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조회 : 11 추천 : 0 글자수 : 6,079 자 2026-02-15
3화.
골드 드래곤 미디어와의 계약은 전광석화처럼 진행됐다.
골드 드래곤 미디어와의 계약은 전광석화처럼 진행됐다. 팩스기에서 뱉어내는 종이 위로 '유시우'라는 세 글자가 선명하게 박혔다. 잉크 향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내 소설은 문피아 유료 연재관으로 화려하게 자리를 옮겼다.
팩스로 주고받은 서류에는 '유시우'라는 세 글자가 선명하게 박혔고.
그와 동시에 내 소설은 문피아 유료 연재관으로 화려하게 자리를 옮겼다.
성인 작가들도 평생에 한 번 꿈꿀까 말까 한
'유료화'.
하지만 나에게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누군가에겐 종착역일 그곳이 나에게는 이제 막 동이 트기 시작한 출발역일 뿐이었다.
"시우야, 오늘 급식 돈가스라는데 안 먹어?"
짝꿍 민지가 내 소매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내 시선은 급식 식단표가 아니라, 책상 아래 숨겨둔 스마트폰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실시간 유료 베스트 1위: '초딩이 돈을 쓸어담음']
[현재 구매 수: 20,000]
2만전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유료 연재 전환 단 한 시간 만에 찍힌 숫자다.
그 숫자가 주는 무게감에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유료 연재 전환 단 한 시간 만에 찍힌, 비현실적인 숫자. 한 화당 100원이라는 푼돈이 모여 거대한 해일이 되어 밀려오고 있었다.
플랫폼 수수료와 매니지먼트 배분을 떼고 나도, 이 짧은 쉬는 시간 동안 내 통장에 꽂힌 숫자는 직장인 한 달 월급을 가볍게 상회했다.
한 화당 100원.
플랫폼 수수료와 매니지먼트 배분을 떼고 나면.
방금 이 짧은 쉬는 시간 동안 내 통장에 꽂힌 돈이 대충 계산해도 직장인 한 달 월급을 상회한다.
'이게 돈의 맛이지.'
차가운 액정의 빛이 내 눈동자에 맺혔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파도 위에 올라타 중심을 잡고 있는 기분.
나는 조용히 폰을 끄고 민지를 바라보며 아이답게 환하게 웃어주었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파도 위에 올라탄 기분.
나는 조용히 폰을 끄고 민지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어주었다.
"돈가스? 좋지. 가자."
내 복장이 내복에서 셔츠로 바뀌었듯.
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9살의 교실은 더 이상 지루한 수업의 연장이 아니었다.
이곳은 나의 '테스트 베드'이자.
가장 순수하고도 탐욕스러운 소비자층이 모여 있는 블루오션이었으니까.
급식을 먹고 돌아온 뒤, 나는 본격적으로 두 번째 판을 짜기 시작했다. 소설로 번 자본을 현금화하는 것은 시간이 걸리지만.
이미 내 손안에는 6화에서 묘사했던 '초딩식 레버리지'의 결과물들이 쥐어져 있었다.
기분이 참으로 묘했다.
나는 가방에서 고급스러운 틴 케이스를 꺼냈다.
그 안에는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신앙'과도 같은 희귀 포켓몬 카드와 한정판 딱지들이 가득했다.
"와, 저거 '뮤츠' 아냐? 대박!"
"시우야, 너 저거 어디서 났어? 저거 문방구에서 절대 안 나오는 건데!"
아이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박 이사와의 미팅 때 보여줬던 그 냉철한 기획자의 눈빛이 다시 돌아왔다.
나는 아이들의 선망 어린 시선을 즐기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거? 어제 뽑았지. 근데 나 이거 그냥 안 가질 건데. 경매할 거야."
"경매? 그게 뭐야?"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칠판 앞으로 걸어가 분필을 잡았다.
그리고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9살의 언어로 풀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간단해. 너희가 가진 떡볶이 쿠폰, 문방구 이용권, 아니면 주말에 나 대신 도서관 책 반납해 줄 사람. 가장 가치 있는 걸 제시하는 사람한테 줄게."
이것은 단순한 물물교환이 아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가치'를 매기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노동력을 독점하고 있었다.
"난 떡볶이 쿠폰 두 장!"
"난 일주일 동안 시우 가방 들어주기!"
교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기 전까지, 나는 이미 세 명의 '직원'을 고용했다.
