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 무너지는 태양, 일어서는 용
조회 : 103 추천 : 0 글자수 : 1,939 자 2026-02-25
자경전의 공기는 이제 숨을 쉬기조차 버거울 만큼 무겁게 가라앉았다.
정순왕후의 입술이 열렸으나,
그 틈으로 새어 나온 것은 비명이 아닌 서늘한 냉소였다.
그녀는 나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 눈동자 속에는 수십 년간 풍파를 견뎌낸,
노회한 정객의 계산기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당황은 찰나였고, 그녀는 다시금 '대비'라는 거대한 성벽 뒤로 자신을 숨겼다.
“...전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마치 옥을 굴리는 듯 우아했으나 그 끝은 비수처럼 날카로웠다.
“심환지는 사사로운 원한과 두려움에 눈이 멀어 거짓을 고한 것이옵니다.
전하께서는 아직 보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군주이시니,
간악한 자들이 내뱉는 감언이설에 속아 천륜을 어기려 하셔서는 아니 되옵니다.”
훈계였다.
그녀는 여전히 나를 가르치고 제어할 수 있는 '아이'로 보고 있었다.
가면을 찢는 진실
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설득은 이미 내 귀에 닿기도 전에 흩어지는 먼지와 같았다.
나는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그녀의 성벽을 하나씩 무너뜨렸다.
“거짓이라... 그렇게 믿고 싶으시겠지.”
나는 한 걸음 더 그녀에게 다가갔다.
우리 사이의 거리는 이제 단 세 걸음.
“그날 밤, 탕약을 바꿔치기한 지밀궁녀가 피눈물을 흘리며 증언하였다.
연훈방의 독기를 조절해 아바바마의 폐를 녹여버린 어의들이 이미 모든 실토를 마쳤다.”
정순왕후의 손가락이 옥가락지를 짓이겼다.
“그리고... 네 놈의 충직한 사냥개였던 심환지가 직접 자백했다.
그 모든 비극의 시작과 끝에, 당신의 이름이 있었다고.”
전각 안의 촛불이 일렁이며 그녀의 얼굴에 기괴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정순왕후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갔으나, 그녀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전하. 조선은 전하 혼자 짊어질 수 있는 가벼운 나라가 아니옵니다.
노론의 지지 없이는 사직이 흔들릴 것이고,
저들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는 것은 오직 소신뿐이옵니다.
전하께는... 아직 소신이 필요하옵니다.”
애걸이 아니었다. 그것은 명백한 협박이었다.
나를 왕좌에서 끌어내릴 수도 있다는,
권력의 마지막 발악.
태양의 추락
나는 차갑게 웃었다. 의열단원으로서,
그리고 왕으로서 나는 이미 죽음을 초월한 결단을 내린 상태였다.
“필요 없다.”
단 세 글자가 정순왕후의 가슴에 화살처럼 박혔다.
그녀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크게 흔들렸다.
“이 나라 조선은 더 이상 당신과 같은 독충들이 기생하는 터전이 아닐 것이다.
노론의 분노? 사직의 흔들림? 그 모든 것은 내가 직접 베어 넘길 것이다.”
나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선포했다.
그것은 명령이 아닌, 단죄였다.
“대비마마는 지금 이 순간부터 이 자경전에 유폐된다.
짐이 직접 죽음을 내리기 전까지,
이 문턱을 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전하! 감히 누구에게 그런 무엄한...!”
“한 걸음이라도 나오려 한다면,
네 발목을 잘라서라도 앉혀둘 것이다.”
나의 일갈에 정순왕후는 말을 잃었다.
그녀의 눈에는 이제 분노를 넘어선 근원적인 공포가 서렸다.
그녀가 평생을 바쳐 쌓아온 권력이,
열한 살 아이의 손끝에서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검의 침묵, 왕의 행차
나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백동수.”
문밖을 지키던 백동수가 천둥 같은 목소리로 화답했다.
“예, 전하!”
“감시하라. 이 전각 안으로는 물 한 모금,
서찰 한 장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
이를 어기는 자는 그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즉시 참(斬)하라.”
“명을 받들겠나이다!”
백동수의 검이 칼집에서 반쯤 빠져나와 달빛을 받아 번뜩였다.
정순왕후는 그 빛에 압도된 듯 보좌에 주저앉았다.
나는 자경전을 나섰다.
등 뒤로 육중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쾅—!
그것은 한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소리였다.
창덕궁의 밤하늘은 여전히 검었으나,
그 끝에서 조금씩 여명이 비치고 있었다.
‘이제 시작이다. 뿌리를 잘랐으니,
이제 그 썩은 가지들을 모조리 불태울 시간이다.’
