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조회 : 45 추천 : 0 글자수 : 5,076 자 2026-02-14
2화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미끄러지듯 춤추기 시작했다.
타닥, 타타닥—!
10분이 넘게 걸리던 '똥컴'의 본체 비명 소리도, 내 손가락이 만들어내는 경쾌한 타건음을 따라오지 못했다. 모니터의 잔상이 내 눈을 어지럽혔지만 멈출 수 없었다.
신규 베스트 5위.
그 성적표는 치명적인 독이었고, 동시에 끊을 수 없는 마약이었다.
나는 화장실조차 잊은 채 모니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F5(새로고침)를 누를 때마다 조회수는 백 단위로 출렁이며 그래프를 수직으로 세웠다.
9살 소년의 집중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집착이자 광기였다. 사실, 전생의 기억 따윈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내 안의 본능이, 뼛속까지 박힌 자본주의의 감각이 뇌동맥을 울리며 외치고 있을 뿐이다.
—이건, 무조건 된다.
나는 아껴두었던 비축분을 시장에 풀기 시작했다. 독자들의 목마름이 극에 달했을 때 던지는 한 줄기 생수 같은 에피소드들이었다.
[4화: 문방구 앞 가챠 머신의 지배자]
[5화: 붕어빵 아저씨의 영업 비밀을 권리금 없이 사다]
[6화: 초딩식 레버리지, 친구들의 노동력을 쇼핑하다]
에피소드가 하나씩 업데이트될 때마다 댓글창은 그야말로 폭격 맞은 전쟁터가 됐다.
[베스트 댓글]
ㅇㅇ(221.14): 작가님, 혹시 전직 펀드매니저임? 8살 주인공이 가챠 확률 계산해서 싹쓸이하고 프리미엄 붙여 파는 거 보고 소름 돋음. 이게 진짜 '창조 경제'지 ㅋㅋㅋ
초코우유: 주인공 인성 실화냐? 친구들한테 떡볶이 먹이면서 전단지 돌리게 하는 거 보소. 완전 블랙 기업 사장 꿈나무네. 근데 왜 설득력이 있지?
웹소고수: 필력 미쳤다. 문장은 간결한데 뇌에 꽂힘. '유짱'님, 이거 100% 기성 작가 부계정이다. 내 손목 건다.
기성 작가? 펀드매니저?
나는 그저 학교 앞 떡볶이보다 엄마가 해준 김치볶음밥을 더 좋아하는 9살 꼬맹이일 뿐이다. 물론, 내 머릿속엔 '애덤 스미스'도 울고 갈 자본주의의 정수가 가득 차 있었지만.
7화가 올라갔을 때, 내 소설은 마침내 신규 베스트 1위를 탈환했다. 그리고 감히 신입은 명함도 못 내민다는 '투데이 베스트' 순위권에 고개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시우야, 아직도 컴퓨터 해? 너 그러다 눈 나빠져!”
“거의 다 했어요, 엄마! 이것만 저장하고요!”
엄마의 목소리에 나는 본능적으로 쪽지함을 열었다. 문피아에서 쪽지가 온다는 건, 시장이 나라는 가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는 신호탄이다.
[받은 쪽지함 (1)]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나올 것처럼 요동쳤다. 클릭하는 손가락 끝이 파르르 떨렸다.
[제목: 안녕하세요, ‘유짱’ 작가님. 문피아 매니지먼트입니다.]
내용은 정중하면서도 날카로웠다. 소재의 참신함, 폭발적인 초반 지표, 그리고 무엇보다 '돈 냄새'를 맡은 하이에나의 직감이 담겨 있었다. 그들은 유료화 가능성을 논의하고 싶어 했다.
'첫 컨택이다.'
하지만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냉정하게 심호흡했다. 이제 고작 7화다. 지금 오는 연락은 일종의 '입도선매'일 뿐. 내 글의 가치는 아직 저평가되어 있다.
나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대신 8화와 9화를 연달아 투척했다.