한 명은 내 소설의 오타를 잡아낼 교정 보조(국어 성적이 좋은 반장), 다른 한 명은 동네 재개발 지역의 전단지를 수거해 올 현장 조사관(발이 빠른 축구부), 마지막 한 명은 내가 지정한 물건을 대신 사 올 구매 대행원(문방구 아들)이었다.
'레버리지의 기본은 내 시간을 남의 시간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내가 수업을 듣고, 수학 익힘책을 푸는 동안에도 나의 비즈니스는 아이들의 손발을 빌려 굴러가기 시작했다.
방과 후, 나는 약속대로 '구매 대행원'인 영수와 함께 문방구로 향했다. (영수의 아버지는 내 소설 5화의 모델이었던 분이다.)
"어이구, 시우 왔니? 오늘도 영수랑 같이 왔네?"
"안녕하세요, 아저씨. 어제 말씀드린 그 물건 들어왔나요?"
아저씨는 의아한 표정으로 카운터 아래에서 커다란 박스 하나를 꺼냈다. 안에는 싸구려 장난감이 아닌, 당시에는 생소했던 수입산 '액괴(액체괴물)' 슬라임 재료들이 가득했다.
"이거 진짜 팔리겠니? 애들이 이런 끈적거리는 걸 왜 좋아하는지 원..."
"걱정 마세요. 이건 '상품'이 아니라 '문화'를 파는 거니까요."
나는 영수에게 박스를 들리고 내 집무실—아니,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문피아 쪽지함을 확인했다.
[골드 드래곤 미디어 박진철 이사: 작가님, 유료 전환 수치가 미쳤습니다. 지금 본부장님도 난리가 났어요. 내일 당장 2차 판권 계약 건으로 미팅 가능하실까요?]
나는 차갑게 식은 초코우유를 한 모금 마시며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유짱: 내일은 수학 시험이 있어서 곤란합니다. 모레, 지난번 카페에서 뵙죠.]
무게를 잡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내일은 수학 시험이 있는 날이고, 100점을 맞지 못하면 엄마에게 컴퓨터 금지령을 당할 수도 있다.
자본주의의 정점에 서려는 자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매니지먼트사도, 경쟁 작가도 아닌 '엄마의 등짝 스매싱'이었다.
나는 노트북 옆에 수학 익힘책을 펼쳤다.
‘아.개 어렵네’
화면 속에서는 수만 명의 독자가 내 다음 화를 기다리며 울부짖고 있었고, 내 통장엔 억 단위의 돈이 찍히기 일보 직전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놓인 문제는 '삼각형의 세 변의 길이'를 구하는 것이었다.
"이 괴리감... 나쁘지 않네."
나는 펜을 돌리며 미소 지었다. 9살의 몸은 제약이 아니라, 가장 완벽한 위장막이었다. 내가 어른들의 세계에서 거액의 계약서를 휘두르는 동안,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액괴'의 열풍을 일으켜 골목 상권을 장악할 것이다.
창밖으로 붉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대한민국 웹소설 판이 내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고 있다면, 이제는 현실의 자본을 움직일 차례였다.
내 소설 속 주인공이 8화에서 팝업 스토어를 열었듯, 나 역시 현실의 '팝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타깃은 다음 주에 열릴 학교 축제, '시우 장터'였다.
"준비됐어, 사장님?"
나는 거울 속의 나에게 물었다. 거울 속 유시우는 여전히 작고 어린아이였지만, 그 눈빛만큼은 세상을 다 집어삼킬 듯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
축제 당일, 운동장엔 태극기 대신 아이들의 들뜬 함성이 펄럭이고 있었다.
'시우 장터'.
이름부터 거창한 이 행사는 사실 학교에서 주최하는 흔한 바자회였다.
하지만 나에게 이곳은 단순한 나눔의 장이 아니었다.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시장을 교란하고, 새로운 유행을 창조하는 '실전 비즈니스'의 현장이었다.
"시우야, 진짜 이거 팔아도 되는 거야? 선생님한테 혼나면 어떡해?"
구매 대행원 영수가 박스를 품에 안은 채 사색이 되어 물었다. 박스 안에는 며칠 전 문방구 아저씨를 통해 공수한 '수입산 액괴 재료'들이 가득했다. 아직 한국 초딩들에겐 전파되지 않은, 미지의 끈적임이자 신대륙의 장난감이었다.
나는 영수의 어깨를 툭툭 치며, 운동장 한가운데 가장 목 좋은 자리에 돗자리를 폈다.
"영수야, 법보다 무서운 게 뭔지 알아? 바로 '유행'이야. 그리고 유행은 내가 만든다."