나의 걸음은 이제 망설임이 없었다.
다음 표적은 조정에 도사린 노론 벽파의 잔당들이었다.
정순왕후의 입술이 열렸으나,
그 틈으로 새어 나온 것은 비명이 아닌 서늘한 냉소였다.
그녀는 나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 눈동자 속에는 수십 년간 풍파를 견뎌낸,
노회한 정객의 계산기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당황은 찰나였고, 그녀는 다시금 '대비'라는 거대한 성벽 뒤로 자신을 숨겼다.
“...전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마치 옥을 굴리는 듯 우아했으나 그 끝은 비수처럼 날카로웠다.
“심환지는 사사로운 원한과 두려움에 눈이 멀어 거짓을 고한 것이옵니다.
전하께서는 아직 보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군주이시니,
간악한 자들이 내뱉는 감언이설에 속아 천륜을 어기려 하셔서는 아니 되옵니다.”
훈계였다.
그녀는 여전히 나를 가르치고 제어할 수 있는 '아이'로 보고 있었다.
가면을 찢는 진실
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설득은 이미 내 귀에 닿기도 전에 흩어지는 먼지와 같았다.
나는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그녀의 성벽을 하나씩 무너뜨렸다.
“거짓이라... 그렇게 믿고 싶으시겠지.”
나는 한 걸음 더 그녀에게 다가갔다.
우리 사이의 거리는 이제 단 세 걸음.
“그날 밤, 탕약을 바꿔치기한 지밀궁녀가 피눈물을 흘리며 증언하였다.
연훈방의 독기를 조절해 아바바마의 폐를 녹여버린 어의들이 이미 모든 실토를 마쳤다.”
정순왕후의 손가락이 옥가락지를 짓이겼다.
“그리고... 네 놈의 충직한 사냥개였던 심환지가 직접 자백했다.
그 모든 비극의 시작과 끝에, 당신의 이름이 있었다고.”
전각 안의 촛불이 일렁이며 그녀의 얼굴에 기괴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정순왕후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갔으나, 그녀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전하. 조선은 전하 혼자 짊어질 수 있는 가벼운 나라가 아니옵니다.
노론의 지지 없이는 사직이 흔들릴 것이고,
저들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는 것은 오직 소신뿐이옵니다.
전하께는... 아직 소신이 필요하옵니다.”
애걸이 아니었다. 그것은 명백한 협박이었다.
나를 왕좌에서 끌어내릴 수도 있다는,
권력의 마지막 발악.
태양의 추락
나는 차갑게 웃었다. 의열단원으로서,
그리고 왕으로서 나는 이미 죽음을 초월한 결단을 내린 상태였다.
“필요 없다.”
단 세 글자가 정순왕후의 가슴에 화살처럼 박혔다.
그녀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크게 흔들렸다.
“이 나라 조선은 더 이상 당신과 같은 독충들이 기생하는 터전이 아닐 것이다.
노론의 분노? 사직의 흔들림? 그 모든 것은 내가 직접 베어 넘길 것이다.”
나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선포했다.
그것은 명령이 아닌, 단죄였다.
“대비마마는 지금 이 순간부터 이 자경전에 유폐된다.
짐이 직접 죽음을 내리기 전까지,
이 문턱을 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전하! 감히 누구에게 그런 무엄한...!”
“한 걸음이라도 나오려 한다면,
네 발목을 잘라서라도 앉혀둘 것이다.”
나의 일갈에 정순왕후는 말을 잃었다.
그녀의 눈에는 이제 분노를 넘어선 근원적인 공포가 서렸다.
그녀가 평생을 바쳐 쌓아온 권력이,
열한 살 아이의 손끝에서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검의 침묵, 왕의 행차
나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백동수.”
문밖을 지키던 백동수가 천둥 같은 목소리로 화답했다.
“예, 전하!”
“감시하라. 이 전각 안으로는 물 한 모금,
서찰 한 장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
이를 어기는 자는 그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즉시 참(斬)하라.”
“명을 받들겠나이다!”
백동수의 검이 칼집에서 반쯤 빠져나와 달빛을 받아 번뜩였다.
정순왕후는 그 빛에 압도된 듯 보좌에 주저앉았다.
나는 자경전을 나섰다.
등 뒤로 육중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쾅—!
그것은 한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소리였다.
창덕궁의 밤하늘은 여전히 검었으나,
그 끝에서 조금씩 여명이 비치고 있었다.
‘이제 시작이다. 뿌리를 잘랐으니,
이제 그 썩은 가지들을 모조리 불태울 시간이다.’
나의 걸음은 이제 망설임이 없었다.
다음 표적은 조정에 도사린 노론 벽파의 잔당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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