남들 연재 주기 맞추느라 피똥 쌀 때, 30화 분량의 비축분을 가진 나는 독자들의 도파민이 마르기 전에 다음 화를 꽂아 넣는 '융단 폭격'이 가능했다.
8화에서 주인공은 모은 돈으로 재개발 지역의 낡은 상가를 단기 임대해 팝업 스토어를 열었다. 부모님 명의를 빌리기 위해 펼친 눈물겨운 '재롱 잔치' 묘사에 독자들은 자지러졌다.
9화가 올라가자, 내 이름은 투데이 베스트 10위권이라는 '괴물들의 수용소'에 박제되었다.
[유짱! 유짱! 유짱! 믿고 있었다고!]
이 소설 안 본 뇌 삽니다. 제발 다음 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이거 무조건 웹툰 간다. 나중에 성지순례 오실 분들 미리 줄 서세요.
댓글은 초 단위로 갱신됐고, 쪽지함은 비명을 질렀다.
[받은 쪽지함 (12)]
내로라하는 매니지먼트사들이 보낸 러브콜.
[A사: 업계 최고 대우 보장], [B사: 유료화 시 프로모션 올인].
심지어는 당장 전화를 달라는 곳도 있었다.
전화? 안 되지. 전화를 받는 순간 9살짜리 잼민이 목소리가 들통날 텐데. 나는 철저히 신비주의라는 베일 뒤로 숨어야 했다.
그리고 운명의 10화.
주인공이 마침내 첫 번째 '억' 단위 수익을 찍으며 동네 초딩들의 신(?)으로 등극하는 장면을 올렸다.
업로드 버튼을 누르는 순간, 서버가 비틀거렸다. 전체 베스트 3위.
그때, 쪽지함에 격이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 업계의 거룡, '골드 드래곤 미디어'의 이사였다.
[제목: 작가님, 계약 조건은 부르는 대로 맞추겠습니다. 내일 사무실에서 뵙고 싶습니다.]
'부르는 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보다 달콤한 문장이 또 있을까.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보았다. 무릎 나온 내복 차림에 까치집이 된 머리. 영락없는 9살 유시우다.
"이거... 진짜 사고 쳤네."
하지만 입가에는 가느다란 미소가 걸렸다. 돈 냄새를 맡고 찾아온 기회를 발로 차는 작가는 삼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답장을 써 내려갔다.
[유짱: 내일은 학원 시간이 있어서 곤란합니다. 오후 4시 이후, 장소는 제가 정하겠습니다.]
최대한 무게를 잡았다. 사실 학원 따위 다니지도 않지만, 이건 비즈니스 파트너로서의 기싸움이자 초딩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창밖은 영하의 추위가 몰아치고 있었지만, 내 방 안의 열기는 이미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었다.
대한민국 웹소설 판을 뒤흔들 준비는, 이제 끝났다.
**
약속 장소는 학교 정문에서 세 블록 떨어진 프랜차이즈 카페였다.
오후 4시. 학원 가방을 멘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간이다. 나는 거울을 보며 단정하게 옷을 매만졌다.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 대신, 그나마 가장 '어른스러워' 보이는 셔츠에 단정한 면바지를 입었다. 물론, 가방 안에는 수학 익힘책 대신 노트북이 들어 있었다.
카페 문을 열자마자 진한 원두 향과 함께 압도적인 아우라를 풍기는 남자가 보였다.
맞춤 정장에 날카로운 안경테. 딱 봐도 '나 일 잘해요'라고 써 붙인 듯한 중년 남성이 초조하게 시계를 확인하고 있었다. 골드 드래곤 미디어의 박진철 이사였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당당하게 그의 앞자리에 앉았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학원 수업이 좀 늦게 끝나서요."
박 이사의 고개가 천천히 들렸다. 내 얼굴을 확인한 그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격하게 흔들렸다. 그가 들고 있던 태블릿 PC가 테이블 위로 툭 떨어졌다.