나는 가방에서 미리 준비한 판넬을 꺼내 세웠다. 세련된 폰트나 디자인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9살의 감성을 자극하는 직관적인 문구 하나면 충분했다.
[단독/한정] TV에도 안 나온 '마법의 젤리 괴물' - 선착순 30명.
장사는 기세다. 나는 미리 고용해둔 '바람잡이' 반장에게 눈짓을 보냈다. 반장은 내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화려한 색깔의 액괴를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내며 탄성을 내질렀다.
"와! 이거 뭐야? 느낌 대박인데? 야, 이거 진짜 신기하다!"
순식간이었다. 아이들의 발걸음이 멈췄다. 호기심은 전염병보다 무섭게 번져나갔다. 1,000원, 2,000원...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에서 꼬깃꼬깃한 지폐가 쏟아져 나왔다.
전생에 수십억 대 자산을 굴리던 손으로, 나는 아이들의 동전과 지폐를 능숙하게 갈무리했다. 짤랑거리는 동전 소리가 운동장의 소음과 섞여 기묘한 협주곡을 만들어냈다.
'이건 단순히 액괴를 파는 게 아니야. '남들보다 먼저 가졌다'는 우월감을 파는 거지.'
장사가 절정에 달했을 무렵, 익숙한 그림자가 내 돗자리를 가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빳빳하게 다려진 정장 바지가 보였다. 박진철 이사였다.
"작가님, 여기서 장사를 하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는 당혹스러운 듯 안경을 고쳐 썼다. 9살짜리 천재 작가가 학교 운동장에서 흙먼지를 마시며 액괴를 팔고 있는 광경은, 웹소설 업계 거물인 그에게도 꽤나 충격적인 미장센이었을 것이다.
"약속 시간은 4시 아니었나요, 이사님? 여기까진 웬일이세요."
"작가님 소재가 워낙 폭발적이라... 2차 판권 계약서를 들고 직접 왔습니다. 이 장터의 열기를 보니, 왜 작가님 글이 그렇게 생생한지 알겠군요."
박 이사는 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더니, 아이들이 바글거리는 돗자리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수천억 가치의 IP(지식재산권) 계약이, 떡볶이 냄새가 진동하는 초등학교 운동장 돗자리 위에서 검토되기 시작했다.
"웹툰화 수익 배분은 지난번 말씀하신 대로 9대 1로 수정해 왔습니다. 다만, 영상화권에 대해서는 저희가..."
"이사님."
나는 돈을 세던 손을 멈추고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노을이 그의 안경알에 반사되어 날카롭게 빛났다.
"영상화권은 건드리지 마세요. 그건 제가 나중에 직접 제작사를 세워서 만들 겁니다."
"...네?"
"지금은 그냥 글이나 잘 팔아주세요. 제 독자들이 다음 화 안 올라온다고 난리니까."
박 이사는 헛웃음을 삼켰다. 9살 소년의 입에서 '제작사를 세우겠다'는 말이 나오는데, 그게 허풍처럼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는 소름이 돋은 모양이었다. 그는 순순히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일어섰다.
"작가님, 가끔은 무섭습니다. 정말 9살 맞으신지..."
"수학시험 80점 맞아서 엄마한테 혼나는 9살 맞습니다. 이제 가보세요, 손님 오네요."
축제가 끝나갈 무렵, 내 주머니는 묵직해졌고 박스 안의 액괴는 동이 났다. 아이들이 떠나간 운동장엔 긴 그림자만이 남았다.
나는 혼자 돗자리에 앉아 차가워진 초코우유를 마셨다.
주머니 속의 지폐 뭉치, 가방 속의 억대 계약서.
모든 것을 가졌지만, 텅 빈 운동장을 바라보는 기분은 묘하게 시렸다.
나는 늘 이랬다. 숫자가 올라갈수록, 통장이 불어날수록 세상은 점점 더 고요해졌다.
"시우야! 너 안 가? 엄마가 너 찾으러 오신대!"
민지가 멀리서 손을 흔들며 뛰어왔다. 노을을 등지고 달려오는 아이의 환한 미소. 그제야 나는 차가운 자본가의 가면을 잠시 내려놓았다.
"어, 금방 가!"
나는 돗자리를 챙겨 일어섰다.
대한민국 웹소설 판을 뒤흔드는 천재 작가, 골목 상권의 포식자, 그리고 냉혹한 기획자.
