면서도 바람이 잘 통해 최상급 굴비를 만들 수 있다고 선전하는 겁니다. 이름하여 **‘금성상단 특제 굴비 보호망’**입니다.”
최 씨의 눈이 커졌다. 시우는 멈추지 않고 **‘한정판 마케팅’**의 정수를 쏟아냈다.
“지금 당장 장터에 방을 붙이십시오. 강화도 소금 배가 침몰하여 조기를 살릴 방법은 오직 이 보호망뿐이라고요. 딱 오늘만 상단의 명예를 걸고 재고를 푼다고 소문을 내는 겁니다.”
한 시진 뒤, 금성상단 앞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거 하나면 소금을 아낄 수 있다면서요!”
“나도 주시오! 조기 백 마리가 마당에서 썩어가고 있단 말이오!”
사람들은 평소라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좀 먹은 면포 조각을 서로 사겠다며 엽전을 던졌다. 시우는 그 아수라장 속에서 팔짱을 낀 채 차분히 수익률을 계산했다. 재고 처리 비용은 제로, 수익은 원가의 다섯 배 상회. 완벽한 **‘재고 자산의 현금화’**였다.
해가 저물 무렵, 텅 빈 창고 안에서 대행수 최 씨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의 앞에는 엽전이 가득 담긴 궤짝이 놓여 있었다.
“자네... 도대체 정체가 뭔가? 일개 농민의 머리에서 나올 계책이 아니지 않은가.”
시우는 대행수가 건네는 두둑한 보너스 주머니를 챙기며 가볍게 대답했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때맞춰 내리는 단비라고요.”
시우는 상단을 나서며 붉게 물든 노을을 바라보았다.
*
창고 밖은 여전히 면포를 구하려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했지만, 대행수의 집무실 안은 무거울 정도로 정적이 감돌았다. 최 씨는 탁자 위에 쌓인 엽전 더미와 시우를 번갈아 보며 곰방대를 거칠게 빨았다.
“그래, 단비라... 이름 한 번 잘 지었군. 한데 한 시우, 자네. 이 많은 돈을 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구먼? 보통 농민 놈들이라면 이 돈더미에 머리를 박고 절부터 했을 텐데.”
시우는 대행수가 내준 식은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담담하게 대꾸했다.
“절은 돈이 아니라 기회에 하는 법이지요. 대행수님, 설마 이 푼돈에 만족해서 저를 부르신 건 아니잖습니까?”
“푼돈? 이놈 보게. 이게 자네 평생 일해도 못 만질 거금이야!”
최 씨가 짐짓 호통을 쳤지만, 시우는 눈길조차 피하지 않고 말을 받았다.
“이 돈은 금성상단의 ‘급한 불’을 끈 것에 불과합니다. 진짜 문제는 내일이지요. 소금 배는 여전히 오지 않고 있고, 읍내 사람들은 내일이면 이 보호망이 사실 좀 먹은 면포라는 걸 눈치챌 겁니다. 그때가 되면 상단의 신용(Credit)은 바닥을 치겠지요.”
최 씨의 곰방대가 허공에서 멈췄다. 정확한 지적이었다. **‘단기적 이익’**에 눈이 멀어 **‘브랜드 가치’**를 훼손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상황.
“...그럼 어쩌라는 건가? 이미 엎질러진 물 아닌가.”
“엎질러진 물은 닦는 게 아니라, 더 큰 물길을 내서 덮어야죠. 대행수님, 상단이 보유한 선박 중 가장 빠른 배가 몇 척이나 됩니까?”
“갑자기 배는 왜 묻나? 세 척 정도 있네만.”
시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지도 위 강화도 반대편, 남해 쪽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강화도 소금이 안 오면, 낙동강 하구의 자염(煮鹽)을 끌어와야 합니다. 지금 당장 배를 띄우십시오. 남들이 서해안만 바라보며 발을 구를 때, 우리는 남해의 소금을 선점하는 겁니다. 상단의 재고 면포로 번 이 돈을 전부 ‘선도 거래’에 투자하십시오.”
“선도 거래? 그게 무슨 해괴한 소린가?”
“물건이 도착하기 전에 미리 값을 치르고 독점권을 사는 겁니다. 소금이 도착하는 순간, 금성상단은 이 근방 모든 어촌의 생사여탈권을 쥐게 될 겁니다. 그때가 되면 ‘좀 먹은 면포’ 따위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겠죠. 오히려 ‘위기 속에 소금을 구해온 구세주’로 칭송받을 겁니다.”
최 씨는 멍하니 시우를 바라보았다. 이놈은 농민의 탈을 쓴 능구렁이인가, 아니면 하늘이 내린 괴물인가.
“...자네, 대체 원하는 게 뭔가? 이 큰 판을 나에게 그냥 넘겨줄 리는 없고.”
시우가 문을 열고 나가며 어깨너머로 짧게 던졌다.
“제 몫의 수수료는 소금이 도착하면 ‘현물’로 받겠습니다. 그리고 다음엔... 읍내 장터 말고, 감영(監營)의 물자를 건드려 볼 생각인데, 관심 있으십니까?”
"그리고 다음엔... 읍내 장터 말고, 감영(監營)의 물자를 건드려 볼 생각인데, 관심 있으십니까?”
최 씨는 대답 대신 헛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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