"...유짱 작가님?"
"네, 유시우입니다."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주변을 둘러보며 '진짜 작가'를 찾는 눈치였지만, 내 앞에는 이미 내 소설의 관리자 페이지가 띄워진 노트북이 놓여 있었다.
"이게... 그러니까... 농담이죠?"
"비즈니스 미팅에서 농담은 사절입니다, 이사님. 제 글의 지표가 가짜가 아니듯, 제 모습도 가짜가 아닙니다."
내 말투에서 9살의 천진함은 증발해 있었다. 박 이사는 마른침을 삼키며 안경을 고쳐 썼다. 그는 베테랑답게 빠르게 상황을 수용하려 노력하는 듯했다.
"놀랍군요. 천재라는 소리는 들어봤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혹시... 부모님이 대필해주시는 건가요?"
"이 수치들을 보고도 그런 질문을 하시다니 실망이네요. 8화의 리드 타임과 9화의 유입 전환율 분석, 부모님이 하실 수 있는 수준이라고 보십니까?"
나는 노트북을 돌려 그에게 구글 애널리틱스 화면을 보여주었다. 단순한 조회수가 아니었다. 독자들의 체류 시간, 유료 결제 예상 지수, 연령대별 선호도 분석표였다.
박 이사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건 단순한 작가의 영역이 아니었다. 완벽한 '기획자'의 데이터였다.
"좋습니다. 유 작가님... 아니, 유시우 님. 사설은 치우고 본론으로 들어가죠."
그는 품 안에서 서류 한 뭉치를 꺼냈다. 골드 드래곤 미디어의 직인이 찍힌 계약서였다.
"업계 최고 대우입니다. 계약금 5천, 수익 배분은 8대 2. 그리고 유료화 즉시 전 플랫폼 메인 배너 프로모션을 약속드립니다."
5천만 원. 9살에게는 평생 구경도 못 할 큰돈이겠지만, 내 입가에는 냉소적인 미소가 걸렸다.
"이사님, 제가 6화에서 쓴 '레버리지' 전략 기억하시나요?"
"네? 아, 네. 기억합니다."
"지금 이 계약서는 이사님이 저를 '레버리지' 하려는 제안이네요. 골드 드래곤의 이름값으로 제 가치를 묶어두려는 거 아닙니까?"
나는 계약서를 밀어냈다.
"수익 배분은 9대 1로 가죠. 계약금은 필요 없습니다. 대신, 유료화 이후 발생하는 모든 2차 저작권(웹툰, 드라마, 영화)에 대한 우선 협상권은 드리되, 결정권은 제가 가집니다."
박 이사의 안경 너머로 불꽃이 튀었다. 이건 초등학생과 성인의 대화가 아니었다. 시장을 지배하려는 포식자들끼리의 날 선 공방이었다.
"9대 1은 전례가 없는 수치입니다. 회사도 수익이 남아야..."
"전례는 제가 만들면 됩니다. 이미 제 지표는 전례 없는 기록을 쓰고 있으니까요."
나는 가방에서 초코우유 하나를 꺼내 빨대를 꽂았다. 그리고 여유롭게 한 모금 마신 뒤 덧붙였다.
"제 비축분 30화 안에는 내일 당장 유료화해도 1위를 찍을 에피소드들이 들어있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기 전에 확답 주시죠. 오후 5시부턴 제 수학 학습지 선생님이 오시거든요."
박 이사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품에서 만년필을 꺼내 계약서의 숫자를 수정했다.
"졌습니다. 작가님... 아니, 유 사장님."
사인을 마친 계약서를 가방에 넣고 카페를 나섰다. 등 뒤로 박 이사의 멍한 시선이 느껴졌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문구점 앞에는 아이들이 가챠 머신에 코인을 넣으며 환호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를 지나치며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제 시작이지."
오늘 내가 사인한 종이 한 장이, 앞으로 대한민국 콘텐츠 시장을 어떻게 집어삼킬지 아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미끄러지듯 춤추기 시작했다.