수많은 수식어가 나를 감싸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건 엄마가 오기 전까지 집에 가서 수학 숙제를 끝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골드 드래곤 미디어와의 계약은 전광석화처럼 진행됐다.
골드 드래곤 미디어와의 계약은 전광석화처럼 진행됐다. 팩스기에서 뱉어내는 종이 위로 '유시우'라는 세 글자가 선명하게 박혔다. 잉크 향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내 소설은 문피아 유료 연재관으로 화려하게 자리를 옮겼다.
팩스로 주고받은 서류에는 '유시우'라는 세 글자가 선명하게 박혔고.
그와 동시에 내 소설은 문피아 유료 연재관으로 화려하게 자리를 옮겼다.
성인 작가들도 평생에 한 번 꿈꿀까 말까 한
'유료화'.
하지만 나에게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누군가에겐 종착역일 그곳이 나에게는 이제 막 동이 트기 시작한 출발역일 뿐이었다.
"시우야, 오늘 급식 돈가스라는데 안 먹어?"
짝꿍 민지가 내 소매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내 시선은 급식 식단표가 아니라, 책상 아래 숨겨둔 스마트폰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실시간 유료 베스트 1위: '초딩이 돈을 쓸어담음']
[현재 구매 수: 20,000]
2만전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유료 연재 전환 단 한 시간 만에 찍힌 숫자다.
그 숫자가 주는 무게감에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유료 연재 전환 단 한 시간 만에 찍힌, 비현실적인 숫자. 한 화당 100원이라는 푼돈이 모여 거대한 해일이 되어 밀려오고 있었다.
플랫폼 수수료와 매니지먼트 배분을 떼고 나도, 이 짧은 쉬는 시간 동안 내 통장에 꽂힌 숫자는 직장인 한 달 월급을 가볍게 상회했다.
한 화당 100원.
플랫폼 수수료와 매니지먼트 배분을 떼고 나면.
방금 이 짧은 쉬는 시간 동안 내 통장에 꽂힌 돈이 대충 계산해도 직장인 한 달 월급을 상회한다.
'이게 돈의 맛이지.'
차가운 액정의 빛이 내 눈동자에 맺혔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파도 위에 올라타 중심을 잡고 있는 기분.
나는 조용히 폰을 끄고 민지를 바라보며 아이답게 환하게 웃어주었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파도 위에 올라탄 기분.
나는 조용히 폰을 끄고 민지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어주었다.
"돈가스? 좋지. 가자."
내 복장이 내복에서 셔츠로 바뀌었듯.
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9살의 교실은 더 이상 지루한 수업의 연장이 아니었다.
이곳은 나의 '테스트 베드'이자.
가장 순수하고도 탐욕스러운 소비자층이 모여 있는 블루오션이었으니까.
급식을 먹고 돌아온 뒤, 나는 본격적으로 두 번째 판을 짜기 시작했다. 소설로 번 자본을 현금화하는 것은 시간이 걸리지만.
이미 내 손안에는 6화에서 묘사했던 '초딩식 레버리지'의 결과물들이 쥐어져 있었다.
기분이 참으로 묘했다.
나는 가방에서 고급스러운 틴 케이스를 꺼냈다.
그 안에는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신앙'과도 같은 희귀 포켓몬 카드와 한정판 딱지들이 가득했다.
"와, 저거 '뮤츠' 아냐? 대박!"
"시우야, 너 저거 어디서 났어? 저거 문방구에서 절대 안 나오는 건데!"
아이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박 이사와의 미팅 때 보여줬던 그 냉철한 기획자의 눈빛이 다시 돌아왔다.
나는 아이들의 선망 어린 시선을 즐기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거? 어제 뽑았지. 근데 나 이거 그냥 안 가질 건데. 경매할 거야."
"경매? 그게 뭐야?"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칠판 앞으로 걸어가 분필을 잡았다.
그리고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9살의 언어로 풀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간단해. 너희가 가진 떡볶이 쿠폰, 문방구 이용권, 아니면 주말에 나 대신 도서관 책 반납해 줄 사람. 가장 가치 있는 걸 제시하는 사람한테 줄게."
이것은 단순한 물물교환이 아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가치'를 매기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노동력을 독점하고 있었다.
"난 떡볶이 쿠폰 두 장!"
"난 일주일 동안 시우 가방 들어주기!"
교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기 전까지, 나는 이미 세 명의 '직원'을 고용했다.
한 명은 내 소설의 오타를 잡아낼 교정 보조(국어 성적이 좋은 반장), 다른 한 명은 동네 재개발 지역의 전단지를 수거해 올 현장 조사관(발이 빠른 축구부), 마지막 한 명은 내가 지정한 물건을 대신 사 올 구매 대행원(문방구 아들)이었다.
'레버리지의 기본은 내 시간을 남의 시간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내가 수업을 듣고, 수학 익힘책을 푸는 동안에도 나의 비즈니스는 아이들의 손발을 빌려 굴러가기 시작했다.
방과 후, 나는 약속대로 '구매 대행원'인 영수와 함께 문방구로 향했다. (영수의 아버지는 내 소설 5화의 모델이었던 분이다.)
"어이구, 시우 왔니? 오늘도 영수랑 같이 왔네?"
"안녕하세요, 아저씨. 어제 말씀드린 그 물건 들어왔나요?"
아저씨는 의아한 표정으로 카운터 아래에서 커다란 박스 하나를 꺼냈다. 안에는 싸구려 장난감이 아닌, 당시에는 생소했던 수입산 '액괴(액체괴물)' 슬라임 재료들이 가득했다.
"이거 진짜 팔리겠니? 애들이 이런 끈적거리는 걸 왜 좋아하는지 원..."
"걱정 마세요. 이건 '상품'이 아니라 '문화'를 파는 거니까요."
나는 영수에게 박스를 들리고 내 집무실—아니,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문피아 쪽지함을 확인했다.
[골드 드래곤 미디어 박진철 이사: 작가님, 유료 전환 수치가 미쳤습니다. 지금 본부장님도 난리가 났어요. 내일 당장 2차 판권 계약 건으로 미팅 가능하실까요?]
나는 차갑게 식은 초코우유를 한 모금 마시며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유짱: 내일은 수학 시험이 있어서 곤란합니다. 모레, 지난번 카페에서 뵙죠.]
무게를 잡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내일은 수학 시험이 있는 날이고, 100점을 맞지 못하면 엄마에게 컴퓨터 금지령을 당할 수도 있다.
자본주의의 정점에 서려는 자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매니지먼트사도, 경쟁 작가도 아닌 '엄마의 등짝 스매싱'이었다.
나는 노트북 옆에 수학 익힘책을 펼쳤다.
‘아.개 어렵네’
화면 속에서는 수만 명의 독자가 내 다음 화를 기다리며 울부짖고 있었고, 내 통장엔 억 단위의 돈이 찍히기 일보 직전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놓인 문제는 '삼각형의 세 변의 길이'를 구하는 것이었다.
"이 괴리감... 나쁘지 않네."
나는 펜을 돌리며 미소 지었다. 9살의 몸은 제약이 아니라, 가장 완벽한 위장막이었다. 내가 어른들의 세계에서 거액의 계약서를 휘두르는 동안,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액괴'의 열풍을 일으켜 골목 상권을 장악할 것이다.
창밖으로 붉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대한민국 웹소설 판이 내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고 있다면, 이제는 현실의 자본을 움직일 차례였다.
내 소설 속 주인공이 8화에서 팝업 스토어를 열었듯, 나 역시 현실의 '팝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타깃은 다음 주에 열릴 학교 축제, '시우 장터'였다.
"준비됐어, 사장님?"
나는 거울 속의 나에게 물었다. 거울 속 유시우는 여전히 작고 어린아이였지만, 그 눈빛만큼은 세상을 다 집어삼킬 듯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
축제 당일, 운동장엔 태극기 대신 아이들의 들뜬 함성이 펄럭이고 있었다.
'시우 장터'.
이름부터 거창한 이 행사는 사실 학교에서 주최하는 흔한 바자회였다.
하지만 나에게 이곳은 단순한 나눔의 장이 아니었다.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시장을 교란하고, 새로운 유행을 창조하는 '실전 비즈니스'의 현장이었다.
"시우야, 진짜 이거 팔아도 되는 거야? 선생님한테 혼나면 어떡해?"
구매 대행원 영수가 박스를 품에 안은 채 사색이 되어 물었다. 박스 안에는 며칠 전 문방구 아저씨를 통해 공수한 '수입산 액괴 재료'들이 가득했다. 아직 한국 초딩들에겐 전파되지 않은, 미지의 끈적임이자 신대륙의 장난감이었다.
나는 영수의 어깨를 툭툭 치며, 운동장 한가운데 가장 목 좋은 자리에 돗자리를 폈다.
"영수야, 법보다 무서운 게 뭔지 알아? 바로 '유행'이야. 그리고 유행은 내가 만든다."