타닥, 타타닥—!
10분이 넘게 걸리던 '똥컴'의 본체 비명 소리도, 내 손가락이 만들어내는 경쾌한 타건음을 따라오지 못했다. 모니터의 잔상이 내 눈을 어지럽혔지만 멈출 수 없었다.
신규 베스트 5위.
그 성적표는 치명적인 독이었고, 동시에 끊을 수 없는 마약이었다.
나는 화장실조차 잊은 채 모니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F5(새로고침)를 누를 때마다 조회수는 백 단위로 출렁이며 그래프를 수직으로 세웠다.
9살 소년의 집중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집착이자 광기였다. 사실, 전생의 기억 따윈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내 안의 본능이, 뼛속까지 박힌 자본주의의 감각이 뇌동맥을 울리며 외치고 있을 뿐이다.
—이건, 무조건 된다.
나는 아껴두었던 비축분을 시장에 풀기 시작했다. 독자들의 목마름이 극에 달했을 때 던지는 한 줄기 생수 같은 에피소드들이었다.
[4화: 문방구 앞 가챠 머신의 지배자]
[5화: 붕어빵 아저씨의 영업 비밀을 권리금 없이 사다]
[6화: 초딩식 레버리지, 친구들의 노동력을 쇼핑하다]
에피소드가 하나씩 업데이트될 때마다 댓글창은 그야말로 폭격 맞은 전쟁터가 됐다.
[베스트 댓글]
ㅇㅇ(221.14): 작가님, 혹시 전직 펀드매니저임? 8살 주인공이 가챠 확률 계산해서 싹쓸이하고 프리미엄 붙여 파는 거 보고 소름 돋음. 이게 진짜 '창조 경제'지 ㅋㅋㅋ
초코우유: 주인공 인성 실화냐? 친구들한테 떡볶이 먹이면서 전단지 돌리게 하는 거 보소. 완전 블랙 기업 사장 꿈나무네. 근데 왜 설득력이 있지?
웹소고수: 필력 미쳤다. 문장은 간결한데 뇌에 꽂힘. '유짱'님, 이거 100% 기성 작가 부계정이다. 내 손목 건다.
기성 작가? 펀드매니저?
나는 그저 학교 앞 떡볶이보다 엄마가 해준 김치볶음밥을 더 좋아하는 9살 꼬맹이일 뿐이다. 물론, 내 머릿속엔 '애덤 스미스'도 울고 갈 자본주의의 정수가 가득 차 있었지만.
7화가 올라갔을 때, 내 소설은 마침내 신규 베스트 1위를 탈환했다. 그리고 감히 신입은 명함도 못 내민다는 '투데이 베스트' 순위권에 고개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시우야, 아직도 컴퓨터 해? 너 그러다 눈 나빠져!”
“거의 다 했어요, 엄마! 이것만 저장하고요!”
엄마의 목소리에 나는 본능적으로 쪽지함을 열었다. 문피아에서 쪽지가 온다는 건, 시장이 나라는 가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는 신호탄이다.
[받은 쪽지함 (1)]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나올 것처럼 요동쳤다. 클릭하는 손가락 끝이 파르르 떨렸다.
[제목: 안녕하세요, ‘유짱’ 작가님. 문피아 매니지먼트입니다.]
내용은 정중하면서도 날카로웠다. 소재의 참신함, 폭발적인 초반 지표, 그리고 무엇보다 '돈 냄새'를 맡은 하이에나의 직감이 담겨 있었다. 그들은 유료화 가능성을 논의하고 싶어 했다.
'첫 컨택이다.'
하지만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냉정하게 심호흡했다. 이제 고작 7화다. 지금 오는 연락은 일종의 '입도선매'일 뿐. 내 글의 가치는 아직 저평가되어 있다.
나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대신 8화와 9화를 연달아 투척했다.