나는 가방에서 미리 준비한 판넬을 꺼내 세웠다. 세련된 폰트나 디자인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9살의 감성을 자극하는 직관적인 문구 하나면 충분했다.
[단독/한정] TV에도 안 나온 '마법의 젤리 괴물' - 선착순 30명.
장사는 기세다. 나는 미리 고용해둔 '바람잡이' 반장에게 눈짓을 보냈다. 반장은 내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화려한 색깔의 액괴를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내며 탄성을 내질렀다.
"와! 이거 뭐야? 느낌 대박인데? 야, 이거 진짜 신기하다!"
순식간이었다. 아이들의 발걸음이 멈췄다. 호기심은 전염병보다 무섭게 번져나갔다. 1,000원, 2,000원...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에서 꼬깃꼬깃한 지폐가 쏟아져 나왔다.
전생에 수십억 대 자산을 굴리던 손으로, 나는 아이들의 동전과 지폐를 능숙하게 갈무리했다. 짤랑거리는 동전 소리가 운동장의 소음과 섞여 기묘한 협주곡을 만들어냈다.
'이건 단순히 액괴를 파는 게 아니야. '남들보다 먼저 가졌다'는 우월감을 파는 거지.'
장사가 절정에 달했을 무렵, 익숙한 그림자가 내 돗자리를 가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빳빳하게 다려진 정장 바지가 보였다. 박진철 이사였다.
"작가님, 여기서 장사를 하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는 당혹스러운 듯 안경을 고쳐 썼다. 9살짜리 천재 작가가 학교 운동장에서 흙먼지를 마시며 액괴를 팔고 있는 광경은, 웹소설 업계 거물인 그에게도 꽤나 충격적인 미장센이었을 것이다.
"약속 시간은 4시 아니었나요, 이사님? 여기까진 웬일이세요."
"작가님 소재가 워낙 폭발적이라... 2차 판권 계약서를 들고 직접 왔습니다. 이 장터의 열기를 보니, 왜 작가님 글이 그렇게 생생한지 알겠군요."
박 이사는 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더니, 아이들이 바글거리는 돗자리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수천억 가치의 IP(지식재산권) 계약이, 떡볶이 냄새가 진동하는 초등학교 운동장 돗자리 위에서 검토되기 시작했다.
"웹툰화 수익 배분은 지난번 말씀하신 대로 9대 1로 수정해 왔습니다. 다만, 영상화권에 대해서는 저희가..."
"이사님."
나는 돈을 세던 손을 멈추고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노을이 그의 안경알에 반사되어 날카롭게 빛났다.
"영상화권은 건드리지 마세요. 그건 제가 나중에 직접 제작사를 세워서 만들 겁니다."
"...네?"
"지금은 그냥 글이나 잘 팔아주세요. 제 독자들이 다음 화 안 올라온다고 난리니까."
박 이사는 헛웃음을 삼켰다. 9살 소년의 입에서 '제작사를 세우겠다'는 말이 나오는데, 그게 허풍처럼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는 소름이 돋은 모양이었다. 그는 순순히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일어섰다.
"작가님, 가끔은 무섭습니다. 정말 9살 맞으신지..."
"수학시험 80점 맞아서 엄마한테 혼나는 9살 맞습니다. 이제 가보세요, 손님 오네요."
축제가 끝나갈 무렵, 내 주머니는 묵직해졌고 박스 안의 액괴는 동이 났다. 아이들이 떠나간 운동장엔 긴 그림자만이 남았다.
나는 혼자 돗자리에 앉아 차가워진 초코우유를 마셨다.
주머니 속의 지폐 뭉치, 가방 속의 억대 계약서.
모든 것을 가졌지만, 텅 빈 운동장을 바라보는 기분은 묘하게 시렸다.
나는 늘 이랬다. 숫자가 올라갈수록, 통장이 불어날수록 세상은 점점 더 고요해졌다.
"시우야! 너 안 가? 엄마가 너 찾으러 오신대!"
민지가 멀리서 손을 흔들며 뛰어왔다. 노을을 등지고 달려오는 아이의 환한 미소. 그제야 나는 차가운 자본가의 가면을 잠시 내려놓았다.
"어, 금방 가!"
나는 돗자리를 챙겨 일어섰다.
대한민국 웹소설 판을 뒤흔드는 천재 작가, 골목 상권의 포식자, 그리고 냉혹한 기획자.
수많은 수식어가 나를 감싸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건 엄마가 오기 전까지 집에 가서 수학 숙제를 끝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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