남들 연재 주기 맞추느라 피똥 쌀 때, 30화 분량의 비축분을 가진 나는 독자들의 도파민이 마르기 전에 다음 화를 꽂아 넣는 '융단 폭격'이 가능했다.
8화에서 주인공은 모은 돈으로 재개발 지역의 낡은 상가를 단기 임대해 팝업 스토어를 열었다. 부모님 명의를 빌리기 위해 펼친 눈물겨운 '재롱 잔치' 묘사에 독자들은 자지러졌다.
9화가 올라가자, 내 이름은 투데이 베스트 10위권이라는 '괴물들의 수용소'에 박제되었다.
[유짱! 유짱! 유짱! 믿고 있었다고!]
이 소설 안 본 뇌 삽니다. 제발 다음 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이거 무조건 웹툰 간다. 나중에 성지순례 오실 분들 미리 줄 서세요.
댓글은 초 단위로 갱신됐고, 쪽지함은 비명을 질렀다.
[받은 쪽지함 (12)]
내로라하는 매니지먼트사들이 보낸 러브콜.
[A사: 업계 최고 대우 보장], [B사: 유료화 시 프로모션 올인].
심지어는 당장 전화를 달라는 곳도 있었다.
전화? 안 되지. 전화를 받는 순간 9살짜리 잼민이 목소리가 들통날 텐데. 나는 철저히 신비주의라는 베일 뒤로 숨어야 했다.
그리고 운명의 10화.
주인공이 마침내 첫 번째 '억' 단위 수익을 찍으며 동네 초딩들의 신(?)으로 등극하는 장면을 올렸다.
업로드 버튼을 누르는 순간, 서버가 비틀거렸다. 전체 베스트 3위.
그때, 쪽지함에 격이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 업계의 거룡, '골드 드래곤 미디어'의 이사였다.
[제목: 작가님, 계약 조건은 부르는 대로 맞추겠습니다. 내일 사무실에서 뵙고 싶습니다.]
'부르는 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보다 달콤한 문장이 또 있을까.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보았다. 무릎 나온 내복 차림에 까치집이 된 머리. 영락없는 9살 유시우다.
"이거... 진짜 사고 쳤네."
하지만 입가에는 가느다란 미소가 걸렸다. 돈 냄새를 맡고 찾아온 기회를 발로 차는 작가는 삼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답장을 써 내려갔다.
[유짱: 내일은 학원 시간이 있어서 곤란합니다. 오후 4시 이후, 장소는 제가 정하겠습니다.]
최대한 무게를 잡았다. 사실 학원 따위 다니지도 않지만, 이건 비즈니스 파트너로서의 기싸움이자 초딩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창밖은 영하의 추위가 몰아치고 있었지만, 내 방 안의 열기는 이미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었다.
대한민국 웹소설 판을 뒤흔들 준비는, 이제 끝났다.
**
약속 장소는 학교 정문에서 세 블록 떨어진 프랜차이즈 카페였다.
오후 4시. 학원 가방을 멘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간이다. 나는 거울을 보며 단정하게 옷을 매만졌다.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 대신, 그나마 가장 '어른스러워' 보이는 셔츠에 단정한 면바지를 입었다. 물론, 가방 안에는 수학 익힘책 대신 노트북이 들어 있었다.
카페 문을 열자마자 진한 원두 향과 함께 압도적인 아우라를 풍기는 남자가 보였다.
맞춤 정장에 날카로운 안경테. 딱 봐도 '나 일 잘해요'라고 써 붙인 듯한 중년 남성이 초조하게 시계를 확인하고 있었다. 골드 드래곤 미디어의 박진철 이사였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당당하게 그의 앞자리에 앉았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학원 수업이 좀 늦게 끝나서요."
박 이사의 고개가 천천히 들렸다. 내 얼굴을 확인한 그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격하게 흔들렸다. 그가 들고 있던 태블릿 PC가 테이블 위로 툭 떨어졌다.
"...유짱 작가님?"
"네, 유시우입니다."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주변을 둘러보며 '진짜 작가'를 찾는 눈치였지만, 내 앞에는 이미 내 소설의 관리자 페이지가 띄워진 노트북이 놓여 있었다.
"이게... 그러니까... 농담이죠?"
"비즈니스 미팅에서 농담은 사절입니다, 이사님. 제 글의 지표가 가짜가 아니듯, 제 모습도 가짜가 아닙니다."
내 말투에서 9살의 천진함은 증발해 있었다. 박 이사는 마른침을 삼키며 안경을 고쳐 썼다. 그는 베테랑답게 빠르게 상황을 수용하려 노력하는 듯했다.
"놀랍군요. 천재라는 소리는 들어봤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혹시... 부모님이 대필해주시는 건가요?"
"이 수치들을 보고도 그런 질문을 하시다니 실망이네요. 8화의 리드 타임과 9화의 유입 전환율 분석, 부모님이 하실 수 있는 수준이라고 보십니까?"
나는 노트북을 돌려 그에게 구글 애널리틱스 화면을 보여주었다. 단순한 조회수가 아니었다. 독자들의 체류 시간, 유료 결제 예상 지수, 연령대별 선호도 분석표였다.
박 이사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건 단순한 작가의 영역이 아니었다. 완벽한 '기획자'의 데이터였다.
"좋습니다. 유 작가님... 아니, 유시우 님. 사설은 치우고 본론으로 들어가죠."
그는 품 안에서 서류 한 뭉치를 꺼냈다. 골드 드래곤 미디어의 직인이 찍힌 계약서였다.
"업계 최고 대우입니다. 계약금 5천, 수익 배분은 8대 2. 그리고 유료화 즉시 전 플랫폼 메인 배너 프로모션을 약속드립니다."
5천만 원. 9살에게는 평생 구경도 못 할 큰돈이겠지만, 내 입가에는 냉소적인 미소가 걸렸다.
"이사님, 제가 6화에서 쓴 '레버리지' 전략 기억하시나요?"
"네? 아, 네. 기억합니다."
"지금 이 계약서는 이사님이 저를 '레버리지' 하려는 제안이네요. 골드 드래곤의 이름값으로 제 가치를 묶어두려는 거 아닙니까?"
나는 계약서를 밀어냈다.
"수익 배분은 9대 1로 가죠. 계약금은 필요 없습니다. 대신, 유료화 이후 발생하는 모든 2차 저작권(웹툰, 드라마, 영화)에 대한 우선 협상권은 드리되, 결정권은 제가 가집니다."
박 이사의 안경 너머로 불꽃이 튀었다. 이건 초등학생과 성인의 대화가 아니었다. 시장을 지배하려는 포식자들끼리의 날 선 공방이었다.
"9대 1은 전례가 없는 수치입니다. 회사도 수익이 남아야..."
"전례는 제가 만들면 됩니다. 이미 제 지표는 전례 없는 기록을 쓰고 있으니까요."
나는 가방에서 초코우유 하나를 꺼내 빨대를 꽂았다. 그리고 여유롭게 한 모금 마신 뒤 덧붙였다.
"제 비축분 30화 안에는 내일 당장 유료화해도 1위를 찍을 에피소드들이 들어있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기 전에 확답 주시죠. 오후 5시부턴 제 수학 학습지 선생님이 오시거든요."
박 이사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품에서 만년필을 꺼내 계약서의 숫자를 수정했다.
"졌습니다. 작가님... 아니, 유 사장님."
사인을 마친 계약서를 가방에 넣고 카페를 나섰다. 등 뒤로 박 이사의 멍한 시선이 느껴졌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문구점 앞에는 아이들이 가챠 머신에 코인을 넣으며 환호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를 지나치며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제 시작이지."
오늘 내가 사인한 종이 한 장이, 앞으로 대한민국 콘텐츠 시장을 어떻게 집어삼킬지 아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작가의 말
등록된 작가의 말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